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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2
    단식4일차
    자유인
  2. 2010/03/02
    발견(10월1일-금)
    자유인

단식4일차

단식4일차

- 어제 찬 바람을 쐬 어서인지 콧물이 심했다.
오전에 목욕을 하고 한숨자니 가라 앉았다.
거울을 봤다. 턱에 뾰로지가 나고 눈가에 주름이 심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겉 늙은이가 누렇게 뜬 얼굴로 째려보고 있다. 바로 나다.

내몸은 나 만이 돌 볼 수 있고, 내가 돌 보아야 할 일차적인 대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껏 몸이 아프다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었다. 나는 아파아 할 원인이 별로 없었고, 앓아 봐야 한 사흘 뿐 이었고,그래서 내가 병들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나는 심하게 아팠고, 훌훌털고 일어 난다는 것은 의욕 뿐 이었다.
냉온욕을 아침저녁으로 했는데도 몸이 예전으로 돌아가질 않았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아! 세월에는 항우장사도 맥을 못추는 것인가?
마음은 여전히 스무살 청춘인데! 몸이 따라주질 않다니!

원래는 볶은소금을 먹고 관장요법을 행하려 했다. 
관장기도 준비하였던 것이다. 내 경우는 장이 부실해서인지 단식중에 변을보지 못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똥을 눟지 못하는데 어떻게 묶은 똥이 배출되겠는가!

허나 결론적으로 소금섭취와 관장요법은 사용되지 못 하였다.
소금섭취는 선배님의 간곡한 만류 때문 이었다.
" 먹을려면 간수를 뺀 죽염을 써야지! 이건 김치 담는데 쓰이는 일반 볶음 소금인데, 극약인 비소가 없다고 장담할수 없다."는 논리를 받아 들였기 때문 이었다.
애초에 행하려던 관장요법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 자연스럽지 못하다" 는 논리보다는, 관장을 행할수 있는 주변조건이 갖추어져있지 못해서 였다.

나는 단식의 실재에 있어서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건 중요한 문제다. 흔히 발생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사고가 날수도 있다.
나는 수많은 과거 경험과 단식이론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났으므로, 좌고우면 없이 단식치유를 감행했던 것이다.
허나, 이론과 실재는 다를 수 있고, 주변조건을 잘 고려하지 않는 우를 범하였던 것이다.
'생수인가? 소금인가?' 소금은 왜지? 생수의 양은? 원리가 가물가물했다.
' 왜 관장기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단식중 숙변제거에 힘겨워했던 예전 경험을 망각했고, 주변조건이 좋지않다는 이유로 관장의 중요성을 쉽게 포기했던 것이다.
( 이 문제는 나중에 또 언급을 하겠지만, 단식전과 단식의 과정에서 관장을 생략한 것은 상당한 손해였다. 복식2일차에나 나는 관장을 하였다. 5일간 공들였던 효과는 반감되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묶은 똥을 뱃속에 그대로 둔채였으니, 기분도 거북했고 몸도 무거웠던 것이다.)

저녁 나절에 먼데서 친구가 왔다.
자원방래불역락호!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팔을 다치신 형수님께 예쁜 꽃 한송이! 한라봉1박스, 생굴 한봉지를 싸들고 왔다. 내몫은 하나도 없었지만 눈 요기는 충분히 할수 있었다.
저녁을 함께 했다. 북어국, 족발데침, 생굴, 고추절임 김치, 그리고 서리태 넣은 찰진 쌀밥이 차려졌다.
먹음직 스럽다.
반주로 소주 한잔씩!
난 물을 마셨다. 입을 다시면서.
이것도 단식 수행의 한 프로그램이라고 자위했다.
(훗날 오늘 밥상에 오른 음식을 잊지 않고 찾아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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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10월1일-금)

사랑하는 당신에게

 

요즈음은 발견을 많이 한다.

예를 들자면, 네팔이라는 나라를 알게되는 것인데, 안나푸르나 영봉이 있는 포카라의 전경, 마오주의 자들이 반군으로써 농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는 등을 발견한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우리의 산과 포구 등도 발견 하는데, 이는 최근의 일이다. 월악산 근처의 도락산과 황정산, 또는 동강과 백운산, 흑산도, 삼천포와 어청도 등 산, 강, 포구를 알게 되었다. 이미, 실크로드와 동방견문록으로 친근하게 된 유라시아와 중국에 대한 발견도 같은 기쁨인데, 이제 다시 천문이나 우주의 발견을 모색하고 있다.

 

네팔 같은 경우는 남들도 그렇듯이 내가 알면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그렇다. 가끔씩 불어오는 신문의 란을 통해서, 또는 산이나 여행 등의 정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무심코 넘길 필요는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뇌에는 충분히 네팔의 마오주의자들의 정보를 저장할 공간이 있고, 나는 이를 발견이라 칭하는 것이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훗날, 신이 만든 예술품 이라는 네팔에 여행을 한다면 좋은 정보가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반군과 정부군 모두 외국인들에게는 호의적이라는 틈에서 긴장하면서, 여행말고 다른 무엇을 할수도 있는 것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

 

산과강, 포구의 경우는 더욱 직접적 이겠다.

숱하게 넘나 들었던 산과령, 또는 천과 강들이 다시 새로운 발견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 속에 녹아있는 민중들의 숨결과 애환 때문이다. 그 자체의 멋이기도 하고.

그리하여 모든 산과 강과 포구에는 고유의 이름이 정해져있고, 특별한 사연이 대부분이어서 또 다른 이름이 붙어있곤 한다.

 

우리가 인간사회를 잉태한 자연- 즉 산과 강과 들판, 포구와 해변-을 외면하거나 격리 당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자연으로부터 민중들은 소외 당하고 있다. 그래서 이를 안타까워 하면서, 산과강, 바다라고 하는 일반적인 대명사에 만족하지 않고, 구체적인 고유 명사까지 발견하고자 한다. 그것과 농업, 주거, 지리, 문화 등 인간이 개입한 역사적 유물들을 오늘에 되 살려 보고 싶은 것이지 !

허나, 많은 것은 욕심일 뿐이다. 평생을 걸쳐서 발견하고 음미하고, 활용하고, 연구하는 인간 본연의 탐구자세가 필요 하겠다. 대체로 업적을 남긴 유능한 학자나 저자들은 그 계통의 연구를 수십년 동안 전념 했음이 보인다.

 

한해에 3만권 정도나 발간되는 책에서 보이 듯이 넘쳐나는 정보량에도 불국하고, 인간은 세상에 대해 알고있는 인식이 너무 일천하다. 그렇다.

세상에 널린 모든 만물을 알고자 부산떠는 행위는 실제로는 달성못할 꿈인 것도 사실이지 !

그래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겠다. 하나를 알면 열을 헤아리는 지혜는 꼭 다량의 지식을 습득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만물의 운동속에 녹아있는 진실을 음미하고 해석할 줄 알면 세상의 이치를 어느정도 깨우쳤다 할 것이다.

 

당신에게 발견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허나, 인간은 항상 새로움에 하루를 반기는 것이지 않는냐? 발견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도록 노력하지!

그럼 안녕.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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