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선생의 힘...여성계 인사들이 바치는 합동 추모식-②
-여성단체연합.여성단체협의회.한국여성재단.각 기독교여성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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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13일(오후 5시) 여성계에서 이희호 선생에 대한 추모식이 있었다. 여성 지도자로서의 이희호 선생의 선구자적인 궤적을 잊지 못한 때문이라고 한다. 추모식은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결식장에서 거행됐는데 150석 규모의 영결식장을 여성들만으로 빼곡하게 채운 가운데서 보듯이 여성 단체 회원들이 자신들의 선배이자 1세대 여성 지도자인 이희호 선생에 대해 얼마만큼 각별한 존경과 예우를 보내고 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참석한 사람들 중 남성은 이희호 선생(김대중 평화재단 이사장)의 삼남인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과 장례식집행위원장인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 두 사람뿐이었다. 하여 한명숙 전 정리와 신낙균 전 장관, 전 여성부 장관인 지은희 씨를 비롯하여 강교자 이사장, 백삼련 회장, 김판임 목사, 박선희 목사, 이요식 한일여성친선협회 회장, 이연숙 한국여성재단 고문이지 16대 국회의원, 차경애 이사장, 임금란 목사 등 수많은 여성단체 참석자들만으로 만석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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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특기할 점은 이희호 여사가 54년간 다녔던 창천교회 박선희 목사가 '죽음은 없다'란 주제로 루가 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찾아간 예화를 소재로 설파한 대목이었다. 마리아는 16세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밴, 두렵고도 놀라운 일의 한복판에 놓인 사람이었다. 마리아는 이런 와중에 3일이니 걸리는 유대 산골짜기로 사촌언니인 엘리사벳을 찾아 길을 떠난다.

엘리사벳이 누구인가? 일평생 아기를 갖지 못하고 늙어버린 석녀였다. 따라서 가임기가 지난 일개 할머니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석녀로 낙인찍혔던 할머니가 아기를 가져 임신 6개월이 됐다는 소문이었다. 당시의 풍습은 처녀가 임신을 하면 몰매를 맞고 죽어야 했다. 마리아는 이러 위험에 놓인 사람이었다. 마리아는 자기를 비롯하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꿈만 같았다. 사촌 언니인 엘리사벳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도무지 인간의 머리로는 해석이 불가한 일 투성이다.

언니를 찾아가기로 한다. 결심을 굳히고 집을 떠나는 모험을 단행한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가 펼쳐진다. 사촌 언니는 마리아를 보자마자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하며 맨발로 뛰쳐나와 반갑게 맞아준다. 이때 엘리사벳의 남편인 즈가리야는 등장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벙어리가 돼 있었다. 하느님이 계획한 역사적인 순간에 남자들은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게 만든 점이다. 남자의 존재는 뒤로 숨고 하느님의 역사의 중심에 당당하게 선 사람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이라는 선택받은 두 여인이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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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목사는 이 대목에 주목했다. 이희호 선생의 여정이 2천 년 전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예화에서 맥락을 일깨워 여성이 역사와 민족에게 공헌한 업적을 톺아냈다. 대의를 위한 희생과 헌신과 실천의 길에서 생을 온전히 투신하며 묵묵히 ‘달릴 길을 잘 달려온’ 오늘날 한국사회의 선지자가 바로 이희호 선생이었다는 것이다. 2천 년 전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온전히 그 소임을 다했던 두 여인처럼 이희호 선생의 삶은 하느님의 뜻을 이뤄낸 우리 시대 제1세대 여성 지도자였고, 그 업적은 굵직하고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한편, 최수산나 씨의 반주로 에코페미니스트 가수 안혜경 씨는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란 추모의 노래를 이희호 선생에게 헌창했다. 이 노래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여성평등.여권신장 또 민주화와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선구적이고도 진취적이며 자주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 지도자 이희호 삶과 맞물리며 커다란 울림을 선사해줬다. 선배를 기리는 여성들의 응집력과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깨어난 여성이다
나는 무지의 문을 열었고
나는 황금빛 팔찌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였다.

나는 깨어난 여성이다
분노가 나에게 힘을 주었고
불타버린 마을들이 적을 향한 증오로 나를 채웠다.

나를 더 이상 약하다 힘없다 말하지 마라
나 온 힘 다해 이 땅의 자유의 길 걸으니
나의 목소리는 여기 그대들과 하나요
나의 주먹도 그대들과 함께 쥐어져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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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연숙 한국여성재단 고문은 군부독재시대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나마 감시를 덜 받고 이희호 여사와 만나 편안히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으로 YWCA를 꼽으며 당시의 에피소드를 전했다. 이어 지은희 전 여성부장관은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를 신설하고 가족법 개정과 일본군 성노예피해자들에게 일시적인 지원금 지급을 이룬 일등 갈급한 여성과제들이 실천 속도를 낸 것은 페미니스트인 이희호 선생의 힘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여성재단 설립 또한 이희호 선생의 과감한 지지에 힘입어 가능했던 일”이라며 “50년대에 벌써 여성문제연구회를 만든 선구자적인 활동과 YWCA에서 활동했던 저력에 힘입은 바 컸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까지 살피면서 꿋꿋하고 끈질기게 여성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 또 평화통일운동을 해온 불굴의 의지의 소산이라는 소회를 밝히며 존경의 예를 다했다.

고 이희호 선생의 추모예배에 이름을 올린 단체는 한국YWCA연합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한국여성재단을 비롯하여 개신교 계통의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구세군대한본영여성사역회, 기독교대한감리회여선교회전국연합회, 기독교여민회, 대한성공회전국성직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전국여교역자연합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여성위원회, 한국기독교장로회여신도회전국연합회, 한국기독교장로회전국여교역자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 등 15개 여성단체장들이었다. 범 여성계와 기독교 각 여성단체들이 마련하여 합동으로 진행된 추모식이었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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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6 12:57 2019/06/1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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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동반자 고 이희호 여사 장례식,..사회장으로 결정
-공동장례위장에 권노갑 고문, 장상 전 총리서리, 이낙연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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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반자 고 이희호 여사가 영면했다. 향년 97세 된 시점이다. 고인은 6월10일 오후 11시37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이후 낮 2시를 기점으로 일반조문객들의 조문이 허락되자 수많은 보도진들은 물론, 각계에서 추모객들의 발길이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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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의 장례는 유족, 관련 단체들과 의논하여 김대중평화센터 주관으로 '여성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여사 사회장'으로 명명하기로 하였는데 장례식 집행위원장에 김성재 전 문화부장관, 장례위원장에 권노갑 고문, 장상 전 총리서리가 결정됐다. 이후 빈소를 찾은 이낙연 총리가 공동위원장에 합류하여 3인이 장례위원장으로 합을 이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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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고문은 김 전 대통령이 1954년 전남 목포의 민의원 출마 때부터 보좌한 측근 중의 최측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5번의 죽을 고비와 6년의 옥중생활, 55번의 가택연금을 겪는 동안 부부는 발이 묶이고 자유가 제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자연히 집 밖을 나갈 수 없을 때마다 지난 4월20일 세상을 떠나 6월8일 국립5.18묘소에 이장 봉안예식을 치른 맏아들 김홍일 씨의 손을 붙잡고 학부모 역할을 대신한 사람이 권노갑 고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권고문이 장례위원장이 된 것은 수많은 DJ의 보좌관그룹을 대표하는 맏형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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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장상 전 총리서리는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로 지명된 여성총리로서 여성과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역사성이 있고, 방명록에 "어머니처럼 따뜻하시고 쇠처럼 강인하셨던 여사님께서 국민 곁에 계셨던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적시한 이 총리는 영정 앞에 헌화하고 묵념을 한 후 기자들 앞에 섰는데 이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을 장례위원회가 수용해 공동위원장을 맡게 됐음을 알렸다. 이로서 문 정부 차원에서 이희호 여사를 예우하는 면모를 보였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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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위원장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과 최용준 전 천재교육 회장 등이 이름을 올렸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ㆍ자유한국당 황교안ㆍ바른미래당 손학규ㆍ민주평화당 정동영ㆍ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여야 5당 대표는 고문단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가 맡았으며, 현역 국회의원과 여성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수백 명이 장례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참고로 지난 9년 동안 꾸준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은 ‘김대중 지지자 화요모임 회원’들 또한 장례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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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희호 여사는 가족들이 성서를 낭독하고 성가를 부르는 가운데 얼굴에 잔잔 미소를 지으며 평화로운 상태에서 눈을 감았다고 한다. 이어 고인의 유언이 공표됐는데 첫째는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한 감사 인사와 함께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며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작성돼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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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도록 명시했다. 이 유언은 변호사 입회하에 세 아들의 동의를 받아 유언장을 작성했다고 한다. 유언 집행에 대한 책임은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에게 맡겼다. 더해서 김대중 대통령 기념사업과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한 김대중평화센터 사업을 잘 이어가도록 당부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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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 내부는 여야 지도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노태우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의 조화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특히 조문 이틀째인 12일엔 DJ 생전 정적(政敵)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화와 함께 이순자 씨를 비롯하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김현철 씨 등이 빈소를 찾았다. 미국 국무부도 이날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이 여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그녀의 삶을 바쳤으며, 남북 간 대화를 촉진했다”며 “평화를 향한 그녀의 노력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한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12일 오후 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통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조의문과 조화를 남측에 보내왔다. 김정일 위원장은 조의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리희호 녀사가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편 DJ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 주민들도 이 여사를 추모하며 하의면사무소에 분향소를 차렸다. 분향소는 14일 발인까지 운영한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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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3 00:35 2019/06/13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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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장남 김홍일 전의원 국립5.18민주묘지 안장
-함세웅 신부 80여 조문객 속에서 장례의식 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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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고(故) 김홍일 전 의원의 이장 예식이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이 타계한지 50일 만이다.

이날 봉안 식장은 ‘사랑의 시튼 수녀회’ 수녀님 10인이 나와 함세웅 신부가 집전하는 장례예절을 보조했고, 제단 양옆에는 대통령 근조 기와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등 각계에서 보내온 화환이 더해져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을 두드러지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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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5.18 구 묘역인 민주열사 묘지에서 김 전 의원(천주교 세례명 요한)의 천주교식 전례를  주관하는 함세웅 주례 사제는 “참 신기하다. 고인은 부활 전날 영면했는데 이장 식을 거행하는 날도 성령강림 대축일 전날이다. 부활을 앞당긴 상징인 것만 같다. 그는 우리 시대를 고발하는 예언자였고, 더 아름다운 미래를 위한 희생과 봉헌의 실천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형제의 이런 아픔과 고통이 우리 시대 우리 공동체의 자화성이라고 고백한다. 바로 십자가 예수님의 희생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시대적 징표이며 길잡이라고 해석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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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구 묘역을 떠나 고인의 영현(유골)을 제2묘역에 봉안하기 위한 도보 행렬을 약 5분간 이어간 후 본(本) 의식이 시작됐다. 이날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소장인 신경순 소장의 주관하에 열린 영결식은 국민의례, 묵념, 조사, 헌화·분향 순서로 진행됐다. 공식 행사가 끝난 이후 유족과 조문객들은 성가를 부르면서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당시 공안 당국에게 당한 고문의 후유증인 목 디스크와 파킨슨병으로 여생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던 고인의 삶과 민주투쟁의 여정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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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신부는 다시 한 번 “고난 직전에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성경을 인용하며 “김홍일 요한을 땅에 묻는다”라며 “5·18 고귀한 정신을 늘 마음에 간직하며, 남북의 일치와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로서 참석자들과 함께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봉안식을 마무리했다.

이날 5.18민주묘지 제2묘역에서 열린 영결식은 고인의 부인 윤혜라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과 이용섭 광주시장, 정동영 대표를 위시하여 박지원, 장병완, 최경환 등 민주평화당 의원들과 당직자들 다수, 바른미래당의 박주선 의원, 586 운동권 출신 여성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임수경 전 의원이 참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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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가 가택연금을 당하여 문밖 출입을 못하고 발이 묶일 때마다 고인의 손을 잡고 학교에 데리고 다니며 삼촌 노릇을 하며 가족같이 지냈던 야당 정치계의 대선배인 권노갑 고문과 장성민 전 의원을 위시한 고인의 연청 동지들, 보좌관이었던 김희철 전 의원 등 80여 명의 민주 동지들이 참석하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축복하는 것으로 식을 마쳤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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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9 08:56 2019/06/0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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