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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생 다인이, 누나

 

일군의 신세대 소설가 중에 김종광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문구 틱한 의뭉스러움이나 이 시대를 나름대로 눈 돌리지 않고 바라보려는 모습이 참 좋고 한국 문학에서 한번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제2캠퍼스의 이야기 풀어놓는 것도 맘에 든다. 다만 후일담스런 냄새를 팍팍 풍기는랑,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운동의 시대는 지났다며 힘 빼는 소리하는 건 맘에 안 든다. (가만 보면 다들 지가 운동 그만 둔 때를 기점으로 ‘운동의 시대는 끝났노라’고 선언하는 경향이 있단 말야--;; 아마 앞으로도 이런 선언은 주구장창 계속되겠지?)


여하튼 김종광 소설 중에 '71년생 다인이' 라는 장편소설이 있다. 말 그대로 71년생, 90학번 양다인이 주인공이다. 주인공 양다인이는 고딩때는 전교조의 세례를 받고 대학와서는 전대협에서 한총련을 건너는 바로 그 시기에 어느 수도권 지방대에서 운동의 끝자락을 부여잡고(아마도 엔엘) 빵살이도 한 번 하고 이런저런 단체에도 일하다가 벤쳐랍시고 하다가 말아먹고 삶을 팍팍해하는 그런 여성이다.


하여튼 71년생 다인이가 가슴에 좀 남아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머냐고? 내게 결핍된 그 무엇, 바로 누나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난 형제 중에 장남이고 친가 쪽 사촌형제 열 셋도 전부다 남자다! (근데 외려 이런 환경 덕에 어려서부터 가사노동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남중, 남고를 나왔고...--;;


이런 전차로 어릴 때 부터 누나 있는 친구들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모른다.


마침내^^ 평균과 많이 다른 성비를 지닌 단과대, 학과로 진학했을 땐 동기들 중에 여자애들 많은 것보다 때 늦은 누나 풍년이 든 게 참 좋았었다. 그 때만 해도 과방 한구석에서 통기타 줄을 튕기면서 노래 부르는 고운 누나들이 좀 있었다. 돌이켜 보면 기타 연주 실력이야 초보 수준을 겨우 벗어난 수준이고 레퍼토리야 그닥 강하지 않은 멜로디를 지닌 민중가요가 대종이었지만 맑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모습은 무구한 자태 바로 그것이었다. 노래 한 곡조 뽑고 담배 연기 코로 내 뿜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안 시켜도 커피 뽑아다 바치곤 했었는데--;;


그 뿐인가? 강경대 열사가 죽은 지 삼년이 되는 그날 내 손목을 붙잡고 명지대로 데려간 누나도 있었고(생각해보면 그 때 따라간 후배가 나 하나였다. 그 누나는 속으로 얼마나 열불 났었을까^^) 최루탄 향이 알싸하게 날릴 때면 손으로 눈 비비지 마라며 내 눈에 자기 담배 연기를 불어넣어 주던, 마음 싱숭생숭하게 만들던 누나도 있었다. 깡마른 체구에 목소리는 쇳소리인데다가 재미도 없는 커리로 세미나 시키던, 그러나 욕하는 모습은 묘하게 섹시했던 누나도 있었고,,,말썽꾸러기 일학년 둘(나하고 황 박사과정)이랑 생일이 같았던 누나 둘도 있었네. 단대 선거 지고 나서 질질 울던 누나들도 있었고^^


근데 내가 군대를 일찍 간 탓에 누나의 풍년 사태는 딱 일년으로 종지부를 찍었다.ㅠㅠ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난 참 순진하고 착했던 것 같다.^^ 꿈에라도 연상의 연인 어쩌구는 생각도 안 해봤단 것 아니겠어?


지금 시점에 내 주위엔 누나가 딱 하나 있다. 십년 전에 처음 봤을 땐 범접하기 힘들고 그 카리스마가 무섭기 까지 했던 누나다. 당시엔 누나 라기 보단 할머니였지 할머니..내 운동의 아빠들의 엄마뻘이니 말야. 난 귀염둥이 손자고^^  하여튼 소설의 주인공 양다인이랑 동기인 이 누나가 어제 꽃등심*^^* 도 먹여주고 반찬까지 싸줬다.(양이 얼마 안된다고 집에 두고 혼자 먹으라고 했지만 사무실에 갔고 와서 나눠 먹어야겠다. 누나가 알면 섭섭해할라나..)


이젠 별로 무섭지도 않고 귀엽기 까지 하지만 내가 누나라고 편하게 부르고 또 나를 얼라 취급할 수 있는 딱 한 사람인데 귀한 누나인 걸 명심하고 잘 모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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