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개의고민

분류없음 2017/02/18 02:32

작년 10월부터 일을 시작한 직장에는 대단히 독특한 문화가 있다. 특정 인종/ 국가 (흑인/ 자메이카 등의 캐리비안 국가들) 출신들이 한 디파트먼트를 장악하고 있다. 정해진 원칙대로 잘하면 좋은데 말이 그렇지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만약 한국에서 영남출신 남성들이 한 회사의 디파트먼트를 장악하고 그 출신 지역 사람들만 뽑으려고 한다면? 그러기도 쉽지 않지만 그러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런데 과연 그 디파트먼트가 잘 돌아갈까? 글쎄, 회식자리에선 잘 돌아갈 것 같기는 하다. 이것은 영남출신 남성들에게 혹은 자메이카 출신 흑인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결코 아니다. 살다보면, 일하다보면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렇다. 동물들을 시켜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 같다. 외부의 적절한 개입과 긴장이 없으면 그냥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바로 그 현실에서 비롯한다. 매뉴얼, 원칙, 규칙이 필요한 이유다. 노동조합에 힘이라도 있으면 외부적으로 강제하겠는데 노동조합조차 유명무실할 경우엔? 솔직히 답이 없다.

 

 

문제는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듣보잡 차이니스인 꽃개가 이 시스템에 들어가면서 비롯됐다. 꽃개의 매니저도 꽃개가 입사하기 직전 헤드헌터 픽업으로 회사에 입사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사의 대빵 (ED) 과 각별한 사이이긴 하나 이 문제적인 디파트먼트의 디렉터를 상관으로 모셔야 한다. 디파트먼트의 디렉터인 이 양반은 역시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이다. 현장에서 이십년 넘게 잔뼈가 굵은 현장형/ 마이크로 메니지먼트형 디렉터다. 자질구레한 것까지 다 지시하려고 한다. 심지어 CCTV를 통해 집에서도 어디에서도 일터를 들여다보고 자기가 보고 있다는 늬앙스를 현장 프로트라인 워커들에게 공공연히 암시한다. 꽃개의 매니저 또한 현장에서 잔뼈가 단단히 굵은 사람이지만 전형적인 "캐나디언" 이다. 업무 시간 외에 일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아예 불이 나거나 사람이 죽을 경우에만 연락하라는 유머러스한 지침까지 내렸다. 현장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

 

 

꽃개가 입사하자 차이니스를 극도로 싫어하는 이 흑인그룹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들이 교묘하게 장치 (?) 한 테스트를 몇 차례 치렀다. 그런데 그 테스트라는 게 죄다 직업윤리에 어긋하거나 원칙과 무관한 문제적인 일들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콕 집어 문제제기를 했고 매니저에게 보고했고 매니저에게서 다시는 그런 일을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만약 이 때 매니저가 꽃개를 백업하지 않고 발을 뺐다면, 나는 모르는 일이야, 라고 했다면? 꽃개는 일을 때려쳤거나 아니면 쥐죽은 듯이 일을 하면서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일이 발생한 게 11월이었고 11월 한 달 동안 살이 5킬로는 더 빠진 것 같다. 일을 같이 의논하던 또 다른 신입사원 M 은 직장을 관뒀다. M 이 떠난 뒤 막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혼자서 싸웠고 다행히 시프트 파트너인 J 가 곁에서 도왔다. J 는 노동조합 서기이고 나름대로 괜찮은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는 있으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J를 돕고 싶지만 의지만큼 실력이 출중하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어제 J 에게서 단체협약 (Collective Agreement) 협의회 (Committee) 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아. 일 년 정도 지난 뒤면 모를까. 우리 디파트먼트에 있는 평직원들 (자메이카 사람들. 이들은 모두 조합원이다) 이 차이니스를 안 좋아하고 신뢰하지 않아. 더구나 나는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잖아. 시간이 필요해. 너는 차이니스가 아니잖아. ...... 자메이칸들이 왜 차이니스를 안 좋아하는지 영국의 제국주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19세기 말 20세기 초 캐리비안 지역으로 이주한 차이니스와 인디안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 들이 어떻게 현지에서 부를 축적했고 어떻게 현지 사람들을 착취했는지 장황한 이야기, 우리 디파트먼트의 파워다이나믹에 대해서 그리고 현장 비정규직들이 어떤 식으로 같은 지역 출신 디렉터에게 농락당하고 있는지 등등 그간의 관찰을 섞어 이야기를 전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순전히 나의 실력의 문제다. 영어실력, 정치력, 설득력 등등. 그런데 나는 아직 그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게 일당백으로 맞설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아니 아직 그들을 잘 모르겠다. 정보가 너무나 제한적이다.

 

 

얼마 전에 읽은 고용인들이 임금인상보다 선호하는 열가지 (10 Things Employees Want More Than a Raise) 라는 기사를 계속 곱씹고 있다. 다행히 꽃개를 직접 감독하는 매니저는 상당히 괜찮은 양반이다. 이 양반 때문에, 그리고 J 때문에 직장에 계속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

 

 

지난 화요일에 주말에 일하는 회사, 그러니까 2011년부터 일했던 회사에서 근무평가 (Performance Appraisal) 미팅을 했다. 매니저와 미팅을 하면서 이 곳에서 이브닝 시프트 풀타임 포지션을 구하는 게 나의 다음 목표 (goal) 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넌 이미 풀타임을 구했잖아. 개인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그리고 두 직장의 장점을 이야기한 뒤 개인적인 선호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런 자리에서 단점을 얘기하면 절대 안된다. 아무래도 이게 한국 비즈니스 문화와 북미 비즈니스 문화의 차이점인 것 같다. 무조건 포지티브하게 이야기해야 좋은 인상을 남기고 좋은 점수를 딴다) "꽃개를 풀타임으로 쓰면 나도 윈이고 너도 윈이야. 서로 윈윈해야하지 않겠니" 한국어로는 절대 하지 못할,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전했다. 다음에 포지션이 열리면 꽃개에게 가장 먼저 오퍼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게 언제일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것을 전달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 주중에 일하는 직장이 과연 변화가 가능한 곳인지 그것을 천천히 따져봐야겠다. 아무리 엿같아도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 그래도 좋지 않을까 그런 위로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과연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 정말 나을까. 지금까지는 전혀 하지 않았던 - 할 필요도 없었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2017/02/18 02:32 2017/02/18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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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신을위해

분류없음 2017/02/07 00:11

여러가지 핑계로 그간 집청소를 하지 못했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청소기를 돌리고 밀대로 걸레질을 하는 것 뿐인데도 쉬이 착수하지 못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루고 미루다가 어제 드디어 "미션 컴플리트". 짝꿍이 고맙다고 안 그래도 이메일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고맙다고 거듭 말씀해주셔서 못내 무안하고 미안하고 그랬다. 청소 따위로 뭔놈의 이메일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우린 이렇게 산다. 그리고 청소기 청소는 내 몫이다. 이렇게 살기로 약속하고 공동의 삶을 시작했다 (동거를 시작했다). 따라서 둘 사이에 느닷없이 화를 내거나 폭발하는 일이 거의 없다. 싸울 일도 없다 (싸우긴 싸운다. 여전히 우리도 사람이니까). 만약 서로에 관해 잔소리할 일이 생기면 정중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자고 권하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이메일을 쓴다. (물론 사랑의 고백도 간혹 이메일로 한다규!!!) 짝꿍이 보내는 이메일은 그래서 더할나위 없이 소중하고 나를 반추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편지를 써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주구장창 내 얘기만 쏟거나 내 입장만 강변할 순 없다.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상황을 복기하고 정중하게 글을 매만질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이메일로 "욕을 해대는" 경우는 정말 어렵지 않은가 말이다. 만약 그런 이들이 있다면 절대지존일 것이다.

 

 

짝꿍은 꽃개와는 성정이 아예 다른 사람이다. 차분하고 기다릴 줄 알고 약속한 것은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맥락없이 왈칵 성을 내는 사람도 아니다. 약간 차원이 다르다고 할까. 며칠 전에 짝꿍에게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몇 번 만나면서 4차원인 것 같아서 무척 끌렸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엄청 웃어제끼셨더랬다. 4차원이라는 말은 처음 들으셨다고... 꽃개도 약간 (?) 4차원적인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꼬장꼬장하고 까칠하다. 자기연민과 아집이 강하고 picky 하다고 해야 하나... 짝꿍과 살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고 인간화가 많이 되었는데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 난 여전히 개야, 꽃개...

 

 

올해는 짝꿍을 만나 삶을 함께 일군 지 십년 차에 접어든다. 처음에 약속했던 계약은 십 년 정도 살아보고 더 같이 살지말지 결정하자는 거였는데 꽃개는 계약을 십 년 더 연장하고 싶다. 짝꿍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몇 번 장난삼아 좋다고 하시기는 했는데. 정말이었으면 참 좋겠다. 청소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2017/02/07 00:11 2017/02/0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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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범과종범

분류없음 2017/01/28 03:03

제목: 주범 (主犯) 과 종범 (從犯) (a culprit and accomplice)

 

 

요즘 꽃개는 회사일과 타임메니지먼트 적응 등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셜미디어를 할 수 있는 여력도 한국 뉴스를 검색하거나 따라잡을 여력도 없다. 입맛도 없어서 먹고 싶은 것이 없다. 다행히 회사가 다운타운의 한국인마을 근처에 있어서 출근길에 한국인이 하는 스낵바에 들려 김밥을 싸들고 출근하고 있다.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김밥은 그냥 꾸역꾸역 입에 넣기만 해도 씹히고 소화가 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거의 매일 (월-금) 들르는 이 김밥집의 사장 아주머니께서는 여느 한국인 이민자들처럼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 박근혜 지지지이시다. 요즘엔 한국 뉴스를 거의 이 김밥집의 사장님에게서 듣고 있다. 어제도 마찬가지로 최순실 씨가 조사를 받고 나오는 길에 민주주의를 거론하며 소리를 질러댔다는 - 극악무도한 일을 저질렀다는 - 뉴스를 업데이트해주셨다. 예상은 했지만 최순실 씨는 (박근혜 씨와 함께) 정말이지 예상을 넘어서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아니면 정말 아픈 것 같다. 

 

 

클라이언트 가운데 살인/ 살인미수를 저질렀지만 정신감정 결과 형법상 책임을 물을 수 없어 non criminally responsible (NCR) 처분을 받고 행동의 자유를 구속받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NCR 을 한국말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금치산자 (禁治産者), 한정치산자 (限定治産者) 같은 터미놀러지는 알고 있는데 형법상 이런 사람들을 일컫는 한국어 텀이 따로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한국 형법에서는 제10조 제1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분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이 있고 아마도 이 조항들이 캐나다 NCR 의 갈음 (equivalence) 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클라이언트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어머니를 살해했고 여동생을 강간하고 살인하려 했다는 행위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왜 나쁜 일인지 하면 안되는 일인지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아니 받아들였다가 부인했다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분명한 공통점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그랬다" 는 것이고 "그 여자들 (희생자) 이 그럴만한 짓을 했다" 고 말한다는 특징이 있다. 클라이언트들이 구성하는 맥락에서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또 하나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자신들이 입는 피해, 신체적-금전적-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응한다. 가령 손가락이 약간만 베어도 징징대면서 대번 대일밴드 (밴디지) 를 찾거나 스텝들을 탓한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서포트를 하면서도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안그랬다간 시쳇말로 "머리꼭대기에 올라가" 스텝을 갖고 놀려고 (controlling; manupulating) 든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가해자인 클라이언트들을 인간적으로 용서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잘 들여다봐야 한다. 이 과정은 스텝인 나를 위해서,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서, 나아가 작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꽃개가 서포트하는 클라이언트들의 80% 이상이 어린 시절에 상처를 겪었고 적절한 케어를 받지 못했다. 방치를 겪었고 물리적-정신적 학대를 경험했다. 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이 사회의, 시스템과 체제의,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그들을 온전히 서포트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클라이언트 한 명에게 들이는 돈은 (제대로 계산한 것은 아니지만) 약 연간 40,000 달러 이상이다. 경제적 비용만이 아니다. 꽃개처럼 이들을 서포트하는 노동자들, 인프라, 이외의 경찰과 병원 서비스 등등.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회가 치러내야 하는 비용이다. 내가 낸 세금이 왜 이런 이들에게 돌아가냐고 불만을 늘어놓은 사람이 만약 있다면 그 사람에게 연간 40,000 달러를 줄테니 그 살인자의 삶을 책임져보라고 말하고 싶다. 

 

 

어쨌든 말이 길어졌는데 김밥집 아주머니에게 최순실 씨가 어디 아픈 거 아닐까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저 정도로 모를 정도면 정신적으로나 마음이 상당히 많이 아픈 것은 아닐까요 라고 물었더니 단호박이다. 당장 광화문에 끌어내서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고, 박근혜 대통령을 망친 주범이라고 어찌나 단호하게 말씀하시는지 더 여쭙지 못했다. (그런데 광화문에 단두대가 있었나????)

 

 

퇴근길에 살짝 검색해봤는데 박근혜 씨가 더 아픈 것 같다. 우리 공주님은 케어가 필요하다.

 

 

 

 

 

2017/01/28 03:03 2017/01/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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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원꽃개

분류없음 2017/01/21 02:54

 

드디어 인생의 한 챕터에 노동조합 (Union) 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다른 사람의 노동조합이 아니라 나의, 꽃개가 소속한 노동조합 말이다. 노동자로서 나 자신이, 꽃개가 소속한 조직이 있고 그 소속감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특혜 (privilage) 다. 캐나다는 물론, 한국에서도 노동조합조차 만들 수 없고 소속할 수도 없으니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주중에 일하는 곳, A 회사라고 해두자. A는 산별노조인 캐나다공공노조 (Canadian Union of Public Employees: CUPE, 발음은 "큐피" 에 비슷하게 한다) 에 속해 있다. 처음 이 회사의 잡포스팅을 봤을 때 "노동조합이 있는 곳 (unionized position)" 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A 회사에서 잡오퍼를 했을 때 기뻤고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반면 주말에 일하는 곳, B 라고 해두자. B 회사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B 회사의 이그제큐티브 디렉터 (ED) 는 지역 사회에 잘 알려진 대단히 리버럴한 사람이지만 매우 공공연하게 "노동조합은 필요없다 (useless)" 고 말한다. 차라리 노조를 못만들도록 방해공작이라도 하면 낫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요는 이렇다 - 회사에서 혜택 (benefits) 을 다 해주는데, 노동조건은 각 프로그램마다 매니저와 의논해서 결정하여 적용하면 되는데 그걸 뭐하러 노동자 개개인이 따로 돈 (조합비; union dues) 을 내면서까지 조직을 또 만들고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는 거다. 한 번은 어떤 친구가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은밀히 움직였다. 그 친구는 공부에 욕심이 제법 많은 친구였는데 회사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박사과정을 제안했고 그 양반은 잠정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떠나는 날, 해당 디파트먼트에서 그럴싸한 파티를 해줬고 회사 뉴스레터에 사진과 동향이 실렸다. 그 양반이 나중에 박사학위를 받아 회사로 복귀하면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그 의지를 지속해 실천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박사학위를 소지한 사람은 코디네이터-매니저급으로 채용되거나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회사와 일대일 컨트랙트를 맺는다. 그리고 코디네이터 이상 직급은 노동조합원 자격을 갖지 못한다. 그 양반의 의지와 무관한 현실이다. 물론 당사자가 원하면 박사학위를 땄든 의사면허가 있든 얼마든지 평사원으로 일할 수 있지만 매니저 입장에서 자신보다 오버퀄러파이한 직원을 수하에 두면서까지 일을 시키려는 사람은 없다. 없을 것 같다.

 

 

주중-주말 두 곳을 번갈아 일하며 지금까지 느낀 것은 --- 불행하게도, 노동조합이 없는 B회사의 노동조건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임금, 근무환경, 매니저의 철학과 수퍼비전... 비교하면 할수록 노동조합이 없는 곳이 월등히 낫다. 하는 일은 비슷한데 말이다. 회사의 규모를 감안해도 어딘가 석연지 않다. 대체 원인이 뭘까.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것으로는 "사람" 의 문제가 크다. 회사의 풍토, 문화도 큰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회사는 그 회사 수준의 노동조합을 갖고 노동조합은 그 노동조합 수준의 회사를 갖는다" 는 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10월에 입사한 뒤로 A 회사 노동조합의 지부장 (위원장)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프트 파트너가 노동조합 서기이고 지역 노동조합 활동에도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서 대화가 통하는 편이긴 하지만 조합 차원에서 신규조합원에게 발송하는 환영이메일 한 장 받지 못했다. "대체 위원장은 뭐하는 사람이야?" 라고 물었더니 답변이 가관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주중에 풀타임으로 다른 잡을 갖고 아이를 키우고 등등 바쁘단다. "그런데 왜 위원장을 하는 거야?" / "I don't know."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

 

 

 

 

 

2017/01/21 02:54 2017/01/21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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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선의기억

분류없음 2017/01/14 03:06

문득 컬리지 일학년 때 실습을 준비하면서 겪었던 일을 정리하고 싶은 욕구 (?) 가 발동했다. 대학마다, 프로그램 (학과) 마다 커리큘럼이 다르지만 꽃개가 공부했던 학교의 학과에서는 1학년 2학기, 2학년 1학기 때 두 번 실습을 한다. 두 번 실습을 모두 패스해야만 컬리지디플로마를 딸 수 있다. 1학년 1학기에서는 실습을 어떻게 준비할 지 그 이론을 배운다. 말이 좋아 실습이지 사실 인턴/ 무임노동이다. 학생들은 농담삼아 "노예노동" 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선 아마도 "열정페이" 정도의 용어로 표현하는 것 같다.

 

 

과거에는 인턴으로 실습을 하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실습을 마친 뒤 그 회사에서 고용 오퍼를 받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회사에서도 이미 얼굴을 익힌, 능력을 검증한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낫다.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이미 검증을 거쳤기 때문이다. 유러피안, 북미 비즈니스 문화에서는 리퍼런스와 평판을 중요한 요소로 따진다. 학벌이나 지역연고 등은 크게 작용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작용하기는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일류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혹은 어느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혹은 토익 점수가 높다는 이유로 취직하는 경우는 없다. 만약 부모님이나 친척이 회사의 중역이거나 고위층에 있다면 입문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역시 프로베이션 (수습) 기간을 거치기 때문에 그 기간동안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그 능력이라는 것 또한 업무에 관한 것이기보다는 인간성, 사회성, 적응능력 등을 따진다. 피어 퍼포먼스 어프레이쟐 (동료 업무 평가) 이라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이것을 공식적으로 차용하기도 하고 비공식적으로 쓰기도 한다. 비공식적이라는 것 또한 별반 특별하진 않다. 그런데 이 비공식적인 게 상당히 중요하다. 커피를 마시면서, 농담을 하거나 스몰토크를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그것이 바로 비공식적인 업무평가다. 이제 갓 입사한 사람에게 어떤 업무능력의 입증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 물론 경력직일 경우 업무능력 입증이 필요하기는 하다. 경력직이나 메니지먼트 레벨의 포지션은 경우가 아주 다르다.

 

 

그러나 이민 문화가 발달하면서 실습/인턴 직에 있던 이들이 자연스레 고용기회를 확보하는 빈도도 현격히 낮아졌다. 이제 그런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특히나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학생들을 인턴/ 실습으로 받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부려먹고 내치는 경우가 흔하다. 일은 실컷 했는데 고용의 기회는 매니저의 친척, 친구, 대학졸업장을 서너 개 보유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열정페이의 산실은 사실 아시아 문화권인 것 같기도 하다. 비효율적이고 정당하지 못하다. 이 나라에 있는 아시아 문화권 회사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만날 그런 방식으로 하다보니 답보를 면치 못한다. 그러고는 사람 탓을 한다. "괜찮은 사람이 없어..." 사람을 괜찮게 키워내지 못하는 자기 능력을 탓해야 하는데 남탓을 한다. 김성근이 따로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기존의 비즈니스 문화에 널리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쁜 것은 빨리 퍼진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bad money will drive good money out of circulation)"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는데 어쨌든 나 또한 실습할 회사를 찾아야했다. 몇 군데에 이력서를 넣고 기다렸다. 공짜로 일하겠다는데도 불러주는 곳이 없다. 사회서비스 영역 어느 곳에서 실습을 해도 상관없는데 그 기회를 만드는 게 상당히 어렵다. 캐나다 사회에 아무 연고가 없으니 더 어렵다. 그러다가 합법 정치조직에서 실습을 하면 어떨까 싶어서 캐나다공산당에 연락을 했다. 한참만에 담당자를 만났다. 무슨 반합/비합 조직 접선처럼 어느 어느 곳으로 몇 시까지 나와라, 해서 갔더니 두 명의 사내가 앉아 있다. 외관이 후줄근하고 피곤해보이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안 씻었는지 냄새가 난다. 옛날에 나도 저랬겠구나 싶었다. 왜 우리한테 연락을 했느냐 하길래 사실대로 말했다. 너네 교수 이름이 뭐야, 알려줬더니 면전에서 구글링을 한다.

 

 

 

우리 당엔 청년조직이 있어. 거기서 일하는 게 어때.

난 서른도 훨씬 넘었어. 괜찮겠어?

(난감해 한다)

나를 실습생으로 받아줘.

(딴 소리를 한다)

그런데 너네 페미니즘에도 관심이 있니?

당연하지!

그래서 너네 당은 뭘하고 있는데?

임금에서 성차별적인 차이에 대해 투쟁하고 있어.

(꽃개는 이 부분에서 약간 좌절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오그래. 훌륭하다. 

새로운 청년당원을 위한 패키지를 가져왔어. 읽어봐.

(나는 실습할 자리가 필요하다고. 나를 쓰란 말야.하지만 그 말은 하지 않고) 오그래. 정말 고마워.

읽어보고 관심이 있으면 연락해. 그리고 실습은 우리도 검토를 해보고 연락할께.

 

 

 

그이들과 대화를 하는 내내 -- 그들은 꽃개를 상당히 경계하고 있었다. 어디 근본도 없는 아시안이 연락해서 자기네 당에서 공짜로 일하겠다고 관심있다고 말은 하는데 쁘락치인지 아닌지 똥과 된장 아니 버터와 치즈는 구별할 줄 아는지 상당히 의아해하는 눈치다.

 

 

패키지를 받아 집에 도착한 뒤 하나하나 살펴봤다. 갱지로 만든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컨텐츠가 영 아니올시다이다. 우선 너무 뒤떨어진 데다가 하나같이 선동조의 조악한 표현이 과하다. 친절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구닥다리 영어와 여러 개의 문장이 하나로 통합된 전형적인 "못쓰는 영어" , 헤밍웨이가 읽었으면 벽난로에 집어던졌을 법한 그런 영어다. 읽을 수가 없다. 그들이 말한 페미니즘 파트는 그래도 끝까지 읽어봤다. 그냥 뭐랄까. 남녀 임금차이가 이러저러하다. 정도지 그래서 뭘하겠다는 건지 그게 없다. 비어 있다. 말은 장황하다.

 

 

아 씨발 괜히 연락했다. 그러고 며칠 뒤 이메일이 왔다. 토론토대학 강의실을 빌려 영화상영을 하는데 오란다. 가봤는데 역시 후즐근하고 몹시 심각한 데다가 거기다 더해 냄새까지 나는 청년들이 잔뜩 앉아 있다. 세상의 모든 근심을 어깨에 잔뜩 짊어진 듯한 청년들의 얼굴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안그래도 사는 게 고단한데 그들의 표정을 보자니 같이 있고싶은 생각이 절로 달아났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계속 이메일을 보냈다. 이번엔 그람시 토론, 다음 번엔 클라라 제트킨 토론, 다음 번엔 트로츠키 토론... 그런데 너네 캐나다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에 관해선 언제 토론할 거야? 응, 곧 할거야. 곧 한다고는 했는데 그 "곧" 이 꽃개에게는 오지 않았다. 아마도 꽃개는 접선 과정에서, 그리고 평판 체크를 당하면서 더 높은 수위로 접선하는 것을 차단당한 모양이다. 아이 씨발. 캐나다 공산당 내부에 친구나 친척 하나만 있었더라도... 계속 토론회에만 오란다. 그러면서 나의 출석률과 성실함 따위를 업데이트하고 싶은 모양으로 보이는데 그런 일은 한국에 있을 적에 아이에스들이 주로 하는 일이었고 나 또한 그런 일을 해봤기 때문에 그냥 바로 시큰둥해졌다. 캐나다 정부에 등록한 합법정당이 이 지경이다. 오히려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내걸지 않은 여타 풀뿌리운동조직, 등록하지 않은 운동조직들이 훠얼씬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이상에 가깝게 활동한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 알게 됐다.

 

 

어쨌든 꽃개는 나중에 좋은 회사에 실습 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실습 뒤 고용오퍼도 받아서 지금에 이르고 있지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때 만약 운이 나빠서 캐나다 공산당에서 실습을 했다면 지금쯤 꽃개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2017/01/14 03:06 2017/01/1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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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역할

분류없음 2017/01/13 03:25

 

마이클 샌더스 교수가 기고한 글에 달린 코멘트를 읽을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는데 그냥 혼자 알아서 생각하는 게 낫겠다는 잠정 결론. 한국어로 친절히 번역해주는 사이트도 있다. 세상 참 좋아졌다. 작년에 기고하신 글과 거반 비슷한 것 같은데 요지는 좌파들이 정신차리라는 거. 뭘 어떻게 정신차리라는 것인지에 관해서 잘 곱씹어 읽어야 한다. 대에충 "하던대로" 읽으면 "하던대로" 하게 된다.

 

 

어쩌면 전통적 좌파는 아예 바닥에서부터 풀뿌리운동에서 생활에서 그러니까 개인을 (인간을) 존중하는 법을 서로 알고 깨우치고 나누는 생활운동에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우선 나부터 그런 게 절실하다. 상대를 존중하는 것에만 머무르다 보면 어쩔 때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국면에서 좌고우면 (左顧右眄) 하거나 망설이고 주저할 때가 많다. 타인에게 폐만 끼치지 말자, 는 기조를 금과옥조로 삼다보면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아진다. 이것을 확장해서 더 배우고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걸 물어볼 데가 지금으로선 상당히 제한적이다. 공동체, 커뮤니티가 과연 무엇일까. 나에게 그것은 허락될 수 있기는 한 걸까. 그런 고민 말이다.

 

 

트럼프는 아마도 미국형 박근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치러야 할 비용은 한국의 그것과는 버금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클 것 같다. 그러나 비용의 총량으로 본다면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효과에 기대어본다면 - 긍정적으로 본다면 - 어차피 치러야 하는 비용이니까 진지전의 각오로 차분히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 캐나다에서는 작년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기본소득 (Basic Income) 의 파일럿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에 관해 오랫동안 빈민운동/반자본운동에 투신하셨던 양반, John Clarke 이 기고한 글이 있다. 영국식 엑센트가 강하고 캐나다 사회의 운동판에서는 익숙지 않은 다분히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 방식 - 가령 점거농성 같은 - 도전과 투쟁에 익숙하신 이 양반은 "기본 소득" 제도에 관해 다소 부정적이다. 이 분의 소셜미디어 포스팅에 달린 덧글을 보면 왼갖 캐나다 극좌파들의 아우성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는데 한편으론 캐나다나 한국이나 극좌파들의 경향은 거기서거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이 양반을 좋아하는 편이다. 읽을꺼리는 많은데 시간이 너무 없다. 곧 나아지겠지.

 

 

 

2017/01/13 03:25 2017/01/1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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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분류없음 2017/01/06 11:12

 

https://thecharnelhouse.org/2016/01/02/open-source-marxism-2016-fresh-batch-of-pirate-scab-pdfs/

2017/01/06 11:12 2017/01/0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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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와단상

분류없음 2016/12/23 22:55

 

*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됐다. 올해엔 10월에 새로 구한 풀타임 일터에 12월 마지막 주 (12월 25일-31일) 를 통채로 휴가 신청을 한 탓에 스케쥴이 없다. 오늘 (12월 23일) 아침에 매니저와 통화를 했는데 그냥 오늘부터 휴가를 시작하란다. 보너스. 타임시트엔 레귤러 타임을 쓰란다. 나야 고맙지.

 

2011년부터 일하는 비정규직-파트타임 직장, 현재는 주말에만 근무하는 곳, 그곳의 스케쥴엔 변함이 없다. 다만 성탄절 (25일), 복싱데이 (26일) 가 법정공휴일이므로 페이를 더 받는다. 기쁘지, 뭐. 다만 작년까지는 12월 마지막주에 미치도록 일을 했다. 정규직은 모두 휴가를 쓰고 비정규직도 듬성듬성 휴가를 쓰니까 손이 모자라고 매니저 또한 경험이 많은 사람을 쓰고 싶어하는 탓에 시프트 스케쥴을 많이 받아 마치 풀타임처럼 일하곤 했다. 올해엔 레귤러 시프트 외에 가외로 할당받은 시프트도 없다.

 

2015년 겨울부터 일했던 또다른 일터에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지난 수요일 (21일) 팀 미팅에 다녀왔는데 올해엔 특별히 전세계 음식을 마련한 스페셜디너가 있었다. 동유럽식에서 영국식까지, 아시안 음식은 인디아 음식을 주로, 라틴아메리카 식 핑거푸드와 아프리칸/ 카리비안 사람들이 좋아하는 달짝찌근한 디저트까지 눈과 코가 황홀한 시간이었다 (많이 먹지는 못했다). 내년 말 경에 똑같은 프로그램, 레플리카 사이트를 공립정신병원 (Centre for Addiction and Mental Health: camh) 부지 안에 오픈하는데 사실 꽃개는 그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다. 풀타임 잡포스팅이 나오면 도전하고 싶은데 어떻게 될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

어쨋든 올해는 마지막 일주일 (주중) 을 통채로 짝꿍과 오롯이 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됐다.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만 5년만에 갖게 된 "페이를 지급받는 공식 휴가" 라 감개가 무량하고 여러가지 상념이 든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휴가를 쓰거나 휴가보너스를 받거나 따위의 일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노동시간에 대해서도 노동강도에 대해서도 단체협약 (Collective Agreement) 에 대해서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의, 보통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노동강도-단체협약에 관해선 관심이 많았지만 "나 자신" 의 것으로 생각할 겨를도 여유도 환경도 만들지 못했다. 노동운동을 한답시고 - 그 언저리에 몸담고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노동자가 바로 나 자신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활동가" 라고는 여겼지만 "활동하는 노동자" 라고는 나 자신을 정의하지 못했다. 따라서 당연히 "노동자로서의 권리" 를 말할 때 다른 이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의 "노동자로서의 권리" 에 대해선 인식하지 못했다. 인지부조화. 철저히 암흑에서 살았다; had been left in the dark.

 

무엇이 옳았는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그것을 따지는 것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다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의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나 자신을 투사하는 그런 데에는 도움이 된다. 의미가 있다. 

 

주중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직장에는 노동조합이 있다. 이 주제에 관해서 다음에 한 번 정리해봐야겠다 싶다.

2016/12/23 22:55 2016/12/2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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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잔재

분류없음 2016/12/14 03:44

 

최근에 새로 시작한 일터에서 만나는 한 클라이언트. F라고 해두자. F는 동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이민왔다. F보다 먼저 이민온 친척 아저씨는 본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캐나다에서 그 학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F의 아저씨는 온타리오에 있는 대학도시 Kitchener 에 정착했고 그 도시에 있는 한 대학에서 야간 시큐리티 (수위) 로 일하면서 그 대학의 Social Work 과정을 8년만에 졸업했다. 졸업 뒤 근사한 직업을 갖게 된 F의 아저씨는 본국에 있는 조카들을 한 명씩 초청 (sponsorship) 하기 시작했다. F는 그렇게 해서 캐나다 이민자가 되었다. F는 그이의 아저씨처럼 본국에서 공부를 했지만 이윽고 시작된 내전 탓에 대학 졸업장을 얻지는 못했다. 캐나다에 와서도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F는 "공부머리" 가 아니라며 웃었고 여차저하해서 꽃개가 일하는 곳에서 산다.

 

 

F는 여느 클라이언트들처럼 정부보조금으로 살아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김없이 만나는 그이의 일상에 한 가지 특이점은 매주 금요일마다 매우 늦은 시간에 피곤한 행색으로 돌아온다는 것. 지난 주 금요일 역시 열한 시가 다 된 시간에 돌아온 F의 손에는 작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이거 우리 나라 스타일로 만든 케이크야. 반은 네가 먹고 반은 나에게 돌려줘." 간혹 클라이언트들이 작은 선물을 주기는 하는데 밖에서 직접 케잌을 사들고 들어와 이렇게 구체적으로 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봉지를 뜯어보니 치즈케잌 + 아이스크림케잌처럼 생겼다. 케잌나이프로 살짝 반을 갈라 플레이트에 옮기려는데 자기 것은 그냥 원래 있던 컨테이너에 담아서 달란다. 응, 알았어. 포크로 한 입 먹어보니 굉장히 크리미하고 부드럽다. "와, 이렇게 소프트하고 부드러운 케잌은 처음 먹어봐. 너네 나라에서 이렇게 맛있는 걸 먹는다니 무척 부러운 걸." 솔직히 케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짐짓 치켜세우며 말했다.

 

 

"우리 나라는 옛날에 이탈리아 식민지였어. 전통 음식 말고 유럽식 음식은 모두 이탈리아 스타일이야. 금요일마다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디저트야. 죄다 이탈리아 스타일 디저트밖에 없어."

 

 

아, 그랬구나. 금요일마다 식당에서 일하느라 그렇게 피곤해보였구나. 그래서 그렇게 금요일마다 늦게 돌아왔구나.

 

 

"너네 나라는 어떠니. 우리 나라는 옛날에 이탈리아 식민지여서 우리 나라에서 공부한 건 캐나다에서 인정해주지 않아. 옆나라 케냐는 영국 식민지여서 그랬는지 케냐에서 메디컬닥터 학위를 받아 캐나다에오면 2년만 공부하면 자격을 인정해주는데 우리 나라에서 의사자격증을 따도 캐나다에 오면 아예 소용이 없어. 다시 처음부터 공부해야 해. 너네 나라는 어때? 사우스코리아는 잘 사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사우스코리아에서 메디컬닥터를 받으면 캐나다에서 자격증 따는 건 어렵지 않겠지?"

 

 

오오. 몰랐다. 케냐가 1960년대까지 영국 식민지였던 것은 알았지만 학제와 시스템이 여전히 영국식이어서 케냐에서 공부한 것을 캐나다에서도 손쉽게 (상대적으로 손쉽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차라리 우리 나라가 옛날에 영국 식민지였으면 우리 친척 아저씨도 8년동안이나 대학을 다니고 야간에 수위로 일하고 그런 개고생은 하지 않았을텐데. 나도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부터 다시 다녀야하는 그런 번거로운 일은 없었을텐데. 왜 하필이면 쓰잘데기 없이 이탈리아 같은 나라의 식민지였을까. 웃기지 않아? 이탈리아 식민지여서 좋은 건 하나도 없어. 아, 하나 있구나. 이렇게 맛있는 케잌을 먹을 수 있다는 거."

 

 

식민지를 겪은 조선-대한민국의 국적을 지닌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치기엔 다소 씁쓸한 이야기다. 아주 먼 옛날 친구들과 농담식으로 차라리 미국 식민지였으면 영어를 모국어로 쓰거나 더 손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었을텐데 쓰잘데기 없이 일본 같은 나라의 지배를 받아서 빠께쓰, 쓰봉, 쓰메끼리, 벤토, 와리바시 따위의 올드패션드한 일본식 잔재만 남아있다는 식의 자조와 푸념을 늘어놓은 기억이 떠올랐다. 일본 말고 미국이나 영국의 식민지였으면 수학능력 영어듣기 평가도 더 잘할 수 있을텐데, 토플 공부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텐데, 셰익스피어가 구사했던 영어도 그냥 고문법 정도로 간단히 공부할 수 있었을텐데, 조선은 왜 우리에게 이렇게 형편없이 쓸데없는 것들만 남겨줬을까... 모든 것이 농담 아닌 농담처럼 그러나 제국의 식민지 이후 태어난 탈근대 세대의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상당히 반역사적이고 반주체적인 그런 수다들...

 

 

호기심이 많고 자립심이 강한 편인 F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질문하고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F는 캐나다에서 취득한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지만 그 졸업장만으로는 F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니, 아프리카 무슬림 백그라운드를 지닌 F는 캐나다로 이민온 뒤 비아프리카 비무슬림 사람들에게서 쏟아지는 편견과 차별에 지쳤다. F가 본국에서 갈고 닦은 지식과 경험을 캐나다에서 동일한 조건과 수준으로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됐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십여 년 동안 무수한 도전과 패배, 열패감을 겪으면서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고 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야. 우리는 기껏 백만 원도 안되는 정부보조금으로 살아가지만 우리가 무슨 범죄를 저지르거나 탈세를 하는 건 아니잖아. 억만장자들이 어떻게 그 돈을 벌었는데,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범죄자야. 우리를 뭐 대단한 범죄집단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화도 나지만 이젠 얘기하는 것도 지쳤어. 그냥 나는 여기서 살래. 밖은 지옥이야."

 

 

제국의 잔재는, 식민의 잔재는 오늘도 지구상 곳곳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식민의 잔재, 억압의 잔재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저항하는 법을 잊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은 F와 전혀 무관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F는 무력한 것도 저항을 포기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몸을 낮추고 기다리고 있다. 그럴 것이다.

 

2016/12/14 03:44 2016/12/14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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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몸종

분류없음 2016/11/30 01:00

지난 번 ADL 단상 과 상당량의 연관이 있는 일상 정리.

 

클라이언트 한 명의 빨래를 서포트하면서 있었던 일.

 

빨래는 "라운드리스케쥴"에 맞춰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한다. 스스로 빨랫감을 정리하여 바구니에 넣거나 따로 준비한다. 빨래를 할 의사가 있으면 미리 스텝에게 말해야 한다. 먼저 세탁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기다려야 한다. 먼저온 사람부터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빨래가 끝나면 드라이기에 넣고 역시 다 마치면 스스로 빨래를 개고 정리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세탁기/ 건조기 사용법, 빨래를 하고 끝난 빨래를 개고 정리정돈하는 법, 시간약속을 지키고 이행하는 법, 기다리는 법, 권리를 이해하고 요구하고 스스로 이행하는 법 등을 배울 수 있다. 새로 세탁한 깨끗한 옷을 입으면서 청결이 무엇인지, 얼마나 기분좋은 일인지도 배울 수 있다.

 

 

스텝 처지에선 한 공정 한 공정 하나하나 가르치거나 안내하고 지켜봐야 하고 몇 번씩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다 큰 건장한 사내가 빨래를 할 줄 몰라 더듬더듬거리거나 세탁기 작동법을 몰라 쩔쩔맬 때에는 하나하나 가르쳐주면서 거기에 잘한다고 칭찬까지 해야 한다. 으쓱하면서 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거야, 라고 반응하기도 한다. 그러면 또 역시 옳지 잘한다! 해야 한다. 어쩔 때는 보고 있기 답답하고 다음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게 답답해서 거들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꾹 참아야 한다. 스텝이 뭔가를 해버리면, 특히 여성 스텝이 이런 일을 해버리면, "응, 내가 안해도 얘네들이 해주는구나" 혹은 "당연히 여자가 그런 일을 해야지. 내 손으로 그런 일을 해야겠어!" 라며 적반하장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의존성 (dependancy) 을 키울 뿐 독립성 (independancy) 을 키우는 데에는 효과가 전혀 없는 접근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기다리고 격려해야 한다. 감정노동이다.

 

 

아프리카 어떤 나라에서 이민온 뒤 가족과 이별하고 (이별한 이유는 자세히 모른다) 혼자 살다가 여차저차해서 꽃개가 일하는 곳으로 흘러들어온 한 남자, A라고 해두자. A가 저녁 무렵에 빨래를 하고 싶다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A는 다행히 세탁기 사용법, 빨래를 하고 개는 법 등을 잘 안다. 나름대로 개인청결 (personal hygeine) 도 훌륭한 편이다. 건조기가 다 돌아가서 A를 불렀다. 빨래가 다 끝난 거 같으니까 회수해야 할 것 같은데. 졸졸졸 따라오면서 자기는 곧 착한 아내 (good wife) 를 얻을 것이고 착한 아내와 살면 빨래도 안해도 되고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다며 매우 희망에 찬 말을 했다. 요즘 여자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해. 했더니 금방 삐친다. 그래, 네가 그럴 수 있기를 바라. 

 

 

정말로 그이가 착한 아내를 얻었으면 좋겠다.

 

2016/11/30 01:00 2016/11/3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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