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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토마토 카레 출장 요리 서비스

초희님의 20060214 나름대로 대량생산을 보고 책임감에 쓰는 글. ^^

 

초희님이 지난주에 지문날인반대연대 회의에서, 요리를 해서 같이 먹자고 했을 때만 해도... 채식 카레라고 하길래... 뭐 원래 보통 평소에 고기 살 돈 없을 때 해먹던 그것 아니겠나...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슴다.

 

토마토가 우르르 들어가서 기본 베이스를 만들더니만, 이름도 못들어 본 여러 향신료가 우르르, 각종 야채가 우르르... 그리고 채식 카레(보통 카레 가루에는 우유가 들어간다더군요)를 넣고... 마지막 계피가루까지.

 

정말 정신없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웬만한 카레 요리집에서도 맛보기 힘든 독특한 맛입니다. 저는 사실 쫌 과식한 데다가... 남는 걸 싸가기 까지 했다니깐요. ^^

 

주방과 아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출장 요리 서비스가 가능하다니까... 먹고 싶으신 분은 초희님 블로그로 가서 친해보세요. 자세한 레시피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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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결혼식 해프닝을 보며

'훈훈한 감동'이라며 앞다투어 기사를 내보내고 두 커플의 행복을 빌어주던 언론(당연히 포털도 포함해서)이 하루 아침에 돌변했다.

 

아주 난리도 아니다.  어떻게 사과 한마디 없이 책임을 떠넘기나?

승객모독이라느니 "이제 사랑에 대해서도 믿을 게 없어졌다"느니, 인터넷 '엉터리 정보'많다 느니, `플래시 몹' 행위 가려서 해야한다느니 아주 가관이다. 감쪽같이 속은 당신…낚였습니다 제목이 이쯤 되면... 거의 사람들을 우롱하는 수준이다.

 

사실 별거 아닐 수 있는 기사에 엄청난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거 자체가 웃긴거다. 자기들이 사실확인도 안하고 기사 써놓고 오보라고 하기 민망하니까... 연극동아리 문화의 문제점, 플래쉬몹의 문제점, 인터넷의 문제점, 동영상촬영의 문제점, (언론사의 경우)포털의 문제점, 언론의 문제점 등을 이것저것 갖다 대고 있는 거 아닌가? 사실 "오보였습니다. 죄송합니다." 한마디면 끝나는 문제 아닌가?

 

연극한 사람이 잘 못했나, 연극인 줄 모르고 감동받은 사람이 잘 못했나, 그걸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람이 잘 못했나. 누구도 특별히 잘 못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왜 이렇게 난리들인 걸까? 하튼, 현재의 언론-포털-네티즌으로 이어지는 정보의 생산-유통-소비의 시스템의 문제점은 명확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할 것...  다음의 사뭇 다른 댓글 분위기를 감상해 보자.

 

네이버가 선정한 기사의 댓글들 : ″’지하철 결혼식’은 연극이었다″

지하철결혼식을 촬영해서 올린 루나틱캄님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들 : 그들의 결혼식에 관해..

 

그리고 그 밑에 달린 댓글들 역시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이런 차이에서 희망을 발견한다면 무리한 것일까?

 

루나틱캄님의 글은 사실 어느 기사에서 보다도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는 기자라고 볼 수 없는 걸까? 블로그의 글에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다른 기자들도 다 블로거의 글을 그대로 받아썼는데도? 루나틱캄님은 더이상의 사실 확인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한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 너무 잘 이해 된다치고, 블로그 포스트 하나만 달랑 보고 기사 쓴 기자들은 도대체 뭔가? 그들은 그냥 독자들을 낚시질하고 싶어하는 블로거가 아니었을까? 블로거와 기자의 간격이 점차 좁혀지고 있는 것은 대세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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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주민증 반대한다.

전자주민증 토론회 후기를 쓰다가 보니
오래전에 이 성명서를 '나만 볼래요'로 체크해 놓고 공개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나름대로는 성명서라고 쓴 걸 그대로 블로그에 올리는 건 옳지 않다라고 생각해서...
블로그에 어울리는 스타일로 바꿔서 올리려고 생각했었는데... 
그만 까먹어 버린 거죠.

나름대로 열심히 쓴 글이고, 이제 더 늦출수도 없어서 그냥 올립니다. --;
발표한 날짜는 2월 17일입니다.



<성명서>

프라이버시 침해, 예산 낭비, 행자부와 업체만 배불리는 전자주민증 반대한다.


행정자치부는 최근 이른바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주민등록증 발전모델’을 발표했다. 현재의 주민등록증을 IC칩을 장착한 스마트카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약 10년 전 국민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던 전자주민증 발급이 다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전자주민증을 도입해야 하는지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

행자부의 ‘프라이버시 보호’ 기만이다.
행자부는 마치 주민등록번호와 지문을 표면에서 삭제함으로써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주민등록번호가 더 이상 심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남용/유출/도용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주민등록증에 적혀 있기 때문이 아니다. 공공/민간을 막론하고 모든 곳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아무런 제한 없이 수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던 행자부가 기껏 표면에 번호를 기록 않는다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행자부가 조금이라도 국민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주민등록번호의 폐지를 추진해야 한다.
지문은 또 어떠한가? 세계에서 유일한 18세 이상 전국민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의 반인권성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도대체 전 국민 중에 몇 명이나 주민등록증에 있는 지문을 활용해봤단 말인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 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문을 전국민의 신분증에 넣고 다니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행자부다. 행자부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지금부터라도 주민등록번호와 지문날인에 의한 정보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을 해야 마땅하다.

스마트카드에 의한 프라이버시 침해 대책 없다.
심지어 주민등록번호와 지문이 IC칩에 기록되는 것은 위험을 극히 가중시킬 뿐이다. 개인정보를 IC칩에 기록한다는 것은 IC칩 리더기를 가진 상대방이 자신의 정보를 디지털화된 형태로 확인/처리/저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에 주민등록증의 표면에서 주민등록번호와 지문을 삭제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IC칩에 저장된 개인정보는 순식간에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리더기를 통해서 무수히 많은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로 전송/복제된다. 정보주체의 자기정보통제권은 극히 제약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스마트카드 자체가 아무리 보안이 철저하고 위변조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지문정보는 그동안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사실상 아무런 쓸모가 없었던 데 반해서, 이제는 디지털화된 형태로 간단히 수집/저장이 가능해 짐으로써 평생불변하는 개인식별자로서 기능하여 감시통제사회의 최고 인프라가 될 것이다.

스마트카드 도입 필요성 전무하다.
주민등록증의 위변조를 막는 일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위변조를 막기 위해서 반드시 스마트카드를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듯이 최첨단의 인쇄, 잉크, 코팅, 소재 기술 등을 도입하면, 육안으로도 쉽게 위조여부를 확인 가능한 신분증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유효기간이나 발급번호를 둠으로써 분실이나 위조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도 있다. 행자부는 마치 스마트카드여야만 위변조를 방지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내구성에나 좀 더 신경 써서 지금의 주민등록증처럼 탈변색으로 인한 예산낭비를 줄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완벽히 위변조를 막을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은 없다. 범죄조직이 위변조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주민등록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행자부는 스마트카드로 전환함으로써 주민등록증의 활용도를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주민등록증을 위변조해야 할 욕구를 더욱 가중시킬 것이고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사람들이 주민등록증을 잘 활용하지 않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목적에 따라 필요한 경우에만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온라인 신분확인, 주민등록증으로 할 필요 없다.
온라인상에서의 신분증명에 대해서도 행자부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주민등록번호 오남용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행자부는 정보통신부에게 책임과 대책마련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그리고 정통부는 나름대로 온라인상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아닌 다른 인증수단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행자부가 온라인상에서 신분증명을 떠맡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하필 전자주민증으로. 정부 각부처간에 이 정도로 최소한의 협의도 없다는 것도 한심할뿐더러 책임은 넘기고 이권은 챙기겠다는 행자부의파렴치한 태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주민등록증을 스마트카드로 교체하는 문제는 단지 카드 발급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주민등록번호의 수집 관행이 여전한 상태에서주민등록번호를 IC칩에만 기록하겠다는 것은, 현재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는 모든 곳에 스마트카드 리더기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위변조 및 분실 카드여부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리더기를 중앙의 데이터베이스와 연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민등록증 하나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결국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저장되는 감시사회를 의미할 뿐이다. 여기에 막대한 예산이 소모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삼성SDS, 삼성에스원 주도, 국민의 의견은 뒷전
행자부는 주민등록증에 대해 국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분명한 거짓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주민등록증 발전모델 연구사업’은 시작부터 스마트카드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 통합사업으로 결정돼 있었다.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조폐공사컨소시엄’은 한국조폐공사와 삼성SDS, 삼성에스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폐공사와 에스원은 스마트카드를 주력사업부문으로 추진하고 있는 곳이며, SDS는 NEIS를 비롯한 온갖 정부 시스템 통합 사업을 도맡아 하고 있는 곳이다. 이들이 연구하는 주민등록증 발전모델이 무엇이 되겠는가?

새 주민등록증 사업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주민등록증이 만능카드가 될 필요는 없다. 주민등록증은 주민등록증의 기능만 하면 된다. 만능카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굳이 주민등록증이 아니어도 이미 상용 스마트카드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은 국민 대다수는 스마트카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미 스마트카드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민등록증이 스마트카드가 아니라고 불만을 터뜨리지도 않는다. 결국, 행자부와 업체의 요구 외에는 스마트카드를 도입해야 할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가 없다.

결국 전자주민증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는 일임에도, 국민의 의견과 국민의 필요와는 무관하게, 행자부와 업체 의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행자부의 전자주민증 도입 시도에 전면 반대한다.


광주인권운동센터/ 구속노동자후원회/ 다산인권센터/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울산인권운동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실천시민연대/ 지문날인반대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인권연대/ 함께하는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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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거라

도대체 나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내 눈을 가리고 사지를 봉쇄했다.
심지어는 혀를 놀리는 것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몸을 찌르고 살을 찢어내는 아픔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 미칠듯한 굉음.
뼈를 갈아내는 듯 한 분쇄음과 영혼을 빨아들이는 듯한 파찰음.
그것만으로도 나는 여러 번 의식을 잃었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분비물들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어느 때보다도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최소한의 저항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에 나는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 몸뚱아리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이토록 사람을 비참하게 무력화시킬 줄이야.
그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는 것이 전부였다.

.

.

.

마침내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악몽같은 시간은 끝났다.
그리고 내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그것도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그것이 사라진 한 구석이 몹시 시려온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오늘의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아 내 평생을 지배하겠지.


답은 명확하다.

실천이 어려울 뿐.

.
.
.

.
.



치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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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서 걸어 다니세요

발바리에 갔다가 누군가 퍼 온 글을 봤다.

 

나는 조문익씨가 누군지 몰랐다.

그래서 처음 교통사고 소식을 블로그에서 보았을 때, 내게 구체적인 개인과 얽힌 슬픔은 들지 않았다.

 

다만 처음 든 생각은 '아 또 교통사고인가? 빌어먹을 자동차!'였다.

나는 그 몇 달 전에도 교통사고로 숨진 어떤 활동가의 소식을 들었었고, 두 죽음이 겹쳐졌던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고였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냥 지나쳤었다.

 

그런데, 다음 글을 보고는 알게된 것이다.

그래, 그랬었구나... 결국 그런 것이었구나...

눈물이 울컥할 뻔 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조심하라고 야단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조심하면 되는 그런 문제가 아닌 것이다.

도로를 달린 다는 것, 농촌에 산다는 것, 아니 그냥 이 사회에서 걸어가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위험인 것이다.

 

다들 정말 조심해서 걸어다니세요.

그리고 정말 다른 길, 다른 사회를 맘껏 걷고 달려 봐요.

 

너무 늦어버렸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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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산다는 것은 죽음이다

 

한겨레 | 왜냐면 
 
그이의 죽음은 사람보다는 자동차만을 위한 길을 만들어낸 오랜 교통 및 도로정책, 개발정책의 소산일 따름이다. 또한 천대받고 무너져가는 농촌, 살고 싶지 않은 농촌을 여태껏 만들어낸 자본과 도시 중심 정책의 결과다.

 

그날 밤 그렇게 눈만 내리지 않았어도, 그리고 그가 걷던 길이 도시의 어느 인도 위이기만 했어도 그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폭설이 쏟아졌던 며칠 전, 그러니까 2월7일 밤, 우리 곁에서 밝게 빛나던 소중한 별 하나가 어이없이 스러졌다. 폭설이 쏟아진 전북 장수의 밤 9시15분께 일이었다.

 

종일토록 쉴 새 없이 눈이 쏟아졌고, 그이는 읍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폭설 때문에 자신의 차를 세워 두고 집 가까운 면소재지까지 버스를 이용해 온 뒤 1.5킬로미터 쯤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걸어서 가던 중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고, 가로등과 갓길조차 없는 밤길에 미처 보행자를 발견하지 못한 제설차량에 치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그이의 숨은 붙어 있었다 한다. 하지만 지나던 자가용을 세워 인근 도시인 남원까지 옮겼을 때는 평소보다 네 배나 걸린 무려 두 시간 뒤였다. 그즈음 이미 그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별다른 외상은 없었으나 파열된 내장에서 출혈이 지나쳐 숨을 거두어 버렸다.

 

그렇게 쉽게 보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이는 이제 고작 43살이고 중학교에 입학할 아이와 아비 빈소에서 뛰노는 철없는 초등학생 아이를 남겨둔 채였다. 더구나 우리가 이토록 비통해하는 것은 그가 지난 20여년을 사회민주화와 노동운동에 곁눈질 없이 헌신했으며, 최근에는 주거를 도시에서 농촌으로 옮겨와 힘겨운 농촌에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으려 애쓰던 활동가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 날도 지역농촌에 새로운 문화와 교육을 일구고자 폐교를 빌려 꾸려가던 ‘논실 마을학교’ 일로 군청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그이의 어처구니없고 갑작스런 죽음은 대단히 침통한 일이지만 사실은 예정된 일이기도 했다. 그이의 사고는 갑작스런 것이지만 농촌에서 그런 사고는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몇 해 전부터 도시를 등지고 시골에 살고 있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는 차를 비킬 여지도 없는 1.5킬로미터의 길을 걸어 통학해야 하는 처지다.

 

농촌이 홀대받고 있다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지만, 교통사고 위험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우선 안전한 보행로가 전혀 확보되어 있지 않다. 고속도로의 갓길처럼 자동차의 주행이 가능할 정도의 갓길을 시골에선 찾아볼 수 없기도 하지만 높낮이를 달리하거나 가드레일을 둘러놓은 보행자 전용도로는 아예 없다. 솜씨 좋은 운전자도 이동수단이 아예 없거나 운전능력을 가지지 못한 노인과 아이들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은 흔한 일이다. 더구나 안개가 심하게 꼈거나 폭우와 폭설이 심하게 내리는 날에는 보행자는 물론 경운기조차 발견하기 쉽지 않다. 누구든 희생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둘째, 도시였다면 그이는 불과 몇 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을 것이었다. 그이가 사고를 당한 지점은 면소재지에서 1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구급차도 병원도 없었다. 말해 무엇하랴. 장수군내에는 단 한 개의 소아과도 산부인과와 정형외과도 없는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인 것을. 비단 그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촌 일반의 문제다.

 

셋째, 교통문제다. 그이가 일을 마치고 귀가를 위해 서둘러 버스 막차에 오른 시각은 겨우 9시도 되지 않은 때였고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걷다가 사고를 당한 시각은 9시를 조금 넘긴 때였다. 택시도 없었기에 그는 걸어야만 했다. 버스가 시간마다 자주 있지도 않고 버스에서 내려도 위험천만한 길을 한참 걸어야 하는 것이 시골의 교통현실이다.

 

당신이라면 이런 농촌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그이처럼 피할 길도 없는 캄캄한 밤길을 걸으며 쏟아지는 눈을 낭만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밤 아홉시만 되면 꼼짝없이 전화로 택시를 불러야만 귀가할 수 있고 병원에 가려면 인근도시까지 응급조치도 못한 채 통증을 참아내며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구급차를 기다릴 수 있겠는가. “걷는 것이 몸에 좋단다”라고 말하며 아이에게 학교까지 걷거나 자전거로 통학할 것을 권유할 수 있겠는가.

 

그이의 죽음은 사람보다는 자동차만을 위한 길을 만들어낸 오랜 교통 및 도로정책, 개발정책의 소산일 따름이다. 또한 천대받고 무너져가는 농촌, 살고 싶지 않은 농촌을 여태껏 만들어낸 자본과 도시 중심 정책의 결과다.

 

그런 사실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농촌을 살리고 농업에 희망을 불어넣자고 농민들 곁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갔던 그이는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수많은 노동자, 농민, 지인들의 환송을 받으며 짧았지만 굵은 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이의 빛나는 이름은 조문익 동지다. 희망을 잃은 이들 앞에서 늘 환하게 웃던 형, 잘 가세요. 그래도 노동과 농촌에 대한 희망을 거두지 않을 우리의 소중한 사람 ….

 

김영규/㈜ 풀무사람들 과장

기사등록 : 2006-02-13 오후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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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번호 도용당했다

여기저기 기사에서 리니지 명의도용 사건으로 난리길래...

뭐, 이런 일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한 거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 사람이 자기도 도용당했다고 하길래 나도 해봤더니만!

허걱. 작년 12월 23일부로 회원가입이 되었단다.

 

아. 짜증나.

여러분도 꼭 확인해 보세요.

 

확인하러 가기

 

근데 언론들이 엔씨소프트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난리치는 꼴은 정말 웃기다.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로 회원 가입하는데 그걸 도대체 어떻게 막나?

주민등록번호를 바꾸지 않는 이상, 범죄자들이 갖고 있는 정확한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도대체 어떻게 사용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엔씨소프트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이트에서 명의도용이 일어난다 해도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주민등록번호... 이번 건을 계기로라도 정말 좀 사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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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버려진 자전거 없나...

지음님의 [쫌 아프다] 에 관련된 글.


 

자전거 수리를 하러 집 근처 자전거포에 들렀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앞바퀴의 굴렁쇠(림, rim)이 휘어진 정도가 회복불능이란다. 흑.

 

그래서 얼마냐고 물어봤더니만,

생활자전거 휠셋(굴렁쇠와 바퀴살과 바퀴축의 조합)은 2~3만원, 산악자전거 휠셋은 7만원이 필요하단다.

 

아. 정말... 저가 생활자전거가 6만원부터 있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뭐 자전거 부품들이 대충 이런 식이다.

자전거를 고쳐서 계속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싼 값에 사서 타다가 망가지면(이런 자전거는 정말 쉽게 망가진다.)... 또 새로 사라는 식의 생산, 판매 방식이 낳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

아닌게 아니라... 주인은 그냥 중고로 팔고 새로 사라고 권한다.

이쯤되니 사실 회복불능이라는 말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린다.

 

그래서 그냥 들고 나왔다.

한동안, 우리 짝궁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겠다.

그리고 어디 버려진 불쌍한 자전거 없나 찾아봐서, 앞바퀴 하나 재활용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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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전자주민증을 원하는가?

[정보화시대에 적합한 주민등록증 발전모델 연구방향 설정을 위한 제2차 공청회]에 갔다왔다.

 

=뭐 어차피 공청회는 요식행위다. 그런데 좀 심했다. 1차 공청회는 하는지도 몰랐다. 행정자치부 홈페이지 공지사항에도 없었다. 2차 공청회는 당일 기사로 나왔다.(나는 어찌저찌해서 다른 경로를 통해서 며칠 전에 들었지만.)

 

=제목부터 웃긴다. '연구방향 설정'을 위한 거란다. 애초에 '방향'은 '설정'해 놓고, 그에 따라 컨소시엄 구성하고 '연구'해서, IC 칩이 내장된 스마트카드 시안에 추진 일정까지 다 만들어 놓고서 무슨 '연구방향 설정'이란 말인가.

 

=주최는 행정자치부와 '한국조폐공사컨소시엄'이다. '한국조폐공사컨소시엄'에 도대체 어떤 곳이 포함되어 있나 해서 검색해 봤더니만... 헐... 한국조폐공사+삼성에스원+삼성SDS 이란다. 결국 또 삼성이란 말인가?

 

=삼성SDS야 뭐 워낙에 굵직한 정부 프로젝트는 도맡아 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삼성에스원은 또 어떤 곳인가 하면.... 다음 기사를 읽어보라.

"주력사업인 시스템 경비 사업(세콤)의 성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스마트카드와 전자주민증, 전자태그(RFID) 등도 유망사업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내년에는 삼성그룹과 스마트카드 등 신규사업 매출이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시범사업을 추진 중인 전자주민증과 전자투자 프로젝트도 장기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에스원은 오는 2010년 글로벌 경쟁력 확보로 매출 2조원과 경상이익률 20%를 달성한다는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  파이낸셜타임즈 [포춘 라운지-에스원]RFID등 유망…“2010년 매출 2兆”

 

=공청회 중에서 구체적인 얘기를 한 사람은 군포시 민원처리과장이 유일했다. 공무원 생활만 한 듯한 중년의 아저씨였다. 짧은 발제문이었지만, 여러가지 민원에 대응하느라고 고생하고, 나름대로 대안을 고민했다는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 그가 주된 '민원요구사항'이라고 여러가지를 열거했다. 증의 탈색과 변형. 주민번호와 지문 노출로 인한 불안, 위변조에 대한 불안, 운전면허증만 갖고 다니는 사람들의 불편. 즉 바꿔말하면 정보화시대에 적합한 IC칩을 달은 최첨단카드는 민원요구사항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한 일이다. 침묵하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의 가장 큰 요구사항은 '아 씨바 귀찮게 또 왜 바꾼데'가 아닐까? 그럼 도대체 누가 그것을 원하는가? 답은 이미 위에 나왔다.

 

=주민등록증이 탈색, 변형된다는 건, 애초에 잘 못 만든 거니까 막대한 세금을 낭비한 행자부가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새로 만드는 건 더 좋은 재질로 만들면 된다. 끝.

 

=주민번호와 지문이 노출된다는 것 또한 애초에 행자부가 그따위로 만들어 놓았으니 행자부가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번호는 폐기하거나 발급번호로 바꾸고(이 얘기는 행자부나 조폐공사 측에서도 한 얘기다) 지문은 빼버리면(사실은 수집 자체가 문제지만) 된다. 끝.

 

=운전면허증 등으로 인해서 주민등록증의 효용이 떨어진다는 문제는... 그게 왜 문제인가? 운전면허증을 비롯한 각종 신분증도 특정한 기준만 만족하면 공식적인 신분증으로 인정하면 된다. 끝.

 

=위조문제? 다음의 현란한 말을 들어보라.

"행자부에 따르면, 차세대 전자주민증은 먼저 인쇄방법에 있어 선화인쇄, 레인보우인쇄, 미세문자/DOVID, D, 레이저 엔그라빙(Laser Engrabing) 등의 다양한 기법을 적용하고, 또 잉크도 UV-형광잉크, 컬러 시프트(Shift)잉크, 광변색잉크 등을 채택함으로써 위변조 자체를 원천봉쇄할 방침. 이와함께 전자주민증 발급시 복굴절이미지, 화상암호화, 레이저 이미지천공, 레이저 엠보싱문자 등도 채택하겠다는 것이 행자부의 복안이다." - 디지털데일리, 2007년 전자주민증, 최첨단 보안기법 총동원

스마트카드가 아니어도 위조 방지할 수 있네. 그래, 그렇게 만들어라. 끝.

 

=근데 도대체 왜 IC칩을 넣은 스마트카드여야 하는 거냔 말이다. 씨바. 주민등록증은 주민등록증이면 된다. 그게 만능카드가 될 필요는 없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만능카드를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만 별도로 만들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만들어줄 때 그 위험성도 같이 좀 말해주면 고맙고.

 

 

원하지도 않는데, 원래 목적과 전혀 무관한 기능을, 굳이 넣어주겠다고...

쌈빡한 걸로 새로 만들어 주겠다고... 그래야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거라고...

서비스도 좋다고... 생색내고 협박하며 쌩 난리치고 나중에 뒤통수치는 사람들...

어디서 많이 봤다.

새 신용카드 나왔다고 떠드는 카드 삐끼들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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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 아프다

그제 밤에 당산역 근처에서 회의와 뒷풀이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데... 왠지 기분이 좋아서 열심히 달렸다. 달리다 넘어졌다. 자전거는 앞바퀴가 휘었고, 이어서 펑크가 났다. 몸은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골반이 좀 아팠다. 걷는 게 약간 불편하길래 병원에 갔는데, 뭐 별건 아니란다. 자전거 타다가 넘어진 적도 몇개월만에 처음인데다가... 넘어져서 병원까지 간 건 자전거 탄 이후로 처음이다. 곰곰히 넘어진 이유를 생각해보니... 1. 아주 추웠다. 2. 눈이 온 뒤였다. 3. 낯선 길이었다. 4. 도로에 가로등이 없어서 잘 안보였다. 5. 그늘진 곳이어서 특히 눈이 많았다. 6. 차 바퀴 자국 사이에 꽤 높은(10cm 정도) 얼음턱이 생겼다. 7. 술을 좀 마셨다. 8. 과속했다. 시속 30km 정도? 이중에서 한 두가지만 빠졌었도 괜찮았었을 것을. 하튼. 조심해야지. 그리고 내일은 자전거 고쳐서 다시 타고 다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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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민주주의

참여연대 월간지, [참여사회] 2006년 2월호에 기고했던 글이다.

 

원래 주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제목 : 인터넷과 민주주의, 인터넷과 시민운동...... 정보사회, '인터넷'이 사회의 민주주의 형태를 변화, 발전시킨 점. 이 민주주의의 발전에는 '시민운동'을 빼놓을 수 없고, '인터넷'이 영향을 끼치면서 시민운동의 또 다른 방식, 다양한 방식이 등장, 성장하게 됐고 인터넷을 주목하게 된 점..."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시민운동'을 빼놓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맘대로 써버리고 제목도 그냥 '인터넷과 민주주의'가 됐다.

 

한 번은 내가 맘에 안들어서 버리고, 또 한 번은 편집진이 다른 꼭지와 내용이 겹친다고 해서 버리고... 그래서 바쁜 와중에 판본이 3개나 나와버렸다.

 

또... 내가 정말 원고를 너무 늦게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삽입된 사진은 내용과 전혀 무관할 뿐더러 다소 언짢을 정도고... 소제목은 글을 읽고 달은 건지 의심스럽다. 그래도 부탁대로 이메일 대신 블로그 주소를 넣어 준 거는 맘에 든다. ^^

 

그다지 맘에 드는 글은 아니지만, 꼭 하고 싶었던 얘기에는 강조를 달아 두겠습니다.

취소선은 편집자가 달은 소제목입니다. ㅠ.ㅠ



- 지음(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blog.jinbo.net/antiorder)


인터넷이 처음 등장할 무렵, 많은 사람들이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말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 ‘수평적인 쌍방향 소통구조’, ‘물리적인 한계의 극복’, ‘다수의 사람들의 참여’ 등의 특징들이 열거됐다. 그리고 약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인터넷은 이제 생활이 되어버렸다. 일상적인 정치적 의견 표출이나 선거 시기의 활동들 역시 대부분 인터넷을 매개로 이뤄지고 있다. 이제는 민주주의의를 말할 때 인터넷에서의 민주주의를 얘기하지 않을 수는 없게 됐다.


인터넷, 독점권력의 또 하나의 사회통제 수단

그러나 인터넷이 근본적인 속성이 민주주의적이라거나, 인터넷이 항상 민주주의에 기여한다고 볼 수는 없다. 황우석 사태에서 PD수첩에 대한 광고중단은 물론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이 관철된 것이었지만,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파시즘에 가까운 것이었다. 거기에는 언론의 자유도, 개인의 다양성도, 소수에 대한 배려도, 전문가의 지식도 없었다. 성난 한 무리의 군중들이 있었을 뿐이다. 인터넷의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과 포털은 그러한 군중들의 아우성을 확대 재생산했으며 게시판은 정상적인 토론, 하다못해 건강한 반론이 이뤄질 수 있는 곳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의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다. 인터넷은 개인들의 현실에서 생성되는 개인정보를 끊임없이 디지털화된 형태로 흡수하고 있고, 이러한 개인정보는 누군가에 의해서 감시의 수단으로 돌변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어떤 국가기구 또는 어떤 기업은 정보주체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며, 마음만 먹는다면 특정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도 있다. 인터넷은 민주주의의 도구가 아니라 얼마든지 파시즘의 도구, 또는 빅브라더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터넷의 다양한 공간들과 그 공간들에서 적용되고 있는 서로 다른 규칙들과 시스템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공간을 지배하는 시스템의 성격에 따라서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의 패턴은 상당 부분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인터넷에서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전자감시사회와 대중파시즘의 가능성을 본다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인터넷 민주주의의 시작

인터넷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일의적이지 않다. 따라서 ‘인터넷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가?’라는 질문은 ‘인터넷에서 어떤 공간을 어떻게 구축해야 보다 민주주의적인 시스템이 가능한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물론 그러한 공간이 꼭 온라인에 국한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는 상대적으로 대안적인 공간을 구축하기가 수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을 주목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하나의 중요한 예가 될 것이다. 인터넷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롭고 간편한 의사표현이다. 그리고 그러한 표현의 확대가 민주주의에 큰 진전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쉽게 제약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민주주의에서 투표가 항상 비밀투표로 진행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인터넷 게시판은 실명제라는 규칙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제약돼버리고 만다. 인터넷 실명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도입되고 있지만, 사실상 선거 시기에 자신들에게 쏟아질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자기보호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인터넷 실명제를 말하면서 인터넷의 민주주의를 말할 수는 없다.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은 개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투표 당일 기표소 안으로 유폐시킬 것이다.

 

인터넷 대안 공간 설계는 개인의 몫
또 하나 현재 언론-포털-네티즌으로 이어지는 정보의 생산-유통-소비의 시스템 역시 심각한 문제로서 지적될 필요가 있다. 정보의 양이 늘어갈 수록 권력은 유통을 담당한 포털에 집중되고, 언론과 네티즌은 포털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단지 수동적인 정보의 소비자로 전락해 정보의 생산능력을 박탈당한 네티즌에게 정보는 지적재산권의 보호 아래 상품으로서 현상한다. 포털에 익숙해지고 포털에 종속당한 네티즌들이 곧 자신들보다 더 많은 자신들의 개인정보를 갖고 있는 포털의 감시 하에 놓일 운명이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없다. 대안 언론, 대안 포털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유통망이 없는 현재의 대안 언론들은 네티즌에게 접근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안 포털은 상업 포털과의 경쟁을 이겨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증명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터넷은 지금도 여전히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둘러싼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광활하며, 그것이야말로 인터넷의 가능성의 핵심이다. 아무리 자본과 권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은 항상 그 외부에 공간을 남겨두고 있다. 필요한 것은 인터넷의 수많은 이질적인 공간들과 규칙들, 그들의 차이와 관계에 주목하고 대안적인 규칙과 대안적인 공간들을 생성하는 것이다.


웹상에서 탄생한 주체로서의 블로그와 그러한 주체들의 만남의 장인 메타블로그, 위키를 위시한 여러 협업/집단지능 프로그램, RSS를 이용한 정보의 새로운 배포/구독 방식, P2P를 이용한 정보의 공유,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한 개인들 간의 연대 등은 그 가능성이 충분히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술들을 이용해서 대안적인 공간을 구축하는 다양한 연구와 실험이 시도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기술도 마찬가지지만, 기술이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대안적인 공간을 설계하는 것은 연구와 실험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살아 움직이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개인들이다. 바로 지금, 인터넷 브라우저의 초기화면을 네이버에서 자신의 블로그로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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