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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자전거 소개 - 하이브리드 계열

1. [생활자전거 소개 - 들어가며]
2. [생활자전거 소개 - MTB 계열]
3. [생활자전거 소개 - 하이브리드 계열]
4. [생활자전거 소개 - 미니벨로 계열]
5. [생활자전거 소개 - 최저가 전문자전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 말이 많네요. 처음부터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하튼 일단 계속 가 보겠습니다.

 

2. 하이브리드 계열
생활자전거에는 어설프게 MTB를 따라하는 유사MTB와 무거워서 도저히 들고다닐 수 없는 접는 자전거만이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었습니다.

2004년 MTB와 사이클의 중간형태를 가진 하이브리드 자전거가 처음 등장했을 때, 발바리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었죠. 그리고 어느새 생활자전거에서는 표준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이클의 크고 얇은 바퀴, 높은 기어비, 가벼운 무게와 MTB의 편안한 핸들과 저렴한 변속기를 겸비하고 있습니다. 유사 MTB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와 가벼움을 경험할 수 있죠. 특히 출퇴근 거리가 멀 경우, 오르막을 오를 경우, 장거리를 가야할 경우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사실 도시에서는 가장 이상적이고 균형잡힌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험한 길에서는 MTB보다 불리하다지만, 도시에서 살면서 하이브리드가 가지 못할 길은 없다고 봐도 됩니다.

 

굳이 약점을 꼽자면, 상대적으로 높은 펑크의 위험성과 얇은 바퀴가 주는 약간의 불안감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펑크의 위험성은 사실 그다지 높은 것은 아니고, 타이어에 공기를 항상 충분한 상태로 유지시켜주기만 하면 걱정할 건 없습니다. 대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1만원 정도 하는 휴대용 펌프를 사두는 것이 필요하겠죠. 불안감은 시간과 경험이 금새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1. RCT 300 , RCT 260
알톤사는 2004년 최초의 하이브리드 RCT 2.5를 내놓아서 큰 성공을 거둔후 2005년에는 후속모델 RCT 3.0을 선보인바 있습니다. 그런데 RCT 3.0은 BB라는 부품에 결함이 자주 지적되면서 오히려 RCT 2.5보다 평가가 떨어졌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 부분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것 같더군요. 그리고 두 개의 모델로 분화했습니다. RCT 300과 RCT 260. 가격은 둘 다 17만원선

 

RCT 300은 RCT3.0의 직계 후속모델입니다. 이번에 말많던 BB를 일체형으로 교체했다고 합니다. 성능과 내구성에서 뚜렷한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두말 할 필요가 없는 하이브리드의 대표주자입니다.


RCT 260은 RCT 300에서 바퀴를 일반적인 26인치 MTB 바퀴 크기로 줄이고, 안장을 스프링 안장으로 바꾸고, 앞쪽 크랭크도 사이클의 52T에서 MTB의 48T로 줄였네요. 알톤사에서는 청소년과 여성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좀더 편하긴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성능에서는 다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아테네

RCT 2.5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DM사의 하이브리드 모델로서 RCT 시리즈와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RCT 시리즈에 비해서는 조금 더 두꺼운 타이어를 씁니다. 타이어만을 두고 보자면 RCT 보다는 MTB 쪽으로 좀 기울어진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타이어가 두꺼워지면서 펑크의 위험성은 더 적고, 브레이크도 좀 더 강한 편입니다. 속도와 무게에서 조금 손해를 보지만 그 차이를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RCT냐 아테네냐는 참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어느쪽을 선택해도 충분히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에도 이름은 바뀌지 않았지만 부품은 다소 업그레이드 된 것 같습니다. 구입할 때는 2006년 모델인지를 확인하고 구입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3) 벨로체TR, 마스터 

전통적인 국내 자전거 브랜드인 삼천리레스포와 코렉스도 올해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았네요. 코렉스의 벨로체TR, 레스포의  마스터. 하이브리드가 대세임을 반증하는 것 같네요. 부품의 사양이나 컨셉, 가격 모두 RCT 300과 유사합니다. 인터넷 상에서만 봐서는 특별한 강점을 발견하지는 못하겠네요. 좀 두고 보는 게 나을 듯 싶습니다. 곧 사용기들이 올라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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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자전거 소개 - MTB 계열

1. [생활자전거 소개 - 들어가며]
2. [생활자전거 소개 - MTB 계열]
3. [생활자전거 소개 - 하이브리드 계열]
4. [생활자전거 소개 - 미니벨로 계열]
5. [생활자전거 소개 - 최저가 전문자전거]

맘먹고 쓰기 시작하고 보니 다소 걱정이 되네요.  왜냐하면 강호에는 고수가 구름처럼 많고, 고수들이 쓴 좋은 글들도 구름처럼 많다는 거죠.
생활자전거와 관련한 글들 역시 많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커뮤니티는  발바리자출사입니다. 참고하시면 좋겠구요. 특히 다음 페이지에 있는 글들은 모두 훌륭하고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읽어보세요.

자출사 : [명예의 전당] 500 HIT 게시물

서론이 길었는데, 이제 시작합니다.
(다음에 자전거들을 소개할 때 링크한 상점들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곳들일 뿐, 추천하는 곳들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1. MTB 계열
현재 국내 자전거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유사MTB라고 불리는 것들입니다. 산악자전거를 흉내낸 모양이지만 실제로 산을 타기에는 부족합니다.  현재 자전거 시장의 주류를 이루고 있고 종류도 다양합니다. 신문사에서 나눠주던 것들도 모두 유사MTB입니다. 뒤에 소개할 하이브리드와 미니벨로의 등장으로 설자리를 많이 잃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단은 가격이 저렴하고, 몇몇 기종은 강점이 있습니다.

장점 :
1. 타이어가 워낙 두껍기 때문에 펑크 걱정은 거의 할 필요가 없다.
2. 워낙 주류를 이루고 있고 기종도 다양하기 때문에 자체와 부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3. 가끔 도로 사정이 안좋거나 험로에 나설 때도 상대적으로 맘이 편하다.

단점 :
1. 상대적으로 무거워서 장거리 여행이나 오르막에서 피로를 가중시킨다.
2. 두껍고 울퉁불퉁한 타이어는 속도를 내는데 불리하다.

어느 자전거 회사에서나 부품의 등급을 조금씩 올려가며 여러가지의 유사MTB를 내놓습니다. 가격을 결정하는 부품의 등급은 일단 알루미늄이냐 아니냐, 시마노 기어를 쓰냐 아니냐, 시마노 기어 중에서 어떤 등급이냐로 나눠집니다. 여기서는 알톤사의 예를 들어보죠.

1. 모빅 : 자전거면 된다!
모빅은 가장 저렴한 자전거 중에 하나입니다. 6만원 이하로도 구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에 절대로 10만원 넘게 투자할 수 없는 분, 자전거가 다 같은 자전거지 하시는 분에게는 얘를 추천합니다. 더 화려하고 좋아보여도 10만원 미만의 가격대에서 샥(shock, 쇼바 또는 서스펜션이라고도 부르는 충격흡수 장치)가 있는 자전거나,  접히는 자전거는 사지 마십시오. 무게만 무거워질 뿐입니다. 그리고 비는 맞추지 마세요. 알루미늄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솔직히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구성까지 고려하면 가격대 성능비가 결코 좋다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전거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곧 불만을 느끼고 자전거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더 좋은 자전거를 갖고 싶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실제로 이 정도 자전거로 오래 타고 다니시는 분은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관리를 잘하시면 가볍게 동네를 다니시는데는 충분합니다. 바퀴 사이즈가 보통의 26인치보다 작은 24인치도 나오니까 키가 작으신 분들은 사이즈를 맞출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2006년에 큰 변화는 없는 것 같구요, 대신 모빅T라는 앞샥이 달린 모델이 나왔는데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2. 알로빅스 200, 300, 500 : 합리적인 유사MTB
2004년에 ALS 2.0 2.5 3.0 시리즈가 2005년에는 알로빅스 2.0 2.5 3.0으로 이름이 바뀌더니 올해는 알로빅스 200, 300, 500이 되었네요. 알톤사의 하드테일 시리즈입니다. 하드테일은 앞샥만이 있고, 뒷샷은 없는 MTB를 말합니다. 뒷샥까지 있는 것은 소프트테일이라고 부르죠. 앞샥은 팔에 전해지는 충격을 덜어주기 때문에 생활자전거 수준에서도 유용한 편입니다만, 뒷샥은 늘어나는 무게에 비해 장점이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뒷샥이 있는 모델들에 비해서는 알로빅스 시리즈와 같은 하드테일을 추천합니다.
알로빅스 200부터는 차체가 알루미늄이고, 시마노 기어를 사용합니다. 숫자가 커질수록 부품이 조금씩 좋아지고 가벼워 집니다. 가격도 12만원대, 14만원대, 18만원대로 조금씩 올라갑니다. 가격 상승은 합리적인 편으로 보입니다.
특히 알로빅스 500은 유사MTB라고 치부하기는 다소 억울할 정도의 부품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 심하지 않은 산이라면 가끔 올라 볼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비슷한 가격대에서 뒤에 소개할 하이브드리들보다 한 단계 더 좋은 등급의 기어를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18만원이면 사실 그 이상을 노려볼만도 한 가격이라는 게 좀 문제죠.

3. 프레스토
알톤사 제품을 예로들어 설명했지만, 레스포, 코렉스, DM 등의 대표적인 국내 자전거 회사들의 경우도 비슷한 등급의 모델들이 있습니다. 알로빅스 시리즈가 좀 나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그렇지만 DM사의 프레스토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가 없네요. 자출사에서 작년에 인기를 끌었던 모델이고 주변에서도 많이 보이더군요. 알로빅스 300과 비슷한 가격을 갖고 있습니다만, 좀 더 가볍고 더 나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휴... 쓰다보니 말이 많아지네요.
하이브리드 계열과  미니벨로 계열은 다음 글에 이어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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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자전거 소개 - 들어가며

1. [생활자전거 소개 - 들어가며]
2. [생활자전거 소개 - MTB 계열]
3. [생활자전거 소개 - 하이브리드 계열]
4. [생활자전거 소개 - 미니벨로 계열]
5. [생활자전거 소개 - 최저가 전문자전거]


새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추운 날씨 탓에 자전거 타기를 미뤄오신 분들이라면,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 때가 됐습니다.

겨우내 처박혀 있던 자전거는 체인에 기름칠만 해줘도 몰라볼 정도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자전거가 없으시다면, 예쁜 자전거를 새로 하나 장만하시는 것도 좋겠죠.

 

봄을 맞이하여 자전거 회사들도 2006년 신모델을 발표했더군요. 잠시 구경을 좀 하고 맘에 드는 모델을 좀 골라 봤습니다. 봄을 맞아 자전거를 구입하실 분들은 참고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참 여러가지고, 그에 따라 좋아하는 자전거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짜릿함을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튼튼한 산악자전거(MTB)를 타죠.

어떤 사람은 빠른 속도로 바람을 가르는 것을 좋아하죠. 이런 사람들은 날렵한 사이클을 탑니다.

어떤 사람은 작고 가벼워 어디든 데려갈 수 있는 편리함을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쁜 미니벨로를 타죠.

 

저는 자전거가 생활이 되는 삶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상생활에 항상 함께할 수 있는 생활자전거를 좋아합니다. 생활자전거는 전문자전거가 아닌 값싼 자전거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지만, 저는 거기에 생활을 바꾸는 자전거, 삶을 바꾸는 자전거라는 의미를 담고 싶습니다,

 

생활자전거는 우선 경제적이어야 합니다. 당연히 무조건 싼 것이 아니라 가격대비 성능이 뛰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가격대비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2~30만원이 넘어가는 자전거는 부담스럽죠. 그래서 대부분 20만원 안쪽에서 골랐습니다. 사실 그 이상은 제가 관심을 두지 않아서 잘 알지도 못합니다. 


가격대를 이렇게 한정하면, 선택이 상당히 단순해지고, 자연스럽게 중용을 취하게 됩니다.

 

지나친 MTB를 피한다. 

우선 이 가격대에서 험한 산길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전문 산악자전거는 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차피 험한 산길을 오르내릴 것이 아니라면, 그런 용도를 위한 장치들은 과감히 떼어버리는 것이 좋겠죠. 어설프게 전문 산악자전거를 흉내내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지나친 사이클을 피한다.

그리고 제대로 스피드를 내기 위한 사이클도 구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극단적인 속도를 즐기지 못할 것이라면, 좀 타기 편한 자전거로 가는 것이 좋겠죠. 허리가 불편하도록 웅크리게 하는 핸들이나, 너무 얇아서 울퉁불퉁한 도로를 다니기 불안한 타이어 등은 불필요합니다.

 

지나친 미니벨로를 피한다.

또 한 손으로 들어도 가볍고, 작게 접히는 자전거도 구할 수 없습니다. (삼천리 이지바이크의 등장으로 이 얘기는 수정되어야 겠네요.) 어차피 일상적으로 버스나 지하철에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접는 자전거의 필요성은 거의 없어집니다. 차라리 적당히 작아서 가끔 지하철에 싣거나 택시에 싣는 것이 조금 편한 정도에서 만족하고, 대신 좀 더 빠르고 좀 더 멀리 갈 수 있는 자전거를 구하는 게 좋습니다.

 

저는 이런 기준에서 골라봤습니다.

이 글은 주변 고수들의 조언과 실제 사용기들을 통해 계속 업데이트를 할 생각입니다.

그럼 시작... 아니 좀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 글에서 이어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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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부수다

한반도 야경↑님의 [술이 떨어지다.] 에 관련된 글.

술이 떨어지면 새로 빚으면 될 일이고, 별이 떨어지면 스스로 별이 되면 될 일이다. 자기를 부수어 새로 빚어내니, 확신을 갖고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作而不述 信而好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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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가 부른다.

바로 지금 대추리가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잡혀가고 있다고 한다. 대추리가 부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 거기에 없는 거지?
[긴급속보]인권단체활동가들 연행! 평택 강제집행을 저지하기 위해 대추분교 정문을 지키던 인권활동가들 연행. 천주교인권위 변연식위원장,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 등 20명이 연행되어 전경차량 안에 태워져 있음. 연행과정에서 미란다 원칙 고지가 없었고, 사복·정복 경찰들이 연행하는 과정에서 남성·여성 활동가들의 사지를 들고, 옷이 벗겨지는 등의 일이 계속 되었는데도 폭행을 가하며 연행을 계속함. 다산인권센터의 박진 활동가만이 지금 계속 정문에 처몸을 묶고 정문을 지키고 있음. 박진 활동가는 손에 부상을 당했고, 탈진상태임. 활동가들은 버스 안에 갇혀있으며,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게 하는 상황. 언제 정문이 뚫릴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지금이라도 여력이 되는 활동가들은 대추리로 달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hrnet@list.jinbo.net 메일링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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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 하이브리드로 부활!

지음님의 [어디 버려진 자전거 없나...] 에 관련된 글.

짝궁의 자전거에 안장대만 바꿔서 타고다니면서 쓸 만하고 싼 앞바퀴를 찾아 헤멘 것이 어언 2주!

그래도 노력이 헛되지 않아, 4개의 바퀴를 구할 수 있었다.

 

사전 지식

(나는 내 자전거가 탈나는 만큼 자전거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바퀴가 탈 난 것은 처음이라 다음 내용은 나도 새로 알게 된 것이 대부분이다.)

일반적인 자전거 바퀴는 바퀴축(허브)+바퀴살(스포크)+바퀴테(림)+튜브+타이어로 구성된다. 그리고 앞의 세 개가 조합되어 있는 것을 바퀴뭉치(휠셋)이라고 부른다.

바퀴살은 얇고 가는 것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24개(일반적인 경우)가 서로 의지하면서 바퀴가 동그란 원형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 두개의 바퀴살이라도 휘어지면 바퀴테가 휘어버린다. 바퀴테가 조금 휜 경우는 바퀴살의 장력(팽팽하고 느슨한 정도로 나타나는 힘)을 조절함으로써 교정할 수가 있다.

문제의 어려움은 바퀴뭉치의 구성요소, 즉 바퀴축과 바퀴살과 바퀴테의 조합을 변경하는 것은 별도의 공구와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이 세가지는 어느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한꺼번에 바꿔버리는 게 편하지 어느 하나만을 교체하는 작업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세가지가 모두 있더라도 이를 조합해서 하나의 바퀴뭉치를 만드는 것은수고비만 2~3만원이 든다.

그런데 내 자전거는 사고로 바퀴테가 크게 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바퀴테만 바꾸고 싶지만, 바퀴뭉치 전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고... 지난 글에서처럼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퀴를 자전거 몸통에 고정시키는 부품이 있는데, 보통 너트로 고정되어 있지만, 대략 15~20만원 이상부터는 공구없이도 바퀴를 떼고 붙일 수 있도록 탈부착손잡이(Quick Release lever, QR레버, 아.. 용어 우리말로 하기 어렵네...--a)가 달려 있다. 고속버스 등에 싣거나 수리를 할 때 아주 유용하다.

 

1번 바퀴 :

방학동에서 망가지고 버려진 자전거 핸들에 그냥 걸려 있던 바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시마노(Shimano) 바퀴축에 알렉스림(Alexrims) 바퀴테를 가진 있는 전문 산악자전거 바퀴다.

타이어도 전문 산악용으로 두툼하고 별로 닳아있지도 않다.

흠집이 좀 있지만, 지금 내 자전거에 비해서도 훨씬 좋은 물건임이 분명했다.

이런 물건이 왜 거기에 버려져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뒷바퀴라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앞바퀴와 뒷바퀴가 간단히 호환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앞바퀴와 뒷바퀴는 바퀴테와 바퀴살은 같은 걸 쓰지만, 바퀴축이 달라서 호환이 안된다는 걸 알게됐다.

결국 당장 내 자전거를 고치는 데는 도움이 안된다. 그래도 뜻밖에 좋은 부품을 구해 횡재한 기분이다. 타이어와 QR레버만 해도 얼마냐... ^^

 

2번 바퀴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도로변에 방치돼 있던 자전거에서 떼어낸 바퀴다.

자전거는 저가의 접는 자전거. 자전거가 언뜻 봐도 버려진 것이라는 게 분명했다.

자전거 몸통은 회복 불가능하게 망가져 있었고 여기저기 녹이 좀 슬었지만, 앞바퀴는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바퀴가 고정된 방식이 내 자전거처럼 공구없이 쉽게 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작업 첫날은 작은 휴대용 공구로, 둘째 날은 뺀찌(뺀찌가 우리말로 뭐냐....--a)로 시도했으나 너트 자체에 녹이 슬어서인지 실패.

결국 세째 날 커다란 스패너를 빌려와서 떼는 데 성공.

그런데 바퀴축의 회전이 부드럽지가 않다. 오래방치된 탓인 듯. 그리고 저가형 부품이라 좀 무겁다. 어쩌랴 이거라도 그냥 써야지...

 

3번 바퀴

친구 녀석 하나가 자전거를 업그레이드 했다는 소식을 듣다! 아싸!

1번 바퀴에는 못미치지만 2번바퀴에 비해서는 훨씬 좋은 바퀴.

조르고 졸라서 얻어냈다.

그런데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그 친구의 자전거는 태어나지 이제 1년도 안됐지만, 무려 7천km를 달린 노구가 아니었던가.

바퀴축의 회전이 2번 바퀴만도 못하다. ㅠ.ㅠ

그 친구가 새 자전거를 사고나서... 제일 좋아진 점으로 바퀴축을 말했던 이유를 알겠다.

바퀴축을 정비하는 건 또 내 역량을 벗어나는 일. 아 이걸 어따써?

 

4번 바퀴

남영역에서 원효대교 방향으로 100m쯤 가면 완전 허름한 자전거 가게가 있다. 자전거 가게라기 보다는 인력거 가게라고 보는 게 맞을라나? 브랜드가 있는 가게도 아니고 그냥 '빵꾸, 바퀴일절'이런 식으로 대충 손으로 쓴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다. 평소에 참 신기하군, 저런 데가 아직 남아있네... 하고 지나치던 곳이다.

그런데 용산에 다녀오는 길에 '바퀴'라는 글자가 갑자기 크게 보였다. 그래서 들어가 봤다. 가게 자체가 전체적으로 어둡다. 조명 자체도 어두울 뿐더러 은빛 반짝이는 신제품들이 아니라, 녹슬고 낡은 부품들이 진열돼 있는 탓이다. 새 자전거는 파는 것 같지도 않다. 주인 할아버지는 인력거를 고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한 쪽에 자전거 바퀴들이 빨래줄에 걸려 있다. 새 물건은 하나도 없다. 그 중 하나를 가르키며 가격을 물어봤다. 원래는 만원받고 파는 건데, 팔천원만 달라신다. 그런데 물건을 다시 보니 바퀴살에 녹이 장난이 아니다. 원래 등급도 2번 바퀴 정도의 저가형인데 녹은 더 심한 듯 했다. 새것도 3만원 정도면 살 거 같은데, 좀 비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바퀴가 눈에 들어왔다. QR레버도 달려 있다. 그리고 바퀴축을 봤더니만... 시마노! 그것도 원래의 내 것보다도 한단계 높은 등급! 아 이건 도대체 얼마일까? 그래도 중고니까 3만원 쯤? 두근거리며 가격을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

'아, 만원짜리 팔천원에 준다니까! 바빠죽겠는데 아무거나 빨리 골라서 가져가. 아직 개시도 못해서 8천원에 주는 거야'

최근의 자전거 고급화 경향에는 조금도 관심 없다는 듯한 저 호통! 그렇다. 할아버지에게는 전부 같은 '바퀴'였던 것이다. 평생 수없이 많은 자전거를 고치면서 살아오시면서, 자전거가 굴러가기만 하면 되고 '자전거가 다 같은 자전거지'라는 자세를 꿋꿋이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존경스러운 마음에 제발 오래 사시고, 가게도 오래 버티시기를 바라며 크게 인사하고, 얼른 사서 나왔다.

 

조립

사실 4번 바퀴는 바퀴축과 QR레버의 모양이 조금 달라서 내 자전거에 달 수 있을지 아닐지 불확실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바퀴살 한 두개는 휘어진것을 애써 다시 편 듯한 모양이었다. 할아버지가 작업하는 모습이 연상됐다. --; 조금 불안해서 2번으로 갈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잘 달라 붙었다. QR레버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QR레버가 없는 것이더라도 앞바퀴는 왠만하면 아무거나 호환이 잘 되는 건가 보다.

어쨌든 바퀴뭉치는 해결됐고, 이제 튜브에 난 펑크를 때우고 타이어를 바꿔달면 된다. 펑크를 때우는 건 꽤 숙달이 돼서 금방할 수 있었다. 타이어를 갈아끼우고 바람을 넣는데... 헉. 타이어가 구멍이 뚤릴 정도로 심하게 긁혀있는 것이 아닌가? 넘어질 때 그런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넘어진 이유가 이것 때문일지도... 하튼 튜브가 김밥 옆구리 터진 것처럼 삐져나와 있었다.

전에 쓰던 산악용 타이어를 다시 꺼냈다. 내 자전거는 산악자전거여서 원래는 두꺼운 산악용 타이어였는데 많이 닳아버려서 지난해에 좀 더 얇고 밋밋한 도로용 타이어로 바꿔쓰고 있었다.

 

하튼. 이렇게 해서 앞바퀴는 산악용 타이어, 뒷바퀴는 도로용 타이어를 단 변종 하이브리드 자전거가 탄생했다. 뭐 대체로 만족스럽다. 시간과 노력이 좀 많이 들었지만, 8천원에 해결했고 새로 알게 된 것도 많고, 내 자전거에 대한 애정도 더 늘었으니까.

 

그런데, 이리 저리 만지면서 보니까 자전거가 갑자기 늙어버린 듯 했다. 불쌍한 놈. 이제는 좀더 조심조심 타고다니고, 정비도 자주 해주마. 오래 오래 같이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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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팔찌는 성폭력을 줄일 수 없다

트랙팩님의 [어찌할꼬, 전자팔찌] 에 관련된 글.

진수희 의원['전자팔찌는 너무나 '인권적'이다]에 대한 반론글.

 

지난 화요일 갑작스럽게 진수희 의원이 한겨레21에 실은 ['전자팔찌는 너무나 '인권적'이다]에 반론글을 쓸 것을 제안받았다. 마감은 목요일 오후라 했다.

사실 그날은 이미 네트워커 글을 쓰려고 전날 밤을 꼴딱 샜던 터였다. 게다가 다른 잡다스러운 일을 하느라고 원래 쓰려고 했던 글은 쓰지도 못했다. 피곤으로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져있었다. 거기에 감기 기운마저 오고 있었다. 

도저히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왠지 쓰지 않으면 안될 거 같아서 덜컥 받아버렸다. 그래도 그 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레이와 미류였다. 

 

레이, [범죄자 처벌에 대한 고민]

미류, [누가 나를 몰아부치고 있는 거지?]

 

둘의 이 훌륭한 글을 이미 봤던 것이다. 그래 둘 중에 하나한테 넘기자...

시간이 너무 늦어서 다음날 수요일 아침 일찍 전화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감기가 제대로 와 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오후. 밥을 잠깐 먹고 잠시 쉰다고 누웠다가 잠들어서 일어났더니 헉... 이미 늦었다.

차마 넘길 수도 없고 몸은 헤롱대고... 써보려고 발악을 했지만, 평소에 글쓰는 속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딴 어이 없는 글에 굳이 반론하면 뭐하나?'하고 위안하려 했지만, 안 통했다.

포기하고 자학에 빠져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오후 6시까지 글을 달라고, 2시에 다시 연락이 왔다.

그래서 허겁지겁 분량부터 채우고 나서, 순서를 잡고, 주위 사람들한테 제목 내놔라, 아이디어 내놔라 해서 만든 글이다.

급하게 쓴 글이라는 티가 좀 심하게 난다.

하지만, 어쨌든 썼다는 것,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반성폭력운동에 관한 글을 썼다는 것에 자족하며 오늘은 좀 편하게 자야겠다.



전자팔찌는 성폭력을 줄일 수 없다

턱없이 낮은 신고율, 기소율, 실형율... 성범죄자 1% 전자팔찌 채워 성폭력 근절하겠다?

책임회피, 전시행정, 급조된 즉자적 대책 대신 반성폭력운동 단체의 목소리 들어라

 

가해자를 무겁게 처벌함으로써 피해자의 상처가 치유될 수만 있다면 왜 그렇게 하지 못하겠는가? 소수의 악질적인 범죄자들을 격리시킴으로써 이 사회의 성범죄자가 사라질 수만 있다면 왜 그렇게 하지 못하겠는가? 기술을 통한 감시와 통제가 성폭력을 근절시킬 수만 있다면 왜 그런 기술의 도입을 마다하겠는가?


전자팔찌 효과 미미할 것

진수희 의원은 ‘가해자는 활보하고 피해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한 바 있다. 진 의원은 검경의 수사 소홀, 수사과정에서의 편파성, 부당한 합의 유도, 수사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성폭력, 형량이 낮을 뿐더러 이마저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우리는 정말 이러한 지적에 120% 동감하며, 진 의원의 진정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 의원이 제출한 전자팔찌 법안은 이러한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 전자팔찌는 진 의원이 말한 바로 그 현실에 막혀 제약되어 버릴 뿐, 그 현실을 개선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성폭력 범죄의 신고율은 6%에 불과하다. 그나마 신고된 사건에 대한 기소율은 45% 미만이고, 실형율은 그보다 더 낮다. 힘들게 용기를 내서 신고를 하고, 수사의 소홀함과 편파성을 이겨내고, 부당한 합의를 거부하고, 그 오랜 과정에서의 2차 성폭력을 감내해 낸 단 1%의 위대한 피해자만이 가해자에게 형량이 가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1%의 가해자만이 범죄자로서 인정되고, 그 범죄자의 또 일부만이 전자팔찌를 차게 된다는 것이다.

 

진 의원은 전자팔찌법이 통과되었다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범죄자에게 전자팔찌는 채울 수 없었으며, 채웠다 할지라도 본인의 집에서 일어난 범죄를 예방할 수는 없었다.


성폭력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성폭력 가해자일 수 있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언론 보도에서 알려진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다. 일부는 평범한 신발가게 아저씨가 범죄자라는 사실에 놀랐다. 또 일부는 몇 차례 이상한 행동을 목격했지만 무심코 넘어갔다. 다시 말해서 이 천인공노할 범죄자가 이번 사건 전까지는 단지 무수히 많은 ‘평범한’ 가해자 중에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가해행위를 목격한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고, 신고했으나 소홀히 다뤄졌고, 형이 확정됐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다음 사건을 보자. 그는 평범한 정도가 아니라 주위의 존경을 받고 있던 사람이다. 전자팔찌 법안을 낸 그 정당의 사무총장이다. 잘 모르지만 성폭력상담소 이사장까지 맡았다고 하니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른 사람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가해자로 돌변했다. 피해자의 용기에 힘입어 사건이 문제화 됐지만, 그가 범죄자가 될지 아닐지는 모른다. 진 의원도 이 경우는 전자팔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번에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조심해야 하는 걸까?

 

성폭력은 어떤 특정한 선천적인 악인에 의해 자행되는 우연적인 행위가 아니다. 성폭력은 성억압과 성차별, 성폭력을 구조화시키고 있는 현 사회가 전면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 의해서도 누구에 대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성폭력의 가해자는 80%가 피해자가 알고 지내던 사람이며 그 중에서 30%는 가족 중 한 명이다. 바로 옆의 사람이 흉악한 범죄자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 바로 이것이야 말로 성폭력의 현실이며 성폭력이 진정으로 두려운 이유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범죄자들을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 만을 논하는 것은 성폭력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관련 정부 부처와 정치권 등에서 누가 더 가혹한 형벌을 생각해 낼 것인가를 경쟁하듯이 내놓았다.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신상 공개 제도는 물론 야간 외출 제한, 유전자 정보은행, 전자팔찌 제도, 거세약물 투여에 거세수술까지. 그러나 그것은 다만 즉흥적인 발상으로 국민들의 정의로운 공분을 아전인수하려는 것일 뿐 성폭력을 줄이고자 하는 진지한 대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

 


피해자의 인권과 범죄자의 인권은 모두 절대적이다.

피해자의 인권은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범죄자를 가혹하게 처벌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인권이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의 인권은 가해자의 인권과 충돌하고 조정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옹호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성폭력상담소 등 반성폭력 운동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를 주장해왔다. 성폭력의 신고율과 기소율을 1%라도 올릴 수 있는 법안, 수사과정에서의 2차 성폭력을 엄중히 벌하는 법안, 피해자의 인권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은 왜 연구되고 있지 않은가? 왜 이러한 법안은 뒷전인 채 전자팔찌만 대안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가?

 

인권단체가 인권을 말하는 것은 국가와 범죄자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이다. 결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가해자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서 피해자는 절대 약자이며, 여기서 가해자의 인권을 말하는 것은 가장 반여성적이고 가장 반인권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에 반해 범죄자는 이미 형이 확정된 경우다. 남은 것은 국가와 범죄자의 관계다. 범죄자는 당연히 죄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개인이 국가로부터 필요 이상으로 인권을 침해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인권 국가의 기본 원칙 아닌가? 인권을 보장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인권이 있고, 보장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는 인권이 없다면, 그게 어디 인권인가? 특권이지.

 

결국 피해자의 인권과 범죄자의 인권은 모두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어떠한 모순도 없다. 인권단체가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보호에 힘을 싣지 못했다는 비판은 얼마든지 달게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인권침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막을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를 옹호한다는 억지스럽고 악의적인 비난을 받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

 


감시 기술에 대한 맹신은 오히려 위험하다.

감시 기술은 범죄를 막을 수 없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범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었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전자팔찌는 미미한 효과만을 가질 것이다. 물론 아주 작은 효과라고 해도 의미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효과를 결코 과장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전자팔찌 법안만 통과되면 안심하라고 선전해서는 안 된다. 안심은 곧 방심이다. 만약 1%의 범죄자에게 전자팔찌를 채웠다고 자랑하며, 99%의 가해자들의 존재를 은폐하게 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끔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강남구가 CCTV를 설치해서 치안을 강화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것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충분히 검토된 후 도입돼야 한다. 어떤 범죄자에게, 어떤 기능의 전자팔찌를, 어떤 과정에서, 어떤 기간동안 착용시켜야 할 것인지, 그리고 그 각각의 경우에서의 어떻게 실효성과 인권의 균형을 맞출 것인지는 대단히 세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실제로 형사법학계에서는 전자감독에 관한 깊은 연구를 차분히 진행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전자팔찌 논의는 다분히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따라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성폭력에 대한 성찰의 부재, 즉자적으로 급조된 정책, 감시 기술에 대한 맹신. 이러한 흐름은 성폭력도 줄일 수 없고, 인권 침해만을 양산하고, 감시 통제 사회를 불러올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 결단코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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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와 속도

Tori~님의 [걸어다니면..] 에 나오는 '씽씽거리며 달리는 자전거'에 자극받아 쓰는 글. ^^

속도는 시간을 줄인다. 줄어든 시간만큼 세상이 압축된다. 먼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좀처럼 스스로 표현하지 않/없는 작은 것들은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관심을 기울이는 능력도,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사고도 함께 사라진다. 며칠 전 자동차를 타고 멀리 가게 될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창밖으로 보는 풍경은 '그림' 같았다. 아름답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볼륨감있는 풍경이라기보다는 2차원의 유리창에 투영된 '그림'에 지나지 않았다. 시속 100km가 넘는 자동차의 속도 속에 자연의 모든 꿈틀거림이 정지해 버린 것이다. KTX를 처음 탔을 때를 기억한다. 도무지 현실감이라고는 느낄 수가 없었다. 자전거의 10배가 넘는 속도에 무력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KTX의 속도 속에서 자연은 정말로 속도를 위해서는 사라져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상하이에서 시속 460km의 자기부상열차를 탄 적이 있다. 기억나는 풍경이라고는 땅이 완전히 평평했다는 것 말고는 별로 없다. 속도를 줄여 시속 200km가 됐을 때, 나는 그것을 '아주 느리다'고 느꼈다. (비행기는 속도도 속도지만, 시선의 변화가 워낙 극단적이어서 따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시속 10km 미만일 때 자전거 타기는 '이동'보다는 '유희'에 가깝다. 하지만 시속 15km 정도가 되면 놓치는 풍경들이 많아지고, 시속 20km를 넘어가면 주위를 둘러볼 때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속 30km를 넘어가면 잠시라도 앞쪽을 주시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자전거를 좀 타게 되면 얼마 안 있어서 속도에 대한 열망이 생기곤 한다. 어제의 자기보다 좀 더 빠르게, 다른 자전거들 보다 빠르게... 그리고 도심에서는 불가피하게도 버스나 지하철만큼 빠르게, 자동차만큼 빠르게... 나중에는 걷기가 귀찮아질 정도로 중독에 빠져 아주 가까운 곳도 자전거 없이는 움직이지 않/못하는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자전거의 진정한 장점은 언제든지 내려 설 수 있고, 또 걸을 수 있다는 거다. 속도에 대한 열망이 생길 무렵, 효율적인 패달링과 부품의 업그레이드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언제든지 내려서 자전거를 밀고 갈 줄 아는 여유를 배우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볼 때, 작고 꿈틀거리는 것들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서 걷고 있을 때, 우리는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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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함 해볼까?

예전에 다른 블로거들이 하는 거 보고... 참 이런 걸 다하네... 했는데...

한 명 도 아니고 두 명이 부추기니, 함 해 볼까나?

 

근데 이런 건 트랙팩으로 안 묶나? 다 모아 보면 재밌을 거 같은데...

 



Four Jobs I’ve had in my life(일생에 가졌던 네 개의 직업)
과외선생

IT기업 기획자

학원강사

사회단체 활동가


I can watch over and over(몇 번이나 다시 볼 수 있는 네 가지 영화)
블레이드 러너

브래스트 오프

밴디트

바그다드 까페

(어? 다 B로 시작하네?)

 

Four places I have lived(살았던 적이 있는 네 곳의 장소)
상계동(돌 전까지)

성남(중학교까지)

수원(고등학교)

서울 관악구 -> 동작구(대학 이후)


Four TV shows I love to watch(좋아하는 네 가지 TV 프로그램)

진실게임

스폰지

상상플러스

(사실은 우리 짝이 지금 좋아하는 프로그램들.)


Four places I have been on vacation(휴가 중 갔었던 네 곳의 장소)
변산반도-해남

제주도

중국

터키-불가리아

(휴가 기간 중에 갔었던 곳은 없고, 휴가를 만들어서 간 곳들)


Four websites I visit daily(매일 방문하는 네 개의 웹싸이트)
진보넷

구글

네이버(끊었는데, 안 들어갈 수가 없네.)

한RSS


Four of my favorite foods(가장 좋아하는 네 가지 음식)




--;

 

Four places I would rather be right now(지금 있고 싶은 네 곳의 장소)
자전거 안장 위
우리집 침대 위
우리 짝 옆
내가 짓는 공간

 

Four bloggers I’m tagging(태그를 넘기는 네 명의 블로거)
다섯병
탈주선
파차

레이(혹시 살릴라나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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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좋은 사람이라...

안유석 님의 좋은 사람을 보고 때때로 읽어보기 위해 남기는 글.

 

'좋은 사람'은 그 사람 자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보다도, 그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인가로 정해지는군요.

'좋은 사람'과 만날 때는 '좋은 사람'이 되겠군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종종 보고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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