추석이구나

분류없음 2017/10/06 15:44

한국인이 하는 그로서리에서 나눠준 달력에 빨간 날들이 있는 것도 그냥 무심히 지나쳤다가 어제 동네 세탁소에 들른 길에 추석인 것을 알았다. 중국인 부부 주인이 음력/ 양력이 함께 있는 달력을 카운터에 걸어놨는데 그걸 들여다보다 아차 싶었던 것. 해피 댕스기빙, 했더니 매우 당연하다는듯이 문케잌 (월병) 을 먹었냐고 묻는다. 한국인은 추석에 월병을 먹지 않아, 했더니 하우컴? (왜?) 그럼 니네는 송편 처뮥냐? 고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다른 걸 먹어. 라고 시크하게 넘겼다. 오늘 역시 일터에서 일주일에 두 번 근무하는 파트타이머 중국인에게서 월병 먹었냐는 질문을 듣고 또 다시 구질구질하게 설명. 하우컴? (왜?) 그 남자의 관심은 왜 추석에 맵쌀로 만든 떡을 먹냐는 것. 일 리 있는 질문이다. 햅쌀이 나오긴 이른 때인데. 아마도 묵은쌀로 하는가보지, 대충 넘겼는데 생각해볼 문제... 그런데 왜 니덜은 월병을 먹느냐? 그 미치도록 단 것을 뭐하러 먹느냐? 물었더니 그쪽도 딱히 그럴만한 대답을 하지는 못한다. 하여간 중국인들은 지들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안다. 동(남) 아시안들은 의당 중국식으로 사는 줄 알고 당연하다는 듯이 묻는데 이젠 아주 그냥 지쳤다. 그냥 그렇다고 넘기는 것도 껄쩍찌근하고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귀찮아. 중국인들이 물어보면 그래 그냥 하고 넘기는데 허여멀건 족속들이 월병 먹느냐고 물어보면 식겁하게 된다. 새해에 씨뻘건 봉투를 보여주면서 (물론 돈은 안 들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하고 씨익 웃으면 으이구 저걸 그냥 하다가도 그냥 같이 웃어 넘기게 된다.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가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러나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일일이 따지고 살 기운이 없다. 기력이 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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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들 중 매우 따뜻한 - 겨울이 없는 곳에서 온 사람들의 다른 기준 때문에 몹시 시달리고 있다. 시간 개념이 다르다. 가령 아침 아홉 시에 스탭 미팅을 하면 열 시 전에 온다. "아홉시 (09:00)" 라는 기준을 그들은 아홉시 일 분부터 (09:01) 아홉시 오십구분까지 (09:59) 다채롭게 적용한다. 클라이언트 미팅도 마찬가지라서 클라이언트의 원성이 자자하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노동의 밀도, 시간의 사용, 약속의 적용, 클라이언트 관리 모두 엉망이다. 기준이 다르니 당연하다. 시프트 파트너와 대체 이유가 뭘까. 왜 그럴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화차이 (cultural difference), 시간 관리 (time management) 의 유래, 막스 베버 (Max Weber) 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등등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게 됐다. 시프트 파트너의 아버지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을 겪고 캐나다로 망명온 체코 출신 사회주의자. 사회복지를 전공하기 전에 아버지의 영향 (이라기보다는 압박) 으로 정치학을 전공했고 맑시즘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데 그이도 나도 북미대륙의 사회적 맥락 (Societal context) 에서 비춰볼 땐 이건 아니지 않나... 의견의 일치를 이뤘다. 따뜻한 나라에서 온 이들의 규범파괴적인 (혹은 영혼이 매우 자유로운) 행동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훈련이 덜 된 게 아닌가 싶은데 과연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하기는 할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불가능하겠지. 그럼 대안세상에서는 가능할까? 글쎄, 잘 모르겠다. 일주일에 이틀이나 하루만 일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면 모두가 다 잘 어울려 불만없이 살 수 있는 유토피아가 가능할까. 아니면 직장 문화를 바꿔야 할까? 시간약속 없이 아무 때나 원하는 시간에 나타나서 일하고 적당한 시간을 채우면 퇴근하거나 아니면 아예 집에서 공원에서 도서관이나 바에서 원하는대로 일하면 괜찮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무엇보다 나의 일은 사람을 케어하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더욱 더 이런 "영혼이 무척이나 자유로운" 집단을 이해하는 게 곤혹스럽다. 매니지먼트 레벨에 있는 사람들이 이 집단의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면서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가도 고개를 계속 갸웃하게 된다. 사람의 본성 (substance) 이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머무르거나 반동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는 뽈 부제 (Paul Bourget) 의 명언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누가 그랬는데...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라고...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대로 쓰면 좋은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시스템이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다. 아아아아아 그들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아니, 이해는 하겠는데 내게 다가오는 피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것도 시스템의 일환이려니 하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당연히 클라이언트들에게 피해가 가고 나의 업무에도 지장을 주니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다.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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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짝꿍과 나의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로 굉장한 선물을 보낸 이가 오래전 힐끔힐끔 보던 진보넷블로거라는 사실, 뚱산의 야구팬이라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그나저나 트윈스 너네는 왜 만날 그짝이냐) 짝꿍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아마도 내게 말을 했겠지만 온라인에서 만났던 인연들을 오프라인에서 명실이 상부하도록 꿰는 일은 아무래도 여전히 쉽지 않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 회로를 지녔나보다. 세상은 이렇게 좁구나.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한 나머지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곱씹고 있다. 오늘도 피곤으로 곯아떨어진 곱게 잠든 짝꿍을 보면서 이렇게 부족한 나와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잘 살아봅시다. 보름달을 보고 빌어본다. 백세세상이라서 아직 반백년도 더 살아야하는데... 아이고... 어떻게든 잘 살아지겠지. 잘 할 수 있어. 

 

 

2017/10/06 15:44 2017/10/0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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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생각

분류없음 2017/08/28 04:04

그냥 탁 터놓고 말해 ---,  사람의 욕심은 (바람은) 끝이 없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 바람 없이 사는 사람은 뭔가 "정지한 물체" "운동하지 않는 유기체" 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생각을 잠깐 했냐면, 

 

직장생활은 재미있고 나름대로 보람찬 일이긴 한데 뭔가 허전한 구석이 많다.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일단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직장을 옮겨야지, 옮겨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반면 지금 직장만한 곳이 없지 뭐 그런 생각의 상충. 

 

주중에 다니는 풀타임 직장의 노동조합은 한창 단체교섭을 하고 있다. 이번 달에 끝날 것 같은데 일전에 제기했던 문제가 교섭안에 포함되어 나름대로 뿌듯한 기분이 들기는 든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직접적인 이익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이라 시큰둥한 면도 없지 않다. 조금만 더 생각해서 나의 이익에 부합하는 면이 무엇인지 그 명분을 찾아내면 시큰둥한 면이 조금 잦아들진 않을까 싶다. 그래, 생각하기 나름이다. 

 

무엇보다, 

 

지난 주에 결혼식을 했다. 결혼 (제도) 은 구닥다리 빅토리아 모델이라 나에겐 영 맞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쩌다보니 또 이렇게 됐다. 나에게 맞든 안맞든 살아보면 답이 나오겠지. 당연히 십 년을 함께 해 준 짝에게 고맙다.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볼 수 있어 감사하고 맛있는 것, 좋은 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은 정말이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아니야, 강아지들도 그런 생각을 할 것 같기는 하다. 맛있는 뼉다귀를 보면 같이 사는 인간 생각을 하기는 할까. 아마 할 것이다. 하기는 할텐데 같이 나눠먹는 것에서 결정의 지점이 다를 것이다. 쿨럭.) 한 사람과 주욱 살아보니 뭔가 인생을 더 배우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이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이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값진 훈련을 할 수 있었다. 고맙다. 내 곁에 있어줘서. 

  

2017/08/28 04:04 2017/08/28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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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없뎃

분류없음 2017/06/26 23:29

 

시티폰 

꽃개가 사는 도시의 지하철에선 휴대전화를 원활히 쓸 수 없다. 다운타운부근에선 제한적으로 쓸 수 있지만 약간만 벗어나도 금방 끊긴다. 한시간 무료로 쓸 수 있는 와이파이도 역을 떠나는 순간 끊어진다. 급한 업무로 아웃룩에 접속할 때마다 혹은 전화나 문자를 쓸 때마다 뚝뚝 끊기는 그 때, 아 이런 때가 옛날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득한 기분이 들어 되짚어보면 시티폰을 쓰던 그 때 기억이 순간적으로 떠오른다. 시티폰, 요즘 친구들은 이게 뭔지 알까 싶다. 

 

태니 (TaeNy) 

혼자 좋아라하는 태연 씨와 티파니 씨의 조합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안다규). 얼마전 케이스컨퍼런스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할 기회가 있었다. 클라이언트의 가명을 뭘로 쓰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당사자 클라이언트의 이름 "하니 ("하"와 "니" 사이에 강한 R 발음이 들어가는) 에서 착안하여 "태니" 로 작명하여 발표했다. 다행히 준비하고 발표하면서 혼자 몹시 신나했다는. 이 마음 니덜은 모르지. 그래서 더 신났다는.

 

지하철

이 도시에선 주말마다 지하철 부분 구간 서비스를 중단한다. 신호업데이트, 레귤러업데이트, 안전점검, 청소 등등 이유도 다양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구간들은 몽창 유동인구가 많은, 한국식으로 하면 홍대-신도림 혹은 신도림-강남역 구간이다. 당연히 꽃개가 주말출근마다 이용하는 구간. 젠장. 셔틀버스를 운행하기는 하는데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다. 시민들이 항의하거나 데모하는 꼴을 한 번도 못봤다. 이것봐라. 이렇게 참을성이 높다니. 언젠가 한국과 비슷한 시민의식을 지닌 나라에서 이민온 동료에게 "지하철을 이런 식으로 서비스했다간 한국 같았으면 벌써 난리났어" 라고 했더니 자기네 나라에선 폭동이 일어났을 거란다. 시민의식으로 포장하고는 있지만 착해도 너무 착하다. 호갱이 따로 없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주말마다 지하철을 이용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거반 서민이다. 출근하거나 간만에 아이들과 놀러나가거나.

 

트레이닝

한국 돈으로 물경 오십만 원에 육박하는 8주짜리 트레이닝에 참석하고 있다.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긴 해도 너무 비싸다. 게다가 내용을 들어보니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를 사회복지영역에 도입하는 내용이다. 하우징 (주택), 멘탈헬스 (정신건강), 인테이크, 크라이시스 인터벤션, 케이스웍 등 업무분장이 분명했고 각 업무에 따라 잡 포지션이 분명했던 것을 점차 통합하려는 냄새 (?) 가 역력하다. 업무의 내용, 서비스 내용은 여전히 분명히 다르지만 그것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역량을 통합해야 한다는 거. 말이 좋아 역량의 통합이지 앞으로 하우징워커가 정신건강 분야도, 케이스웍 분야도 다 해내야 한다는 것을 세련된 말로 포장한 것에 다르지 않다. 긴축 (austerity). 고정비용을 줄이겠다는 말.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는 않지. 젠장. 

 

아저씨의 국제화 

모 나라에서 온 세 명의 클라이언트. 세 명 모두 같은 나라에서 오긴 했어도 지역이나 종교, 배경 등은 확연히 다른데 공통점은 마치 한국에서 온 "아저씨" 들처럼 행동하다는 것. 개저씨라는 신종 용어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이렇게도 글로벌하게 들어맞는 사람을 전혀 다른 대륙에서 온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역시 세계는 하나. 위아더월드. 

 

태연 씨의 페르소나 투어 

태연 씨는 최근 동남아 콘서트 "페르소나" 투어를 마쳤다. 북미대륙엔 왜 안오시는 겁니까. 

 

트윈스 

오락가락하다가 중위권으로 내려앉은 트윈스. 올해는 정말 신경안쓰려고 바락바락 애썼는데 그래서 네이버야구뉴스도 안들어가려고 애썼는데 잘 안된다. 힘들다. 구여친 구남친의 소셜미디어를 뒤적거리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런 걸까. 공감능력의 절대강자 짝꿍께서도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꽃개, 그냥 걔네들 내버려둬요" 라고 말씀하셨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버려둬야지 어쩌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걸요. 흑흑. 

 

욕쟁이 수퍼

슬로베니아에서 이민온 수퍼 (빌딩 메니저, superintendent 의 줄임말. 여기선 다 이렇게 부른다) 언니는 매우 친절한 사람이다, 꽃개와 꽃개 짝꿍에게는 그렇다. 월요일 아침마다 퇴근하면서 "아임홈" 하며 인사를 하면서 장난을 치는데 오늘따라 대답이 없고 전화기를 붙잡은 채 쌍욕을 시전한다. 소포를 받을 일이 있어 오피스 밖에서 기다리는데 욕이 장난 아니다. 아으, 다음에 올까 싶은데 전화를 끊고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너 패키지 기다리고 있지, 뭘 시켰길래 이렇게 커. 전기실에 넣어놨어. 자, 가져가. 들 수 있겠어?" "응 괜찮아. 화장실 휴지하고 책 두 권이야" "근데 저 썅년 (fucking bitch)이 저 개너구리들 (fucking racoons) 을 처치를 안한다네. 돈 든다고" "뭔 일 있었어?" "개너구리들 (fucking racoons) 이 밤마다 와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잔치를 하는데 (enjoying catering service) 지들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알아서 처리를 해야할 거 아니야. 우리 아파트로 옮아오면 어쩌려구" 들어보니 옆 아파트 건물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곧 우리 아파트로 일이 번질까봐 두려워 미리 예방 (prevention) 하고 있는 중이다. 잘한다. 칭찬해! 그런데 저렇게 찰지게 욕을 하다니. 천하에 친절한 수퍼께서 화가 나면 저렇게 욕을 잘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어도 막상 찰지게 (그것도 몇번씩) 듣고나니 머쓱. 하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 수퍼 편을 들어줘야 해서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what kind of person! shoot!)" 거들어줬다. 씩 웃어주는 나의 수퍼를 뒤로 하고 승강기에 올랐다. 아마존에 주문할 때마다 안전하게 나의 소포를 챙겨주시는 친절한 욕쟁이 수퍼 때문에 이사가고 싶다가도 계속 살아야지 그런 생각이 든다.   

 

 

 

 

 

 

2017/06/26 23:29 2017/06/26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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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개끓이며

분류없음 2017/05/31 02:06

 

김성근 감독 사임 

예상했던 일이긴한데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말았다. 반면교사. 회사가 나를 짜르려고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상극의 사람이 상사로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일단 곤조는 보여주고 떠난 김감독. 왕입니다요. 박근혜의 몰락과 함께 근대의 종말을 보여주신 김감독님. 아직은 아냐. 그 지긋지긋한 반혁명의 시기가 아직은 남아있거든. 

 

 

한평생 총각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그들 입장에선 대단한 일이다-끔찍하지 않나-평생 혼자 살아야 한다니. 여자는 혼자 살아도 큰 일이 별로 없지만 남자는 혼자 사는 순간 여럿의 손이 많이 간다. 젠더-섹스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구조적 차원의 문제다.

 

 

게이의여혐 

남성동성애자 집단의 여혐은 그들이 원래 여성을 싫어하기 때문인 탓도 있지만 그들의 놀이문화를 표현할 언어가 그것밖에 없어서 - 여성혐오적인 언어밖에 없어서 - 그런 탓도 있다. 시스젠더 남성 입장에선 여성을 타자화하지 않고서는 그들을 온전히 드러낼 방도 - 완벽하게 타자를 대상화할 방도- 가 없다. 없었다. 그리고 그 시스젠더 남성 문화를 오롯이 지닌 그들이 여성혐오적 언어유희(?) 를 통해 당사자를 드러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그들의 여성혐오적 언어유희 (?) 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여성혐오를 하는 것과 그들이 여성혐오적 언어를 내면화한하여 드러내는 것은 다르게 접근했으면 싶다. 우리 여성도 때때론 여성혐오적으로 살지 않느냔 말이다.  

 

 

"한남"의여혐

이건 뭐. 꼭 말해야 하나 싶지만... 그냥 찌개가 끓을 때까지 시간을 때운다 셈치고 말하자면 "한남" 들이 떠드는 반대로만 하면 전략은 성공이다. 곧 어느날 안티테제로는 더이상 버틸 수 없는 그런 날이 올 때까지. 따라서 메갈리아적 접근은 여전히 유효하다. 메갈군단과 한남은 어쩌면 이북의 정권과 돼지발정자유당처럼 적대적 공생관계일는지도.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남은 하나의 운명마저 다하는 애절한 관계. 따라서 "한남"은 메갈리아를 욕하지 말고 본견들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같이 죽을 것인가, 혼자라도 진화해서 살아남을 것인가. 

 

  

2017/05/31 02:06 2017/05/31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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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감독

분류없음 2017/04/06 02:26

김성근 감독. 생각할 때마다 좀 짠하다. 아니, 많이 짠하다. 사실 "야구 감독"으로서 김성근 감독만한 사람이 없긴 없다. 세밀하고 치밀한 그의 계산야구. 패넌트레이스 대장정의 한 게임에 불과한 그 날의 게임에서조차 박빙승부에서 모든 전력을 투여하는 그의 전술운용을 보면 정말이지, "최선을 다한다" 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멋있고 울컥하게 만든다. 마치 아이엠에프 (IMF) 를 가까스로 이겨내고 살아남은 가장 (家長, breadwinner) 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명 (resonating)하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수많은 혹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혹사 논란의 당사자들은 그를 여전히 존경하고 따른다 (물론 내막은 자세히 알 도리가 없다). 김성근 감독이 지닌 장점 가운데 하나인 정서적 올바름 (emotional correctness)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남들이 뭐라하든 당사자들은 깊은 감동과 동기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나를 알아준다" 는 가장 기본적인 인정욕구를 김감독을 통해 충족했다면 그 개인에게 그보다 더한 자기만족감 (self-actualization) 은 없으리라.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까지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간혹 울컥 화를 내고 맥락도 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적이 없진 않았어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도 있었다. 철도청과 국책은행에서 24시간 맞교대 노동을 하실 적에는 그 하루를 쉬는 날에도 다음 날에 출근해야 하는데도 최선을 다해 곤충채집에 함께 나서주시곤 했다. 어느 겨울날엔 큰 방패연을 만들어주셨고 바람이 강하게 불던 날 그 연이 멀리멀리 날아가버리자 울먹이는 당신의 딸에게 원래 연을 저렇게 멀리 날아가야 인생이 편안하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 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기도 하다. 교대근무를 해보니 24시간 맞교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노동인지 깨닫게 됐다. 아버지는 "원래"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것 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임노동자로 살아가는 면에선 적합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건강보험이 보편적복지로 자리잡기 한참 전이던 1980년대에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 (privilege) 이었다. 어머니는 늘 노심초사하시며 아버지의 심기를 살피셨는데 결국 아버지는 철도청은 1년만에, 국책은행은 2년만에 때려치셨다.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게 이유였다. 어머니는 다시 날품팔이 장사에 나가셨다. 먹고살아야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아버지는 월급을 받는 직장을 다시 얻지 못했고 아버지는 "이상한 사람" 으로 변해갔다. 마침 묵혀둔 땅이 팔려 집에 돈이 넘쳤어도 역시 아버지는 나에겐 이상한 사람이었다. 어릴 적 기억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주변 사람들 모두 아버지를 "좋은 사람"으로 말한다는 것이었고 평판이 대단히 좋았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까지, 부모님 집에서 나와 따로 살기 전까지 나에겐 이것이 견딜 수 없는 지독한 모순이었다. 아버지의 평판을 추켜세우는 그들에게 아버지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 이었을는지는 몰라도 나에겐 정서적으로 결코 그렇지 아니한 "이상한" 사람이었다.

 

 

다시 김성근 감독 이야기. 이글스 구단은 작년 김감독의 계약 기간을 지켜주기로 결정했다. 다만 선수 출신인 박종훈 단장을 영입해 팜시스템을 맡겼다. 뭔가 이상했지만 이글스 구단이 이제서야 정신을 차렸구나 싶어 반가웠다. 한편, 김감독이 많이 고생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감독 스타일에, 만기친람 (萬機親覽, micro-management) 하는 그의 성정상 잡음이 많이 일겠구나 싶었다. 역시 불필요한 잡음이 일고 있다. 이글스 구단의 감독으로 취임한 뒤로 자신의 뜻대로 전권을 행사해온 김감독 처지에선 당혹스럽다 못해 자존심이 극도로 상하는 일이다. 2군에서 선수를 올려 직접 보겠다는데 왜 안된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1970년대, 80년대엔 아니, 김감독이 야구를 시작한 이래 그는 늘 그렇게 야구를 해왔다. 그런데 사정이 많이 바뀌었다. 김감독이 바뀐 사정에 적응할지 아니면 고집을 부려 "이상한 사람" 모드를 지속할지 지켜봐야겠다. 그날그날 장사해 먹고사는 보부상과 십년지대계로 멀리 보고 장사하는 대상인의 접전같다. 누가 이길지 자본력만 놓고 보다면 뻔한 게임이지만 그 와중에 어떤 변화를 보일지 과연 김감독은 변할 수 있을지 자못 기대된다. 만약 김감독이 이 국면에서 대전환을 보여준다면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김감독의 광팬-추종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모르겠다. 박근혜가 자기 죄를 시인하면 김감독도 바뀔지도 모를 일.

 

 

다시 아버지 이야기. 아버지는 연세를 잡수시면서 더욱 이상한 사람으로 되어가셨다. 그 정도로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느날부터인지 조갑제 씨가 집필한 책을 사시고 구독하던 신문도 한국일보에서 조선일보로 바꾸셨다. 한국일보가 빨갱이 신문이라는 이유였다. 딸이 셋이나 있는 양반이 갑자기 남아선호사상의 신봉자로 돌변하셨다. 어느 날엔 당신 자식들이 밥을 먹으며 영화 "화려한 휴가"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갑자기 끼어들어 "광주 것들을 모두 잡아들여 몰살시켜야 한다"는 끔찍한 말을 하시어 당신 자식들을 질색하게 하셨다. ... 간혹 친박부대의 박근혜엄호 집회 기사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저 자리에 계신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아버지와 연락하지 않고 지낸 지 어언 십년 차에 접어든다. 이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는 걸까 아예 아무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아버지는 살아남기 위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보수화 (conservative swing)" 라는 당신의 진로를 잡으셨고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변화" 다. 연락 없이 지낸 그간의 십 년의 세월동안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 되셨을까. 손주손녀도 보셨으니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계실까, 아니면 당신이 마감하실 말년까지 당신의 옳음을 입증하려 애쓰시는 분이실까.

2017/04/06 02:26 2017/04/06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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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장어외

분류없음 2017/04/01 01:40

수컷 장어

 

한 달에 두어 번, 많게는 서너 번 한국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 최근 직접 나가서 장을 볼 시간이 부족해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이틀 뒤 받아보는 패턴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자잘한 것은 역시 직접 둘러보고 구입하려 애쓴다. 출근길에 잠깐 들려서 한국에서 뭐 새로 온 게 있나, 약간의 흥분... 그러다가 발견한 장어구이. 아싸. 그런데 집에 와서 자세히 보니 "사내 남 (男)" 글자가 포장지에 뙇! 원래 장어를 암수 구별해서 파나, 수컷장어가 더 맛이 있나, 요즘 한국에선 수컷장어가 유행인가, 왜 수컷을 선호하지, 원래 동물은 암컷이 더 월등한 거 아닌가... 별의별 추측성 대화를 한참 나누다가 깨달았다. 아, 남자에게 좋은 장어라는 의미구나. 이렇게 오묘한 뜻이. 아마도 그게 맞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어를 먹을 적에 암수 구별하면서 먹었던 기억은 전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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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방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이 치과에 가는 일. 며칠 전 어금니 크라운 하나가 쏙 빠져버렸다. 대학교 일학년 때 맞춘 것이니 물경 이십 년도 넘었다. 그럴 때가 됐구나. 약속도 잡지 않고 emergency 라는 핑계로 불쑥 치과에 갔다. 당연히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의 심정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소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안쪽에서 드릴로 가는 소리 같은 게 들리니 심장이 벌렁벌렁 아아아아아 이미 맨붕 시작. 다행히 핑크색 어린이 의자가 있다. 나를 위해 준비했구나. 뭔가 의지할 데가 있으면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나만의 대기 의자. 기다리는 동안 다행히 어린이 친구들이 오지 않아 맘편히 의자를 독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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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결과 마우스 가드 (night guard) 를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밤에 자는 동안 이를 가는 습관은 없지만 평소에 뭔가를 생각할 때 혹은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이를 앙다무는 습관 (clenching) 이 있다. 파트너도 종종 지적해주신다. 그런데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야구선수나 복싱선수보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 두번 째 방문에서 틀 (impressions) 을 땄다. 다행히 보험처리가 되는 치료라서 큰 걱정은 없는데 아무래도 대낮에 이걸 끼고 있으면 외관이 참 흉악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염려아닌 염려. 이제 치과 방문은 두 번 남았다. 연식이 늘어가니 뭔가 보조해야 할 일들도 늘어간다.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생각처럼 그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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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1 01:40 2017/04/0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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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대책

분류없음 2017/03/24 00:46

안선희 기자의 말마따나 근혜찡이 그간 대통령역할만 제대로 했더라도 한국 사회 최대 이슈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두말하면 잔소리. 한국사회는 이미 심각하다. 사람들은 늙어가는데 새로 나와야 할 아이들이 나오지 않는다. 어딘가에 묵혀둔 거라서 꺼내쓸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서 더더욱 심각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 동물계에서 말하는 암수교접 비율이나 횟수가 현저하게 떨어진 것은 아닐진대 새로운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유일한 인구집단, 가임여성들이 출산을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간단히 들여다보면 저출산-고령화 원인을 가임여성들에게서 찾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어 보인다.

 

사실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싶으면, 낳겠다고 결심하면 임신의 방법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여성 입장에서 그렇다. 그리고 출산-육아라는 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보장받는 일이고 해볼만한 일인 데다가 인생의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면 그 일을 마다할 가임여성보다 재고할 여성이 더 많을 것이라는 가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간단한 이치다. 출산능력을 근본적으로 결여한 남성 입장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를 낳고 기르려 계획을 하는 순간, 아니 상상만이라도 하려면 누군가를 - 상대의 성을 - 대상화해야만 한다. 현대 과학기술 수준에서는 아직 이 수준을 넘어서는 플랫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아직은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그들에게 출산-육아에 앞서 "짝짓기-결혼" 라는 절체절명의 고난도 장벽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 또한 당연해 보인다.

 

진단은 저출산-고령화다. 사실 고령화는 어쩔 수 없다. 시간이 가면 사람 또한 연식이 쌓이고 늙어가는데 기계도 늙어가는 마당에 사람에게 늙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일찍 저세상으로 가시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고령화를 저출산에 갖다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진단은 저출산이다. 그러면 처방 또한 출산가능한 인구집단에 맞춰 내는 게 맞다. 가임여성들이 혹은 앞으로 가임여성인구반열에 들어설 여성들이, 그리고 그 여성들을 키워내는 어른들 입장에서 출산-육아가 정말로 사회적으로 인정-보장받는 일인 데다가 인생의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주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여성들로 하여금 출산을 스스로 결정하되 결정하여 그 노동에 기꺼이 참여해도 그 개인 여성의 인격과 정체성과 커리어에 전혀 손상이 없는 오히려 득이 되는 그런 세상이 되면 애 낳지 말라고 뜯어 말려도 알아서 낳는다. 이 간단한 이치를 모를 리는 없는데 왜 그럴까. 마치 작금의 대책은 좋아하는 여자에게 구애하면서 그 여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엔 1도 관심없고 제풀에 신이 나 마구마구 선물공세를 쏟아붓다가 지쳐 떨어져 "외 나 않조아해. 김치녀-ㄴ들" 울부짓는 어떤 남자를 보는 것 같다. 뜬금없는 짝짓기 정책이나 결혼에 집착하는 정책은 되려 독이 된다. 정부가 10년동안 100조 원이나 쏟아부었는데도 가시적인 성과가 안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0조 원이나 쳐넣었는데 외 애 않 나아"

 

 

* 아동수당 논의가 있는 것 같은데 빈 지점이 있다. 이 수당은 반드시 출산을 수행한 어머니의 이름 앞으로 지급해야 하며 보편적인 복지 (universal care) 로 가야 한다. 가령 이건희 손녀가 아들을 낳아도 월 십만 원,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들을 낳아도 월 십만 원 이런 거 말이다. 기본적으로 비과세 소득이어야 한다. 다만 케어기버의 소득수준에 비례해 과세가능한 소득인지 아닌지는 연말정산에서 다시 따져물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과세 등급 (tax bracket) 을 미리 지정해야 하고 따라서 세수 및 과세 정책과 맞물려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년이 되기 전까지, 가령 만 16세까지 지급하는 것이 옳다.

 

2017/03/24 00:46 2017/03/24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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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지말라

분류없음 2017/03/22 02:20

이것은 굉장히 슬픈 소식이다. 첫째는 힘없는 노동자 (고용인) 가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현실" 때문에 슬프고 둘째는 평생을 권위주의와 반노동자적 체제에 맞서 싸워온 투사들이 그들이 그동안 싸워왔던 적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쌩얼을 드러냈다는 점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황현아 님으로 하여금 이런 글을 쓰도록 만든 그 과정 때문이다.

 

나는 힘없는 노동자이자 피해자인 윤태우 기자를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그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이와 인연이 있었든지 없었든지 그것은 하등 상관이 없다. 윤태우 씨가 겪어낸 그 과정에 나를 이입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군가 내게 머물 집과 직장을 줄테니 와서 일하라고 했다. 이른바 "가족같이 지내실 분" "숙박제공". 전봇대에 붙어있는 스티커 구인광고도 아니고 더구나 그 제안을 한 사람(들)이 믿을만한, 상대적으로 존경할만한 집단이라면, 그리고 그 일이 하고 싶은, 매력적인 일이라면. 거절하기보다 일이 되는 쪽으로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을 믿고 일을 시작했다. 그게 사단이 될 줄이야.

 

나는 이황현아 님이 당신의 글에서 실명거론한 사람들을 예전에 알았던 적이 있거나 만난 적이 있다.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 잘은 몰라도 대충은 안다. 나는 그들이 자본가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나는 이건희도, 이재용도, 신격호도 심지어 트럼프도 자본가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자본가적 속성이라든지, 반자본가적 속성이라든지, 이런 특질 (traits) 은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지 인격 자체에 내재한 것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에서 심각한 결격사유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이건희나 이재용이나 신격호나 트럼프 따위의 사람들도 공히 공유하는 경향 가운데 하나일 것 같다. 아니, 평범한 사람들 모두에게 숨어있다. 권력 관계의 대립이 부상하는 어느 순간 숨겨왔던 이 태도가 드러날 수 있고 이것이 그들의 본질 (substances) 로 될 수 있다. 이건희나 이재용 따위의 사람들은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을 "물건 (things)" 으로 보는 것 같다. 커피가게에서 돈을 주고 사는, 컨비니언스에서 돈을 주고 사는 커피나 담배 같은 것으로 사람을 본다. 마시면 그만이고 맛없어도 버리면 그만이거나 라이터에 불을 붙여 태우다가 꽁초에 이르면 비벼 끄면 된다. 친한 사람이 달라고 하면 아무 대가없이 그냥 줘도 된다. "돛대는 아버지도 안 준다" 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 쯤이야 담배주인의 재량에 달렸다. 하지만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감정이 있고, 상황에 반응하며 인격을 존중받을 권리, 싫고 좋음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노동자는 사람이다. 물건이 아니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한다. 노동자는 사람이다. 물건이 아니다.

 

나는 이황현아 님이 당신의 글에서 실명거론한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했던 과정에 크나큰 실망을 했다. 그들이 좀 더 세련되고 단련됐다면 이런 식으로 추잡스럽게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공연한 장소에서 씹새끼 개새끼 따위를 부르짖고 자신에게 대드는 사람들은 못돼먹은 *새끼가 되는 이런 현실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 곳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싸가지 없이 어린 것이. 니들이 노동운동을 알아. 아울러 이황현아 님이 당신의 글에서 거론한 몇몇 진보언론 매체에도 실망했지만 그 실망은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 않다. 그들도 권력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제 2의 윤태우 같은 기자가 자기 회사에서 나오지 말란 보장도 없다. 중립을 가장한 쌩얼이 더더욱 잔인한 이유다. 그들 매체는 앞으로도 그냥 그렇게 지지부진할 것이다. 젊고 래디컬하며 대안적인 상상력을 지닌 세대들에게 이런 매체는 더 이상의 매력이 없다. 그들 매체를 후원하고 구독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미 그런 매체들은 널리고 널렸다. 다만 우리 선배들이, 예전에 활동하던 선배들이 만든 곳이야, 역전의 용사들이 활동하는 곳이지, 따위의 동기는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매력은 장기적이고 강력한 유인동기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패거리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식회사는 주식회사의 룰에 근거해 정확하게 운영하고 노동자를 고용하려거든 노동관계법과 -노조가 있다면- 단체협약에 근거해 사람을 고용한 뒤 취업규정을 올바르게 적용해서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매했으면 싶다. 구매한 노동력을 최적화하여 사용하려면 사용자들이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존중받을 때 일 잘한다. 그건 진리다. 회사의 경영진에 있는 사람은 말을 아껴야 한다. 그들이 한 말은 개인의 말이 아니라, 회사를 대표하는 말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고용할 때 아파트를 주겠다고 했으면 (거주지 제공) 당연히 아파트를 주는 게 맞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노동조건을 변경해야 할 때에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노동조건이 하향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게 맞다. 거주지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노동조건이 맞다. 왜냐면 노동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면 집에 돌아가 씻고 먹고 자야 한다. 그래야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다. 노동자는 사람이다. 노동자에게 욕하지 말아라. 노동자에게 개새끼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이건희보다 못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다.

 

2017/03/22 02:20 2017/03/22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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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선날

분류없음 2017/03/15 15:30

 

*

이 나라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쓴 영어 표현이 무엇인지 곱씹어봤다. 다름 아닌 "I'm not [a] Chinese" (난 중국인이 아니야). 나는 무엇이다, 라는 표현보다 나는 무엇이 아니다, 라는 네가티브 방식의 이 표현을 가장 많이 구사한 것으로 정리하게 되어 무척 유감이다. "I'm [a] Korean" (난 한국인이야). 라고 말해도 되지만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알아도 북조선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아서 쓸데없이 말이 길어진다. 한국에서 영어 선생님을 해서 했거나 한국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몇마디를 나눠보면 대개 억양에서 눈치를 채기 때문에 어디에서 왔냐는 식의 질문을 아예 하지 않는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차라리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면 황송한데 어림짐작으로 중국요리 잘 만드냐, 만다린 (Mandarine, 북경어) 을 하느냐 아니면 캔토니즈 (Cantonese, 광둥어) 를 하느냐, 나도 중국요리 좋아해 (어쩌라구) 라는 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상당히 곤란하다. 백인들은 "I'm not Chinese" 라는 말을 들으면 대번 "I'm sorry" 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도 역시 뻔뻔하게 말한다. 괜찮아, 우리 나라에선 백인들한테 다 미국인이라고 해. 괜찮아.

 

문제는 흑인들이, 특히 중국인에게 싸잡아 착취를 경험한 서인도제도에서 온 흑인들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면 멈칫, 하게 된다. 그들의 분노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어려운 구석이 있다.

 

**

베트남, 중국, 한국... 이 나라들에서 이민온 남성들. 특히 다 자라 어른이 되어 결혼한 뒤 이민온 아저씨들은 -어떤 분이 강력히 말씀하셨다시피- 특별 교육을 따로 받았으면 싶다. 여자들은, 아내들은 각성이 빠르다.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자기 권리를 깨닫게 된 뒤로는 예전처럼 복종하는, 순종하는 아내로 살지 않는다. 일부 아저씨들은 당황하기 시작하고 못내 폭력을 휘두른다. 베트남, 중국, 한국 본토의 문화나 관습과 달리 이 나라에서 가정폭력 (Domestic Violence) 은 상당히 무겁게 다룬다. 결코 가볍지 않다. 크리미널 클라스도 아예 달라서 살인위협과 동급으로 다룬다. 그런 아저씨들에게 특별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 또한 이 나라 정부에 있다. 무턱대고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르라는 건 말이 통하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지, "아/저/씨" 들에겐 결코 통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그들은 이미 인간계 (人間界) 를 넘어섰다. 간혹 만나는 이 나라 출신의 인간계를 넘어선 클라이언트들을 볼 때마다 동물원에 호랑이랑 같이 집어넣으면 순하디 순한 양이 될텐데... 이런 씰떼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아무래도 인간계를 넘어선 이런 부류들은 절대 서포트하지 못할 것 같다. 사회복지사 (Social Worker) 로서 나의 한계를 확인시켜주는 존재들. 감사할 따름.

 

***

그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 (개인적으로 알고지낸 사람들을 포함해서 그냥 알게 된 사람들 포함) 가운데 가장 극강의 사람은 역시 근혜찡,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이 사람 역시 인간계를 넘어선 우주의 기운을 얻다못해 차고 넘치는 극강의 존재. 아이 씨발 이런 양반을 대통령이랍시고... 이번에 엄마께 전화할 일이 생기면 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하셨냐고 그것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여쭤봐야겠다. 그런데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까. 설마. 아니겠지. 아닐거야. 그러나 모른다. 인간계를 넘어선 사람들, 무척 많다. 나 또한 항상, 오늘도, 이렇게 그 경계에 서 있다. 뭐라고 막 욕을 하고 싶은데, 직장에서 겪은 울분을 토로하고 싶은데 그 씨발같은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경계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일기는 일기장에.

 

 

 

2017/03/15 15:30 2017/03/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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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개의고민

분류없음 2017/02/18 02:32

작년 10월부터 일을 시작한 직장에는 대단히 독특한 문화가 있다. 특정 인종/ 국가 (흑인/ 자메이카 등의 캐리비안 국가들) 출신들이 한 디파트먼트를 장악하고 있다. 정해진 원칙대로 잘하면 좋은데 말이 그렇지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만약 한국에서 영남출신 남성들이 한 회사의 디파트먼트를 장악하고 그 출신 지역 사람들만 뽑으려고 한다면? 그러기도 쉽지 않지만 그러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런데 과연 그 디파트먼트가 잘 돌아갈까? 글쎄, 회식자리에선 잘 돌아갈 것 같기는 하다. 이것은 영남출신 남성들에게 혹은 자메이카 출신 흑인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결코 아니다. 살다보면, 일하다보면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렇다. 동물들을 시켜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 같다. 외부의 적절한 개입과 긴장이 없으면 그냥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바로 그 현실에서 비롯한다. 매뉴얼, 원칙, 규칙이 필요한 이유다. 노동조합에 힘이라도 있으면 외부적으로 강제하겠는데 노동조합조차 유명무실할 경우엔? 솔직히 답이 없다.

 

 

문제는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듣보잡 차이니스인 꽃개가 이 시스템에 들어가면서 비롯됐다. 꽃개의 매니저도 꽃개가 입사하기 직전 헤드헌터 픽업으로 회사에 입사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사의 대빵 (ED) 과 각별한 사이이긴 하나 이 문제적인 디파트먼트의 디렉터를 상관으로 모셔야 한다. 디파트먼트의 디렉터인 이 양반은 역시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이다. 현장에서 이십년 넘게 잔뼈가 굵은 현장형/ 마이크로 메니지먼트형 디렉터다. 자질구레한 것까지 다 지시하려고 한다. 심지어 CCTV를 통해 집에서도 어디에서도 일터를 들여다보고 자기가 보고 있다는 늬앙스를 현장 프로트라인 워커들에게 공공연히 암시한다. 꽃개의 매니저 또한 현장에서 잔뼈가 단단히 굵은 사람이지만 전형적인 "캐나디언" 이다. 업무 시간 외에 일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아예 불이 나거나 사람이 죽을 경우에만 연락하라는 유머러스한 지침까지 내렸다. 현장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

 

 

꽃개가 입사하자 차이니스를 극도로 싫어하는 이 흑인그룹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들이 교묘하게 장치 (?) 한 테스트를 몇 차례 치렀다. 그런데 그 테스트라는 게 죄다 직업윤리에 어긋하거나 원칙과 무관한 문제적인 일들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콕 집어 문제제기를 했고 매니저에게 보고했고 매니저에게서 다시는 그런 일을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만약 이 때 매니저가 꽃개를 백업하지 않고 발을 뺐다면, 나는 모르는 일이야, 라고 했다면? 꽃개는 일을 때려쳤거나 아니면 쥐죽은 듯이 일을 하면서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일이 발생한 게 11월이었고 11월 한 달 동안 살이 5킬로는 더 빠진 것 같다. 일을 같이 의논하던 또 다른 신입사원 M 은 직장을 관뒀다. M 이 떠난 뒤 막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혼자서 싸웠고 다행히 시프트 파트너인 J 가 곁에서 도왔다. J 는 노동조합 서기이고 나름대로 괜찮은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는 있으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J를 돕고 싶지만 의지만큼 실력이 출중하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어제 J 에게서 단체협약 (Collective Agreement) 협의회 (Committee) 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아. 일 년 정도 지난 뒤면 모를까. 우리 디파트먼트에 있는 평직원들 (자메이카 사람들. 이들은 모두 조합원이다) 이 차이니스를 안 좋아하고 신뢰하지 않아. 더구나 나는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잖아. 시간이 필요해. 너는 차이니스가 아니잖아. ...... 자메이칸들이 왜 차이니스를 안 좋아하는지 영국의 제국주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19세기 말 20세기 초 캐리비안 지역으로 이주한 차이니스와 인디안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 들이 어떻게 현지에서 부를 축적했고 어떻게 현지 사람들을 착취했는지 장황한 이야기, 우리 디파트먼트의 파워다이나믹에 대해서 그리고 현장 비정규직들이 어떤 식으로 같은 지역 출신 디렉터에게 농락당하고 있는지 등등 그간의 관찰을 섞어 이야기를 전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순전히 나의 실력의 문제다. 영어실력, 정치력, 설득력 등등. 그런데 나는 아직 그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게 일당백으로 맞설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아니 아직 그들을 잘 모르겠다. 정보가 너무나 제한적이다.

 

 

얼마 전에 읽은 고용인들이 임금인상보다 선호하는 열가지 (10 Things Employees Want More Than a Raise) 라는 기사를 계속 곱씹고 있다. 다행히 꽃개를 직접 감독하는 매니저는 상당히 괜찮은 양반이다. 이 양반 때문에, 그리고 J 때문에 직장에 계속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

 

 

지난 화요일에 주말에 일하는 회사, 그러니까 2011년부터 일했던 회사에서 근무평가 (Performance Appraisal) 미팅을 했다. 매니저와 미팅을 하면서 이 곳에서 이브닝 시프트 풀타임 포지션을 구하는 게 나의 다음 목표 (goal) 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넌 이미 풀타임을 구했잖아. 개인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그리고 두 직장의 장점을 이야기한 뒤 개인적인 선호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런 자리에서 단점을 얘기하면 절대 안된다. 아무래도 이게 한국 비즈니스 문화와 북미 비즈니스 문화의 차이점인 것 같다. 무조건 포지티브하게 이야기해야 좋은 인상을 남기고 좋은 점수를 딴다) "꽃개를 풀타임으로 쓰면 나도 윈이고 너도 윈이야. 서로 윈윈해야하지 않겠니" 한국어로는 절대 하지 못할,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전했다. 다음에 포지션이 열리면 꽃개에게 가장 먼저 오퍼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게 언제일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것을 전달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 주중에 일하는 직장이 과연 변화가 가능한 곳인지 그것을 천천히 따져봐야겠다. 아무리 엿같아도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 그래도 좋지 않을까 그런 위로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과연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 정말 나을까. 지금까지는 전혀 하지 않았던 - 할 필요도 없었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2017/02/18 02:32 2017/02/18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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