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이야기는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은 좀 다르다. 러시아의 일방적인 우세가 예측되었던 것과는 달리 1년을 훌쩍 넘겼는데도 아직 국제 뉴스에 오르내린다. 러시아는 덩치는 크지만 왕따를 당해버린 노쇠한 루저의 모습으로, 우크라이나는 작고 연약하지만 단단하고 민첩하게 잘 버티고 있는 청년의 이미지로 세계인들의 머리에 각인되고 있다.

체급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두 나라의 전쟁이 여기까지 온 데에는 많은 설명이 있겠지만, 종횡무진 비대면과 대면을 오가며 여러 나라의 의회 연설이나 정치 지도자와의 만남을 통해 존재감을 유지하고 적극적인 디지털 미디어 활용을 통해 우크라이나 국민뿐 아니라 세계시민들과의 소통을 실천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치 지도자의 행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지도자가 세계 시민과 소통
“용감한 사람들의 나라”로 각인돼
이야기 통한 통합·지지 확보 전략
리더십의 요체는 미래 비전 공유

무기가 사람들의 터전과 생명에 물리적 공격을 가한다면 미디어는 전쟁을 대하거나 임하는 시각과 인식을 만든다. 탱크나 전투기의 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두 나라는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디어상에서 벌어지는 인식의 전쟁은 다르다. 러시아의 공세도 만만치는 않았다.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딥페이크(합성된 가짜 영상)로 밝혀진 영상에서 합성된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국 군인들에게 러시아군에게 투항하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었다. 공신력 있는 뉴스매체로 가장한 여러 개의 페이스북 계정은 러시아에 가해진 경제 제재를 풀어야 한다거나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에 전쟁 무기를 제공하면 안 된다는 등 러시아 편을 드는 뉴스를 다국적 언어로 게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미디어 전쟁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젤렌스키 대통령의 승리다.

그는 ‘어쩌다 대통령’이 된 아마추어 정치인이다. 정부를 비판하던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이 ‘도촬(도둑촬영)’한 유튜브 비디오의 확산에 힘입어 결국 대통령이 된다는 내용의 인기 드라마 주인공은 그야말로 드라마처럼 대통령이 되었다. 디지털 미디어를 매개로 대중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익숙한 그의 배우 경험은 묘하게도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발군의 성과를 내고 있다.

전쟁 발발 직후 우크라이나 국민이 겪었을 극도의 혼란을 잠재운 것은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중계였다. 티셔츠 차림의 대통령은 고위관료들과 함께 수도 키이우의 밤거리에서 “대통령과 관료 모두 수도를 지키고 있으며 끝까지 국민과 함께할 것”이라는 휴대전화 셀피를 찍어 올렸고, 이 30초짜리 영상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그는 피해를 본 도시들을 방문하며 열심히 시민들과 대화하고 이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계한다. 그의 부인은 폐허를 배경으로 패션지 보그의 표지에 나와 수많은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해시태그를 달아 지지를 표현하게 했다. 그의 정적들은 전쟁 중에 시간을 허비하냐고 비판하기도 했으나 그는 소셜미디어가 자신이 가진 색다른 무기라는 점을 알고 있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은 국민으로 하여금 함께 견뎌내고 맞이할 미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마술을 선사한다. 미래 비전의 공유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꺾이지 않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한다. 사람은 소통을 통해 눈앞에 있는 현실을 묘사하고 재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실재하지 않는 또 다른 대안적 현실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공유하는 스토리가 갖는 힘이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무대에서 대대적인 국가브랜드 캠페인을 벌여 국가브랜드 순위가 상승하기도 하였다. “용감한 사람들의 나라. 우크라이나(Bravery. To be Ukraine)”라는 슬로건으로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고판, 티셔츠나 머그잔 등 전방위로 국가브랜드 홍보를 벌인다. 세계시민들을 향한 이러한 직접적인 소통은 국제무대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속해서 지원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하여 각국 정치지도자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대내적으로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통합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토록 물리적으로 나약한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우리가 이야기를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이야기는 사람들이 함께 상상할 수 있게끔 한다. 이야기는 사회가 함께 바라봐야 하는 지점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묶는다. 리더십의 핵심은 공동체가 함께 상상할 수 있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지속해서 이를 공유하여 흩어지는 마음들의 구심점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정치는 사람들을 함께 살게끔 하는 것이고, 함께 하기 위해 소통은 필수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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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1 17:34 2023/05/1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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