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돌을놓다

분류없음 2016/10/14 23:43

 

제목: 새로운 돌을 놓았다.

 

 

드디어 이 긴 여행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지, 그 길눈을 잡을 모퉁잇돌 (cornerstone) 을 놓았다. 지금까지 함께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 여행길 (journey) 에 함께 할 나의 파트너, 그이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감사하고 고맙다. 이 여행의 진정한 동반자 (cornerstone). 함께 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서 있지조차 못했을 이 자갈밭 투성이의 여행길. 보통사람처럼 서글서글하고 무던하지 못한 데다가 괴상한 나를 믿고 묵묵히 지지해준 파트너가 없었다면 이 여행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돌뿌리에 채여 넘어질 때마다 가만히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켜준 사람. 고맙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특히 K에게 감사하다. 그녀의 격려와 도움이 없었다면 이 글은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이제 다른 장을 여는 이 여행길에서 그들과 함께 계속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달라질 것은 없다. 하던대로 하면 되겠지만, 살았던대로 살아가면 되겠지만 무엇보다 구체적인 여행의 방향, 내용을 미리 생각하고 발을 내딛을 수 있다는 차이?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처음에 밴쿠버에 1년을 예상하고 갔을 때만해도 인생의 책장이 이렇게 후르륵 넘어갈 것이라곤 예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오롯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평화로웠다. 잘 되겠지, 잘 될거야. 의지적 낙관은 오래 지속되는 법이 없다. 누구 탓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엄마는 아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시겠지. 모든 것을 니 멋대로 하는 니가 알아서 니 인생을 개척해라. 틀린 말씀은 아닌데 여전히 섭섭하기는 하다. 크리스마스, 국내선 비행기 삯이 가장 저렴한 그날 4시간 30분이 걸려 도착한 토론토의 첫 밤. 그렇게 시작되었다.

 

 

학교는 아무래도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 (comfort zone) 이다. 그리고 사회복지 분야를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직업윤리 (ethic), 사람을 대하는 방식, 소통하는 법, 듣는 법... 이른바 가장 근본이 되는 내용을 체득했다. 한국에서 배웠던 -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것은 지워버린다 (deactivating) 는 각오로 백지상태에서 시작했기에 흡수가 빨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이 있었기에 이해 또한 빨랐다. 이상적인 것 (ideality), 그것이 나의 가치 (value) 에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동의하지 않을 내용이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것 (reality), 그것은 달랐다. 그 둘은 끊임없이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결코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나의 관계처럼. 아마 컬리지 생활에 앞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전선에서 이 삶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파트너에게 감사하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진창에서 살고 있을 거예요.

 

 

2011년부터 일하던 회사에서 끊임없이 도전했던 일은 어렵게 되었다. 올해가 가장 좋은 기회였지만 그래서 여러번 두드렸지만 결과는 나와 무관한 일로 되어버렸다. 마지막에 가장 유력해보였던 그 그회조차 가장 늦게 들어온, 어머니가 회사 내 다른 프로그램의 매니저인 백인 남성에게 돌아갔다.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봤자 나만 손해다. 정을 붙이든 떼든 그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지 매니저도 회사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 경계를 더 멀리 분명히 설정하자. 내가 취득할 수 있는 이익에 집중하자. 그리고 작년 11월부터 일하던 회사 내 다른 프로그램의 매니저에게 그만 두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곳엔 나름대로 정이 들어서인지 사임 이메일을 쓴 뒤로 계속 마음이 아프다. 일종의 분리불안 (separation anxiety) 인 것 같다. 심장 저편 구석에 돌덩이가 들어있는 것처럼 묵직하고 아팠다. 어제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무거워 견디기 힘들었다. 뭔가를 더 비워야하는 것 같다. 비울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은 모양이다.

 

 

10월 31일부터 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다. 새로운 직장은 신문에서 소셜미디어에서 간접적으로 접한 적은 있어도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는 직접 컨택했던 적이 전혀 없는 곳이다. 그냥 다시 또 백지 (blank paper) 가 되는 게 낫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작은 돌을 살짝 올려놓았다. 

 

2016/10/14 23:43 2016/10/14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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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편린

분류없음 2016/10/12 00:31

 

캐나다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 연휴가 끝났다. 긴 주말은 나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곤혹이자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법정공휴일이 사이에 끼면 돈을 배로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이 힘들다. 나는 이제 얼마만큼 적응이 되어 괜찮다. 아니 괜찮아야 한다. 무엇보다 파트너와 시간을 보낼 수 없어 미안하고 섭섭하다.

 

 

주말 정규시프트 하는 날. 어슴프레 해거름 무렵, 한 명의 젊은 남성 클라이언트가 백야드에 쪼그리고 앉아 무얼 하고 있다. 번쩍번쩍 라이터 불빛이 간혹가다 보인다. 주말에 일하는 일터 한 곳엔 실내를 제외하고 빌딩 주변 전체에 9대의 감시카메라가 있다. 주중에 일하는 또다른 일터 한 곳은 건물 외곽은 물론 실내 복도와 계단에까지 총 25대의 감시카메라가 있다. 어쨌든 감시카메라 한 대를 통해 그 남자의 행동을 한참동안 관찰했다. 아무래도 그냥 둘 수가 없다. 터벅터벅 담배를 피러 간 것처럼 접근했다.

 

 

- 안녕, 날씨 좋지? 근데 약간 쌀쌀하다.

= 응.

- 뭐해? 재미난 일 있어?

= ...

 

 

말없이 계속 라이터를 켰다껐다 반복. 가까이 다가가 살피니 라이터로 개미 같은 곤충, 벌레를 태우고 있다.

 

 

- 쟤네들 불쌍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뜨거울 것 같고 아플 것 같아.

= ...

- ...

= 그러네. 뜨겁겠다. 그만 할께. 

- 잘 생각했어. 야구 보는 게 어때? 지금 와일드카드 결정전 중계하고 있어. 다들 그거보고 있는데.

= 그래? 그럼 나도 야구 볼래. 

- 근데 너 그거 알어? 백야드에 농구할 때 말곤 여기에 와서 이러고 있으면 별로 안 좋아.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어. 나는 너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걸 바라지 않아.

= 어. 나는 몰랐어. 

- 그래. 이제 알았으니까 괜찮아.

 

 

다행히 공감능력이 있는 친구다.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너무 심심했던 거다. 하필이면 왜 그런 방법을 택했는지 모르겠는데 불현듯 내 인생을 거쳐간 남자중학생들 가운데 한 명이 떠올랐다.

 

 

때는 꽃개가 대학교 일학년이던 어느 해. 엄마의 성화로 남자중학생 두 명의 과외를 시작했다. 엄마는 아예 지하실 내 방을 공부방으로 차려놓으셨다. 엄마가 알아서 학생을 물어 (?) 오셨다. 덕분에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저녁엔 꼼짝없이 집에 일찍 들어와 아이들을 가르쳐야했고 대학생다운 (?) 대학생활에도 제동이 걸렸다.

 

 

정말 지지리 공부못하는 아이들이었는데 몇 번 만나보니 공부에 재미를 전혀 들이지 못한 그런 아이들이었다. 그 가운데 한 명, 오늘의 주인공께서는 두어 번 영어에 관련된 일상 이야기를 해줬더니 제법 관심을 보였다. 가령 당시에 유행하던 편의점 중에 "Buy The Way" 라는 게 있었다. 영어 숙어 "by the way" 와 발음이 같은데 뜻은 같을까 다를까 숙제를 내줬더니 열심히 조사해서 알아왔다. 이 놈 봐라, 공부를 재미있게 하면 좀 할 것도 같은데? 어느날 이 녀석이 라이터를 분해해서 머리 부분만 들고 왔는데 큼지막한 개미 대여섯 마리도 같이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곤 테이블 위에 개미를 올려놓고 라이터로 그 개미를 괴롭히는 거다. 당연히 나는 질색팔색을 하고 당장 개미들 마당에 풀어주고 오라고 호통을 쳤지만 그 녀석에게 나는 그저 공부가르치는 여자. "재밌잖아요. 킁킁." 계속 지진다. 개미들이 다 죽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수밖에.

 

 

첫 월급을 탄 날. 이 두 녀석들을 데리고 시내로 나갔다. 우선 당시에 유행하던 패밀리레스토랑 코코스에 들러 밥을 먹었다. 이 녀석들은 스테이크를 먹겠다고 했는데 비후까스가 젤로 맛있는 스테이크라고 꼬셔서 간신히 그걸 먹였다. 응, 아닌데. 이상하다. 아니야 니들 입맛이 이상한거야.

 

 

밥을 먹고 이 두 놈을 탁구장에 데리고 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 두 놈은 의기양양했다. 그래봐야 여자인테 탁구는 좀 칠 줄 아나. 선생님 우리 내기해요. 그게 무슨 내기할까. 저희들이 이기면 수요일 수업은 한시간 짧게 끝내주시고 엄마한테 말하지 마세요. 그래 그러자, 근데 선생님이 이기면 너희들 내가 하라는대로 다 해야돼. 알겠어? 흐흐하하, 좋아요. 자, 너네 둘이 복식해. 선생님은 혼자 단식할께. 에이, 그러면 선생님 질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저희들은 좋아요.

 

 

결과는?

 

이 두 놈을 아예 싹 발라버렸다. 스매싱으로 얼굴에 몇 번 맞추고 이쪽으로 저쪽으로 공을 날려 정신없이 공만 주으러 다니게 만들었다. 개미를 불태운 그 녀석이 복식이라서 안되는 것 같다고 일대일로 붙자고 하길래 그래, 그러자. 역시 싹 발라버렸다. 두어 시간 탁구장에 땀을 빼고 나오면서 이놈들아 선생님 옛날에 탁구선수였어. 몰랐지? 잔뜩 풀이 죽은 두 놈이 왜 말을 미리 안했냐고 사기라고 벙벙 뛰었다. 니네가 안 물어봤잖아. 그럼 다른 운동으로 해요. 뭘로 할까?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철봉에 매달리기? 야구연습장가서 볼치기? 한참 생각하던 그 놈이 볼링으로 하자고 했다. 그래 좋아. 근데 그건 다음달에 하자. 물론 다음 달 볼링경기에서도 당연히 내가 이겼다.  

 

 

그 날 뒤로 그 두 놈들, 특히 개미를 불태운 그 녀석의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졌다. 무슨 사부님 따르듯이 얌전해졌고 벌레를 가져와 면전에서 태우는 그런 일도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숙제를 안해와서 밤 열두 시까지 붙들어잡고 있었더니 울면서 엄마한테 이를거예요... 너네 엄마들한테 우리 엄마가 이미 전화하셨어. 걱정하지 말고 숙제 마치고 가. 아니면 여기서 자고 가도 돼. 선생님은 이층에 가서 잘 거니까. 그리고 다음부터 숙제안해 올거면 도시락 싸가지고 와. 나는 올라가서 먹으면 되지만 니네들은 배고프잖아.

 

 

이 때까지만 해도 애들을 못살게 굴면 이 녀석들의 엄마들이 당장 과외를 때려치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였다. 애들을 데리고 시내에 나가 밥도 사주고 운동도 하고 숙제도 내주고 숙제안하면 붙들어잡고 공부를 시키니 엄마들 입장에선 꽃개가 자못 환상적인 (?) 과외 선생님이었던 것. 동네에 평판이 좋게 (?) 돌았다. 엄마는 한 명의 남자아이를 더 물어오셨고 (?) 세 명의 수업을 하다가 그해 말에 그 과외 아르바이트를 때려쳤다. 집에 진득히 눌러앉아 그런 일을 하기엔 꽃개의 혈기가 너무 왕성했고 예의 역마살도 가만히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은 이 정도인것 같은데 장면들이 모두 흐릿흐릿하다. 개미를 불태운 그 녀석은 이년 뒤 과학고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은데 나머지 두 녀석은 어찌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력이 감퇴했나 보다. 그러나 개미를 붙태우던 그 아이의 천진난만한 (그러나 잔인한) 얼굴만큼은 선연하다. (꽃개도 나중에 그런 장난을 쳤던 것 같기도 하다.)

 

 

클라이언트의 그 모습과 중학생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생각이 쓸데없이 번져 아렌트 (Arendt) 의 악의 평범함 (the Banality of Evil) 까지 되짚었다. 아무 생각없이 하는 행동들, 아무런 연민없이 하는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동반할는지 인간들은 알긴 아는 걸까? 정신질환이 있으면 익스큐즈라도 되는데 "지극히도 정상적인" 노말한 사람들은 어떻게 변명해야 하는 걸까?

 

 

 

 

2016/10/12 00:31 2016/10/1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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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쵸어

분류없음 2016/10/07 04:47

 

제목: 하우스쵸어 (House Chores)

 

 

오프일 때는 주로 가사노동 (house chores)을 한다. 간간이 책도 읽고 블로깅도 하고 산책도 하고 여타 다른 사회활동도 하지만 아무래도 우선 순위는 가사노동으로 된다. 파트너와 함께 살면서 우리는 이 노동을 어떤 식으로 분담하고 있는지 딱히 따져볼 일이 없었다. 무난하게 둘 다 큰 불편불만없이 잘 하고 있다. 그런 것 같다. 파트너는 아마도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 생각의 차이가 있거나 만족스럽지 않으면 서로 어떤 방식으로든 티가 나는지라, 그리고 금방 알아차리는 편이라 이 문제에 관한 한 큰 이견이 없다고 여기고 있을 뿐이다. 처음에 함께 살게 되었을 때 함께 작성하고 서명한 일종의 계약 (contract) 이 있다. 그 가운데 가사노동에 관해서는 "서로 가사노동을 이유로 스트레스를 주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둘 다 하기 싫으면 그냥 내버려둔다. 반드시 해야 할 때에는 가사노동 전문가를 고용한다" 정도로 정리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직까지 둘 다 너무 하기 싫은데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 따라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는 한 번도 이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가운데에도 꽃개만 하는 일, 꽃개의 파트너만 하는 일이 따로 있다. 서로 이렇게 합시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살다보니까 그렇게 되어버렸다. 일단 청소기 청소 (vacuuming) 나 대걸레질 (mopping) 은 꽃개가 한다. 청소기는 무겁고 소음이 강하고 대걸레질은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그냥 꽃개가 맡았다. 둘 다 청소기 소음에 진저리를 치는지라 파트너가 언젠가 작은 빗자루 세트를 구입해오셨다. 간단히 정리정돈할 때는 그 도구를 쓴다. 변기청소 등 화장실 청소와 냉장고 청소는 파트너가 한다. 행주와 면생리대를 삶는 일도 파트너께서 하신다. 다른 일은 둘이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알아서 하거나 같이 한다. 가령 요리와 설겆이 등 부엌 일은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사람이 한다. 이브닝이나 오버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파트너가 식사를 준비해두실 때가 많다. 특히 이브닝 퇴근길에 "국수 끓여놨어요" 와 같은 텍스트메세지가 오면 너무너무 감사하고 그 순간이 행복하다. 인생의 행복이란 게 별 게 있나 싶나. 바로 이런 거지. 역으로 파트너가 오후 근무나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 사이 꽃개가 집에 머물게 되면-  파트너가 잡수실 식사를 준비한다. 때로 귀찮다. 그런데 내가 느꼈던 그 행복한 순간들, 어쩌다 파트너가 아프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퇴근했는데도 또 다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가 먹을 식사준비를 했던 그런 순간들을 떠올리면 스르르 몸을 추스려 저녁 준비를 하게 된다. (내가 먹을 것을 내가 준비하는데도 억울한 그런 때가 있다. 풀썩.) 다행히 파트너는 꽃개가 하는 음식을 무엇이든 불평없이 아주 잘 드신다. 꽃개에 비해 성격이 무난하고 긍정적이고 서두르지 않는 (laid-back) 편이다.  꽃개는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음식에 이러쿵저러쿵 불평불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어머니께서는 아무말없이 잘먹고 고맙다는 말을 들어보면 소원이 없겠다, 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뚝딱 군소리없이 잘먹는 파트너를 보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꽃개도 나름대로 잘 먹으려 애쓰는 편인데 파트너 말씀에 의하면 꽃개는 얼굴이나 행동에서 티가 난다고 하신다. 그리고 맘에 들지 않는 음식엔 두 번 다시 손을 대지 않는다고. 저런, 내가 그랬구나. 몹시 송구스러운 상황이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습관이란 무섭다.

 


처음엔 식사를 세팅해놓으면 세월아네월아 기다리게 만드는 일이 몇 번 있어 파트너와 말다툼을 했다. 그런데 점차 서로 차이를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되어 그냥 혼자 알아서 먹는다. 서로 다른 것을 억지로 맞춰 살 순 없는 노릇이니까. 상황이 허락해 여분의 식사를 준비해놓고 출근하거나 외출할 수 있을 땐 따로 편지를 써놓고 나가면 된다. 그리고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같이 먹거나 외식을 한다.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한다. 아무리 같이 사는 사람일지라도 각자의 일상이 있으므로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꽃개가 처음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어릴 적에 자취할 때에는 동거인들과 무진장 많이 싸웠다. 각자의 차이를 차이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의 기준을 상대에 맞춰 재단했기 때문이다. 파트너와 함께 살면서, 이 나라에 와서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바꾸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조금씩 변한다. 변할 것이다.  

 

 

그 외에 빨래, 빨래널기와 개기, 쓰레기정리와 버리기, 그로서리쇼핑과 리스트만들기, 집세나 여타 돈나가는 일 정리하고 연말정산 보고하기, 계절별 옷가지 정리, 침구정리, 가재도구 고치기와 정리… 끝도 한도 없다. 때론 자동으로 옷걸이/ 옷장에 옷이 착착 잘 정리되어 있고, 일터에서 돌아오면 자동으로 청소, 빨래,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자못 환상적인 상황을 꿈꿀 때가 있다.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나도 "아내" 가 있었으면 하는 꿈도 꾼다. (물론 나는 인건비를 지불할 능력도 용의도 없다). 따라서 결혼만 하면 자동으로 풀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그것도 공짜로 해주는 아내를 원하는 일부 남성들의 바람을 이해못하는 바도 아니다. 이런 서비스를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뭣하러 상대적으로 어렵고 몸을 많이 써야하는 길을 선택하겠는가. 혹은 일부러 너저분하게 일처리를 하면 (예를 들어 설겆이를 지저분하게 하면) 아내나 엄마나 누나가 더 이상 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이이들은 잘 알고 있다. 어차피 다시 해야 하니까 그냥 내가 해버리고 말지. 대부분 여자들의 생각이 그럴 것이다. 그렇게 자랐으니까. 수동공격적 행동 (passive aggressiveness)이 이런 거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에게 처음부터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말라고 처음부터 잘하면 계속 시키니까 조심조심 봐가면서 하라는 훈계조의 글을 남초사이트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야구를 전문으로 다루는 엠사이트라고는 말 못해.)

 


만약 파트너가 처음부터 꽃개보다 가사노동을 못했다면 꽃개는 꽃개의 성격상 꽃개가 다 떠안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불평하고 불만을 쏟아놓고 싸웠을 것이다. 결국 아마도 지금쯤 각자 완전한 남남으로 살고 있겠지. 또 만약 꽃개가 일부러 못하는 척하고 수동공격적인 태도로 가사노동에 임했다면, 그리하여 파트너의 노동을 고의적으로 교묘히 착취하고 살았다면 아마 지금쯤 각자 완전한 남남을 넘어 웬수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진작에 쫓겨났겠지.

 


가사노동에 대한 다른 생각들, 단상들을 조만간 정리해봐야겠다. 건조기에 들어있는 빨래를 찾으러가야 하니 이만.

 

 

2016/10/07 04:47 2016/10/07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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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라면

분류없음 2016/10/07 00:05

 

지난 밤에 최민수 씨 아내되는 강주은 여사의 포스를 볼 수 있다는 클립을 찾아보다가 세식구가 라면끓여먹는 씬을 보는데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었다. 강력한 크레이빙. 그러나 집에 라면이 없다. 다 떨어진 지 꽤 됐는데 일전에 파트너가 아팠던 뒤로 라면을 다시 사지 않았다.

 

 

신라면 따위의 라면은 중국인 가게에 가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 라벨에 디렉션이 중국어로 씌여 있어서 아무래도 잘 사지 않게 된다. 반면 한국인 가게에 있거나 캐나디언 그로셔리 샵에 간혹 있는 한국라면은 영어와 불어 버전으로 출시된다. 아무래도 중국산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강한지라 중국인 가게에서는 잘 사지 않게 된다. 가격 뿐만이 아니라 사실 맛에도 차이가 있었고 중국어 버전 상품에서는 나트륨 함량 표시를 비롯해 영양안내서를 싣지 않아 더더욱 신뢰하기 어렵다.

 

 

한국산 라면 (인스탄트 누들) 을 비롯해 중국산, 타이완산 누들에 대한 이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뭐랄까. 그냥 정크푸드라고 해야 하나. 피자나 고기파우치 같은 인식이 강하다. 사실 소득수준이 낮은 마을에 가면 로컬 피자가게가 많다. 십미터마다 자리한 로컬 피자 가게에서 피자 한 쪽, 코크나 진저엘 같은 팝 하나를 끼워 2-3달러 가격으로 판다. 도미노, 피자헛, 피자피자 같은 프랜차이즈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마찬가지다. 한 끼라기보다는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정도. 북미의 피자, 한국식으로는 떡볶기나 오뎅, 김밥땡국의 김밥 정도 되려나.

 

 

어쨌든 이 나라 사람들, 특히 백인들은 한국산 라면을 "소금덩어리"로 취급하는지라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집에서 몰래 먹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겉으로 표현할 때의 품평은 별로 좋지 아니하다. 그러나 아프리카 출신, 서인도제도 출신, 남아시아 출신 등 강한 향신료를 바탕으로 요리를 하는 - 주로 더운 지역에서 온 - 사람들은 한국산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직장에서도 그쪽 지역 출신들이 간혹 육개장사발면을 가져와 간식으로 먹는데 어쩌다가 오, 그거 한국라면이네 하면 깜짝 놀라면서 이거 일본라면 아니었어? 이거 중국라면 아니었어? 라고 반응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꽃개는 직장 앞의 편의점에서 1달러 50센트에 파는 김치사발면/ 튀김우동을 애용하는 편.

 

 

라면 이야기가 나와 생각난 한 친구. 방글라데시에서 아주 어릴 적에 이민온 이십대 초반 여성. 엄마는 남아시아 출신 여성들을 돕는 사회복지사. 아빠는 수니파 이맘 정도 지위를 갖는 무슬림학 강사. 수니파 본토,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에서 제공한 장학금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으셨는데 정작 이 나라에서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어려우셨는지 여전히 무슬림 국가들을 돌아다니시면서 종교학을 가르치신단다. 어쨌든 그 친구는 여동생, 엄마와 함께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연예인들을 꽃개보다 더 많이 안다. 일전엔 장근석 사진을 보곤 (사진을 봤을 땐 누군지 몰랐다. 한국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 이뻤으므로) 너무 이쁜 이 남자 누구지, 했는데 이름이며 출연한 작품이며 줄줄줄 외워서 꽃개를 깜짝 놀라게 했다는.

 

 

어쨌든 이 친구가 한국 드라마를 보는데 주인공들이 밤에 라면을 끓여먹는 씬을 몇차례 본 뒤 대체 저게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졌다고. 동생과 의논을 하고 구글링을 했다. 한국인 가게에 가면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 이 친구. 당당히 한국인 마트에 들러 라면 구입, 집에 도착하자마자 디렉션대로 끓였는데 글쎄, 새까맣게 나왔단다. 너 태운 거 아니야? 했더니 짜고 이상한 냄새만 나고 드라마에 나온 것과는 영판 달랐다고. 아, 그거 짜장라면이야. 그게 뭐야? 짜장이라고 있어. 역시 구글링을 해서 설명해줬다. 이 친구는 드라마에 나온 그 "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짜장은 싫다고 했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이 친구가 집에 처음으로 놀러온 날. 꽃단장을 하고 나타났다. 뭐야? 알고보니 알버타 주에 살고 있는 먼 친척 가문에 보낼 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에 들렀다가 온 것. 무슬림 가족들은 가문의 역사가 깊을수록 (????) 여전히 정략 결혼 (arranged marriage) 을 진행한단다. 상대 남자는 캐나다에서 태어났고 아직 나이가 어린지라 둘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고 지내자는 취지로 사진을 교환한다는 것. 정략 결혼 그 자체도 의아하지만 젊은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정략결혼의 장점에 대해 설파하는 것을 한참 들으면서 거듭 거듭 의아했다. 그러나 그냥 듣고 말았다. 친구의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방글라데시 전통 케잌을 들고 왔고 꽃개와 꽃개 파트너가 준비한 떡볶이와 잡채를 같이 먹었다. 잘 먹더라. 까불고 떠들며 놀다가 친구는 집에 돌아가야할 시간. 팬트리에 있는 진라면 다섯 개짜리 묶음을 꺼내 선물로 주었다. 이 라면은 까맣지 않아. 디렉션대로 잘 끓여먹어본 뒤 피드백을 줘. 너랑 동생이랑 부디 좋아하길 바라. 친구는 고맙다고 나중에 꼭 결과를 알려준다고 하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 뒤로 학교에서, 지하철 승강장에서 종종 마주쳤는데 해가 지날수록 미모가 남다르게 발전한다. 젊은 여성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여성은 외모로는 절대 그 사람의 가치를 알 수 없다) 이에 반해 남성들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는 신사가 되고 어떤 이는 바야바가 되고 어떤 이는 눈빛이 그야말로 몹쓸 약을 은밀히 파는 약장사의 그것과 흡사하게 변한다. (따라서 남성도 외모로는 절대 그 사람의 가치를 알 수 없기는 한데 대략 알 수 있기도 하다. 결론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좆된다는 것) 신사도 바야바도 약장사도 모두 소라넷에 올라오는 것 같은 야동을 보긴 볼텐데 유희와 일상을 구별해내는 능력,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려는 본인의 의지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2016/10/07 00:05 2016/10/0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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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랑잡담

분류없음 2016/10/03 03:56

 

올해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다. 티켓값이 비싸기도 하고 파트너랑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한 달 전에 파트너가 그룹티켓을 구했고 마침 블루제이스의 마지막 홈경기. 올해도 작년에 이어 곧잘하고 있는 블루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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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석 200레벨 그룹 가격이 무려 $39. 볼티모어랑 겨루는 경기인데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크게 관심둔 적이 별로 없어서 시큰둥했었다. 올해 김현수 선수가 뛰는 바람에 혹-했지만 김현수는 뚱산 출신인 데다가 나의 취향이 아니므로 관심을 바로 거둬들였다. 꽃개는 외모지상주의자라 김현수 선수를 과감히 버린다. 휴지통으로 드래깅~~

 

 

야구장 가기로 한 날까지 파트너가 계속 아팠다. 그래도 야구장가면 튀김냄새나는 뭘 좀 먹고 맥주도 마시고 해야하는데 낫지를 않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계속 고민했다. 게다가 당일에 비가 내려서 잘됐어 어차피 아픈데 비까지 오니까 취소되겠구나, 했는데 이런이런 여기는 돔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토론토. 서울이 아니란 말이야. 요즘엔 서울에도 고척돔구장이란 게 생겨서 날씨와 무관하게 야구를 즐길 수 있다.

 

전차를 타고 가면서 "아, 꽃개는 전차타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너무 오랜만에 타서 떨려요" 라고 했더니 파트너께서 웃으신다. 다운타운에 나갈 일이 있어야지 원. 비가 내리는 어둑한 가을저녁의 도시 한가운데를 전차를 타고 가로지르는 기분... 꼬물꼬물하다.

 

야구장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강렬한 마리화나 냄새와 바베규 냄새가 진동. 안그래도 아무 거나 먹을 수 없는 파트너께서 바베큐냄새 정말 쥑인다, 먹고싶다, 한두 마디 하실 때마다 안쓰럽고 걱정 + 미안하고 암튼 그렇다. 파트너가 아프다고 할 때, 그 때가 가장 속상하고 화도 나고 그렇다. 파트너도 아마 그렇겠지. 같은 마음이겠지. 나중에 다 나으시면 잡숫고 싶은 거 죄다 사드릴께요. 파트너는 꽃개에게 맥주와다른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시는데 꽃개가 아무리 염치없어도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그냥 5달러를 주고 곰돌이 젤리 한 봉지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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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 전인가 나중엔가 기억이 가물가물. 지난 번에 양키스와 할 때 갔을 땐 내야 100레벨이었고 선수들의 움직임이 더 가까이 보였다. 그런데 어째 이번에 간 그 좌석이 훨씬 낫다. 섹션 하나가 스카이박스처럼 단독으로 커버링되고 출입구도 하나로 제한된다. 백여 명 정도 단체로 그 섹션을 다 사면 아주 아주 훌륭한 스카이박스가 되겠구나 싶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혼자 터벅터벅 가는 일이 아니면 외야석에 앉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술먹고 난동부리거나 찝쩍거리는 한국형 남자사람들이 외야에 더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어릴 때 동대문야구장에 혼자 갔다가 홀짝홀짝 맥주마시는 꽃개를 무진장 괴롭히던 그런 한국형 남자사람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아마 없겠지 했는데 웬걸.

 

그린 잔디가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 마치 가득 한아름 안으면 내 품안에 꼭 안길 것 같은 그런 시야를 보여준다. 야구장에 다녀오면 눈이 좋아진다. 파트너에게 멀리 많이 오래 바라보세요. 눈이 좋아져요. 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는 귀여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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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전광판 사각지대에 있는 섹션이다보니 모니터를 통해 현재 상황을 보여준다. 섹션마다 저런 모니터가 다 걸려있다. 김현수가 나왔을 때. 관중들은 김현수가 나올 때마다 야유를 보냈다. 아마도 전날 경기 9회에 투런홈런을 때린 선수가 김현수, 덕분에 블루제이스가 역전패를 당해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섹션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와 파트너는 괜시리 움찔. 타율과 타점 봐라. 훌륭하구나. 생긴 것과 달리 야구는 잘해.

 

경기는 4-0으로 패배. 관중들은 정말이지 무지막지하게 맥주를 먹는다. 길다란 캔 하나를 10달러 정도에 파는 것 같은데 그걸 세 개 네 개 쉬지 않고 들이켠다. 물탱큰 맥주탱큰줄 알았어. 그리고 매 회가 끝날 때마다 화장실에 가서 물을 빼고 온다. 지난 번에 내야석에 앉았을 때엔 관중들이 다소 얌전하고 수더분한 편이었는데 어쩐지 외야석이라서 그런 건가. 마지막 홈경기라서 그런 건가. 서부 카우보이들이 단체로 온 것 같은 분위기에 경기가 잘 안풀려서 그런지 f--k 욕도 정말 많이 하더라. 꽃개는 재미나게 잘 보고 왔다.

 

블루제이스가 와일드카드를 받고 디비전에 오를 수 있느냐. 부디. 야구는 가을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트윈스도 가을야구도 올해는 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유광점퍼 준비하셨셔연? 

 

 

 

 

2016/10/03 03:56 2016/10/03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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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조우

분류없음 2016/09/29 00:42

 

어제 이브닝 출근길. 지하철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커피가 뜨거워 쩔쩔매고 있는데 맞은편의 산타클로스처럼 생긴 할아버지가 꽃개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한다. 아이고 깜짝이야. 누구지? Do I know you? 수염 때문에 몰라보는구나. 나야 나. 녹색과 회색이 섞인 눈동자와 쳐진 눈매를 찬찬히 살피니 그제서야 누군지 알겠다. 클라이언트 G. 어, 안녕. 잘 지냈어? 응, 너는? 나도 잘 지내. 일하러 가는 길이야? 응. 반갑다. 수염이 아주 근사한데. 그래, 고마워.

 

 

꽃개가 일하는 곳에 처음 왔을 때 그는 만성우울증 진단을 받아 약을 항상 복용해야하는 홈리스였다. 홈리스로 살아온지 십 년이 넘었고 인생의 사연이 길고 길다. 예의도 바르고 아는 것도 많고 성격이 좋아 사람들이 좋아했다. 팍스아메리카나, 미국의 문제점에 대한 관심사 등 서로 통하는 데가 많아 종종 대화를 나눴다. 크리스마스 쿠키를 잘 구웠다. 이이에게 꽃개도 쿠키 굽는 것을 배웠다. 처음 이이의 목표는 퍼머넌트하우징, 우리말로 하면 영구임대주택을 얻어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서 사는 거였다. 워낙 성실했고 의욕이 많았으므로 회사 내 다른 프로그램에 연동해 클라이언트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를 얻었다. 하우징프로그램에 어플라이했고 운이 좋았는지 꽃개가 일하는 곳에 두번째로 들어왔을 땐 곧 입주를 앞둔 상태였다. 어느날 그이가 폰카메라로 찍어 보여준 새로운 아파트는 참으로 멋져 보였다. 호숫가에 지은 지 얼마안 된 새집이었고 그이는 모든 것이 맘에 든다고 했다.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 입주하는 날 꽃개가 일하는 프로그램을 떠났다. 그이의 앞날에 꽃길만 있으리라 그 때는 그렇게 믿었다.

 

 

몇 달 뒤 어느 날. G의 어플리케이션이 사무실에 보인다. 뭐지? G는 하우징을 구했잖아. 왜 다시 돌아온대? 사연은 이랬다. 새로운 집을 얻어 새생활을 시작한 G. 일터와 집, 통근거리와 시간이 너무 길었고 무엇보다 혼자 살아가는 것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홈리스 시절엔 거리에서 친구들과 자유롭게 지냈고 사는 데 필요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새로운 인생을 위해 시작한 직장생활과 아파트 독거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외로웠고 월세로 빠져나가는 월급, 그에 더해 유틸리티 (전기세 등), 그로서리 (식료품) 등 아파트 독거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들여야하는 시간과 품, 계획적인 삶이 버거웠다. 그 가운데 최고로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었다. 결국 G는 새로운 아파트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병원에서 깨어난 G. 케이스워커와 면담한 그는 그가 과거에 두 번이나 머물렀던 곳. 그 곳이 가장 집 같다고 (like a home) 그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꽃개가 일하는 곳으로 다시 오게 되었다. 세번째 어드미션이었다.

 

 

약속시간보다 두어 시간 늦게 꽃개가 일하는 곳에 도착했다. 문을 열어 그를 맞이하고 악수를 청했다. 네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G는 고개를 돌려 약간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약을 픽업하러 가야하니 두시간만 더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가방을 두고 다시 떠났다. 동료들에게 인테이크를 홀딩해달라고 부탁하고 케이스노트에 입력했다. 꽃개의 프로그램에 그렇게 세번째로 돌아온 G. 직장도 구하고 아파트도 구하고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된 G.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면, 관계도 변하기 마련이고 무엇보다 케이스메니징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이이는 꽃개의 프로그램에 건강하지 못한 애착관계를 형성한 셈이다. 이른바 "건강한 자립" 이 어려워졌다. 이제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를 대할 수가 없다. 나는 아마도 그때부터 이이와 거리를 뒀던 것 같다. 나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케이스컨퍼런스를 한 것까지는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되어 버렸다. 

 

 

한 달 뒤 G는 꽃개의 프로그램을 세번째로 떠났다. 떠난 뒤 G는 다시 꽃개의 프로그램에 전화를 해 어플라이하고 싶다고 했으며 거절당했다. 이 속시끄러운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됐고 G의 네번째 어드미션은 끝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났다. 나는 G를 잊어버렸다. 그런 G를 어제 지하철에서 그렇게 대면한 거다. 마음이 당연히 좋지 않았고 그이가 내리는 역에서 일어났을 때 다시 악수를 청했다. 건강해 (Take care). 마지막 인사였다. 다시 G를 만날 때엔 마음이 한결 편안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삶에 끼어든다는 게 이렇게 어렵다. 나는 더 냉정해져야겠다. 쓸데없는 연민, 나도 어쩌지 못하는 연민은 허공에 울리는 징소리마냥 흔적도 없이 흩어질 뿐이다. 다만 그 여파에 휩쓸린다. 

 

 

 

2016/09/29 00:42 2016/09/2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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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낙서중

분류없음 2016/09/28 00:57

 

오대양 육대주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오신 분들과 일하는 기회가 많아 대략적으로는 감사하면서 살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런 기회를 삶에서 누릴 계기가 희박하니까 - 그런데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경우들이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그 사람들이 나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클라이언트일 경우엔 그냥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서비스이용자인데다가 대부분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여타 다른 어려움을 혼융한 상태로 살고 있고 무엇보다 권력관계 (power balance) 에서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하면 나 혹은 나의 동료들은 그들을 디스미스할 수 있는 - 그러니까 그들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단절시킬 수 있는 - 권한을 갖고 있다. 간혹 이 권한을 미스유징하는 워커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따라서 언제나 이 관계를 염두에 두고 일해야 한다. 서비스이용자들 또한 이 관계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이 동료인 경우에 있다. 사람마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다르고 따라서 저마다 다른 기준의 윤리의식이랄지 태도를 지니기 마련이다. 여기까지는 뭐 괜찮다.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분위기, 커뮤니티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타성에 젖어 직장생활을 하면 동료들이 힘들다. 그들은 그것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적극적으로 고치려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들이 익숙한 것을 늘 경계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깨닫는다.

 

자식을 키우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아주머니들이 그 동료일 경우엔 사정이 다소 다르다. 그들을 다 이해하고 받아주고 서포트할 이유는 내게 없다. 하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같은 유색인종/ 비백인으로서, 같은 이주노동자로서 공감대가 있으므로 어느 정도 이해하고 감당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들도 상대가 받아준다, 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이 들이민다. 바운더리를 설정하고 꽃개는 그 이상 넘어오면 얄짤없어, 라는 것을 상대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하면 대개 그 바운더리 안에서 조율하거나 넘어오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한다.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여성들은 이게 대부분 가능하다.

 

문제는, 진짜 문제는 서구유럽사회 혹은 제국주의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에서 오신 남자, 아저씨들에게서 발생한다. 여기에 더해 인구가 많아 이동하는 인구의 비율 또한 높은 나라/ 지역에서 오신 분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중국, 나이지리아 같은 아프리카 몇 개 나라. 여기에 젠더이퀄리티가 현저히 낮고 미소니지-여성혐오 문화가 공기처럼 자리잡았거나 차별방지법 같은 건 꿈조차 꿀 수 없는 나라에서 오신 분들. 가령 먼저 나열한 나라에 더해 한국, 이슬람 국가들, 카톨릭 국가들...

 

이민을 해서 사는 터전의 뿌리를 바꿨다고 한들 생활방식/ 사고방식까지 바꾸기는 어렵다. 가령 한국에서 이민와서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대부분 한국인들은 여전히 한국식으로 산다. 그것을 선호한다. 그것을 나쁘다고 할 순 없다. 한국식 문화에도 좋은 것, 따뜻한 것, 괜찮은 것, 오래도록 보존하고 싶은 것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민온 연차가 높을수록 이 현상은 더 도드라진다. 80년대에 오신 분들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박정희/ 전두환에 머물러 있다. 90년대 오신 분들도 노태우/ 김영삼 방식에 익숙하다. 밀레니엄 시대에 오신 분들이라고 딱히 다르지 않다. 꽃개는? 꽃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날이 개선하기 위해 일일신우일신하기 위해 애는 쓰고 있지만 나고자라서 배운 게 어디 가겠는가 말이다. 늘 언제나 경계하고 새로운 것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여 좋은 것은 재빨리 취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런 이민자들이 키우는 아이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은 어떨까? 다른 게 있을까? 오히려 더 꼬일 수 있다. 가령 학교에서 사회에서 배운 문명화된 방식 + 집과 가정에서 배운 전통적인 방식 가운데 자기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한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맥도날드 같은 데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한다. 이 돈을 저축하기도 하고 최고급 아이폰을 사고 데이터를 구매하는 데에 쓰기도 하지만 하우징 비용/ 그로서리 비용으로는 쓰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님과 동거하는 문화가 지배적이고 자기 집에서 사는 자식들에게 하우징 비용 (방값) 이나 식료품 값 (그로서리 비용) 을 청구하지는 않는다. 이민자들의 자식들, 이민 1.5세대, 2세대들은 대부분 부모님 집에서 얹혀 살지만 부모들에게 하우징 비용과 그로서리 비용을 내지 않고 부모들 또한 애써 청구하지 않는다. 부모 세대에게 당신의 자식들에게 집세와 식료품 값을 청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아이들도 그냥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편의를 취한다. (감사의 의미로 돈을 드리는 아이들도 물론 당연히 있을 것이다.) 뭐 그런 방식 또한 나쁘지 않다. 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거니까.

 

그런데 나는 가끔 의아한 게 있다. 한국에서 자기 자식들을 조기유학시킨다고 일찍부터 데려오거나 홀로 보내 한국인 가정에 맡긴다. 아이들과 함께 건너온 경우, 여기까지 와서 또 한국인 커뮤니티에 정착해 한국 본토에 있는 교회보다 더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인 교회에 다닌다. 아이들은 이 나라 학교에 다니지만 집에 가면, 주말에는 한국본토보다 더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커뮤니티에서 성장한다. 나는 이런 아이들의 뇌 속이 얼마나 복잡할까 그런 의아함과 궁금함을 가끔 품는다.

 

간혹 이민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형사범죄를 저질러 꽃개가 일하는 곳에 오는 젊은 청년들을 보면 그들이 어떤 성장과정을 겪었을까 생각한다. 대화를 나눠보면 단절이 많다.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고 나는 그들을 사랑해. 그런데 어느날 위기상황(에피소드) 이 발생하면 대부분 부모님을 욕하고 저주한다. 글쎄 뭐 여기까지도 흔하고 흔한 그런 스토리다. 꽃개도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저주하고 욕하는 그런 때가 왕왕 있었으니까. 

 

직장에서 만나는 동료들 가운데 중고등학생을 키우는 사람들은 고민이 많다. 이 나라는 그들이 떠나온 나라보다 "유혹"이 더 많다. 7학년 (중학생) 만 되어도 마리화나 같은 약물(드럭) 의 유혹이 많다. 학교 정문만 벗어나도 담배를 피워물 수 있다. 10학년이 넘어 혼자 돌아 다녀도 되는 권리를 누리는 아이들은 그만큼 더 또래 아이들의 압력과 따돌림 문화에 쉽게 노출된다. 남학생들은 동네 갱들이 권하는 유혹 (약물거래조직에 참여하고 그 이권을 누리는) 에 보다 쉽게 노출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국에서 오신 학부모들이 "좋은 학군"을 따지는데 그런 학군이라고 위의 문제들이 없지는 않다. 오히려 잘생기고 집안 좋은 백인아이들이 약물을 더 많이, 은밀히 하는 경우도 많다. 혹은 좋은 학군이라고 해서 애써 찾아가 아이를 등록시켰는데 한국인, 인도인, 이란인 학생들만 바글바글한 케이스도 있다.

 

이 낙서를 어떻게 마쳐야할지 잘 모르겠다. 속이 복잡하고 시끄럽고 그렇다. 직장에서 나를 괴롭히는 (본인들은 본인들이 하던대로 살아온대로 하는 거라고 믿고 있겠지만) 몇몇 나라 출신 아저씨들아, 나는 너의 엄마가 아니야. 관심없어, 라고 말하면 그 주제로 더 이상 대화하는 게 아니야, 그런 얘기까지 해줘야 겠니. 너 진짜 무례한 사람이구나, 이런 무례한 말을 내 입으로 꼭 해야 알겠니. 상대방이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땐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거야. 너 야동볼 때 누가 뭐라뭐라 하면 좋겠니. 음식을 권할 땐 먼저 물어보고 권해, 상대가 싫다고 하면 몸에 좋다는둥 맛있다는둥 후렴은 하지마. 기침할 땐 가리고 하는 거야. 아무도 네 더러운 침에 관심없다구. 동료가 싸온 음식은 너를 위해 싸온 음식이 아니야. 관심 끊어. 네가 집에서 가사노동을 얼만큼 하는지 네 동료는 관심없어. 칭찬받고 싶으면 너를 낳아준 엄마한테 자랑해. 가사노동이 힘들면 도우미를 들여. 그럴 돈이 없다구? 그럼 아닥하고 조용히 해. 화장실에 들어갈 땐 노크를 먼저 하는 거야. 무엇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자들은 너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 있는 꽃이나 방향제가 아니란다. 우리 이제 문명인으로 좀 살아보자. 화이팅!

 

 

 

 

2016/09/28 00:57 2016/09/28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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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잔치

분류없음 2016/09/27 02:23

 

1993년에 태어난 청년학생, 대학생이 쓴 글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런 글을 읽었다. 제목이 무려 "백남기 사망 - 지긋지긋한 사망유희" 이다. 1893년에 태어난 전근대적인 어르신이 쓴 글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데 이건 뭐지 싶다.

 

 

정은이 청년학생께서 예로 드신 사례 "난로" 와 "사육사" . 말 잘했다. "난로"의 기능은 실내 혹은 난방을 목적하는 제한된 장소의 기온을 높이거나 유지해 인간 삶의 질을 쾌적하게 하는 데에 있지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데 있지 아니하다. 따라서 누군가 난로를 사용하다가 해를 입었다면 목적에 반한, 즉 명실이 상부하지 않은 결과를 얻은 것으로 된다. 이럴 때에는 그 행위자가 어쩌다가 그런 해를 입었는지 밝혀야 한다. 정은이 청년학생은 "손을 지나치게 가까이 하여 화상을 입은 행위자의 잘못"이라고 단정한다. 전혀 그렇지 아니하다. 정은이 청년학생의 문맥으로 보건대 아마도 정은이 청년학생은 조선시대에 쓰던 화로를 현재 21세기의 "난로"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고회로가 그 수준으로 제한됐다는 얘기다. 시대적 맥락 - 조선시대, 물리적 맥락 - 화로 (손대면 덴다. 아 뜨거)

 

 

사용자 삽입 이미지귀뚤에미 놔드려야겠어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정은이 청년학생은 아마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난로라는 물건은 공장시스템(매뉴팩처)을 통해 대규모로 생산된다.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은 (장차 있을지도 모를 소비자/피해자들의 고소고발에 대비하기 위해) 사용안내서나 정부에서 마련하여 통일한 안전지침, 안전펜스, 아니면 최소한 케이에스마크 따위라도 붙여서 판매시장에 내보낸다. 아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난로라도 처음에 사면 깨알같은 사용설명서 (인스트럭션) 따위가 최소한 한 장 씩은 들어있을 것이다. 이게 없다면, 즉 안전한 난로사용안내서가 없다면 혹은 내용이 불충분했다면 화상사고의 책임은 (일부분 혹은 전체) 난로를 만든 회사가 져야한다. 형사상 책임 혹은 최소한 민사상 책임이라도 회사/ 기업이 져야 한다.

 

 

한편 사람들이 모두 사용안내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난로가 작동하면 뜨겁고 위험할 수 있다는 신호를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미리 줘야 한다. 그것은 노란색 "위험" 혹은 "으미 뜨거" 같은 표지판이 될 수도 있고, 철사로 만들어 난로를 감싼 펜스, 모래를 담은 안전판넬,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알람을 울리는 센서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이 이용하는지 상황과 맥락에 맞게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신호"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물건을 만들어 이윤을 올리는 기업은 소비자들이 물건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대로 안내했는지, 소비자는 또 어떤 식으로 안전에 만전을 기했는지, 사용자에게 안전한 환경이었는지, 이러한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위자의 책임"이라고 덮어씌우면 답이 없다. 이건 마치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난 그 사람들 잘못" 이라는 말 같아서 몹시 말 같지가 않다. 아무말이나 한다고 다 말은 아니다. 무슨 아무말대잔치하는 데도 아니고.

 

 

갈비뼈가 부러진 아이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사파리를 운영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철저한 안전대책과 매뉴얼을 수립해야한다. 사육사나 사파리운행가이드에게 안전교육을 시켜야 하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FIRST-AID/ CPR (응급처치/ 심폐소생술) 교육도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나 아이들, 임산부, 노인들을 손님으로 받는다면 그에 응당해 단계별 안전대책을 강구하고 비상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사파리서비스를 제공하여 돈을 버는 회사가 만약 이러한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면, 혹은 마련했다 하더라도 부실하게 운영했다면 당연히 갈비뼈가 부러진 아이가 완쾌할 때까지 경제적, 심리적, 의학적 책임과 보상을 해야 한다. 안전대책을 철저히 했다손쳐도 회사가 온전히 책임을 면할 길은 없다. 이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아이가 부주의했다" 고 단정하여 행위자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에서는 어린이들이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다. 그런 사회는 존재할 가치도 이유도 없다. 어린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이 건강하게 살아남아 생존할 수 없는 세상인데 그 사회가 어떻게 존속할 수 있단 말인가.

 

 

조선시대에 쓰던 화로는 장인이 열과 성을 다해 만들었겠지만 당시에는 사용안내서, 안전지침서, 케이에스마크 따위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조선시대 서민들이 살던 가옥은 겨울을 이겨내기엔 너무 추웠고 청동화로라도 들일 수 있으면 다행이었지만 이조차도 언감생심인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안전", "쾌적한 인간 생활" 이라는 개념은 어쩌면 그 때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쌀밥에 고깃국만 먹어도 천국이었을테니까. 1970년대만 해도 깨진 구들장 사이로 연탄가스가 새어나와 밤사이 안녕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꽃개도 연탄가스 마시고 죽을뻔 했던 일이 있었다. 1980년대 말의 일이었다. 전근대와 근대가 병존하던 시대였다. 부지깽이로 쑤셔가며 한 겨울을 나던 화로쓰던 시절의 이야기를 1993년생의 대학생이 읊어대고 있는 것을 보니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나 싶기도 하고 공적자원 (교육부 지원금: 세금) 을 들여 저렇게 타입슬립한 청년에게 고등교육 (대학교육) 을 제공하는 게 의미있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누구이고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저런 친구는 학기 당 등록금을 일 억 정도는 내야 국가적 수준에서 고등교육서비스를 제공해도 아깝지 않을텐데 뭐, 그런 생각도 들고 그렇다. 젊은 친구가 참 안됐다.

 

 

* 백남기 선생이 부디 영면하시기를 그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The case of Liebeck v. McDonald's Restaurants / Hot Coffee (film, 2011); 맥도날드는 이 사건 뒤로 일회용 커피컵에 "이 커피는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노티스를 인쇄했다.

 

* 대한민국 헌법 10조

 

* 사진 가져온 데: http://study.zum.com/book/13180 근대 시설의 도입

2016/09/27 02:23 2016/09/27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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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분류없음 2016/09/25 04:47

*interesting paper

https://newleftreview.org/II/100/nancy-fraser-contradictions-of-capital-and-care

 

 

The result was a crisis on at least two levels: on the one hand, a crisis of social reproduction among the poor and working classes, whose capacities for sustenance and replenishment were stretched to breaking point; on the other, a moral panic among the middle classes, who were scandalized by what they understood as the ‘destruction of the family’ and the ‘de-sexing’ of proletarian women. So dire was this situation that even such astute critics as Marx and Engels mistook this early head-on conflict between economic production and social reproduction for the final word. Imagining that capitalism had entered its terminal crisis, they believed that, as it eviscerated the working-class family, the system was also eradicating the basis of women’s oppression.7 But what actually happened was just the reverse: over time, capitalist societies found resources for managing this contradiction—in part by creating ‘the family’ in its modern restricted form; by inventing new, intensified meanings of gender difference; and by modernizing male domination. p.7

 


...[T]he broad tendency of state-managed capitalism in the countries of the core was to valorize the heteronormative, male-breadwinner, female-homemaker model of the gendered family. Public investment in social reproduction reinforced these norms. In the us, the welfare system took a dualized form, divided into stigmatized poor relief for (‘white’) women and children lacking access to a male wage, on the one hand, and respectable social insurance for those constructed as ‘workers’, on the other. p.13

 

 

All of them—including anti-racism, multiculturalism, lgbt liberation, and ecology—spawned market-friendly neoliberal currents. But the feminist trajectory proved especially fateful, given capitalism’s longstanding entanglement of gender and social reproduction. p.15

 


...Northern feminists often describe their focus as the ‘balance between family and work’.31 But struggles over social reproduction encompass much more: community movements for housing, healthcare, food security and an unconditional basic income; struggles for the rights of migrants, domestic workers and public employees; campaigns to unionize service-sector workers in for-profit nursing homes, hospitals and child-care centres; struggles for public services such as day care and elder care, for a shorter working week, for generous paid maternity and parental leave. Taken together, these claims are tantamount to the demand for a massive reorganization of the relation between production and reproduction: for social arrangements that could enable people of every class, gender, sexuality and colour to combine social-reproductive activities with safe, interesting and well-remunerated work.  pp.17-18

 

*

http://www.vop.co.kr/A00001069775.html

"~가족 중 누군가는 하루 12시간 씩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대신, 가족 중 다른 누군가는 역시 그에 맞먹는 시간 동안 밥하고 빨래하고 자녀 키우는 그림자 노동으로 임금노동자를 지원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의 가정은, 노동자는 노동으로 착취당하고, 전업주부는 노동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착취당하는 이중 착취 시스템에서 살아야 한다.

일리치가 보기에 이 그림자 노동 시스템이 더 악랄한 이유는 자본이 그림자 노동에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심지어 그림자 노동으로부터 이윤을 벌어들이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림자 노동자마저 경쟁으로 내몬다. “엄마라면 애들을 더 잘 키워야 해!” “가정주부라면 남편을 더 잘 내조해야 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림자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더 잘 도와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에 더 나은 돌봄노동을 위해 돈을 쓴다. 요리를 더 잘하기 위해 요리학원을 다니고, 아이들 숙제를 더 잘 도와주기 위해 숙제 도우미를 고용한다. 길거리에 널려있는 보습학원들? 일리치의 눈에 이런 것들 전부 다 “자식을 더 잘 키워야 해!”라는 돌봄노동 경쟁 구도에서 자본이 이윤을 빼앗아 먹는 착취 구조일 뿐이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1614

this is a great one. stunning!

https://www.uvm.edu/~asnider/Ivan_Illich/Ivan_Illich_shadow_work.pdf

https://www.thelibrarybook.net/pdf-shadow-work-ivan-illich.html

 

 

* speechless article http://rp.jinbo.net/change/27714

2016/09/25 04:47 2016/09/25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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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분류없음 2016/09/19 15:55

fentanyl, overdose, fatal death and its prevention

 

http://www.theglobeandmail.com/news/national/how-fentanyl-is-getting-through-canadas-border/article29547443/

 

https://www.statnews.com/2016/04/05/fentanyl-traced-to-china/

 

http://redtea.kr/pb/pb.php?id=free&no=3719

2016/09/19 15:55 2016/09/1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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