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 출판사 노동조합 2

분류없음 2013/05/1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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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 천 년만에 하려니까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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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온타리오 주는 얼마 전 사회서비스 제공 분야에 LHIN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외관으로만 보면 아주 그럴싸 하다. 그런데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골 때린다. 제도 전반을 MBA출신들이 수립해서 그런 건지 몰라도 아주 골을 때린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케이스를 담당하는 소셜워커(사회복지사)가 하루에 몇 건 정도를 처리하고 전체적으로 총괄해서 보고하고 그에 따라 컨설팅도 같이 하고 뭐 그러는 자못 환상적인 제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LHIN을 도입한 뒤로는 한 사람의 워커 당 하루에 몇 건 그러니까 예를 들면 다섯 건, 을 반드시 해야 한다. 클라이언트마다 상황이 다르고 각 클라이언트가 매일매일 처한 조건도 다를텐데 그냥 수적 개념으로 몇 건 처리, 이렇게 바뀌어버리니까 어떤 몰지각한 워커는 전화해서 하이 긋모닝, 에브리싱이즈올롸잇? 그러고 전화끊고 아싸 한 건 처리, 혹은 커피숍에서 십 분 간격으로 클라이언트 미팅 약속을 잡고 한 시간만에 한큐에 처리. 그리고 클라이언트메니지노트를 입력한다. 그리고 땡. (이 나라에서는 사회복지사의 위상이 제법 높은 편이라 생각없는 사람들이 많이들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슬픈 것은 그렇게 하루 다섯 건을 처리해도 그 워커 당사자에게는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거다. 클라이언트들은 죽어날 것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권리도 모른 채 넋놓고 당하는 거지. 아니, 자신이 착취당하고 (being abused)있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

 

출판업에서 그것도 인문(과학)을 다루는 출판업에서 편집노동자들에게 하루 몇 쪽씩 정해서 일을 시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언제까지 책을 마치고 출간한다,는 대략의 아웃라인을 책임편집자가 수립하고 편집(장)회의에서 합의하면 그 아웃라인의 세부사항은 담당자가 알아서 하고 중간중간 편집장은 중간보고를 듣고 애초의 계획대로 길을 잘 가고 있는지 길눈이 역할을 하면 되는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아닌가? 아닐까? 문제집 만드는 회사도 아니고 - 예전에 문제집 만드는 데에서 일해봐서 잘 안다, 는 이명박식 접근입니다 - 호떡 찍는 데도 아닌데 이렇게 하면 잘 안된다는 것을 회사도 잘 알고 있을텐데...

보다 더 유연하게 보다 더 자유롭게 그러면서 보다 더 명백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인문 분야 편집노동자들이 일을 더 잘한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도 아주 자유롭게 하고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교양을 드높이지 않으면 도저히 책을 만들 수 없구나, 라는 사명감(?)이 들어야 수유연구실에도 제 발로 걸어가고 때로는 워크샵 기획안을 제출하기도 하고 그러는 거다. 이게 심해지면 집에서도 일을 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일을 하고 똥을 누면서도 일을 하고, 망조가 들기 시작하는데 그 때가 바로 편집장이 혹은 사장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시점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노동력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시점이므로 회사 입장에선 감가상각비 계산 상 손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너에게 휴가를 주겠어. 좀 쉬고 오지. 태국행 비행기를 끊어 놓았으니 일주일 놀고 오면서 태국사람들은 무슨 책을 읽는지, 푸켓에 놀러온 서양것들은 무슨 책들을 들고 왔는지 그런 것도 알아오면 아주 좋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돼. 어쨌든 자네는 재충전이 필요할 것 같아. 자네가 진행하는 책은 당분간 편집장이 홀딩하고 있는 것으로 하지. 자, 다녀오게.

 

따라서 나는 포드식 편집프로세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왜 회사가 자발적으로 그런 대략 좋지 아니한 구렁텅이에 빠졌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 그린비출판사가. 누군가 인격이 불량하거나 상상력이 빈약하지만 대단히 부지런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건가? 했다가는 맞아맞아,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모두들 힘들었던 거야. 뭐 그런 식으로 급정리.

즉, 포드식 프로세스 철회는 노조의 승리이겠으나 더 나아가면 회사로서도 좋은 일이다, 뭐 그런 것.

 

징계는 글쎄.

이건 좀 센 거라서 생각하면 할수록 골이 아프다. 자존심과 명분 싸움. 동종업계 싸장님들 눈치도 봐야 하고, 업계의 관행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도 좀 거슬리고...

그냥 통크게 결정하세요. 책 만들 때 사고를 낸 그 당사자와 관행대로 처리하세요. 하던대로 하세요. 뭘 자꾸 일을 크게 만들고 그럽니까. 정말 장사 안 하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공격성을 보이는 비조합원  마케터 썸온에게,

스피드욕배달서비스 (1818-1818)를 주문하고 싶지만 당분간 어렵겠네요. 조합원들에게 공격성을 띠지 말아주세요. 공격(성)은 상대방 수비수들에게 하는 거니까요. 누가 당신의 팀인지 찬찬히 살펴보세요. 자살골은 한 번이면 족해요. 당신이 결국 위험에 처했을 때 누가 마지막으로 당신의 그 손을 잡아줄 것인지 집에 가서 벽보고 잘 생각해보세요.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는 건 아니잖아요. 코 막혔어요?

 

2013/05/13 13:02 2013/05/1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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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3/05/18 00:33 Modify/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비밀방문자 2013/05/16 08:48 Modify/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3. 비밀방문자 2014/12/23 02:57 Modify/Delete Reply

    출판사도 노조도 헤어나올 수 없겠군요
    구렁텅이에서 발목만 잡고 있으니
    그린비 아깝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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