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박을 보고....

외박은?

 

 외박은 78분짜리 독립영화다. 감독은 김미례씨다. ‘노가다’라는 작품을 내놓았던 여성감독이다. 이번에는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510일 간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품을 선보였다.

 

2007년 6월 30일 밤이었다. 대형마트 홈에버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이 상암 월드컵 점으로 속속 모여든다. 이들은 저마다의 지점에서 계산원과 판매원으로 일하는 아줌마들이었다. 대한민국의 ‘비정규 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되기 하루 전날 대량해고를당한 사람들이었다.

 

그야말로 소박한 꿈, 1박 2일 동안 계산대 점거농성을 통하여 복직을 주장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외박은, 집 밖에서의 잠은, 무려 21일 간이나 계속된다. 여기다가 천막농성까지 합치면 투쟁기간은 무려 510여일로 이어진다.

 

무엇이 이들을, 아줌마들을 510일 동안이나 투쟁하도록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이랜드 그룹에서는 이들을 ‘비정규 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되기 하루 전날 몽땅 해고를 해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안다. 이 땅의 비정규노동자라는 것은 똑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에 비해서 받는 월급이나 대우가 딱 반절이라는 것을, 이쪽과 저쪽 우리와 너희로 편을 가르는 차별의 상징이 이라는 것을, 그래서였다. 단 하루라도 자신들의 삶터에서 복직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보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승진할 뻔한 하루 전날 오히려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이었다. 무려 1천여명나 되었다. 그동안 마음껏 싼 값에 부리던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을 정규직으로 승진시켜 비싼 임금을 지불하기가 싫다는 속내였다. 그리하여 박성구 이랜드 회장은 법 시행 하루 전날 그 어느 업체보다도 빨리 그리고 잔인하게, 바로 자신을 위해 헌신하던 노동자들을 추풍에 낙엽 베듯이 전격 내쳐버린 것이다.

 

“생각해보세요. 해고 통보를 받은 상태에서 계산업무를 보는 제 심정이 어땠겠어요? 막 다리가 떨리고 심장이 울렁거렸어요.”하며 울먹이는 여성 노동자의 모습은 오로지 살고 싶다는 절규였다. 그 여성 노동자는 아이가 넷 딸린 아줌마였다.

 

이렇듯이 어린 자식들을 집에 두고 온 사람, 병든 시어머니를 병원에 맡기고 온 사람, 사별한 남편을 대신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는 주부 등 온갖 사연의 여성노동자들이 오로지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서 한 장소에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파업 첫날, 밤을 맞는 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카메라가 이 모습을 천천히 훑고 지나간다. 거기엔 각자의 개성을 뽐내듯이 입은 옷색깔 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준비해 온 타올과 여분의 옷을 이불 삼아 덮고서 하나 둘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이냐? 분위기는 들떠있고 눈빛은 꿈을 꾸는 소녀들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으니 말이다. 빨강 노랑 파랑 그리고 보라, 무지개동산이 따로 없었다. 별이 빛나는 밤이 따로 없었다. 이것이 점거한 계산대 사이사이에 자리를 펴고 누운 그들의 모습이었다.

 

왜일까?

일탈을 꿈꾸며 집 밖에서 처음 맞는 1박 2일의 외박이었으니까.

 

“우리가 매장에서 일하는 시간요? 이게 우리 주부들한테는 오히려 내시간인 거예요.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일에서 떠나있는 시간이 저희들한테는 나만의 시간인 거지요....”이렇게 말하는 아줌마들인지라 ‘하루만 이렇게 하면 내일이면 일할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풀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딱 1박 2일만 집을 나와서 외박을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튿날이 되었다. 아줌마들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지만 말고 자신들의 주장을 외쳐야한다는 것을 깨게 된다. 통일된 대오를 형성해야 투쟁이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았다. 8박자 구호를 외쳐보지만, 팔도 안 올라가고 목소리도 잘 안 나온다. 줄도 삐뚤삐뚤 박자도 엉망 이거 원 죽이 맞아야 해먹지....

 

“다시, 자 다시 한 번! 해~봐아!” “박성수는 각성하라! 해고통보 웬말이냐? 일터 복귀 원한다. 성실교섭 응하라! 응하라!” “아· 이제 좀 되네!”

 

먹어야 사니까, 국도 끓이고 밥도 해 나른다. 상추며 쑥갓이며 치커리 등 씻어온 쌈재료를 펼쳐놓고 나무젓가락으로 반찬 뚜껑에 밥을 덜어서 전달, 전달, 그래 맛있게 먹어! 먹어야 힘을 쓰는 것이여!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 그리고 21일 째, 그 사이 아줌마들은 구호를 다듬고 동작을 곁들이는 연습도 한다. 어떤 때는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고 투쟁을 하며 느낀점을 삼행시로 지어서 발표도 한다.

 

“에구, 왜 이놈의 마이크가? ‘틀리면 욕먹는다. 하는 계산 다시 보자. 조심조심 살피며 말없이 슈퍼맨처럼 잘하자!

’ 이상 캐쉬 아줌마 000”

“호호호, 좋아좋아! 박수!”

 

그러나 밖은 살벌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점거농성 첫날부터 수십대의 전경차들은 매장을 에워싸고 있던 터였다. 무전기를 든 사복차림의 형사들은 이날따라서 유독 더 눈을 번득이며 바삐 오가는 것이었다. 끼리끼리는 무엇인가 부지런히 지시를 주고받으며 분초를 다투기나 하듯이 긴박한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었다.

 

“자 자! 상황 빨리 이어라!”

한 사나이의 목소리가 터진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전경들이 매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아줌마들은 바닥에 들어 누워있었다. 손에 손을 또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줌마들이 바닥에 누운 것은 점유면적을 좀 더 넓게 하고 대오를 촘촘하게 하려는 뜻에서 인가 보았다.

 

안이나 밖이나 긴장감이 돌았다. 몇 겹이냐? 방패를 든 전경들이 열을 지어 에워싸고 있다. 그 앞에 지시하는 형사들이 있고, 선발대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아줌마들을 끌어내는 일은 일단의 여경들이 맡아서 진행하고 있었다. 역할분담인가 보다. 성희롱이나 불필요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전술 차원인가 보다.

 

앞쪽에서부터 5~6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한 사람을 뜯어내고 곧바로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을 또 떼어내서 차례차례 대오를 무너뜨리면서 차에 싣는다. 공권력의 위력이다. 아줌마들의 매장점거 농성이 21일 간만에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투쟁은 계속되었다. 매장 밖에서 천막농성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소박한 꿈은 바로 병든 시어머니, 어린 자식들을 두고 나온 터에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한 직장복귀였다. 그러니 이 ‘소박한 꿈’을 이루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보자. 이 소박한 꿈을 이루려는 가슴 떨리는 일탈이 어찌하여 510여일의 장기투쟁으로 이어진 거냐 말이다.

 

아줌마들의 요구가 지나친 것인가?

이들을 해고한 자본가의 조치가 악랄한 것일까?

 

물벼락이 쏟아진다. 방패로 천막을 내리치고 지지대를 무너뜨리니 천막농성장이 힘없이 허물어진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물벼락 속에서 대열을 짓고 앉아있는 아줌마들은 서로 의지한 채 고개를 숙이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다. 보아라! 월 80여만원 받는 일자리 하나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며 싸우는 모습을! 절실하고 다급한 웅변이다. 아니, 그것은 절규이며 단말마의 함성일 수밖에 없다.

 

 510일, 이랜드그룹의 홈에버가 삼성그룹의 홈플러스로 넘어갔다.

 

그리고 아줌마들은 각 매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농성을 주도한 간부급들은 돌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일자리를 원하는 동지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생활고를 책임져야 하는 주부가장을 살리고, 아이가 넷이나 되는 엄마에게 일자리를 찾아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다급한 문제 앞에서 정작 자신들의 일자리는 희생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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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2:48 2010/02/04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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