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카메라

분류없음 2018/07/06 09:41
* 구글 "voyeurism" 뉴스 검색
- 최신 뉴스 검색 트렌드는 일명 "몰래카메라" 를 찍은 용의자 (the accused)들의 머그샷을 이미지로 기사작성한 것을 보여줌. 경찰의 기소 (being charged) 에 따라 기사를 송출하는 것 뿐인데 용의자의 얼굴을 다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음. 영미 형법에 비춰볼 때 그닥 특출난 일은 아닌 듯. 
- 무죄추정의 원칙을 금과옥조로 하는 "일부" 남성들이 볼 때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일 듯. 
-  한편, 일명 "몰래카메라" 를 "관음증 (voyeurism)" 으로 처벌하는 현실과 한계도 보여줌. 
 
* Toronto police arrest man for allegedly taking ‘upskirt’ photos of women inside a Etobicoke grocery store
https://www.thestar.com/news/gta/2018/06/28/toronto-police-arrest-man-for-allegedly-taking-upskirt-photos-inside-a-etobicoke-grocery-store.html
-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아주 유사한 사례. 식료품점에서 쇼핑을 하는 여성들의 치마 안쪽 (아마도 하반신일 가능성이 높겠다) 을 스맛폰으로 촬영한 남성이 경찰에 체포당하여 "관음증 (voyeurism)" 으로 기소당함. 
- 세 건 (three counts) 으로 기소. 세 명을 찍은 것인지, 세 번 찍는 것이 걸린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이 나라 형법 트렌드로 보아 "세 건" 만 증거가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음. 죽자고 찍어대는 "일부" 남성들 입장에선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일 듯. 
- 법원 일차 판결 전까지 인신구속 (in custody) 이었을 가능성이 높음. 보석으로 풀려났을 가능성도 높으나 여전히 정해진 날짜에 법정에 출두해 최종판결을 받아야 함. 최종판결을 받아도 보호관찰 (probation) 을 받아야 함. 최소 1년, 최장 3년. 이 기간동안 한 달에 한 번, 많게는 매주 보호관찰사 (Probation Officer) 에게 동향 보고를 해야 함. 
- 설사 솜씨 좋은 변호사를 써서 최종적으로 무죄를 받더라도 용의자의 명예를 회복해주는 정정기사는 실리지 않음. "일부" 남성들 입장에선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일 듯.  대신 용의자는 명예훼손 ("회손" 아님) 과 인신의 부당한 구속을 이유로 경찰과 언론을 제소할 수는 있음. 승소할 가능성?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음. "일부" 남성들 입장에선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일 듯.  
 
* Proving sexual intent in voyeurism cases a challenge for courts
https://www.thestar.com/news/crime/2016/06/03/proving-sexual-intent-in-voyeurism-cases-a-challenge-for-courts.html
- 죽자고 여성들의 몸을 찍어대는 일에 "성적 의도" 를 입증해야 하는 "관음증 (voyeurism)" 을 형법상 죄목으로 적용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함. 꽃개도 동의하는 측면. 
- 여성혐오 (미소지니) 의 한 지류에 불과한 "관음증 (voyeurism)" 보다는 개인의 신체와 자유의지를 당사자의 의사에 무관하게 점유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쪽으로 옮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임. 
- 아름다운 개인의 신체와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개인의 자유의지를 화폭이나 사진으로 담고 싶을 땐 그 아름다운 개인의 의사를 물어야 함. 허락을 받으라는 말.
- 여성들과 간단한 대화 (small talks) 를 하는 것에도 벌벌벌 떠는 "일부" 남성들 입장에선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일 듯. "제가 사진을 찍어도 되겠습니까" 라고 묻다가 오줌 쌀 듯. 

"The defence interprets Blouin’s reasoning differently, arguing that having consent does not affect whether the images taken are for a sexual purpose — for example, in the case of a pornographer.

He also suggests the reason Taylor did not ask for permission is because he knew from prior experience that he would be denied, regardless of why he wanted to take the photos."

 

* A PRIVACY RIGHTS QUIZ

Can you be photographed in a public space, like a beach or the TTC without permission?

Yes. Photographing in public places is a constitutionally protected right. But there are limits depending on the circumstances.

Does how zoomed-in a photo is make a difference?

It may. In R. v. Taylor, the judge ruled a person has a reasonable expectation of privacy when it comes to someone zooming in on “private areas.”

Can you be photographed at a public nude beach without permission?

Yes. In a 2014 ruling, R. v. Lebenfish, the judge found there was no reasonable expectation of privacy at a public nude beach where photography is not prohibited.

Are there other criminal charges apart from voyeurism that can protect you from being photographed?

If the photographer is stalking you or causing you to reasonably fear for your safety, or interfering with your enjoyment of property, that could possibly lead to criminal harassment or mischief charges.

2018/07/06 09:41 2018/07/0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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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세상

분류없음 2017/12/08 04:00

 

꽃개와 꽃개 파트너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워커스액션센터에서 핵심사업으로 펼치고 있는 "정당한 임금" 캠페인이 일말의 성과를 냈다. 현행 시간 당 $11.60 의 최저임금을 내년 1월부터 $14, 2019년 1월부터 $15 로 각각 인상, 적용한다. 주정부의 발표 자료는 여기에 있다. 근본주의자들께서는 시간당 임금을 올리는 것은 산소호흡기를 연장하는 일이라고, 자본주의를 끝장내는 데에는 도움되지 않는다고 탄식하실지도 모르겠다만 옆에서 관찰하고 참여한 입장에서는 "절대 아니올시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 그럼 근본주의자들은 바보야 문제는 자본주의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해야 해라고 일갈하실지도 모르겠다만 꽃개는 그냥 무시할란다.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임금이 오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꽃개가 중요하게 바라보는 지점은 그 캠페인-운동에서 사람을 모으고 조직하고 활동가로 키워내는 "과정" 에 있다. 몇 년 전 $12 인상 운동을 할 때 처음 만났던 이민자들이, 이제는 주요 활동가로 성장해서 지역운동을 이끌고 워크샵을 조직하고 있다. 꽃개는 여전히 "먹고사느라 바빠서" 열심히 참여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면서 이들의 분투에 감사하고 있다. 

 

대부분 이민자들이었다. 중국에서, 콜롬비아에서, 멕시코에서, 필리핀에서, 동유럽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나라에서 캐나다로 이민오신 그 분들의 백그라운드는 엄청났다. 자국에서 의사로, 교사로, 혹은 고등교육을 마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더 나은 세상을 찾아 캐나다로 오신 그 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그들 나라에서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이었다. 시간당 $6 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공장노동, 피자가게, 딸기나 사과를 수확하는 한철 농장, 식당 서빙... 그나마 이마저도 불안정하거나 임금을 뜯기기 십상이었다. 그들이 그들의 권리를 자각하고 착취를 깨닫고 떨쳐 일어나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다른 노동자들을 만나 설득하는 과정은 경이로웠다. 첫 만남 자리에서 인사하는 것도 부끄러워 천장을 바라보며 우물우물하던 어떤 이가 몇 달 뒤 꽃개에게 최저임금 인상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과 존경의 순간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행사에 참여한 꽃개가 지나가는 시민인 줄 알았다. 꽃개는 그를 기억하지만 그이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만나왔기 때문에 꽃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꽃개는 2011년에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시급 $16.50 으로 그 때 당시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이었지만 휴가나 병가, 보험 등을 받을 수 없는 비정규직이었다. 꽃개는 당시에 만났던 그들에게 꽃개는 얼마를 받고 일하고 있어요, 말하지 않았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가 꽃개는 일이 많아졌고 바빴고 활동가 교육까지 받았지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려웠다. 매월 그들이 보내주는 소식지를 받고 어쩌다가 행사에 참여하고 피크닉 이벤트에 들르고 인사를 하고 페이스북에서 교류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여전히 꽃개는 그들을 나의 동지로 여긴다. 반갑게 인사한다. 나는 이렇게 바쁘게 활동하는데 너는 뭐야, 너만 힘드냐, 이런 따위의 비난이랄까, 질타 따위는 없다. 우리는 각자가 놓인 공간에서 각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공동의 지향을 향해 할 뿐이니까. 물론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보니 별의별 똘아이들도 있고 시끄러운 소리도 있고 반목도 있다. 활동가를 지도한답시고 완장질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은 맑스를 공부했느니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냥 시답잖다. 그런 게 없다면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디에나 있는 인간들이 거기에도 있을 뿐이다.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다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유학생이나 역시 이민자들의 노동력을 후려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크다. 예를 들면 한국인 이민자들은 컨비니언스나 식당을 많이 한다. 이제 막 유학온 (한국) 학생들이나 (한국) 불법체류인, (한국) 이민자들을 고용해서 사업을 유지한다. 대개 최저임금도 안되는 돈을 현금으로 주고 사람을 부린다. 어떻게 아냐고? 예전에 한국인이 사장으로 있는 어카운팅 펌에서 두어 달 일할 때 꽤 많은 컨비니언스, 식당, 주점이 고객이었고 그 업체들의 사장은 당연히 한국인이었다. 그들의 재무사정을 들여다보고 연방정부에 낼 세금을 정산하고 페이롤을 마련하는 것이 꽃개의 일이었다. 당연히 노동자들에게 얼마를 지급하는지, 그들이 세금을 어떻게 절약 포탈 (逋脫) 하는지, 그들이 얼마만큼의 자산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었을 따름이다. (이것은 업무상 얻은 기밀을 누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므로 구체적인 사업체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 그런 그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한다고 했을 때엔 기도 차지 않았다. 

 

이런 사장님들을 만나서 삥을 뜯어가며 먹고사는 사람이 또 한구석에 있다. 마치 대학교 때 대동제나 과별 축제를 할 때 학교주변 식당이나 술집 사장님을 만나 만원 씩, 이만 원 씩 삥뜯어서 협찬 목록에 넣는 일처럼,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 그런 일만 할 줄 아는 건지, 그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건지 그 사정은 나도 잘 모르겠다. 역시 한국인이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그런 일을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과거에 한자락 했던 운동권 출신이라는 게 참으로 기가 막히고 안타깝고 속상하고 그렇다.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장님들 삥을 뜯고 살기 때문인지 그래서 그이도 최저임금 인상 운동에 나설 수가 없단다. 곤란하단다. 한국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최저임금인상 캠페인에 대해 프티션 (petition, 연대서명) 을 받으려고 했더니 난색을 표명했던 기억이 똑똑하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아주 자-알 알 것 같다. 옛날에 이재오나 김문수 등을 일컬어 "생계형 변절자" 라고 했던 책이 있었다. 지금은 책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출판사 이름은 앨피였나... 어쨌든 딱 그 사정이다. 그런데 이 작자는 겉으로는 세월호 추모 운동과 한국사회의 정상화를 위해 헌신하느라 바쁘다. 한국인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그럴싸한 활동을 하며 먹고 살아가는 사람을 그래도 한 때는 나의 동지로 여겨 밤을 세워가며 입씨름했던 기억들, 1999년/ 2000년의 그 기억이 제발 머릿속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이와 논의했던 러시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이 제발 거짓이 아니었기를 바라지만 이젠 나의 것이 아니니 툴툴 털어버리련다. 아무 의미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어디에나 있는 인간이 여기에도 있을 뿐이다.

 

2017/12/08 04:00 2017/12/0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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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인사

분류없음 2017/11/04 02:14

낙하산 인사 채용. 영어로는 그냥저냥 "nepotism" 이나 "favouritism" 을 쓰는 것 같은데 평상시 대화할 때나 이메일 등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대화할 때도 사석에서, 혹은 뒷담화에서 조심스레 쓴다. 한국어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라는 게 한 번 뱉어버리면 도로 담을 수가 없다. 더구나 북아메리카 영어문화권의 비즈니스 문화에서는 뭔가를 단정해서 말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저 말을 뱉는 것 자체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한국이나 일본, 이른바 중국문화권으로 알려진 지역에서 친족이나 가족에게 일자리를 주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한국엔 음서제도가 옛날부터 있었고 구품관인제 같은 게 있던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도 뭔가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건 유럽문화권도 마찬가지였다. 귀족 가문 사이에서 온갖 사회적 리소스를 독점하는 일은 그냥 아침에 해가 뜨는 일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옛날엔, 근대 이전엔 그냥 밥먹으면 똥나오는 일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현재 (contemporary practice). 시스템이 망가지고 공적 기능이 제대로 역할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사적 보호장치를 찾는다. 아무도 못 믿게 되면, 규칙을 따르고 신뢰를 형성하는 일이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슬금슬금 규칙을 깨고 신뢰를 저버리며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 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 순간 엉망진창은 시간 문제다. (재작년엔가 본 영화 "곡성" 은 그 다이나믹을 아주 잘 보여줬다.) 네포티즘이 이 관계에서 탄생하는지 아니면 네포티즘 때문에 폭망으로 가는지 그 연관관계는 잘 모르겠다. 

 

네포티즘의 웅장한 재등장은 인류 사회가 다시 근대 이전으로 돌아가는 기적 소리같다. 뿌-웅 뿌-웅. 언제 어디서나 사실은 늘 있었왔던 일이지만, 하지만 부적절한 일이기에 대놓고 저지르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이제 이렇게 대놓고 하는 것을 보니 그렇다. 트럼프도 한국의 몇몇 분들도, 그리고 꽃개가 다니고 있는 지금 직장도.

 

트럼프와 이방카 

네포티즘 네이버 설명 

네포티즘 어반 딕셔너리 

 

 

 

2017/11/04 02:14 2017/11/04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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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구나

분류없음 2017/10/06 15:44

한국인이 하는 그로서리에서 나눠준 달력에 빨간 날들이 있는 것도 그냥 무심히 지나쳤다가 어제 동네 세탁소에 들른 길에 추석인 것을 알았다. 중국인 부부 주인이 음력/ 양력이 함께 있는 달력을 카운터에 걸어놨는데 그걸 들여다보다 아차 싶었던 것. 해피 댕스기빙, 했더니 매우 당연하다는듯이 문케잌 (월병) 을 먹었냐고 묻는다. 한국인은 추석에 월병을 먹지 않아, 했더니 하우컴? (왜?) 그럼 니네는 송편 처뮥냐? 고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다른 걸 먹어. 라고 시크하게 넘겼다. 오늘 역시 일터에서 일주일에 두 번 근무하는 파트타이머 중국인에게서 월병 먹었냐는 질문을 듣고 또 다시 구질구질하게 설명. 하우컴? (왜?) 그 남자의 관심은 왜 추석에 맵쌀로 만든 떡을 먹냐는 것. 일 리 있는 질문이다. 햅쌀이 나오긴 이른 때인데. 아마도 묵은쌀로 하는가보지, 대충 넘겼는데 생각해볼 문제... 그런데 왜 니덜은 월병을 먹느냐? 그 미치도록 단 것을 뭐하러 먹느냐? 물었더니 그쪽도 딱히 그럴만한 대답을 하지는 못한다. 하여간 중국인들은 지들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안다. 동(남) 아시안들은 의당 중국식으로 사는 줄 알고 당연하다는 듯이 묻는데 이젠 아주 그냥 지쳤다. 그냥 그렇다고 넘기는 것도 껄쩍찌근하고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귀찮아. 중국인들이 물어보면 그래 그냥 하고 넘기는데 허여멀건 족속들이 월병 먹느냐고 물어보면 식겁하게 된다. 새해에 씨뻘건 봉투를 보여주면서 (물론 돈은 안 들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하고 씨익 웃으면 으이구 저걸 그냥 하다가도 그냥 같이 웃어 넘기게 된다.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가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러나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일일이 따지고 살 기운이 없다. 기력이 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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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들 중 매우 따뜻한 - 겨울이 없는 곳에서 온 사람들의 다른 기준 때문에 몹시 시달리고 있다. 시간 개념이 다르다. 가령 아침 아홉 시에 스탭 미팅을 하면 열 시 전에 온다. "아홉시 (09:00)" 라는 기준을 그들은 아홉시 일 분부터 (09:01) 아홉시 오십구분까지 (09:59) 다채롭게 적용한다. 클라이언트 미팅도 마찬가지라서 클라이언트의 원성이 자자하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노동의 밀도, 시간의 사용, 약속의 적용, 클라이언트 관리 모두 엉망이다. 기준이 다르니 당연하다. 시프트 파트너와 대체 이유가 뭘까. 왜 그럴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화차이 (cultural difference), 시간 관리 (time management) 의 유래, 막스 베버 (Max Weber) 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등등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게 됐다. 시프트 파트너의 아버지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을 겪고 캐나다로 망명온 체코 출신 사회주의자. 사회복지를 전공하기 전에 아버지의 영향 (이라기보다는 압박) 으로 정치학을 전공했고 맑시즘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데 그이도 나도 북미대륙의 사회적 맥락 (Societal context) 에서 비춰볼 땐 이건 아니지 않나... 의견의 일치를 이뤘다. 따뜻한 나라에서 온 이들의 규범파괴적인 (혹은 영혼이 매우 자유로운) 행동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훈련이 덜 된 게 아닌가 싶은데 과연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하기는 할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불가능하겠지. 그럼 대안세상에서는 가능할까? 글쎄, 잘 모르겠다. 일주일에 이틀이나 하루만 일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면 모두가 다 잘 어울려 불만없이 살 수 있는 유토피아가 가능할까. 아니면 직장 문화를 바꿔야 할까? 시간약속 없이 아무 때나 원하는 시간에 나타나서 일하고 적당한 시간을 채우면 퇴근하거나 아니면 아예 집에서 공원에서 도서관이나 바에서 원하는대로 일하면 괜찮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무엇보다 나의 일은 사람을 케어하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더욱 더 이런 "영혼이 무척이나 자유로운" 집단을 이해하는 게 곤혹스럽다. 매니지먼트 레벨에 있는 사람들이 이 집단의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면서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가도 고개를 계속 갸웃하게 된다. 사람의 본성 (substance) 이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머무르거나 반동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는 뽈 부제 (Paul Bourget) 의 명언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누가 그랬는데...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라고...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대로 쓰면 좋은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시스템이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다. 아아아아아 그들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아니, 이해는 하겠는데 내게 다가오는 피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것도 시스템의 일환이려니 하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당연히 클라이언트들에게 피해가 가고 나의 업무에도 지장을 주니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다.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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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짝꿍과 나의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로 굉장한 선물을 보낸 이가 오래전 힐끔힐끔 보던 진보넷블로거라는 사실, 뚱산의 야구팬이라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그나저나 트윈스 너네는 왜 만날 그짝이냐) 짝꿍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아마도 내게 말을 했겠지만 온라인에서 만났던 인연들을 오프라인에서 명실이 상부하도록 꿰는 일은 아무래도 여전히 쉽지 않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 회로를 지녔나보다. 세상은 이렇게 좁구나.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한 나머지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곱씹고 있다. 오늘도 피곤으로 곯아떨어진 곱게 잠든 짝꿍을 보면서 이렇게 부족한 나와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잘 살아봅시다. 보름달을 보고 빌어본다. 백세세상이라서 아직 반백년도 더 살아야하는데... 아이고... 어떻게든 잘 살아지겠지. 잘 할 수 있어. 

 

 

2017/10/06 15:44 2017/10/0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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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생각

분류없음 2017/08/28 04:04

그냥 탁 터놓고 말해 ---,  사람의 욕심은 (바람은) 끝이 없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 바람 없이 사는 사람은 뭔가 "정지한 물체" "운동하지 않는 유기체" 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생각을 잠깐 했냐면, 

 

직장생활은 재미있고 나름대로 보람찬 일이긴 한데 뭔가 허전한 구석이 많다.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일단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직장을 옮겨야지, 옮겨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반면 지금 직장만한 곳이 없지 뭐 그런 생각의 상충. 

 

주중에 다니는 풀타임 직장의 노동조합은 한창 단체교섭을 하고 있다. 이번 달에 끝날 것 같은데 일전에 제기했던 문제가 교섭안에 포함되어 나름대로 뿌듯한 기분이 들기는 든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직접적인 이익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이라 시큰둥한 면도 없지 않다. 조금만 더 생각해서 나의 이익에 부합하는 면이 무엇인지 그 명분을 찾아내면 시큰둥한 면이 조금 잦아들진 않을까 싶다. 그래, 생각하기 나름이다. 

 

무엇보다, 

 

지난 주에 결혼식을 했다. 결혼 (제도) 은 구닥다리 빅토리아 모델이라 나에겐 영 맞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쩌다보니 또 이렇게 됐다. 나에게 맞든 안맞든 살아보면 답이 나오겠지. 당연히 십 년을 함께 해 준 짝에게 고맙다.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볼 수 있어 감사하고 맛있는 것, 좋은 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은 정말이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아니야, 강아지들도 그런 생각을 할 것 같기는 하다. 맛있는 뼉다귀를 보면 같이 사는 인간 생각을 하기는 할까. 아마 할 것이다. 하기는 할텐데 같이 나눠먹는 것에서 결정의 지점이 다를 것이다. 쿨럭.) 한 사람과 주욱 살아보니 뭔가 인생을 더 배우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이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이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값진 훈련을 할 수 있었다. 고맙다. 내 곁에 있어줘서. 

  

2017/08/28 04:04 2017/08/28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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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없뎃

분류없음 2017/06/26 23:29

 

시티폰 

꽃개가 사는 도시의 지하철에선 휴대전화를 원활히 쓸 수 없다. 다운타운부근에선 제한적으로 쓸 수 있지만 약간만 벗어나도 금방 끊긴다. 한시간 무료로 쓸 수 있는 와이파이도 역을 떠나는 순간 끊어진다. 급한 업무로 아웃룩에 접속할 때마다 혹은 전화나 문자를 쓸 때마다 뚝뚝 끊기는 그 때, 아 이런 때가 옛날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득한 기분이 들어 되짚어보면 시티폰을 쓰던 그 때 기억이 순간적으로 떠오른다. 시티폰, 요즘 친구들은 이게 뭔지 알까 싶다. 

 

태니 (TaeNy) 

혼자 좋아라하는 태연 씨와 티파니 씨의 조합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안다규). 얼마전 케이스컨퍼런스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할 기회가 있었다. 클라이언트의 가명을 뭘로 쓰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당사자 클라이언트의 이름 "하니 ("하"와 "니" 사이에 강한 R 발음이 들어가는) 에서 착안하여 "태니" 로 작명하여 발표했다. 다행히 준비하고 발표하면서 혼자 몹시 신나했다는. 이 마음 니덜은 모르지. 그래서 더 신났다는.

 

지하철

이 도시에선 주말마다 지하철 부분 구간 서비스를 중단한다. 신호업데이트, 레귤러업데이트, 안전점검, 청소 등등 이유도 다양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구간들은 몽창 유동인구가 많은, 한국식으로 하면 홍대-신도림 혹은 신도림-강남역 구간이다. 당연히 꽃개가 주말출근마다 이용하는 구간. 젠장. 셔틀버스를 운행하기는 하는데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다. 시민들이 항의하거나 데모하는 꼴을 한 번도 못봤다. 이것봐라. 이렇게 참을성이 높다니. 언젠가 한국과 비슷한 시민의식을 지닌 나라에서 이민온 동료에게 "지하철을 이런 식으로 서비스했다간 한국 같았으면 벌써 난리났어" 라고 했더니 자기네 나라에선 폭동이 일어났을 거란다. 시민의식으로 포장하고는 있지만 착해도 너무 착하다. 호갱이 따로 없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주말마다 지하철을 이용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거반 서민이다. 출근하거나 간만에 아이들과 놀러나가거나.

 

트레이닝

한국 돈으로 물경 오십만 원에 육박하는 8주짜리 트레이닝에 참석하고 있다.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긴 해도 너무 비싸다. 게다가 내용을 들어보니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를 사회복지영역에 도입하는 내용이다. 하우징 (주택), 멘탈헬스 (정신건강), 인테이크, 크라이시스 인터벤션, 케이스웍 등 업무분장이 분명했고 각 업무에 따라 잡 포지션이 분명했던 것을 점차 통합하려는 냄새 (?) 가 역력하다. 업무의 내용, 서비스 내용은 여전히 분명히 다르지만 그것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역량을 통합해야 한다는 거. 말이 좋아 역량의 통합이지 앞으로 하우징워커가 정신건강 분야도, 케이스웍 분야도 다 해내야 한다는 것을 세련된 말로 포장한 것에 다르지 않다. 긴축 (austerity). 고정비용을 줄이겠다는 말.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는 않지. 젠장. 

 

아저씨의 국제화 

모 나라에서 온 세 명의 클라이언트. 세 명 모두 같은 나라에서 오긴 했어도 지역이나 종교, 배경 등은 확연히 다른데 공통점은 마치 한국에서 온 "아저씨" 들처럼 행동하다는 것. 개저씨라는 신종 용어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이렇게도 글로벌하게 들어맞는 사람을 전혀 다른 대륙에서 온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역시 세계는 하나. 위아더월드. 

 

태연 씨의 페르소나 투어 

태연 씨는 최근 동남아 콘서트 "페르소나" 투어를 마쳤다. 북미대륙엔 왜 안오시는 겁니까. 

 

트윈스 

오락가락하다가 중위권으로 내려앉은 트윈스. 올해는 정말 신경안쓰려고 바락바락 애썼는데 그래서 네이버야구뉴스도 안들어가려고 애썼는데 잘 안된다. 힘들다. 구여친 구남친의 소셜미디어를 뒤적거리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런 걸까. 공감능력의 절대강자 짝꿍께서도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꽃개, 그냥 걔네들 내버려둬요" 라고 말씀하셨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버려둬야지 어쩌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걸요. 흑흑. 

 

욕쟁이 수퍼

슬로베니아에서 이민온 수퍼 (빌딩 메니저, superintendent 의 줄임말. 여기선 다 이렇게 부른다) 언니는 매우 친절한 사람이다, 꽃개와 꽃개 짝꿍에게는 그렇다. 월요일 아침마다 퇴근하면서 "아임홈" 하며 인사를 하면서 장난을 치는데 오늘따라 대답이 없고 전화기를 붙잡은 채 쌍욕을 시전한다. 소포를 받을 일이 있어 오피스 밖에서 기다리는데 욕이 장난 아니다. 아으, 다음에 올까 싶은데 전화를 끊고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너 패키지 기다리고 있지, 뭘 시켰길래 이렇게 커. 전기실에 넣어놨어. 자, 가져가. 들 수 있겠어?" "응 괜찮아. 화장실 휴지하고 책 두 권이야" "근데 저 썅년 (fucking bitch)이 저 개너구리들 (fucking racoons) 을 처치를 안한다네. 돈 든다고" "뭔 일 있었어?" "개너구리들 (fucking racoons) 이 밤마다 와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잔치를 하는데 (enjoying catering service) 지들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알아서 처리를 해야할 거 아니야. 우리 아파트로 옮아오면 어쩌려구" 들어보니 옆 아파트 건물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곧 우리 아파트로 일이 번질까봐 두려워 미리 예방 (prevention) 하고 있는 중이다. 잘한다. 칭찬해! 그런데 저렇게 찰지게 욕을 하다니. 천하에 친절한 수퍼께서 화가 나면 저렇게 욕을 잘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어도 막상 찰지게 (그것도 몇번씩) 듣고나니 머쓱. 하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 수퍼 편을 들어줘야 해서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what kind of person! shoot!)" 거들어줬다. 씩 웃어주는 나의 수퍼를 뒤로 하고 승강기에 올랐다. 아마존에 주문할 때마다 안전하게 나의 소포를 챙겨주시는 친절한 욕쟁이 수퍼 때문에 이사가고 싶다가도 계속 살아야지 그런 생각이 든다.   

 

 

 

 

 

 

2017/06/26 23:29 2017/06/26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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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개끓이며

분류없음 2017/05/31 02:06

 

김성근 감독 사임 

예상했던 일이긴한데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말았다. 반면교사. 회사가 나를 짜르려고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상극의 사람이 상사로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일단 곤조는 보여주고 떠난 김감독. 왕입니다요. 박근혜의 몰락과 함께 근대의 종말을 보여주신 김감독님. 아직은 아냐. 그 지긋지긋한 반혁명의 시기가 아직은 남아있거든. 

 

 

한평생 총각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그들 입장에선 대단한 일이다-끔찍하지 않나-평생 혼자 살아야 한다니. 여자는 혼자 살아도 큰 일이 별로 없지만 남자는 혼자 사는 순간 여럿의 손이 많이 간다. 젠더-섹스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구조적 차원의 문제다.

 

 

게이의여혐 

남성동성애자 집단의 여혐은 그들이 원래 여성을 싫어하기 때문인 탓도 있지만 그들의 놀이문화를 표현할 언어가 그것밖에 없어서 - 여성혐오적인 언어밖에 없어서 - 그런 탓도 있다. 시스젠더 남성 입장에선 여성을 타자화하지 않고서는 그들을 온전히 드러낼 방도 - 완벽하게 타자를 대상화할 방도- 가 없다. 없었다. 그리고 그 시스젠더 남성 문화를 오롯이 지닌 그들이 여성혐오적 언어유희(?) 를 통해 당사자를 드러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그들의 여성혐오적 언어유희 (?) 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여성혐오를 하는 것과 그들이 여성혐오적 언어를 내면화한하여 드러내는 것은 다르게 접근했으면 싶다. 우리 여성도 때때론 여성혐오적으로 살지 않느냔 말이다.  

 

 

"한남"의여혐

이건 뭐. 꼭 말해야 하나 싶지만... 그냥 찌개가 끓을 때까지 시간을 때운다 셈치고 말하자면 "한남" 들이 떠드는 반대로만 하면 전략은 성공이다. 곧 어느날 안티테제로는 더이상 버틸 수 없는 그런 날이 올 때까지. 따라서 메갈리아적 접근은 여전히 유효하다. 메갈군단과 한남은 어쩌면 이북의 정권과 돼지발정자유당처럼 적대적 공생관계일는지도.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남은 하나의 운명마저 다하는 애절한 관계. 따라서 "한남"은 메갈리아를 욕하지 말고 본견들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같이 죽을 것인가, 혼자라도 진화해서 살아남을 것인가. 

 

  

2017/05/31 02:06 2017/05/31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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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감독

분류없음 2017/04/06 02:26

김성근 감독. 생각할 때마다 좀 짠하다. 아니, 많이 짠하다. 사실 "야구 감독"으로서 김성근 감독만한 사람이 없긴 없다. 세밀하고 치밀한 그의 계산야구. 패넌트레이스 대장정의 한 게임에 불과한 그 날의 게임에서조차 박빙승부에서 모든 전력을 투여하는 그의 전술운용을 보면 정말이지, "최선을 다한다" 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멋있고 울컥하게 만든다. 마치 아이엠에프 (IMF) 를 가까스로 이겨내고 살아남은 가장 (家長, breadwinner) 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명 (resonating)하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수많은 혹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혹사 논란의 당사자들은 그를 여전히 존경하고 따른다 (물론 내막은 자세히 알 도리가 없다). 김성근 감독이 지닌 장점 가운데 하나인 정서적 올바름 (emotional correctness)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남들이 뭐라하든 당사자들은 깊은 감동과 동기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나를 알아준다" 는 가장 기본적인 인정욕구를 김감독을 통해 충족했다면 그 개인에게 그보다 더한 자기만족감 (self-actualization) 은 없으리라.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까지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간혹 울컥 화를 내고 맥락도 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적이 없진 않았어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도 있었다. 철도청과 국책은행에서 24시간 맞교대 노동을 하실 적에는 그 하루를 쉬는 날에도 다음 날에 출근해야 하는데도 최선을 다해 곤충채집에 함께 나서주시곤 했다. 어느 겨울날엔 큰 방패연을 만들어주셨고 바람이 강하게 불던 날 그 연이 멀리멀리 날아가버리자 울먹이는 당신의 딸에게 원래 연을 저렇게 멀리 날아가야 인생이 편안하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 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기도 하다. 교대근무를 해보니 24시간 맞교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노동인지 깨닫게 됐다. 아버지는 "원래"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것 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임노동자로 살아가는 면에선 적합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건강보험이 보편적복지로 자리잡기 한참 전이던 1980년대에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 (privilege) 이었다. 어머니는 늘 노심초사하시며 아버지의 심기를 살피셨는데 결국 아버지는 철도청은 1년만에, 국책은행은 2년만에 때려치셨다.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게 이유였다. 어머니는 다시 날품팔이 장사에 나가셨다. 먹고살아야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아버지는 월급을 받는 직장을 다시 얻지 못했고 아버지는 "이상한 사람" 으로 변해갔다. 마침 묵혀둔 땅이 팔려 집에 돈이 넘쳤어도 역시 아버지는 나에겐 이상한 사람이었다. 어릴 적 기억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주변 사람들 모두 아버지를 "좋은 사람"으로 말한다는 것이었고 평판이 대단히 좋았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까지, 부모님 집에서 나와 따로 살기 전까지 나에겐 이것이 견딜 수 없는 지독한 모순이었다. 아버지의 평판을 추켜세우는 그들에게 아버지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 이었을는지는 몰라도 나에겐 정서적으로 결코 그렇지 아니한 "이상한" 사람이었다.

 

 

다시 김성근 감독 이야기. 이글스 구단은 작년 김감독의 계약 기간을 지켜주기로 결정했다. 다만 선수 출신인 박종훈 단장을 영입해 팜시스템을 맡겼다. 뭔가 이상했지만 이글스 구단이 이제서야 정신을 차렸구나 싶어 반가웠다. 한편, 김감독이 많이 고생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감독 스타일에, 만기친람 (萬機親覽, micro-management) 하는 그의 성정상 잡음이 많이 일겠구나 싶었다. 역시 불필요한 잡음이 일고 있다. 이글스 구단의 감독으로 취임한 뒤로 자신의 뜻대로 전권을 행사해온 김감독 처지에선 당혹스럽다 못해 자존심이 극도로 상하는 일이다. 2군에서 선수를 올려 직접 보겠다는데 왜 안된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1970년대, 80년대엔 아니, 김감독이 야구를 시작한 이래 그는 늘 그렇게 야구를 해왔다. 그런데 사정이 많이 바뀌었다. 김감독이 바뀐 사정에 적응할지 아니면 고집을 부려 "이상한 사람" 모드를 지속할지 지켜봐야겠다. 그날그날 장사해 먹고사는 보부상과 십년지대계로 멀리 보고 장사하는 대상인의 접전같다. 누가 이길지 자본력만 놓고 보다면 뻔한 게임이지만 그 와중에 어떤 변화를 보일지 과연 김감독은 변할 수 있을지 자못 기대된다. 만약 김감독이 이 국면에서 대전환을 보여준다면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김감독의 광팬-추종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모르겠다. 박근혜가 자기 죄를 시인하면 김감독도 바뀔지도 모를 일.

 

 

다시 아버지 이야기. 아버지는 연세를 잡수시면서 더욱 이상한 사람으로 되어가셨다. 그 정도로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느날부터인지 조갑제 씨가 집필한 책을 사시고 구독하던 신문도 한국일보에서 조선일보로 바꾸셨다. 한국일보가 빨갱이 신문이라는 이유였다. 딸이 셋이나 있는 양반이 갑자기 남아선호사상의 신봉자로 돌변하셨다. 어느 날엔 당신 자식들이 밥을 먹으며 영화 "화려한 휴가"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갑자기 끼어들어 "광주 것들을 모두 잡아들여 몰살시켜야 한다"는 끔찍한 말을 하시어 당신 자식들을 질색하게 하셨다. ... 간혹 친박부대의 박근혜엄호 집회 기사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저 자리에 계신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아버지와 연락하지 않고 지낸 지 어언 십년 차에 접어든다. 이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는 걸까 아예 아무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아버지는 살아남기 위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보수화 (conservative swing)" 라는 당신의 진로를 잡으셨고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변화" 다. 연락 없이 지낸 그간의 십 년의 세월동안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 되셨을까. 손주손녀도 보셨으니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계실까, 아니면 당신이 마감하실 말년까지 당신의 옳음을 입증하려 애쓰시는 분이실까.

2017/04/06 02:26 2017/04/06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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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장어외

분류없음 2017/04/01 01:40

수컷 장어

 

한 달에 두어 번, 많게는 서너 번 한국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 최근 직접 나가서 장을 볼 시간이 부족해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이틀 뒤 받아보는 패턴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자잘한 것은 역시 직접 둘러보고 구입하려 애쓴다. 출근길에 잠깐 들려서 한국에서 뭐 새로 온 게 있나, 약간의 흥분... 그러다가 발견한 장어구이. 아싸. 그런데 집에 와서 자세히 보니 "사내 남 (男)" 글자가 포장지에 뙇! 원래 장어를 암수 구별해서 파나, 수컷장어가 더 맛이 있나, 요즘 한국에선 수컷장어가 유행인가, 왜 수컷을 선호하지, 원래 동물은 암컷이 더 월등한 거 아닌가... 별의별 추측성 대화를 한참 나누다가 깨달았다. 아, 남자에게 좋은 장어라는 의미구나. 이렇게 오묘한 뜻이. 아마도 그게 맞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어를 먹을 적에 암수 구별하면서 먹었던 기억은 전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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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방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이 치과에 가는 일. 며칠 전 어금니 크라운 하나가 쏙 빠져버렸다. 대학교 일학년 때 맞춘 것이니 물경 이십 년도 넘었다. 그럴 때가 됐구나. 약속도 잡지 않고 emergency 라는 핑계로 불쑥 치과에 갔다. 당연히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의 심정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소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안쪽에서 드릴로 가는 소리 같은 게 들리니 심장이 벌렁벌렁 아아아아아 이미 맨붕 시작. 다행히 핑크색 어린이 의자가 있다. 나를 위해 준비했구나. 뭔가 의지할 데가 있으면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나만의 대기 의자. 기다리는 동안 다행히 어린이 친구들이 오지 않아 맘편히 의자를 독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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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결과 마우스 가드 (night guard) 를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밤에 자는 동안 이를 가는 습관은 없지만 평소에 뭔가를 생각할 때 혹은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이를 앙다무는 습관 (clenching) 이 있다. 파트너도 종종 지적해주신다. 그런데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야구선수나 복싱선수보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 두번 째 방문에서 틀 (impressions) 을 땄다. 다행히 보험처리가 되는 치료라서 큰 걱정은 없는데 아무래도 대낮에 이걸 끼고 있으면 외관이 참 흉악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염려아닌 염려. 이제 치과 방문은 두 번 남았다. 연식이 늘어가니 뭔가 보조해야 할 일들도 늘어간다.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생각처럼 그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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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1 01:40 2017/04/0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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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대책

분류없음 2017/03/24 00:46

안선희 기자의 말마따나 근혜찡이 그간 대통령역할만 제대로 했더라도 한국 사회 최대 이슈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두말하면 잔소리. 한국사회는 이미 심각하다. 사람들은 늙어가는데 새로 나와야 할 아이들이 나오지 않는다. 어딘가에 묵혀둔 거라서 꺼내쓸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서 더더욱 심각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 동물계에서 말하는 암수교접 비율이나 횟수가 현저하게 떨어진 것은 아닐진대 새로운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유일한 인구집단, 가임여성들이 출산을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간단히 들여다보면 저출산-고령화 원인을 가임여성들에게서 찾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어 보인다.

 

사실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싶으면, 낳겠다고 결심하면 임신의 방법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여성 입장에서 그렇다. 그리고 출산-육아라는 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보장받는 일이고 해볼만한 일인 데다가 인생의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면 그 일을 마다할 가임여성보다 재고할 여성이 더 많을 것이라는 가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간단한 이치다. 출산능력을 근본적으로 결여한 남성 입장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를 낳고 기르려 계획을 하는 순간, 아니 상상만이라도 하려면 누군가를 - 상대의 성을 - 대상화해야만 한다. 현대 과학기술 수준에서는 아직 이 수준을 넘어서는 플랫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아직은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그들에게 출산-육아에 앞서 "짝짓기-결혼" 라는 절체절명의 고난도 장벽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 또한 당연해 보인다.

 

진단은 저출산-고령화다. 사실 고령화는 어쩔 수 없다. 시간이 가면 사람 또한 연식이 쌓이고 늙어가는데 기계도 늙어가는 마당에 사람에게 늙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일찍 저세상으로 가시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고령화를 저출산에 갖다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진단은 저출산이다. 그러면 처방 또한 출산가능한 인구집단에 맞춰 내는 게 맞다. 가임여성들이 혹은 앞으로 가임여성인구반열에 들어설 여성들이, 그리고 그 여성들을 키워내는 어른들 입장에서 출산-육아가 정말로 사회적으로 인정-보장받는 일인 데다가 인생의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주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여성들로 하여금 출산을 스스로 결정하되 결정하여 그 노동에 기꺼이 참여해도 그 개인 여성의 인격과 정체성과 커리어에 전혀 손상이 없는 오히려 득이 되는 그런 세상이 되면 애 낳지 말라고 뜯어 말려도 알아서 낳는다. 이 간단한 이치를 모를 리는 없는데 왜 그럴까. 마치 작금의 대책은 좋아하는 여자에게 구애하면서 그 여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엔 1도 관심없고 제풀에 신이 나 마구마구 선물공세를 쏟아붓다가 지쳐 떨어져 "외 나 않조아해. 김치녀-ㄴ들" 울부짓는 어떤 남자를 보는 것 같다. 뜬금없는 짝짓기 정책이나 결혼에 집착하는 정책은 되려 독이 된다. 정부가 10년동안 100조 원이나 쏟아부었는데도 가시적인 성과가 안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0조 원이나 쳐넣었는데 외 애 않 나아"

 

 

* 아동수당 논의가 있는 것 같은데 빈 지점이 있다. 이 수당은 반드시 출산을 수행한 어머니의 이름 앞으로 지급해야 하며 보편적인 복지 (universal care) 로 가야 한다. 가령 이건희 손녀가 아들을 낳아도 월 십만 원,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들을 낳아도 월 십만 원 이런 거 말이다. 기본적으로 비과세 소득이어야 한다. 다만 케어기버의 소득수준에 비례해 과세가능한 소득인지 아닌지는 연말정산에서 다시 따져물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과세 등급 (tax bracket) 을 미리 지정해야 하고 따라서 세수 및 과세 정책과 맞물려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년이 되기 전까지, 가령 만 16세까지 지급하는 것이 옳다.

 

2017/03/24 00:46 2017/03/24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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