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날레는 도깨비잔치로~
피날레는 역시 ‘도깨비잔치’!
한판 놀자! 유미별 '춤따세무용단' 겨울 아침 공연
아침 일찍 서둘렀다. 춤으로 따뜻한 세상을 여는 ‘춤따세’ 무용단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선정한 ‘생활 속 찾아가는 예술’단으로서 그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아침 공연, 그것도 9시 반에 하는 공연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전날 밤늦게 까지 총연습을 한 터였다. 한숨 자기 위해서 눈 좀 붙였는가 하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단원들은 또다시 집을 나선다. 부리나케 8시까지 무용단에 모이기 위해서다.
찬바람을 가르며 용케 모인 사람들은 얼굴을 재빨리 매만지고 공연에 필요한 소품과 의상을 챙겨들었다. 9시까지는 천하없어도 공연 장소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공연을 하게 될까? 아무튼 오늘 공연으로서 유미별 ‘춤따세 무용단’은 서울문화재단과 약정한 2009년도의 공연일정을 모두 마치게 된다.
무용수들은 그야말로 힘깨나 들겠다. 대체 왜 그렇대? 공연 치고는 과히 새벽이라 할 수 있는 아침 공연이기 때문이다.
토요일에 잡힌 학교 공연은 거의가 그랬다. 1,3주 토요일은 ‘놀 토’고 등교하는 2, 4주 토요일에는 특별활동이 끼어 있어서 아침 조회가 끝나면 학생들을 곧바로 강당에 집합시키는 거다. 그러면 9시 반이 될 테니까, 그 9시 반에 딱 맞춰서 공연을 해달란다.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하교조치가 이루어진다.
이런 수순에 맞아떨어지려면, 학교측에서 원하는 시간은 대게가 9시에서 10시 사이가 되었다. 학교 사정에 맞춰 하는 9시 반 공연..... 이게, 오후 아니면 늦은 밤 시간에만 익숙해있는 무용수들에게는 새벽이지 뭐냐?
‘춤따세 무용단’이 중,고등학교로 찾아가서 하는 순회공연은 한국무용을 베이스로 해서 공연 때마다 레퍼토리와 순서가 조금씩은 다르다. 그리고 관람 인원과 장소에 따라서 다양하게 짜여 진다. 한국무용 전통과 창작, 1인무와 2인무 혹은 군무 그리고 현대무용과 성악 어떤 때는 성악에 춤을 곁들인 작품도 있다. 여기다 판소리와 정가가 들어있고 ‘한국무용 창작 퍼포먼스’도 한 축을 이룬다.
체육관처럼 큰 장소에서 하는 공연에는 군무가 필수다. 그 많은 인원, 그 한창 나이인 청소년들을 사로잡으려면, 화려하면서도 역동성이 느껴지는 춤, 이런 점에서 한국무용 군무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여기다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곁들여지면 그야말로 더 할 나위 없이 제격이다. ‘멀티미디어’실 혹은 ‘시청각실’이라고 하는 조그만 장소일 경우는 물론 1인무나 2인무 위주로 프로그램이 짜여 진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춤따세 무용단’ 단장은 앞장서서 공연장소로 찾아 들어갔다. 각자 앉을 의자 하나씩을 들고 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아이들은 부자 집 창고에 가득 쌓인 쌀가마처럼 풍요로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아! 오래간만이다. 왁자지껄~ 개굴개굴~ 시끌벅적 소리!
교장선생님의 인사말씀과 특활부장 선생님의 무용단 소개에 이어서 곧 바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자! 그럼 이젠 공연만 잘 하면 되네! 780여명의 청소년 , 대단한 인원이다.
첫 순서는 전통춤이었다. 국수호류 ‘입춤’으로서 말 그대로 서서 추는 춤이라는 뜻이다. 무용수는 김대현이라는 남자무용수, 자기 분야에서 일정한 경지에 오른 예인의 모습은 아름답구나. 폐부 깊숙이 진한 감동을 주는 구나. 토요일 아침, 관객으로 앉아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도, 일렁이는 감동의 파장을 분명히 마음껏 맛보고 느끼리라.
더구나 피리며 대금이며 장구, 그리고 가야금과 거문고 같은 다양한 우리 악기에서 뿜어 나오는 구성진 어울림 속에서 구현되는 정중동 혹은 나긋나긋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런가 하면 돌연히 휘몰아치는 춤사위 앞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았다. 한국인에게는 분명히 500년 아니 몇 천 년 전부터 흐르는 한국인만의 특유한 감성의 인자가 있는 것 같았다. 우리 것에 대한 갈증과 한은 면면히 가슴 속에 축적되어 있다가 어느 날 때를 만나면 불현듯 한 모금의 시원한 옛 샘물을 마시는 것 같은 청량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이것이 감동이요, 정한이요, 신명인 것이다.
"역 쉬~!”“저것 좀 봐! 얘들아! 우리 전통춤에는 이런 맛이 있어!” 무대 위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자니 어느덧 해설대 쪽에서는 다음 작품의 해설이 이어지고 있었다.
성악과 2인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먼저 Once upon a dream과 nella fantasia 두곡을 부른 다음에 세 번 째
‘축배의 노래’ 때는 2인무 형태의 춤이 곁들여졌다. 드레스를 입은 소프라노가 높고 낮은 음역을 넘나들며 노래를 부르다가 ‘축배의 노래’에서는 정장을 갖춰 입은 남성무용수와 함께 경쾌하게 춤을 춘다. 가수는 노래를, 무용수는 춤으로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축배의 노래’는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1막에 나오는 무도회 장면이다. 테너와 소프라노가 왈츠풍의 노래를 부르는데 이때 남자는 여자를 유혹하기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이 부분을 ‘춤따세 무용단’에서는 무용과 성악을 결합시켜서 현대적으로 다시 꾸며 시도해 본 것이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오! 예! 와우? 우우~ 멋져! 등의 갖가지 반응을 보이며 재미있어했다.
이어서 ‘일어나!’라는 13분짜리 현대무용과 한국무용 창작작품, 그리고 다음으로 판소리로 이어졌다. 판소리는 현대무용가 안은미씨의 ‘바리’에 출연했던 윤석기씨가 춘향가 중에 나오는 ‘사랑가’ 한 대목을 부르는 것이었다.
“학생들! 판소리가 뭔지 아세요? 제가요 오른 손에 부채를 들고 손을 쳐들 땐 ‘좋다!’를 왼손을 쳐들 때는 ‘얼씨구!’라는 추임새를 넣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할 수 있죠?”“.........”“여러분! 추임새 몰라요?”“알아요~”“안다구요? 그래요. 추임새 잘 넣어주면 저 소리 잘할 거고, 안 넣어주면 소리 못할 거에요.~""네에....~""아셨지요? 자 그럼 소리합니다!"
처음에는 추임새를 넣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소리꾼이 다시 한 번 ‘좋다!’와 ‘얼씨구!’를 가르쳐주고 소리에 대해서 즉석 강의를 했다.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고 추임새에 대해서 똑부러지게 다시한번 강조를 하고서야 학생들은 서서히 판소리 ‘사랑가’에 대해서 반응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라도 버전으로 '자슥들, 진즉 그럴 것이제~' 딱 그 턱이었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얼시구~ 좋다!”
자 그럼 피날레는 ‘도깨비잔치’다 !!
도깨비 잔치는 ‘춤따세무용단’이 제 9회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 ‘마스크댄스’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우리의 전래동화에 나오는 혹부리 영감 있잖은가? 여기다 상상 속 괴물인 도깨비, 도깨비는 장난스럽고 어리석고 의리도 있고 한편으로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괴물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영악스럽고 자기 잇속에만 밝은 괴물 보다는 조금은 어리석고 허수룩한 도깨비이기에게 더 정이 간다.
‘춤따세무용단’의 대상 수상작품 ‘도깨비잔치’는 혹부리영감과 이러한 도깨비를 상징 캐릭터로 내세워 춤과 퍼포먼스로 구성한 작품이다. 먼저 안동은 탈로 유명한 고장이니만치 경연에 참가하는 모든 팀들은 잠깐 동안이라도 탈을 쓰는 장면을 연출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춤따세무용단'의 ‘도깨비 잔치’ 도 이 규정에 맞춰 처음 부분에서는 탈을 쓰고 등장한다. 눕고 엎드리고 서있는 무용수들이 세 사람씩 짝을 이루어 기지개를 켜는 장면으로 춤은 시작되었다. 온갖 전통악기가 터뜨리는 합주곡에 맞추어서 잠에서 깨어난 도깨비들은 여왕도깨비를 중심으로 편을 짜서 겨루기를 하는 가하면 바닥을 두드리면서 특유의 괴성을 지른다. 요놈의 도깨비들 혹부리 영감의 혹을 터뜨리며 박장 대소를 하는 건 또 뭐냐? 그래, 잔치판이 무르익고 있구나. 얼씨구 ! 절씨구! 지화자 좋다.
이쯤해서 홀연히 도깨비들의 잔치 마당에 거대한 천이 덧 씌워진다. 도깨비들이 좋아하는 밤? 검은 천은 밤을 상징한다.관객들은 궁금하다. 저 거대한 장막 안에서 도깨비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싸! 과히 전격적이라 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숨에 장막이 걷힌다.
거기엔 9꼬리를 달고 있는 여왕도깨비가 서있고 새끼도깨비들은 여왕의 꼬리를 풀어서 한 가닥씩 붙잡고 있다. 대체 뭐하려고 그러지?
자! 도깨비들 나간다. 두 패로 나눠 선 도깨비들이 여왕의 꼬리 한가닥 씩을 붙잡고서 좌우 대칭으로 서로 엇갈리며 상대방 쪽으로 달려나간다. 이러기를 서너 번, 때는 바야흐로 여왕의 9꼬리를 상징하는 빨강 천이 무대 가득히 휘날리고 이윽고 잠시 멈춰 선 도깨비들은 그 꼬리를 꽃잎처럼 자랑스럽게 흔들고 있다.
무용퍼포먼스는 끝났다. 신난다. 재밌다. 어어? 그런데 ......학생들이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넋을 놓은 것처럼 자리에 그냥 앉아 있네! 순간의 침묵이 물을 끼얹은 것처럼 흐른다. 감동은 환호를 일으키지만 때로는 숙연한 침묵을 낳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함성이 터졌다. 박수가 쏟아진다. 공연이 끝났다.
피날레는 역쉬~ 도깨비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