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닮지 않은 ‘하의도의 김대중 ‘全身像’
-‘DJ의 인상, 표정, 특징‘ 전무한 김대중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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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도의 DJ 생가에 가면 김대중 전신상(全身像)이 있다. 그곳엔 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형물이 있을까. 당연히 그의 족적을 찾아 하의도를 찾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전의 DJ와 좀 더 가깝게 교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저 조형물이란, 도구를 사용하여 3차원의 공간에서 구현된 양감(量感:volume)을 지닌 구성체를 말한다. 현대에 와서는 그것이 석재든 금속이든 재료나 기법 등의 세세한 것을 일일이  따지지 않고, 일정 수준의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는 입체조형물들을 통칭하여 조각(彫刻 sculpture)이라 한다.

예컨대 인체를 소재로 한 조각 작품들은 대게 특정한 사건이나 업적이나 인물을 기리기 위해서 제작한 것이 대부분이다. 전자의 것으로 유명한 조각작품으로는 로뎅의 ‘칼레의 시민’이 있고 후자의 것으로 유명한 조각 작품에는 이탈리아의 피렌체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다윗 상’이나‘ 피에타 상’이 고대 그리이스 작품으로는 미로의 ‘비너스’ 상이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비근한 예로 광화문광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상과 세종대왕상을 볼 수 있다. 세종대왕 상은 좌상(坐像)이요 이순신 상은 입상(立像)으로 제작돼 있다. 이중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 조선 조 제 4대 임금으로서 후덕하고 영민한 성군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대체로 시비가 일지 않으나 입상으로 제작된 이순신 장군 상은 끊임없이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시기적으로도 문제였다.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인 1968년도에 제작된 이순신 상은 베트남 전쟁에서 국민의 지지와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국민동원을 위한 수단 그리고 무력을 통해 집권한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항일의 영웅인 이순신을 내세워 정권의 보신에 이용하려한다는 시선이 강했다. 이에 더해서 중국식 갑옷에, 일본도를 더구나 오른 손에 들고 있는 점, 표준영정과 전혀 닮지 않은 모습, ‘독전고(督戰鼓: 전투를 독려하는 북)’를 뉘여 놓은 점 등 허다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어 두고두고 시비를 자아내고 있는 대표적인 거상(巨像)이다.
그런데 하의도의 김대중 생가에 안치된 DJ 전신상 또한 문제가 적지 않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그를 전혀 닮지 않은 점이다. “도대체 이런 조각상을 무엇 때문에 세워놓았지?”하는 질문이 절로 나왔던 것, DJ 다운 체상(體相)이 전혀 아닌 것이, 전신을 너무 왜소하게 만들어 소인공화국의 어느 소인을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면상에서는 DJ 만의 특징도 표정도 인상도 조형감도 찾아볼 수 없는, 한마디로 DJ와 별 상관없는 번지수 다른 사람을 세워놓고 우기는 꼴이었다.

그 조각상에서는 언감생심 “DJ의 혼까지 느낄 수 있었다.”는 정도는 바라지도 않는다. 표정 한 구석이라도 닮은, 아니면 고뇌하는 모습이라도, 그도 아니면 늘 진중하게 처신한 탓에 특유의 긴장하는 모습 한구석인들 엿볼 수 있었더라면 여한이 없을 정도였다. 누군가에 의해서 별 가치도 없는 허상(虛像) 하나가 의례적인 절차로 안치됐다 싶을 뿐이어서 “도대체 왜 이런 짓을 굳이 하는 거지?”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오늘 날의 시각으로 보자. 김대중 골격이라면 왜소한 체형이 아니요, 상당히 두툼한 입술에, 살짝 뭉툭한 코끝을 지탱하고 있는 높은 콧대와 안광을 빛내고 있는 눈을 담고 있는 전체 이목구비 또한 균형미를 엔간히 갖추고 있는 관상(觀相)의 소유자다 그는. 다만 정치역정이 워낙 순탄하지 못했던 탓에, 가끔 씩 얼굴에서 배어나오는 고뇌의 표정까지는 어쩌지 못한 면이 있다 하겠다.

그래서다. 고인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건설업자가 하도급 단가 후려치듯이 싼값에 흥정하여 일괄적으로 맡긴 탓에 획일적인 기성품을 찍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지 않았다면, 그처럼 인상 하나 닮지 않은 결과물을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40대 대통령 후보로서 100만 청중을 상대로 포효하는 장충단공원 유세장면도 있고, 기쁘지만 고뇌에 찬 취임식 장면도 있었다. 일부러 폄훼할 요량이 아니라면 DJ가 DJ답도록 있는 그대로만 표현해줘도 이처럼 번지수 다른 DJ상(像)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것이 울먹이는 표정이든, 박장대소를 하는 모습이든, 찡그리는 모습이든 간에 ‘DJ 인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해낼 줄 아는 능력과 조형감, 입체감, 형태감을 살릴 줄 아는 데셍 능력(드로잉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선정하는 협의체라도 구성하여 선발한 작가가 제작한 작품이었다면 도무지 이런 우스운 꼴의 영혼 없는 조각상을 DJ상이라고 내놓진 않았을 거다.

폐 일언하고 DJ를 팔아서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고, DJ를 팔아서 선양사업을 한답시고 생색을 내던 허다한 사람들, 이제라도 어줍잖은 자세와 수준미달의 안목으로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단호한 결심과 반성이 필요하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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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19:54 2017/12/04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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