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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7
    68혁명과 청계광장( 68혁명 40주년에 부쳐)
    은하철도
  2. 2008/07/07
    일상적 사랑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가?
    은하철도

68혁명과 청계광장( 68혁명 40주년에 부쳐)

68혁명과 청계광장

은하철도

 

들어가면서

5월 초부터 시작된 촛불 시위가 한 달여를 넘게 계속되고 있다. 시위는 청소년들이 교복을 입고 초 한 자루 들고 현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유일한(?)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형의 토대인 청계천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우발적이고 일회적일 것’ 이라는 대다수 운동세력의 분석을 뛰어넘어 즉자적이고 감성적인 ‘미친소 ’반대를 넘어, ‘미친교육’, ‘대운하 반대’ 그리고 ‘미친 사유화(공공부문의 사유화와 공기업 사유화)’ 이슈로 까지 확대 고양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헝가리 이민 출신의 우파 사르코지가 시라크의 후임으로 선거에서 승리를 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새로운 프랑스’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상대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외곽지대인 프랑스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주35일 근무제등 기존의 투쟁을 통한 사회적 합의물을 효율성과 경쟁 그리고 ‘프랑스적’ 인 사회 규범을 내세워 무효화함으로써 대대적 사회개조(?)를 역설하고 있다. 이에 대한 민중의 저항도 청소년과 교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전면적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데올로기 공세도 시작되었다. 사르코지 정권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과 정치권은 ‘68혁명’의 40주년을 맞는 올해 전면적 68혁명에 대한 폄하를 주 내용으로 하는 재평가를 획책하고 있다. 각종 미디어를 동원해서 폄하를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우리네의 청와대와 조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부르주아 세력의 현 상황에 대한 ‘음모론’과 ‘배후세력’의 프랑스판 버젼을 보는 듯 하다.

40여년 전의 전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졌던 68혁명에 대한 양상과 전개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는 가운데 현 시점에서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촛불 정국과의 차이점과 공통점 그리고 전개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68혁명의 조건과 양상 그리고 전개 과정

베트남에서 연초에 시작된 ‘설날 공세’에 뒤를 이어 대학 기숙사 문제라는 사소한(?)문제에 대한 대학생들의 저항으로 시작된 5월의 파리는 베를린과 로마 그리고 체코에서의 봉기로 이어졌고 대서양을 넘어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 점거 사태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우루과이의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파업 시도로까지 이어졌다. 전후 안정적인 지배 체제를 구축했다고 여겨졌던 ‘브레턴 우즈’체제를 골간으로 하는 세계적 자본주의 체계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체계의 1세계와 3세계의 파쇼정권들은 최악의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된다.

45년 종전과 냉전체계의 구축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자본주의 축적은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유럽도 미국의 마샬 플랜의 덕으로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전쟁 전 이상의 경제 능력을 갖출 수 있게되었고 미국의 경우는 케인즈주의 통한 대량소비 시스템 하에서 ‘세계의 공장’, ‘세계의 시장’역할을 하면서 황금기의 60년대를 지나오고 있었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다른 측면에서는 자신의 무덤을 파는 국면을 양산한다고 했다. 최초로 현대화된 전쟁인 베트남 전쟁( 중세까지 왕조와 봉건 제후간의 갈등의 양상이었던 전쟁이 민족과 국가간의 갈등 국면으로 전환된 것이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이었다면 베트남 전쟁은 미사일과 전투기로 상징되는 최첨단의 과학전의 시작이요, 돈의 위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만드는 현대전의 시작이다)은 제국주의의 주축인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달러 본위체계의 본질적인 위기를 만들었다. 냉전의 체제의 충실한 우방이었던 유럽과 일본의 경제 부흥은 도리어 화살이 되어 미국의 수출 감소와 수입의 확대를 초래했고 결과적으로 미국 내의 금의 유출을 가져오면서 복지국가로 대변되는 케인즈주의의 종언을 고하게 한다. 이러한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 국면에서의 결정적으로 닉슨 독트린을 통해 파산 선언을 하게 된다.

경제적 위기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안정’ 된 조건 속에서의 삶을 누리던 노동계급과는 달리 달라진 환경과 열악한 조건 속에서 삶을 시작해야 하는 학생들은 당시의 암담한 자기 현실과 현실의 모순을 포착하였다. 프랑스의 경우 50년대 말 알제리 위기의 해결자로 나서면서 장기 집권에 들어선 ‘드골’의 억압적이고 탐욕스러운 ‘부르주아의 비루함’의 모습을 기성세대의 낡은 가치관과 결합시켜 그것들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와 저항의 상을 투사하면서 거리로 그리고 바리케이트로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나선다.

심성적 측면의 조건을 살펴본다면 미국에 의해 대량 학살로 확대된 베트남전의 진행과 이에 대한 베트남 민중들의 영웅적인 저항은 전세계적인 반전 운동을 만들어냈으며 중국에서 시작된 이른바 ‘문화대혁명’은 정보의 부족과 주관적 해석상의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지만 의식과 생활에서의 즉 미시적 차원에서의 또 다른 ‘대안’에 대한 공감과 필요성을 확산시켰다.

50년대 말 불붙은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은 68년 킹 목사의 암살사건으로 체재 내화적 개혁과 사회 진보의 지체에 대한 전면적인 회의를 가져왔고 체제 외적, 체제 전복적 운동(블랙 팬더 당 운동 등)으로 확대 고양되었다.

일본의 경우 2차 대전 당시 불구대천의 숙명의 적이었던 미국과의 군사동맹으로 전범국에서 자신을 점령한 국가와의 동등한 우방국(?)으로의 격상을 꾀함과 동시에 세계 자본주의 안에서의 우월적 위치를 보전확대하기 위해서 정권과 자본에 의해 이루어진 미일방위조약등의 제반 조처를 감행한다. 이에 대해서 미시마 유키오로 대변되는 일본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발악에 가까운 저항을 하였고 ‘도쿄대 전공투’ 로 대변되는 대학생들의 반정권 반체제 투쟁을 가져왔다. 바야흐로 반자본주의를 위시한 민족주의, 인종주의, 여성주의 , 성소수자 문제, 인권 문제 등 다양한 대안과 가치관의 분출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68혁명 포스트 모던의 시작?!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저녁의 황혼 빛깔이 오고 나서 나래를 펴고 날아오르듯이 철학은 현상과 운동 너머를 보지 못하고 대체로 추수적인 입장에서 후일담을 정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중세 길드체계에서의 폐쇄적 생산체계의 붕괴와 괘를 같이 하면서 시작된 수공업적 매뉴팩쳐 경제에서의 인간의 혼란을 분석한 칸트의 철학, 산업 자본주의의 시작과정에서 소영주 국가의 붕괴와 민족국가의 수립기에 이데올로기의 부재에 혼란을 겪던 독일의 상황에서의 부르조아 국가와 부르주아 사회의 철학적 토대를 정리한 헤겔이 증명하듯이.

1848년의 2월 혁명, 1871년의 파리콤뮌, 그리고 1917-19년의 사회주의 혁명의 고양기를 지나고 두 차례의 미증유의 세계 대전을 겪게 되면서 노동계급과 민중들은 복지국가 케인즈주의의 안온한 대량소비 사회 속에서의 삶을 지속하면서 기존의 투쟁과 저항의 정신은 거세당하게 된다. 군대폭력에 시달렸던 신임병사가 고참이 되면 다른 신임병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듯이 오히려 체제와 구조의 거대함에 질식한 민중들은 전면적인 연대 투쟁을 포기하고 또 다른 권력과 구조의 하부가 되어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다종다양한 운동(주택점거 투쟁, 성소수자 문제. 이주 노동자문제 등)에 탄압의 주체가 되곤 하였다.

50년대 시작되고 풍미되었던 ‘인간’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등장하던 ‘구조주의’ 물결의 최대 고양은 아마도 66년 푸코의 [말과 사물]과 같이 한다. 푸코는 책 마지막에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진 얼굴마냥 소리 소문 없이 지워지는 인간의 말소를 얘기했고 72년에 출간된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티외디푸스]에서는 정신분석학적 차원에서의 자본주의 분석을 통해 당시 자본주의 사회의 분석과 모순의 원인을 밝히고자 하였다. 자신들이 폐기한 ‘인간’, ‘주체’,‘의식’의 차원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모순과 분석은 역시나 자신들의 선배 철학자들처럼 별다른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속절없는 후일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1917-19년의 혁명의 고양기에 뒤이은 20년대 파씨즘의 출현으로 혁명의 전망이 보이지 않았던 시기의 그람씨의 고민과 분석은 오히려 절박하고 현실적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68혁명의 시작과 전개에 있어서 세계적 차원에서의 자본의 위기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 모순과 위기는 명백했으며 치명적이었다. 68혁명의 진전 없이 체제 내화로 마무리 되면서 조우하게 된 70년대. 새로운 모습의 자본주의 -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가 그들 철학의 유효성 폐기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 위계 속에 최상위에 속한 제1세계 제국주의 국가와 사회 속에서 전개 발전된 포스트 모던 류의 철학은 성급하게 모던(근대)를 정리하고 포스트 모던을 주장하면서 본의 아니게 자본주의 체계에 복무하게 된다.

 

68혁명의 연장 아니면 새로운 시작

 

68혁명의 세대들은 이제 육십 줄에 들어선 중늙은이가 되었다. 우스개 소리로 “파리의 노인들이 젊은 세대보다 더 진보적이고 급진적이다” 라고 한다. 당시 대학가인 카르티에 라탱에 바리케이트를 쌓고 공권력에 폭력으로 대치를 하면서 ‘모든 금지를 금지한다’와 ‘상상력에게 권력을!’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성의 자유와 모든 금기와 억압에 대해 저항하였던 그들은 오늘날 프랑스 젊은 세대 사이에 늘어나고 있는 르펜으로 대변되는 프랑스 국가주의자들이나 네오 나치등의 인종주의자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몇 년전 서울광장을 붉게 물들인 붉은 악마와 태극기의 물결을 보았던 우리는 오늘 저녁 서울 시청 앞과 광화문 사거리의 촛불 소녀들을 붉은 악마와 같게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다르게 보아야 하는가?

심야에 차도를 메우고 행진을 하고, 밧줄로 전경차를 밀어내면서 ‘비폭력’과 ‘평화시위’를 외치는 시위대를 보면서, 80년대와 90년대 곤봉과 방패의 세례 속에서 파이프들 들고 보도블럭을 깨고 화염병을 던지면서 시위를 했던 세대들에게 있어서 진압을 하는 전경의 방패 진압에 경찰의 폭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요즘의 젊은 시위대와 전경들의 약간의 폭력의 전조에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청소년과 시민을 보면서 80년대와 90년대 한국사회에 살았던 사람으로써 ‘늙었음’ 절실히 느낀다.

또 다른 잘못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68혁명 이후 40여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 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발전과정에서 투자 없는 투기의 전지구화로 인한 수십, 수백조 달러에 달하는 갈곳 없는 투기 자본의 유례없는 축적과 쌀값의 폭등으로 쌀 대신 진흙을 구워먹어야 하는 아이티의 어린이들이 병존하고 있는 21세기의 지구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백 수만의 네이팜탄을 소총하나로 막아내야 하는 베트남의 정글유격대의 현실과 과연 차이가 있는가?

선진 제국주의 국가에서 케인즈주의에 의한 축적의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최초의 ‘위험사회’화의 징후를 안정된 정규직 노동계급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사회에 나가게 될 새로운 세대는 차분한 고민과 분석 이전에 본능적 위기감으로 모순의 파열점을 포착하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왔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10여년간 착실하게(?) 진행되어온 신자유주의 시장화의 피로와 모순은 어쩌면 여론 주도를 하는 기성세대 정규직 노동계급에게 있어서 보다 오히려 대학생들에게 아니 오히려 살인적인 입시제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미래의 ‘88만원 세대’인 청소년에게 더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68년 5월의 사태가 발생하자 프랑스의 공산당과 CGT로 대변되는 노조단체들은 대학생들의 저항에 대해 ‘부르주아적 우발적 행동’으로 규정짓고 초반에 연대하지 않는 우를 범했다. 오늘날 청계광장에서의 청소년들의 저항에 대한 우리네의 안이한 분석과 비관주의적 평가와 큰 차이점이 없다. 이러한 평가는 바로 우리들의 둔감함과 상대적인 안온함 그리고 치열한 모순에 대한 고민의 부족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나가면서

프랑스에 있어서 68혁명 당시의 주체들의 요구와 이슈에 대한 평가는 당시에 철저하게 반동적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결과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내부적으로 공산당의 의회정치의 역할이 중요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보장에 의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적 욕구가 보장되고 있었으며 외부적으로는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권이 건재하였던 상황에서의 객관성이 결여된 그들만의 주관적인 분석이었다. 그러나 당시 세계적 차원에서의 자본주의의 위기가 시작되었었고 제3세계 특히 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변화와 저항의 운동이 전후 활발하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아니 전지구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하루하루 늘어만 가는 홈리스, 폐업이 되어 또 다른 폐업 사장을 기다리는 가게들의 확대, 외부적 요건이라고 하지만 월급만 빼고 올라가는 물가들..... .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간과했던 모순이 여기저기서 허연 뼈다귀를 내보이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68이 시작되었다면 신자유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새로운 그 어떤 것의 시작과 더불어 촛불은 타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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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사랑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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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년도 작품, 이하 ‘파마탱’ )는 우리 시대 우리에게 있어서 금기(禁忌) 그 이상이었다. 실비아 크리스텔의 ‘엠마뉴엘부인’은 이미 초등학교때 개봉이 되어 선배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전설이었다면 베르툴루치의 ‘파마탱’은 개봉조차 금지당한 금단의 그 무엇이었다. 80년대 말, 지금은 허물어 호텔이 되어 버린 서울의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놀랐었는데 마구 삭제 되어 개봉되었다는 그 이후에 소문을 들으면서 이유없이 분개했었다. 인터넷 초고속망의 세상 속에서 손쉽게 파일로 구해 볼 수 있는 요즘에 비하면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영화에 대한 개봉 당시의 논란 자체는 불과 20년 전이지만 옛 시절의 아득한 얘기인 듯하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초상화들

필림이 돌아가고 색소폰 소리가 애절하게 테마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아일랜드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뭉개진 인물 상(像)이 타이틀로 올라간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람인지 아닌지 조차 구별이 힘든, ‘과연 인간의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드는 처참하게 난도질당하고 총알로 뭉개진 듯한 얼굴이 그리고 눈, 코 그리고 입이 과연 제대로 기능을 할지 의아한 얼굴을 가진 군상들이 나른한 듯 카우치(긴 장의자)에서 누워서 번들거리고 뭉퉁한 몸둥이를 그대로 보이면서 흘러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의 정신을 기괴한 형태의 얼굴과 육체로 표현한 베이컨의 작품들은 안락한 의자에 나른하게 누워있는 인간의 위태로움과 기괴스러움 그리고 정신 분열을 보여주고 있다. 본질적으로 노동을 해야 하지만 그러나 노동을 천시하고 하기 싫어 발버둥 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인간의 정신의 양립 불가능성 그리고 그 결과로 발생하는 필연적인 분열증세!

 

 

 

 

 

 

 

파씨(Passy)에서의 첫 만남

영화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 폴(마론 브란도)와 잔느(마리아 슈나이더)가 파리의 파씨 지역의 세느강을 가로 지르는 비르아켕(Bir Hakem)철교의 지하철 밑으로 지나간다. 20세기 초에 만들어져 낡은 지하철은 굉음을 내면서 철교를 지나고 소음에 주인공 폴은 하늘에 대고 욕을 한다. 나폴레옹 3세 이후 부르주아지를 위한 신흥 주택지역으로 급부상한 파씨의 고풍찬연한 아파트의 안에서 둘은 우연히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서로의 신분 확인도 안하고 헤어진다. 그 둘이 각각 걸어가는 길가에는 방탄차와 무장 전투경찰이 시위대에 맞서고 있다. 주인공 폴은 미국인이지만 정체를 알 수 없다. 세계 각국을 떠돌아 다녔으며 복싱선수에서 기자 그리고 남미의 혁명단원으로 그리고 지금은 파리의 어느 싸구려 여인숙의 여사장에게 기생하는 남편에 이르기까지... 분명한 것은 과거에 뜨거웠던 열정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지금은 심하게 좌절하고 체념하고 돈 많은 부인에게 더부살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폴은 이런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싶지만 그 부정의 방법으로는 단지 모르는 여인(잔느)의 끊임없는 질문에 대해서 끈질기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가학적 성행위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반면 잔느는 대령인 아버지를 둔 그리고 시골에 저택을 상속한 부르주아 계급의 젊고 희망에 찬 아가씨이다.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기를 거부하는 폴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얘기를 하면서 정체성 확인을 요구하고 폴과의 위험한 줄다리기를 한다.

폴의 아내는 여인숙에 장기 투숙하고 있는 한 남자의 정부로서 남편인 폴이 모르게 오랫동안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폴은 아내와의 부부관계를 통해 과거의 자신의 정체성과의 단절과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의 금전적 종속의 전도(부자인 부인과 무일푼 기생하는 남편)로 인한 마초적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 만큼 폴의 아내 역시 아무런 조건 없는 남녀 관계(정부와의 관계)를 통한 지금의 남편과의 관계(일반적 남녀 관계에서의 주도권은 남성이 가지지만 이 경우에는 역전되어 있다)에서의 해방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잔느는 젊은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남자친구를 두고 있다. 모범적 남녀관계와 시간이 지나게 된다면 안락한 부부생활로 이어지는 안전하고 넓은 길에서 이탈하여 정체모르는 폴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위태한 만남을 이어간다.

폴에게 있어서 아내와의 관계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관계였었다. 아니 어쩌면 일상적인 남녀의 역할(일상적인 자본주의에서 남자는 사회에서 여자는 집안에서)이라는 것 자체가 가정에 들어온 자본주의적 관계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 역전된 역할(돈 있는 아내와 백수인 남편, 돈 때문에 결혼했다라는 주위의 시선)과 결혼이라는 법적 제도로 엮어진 틀에서 폴은 다층적인 원인에의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으리라.

폴에게는 새로운 관계의 맺음(잔느와의) 아니 관계없는 관계, 전인격적인 관계,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정체성을 괄호 안에 넣은 상태의 관계를 희구했었고 그 대상이 잔느였으리라.

그러나 잔느에게 있어 폴과의 관계는 일시적이고 충동적이었기에 그간의 단조로운 안정된 생활과 관계에서의 ‘악센트’나 ‘별미’ 정도에 불과했다. 오히려 계속적인 관계와 만남 속에서 만들어지는 그리고 늘어나는 불안과 고통 어색함은 일상적 관계맺음의 방식으로 되돌아 가고자 하는 충동을 확대한다. 끊임없는 상대방에 대한 물음과 존재 확인을 요구하는 잔느는 자본주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처음으로,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나침반 같은 방식을 버릴 수 없었다. 결국 두 연인은 파국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68혁명: 자본주의적 관계 맺기의 회의

‘모든 금지를 금지한다’라는 슬로건이 생각나는 68혁명의 좌절과 더불어 ‘파마탱’은 만들어졌다. 영화가 만들어지던 바로 그해에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본주의와 정신불열- 앙띠 외디푸스](1972)를 통해 ‘탈주’를 하나의 방책으로 제시했다. 벗어날 수 없는 편집증적 사회의 망(網)들 속에서 개인은 편집증내지는 분열증을 띌 수 밖에 없다. 체제에 순응하는 순간 편집증에 사로잡히고 벗어나려는 순간 분열증에 빠질 수밖에 없다. 편집증과 분열증은 구분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의 상태이다. 들뢰즈와 카타리는 융이나 라이히라는 선구자가 있지만 무의식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우회적인 자본주의 비판을 수행한다. 영화에서 폴은 자본주의적 관계 맺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분열증적 모습을 보인다면 잔느는 자본주의적 관계 맺기에 집착하는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좌파 작가의 아들인 베르톨루치는 영화와 인연을 아버지와 절친했던 좌파 감독인 파솔리니 감독의 조수로서 시작하였다. 파씨즘 체제의 음모를 폭로하는 ‘거미의 계략’과 ‘1900’이란 영화를 통해 좌파 감독의 대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마지막 황제’등으로 그간의 평가를 배신하는 듯하더니 최근 68혁명을 소재로한 영화(몽상가들)로 논란을 만들었다.

‘파마탱’ 곳곳에 감독 자신의 전력과 회한 그리고 불같이 시작되었다가 급격히 사라진 68혁명의 좌절이 영화 여기저기에서 짙은 패배의식으로 묻어나고 있다.

20세기 초반 아르헨티나에서 이민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유행된 ‘탱고’는 오늘날 가장 퇴폐적인 춤 형식의 하나이다. 남녀가 밀착되어 녹아내리는듯 우수 짙은 선율에 몸을 맡기는 춤에서 과거는 없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발견할 수 없으며 오직 현재만 있는 듯하다.

탱고를 추는 무도장에서 마지막으로 폴은 잔느와의 관계의 진전을 시도하지만 이미 ‘기괴함’의 거북함을 감지하고 ‘편안함’에 마음을 둔 잔느를 되돌릴 수는 없다. 과거를 버리고 현재에 충실하려고 하는 폴에 비해서 현재에 충실했던 잔느는 이제 미래를 본다.

마지막 잔느의 아파트까지 쫒아온 폴은 이름 없는 강도로 주인의 정당방위에 의해 사살 당한다.

미시적 혁명, 거시 담론

68혁명은 전세계 차원에서의 운동이었는가? 아니면 봉기이었는가?

전자에 대한 평가는 주로 자유주의자들의 평가이다. 이전의 각종의 금기와 고래의 가치관에 대한 근본적인 반대와 회의가 시작되는 계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반전’과 ‘평화’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으며 환경문제와 소수자 문제 여성문제 등이 중요한 이슈가 되어 때로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착취관계의 재생산)을 능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68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면서 실패하지 않은 혁명이다.

그러나 봉기의 차원에서 보자면 미쳐 횃불도 들기 전에 꺼져버린 횃불이다.

미시적 권력관계에 초점을 두고 투쟁했던, 지도부와 핵심 없는 수많은 리좀적 투쟁과 구호속에서 권력과 자본은 성적 자유와 문화적 차원에서의 허용의 확대는 허락했지만 자신의 양태를 케인즈주의 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확대 강화하면서 본질은 굳건하게 지키고 개인과 사회의 조작과 통제를 오히려 고도화하였다. 허용할 듯 하면서도 핵심은 꽉 쥐어 잡고 변죽만 울리는 형국!

언제든지 국가와 자본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개인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기존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를 강제한다. 미시적 차원의 허용을 용인하는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일거에 회수해버린다. 현재 각종의 사회운동 분야가 일정정도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진지는 대륙이 아닌 섬이 아닌지.......고립되어 있으면서 다른 진지와의 연결점 없는 수 많은 산개한 섬들.....

그렇기 때문에 봉기여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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