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식의증거

분류없음 2018/12/14 00:21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건강검진 과정에서 검안 (시력검사, 녹내장, 백내장 검사 등 눈에 관한 모든 검사 포괄) 받을 것을 권유받고 한 달 뒤로 약속을 잡은 다음 다시 클리닉에 들렀다. 이것저것 검사한 뒤에 리딩글라스를 쓰라는 처방전을 받았다. 

 

약 일 년 전부터 책을 읽는 것에 부담을 느낄 정도로 눈이 침침해졌음을 알게 됐고 가까스로 참고 견디는 중이었다.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쓸 때는 모니터가 부담스러워 크롬인코그니토 모드로 해놓는 때가 많다. 남들은 보안 때문에 그러는 거구나 하고 좋게 (?) 평가해주지만 사실은 눈이 부담스럽다고... 

 

다행히 다른 증상은 "아직" 없다. 저혈압도 많이 좋아진 편이고 체중이 늘지 않아 약간 우려스럽기는 해도 "큰" 일은 없다. 

 

물건도 오래 쓰면 닳고 본래의 성능과 기능을 잃는다. 당연하다. 연장을 사십 년 이상 썼으니 마모될 때도 한참 되긴 됐다. 원래부터 안경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없거나 희미할 감회들, 혹은 결이 전혀 다른 느낌을 이제 곧 안경을 써야 할 - 그것도 노안 때문에 - 시점에 깨닫게 되는 것 같아서 약간은 씁쓸하다. 그러나 뭔가를 느끼거나 깨닫게 되려면 "절대시간" 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되었다면 약간의 성과... 라고 할까?

 

* 캐나다의 헬스케어 시스템이 미국에 비해 나은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우선 검안 (eye exam) 은 기본 의료 보험에 해당하지 않는다. 꽃개는 다행히 회사 보험을 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 정규직 베너핏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 - 가외의 돈을 지불해야 하고 이런 점은 치과 치료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저소득계층의 건강이 좋을 턱이 없다. 국민통합건강보험 시스템을 마련한 김대중 대통령과 그 시대의 사람들은 시대를 앞서간 현자들이었다. 

2018/12/14 00:21 2018/12/1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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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축복

분류없음 2018/09/16 02:59

꽃개의 파트너는 손빨래를 즐겨하고 가공하지 않은 식재료 (unprocessed food) 와 채식을 선호한다. 항상 손빨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가공음식을 아예 안 먹거나 육식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게 살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덕분에 꽃개의 삶도 변했거나 변하거나 파트너의 삶에 맞추는 편이다. 그게 편하고 나름대로 좋기 때문이다. 꽃개도 원래 육식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가공식품이야 편리해서 먹는 거지 즐기는 편도 아니었으므로 크게 이견이 없었다. 손빨래는 조금 버겁지만 손수건이나 내의 따위는 되도록 손빨래를 하려고 애를 쓴다. 사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파트너의 의견을 구하고 따르는 게 거의 대부분 (90% 이상) 옳다. 손해보는 일이 없다. 결혼 했거나 안했거나 현명한 파트너와 함께 사는 사람들 대부분 아마도 꽃개처럼 살지 않을까 싶다. 

 

캐나다에는 베리 (berries) 류 과일이 흔하다. 블루베리, 스트로베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로컬 베리를 구할 수 있고 날이 선선해지면 남미나 미국에서 들여온 것들이 흔해 또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베리 수확에 참여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감사를). 베리를 사랑하는 캐나다인들. 오죽하면 캐나다 셀폰 브랜드가 블랙베리일까. 여름이면 파트너는 온갖 베리류로 잼을 만든다. 로컬 베리와 역시 캐나다에서 나는 메이플설탕을 넣어 한참을 졸인다. 식으면 작은 유리병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아침식사나 간식으로 빵에 발라 먹는다. 이탈리아나 동유럽 사람들이 즐기는 브레드스틱에 찍어 먹어도 좋다. 간혹 플레인요거트에 넣어 향미를 더하기도 한다. 꽃개는 블루베리를 좋아하는 편이고 파트너는 딱히 고집스럽게 선호하는 것이 없다. 두루두루 무난하게 즐긴다. 아마도 꽃개는 고집과 편벽이 있는 성격이고 파트너는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은 성격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식당엘 가도 꽃개는 먹던 것만 주문하는 편이라면 파트너는 전혀 새로운 음식을 주문하는 일을 망설임 없이 즐기는 편이다. 

 

파트너는 콩국수의 메인재료인 콩국 (콩물) 도 직접 만든다. 대두 (soy beans) 를 직접 사다가 물에 불린 뒤 삶은 뒤 껍집을 까고 블렌더에 갈아 내린다. 국물은 마시거나 병에 넣어 보관하고 콩비지는 가끔 찌개에 넣어 끓이거나 수저로 떠먹는다. 일전에는 묵은총각김치를 송송 썰어 토마토를 약간 넣은 비지 찌개를 끓이셨다. 너무 맛이 있어서 두고두고 보관해서 먹었더니 웃으시면서 또 해주신다고 하셨다. 옛날에는 몰랐는데 찌개에 토마토를 넣으면 풍미가 거듭 살아난다. 맛있다. 

 

몇 주 전, 역시 콩국을 만들기 위해 사온 대두를 물에 불린 뒤 그 가운데 서너 알을 화분에 심었다. 국민학교 시절에 했던 탐구생활 관찰일지 생각도 나고 아이 설마 저게 싹을 틔우겠어, 그냥 심심풀이로 한 일이었는데 네 알 가운데 두 알이 싹을 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썩어 버렸고 한 녀석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처음엔 쌍떡잎이 굳건히 솟아나왔지만 흔치 않게 진한 녹색이 거북해서 영 미덥지 않았다. 이거 뭐야, 혹시 유전자조작식품인 거야 왜 이렇게 작위적인 녹색인 거야... 무럭무럭 자라난 콩이 잎을 냈다. 내 살이 닿으면 뜨거울 것 같아 직접 만져보진 않았지만 솜털이 보송보송해서 참으로 부드러워 보였다. 꽃개 대학시절 포항 인근에서 유학온 후배 녀석을 통해 처음으로 맛본 "콩잎" 이란 음식이 생각나서 파트너에게 "제가 콩잎 해드릴께요" 했더니 콩잎은 저런 이파리로 하는 게 아니라고, 거의 낙엽처럼 누렇게 뜬 것으로 - 그러니까 그들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다다른 것으로 - 하는 거라고 알려주셨다. 캐나다에도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한국인 마트에 가면 콩잎 반찬을 종종 구할 수 있다. 음식으로서 최초의 콩잎은 내겐 최악의 음식이었지만 나중에 캐나다에 와서 다시 먹어보니 제법 먹을만한 반찬이기도 했다. 

 

오늘 드디어 하얗고 작은 꽃잎을 냈다. 너무 작고 아담한 그 하얀 봉우리들. 마치 현세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 작은 아이들이 화분에서 빛을 내니 송구스럽기 그지 없다. 너희들 어쩌다가 내게로 왔니, 대견하고 고맙고 그리고 또 황송하다. dslr 을 꺼내 초근접 접사 촬영을 해서라도 찍어볼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그저 내 눈 한 가운데에, 마음 한 켠에 담아두기로 했다. 이렇게 소중한 축복의 순간을 허락해 준 (유전자조작) 대두 씨앗에 감사를. 햇볕과 물, 잊지않고 끊임없는 생활 속 작은 대화를 이어준 파트너에게 감사를. 

 

2018/09/16 02:59 2018/09/16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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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토로

분류없음 2018/09/06 00:57

한국에 있을 적에 개 ㅈ 같은 회사 생활을 미리 경험했으면 이 나라에서 일하고 살면서 이렇게 스트레스 받진 않았을 것 같은데, 면역력이 부족해서 그러는 거야... 하면서 쓸데없는 탓을 하다가 가만히 되돌려 생각해보니 쌍놈의 ㅈ 같은 회사를 경험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는... 기억을 복구했다. 

 

물경 십여 군데 넘는 말도 안되는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기억들... ... 월급을 계산하는 페이롤 담당자를 치받았던 일도, 사장과 맞짱떴던 일도, 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를 제소했던 일도, 야간노동을 하면서 열이 뻗쳐 금연 사무실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웠던 일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그냥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태도 (자세) 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일들을 하면서 그렇게 말도 안되는 고용주들을 대하면서도 "이것이 나의 일", 그러니까 이 일로 밥을 먹고 살아간다, 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아가 이 일이 아니면 나는 밥벌어 먹을 수 없다, 는 절실함과 한계에 몰린 상황 같은 것도 없었던 것 같다. 아니 돈이 한 푼도 없어 절대적인 한계상황인 것은 분명한데 그걸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없으면 굶지 뭐. 씨발, 때려치지 뭐. 그냥 그렇게 살지 않았나 싶다. "생활인" 의 자세가 아니었던 것 같다. 너무 어렸지... 싶다. 

 

지금 하는 일은 --- 

나에게 이 일은 소중하다. 자부심도 크다. 그리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한편, 없는 집에 제사 돌아오듯 되풀이되는 집세내는 날 (매달 첫 날) 에 맞춰 발란스를 유지해야 하고 또 역시 없는 집에 제사처럼 반복되는 월경날짜에 맞춰 생리대도 두둑하게 구비해놓아야 하고 (아 씨발 이거 언제까지 해야 되는 거야) ... ... 생활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ㅆㅂㅅ동료들이 열받게 해도 참는 방법을 연구하고 책을 읽고 매니저가 되도 않는 말을 해도 일단은 실행해놓고 대들거나 입에 지퍼를 채운다. 다들 이렇게 살지 싶다.

 

 

2018/09/06 00:57 2018/09/0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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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자

분류없음 2018/09/06 00:43

미류님의 [] 에 관련된 글.

 

미류 님께서 본래 포스팅에서 개진한 아이디어는 굉장히 중요하고 소중한 생각이다. 프라이버시 보호에서 담아내지 못한 한계 (실상에서 오는 젠더적 차이) 를 잘 짚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견의 생각을 펼치자면, 

보편적인 "인권" 을 보자. --- 출신과 성 (타고난 성과 나중에 자기결정에 근거해 적극적으로 채택하여 표현하는 성에 무관하게), 나이, 쓰는 언어에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권리를 갖는다. 유엔인권선언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제 1조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 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 났으므로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엠네스티 한국 지부 웹사이트에서 가져옴 https://amnesty.or.kr/resource/세계인권선언/

 

Article 1.
 
All human beings are born free and equal in dignity and rights. They are endowed with reason and conscience and should act towards one another in a spirit of brotherhood.

유엔 웹사이트에서 가져옴 http://www.un.org/en/universal-declaration-human-rights/

 

* "형제애 (brotherhood)" 가 거슬리는 건 기분 탓이겠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꽃개가 매일 만나는 망명자 (난민) 출신의 한 개인과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중산층 출신 백인남성인 한 개인의 인권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대접의 무게를 나는 결코 "같다" 고 말할 수 없다. 아니 말하기 힘들다. (대놓고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그렇다) 당장 그 백인 남성 개인과 꽃개의 인권-사회적 대접을 놓고 봐도 그렇다. 이것은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삶의 문제다. 불평등하다. 그렇다고 해서 인권선언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거나 인권선언대로 왜 정부는 일하지 않느냐, 고 타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위와 PC (정치적 올바름) 을 주장하는 것과 실제 부조리-불평등을 고쳐나가는 일은 각기 그 그릇의 성질이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와 동의문화 (consents culture) 가 익숙하지 않거나 아예 본 적도 들어본 바도 없는 무리들은 "자유" 를 부르짖는다. 불법카메라를 살 사유, 설치할 자유, 타인의 신체를 (당사자의 허락없이) 점유해도 괜찮다고 믿는 자유-그리고 그것을 직접 실행할 자유, 혹은 그것으로 금전적 이익을 얻을 자유... 이미 이 정도 되면 형사상의 경계를 넘어섰다. 매우 전형적인 변명이 "몰랐다" 이다. 혹은 "술에 취해서 기억나지 않는다" 이다. 심지어 "너무 화가 치밀어" 라고도 한다. 몰랐다고, 알지 못한다고, 성질이 뻗쳤다고 해서 처벌을 유예하거나 감경할 이유는 없다. 모르는 것도 죄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 민형사상의 바운더리를 훌쩍 넘어선 일을 공동체에서 관리하고 토론하고 교훈으로 삼아 일이 진전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일부 단체에서 진행하는 반성폭력 내규 같은 것 말이다.)

 

여성이나 아이, 노인들, 성적 소수자들, 이주민들의 프라이버시는 상대적으로 더더욱 쉽게 무시된다. 그들 존엄의 무게가 그들의 카운터파트너들인 남성, 어른, 장년층, 시스젠더, 원주민들에 비해 다르지 않음에도 실제 세계가 돌아가는 형국은 완벽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들 (2등 시민) 의 존엄과 권리, 그리고 한 인간 개체의 존엄과 권리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프라이버시" 는 1등 시민과 그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의해 아주 쉽고 간단히 짓밟힌다. 무엇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프라이버시 외에 안전할 권리, 가령 안전한 곳에서 잠 잘 권리, 안전한 음식을 먹을 권리, 안전한 옷을 입을 권리 등을 주장하는 것으로 프라이버시를 강화할 수 있다면 꽃개는 단연 두 손 네 손 들고 환영하며 그 길에 동참할 의사가 있다. 문제적인 집단들이 프라이버시가 뭔지 알아들기만 해도 세상이 확 달라질 것 같기는 한데... (꽃개도 이걸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다. 너무 많이 돌아왔다. 아직도 이해 중) 뭔가 길이 있을 것이다. 생각을 더 해보자. 

 

2018/09/06 00:43 2018/09/0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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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의길2

분류없음 2018/09/02 04:18

꽃개님의 [탈식민의길 1] 에 관련된 글

 

새로 시작한 업무 가운데 두 시간 동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 있다. 업무사항에 그렇게 하도록 지시되어 있는 것은 아닌데 현장에서 업무를 그런 식으로 고정해 버렸다. 나는 풀타임도 아니고 그 회사에 처음으로 새롭게 고용된만큼 사단을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적응하는 게 낫다. 그냥 하라는대로 하는 게 좋은 거다. 어쨌든 클라이언트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그들을 "감시 (?)" 하는 일이다. 4명의 스탭이 돌아가면서 커버를 하니 꽃개 또한 꼼짝없이 두 시간을 그렇게 있어야 한다. 

 

본의 아니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지난 주에 읽은 프란츠 파농 (Frantz Fanon) 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Les Damnés de la Terre, The Wretched of the Earth, 1961) 이야기를 쓸까 한다. 원래 이 책 이야기를 쓰려고 포스팅을 한 건데 사연이 길어져 1 과 2 로 나누어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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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Jean-Paul Sartre) 초판 서문은 유럽인을 대상으로 썼다. 그러니까 식민자들을 대상으로 썼다. 이 책은 피식민자들을 독자로 상정하는 게 일견 맞아보이는데 제1의 독자와 다르지 않았던 사르트르조차 유럽인을 대상으로 서문을 썼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헷갈린다. 식민자의 시선, 피식민자의 시선. 어느 것이 나의 스탠스인지 헷갈린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2000년 초반이었던 것 같다. 중간에 출판사에서 일할 적에 다시 한번 읽었고 그 뒤로 잊고 지내다가 캐나다에 온 뒤 탈식민주의 경향에 심취해 한국어 책을 주문해놓았다가 손을 대지 않은 채 몇 년을 보내다가 이번에 다시 읽게 된 것. 

 

주지하다시피 "1장 폭력" 편이 가장 술술 읽힌다. 2장, 3장을 읽을 적엔 이질감, 이물감 따위를 느낀다. 아마도 낯선 문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 싶다. 4장, 5장은 흥미로운데 특히 5장은 꽃개의 일과 연관이 있어 특히 더 재미있다. 1장부터 4장까지 일어났거나 있을 법한 일을 경험한 한 개인을 상정했을 때 그 개인이 5장에서 서술하는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과장하자면 일제식민기와 한국전쟁을 경험한 평범한 한 개인이 정신적으로 매우 건강하다면 - 그 둘을 경험하지 못한 식민자 유럽인에 비해 더 건강하다면- 그게 더 유별나고 특별한 일일 것 같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눈에 들어온 것은 "1장 폭력에 관하여" 부분이다. 특히 작금의 젠더해방 운동이 활발히 타오르고 있는 한국 상황을 염두에 두니 더더욱 술술 읽힌다. 파농이 책에서 언급한 "식민주의 이주민"을 "남성" 으로 "원주민"을 "여성" 으로 도치하여 읽어도 전혀 문제 없다. 맥락이 다 통한다. 때론 "식민주의"를 "가부장제"로 혹은 "불평등한 관계" 내지 "상대적 힘의 차이가 현격한 두 집단이 공존하는 상태" 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다. 이렇게 말하면 여-남 갈등을 부추기는거냐며 투덜거리는 집단 (혹은 개인, 주로 남초집단이거나 남성 개인일 수 있겠다) 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 투덜거림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식민주의 (가부장제) 는 생각하는 기계도 아니고 추론 기능을 지닌 신체로 아닌 자연 상태의 폭력이므로 더 큰 폭력에 의해서만 물리칠 수 있다..." p. 73

* 괄호는 꽃개가 넣음

당장엔 갈등으로 보일 수 있는 대립이 궁극적으로는 힘 권력의 부정합을 파괴하고 평편한 질서를 불러오는 해방을 위한 갈등, 폭력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메갈페미들이 너무 폭력적인 거 아닌가 싶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가 다시 이 책을 읽고 그런 무쓸모한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 

 

"우리는 폭력이 성숙되어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삐들이 폭력을 통제하며 다른 출구로 끌고가는 것을 보았다. 식민지 체제 (가부장 체제) 는 부족이나 지역 간의 분쟁과 같은 방식으로 폭력에 여러 가지 변형을 가하지만 (호주제 폐지나 남녀고용평등법 같은 변형을 가하지만), 그 폭력은 결국 원래의 갈 길을 찾아낸다. 그리하여 원주민 (여성) 은 자신의 적을 알아내고, 자신의 불운을 인식하며, 증오와 분노에서 비롯된 모든 힘을 이 새로운 배출구로 떠뜨린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폭력의 분위기를 실제의 폭력적 행동으로 전화시킬 수 있을까? 그 도화선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폭력적인 사태 전개가 이주민 (남성) 의 행복한 삶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주민 (여성) 을 '이해' 하는 이주민 (남성) 은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기미를 알아차린다. '착한' 원주민 (여성)이 점차 드물어지고, 억압자 (남성) 가 다가가면 모두 침묵한다. 안색이 어두워 보이기도 하고, 대하는 태도나 말투가 노골적으로 공격적이 되기도 한다. ("아니 씨벌, 잠재적 아군까지 적으로 돌리다니. 이젠 너희들을 도와주지 않겠어") ...... 자기 땅 (남초 커뮤니티 혹은 남성성이 강한 어떤 집단) 에서 고립되어 사는 이주민 (남성) 들이 맨 먼저 경보가 울리는 것을 듣는다. 그들은 강력한 조치를 요구한다. (청와대 청원을 하거나 여자들도 군대가라며 역차별을 들고 나온다)......" p. 83

*괄호는 꽃개가 넣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레퍼토리 아닌가. 

 

"그들은 (이주민, 식민주의자들은; 남성들은) 늘 원주민 (여성)이 알아듣는 유일한 언어는 무력의 언어라고 말을 했는데, 이제  그 (원주민이, 피식민인지; 여성들이)가 무력을 통해  발언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실 이주민 (남성)은 원주민 (여성) 이 자유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원주민 (여성) 이 택한 논거는 이주민 (남성; 혹은 기존의 가부장체제) 이 제공한 것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어 식민주의자 (남성) 가 오로지 무력만 알아듣는다고 말하는 측은 원주민 (여성) 이다." p.96 

* 괄호는 꽃개가 넣음. 

좋게 말할 때 듣지 못하거나 듣지 않았던 쪽이 어디였는지 잘 생각해보자. 인간적으로, 합리적으로 말할 때 경청하지 않다가 그들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을 때 반응하기 시작한 게 언제쯤이었는지 차분히 돌아보자. 아마도 메르스갤러리, 소라넷폐쇄 운동 즈음이 아니었난 싶은데 내 기억이 틀렸나... 이 정도 되면 서프러제트 운동 (suffragette) 가들이 한 말 "폭력과 전쟁이 남자들이 들어주는 유일한 언어 (War is the only language men listen to)" 도 틀린 말이 아니지 싶다. 오히려 그들이 먼저 알고 있었다. 여성들만 가입할 수 있도록 제한한 여성정치연맹은 영국에서 1903년에 창립됐고 그들의 구호는 "말보다 행동" 이었다. 

 

궁금한 것은 파농이 이 책을 쓴 게 1960년 경인데 파농의 머리를 지배한 식민-피식민/ 백인-흑인/ 유럽-비유럽 대립항 말고 남성-여성은 있었을까 없었을까 하는 것. 아마도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간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피식민지에서 태어난 비유럽 흑인이었던 파농은 "남성"이었다. 그 또한 또다른 식민지를 지니고 있었다. 

 

 

* 출판사에 다닐 적에 읽었던 책은 그린비에서 나온 초판이었고 이번에 다시 읽은 책은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2판 (2012년) 이었다.

 

 

 

 

 

2018/09/02 04:18 2018/09/02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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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의길 1

분류없음 2018/09/02 03:16

이주 전에 시작한 한 주말 잡. 올해 3월까지 일하던 곳에서 작년 12월까지 꽃개의 매니져였던 G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얘기가 길어질 수 있겠으나 나중에라도 정확하게 기억하기 위해 여기에 남기는 게 좋겠다, 싶다. 

 

올해 3월까지 일하던 곳 (비영리사회복지 법인 C) 은 시의 펀딩을 받아 2016년 초,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평온한 다운타운 도시 한 가운데 자리잡은 탓에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 정신질환, 중독질환을 동반하는 홈리스들이 자기들 마을에 들어오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의회와 진보적인 풀뿌리 사회운동가들, 나름대로 대화가 통하는 주민들, 그리고 이것을 주도적으로 조직한 비영리사회복지 법인 C 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매니져, G 는 헤드헌터 고용 프로세스를 통해 프로그램 매니저 일을 그해 8월에 시작한다. 매니저 G 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자기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들을 고용하는 일이었다. 비영리사회복지 법인 C 에서 십 년 넘게 일하던 사람들은 이것을 반기지 않았다.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이 있는데 뭘 또 새로운 사람을 뽑나, 그냥 일하던 사람들 - 알고지낸 사람들을 그 자리에 앉히면 되는 거지. 더구나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불만은 더 높았다. 기껏 십 년 넘게 일했는데 재주는 우리가 넘고 돈은 새로 들어온 "듣보잡" 들이 챙기겠다는 거냐! 

 

G의 생각은 다소 달랐던 것 같다. G 는 전혀 새로운 팀을 꾸리고 싶었다. 잡포스팅을 냈고 이력서를 걸렀고 그리고 본격적인 잡인터뷰를 시작했다. 꽃개는 2016년 9월 말에 잡포스팅을 보고 이력서를 냈고 10월 초에 인터뷰에 초대받았다. 그 때까지 꽃개는 G 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바로 리퍼런스 명단을 제출하라는 전화를 받았고 일주일 뒤 잡오퍼를 받았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10월 말 (아마도 2016년 10월 26일이었던 것 같다),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본사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텃세가 심했다. 꽃개처럼 새로 고용된 사람들, 그들 또한 노동조합원임에도 기존 노동조합원들의 견제와 사보타지는 극에 달했다. 다행히 꽃개를 비롯한 두어 명의 신규고용인들은 새로운 프로그램이 위치한 다운타운 내의 로케이션으로 옮겨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 2017년 1월부터 있었던 일들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견결히 버티며 자신의 일을 하던 나의 존경하는 매니저 G 는 11월 말에 전체 인트라넷 메시지를 보낸다. "또다른 비영리사회복지 법인 M 에서 픽업을 받아 12월 4일자로 회사를 그만둔다. 그동안 함께 새로운 프로그램이 온전히 정착할 수 있도록 애쓴 이들과 커뮤니티에 감사말씀 드린다." 꽃개는 그 때 당시 건강히 많이 좋지 않아 1월 경에 간단한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앞에서 설명한 내부 정치 (internal politics) 와 이보다 더 무능할 수 없는 노동조합을 목격하면서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꽃개에겐 G를 말리거나 그의 결정을 되돌리만한 힘이 없었다. 상황을 직시해야만 했다. G 가 떠나면 그 기존의 사보타지 그룹이 매니지먼트 파트를 물려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들은 나를 직접 고용한 사람들이 아니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적응해야만 했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G 가 떠난 뒤 그동안 G 가 지원하던 모든 서폿은 중단되었고 클라이언트 서비스의 질도 현격하게 떨어졌다. 클라이언트들이 가장 먼저 반응했지만 그들은 또한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눈치도 빨랐다. "꽃개, 너도 떠날 거야?" 문득문득 별안간 아무 맥락없이 질문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별 개소리를 다한다는 식으로 매우 시큰둥하게 반응했고 동시에 새로운 매니저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적응했다. 꽃개는 오히려 더 잘 적응했다. 오히려 꽃개와 함께 일하던 시프트 파트너, J 는 길을 잃은 듯 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꽃개에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지만 꽃개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우리, 우리 주제를 알자"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던 와중, 2011년부터 일하던 곳 (그 때 꽃개는 주말 포지션을 그 곳에서 이어가고 있었다) 에 주중 퍼머넌트 풀타임 포지션이 열렸다.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2월 중순 인터뷰에 초대받았고 언제 일을 시작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비영리사회복지 법인 C 에 "2주일 노티스" 를 이메일로 보냈다. "그동안 꽃개를 돌봐주신 비영리사회복지 법인 C 사람들에게 감사말씀과 함께 굳바이 인사를 드립니다. 꽃개는 2주일 뒤에 이 회사를 그만둡니다." 물론 시프트 파트너인 J 에게 미리 언질을 했고 J는 축하해주었다. 새로운 풀타임 직장을 확정한 뒤 존경하는 매니저 G 에게 편지를 썼다. 구구절절 말은 필요없었고 간단하게 3월 1일 자로 회사를 관두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인사였다. G 역시 축하해주었고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자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이 흘렀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주말을 통채로 쉬게 되자 허전했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고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어찌 써야할지 막막했다. 그리고 8월 중순 경, G 에게 업그레이드한 이력서를 첨부한 이메일을 보냈다. "꽃개는 주말 파트타임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의 디파트먼트에 혹은 당신 회사 내 다른 프로그램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일할 주말 파트타이머를 찾고 있다면 바로 꽃개를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당신에게도, 당신 회사에도, 그리고 꽃개에게도 가장 최상의 결과를 줄 것입니다". 한국말로 옮기고 나니 정말 괴이하지만 어쨌든 이메일을 보낸 뒤 십 분도 되지 않아 "너는 고용되었다 (You're hired)" 로 시작하는 답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 주에 바로 주말 잡을 시작하게 되었다. 

 

*탈식민의길2로 이어서 쓴다. 트랙백을 한다. 

 

 

2018/09/02 03:16 2018/09/02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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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하구먼

분류없음 2018/08/15 15:24

그림을 바로 퍼오고 싶었지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는 카피라이트를 존중해주어야 하겠기에. 

그림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2018/08/15 15:24 2018/08/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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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소비층

분류없음 2018/08/14 12:27

한국에서도 그렇겠지만 이곳에서도 주로 노동자계층이나 저임금계층이 복권을 많이 산다. 일이 일이다보니 [대부분] 클라이언트들의 유일한 낙이 복권을 사고 당첨을 확인하고 또다시 복권을 사고 돌고 도는 일이다. 어제까지 내 희망의 무한 증표와 같았던 소중한 한 장의 종이가 오늘은 폐지로 전락하는 순식간을 경험하는 날. 바로 복권 발표일이다. 어쩌면 무망한 희망을 품고 잭팟이 되면 이걸 할거야, 뭘 할거야. 그런 이야기를 듣고 리액션을 넣고 나도 좀 떼어줘, 장난도 쳤다가 니네 에이전시에 많이 기부할께. 아이고 고마워라. 너 정말 최고야!

 

지난 주 토요일에 발표한 649 복권에서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뉴스. 12.7 밀리언 달러의 당첨금이 그대로 밀려 이번 주 수요일 발표로 넘어왔다는 이야기. 12.7 밀리언 달러면 대체 0 이 몇 개냐. 구글에 넣어 두드려 보았다. 0 는 다섯 개이고 한국 돈으로 환산해보니 백십 억가량 되는 돈이다.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 규모. 어찌어찌하여 이번 주 수요일 발표로 넘어돈 당첨금은 도합 20 밀리언 달러가 된단다. 0 은 여섯 개. 한국돈으론 아마도 이백억 되려나. 

 

오늘 월요일은 짝꿍이 수술을 받는 일이 있어서 휴가. 내일, 화요일 출근하면 클라이언트들이 난리가 나겠구나 싶다. 죄다 수요일 발표나는 작팟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 같다. 나도 뜬금없이 심장이 듁흔듁흔. ---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이런 생각에 미쳤다가도 그 희망 그 한가닥이라도 부여잡고 살아가는 심정을 이해하고나니 소용이 있든 없든 남들이 뭐라 한들 또 그게 무슨 상관이람 그런 생각까지. 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내가 뭐라고 타인을 판단하고 정의한단 말인가. 나도 그렇고 그런 사람일 뿐인데. 

2018/08/14 12:27 2018/08/1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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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뜨와예멘

분류없음 2018/07/16 12:04

며칠 전 [남자들의일] 에서 언급한 khat (깟) 에 대한 메모를 남긴 뒤 조금씩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khat 을 언급한 한국어 기사를 읽게 됐다. 그럼 그렇지, 조선일보다. 

 

'예멘을 망친 환각제' 카트, 한국도 청정지대 아니다

[터치! 코리아] 한국의 삼겹살과 예멘의 '카트'가 만날 때

 

 

- (아마도) 국립국어원 외국어표기법에 의해 khat 을 "카트" 라고 표기하는 것 같은데 원어 발음에 가깝게 발음하면 "깟" 이 알맞겠다. 워낙 아랍어나 소말리아어, 암하릭이 숨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는 함. 

- 국민대중의 정서를 포착,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반영해 전환하는 데에는 탁월한 선구자적 솜씨를 지닌 조선일보. 이번에도 성공할는지 두고 봐야.

- 한국이 (불법 혹은 향정신성) 약물 청정국가가 아닌 것은 박봄도 알고 이찬오도 알고 김무성 사위도 다 아는데 뭔 소리? 암페타민이나 대마/ 해시시에 비하면 khat 은 마약 축에도 안 들어.

- 수니파 주류 국가인 예멘에서 술은 금지목록 (haram). 예멘 망명자들을 내치기 위한 명분으로 khat 소비를 내건다면 그토록 술을 먹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한국인들, 특히 "일부 한국남자들"은? 차라리 하루에 오십그람에서 백그람 정도 khat 를 씹어먹도록 하는 게 훨씬 나아보이기도. 

- 망명자들을 왜 자꾸 난민이라고 하는지 궁금. 

- 다 집어치고 (종교고 나발이고) 비한국인을 받아들이는 이민정책의 공격적 전환 필요. 일본 따라가다간 일본꼴 난다. 

- khat 에 관한 쪽글은 더 검색한 뒤에 

 

 

 

2018/07/16 12:04 2018/07/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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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일

분류없음 2018/07/10 23:38

* 한국의 회식 문화

- 퇴근을 해도 집에 안간다; 술먹을 꺼리를 만드느라 바쁘다; 술이 싫어도 상사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집에 가도 쉬는 게 아니다. 가사노동과 육아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주 52시간은 어떤 영향을 줄까. 

 

* 한국의 게임 문화 

- 최근 트렌드, "남편이 게임 좀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 술보다는 컴퓨터, 스맛폰 이용으로 옮겨가는 듯. 불법동영상/ 사진 유포와 소비도 한 축 담당. 

 

* 음주/ 성매매가 불법인 이슬람 국가 (예멘, 소말리아, 아프간 등등) 혹은 근본주의 기독교 국가 (에티오피아) 

- 한국 사회와 비슷한 가부장/ 남성 중심 문화. "엄마들" 이 아들을 특별히 더 챙기는 문화. 결혼한 여성의 독박 가사노동과 독박 육아를 기본값으로 여김.

- 서구사회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짧은 근무시간 (오전 8시 - 오후 2시)  

- khat 소비와 남성들의 오후 모임; 여전히 가사노동과 육아에는 참여하지 않는 남성들

: 퇴근 후 그늘진 곳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khat를 씹어댐. khat은 각성효과가 암페타민 (히로뽕) 에 가까운 이파리. 신선한 것을 쫙쫙 씹는데 보통 일인 당 하루 100-200g 소비. 열 명의 아저씨들이 모이면 2kg 은 후딱 씹어해치우는 셈. 다같이 모여 담배를 피우며 팡팡 놀던 구한말 갓 쓴 남자들 사진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음. khat에 관해선 다음에 더 자세한 정리를 하려고 생각중.   

- 남성들만 참여하는 오후의 긴 티 (long hours of tea) 문화 (인디아, 파키스탄 등) 

 

* 가까운 미래 트렌드 (부정적)

- 노동시간이 단축되어도 가족들과 함께 하는 "저녁이 있는 삶" 을 위해 가사노동과 육아에 참여하기 보다는 컴퓨터를 여한없이 쓸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가능성. 피씨방을 능가하는 성인 피씨방 (지금도 존재하는) 이 확장되거나 가정 내 새로운 갈등 (컴퓨터를 둘러싼) 이 대중적으로 부상할 가능성 

-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하는 남성들이 더더욱 늘어날 것임. 다만 문제는 이들에게 "제대로 하는 가사노동과 육아", "건강한 (부부) 관계 설정" 등의 교육이 필요한데 이 사회화 교육을 국가가 담당할 수 있을는지. 가정의 영역으로 치부하면 다시 여성들의 노동이 가중될 듯. 그 가중노동의 질과 양이 가정해체를 불사할 수준 (예. 이혼) 으로 엄청날 것임. 이혜정 여사처럼 우리 엄마들 세대처럼 "견디고" 사는 여성들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 

 

* 가까운 미래 트렌드 (긍정적)

- 남성들이 본인들 스스로 마인드를 바꾸고 적극적으로 가사노동과 육아, 가정을 돌보고 가꾸는 일에 참여할 것임. 이 속에서 남성들 스스로 지금껏 알지 못했던 본인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 

- 가사노동과 육아를 담당하는 남성들, 이 남성문화가 주류가 되면 가사노동과 육아의 사회적 가치가 당연히 재고될 것임. 가치가 올라간다는 말.

- 북구의 복지국가와 북미/ 서유럽의 가정 모델이 한국 사회에도 보편적인 것으로 정착할 가능성. 이러한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소비 시장의 가능성. 자영업의 트렌드도 바뀔 것. 요식업은 여전히 필요하나 디테일이 바뀔 듯. 

- 꽃개 생전엔 볼 수 없을 수도. 

 

2018/07/10 23:38 2018/07/1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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