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민주주의3

분류없음 2013/08/18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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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대통령이 되는 그 다이나믹에서 국회의 중요성, 이른바 형식(제도)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절감한 것 같다. 사실 한국 (제도) 정치는 많이 빈약하다. 형식, 절차, 그 형식과 절차의 준수, 입법과정의 투명성… 뭐 부르주아민주주의의 기본기도 지킬 줄 모른다. 이게 좋네, 나쁘네는 일단 논외로 치고. 그걸 잘 지키려고, 지키고 애썼고, 지키고 싶어했던 21세기 최초의 정치인이 노무현이다. 되도록이면 여의도 (정치)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던 근.대.적. 개념의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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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국정원이 촉발한 NLL 논란을 여의도에서 잠재우길 바랐던 것 같다. 문재인도 마찬가지. 그 점에서 현 대통령과 과거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 사이의 공통코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바람과는 달리 다시 불길이 여의도 밖으로 퍼지고 있다. 이 불, 원래 누가 지폈나? 박근혜 아닌가? 박근혜는 그녀의 바람대로 여의도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으면 ‘여의도식’으로 했어야 한다. 국정원 논란은 나(대통령 자신)의 권위를 위해하는 것이므로 내가 직접 해결하겠소, 헌법이 정한 기준과 원칙대로 했어야 했다. 제도 정치가 정한 기본기. 근.대.적.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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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판. 두 이가 풀풀 먼지 나는 제도 정치에 다시 도전했다. 증인선서를 안 한 채로 모든 혐의를 부인했으니 뭐, 이건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는 건가? 뭐지? 여의도 식으로는 안 하겠다는 건가, 하겠다는 건가? 뭐지? 안 하겠다는 거지. 좋아. 그런데, 뭐지. 여의도에 한 발 걸친 사람들까지 뜨악, 했다는 거. 아, 이건 좀 세다. 그런데, 문재인은 역시, 역시 문재인. 시청앞 집회에 안 나겠단다. 원, 판,이나 문재인이나 뭐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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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근대 이전으로 돌아갔다. 이미 한참 이전에 돌아갔다. 근대 이전이니 방법이 뭐가 남았나. 전근대적 방법 밖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가 성숙하기 이전의 방법 밖에 뭐가 남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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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애를 써도 그 역능 (dynamics)을 느낄 수가 없다. 가만히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했으나 여전히 그냥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촛불 집회가 한참인데, 그 다이나믹을 공감할 수 없으니 슬플 뿐.

2013/08/18 03:09 2013/08/18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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