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이란. <자정을 지난 지하철에서 벨트를 반쯤 풀고 붉게 달아오른 입술을 벌렁이는 변태를 만나는 것 만큼이나, 불쾌한 감정을 선사하는 오래된 벗.> 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어린애도, 십대도, 청춘도 아니었다.

무기력은 무능력을 잉태하고 실패와 나약한 종속감을 낳는다고 어느 머리에 피가 다 마른 사회운동가는 말했었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이미 백발의 그것과 비슷한 낡고 생색 없는 과거만 가지고. 나는 겨우 사람이 되었다. 뼈마디가 분절된 나의 꿈은 키가 자라지 않고, 파벌만을 만들어 일상을 나누어 가졌으므로 나는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못 하고, 때마다 이 당, 저 당을 기웃거리며 밥을 빌어먹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순수하고 동시에 사악하다 스스로 여겼다. 높으신 이의 평등을 요구할 의로움과 구제와 사면을 구걸할 뻔뻔함도. 나는 처음부터 지급받지 못했었다. 끼니를 걱정하는 소작농의 여덟 번째 자식과 같이 나의 이상은 궁핍으로 태어나 가난으로 자랐다. 야망도 재능도 용기도 끈기도. 그 어느 하나에도 부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참으로 나는 게으름을 피웠다. 공짜음악으로 허기진 신경을 달래고, 도둑처럼 남의 글을 기웃거리며 말을 배웠다.

 

담도 없이 댐을 짓 듯 벽을 쌓고, 손바닥만 한 창을 두엇 내어 놓고서는 이빨도 없는 독거노인과 같이 노린내를 풍기며 나는 혼자가 되었고, 그게 좋았다. 아는 척, 착한 척 가증스럽게 웃지 않아도 되고, 때로는 자기개발서 같은 허망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코 수술, 안면윤곽술, 필러시술, 치아교정, 모공수축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되고, 겁나 많은 여자들과 겁나 많은 남자들이 결코 입을 닥치지 않는 신 새벽과 신 역사를 함께 걷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집을 지어 살겠노라. 나는 종종 어느 컴컴한 정치인처럼 입에 발려 웅변을 했다.

껌 좀 씹던 훈장도, 일등석 서비스를 주문할 족보도 사지 못해 기가 막힌 이 순진하고 새파란 노친네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테레비를 보고 인터넷을 하고 댓글을 달고 담배를 피운다. 아기들은 야한 영화와 같이 무섭게 태어나고 있는데, 스승도 없는 늙은 제자는 홀로 헐 벗어 그저. '청산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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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3 06:18 2010/09/23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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