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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오늘(9.30)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종결

 

1946년 9월 30일 이차대전 패전국 독일의 책임을 묻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11개월의 심리 끝에 선고공판이 이루어졌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는 45년 8월 8일 미,영, 소, 불의 대표가 조인한 런던 협정에 기반한 것이다. 그 이후 19개국이 추가로 협정에 참가했다. 45년 11월에 시작된 뉘른베르크 재판은 앞서 말한 런던 협정에 기반한 것인데 반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동경 전범 재판은 포츠담 선언 제10항 ‘우리들의 포로를 학대한 자를 포함한 일체의 전범에 대하여 엄중한 처벌을 가한다’ 에 기반한 것이다.

기소된 24명이 나치 고위관료와 장군들 가운데 12명이 사형을 선고받았고 3명은 종신형 6명은 10~20년의 유기형 그리고 3명은 무죄 방면을 선고받았다. 24명의 열혈 나찌스들에 대한 기소이유는 1. 평화에 관한 죄:국제조약과 협정을 위반하고 침략전쟁을 계획, 준비, 실행한 죄 2. 인도에 관한 죄: 대량 학살, 추방, 집단 살해 3. 전쟁범죄: 국제 전쟁법의 위반 4. 이상의 세가지 범죄행위를 계획, 공모한 죄  의 네가지이다. 10월 16일에 나치스의 외무장관을 지낸 폰 리벤트롭을 시작으로 첫 사형이 집행됐다. 교수대 계단은 13개. 독일 군부의 원수를 지냈던 빌헬름 카이텔은 교수형이 집행될 때 '독일을 위해'를 외치고 목이 달렸단다. 히틀러의 두뇌 괴링은 사형집행 직전에 자살했고...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만, 승자의 입장에서만 말해도 뉘른베르크 재판은 복잡하고 중첩된 의미를 지닌다. 독일의 패망이 확실했던 45년 4월 29일 제3제국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애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리고 그 다음날 동반 자살해버렸다. 여기서부터 승전국들의 고민은 시작됐다. 특히 미국은 반인류적 죄행을 저지르는 독일과 일본을 응징한다면서(요즘도 이런 소리 많이 나오지...여전히 미국은 악랄한 독재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전쟁하고 있지않나) 참전했기 때문에 고민은 더했다. 결국 나치와 일제의 잔혹성에 대한 기록을 전하기 위한 명분으로 전범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주범 히틀러는 자살을 했고 또 하나의 주범 히로히토 천황은 살려주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재판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정책적 악행을 죄로 명시한 현행법도 부족했고 나치스들은 죄상을 총통에게로 떠넘겼다. 죄형법정주의 원칙과 불소급원칙을 적용할 경우 처벌할 만한 죄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뉘른베르크 법정은 명령에 따랐다 할 지라도 범죄의 궁극적 책임은 개인에게 존재함을 확인했고 홀로코스트 같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선 국경과 공소시효가 없다는 전례를 남겼다. 결국 뉘른베르크 재판의 결과물은 유엔이나 다른 국제 기구들을 통해 성문화되고 전례로 남았다. 최근에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에 대한 특별 법정이 그 비근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98년 로마협약으로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미국의 특례요청(미군의 작전 수행과정에 이루어진 행위는 형사재판소의 소추 대상이 아니어야 한다는 등. 우웩!)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런데 이런 것 외에도 뉘른베르크 재판에 대해 생각해 볼 점은 정말 부지기수다. 전쟁 과정에 벌어진 연합군의 범죄(문화재 파괴, 인구밀집지역에 대한 무차별 폭격)은 승자의 정의라는 원칙에 의거해 전혀 언급되지 조차 않았고 소련인민에 대한 전쟁범죄들도 별다른 이슈로 떠오르지 못했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인권'이란 것이 미국 맘에 들지 않는 정부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준 강력한 무기로 등장했다. 또한 수정주의 사관의 대두에 따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나치스, 일제의 범죄에 대한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아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 반인륜적 국가범죄에 대해 개개인의 책임을 묻는다고 해결이 안된다는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집단 전체의 광기나 구성원 모두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그건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게다가 이런건 극우파들이 악용하고 있다. 남경 대학살은 실제하지 않았다던가 전쟁시 성노예의 문제에 대해 일반적 성착취의 관점에서 접근해 물타기를 벌이고 있는 일본 후쇼사의 교과서나 산케이 신문을 보라!)


전후 일본에서 일억총참회론을 내세워 천황과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던 것처럼 최근의 수정주의 역사학은 결국 아무의 책임도 묻지 못하고 허울 좋은 성찰만 강조하게 되는건 아닐런지? 고민과 공부가 더 필요한 지점인 것 같다.


처형당한 나치스 수뇌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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