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개끓이며

분류없음 2017/05/31 02:06

 

김성근 감독 사임 

예상했던 일이긴한데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말았다. 반면교사. 회사가 나를 짜르려고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상극의 사람이 상사로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일단 곤조는 보여주고 떠난 김감독. 왕입니다요. 박근혜의 몰락과 함께 근대의 종말을 보여주신 김감독님. 아직은 아냐. 그 지긋지긋한 반혁명의 시기가 아직은 남아있거든. 

 

 

한평생 총각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그들 입장에선 대단한 일이다-끔찍하지 않나-평생 혼자 살아야 한다니. 여자는 혼자 살아도 큰 일이 별로 없지만 남자는 혼자 사는 순간 여럿의 손이 많이 간다. 젠더-섹스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구조적 차원의 문제다.

 

 

게이의여혐 

남성동성애자 집단의 여혐은 그들이 원래 여성을 싫어하기 때문인 탓도 있지만 그들의 놀이문화를 표현할 언어가 그것밖에 없어서 - 여성혐오적인 언어밖에 없어서 - 그런 탓도 있다. 시스젠더 남성 입장에선 여성을 타자화하지 않고서는 그들을 온전히 드러낼 방도 - 완벽하게 타자를 대상화할 방도- 가 없다. 없었다. 그리고 그 시스젠더 남성 문화를 오롯이 지닌 그들이 여성혐오적 언어유희(?) 를 통해 당사자를 드러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그들의 여성혐오적 언어유희 (?) 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여성혐오를 하는 것과 그들이 여성혐오적 언어를 내면화한하여 드러내는 것은 다르게 접근했으면 싶다. 우리 여성도 때때론 여성혐오적으로 살지 않느냔 말이다.  

 

 

"한남"의여혐

이건 뭐. 꼭 말해야 하나 싶지만... 그냥 찌개가 끓을 때까지 시간을 때운다 셈치고 말하자면 "한남" 들이 떠드는 반대로만 하면 전략은 성공이다. 곧 어느날 안티테제로는 더이상 버틸 수 없는 그런 날이 올 때까지. 따라서 메갈리아적 접근은 여전히 유효하다. 메갈군단과 한남은 어쩌면 이북의 정권과 돼지발정자유당처럼 적대적 공생관계일는지도.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남은 하나의 운명마저 다하는 애절한 관계. 따라서 "한남"은 메갈리아를 욕하지 말고 본견들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같이 죽을 것인가, 혼자라도 진화해서 살아남을 것인가. 

 

  

2017/05/31 02:06 2017/05/31 02:06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김성근감독

분류없음 2017/04/06 02:26

김성근 감독. 생각할 때마다 좀 짠하다. 아니, 많이 짠하다. 사실 "야구 감독"으로서 김성근 감독만한 사람이 없긴 없다. 세밀하고 치밀한 그의 계산야구. 패넌트레이스 대장정의 한 게임에 불과한 그 날의 게임에서조차 박빙승부에서 모든 전력을 투여하는 그의 전술운용을 보면 정말이지, "최선을 다한다" 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멋있고 울컥하게 만든다. 마치 아이엠에프 (IMF) 를 가까스로 이겨내고 살아남은 가장 (家長, breadwinner) 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명 (resonating)하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수많은 혹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혹사 논란의 당사자들은 그를 여전히 존경하고 따른다 (물론 내막은 자세히 알 도리가 없다). 김성근 감독이 지닌 장점 가운데 하나인 정서적 올바름 (emotional correctness)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남들이 뭐라하든 당사자들은 깊은 감동과 동기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나를 알아준다" 는 가장 기본적인 인정욕구를 김감독을 통해 충족했다면 그 개인에게 그보다 더한 자기만족감 (self-actualization) 은 없으리라.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까지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간혹 울컥 화를 내고 맥락도 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적이 없진 않았어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도 있었다. 철도청과 국책은행에서 24시간 맞교대 노동을 하실 적에는 그 하루를 쉬는 날에도 다음 날에 출근해야 하는데도 최선을 다해 곤충채집에 함께 나서주시곤 했다. 어느 겨울날엔 큰 방패연을 만들어주셨고 바람이 강하게 불던 날 그 연이 멀리멀리 날아가버리자 울먹이는 당신의 딸에게 원래 연을 저렇게 멀리 날아가야 인생이 편안하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 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기도 하다. 교대근무를 해보니 24시간 맞교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노동인지 깨닫게 됐다. 아버지는 "원래"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것 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임노동자로 살아가는 면에선 적합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건강보험이 보편적복지로 자리잡기 한참 전이던 1980년대에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 (privilege) 이었다. 어머니는 늘 노심초사하시며 아버지의 심기를 살피셨는데 결국 아버지는 철도청은 1년만에, 국책은행은 2년만에 때려치셨다.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게 이유였다. 어머니는 다시 날품팔이 장사에 나가셨다. 먹고살아야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아버지는 월급을 받는 직장을 다시 얻지 못했고 아버지는 "이상한 사람" 으로 변해갔다. 마침 묵혀둔 땅이 팔려 집에 돈이 넘쳤어도 역시 아버지는 나에겐 이상한 사람이었다. 어릴 적 기억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주변 사람들 모두 아버지를 "좋은 사람"으로 말한다는 것이었고 평판이 대단히 좋았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까지, 부모님 집에서 나와 따로 살기 전까지 나에겐 이것이 견딜 수 없는 지독한 모순이었다. 아버지의 평판을 추켜세우는 그들에게 아버지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 이었을는지는 몰라도 나에겐 정서적으로 결코 그렇지 아니한 "이상한" 사람이었다.

 

 

다시 김성근 감독 이야기. 이글스 구단은 작년 김감독의 계약 기간을 지켜주기로 결정했다. 다만 선수 출신인 박종훈 단장을 영입해 팜시스템을 맡겼다. 뭔가 이상했지만 이글스 구단이 이제서야 정신을 차렸구나 싶어 반가웠다. 한편, 김감독이 많이 고생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감독 스타일에, 만기친람 (萬機親覽, micro-management) 하는 그의 성정상 잡음이 많이 일겠구나 싶었다. 역시 불필요한 잡음이 일고 있다. 이글스 구단의 감독으로 취임한 뒤로 자신의 뜻대로 전권을 행사해온 김감독 처지에선 당혹스럽다 못해 자존심이 극도로 상하는 일이다. 2군에서 선수를 올려 직접 보겠다는데 왜 안된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1970년대, 80년대엔 아니, 김감독이 야구를 시작한 이래 그는 늘 그렇게 야구를 해왔다. 그런데 사정이 많이 바뀌었다. 김감독이 바뀐 사정에 적응할지 아니면 고집을 부려 "이상한 사람" 모드를 지속할지 지켜봐야겠다. 그날그날 장사해 먹고사는 보부상과 십년지대계로 멀리 보고 장사하는 대상인의 접전같다. 누가 이길지 자본력만 놓고 보다면 뻔한 게임이지만 그 와중에 어떤 변화를 보일지 과연 김감독은 변할 수 있을지 자못 기대된다. 만약 김감독이 이 국면에서 대전환을 보여준다면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김감독의 광팬-추종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모르겠다. 박근혜가 자기 죄를 시인하면 김감독도 바뀔지도 모를 일.

 

 

다시 아버지 이야기. 아버지는 연세를 잡수시면서 더욱 이상한 사람으로 되어가셨다. 그 정도로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느날부터인지 조갑제 씨가 집필한 책을 사시고 구독하던 신문도 한국일보에서 조선일보로 바꾸셨다. 한국일보가 빨갱이 신문이라는 이유였다. 딸이 셋이나 있는 양반이 갑자기 남아선호사상의 신봉자로 돌변하셨다. 어느 날엔 당신 자식들이 밥을 먹으며 영화 "화려한 휴가"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갑자기 끼어들어 "광주 것들을 모두 잡아들여 몰살시켜야 한다"는 끔찍한 말을 하시어 당신 자식들을 질색하게 하셨다. ... 간혹 친박부대의 박근혜엄호 집회 기사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저 자리에 계신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아버지와 연락하지 않고 지낸 지 어언 십년 차에 접어든다. 이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는 걸까 아예 아무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아버지는 살아남기 위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보수화 (conservative swing)" 라는 당신의 진로를 잡으셨고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변화" 다. 연락 없이 지낸 그간의 십 년의 세월동안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 되셨을까. 손주손녀도 보셨으니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계실까, 아니면 당신이 마감하실 말년까지 당신의 옳음을 입증하려 애쓰시는 분이실까.

2017/04/06 02:26 2017/04/06 02:26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수컷장어외

분류없음 2017/04/01 01:40

수컷 장어

 

한 달에 두어 번, 많게는 서너 번 한국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 최근 직접 나가서 장을 볼 시간이 부족해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이틀 뒤 받아보는 패턴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자잘한 것은 역시 직접 둘러보고 구입하려 애쓴다. 출근길에 잠깐 들려서 한국에서 뭐 새로 온 게 있나, 약간의 흥분... 그러다가 발견한 장어구이. 아싸. 그런데 집에 와서 자세히 보니 "사내 남 (男)" 글자가 포장지에 뙇! 원래 장어를 암수 구별해서 파나, 수컷장어가 더 맛이 있나, 요즘 한국에선 수컷장어가 유행인가, 왜 수컷을 선호하지, 원래 동물은 암컷이 더 월등한 거 아닌가... 별의별 추측성 대화를 한참 나누다가 깨달았다. 아, 남자에게 좋은 장어라는 의미구나. 이렇게 오묘한 뜻이. 아마도 그게 맞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어를 먹을 적에 암수 구별하면서 먹었던 기억은 전혀 없으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치과 방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이 치과에 가는 일. 며칠 전 어금니 크라운 하나가 쏙 빠져버렸다. 대학교 일학년 때 맞춘 것이니 물경 이십 년도 넘었다. 그럴 때가 됐구나. 약속도 잡지 않고 emergency 라는 핑계로 불쑥 치과에 갔다. 당연히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의 심정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소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안쪽에서 드릴로 가는 소리 같은 게 들리니 심장이 벌렁벌렁 아아아아아 이미 맨붕 시작. 다행히 핑크색 어린이 의자가 있다. 나를 위해 준비했구나. 뭔가 의지할 데가 있으면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나만의 대기 의자. 기다리는 동안 다행히 어린이 친구들이 오지 않아 맘편히 의자를 독점할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치과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결과 마우스 가드 (night guard) 를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밤에 자는 동안 이를 가는 습관은 없지만 평소에 뭔가를 생각할 때 혹은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이를 앙다무는 습관 (clenching) 이 있다. 파트너도 종종 지적해주신다. 그런데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야구선수나 복싱선수보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 두번 째 방문에서 틀 (impressions) 을 땄다. 다행히 보험처리가 되는 치료라서 큰 걱정은 없는데 아무래도 대낮에 이걸 끼고 있으면 외관이 참 흉악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염려아닌 염려. 이제 치과 방문은 두 번 남았다. 연식이 늘어가니 뭔가 보조해야 할 일들도 늘어간다.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생각처럼 그게 쉽지 않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7/04/01 01:40 2017/04/01 01:40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저출산대책

분류없음 2017/03/24 00:46

안선희 기자의 말마따나 근혜찡이 그간 대통령역할만 제대로 했더라도 한국 사회 최대 이슈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두말하면 잔소리. 한국사회는 이미 심각하다. 사람들은 늙어가는데 새로 나와야 할 아이들이 나오지 않는다. 어딘가에 묵혀둔 거라서 꺼내쓸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서 더더욱 심각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 동물계에서 말하는 암수교접 비율이나 횟수가 현저하게 떨어진 것은 아닐진대 새로운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유일한 인구집단, 가임여성들이 출산을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간단히 들여다보면 저출산-고령화 원인을 가임여성들에게서 찾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어 보인다.

 

사실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싶으면, 낳겠다고 결심하면 임신의 방법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여성 입장에서 그렇다. 그리고 출산-육아라는 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보장받는 일이고 해볼만한 일인 데다가 인생의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면 그 일을 마다할 가임여성보다 재고할 여성이 더 많을 것이라는 가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간단한 이치다. 출산능력을 근본적으로 결여한 남성 입장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를 낳고 기르려 계획을 하는 순간, 아니 상상만이라도 하려면 누군가를 - 상대의 성을 - 대상화해야만 한다. 현대 과학기술 수준에서는 아직 이 수준을 넘어서는 플랫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아직은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그들에게 출산-육아에 앞서 "짝짓기-결혼" 라는 절체절명의 고난도 장벽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 또한 당연해 보인다.

 

진단은 저출산-고령화다. 사실 고령화는 어쩔 수 없다. 시간이 가면 사람 또한 연식이 쌓이고 늙어가는데 기계도 늙어가는 마당에 사람에게 늙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일찍 저세상으로 가시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고령화를 저출산에 갖다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진단은 저출산이다. 그러면 처방 또한 출산가능한 인구집단에 맞춰 내는 게 맞다. 가임여성들이 혹은 앞으로 가임여성인구반열에 들어설 여성들이, 그리고 그 여성들을 키워내는 어른들 입장에서 출산-육아가 정말로 사회적으로 인정-보장받는 일인 데다가 인생의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주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여성들로 하여금 출산을 스스로 결정하되 결정하여 그 노동에 기꺼이 참여해도 그 개인 여성의 인격과 정체성과 커리어에 전혀 손상이 없는 오히려 득이 되는 그런 세상이 되면 애 낳지 말라고 뜯어 말려도 알아서 낳는다. 이 간단한 이치를 모를 리는 없는데 왜 그럴까. 마치 작금의 대책은 좋아하는 여자에게 구애하면서 그 여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엔 1도 관심없고 제풀에 신이 나 마구마구 선물공세를 쏟아붓다가 지쳐 떨어져 "외 나 않조아해. 김치녀-ㄴ들" 울부짓는 어떤 남자를 보는 것 같다. 뜬금없는 짝짓기 정책이나 결혼에 집착하는 정책은 되려 독이 된다. 정부가 10년동안 100조 원이나 쏟아부었는데도 가시적인 성과가 안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0조 원이나 쳐넣었는데 외 애 않 나아"

 

 

* 아동수당 논의가 있는 것 같은데 빈 지점이 있다. 이 수당은 반드시 출산을 수행한 어머니의 이름 앞으로 지급해야 하며 보편적인 복지 (universal care) 로 가야 한다. 가령 이건희 손녀가 아들을 낳아도 월 십만 원,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들을 낳아도 월 십만 원 이런 거 말이다. 기본적으로 비과세 소득이어야 한다. 다만 케어기버의 소득수준에 비례해 과세가능한 소득인지 아닌지는 연말정산에서 다시 따져물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과세 등급 (tax bracket) 을 미리 지정해야 하고 따라서 세수 및 과세 정책과 맞물려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년이 되기 전까지, 가령 만 16세까지 지급하는 것이 옳다.

 

2017/03/24 00:46 2017/03/24 00:46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욕하지말라

분류없음 2017/03/22 02:20

이것은 굉장히 슬픈 소식이다. 첫째는 힘없는 노동자 (고용인) 가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현실" 때문에 슬프고 둘째는 평생을 권위주의와 반노동자적 체제에 맞서 싸워온 투사들이 그들이 그동안 싸워왔던 적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쌩얼을 드러냈다는 점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황현아 님으로 하여금 이런 글을 쓰도록 만든 그 과정 때문이다.

 

나는 힘없는 노동자이자 피해자인 윤태우 기자를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그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이와 인연이 있었든지 없었든지 그것은 하등 상관이 없다. 윤태우 씨가 겪어낸 그 과정에 나를 이입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군가 내게 머물 집과 직장을 줄테니 와서 일하라고 했다. 이른바 "가족같이 지내실 분" "숙박제공". 전봇대에 붙어있는 스티커 구인광고도 아니고 더구나 그 제안을 한 사람(들)이 믿을만한, 상대적으로 존경할만한 집단이라면, 그리고 그 일이 하고 싶은, 매력적인 일이라면. 거절하기보다 일이 되는 쪽으로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을 믿고 일을 시작했다. 그게 사단이 될 줄이야.

 

나는 이황현아 님이 당신의 글에서 실명거론한 사람들을 예전에 알았던 적이 있거나 만난 적이 있다.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 잘은 몰라도 대충은 안다. 나는 그들이 자본가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나는 이건희도, 이재용도, 신격호도 심지어 트럼프도 자본가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자본가적 속성이라든지, 반자본가적 속성이라든지, 이런 특질 (traits) 은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지 인격 자체에 내재한 것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에서 심각한 결격사유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이건희나 이재용이나 신격호나 트럼프 따위의 사람들도 공히 공유하는 경향 가운데 하나일 것 같다. 아니, 평범한 사람들 모두에게 숨어있다. 권력 관계의 대립이 부상하는 어느 순간 숨겨왔던 이 태도가 드러날 수 있고 이것이 그들의 본질 (substances) 로 될 수 있다. 이건희나 이재용 따위의 사람들은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을 "물건 (things)" 으로 보는 것 같다. 커피가게에서 돈을 주고 사는, 컨비니언스에서 돈을 주고 사는 커피나 담배 같은 것으로 사람을 본다. 마시면 그만이고 맛없어도 버리면 그만이거나 라이터에 불을 붙여 태우다가 꽁초에 이르면 비벼 끄면 된다. 친한 사람이 달라고 하면 아무 대가없이 그냥 줘도 된다. "돛대는 아버지도 안 준다" 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 쯤이야 담배주인의 재량에 달렸다. 하지만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감정이 있고, 상황에 반응하며 인격을 존중받을 권리, 싫고 좋음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노동자는 사람이다. 물건이 아니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한다. 노동자는 사람이다. 물건이 아니다.

 

나는 이황현아 님이 당신의 글에서 실명거론한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했던 과정에 크나큰 실망을 했다. 그들이 좀 더 세련되고 단련됐다면 이런 식으로 추잡스럽게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공연한 장소에서 씹새끼 개새끼 따위를 부르짖고 자신에게 대드는 사람들은 못돼먹은 *새끼가 되는 이런 현실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 곳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싸가지 없이 어린 것이. 니들이 노동운동을 알아. 아울러 이황현아 님이 당신의 글에서 거론한 몇몇 진보언론 매체에도 실망했지만 그 실망은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 않다. 그들도 권력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제 2의 윤태우 같은 기자가 자기 회사에서 나오지 말란 보장도 없다. 중립을 가장한 쌩얼이 더더욱 잔인한 이유다. 그들 매체는 앞으로도 그냥 그렇게 지지부진할 것이다. 젊고 래디컬하며 대안적인 상상력을 지닌 세대들에게 이런 매체는 더 이상의 매력이 없다. 그들 매체를 후원하고 구독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미 그런 매체들은 널리고 널렸다. 다만 우리 선배들이, 예전에 활동하던 선배들이 만든 곳이야, 역전의 용사들이 활동하는 곳이지, 따위의 동기는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매력은 장기적이고 강력한 유인동기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패거리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식회사는 주식회사의 룰에 근거해 정확하게 운영하고 노동자를 고용하려거든 노동관계법과 -노조가 있다면- 단체협약에 근거해 사람을 고용한 뒤 취업규정을 올바르게 적용해서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매했으면 싶다. 구매한 노동력을 최적화하여 사용하려면 사용자들이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존중받을 때 일 잘한다. 그건 진리다. 회사의 경영진에 있는 사람은 말을 아껴야 한다. 그들이 한 말은 개인의 말이 아니라, 회사를 대표하는 말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고용할 때 아파트를 주겠다고 했으면 (거주지 제공) 당연히 아파트를 주는 게 맞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노동조건을 변경해야 할 때에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노동조건이 하향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게 맞다. 거주지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노동조건이 맞다. 왜냐면 노동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면 집에 돌아가 씻고 먹고 자야 한다. 그래야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다. 노동자는 사람이다. 노동자에게 욕하지 말아라. 노동자에게 개새끼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이건희보다 못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다.

 

2017/03/22 02:20 2017/03/22 02:20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경계에선날

분류없음 2017/03/15 15:30

 

*

이 나라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쓴 영어 표현이 무엇인지 곱씹어봤다. 다름 아닌 "I'm not [a] Chinese" (난 중국인이 아니야). 나는 무엇이다, 라는 표현보다 나는 무엇이 아니다, 라는 네가티브 방식의 이 표현을 가장 많이 구사한 것으로 정리하게 되어 무척 유감이다. "I'm [a] Korean" (난 한국인이야). 라고 말해도 되지만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알아도 북조선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아서 쓸데없이 말이 길어진다. 한국에서 영어 선생님을 해서 했거나 한국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몇마디를 나눠보면 대개 억양에서 눈치를 채기 때문에 어디에서 왔냐는 식의 질문을 아예 하지 않는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차라리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면 황송한데 어림짐작으로 중국요리 잘 만드냐, 만다린 (Mandarine, 북경어) 을 하느냐 아니면 캔토니즈 (Cantonese, 광둥어) 를 하느냐, 나도 중국요리 좋아해 (어쩌라구) 라는 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상당히 곤란하다. 백인들은 "I'm not Chinese" 라는 말을 들으면 대번 "I'm sorry" 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도 역시 뻔뻔하게 말한다. 괜찮아, 우리 나라에선 백인들한테 다 미국인이라고 해. 괜찮아.

 

문제는 흑인들이, 특히 중국인에게 싸잡아 착취를 경험한 서인도제도에서 온 흑인들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면 멈칫, 하게 된다. 그들의 분노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어려운 구석이 있다.

 

**

베트남, 중국, 한국... 이 나라들에서 이민온 남성들. 특히 다 자라 어른이 되어 결혼한 뒤 이민온 아저씨들은 -어떤 분이 강력히 말씀하셨다시피- 특별 교육을 따로 받았으면 싶다. 여자들은, 아내들은 각성이 빠르다.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자기 권리를 깨닫게 된 뒤로는 예전처럼 복종하는, 순종하는 아내로 살지 않는다. 일부 아저씨들은 당황하기 시작하고 못내 폭력을 휘두른다. 베트남, 중국, 한국 본토의 문화나 관습과 달리 이 나라에서 가정폭력 (Domestic Violence) 은 상당히 무겁게 다룬다. 결코 가볍지 않다. 크리미널 클라스도 아예 달라서 살인위협과 동급으로 다룬다. 그런 아저씨들에게 특별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 또한 이 나라 정부에 있다. 무턱대고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르라는 건 말이 통하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지, "아/저/씨" 들에겐 결코 통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그들은 이미 인간계 (人間界) 를 넘어섰다. 간혹 만나는 이 나라 출신의 인간계를 넘어선 클라이언트들을 볼 때마다 동물원에 호랑이랑 같이 집어넣으면 순하디 순한 양이 될텐데... 이런 씰떼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아무래도 인간계를 넘어선 이런 부류들은 절대 서포트하지 못할 것 같다. 사회복지사 (Social Worker) 로서 나의 한계를 확인시켜주는 존재들. 감사할 따름.

 

***

그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 (개인적으로 알고지낸 사람들을 포함해서 그냥 알게 된 사람들 포함) 가운데 가장 극강의 사람은 역시 근혜찡,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이 사람 역시 인간계를 넘어선 우주의 기운을 얻다못해 차고 넘치는 극강의 존재. 아이 씨발 이런 양반을 대통령이랍시고... 이번에 엄마께 전화할 일이 생기면 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하셨냐고 그것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여쭤봐야겠다. 그런데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까. 설마. 아니겠지. 아닐거야. 그러나 모른다. 인간계를 넘어선 사람들, 무척 많다. 나 또한 항상, 오늘도, 이렇게 그 경계에 서 있다. 뭐라고 막 욕을 하고 싶은데, 직장에서 겪은 울분을 토로하고 싶은데 그 씨발같은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경계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일기는 일기장에.

 

 

 

2017/03/15 15:30 2017/03/15 15:30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꽃개의고민

분류없음 2017/02/18 02:32

작년 10월부터 일을 시작한 직장에는 대단히 독특한 문화가 있다. 특정 인종/ 국가 (흑인/ 자메이카 등의 캐리비안 국가들) 출신들이 한 디파트먼트를 장악하고 있다. 정해진 원칙대로 잘하면 좋은데 말이 그렇지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만약 한국에서 영남출신 남성들이 한 회사의 디파트먼트를 장악하고 그 출신 지역 사람들만 뽑으려고 한다면? 그러기도 쉽지 않지만 그러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런데 과연 그 디파트먼트가 잘 돌아갈까? 글쎄, 회식자리에선 잘 돌아갈 것 같기는 하다. 이것은 영남출신 남성들에게 혹은 자메이카 출신 흑인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결코 아니다. 살다보면, 일하다보면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렇다. 동물들을 시켜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 같다. 외부의 적절한 개입과 긴장이 없으면 그냥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바로 그 현실에서 비롯한다. 매뉴얼, 원칙, 규칙이 필요한 이유다. 노동조합에 힘이라도 있으면 외부적으로 강제하겠는데 노동조합조차 유명무실할 경우엔? 솔직히 답이 없다.

 

 

문제는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듣보잡 차이니스인 꽃개가 이 시스템에 들어가면서 비롯됐다. 꽃개의 매니저도 꽃개가 입사하기 직전 헤드헌터 픽업으로 회사에 입사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사의 대빵 (ED) 과 각별한 사이이긴 하나 이 문제적인 디파트먼트의 디렉터를 상관으로 모셔야 한다. 디파트먼트의 디렉터인 이 양반은 역시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이다. 현장에서 이십년 넘게 잔뼈가 굵은 현장형/ 마이크로 메니지먼트형 디렉터다. 자질구레한 것까지 다 지시하려고 한다. 심지어 CCTV를 통해 집에서도 어디에서도 일터를 들여다보고 자기가 보고 있다는 늬앙스를 현장 프로트라인 워커들에게 공공연히 암시한다. 꽃개의 매니저 또한 현장에서 잔뼈가 단단히 굵은 사람이지만 전형적인 "캐나디언" 이다. 업무 시간 외에 일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아예 불이 나거나 사람이 죽을 경우에만 연락하라는 유머러스한 지침까지 내렸다. 현장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

 

 

꽃개가 입사하자 차이니스를 극도로 싫어하는 이 흑인그룹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들이 교묘하게 장치 (?) 한 테스트를 몇 차례 치렀다. 그런데 그 테스트라는 게 죄다 직업윤리에 어긋하거나 원칙과 무관한 문제적인 일들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콕 집어 문제제기를 했고 매니저에게 보고했고 매니저에게서 다시는 그런 일을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만약 이 때 매니저가 꽃개를 백업하지 않고 발을 뺐다면, 나는 모르는 일이야, 라고 했다면? 꽃개는 일을 때려쳤거나 아니면 쥐죽은 듯이 일을 하면서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일이 발생한 게 11월이었고 11월 한 달 동안 살이 5킬로는 더 빠진 것 같다. 일을 같이 의논하던 또 다른 신입사원 M 은 직장을 관뒀다. M 이 떠난 뒤 막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혼자서 싸웠고 다행히 시프트 파트너인 J 가 곁에서 도왔다. J 는 노동조합 서기이고 나름대로 괜찮은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는 있으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J를 돕고 싶지만 의지만큼 실력이 출중하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어제 J 에게서 단체협약 (Collective Agreement) 협의회 (Committee) 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아. 일 년 정도 지난 뒤면 모를까. 우리 디파트먼트에 있는 평직원들 (자메이카 사람들. 이들은 모두 조합원이다) 이 차이니스를 안 좋아하고 신뢰하지 않아. 더구나 나는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잖아. 시간이 필요해. 너는 차이니스가 아니잖아. ...... 자메이칸들이 왜 차이니스를 안 좋아하는지 영국의 제국주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19세기 말 20세기 초 캐리비안 지역으로 이주한 차이니스와 인디안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 들이 어떻게 현지에서 부를 축적했고 어떻게 현지 사람들을 착취했는지 장황한 이야기, 우리 디파트먼트의 파워다이나믹에 대해서 그리고 현장 비정규직들이 어떤 식으로 같은 지역 출신 디렉터에게 농락당하고 있는지 등등 그간의 관찰을 섞어 이야기를 전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순전히 나의 실력의 문제다. 영어실력, 정치력, 설득력 등등. 그런데 나는 아직 그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게 일당백으로 맞설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아니 아직 그들을 잘 모르겠다. 정보가 너무나 제한적이다.

 

 

얼마 전에 읽은 고용인들이 임금인상보다 선호하는 열가지 (10 Things Employees Want More Than a Raise) 라는 기사를 계속 곱씹고 있다. 다행히 꽃개를 직접 감독하는 매니저는 상당히 괜찮은 양반이다. 이 양반 때문에, 그리고 J 때문에 직장에 계속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

 

 

지난 화요일에 주말에 일하는 회사, 그러니까 2011년부터 일했던 회사에서 근무평가 (Performance Appraisal) 미팅을 했다. 매니저와 미팅을 하면서 이 곳에서 이브닝 시프트 풀타임 포지션을 구하는 게 나의 다음 목표 (goal) 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넌 이미 풀타임을 구했잖아. 개인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그리고 두 직장의 장점을 이야기한 뒤 개인적인 선호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런 자리에서 단점을 얘기하면 절대 안된다. 아무래도 이게 한국 비즈니스 문화와 북미 비즈니스 문화의 차이점인 것 같다. 무조건 포지티브하게 이야기해야 좋은 인상을 남기고 좋은 점수를 딴다) "꽃개를 풀타임으로 쓰면 나도 윈이고 너도 윈이야. 서로 윈윈해야하지 않겠니" 한국어로는 절대 하지 못할,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전했다. 다음에 포지션이 열리면 꽃개에게 가장 먼저 오퍼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게 언제일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것을 전달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 주중에 일하는 직장이 과연 변화가 가능한 곳인지 그것을 천천히 따져봐야겠다. 아무리 엿같아도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 그래도 좋지 않을까 그런 위로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과연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 정말 나을까. 지금까지는 전혀 하지 않았던 - 할 필요도 없었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2017/02/18 02:32 2017/02/18 02:32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갱신을위해

분류없음 2017/02/07 00:11

여러가지 핑계로 그간 집청소를 하지 못했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청소기를 돌리고 밀대로 걸레질을 하는 것 뿐인데도 쉬이 착수하지 못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루고 미루다가 어제 드디어 "미션 컴플리트". 짝꿍이 고맙다고 안 그래도 이메일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고맙다고 거듭 말씀해주셔서 못내 무안하고 미안하고 그랬다. 청소 따위로 뭔놈의 이메일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우린 이렇게 산다. 그리고 청소기 청소는 내 몫이다. 이렇게 살기로 약속하고 공동의 삶을 시작했다 (동거를 시작했다). 따라서 둘 사이에 느닷없이 화를 내거나 폭발하는 일이 거의 없다. 싸울 일도 없다 (싸우긴 싸운다. 여전히 우리도 사람이니까). 만약 서로에 관해 잔소리할 일이 생기면 정중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자고 권하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이메일을 쓴다. (물론 사랑의 고백도 간혹 이메일로 한다규!!!) 짝꿍이 보내는 이메일은 그래서 더할나위 없이 소중하고 나를 반추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편지를 써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주구장창 내 얘기만 쏟거나 내 입장만 강변할 순 없다.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상황을 복기하고 정중하게 글을 매만질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이메일로 "욕을 해대는" 경우는 정말 어렵지 않은가 말이다. 만약 그런 이들이 있다면 절대지존일 것이다.

 

 

짝꿍은 꽃개와는 성정이 아예 다른 사람이다. 차분하고 기다릴 줄 알고 약속한 것은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맥락없이 왈칵 성을 내는 사람도 아니다. 약간 차원이 다르다고 할까. 며칠 전에 짝꿍에게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몇 번 만나면서 4차원인 것 같아서 무척 끌렸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엄청 웃어제끼셨더랬다. 4차원이라는 말은 처음 들으셨다고... 꽃개도 약간 (?) 4차원적인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꼬장꼬장하고 까칠하다. 자기연민과 아집이 강하고 picky 하다고 해야 하나... 짝꿍과 살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고 인간화가 많이 되었는데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 난 여전히 개야, 꽃개...

 

 

올해는 짝꿍을 만나 삶을 함께 일군 지 십년 차에 접어든다. 처음에 약속했던 계약은 십 년 정도 살아보고 더 같이 살지말지 결정하자는 거였는데 꽃개는 계약을 십 년 더 연장하고 싶다. 짝꿍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몇 번 장난삼아 좋다고 하시기는 했는데. 정말이었으면 참 좋겠다. 청소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2017/02/07 00:11 2017/02/07 00:11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주범과종범

분류없음 2017/01/28 03:03

제목: 주범 (主犯) 과 종범 (從犯) (a culprit and accomplice)

 

 

요즘 꽃개는 회사일과 타임메니지먼트 적응 등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셜미디어를 할 수 있는 여력도 한국 뉴스를 검색하거나 따라잡을 여력도 없다. 입맛도 없어서 먹고 싶은 것이 없다. 다행히 회사가 다운타운의 한국인마을 근처에 있어서 출근길에 한국인이 하는 스낵바에 들려 김밥을 싸들고 출근하고 있다.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김밥은 그냥 꾸역꾸역 입에 넣기만 해도 씹히고 소화가 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거의 매일 (월-금) 들르는 이 김밥집의 사장 아주머니께서는 여느 한국인 이민자들처럼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 박근혜 지지지이시다. 요즘엔 한국 뉴스를 거의 이 김밥집의 사장님에게서 듣고 있다. 어제도 마찬가지로 최순실 씨가 조사를 받고 나오는 길에 민주주의를 거론하며 소리를 질러댔다는 - 극악무도한 일을 저질렀다는 - 뉴스를 업데이트해주셨다. 예상은 했지만 최순실 씨는 (박근혜 씨와 함께) 정말이지 예상을 넘어서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아니면 정말 아픈 것 같다. 

 

 

클라이언트 가운데 살인/ 살인미수를 저질렀지만 정신감정 결과 형법상 책임을 물을 수 없어 non criminally responsible (NCR) 처분을 받고 행동의 자유를 구속받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NCR 을 한국말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금치산자 (禁治産者), 한정치산자 (限定治産者) 같은 터미놀러지는 알고 있는데 형법상 이런 사람들을 일컫는 한국어 텀이 따로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한국 형법에서는 제10조 제1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분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이 있고 아마도 이 조항들이 캐나다 NCR 의 갈음 (equivalence) 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클라이언트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어머니를 살해했고 여동생을 강간하고 살인하려 했다는 행위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왜 나쁜 일인지 하면 안되는 일인지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아니 받아들였다가 부인했다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분명한 공통점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그랬다" 는 것이고 "그 여자들 (희생자) 이 그럴만한 짓을 했다" 고 말한다는 특징이 있다. 클라이언트들이 구성하는 맥락에서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또 하나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자신들이 입는 피해, 신체적-금전적-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응한다. 가령 손가락이 약간만 베어도 징징대면서 대번 대일밴드 (밴디지) 를 찾거나 스텝들을 탓한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서포트를 하면서도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안그랬다간 시쳇말로 "머리꼭대기에 올라가" 스텝을 갖고 놀려고 (controlling; manupulating) 든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가해자인 클라이언트들을 인간적으로 용서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잘 들여다봐야 한다. 이 과정은 스텝인 나를 위해서,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서, 나아가 작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꽃개가 서포트하는 클라이언트들의 80% 이상이 어린 시절에 상처를 겪었고 적절한 케어를 받지 못했다. 방치를 겪었고 물리적-정신적 학대를 경험했다. 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이 사회의, 시스템과 체제의,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그들을 온전히 서포트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클라이언트 한 명에게 들이는 돈은 (제대로 계산한 것은 아니지만) 약 연간 40,000 달러 이상이다. 경제적 비용만이 아니다. 꽃개처럼 이들을 서포트하는 노동자들, 인프라, 이외의 경찰과 병원 서비스 등등.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회가 치러내야 하는 비용이다. 내가 낸 세금이 왜 이런 이들에게 돌아가냐고 불만을 늘어놓은 사람이 만약 있다면 그 사람에게 연간 40,000 달러를 줄테니 그 살인자의 삶을 책임져보라고 말하고 싶다. 

 

 

어쨌든 말이 길어졌는데 김밥집 아주머니에게 최순실 씨가 어디 아픈 거 아닐까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저 정도로 모를 정도면 정신적으로나 마음이 상당히 많이 아픈 것은 아닐까요 라고 물었더니 단호박이다. 당장 광화문에 끌어내서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고, 박근혜 대통령을 망친 주범이라고 어찌나 단호하게 말씀하시는지 더 여쭙지 못했다. (그런데 광화문에 단두대가 있었나????)

 

 

퇴근길에 살짝 검색해봤는데 박근혜 씨가 더 아픈 것 같다. 우리 공주님은 케어가 필요하다.

 

 

 

 

 

2017/01/28 03:03 2017/01/28 03:03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노조원꽃개

분류없음 2017/01/21 02:54

 

드디어 인생의 한 챕터에 노동조합 (Union) 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다른 사람의 노동조합이 아니라 나의, 꽃개가 소속한 노동조합 말이다. 노동자로서 나 자신이, 꽃개가 소속한 조직이 있고 그 소속감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특혜 (privilage) 다. 캐나다는 물론, 한국에서도 노동조합조차 만들 수 없고 소속할 수도 없으니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주중에 일하는 곳, A 회사라고 해두자. A는 산별노조인 캐나다공공노조 (Canadian Union of Public Employees: CUPE, 발음은 "큐피" 에 비슷하게 한다) 에 속해 있다. 처음 이 회사의 잡포스팅을 봤을 때 "노동조합이 있는 곳 (unionized position)" 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A 회사에서 잡오퍼를 했을 때 기뻤고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반면 주말에 일하는 곳, B 라고 해두자. B 회사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B 회사의 이그제큐티브 디렉터 (ED) 는 지역 사회에 잘 알려진 대단히 리버럴한 사람이지만 매우 공공연하게 "노동조합은 필요없다 (useless)" 고 말한다. 차라리 노조를 못만들도록 방해공작이라도 하면 낫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요는 이렇다 - 회사에서 혜택 (benefits) 을 다 해주는데, 노동조건은 각 프로그램마다 매니저와 의논해서 결정하여 적용하면 되는데 그걸 뭐하러 노동자 개개인이 따로 돈 (조합비; union dues) 을 내면서까지 조직을 또 만들고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는 거다. 한 번은 어떤 친구가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은밀히 움직였다. 그 친구는 공부에 욕심이 제법 많은 친구였는데 회사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박사과정을 제안했고 그 양반은 잠정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떠나는 날, 해당 디파트먼트에서 그럴싸한 파티를 해줬고 회사 뉴스레터에 사진과 동향이 실렸다. 그 양반이 나중에 박사학위를 받아 회사로 복귀하면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그 의지를 지속해 실천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박사학위를 소지한 사람은 코디네이터-매니저급으로 채용되거나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회사와 일대일 컨트랙트를 맺는다. 그리고 코디네이터 이상 직급은 노동조합원 자격을 갖지 못한다. 그 양반의 의지와 무관한 현실이다. 물론 당사자가 원하면 박사학위를 땄든 의사면허가 있든 얼마든지 평사원으로 일할 수 있지만 매니저 입장에서 자신보다 오버퀄러파이한 직원을 수하에 두면서까지 일을 시키려는 사람은 없다. 없을 것 같다.

 

 

주중-주말 두 곳을 번갈아 일하며 지금까지 느낀 것은 --- 불행하게도, 노동조합이 없는 B회사의 노동조건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임금, 근무환경, 매니저의 철학과 수퍼비전... 비교하면 할수록 노동조합이 없는 곳이 월등히 낫다. 하는 일은 비슷한데 말이다. 회사의 규모를 감안해도 어딘가 석연지 않다. 대체 원인이 뭘까.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것으로는 "사람" 의 문제가 크다. 회사의 풍토, 문화도 큰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회사는 그 회사 수준의 노동조합을 갖고 노동조합은 그 노동조합 수준의 회사를 갖는다" 는 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10월에 입사한 뒤로 A 회사 노동조합의 지부장 (위원장)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프트 파트너가 노동조합 서기이고 지역 노동조합 활동에도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서 대화가 통하는 편이긴 하지만 조합 차원에서 신규조합원에게 발송하는 환영이메일 한 장 받지 못했다. "대체 위원장은 뭐하는 사람이야?" 라고 물었더니 답변이 가관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주중에 풀타임으로 다른 잡을 갖고 아이를 키우고 등등 바쁘단다. "그런데 왜 위원장을 하는 거야?" / "I don't know."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

 

 

 

 

 

2017/01/21 02:54 2017/01/21 02:54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 PREV : [1] : [2] : [3] : [4] : [5] : ... [39]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