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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5
    탕차오(唐朝)의 인터네셔날가
    은하철도
  2. 2008/10/08
    빅토르 최의 혈액형
    은하철도
  3. 2008/05/03
    쁘티의 심리 - 왜 2mb가 청와대에 있을까?(1)
    은하철도
  4. 2008/04/29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은하철도
  5. 2008/04/28
    팍스 로마나, 팍스 브리타니카 그리고 팍스 아메리카나
    은하철도
  6. 2007/12/07
    제 8요일과 희망 찾기 (1)
    은하철도
  7. 2007/12/07
    트레인 스포팅과 다람쥐 쳇바퀴
    은하철도
  8. 2007/11/01
    덕유산 능선에서 (1)
    은하철도
  9. 2007/10/10
    창덕궁에서
    은하철도
  10. 2007/10/10
    창덕궁에서
    은하철도

탕차오(唐朝)의 인터네셔날가

 

國際歌 〉

       起來 飢寒交迫的奴隸
      起來 全世界受苦的人

      일어나라! 기아와 추위의 노예들이여!

       일어나라! 전세계의 고통받는 사람들이여!
     

      滿腔的熱血已經沸騰 要為真理而鬥爭
      舊世界打個落花流水 奴隸們起來 起來
     
온몸은 뜨거운 피가 이미 진리를 위한 투쟁을 위해 솟구친다.

       구세계는 타도되어 떨어지는 꽃이 되어 흐르는 물에 흘러가고 노예들은 일어나고

       있다.

     

      不要說我們一無所有 我們要做天下的主人
      這是最後的鬥爭團結起來到明天
     
우리들이 아무것도 없다고 얘기하지 말자

       우리는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최후의 투쟁이다. 단결하여 내일을 위해 일어나자.

     

      英特納雄耐爾就一定要實現
      這是最後的鬥爭團結起來到明天
       인터네셔날은 꼭 곧 실현된다.

        이것이 우리의 최후의 투쟁이다. 단결하여 내일을 위해 일어나자

     

      英特納雄耐爾就一定要實現
      從來就沒有什麼救世主 也不靠神仙皇帝
       인터내셔날은 바로 실현된다.
       

        구세주는 없었으며 신이나 황제에게 기대지 말라.

     

      要創造人類的幸福 全靠我們自己
      我們要奪回勞動的果實 讓思想衝破牢籠
    
  전인류의 행복을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고

       우리는 노동의 결과를 다시 회복하고,조롱안에 갇힌 사상을

       빼낸다.          

 

      快把那爐火燒得通紅 趁熱打鐵才能成功
      這是最後的鬥爭團結起來到明天
   
   저 이글거리는 화로의 불속에서 달궈진 철을 담금질해야

       강철이 되듯이

       이것이 우리의 최후의 투쟁이다, 내일을 위해 단결하여 일어나자.

      英特納雄耐爾就一定要實現
      這是最後的鬥爭團結起來到明天
     

      英特納雄耐爾就一定要實現
      最可恨那些毒蛇猛獸吃盡了我們的血肉
     
인터네셔날은 꼭 곧 실현된다.

       이 저주스러운 독사와 맹수들이 우리들의 피와 살을 다 먹어치웠으니

     

      一旦把他們消滅乾淨鮮紅的太陽照遍全球
      這是最後的鬥爭團結起來到明天
 
       저들이 사라지면 영롱하고 불은 태양은 전 지구를 비추리라

         이것이 우리의 최후의 투쟁이다. 단결하여 내일을 위해 일어나라.

     

      英特納雄耐爾就一定要實現
      這是最後的鬥爭團結起來到明天
      英特納雄耐爾就一定要實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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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의 혈액형

 

 

Группа крови(혈액형)

따뜻한 이 곳, 그러나 거리는 우리의 발자국을 기다린다.
군화위엔 별빛의 먼지...
푹신한 소파, 십자나사, 제때에 당겨지지 않는 방아쇠
햇빛 비춰지던 시절이란 눈부신 꿈속에나 있을 뿐

치뤄야 할 댓가가 아무리 크다해도,
헐값의 승리는 바라지도 않는다.
전우의 가슴을 밟고 싶지 않기에...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단지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러나 하늘 높이 솟은 별은 나를 전장으로 불러낸다.


 

내 소매 위에는 혈액형
내 소매 위에는 나의 군번
전투로 향하는 내게 행운을 빌어주게
이 들판에 남게되지 않기를
이 들판에 남게되지 않기를

전투로 향하는 내게 행운을 빌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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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티의 심리 - 왜 2mb가 청와대에 있을까?

 

“ ‘원한의 인간’은 숨는 것, 비밀통로들 그리고 뒷방을 좋아한다.

그는 어떻게 침묵하는지를 ,어떻게 잊지 않는지를, 어떻게 기다리며 그리고 어떻게 임시변통적 자기 비난과 자기 비하를 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모든 가려진 것들에 의해  그는 그만의 ‘세계’, ‘안정’, ‘상쾌함’이 전부인양 주술에 걸린다. ”(니체 ‘도덕의 계보’에서 ) 


니체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런 인간은 ‘삶을 긍정하는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본능적인 자기 확신과 자기 보존에 의해 추동된 자기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주체’- 자아-의 믿음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여러 가지를 상상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데까당스의 철학자 니체는


도래하고 확장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 계급의 성장에 대해서는 의도적인 무시로 일관했고


헤게모니의 장악한 부르주아 계급에 대해서는 목가적인 한탄을 통해 비하했습니다.


결국 퇴행적 철학체계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귀에는


광기의 저편에서 예리하게 사회와 사회 구성원의 의식을 분석한


번뜩이는 경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위의 글은


20년대 도래했던 파씨즘에서의 대중의 역할과 심리를 예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현 우리 사회의 대다수의 쁘띠들의 심리이기도 하고요....


경제 살리기라는 은밀한 통로로 자신의 역동적 삶을 회피하고

대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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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반역이다!

티벳을 여행하는 동안

 

중국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에서 절대로 빠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바로 '역사'문제!

 

본인도 뇌속에서 민족주의의 오염물이 다 빠지지 않은 관계로

 

흥분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이미 중국은 천안문 사태이후 그리고 89년 티벳트 시위와 신장위구르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교도들의 독립 운동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해 엄청난

 

한족 중심의 역사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아무리 예전에 여타의 민족들이 중국을 지배하고 나름대로의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ㅇ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인들의 대답은 한마디로 간단하다.

 

"예전에 그런 역사가 있는것 다 인정한다. 그러마 그들은 고대 중국의 한 민족이었다."

 

결국 새빠지게 얘기를 하더라도 한마디로 "그들은 우리이다"라는 말로

 

모든 것을 정리한다.

 

작금의 티벳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당나라때 티벳의 독립 왕국이 세워지고 당시 당나라의 수도를 점령했었다는 사실을

 

다 인정한다. 그러나 결론은 "어쩌라고 그 티벳인들이 중국사람인데! 중국 사람들이 중국을

 

통치하고 다스렸는데 무슨 문제?"

 

고구려의 역사와 관련된 동북공정의 결론도 위와 같다.

 

힘겹게 이에 반응하는 우리들도 우습게 되는 대목이다.

 

현재 중국은 내부적 계급 모순이 심각한 상황이다.

 

지역별, 계층별, 거기다 민족별 빈부격차를 포함한 사회경제적 차이는

 

상상을 넘어서고 있으며 사회의 심각한 갈등의 직전까지 치닫고 있다.

 

마오의 사망이후

 

78년 이후 개방화정책 (자본주의의 원시축적 모방)이 시작되고

 

이런 갈등과 모순의  분출의 시작이 89년 대학생을 중심으로하는

 

천안문 사태였다.

 

중국공산당의 주자파(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하는 테크노크라트와 그의 족벌)들은

 

인민해방군을 앞세워 인민들의 요구를 총알과 탱크로 받아쳤다.

 

이제 20년이 지났다.

 

20년 가까이 진행되어온 한족 중심의 민족 교육이 새로운 중국인들

 

신세대들의 머리속을 오염시켰고, 여기에 역반응으로 중국의 소수 민족들

 

역시 계급의 모순보다는 민족의 지배와 피지배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이 치뤄진다.

 

올림픽이라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쇼비니즘과 나쇼날리즘의 향연이 열리는 질뻑한 야음의 무대임를 감안할때

 

이 시점 중국의 올림픽 개최는 시기적이로 적절(?)하다.

 

오성홍기를 성화봉송을 환영하는 차원에서 들고 환호하는 오늘날의 신 중국인들을 보면서,

 

민족주의의 발흥의 시기가 도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골이 송연해진다.

 

뱀꼬리

 

1.티벳 독립을 민족주의적 관점(동아, 조선 등 자본가 계급지들이 유포하고 서경석등 우파들이 주장)

은 매우 위험하다.

 

2. 티벳 독립을 개인의 양심이아 종교적 관점(쁘띠 부르주아적 관점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티벳동호회들과 한겨레 신문의 관점)은 사태해결과 문제 해결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고 민족주의 관점에 결국 포섭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실제 티벳 현지의 민중들은 달라이 라마의 종교적 지도자는 당연히 인정하지만 과거 달라이 라마와 소수 귀족들의 봉건제 착취 형태의 경제와 정치 구조는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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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마나, 팍스 브리타니카 그리고 팍스 아메리카나

 

팍스 로마나, 팍스 브리타니카 그리고 팍스 아메리카나

들어가면서 

  세계 역사를 바꾼 한 순간을 나름대로 꼽아본다. (한 개인의 선택에서의 가정도 의미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세계 역사에서 가정이란 정말 의미 없는 일이지만 추운 겨울날 밤도 길고 심심파적이라고 생각해주시기를!) 가까이부터 보자. 한반도에 있어서 고구려의 나당연합국에 의한 멸망? 그럼 어떻게? 고구려가 중심이 되어 삼국을 통일한다!!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후의 역사전개에 큰 이변을 가져오지는 못할 듯 하다. 항우의 유방에 대한 승리는 어떨까? 아마도 ‘사면초가’가 ‘사면한가’로 바뀌었을 것이고 경극 ‘패왕별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서양을 살펴보면 알렉산더의 장수와 제국의 확대는 어떨까? 기왕에 알렉산더 당시의 지중해 연안의 인간들의 세계 인식은 소아시아와 그리이스 그리고 북아프리카와 인디아 정도라고 볼 수 있으니 32살에 요절한 것이나 차라리 70살 넘어 천수를 누리는 것이나 알렉산더의 제국은 차이가 없을 듯 하다. 카이사르의 암살과 아우구스투스와 안토니우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와의 대결은 어떨까?

 

영웅인가? 학살자인가?

  로마의 영걸 카이사르는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쓰면서 서유럽을 로마의 영토로 편입시키면서 본격적인 제국의 시대를 연다. 시오노 나나마는 [로마인 이야기]를 쓰면서 입에 침이 마르게 카이사르를 칭송한다. 심한 인종주의자 정도는 아니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책 여기 저기에서 거침없이 기독교와 유대인에 대한 그의 편견을 내비친다. 아울러 힘에 대한 숭상과 ‘질서’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폭력과 살육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극우 보수주의자이다. 지금의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고 독일에서 ‘로마의 안전보장’이라는 명분으로 벌어진 수십만의 학살과 문화 파괴와 정복을 로마인의 편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그를 보면 다음으로 그가 저술할 책이 “혹시 히틀러의 ‘제 3제국’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초에 조그만 도시국가에서 출발한 로마는 주변의 부족과 도시를 정복하면서 이탈리아 반도에서 세력을 확대하고 지중해의 지배자였던 페니키아 인들의 ‘카르타고’와 격돌하게 된다. 한니발과 스키피오와의 대결로 유명한 카르타고와의 전쟁은 지중해의 유일한 패자로 로마서 서게 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전쟁중 세습귀족 계급(파트라이키)의 쇠락과 신흥 기사 계급(에퀴타스)의 부흥을 가져오면서 로마 과두정체제의 한계가 노출된다. 소수 세습귀족에서 운영되던 원로원 중심의 과두제 체제에 신흥기사계급이 월등한 경제력과 수적 우세로 위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카이사르 이전에 그라쿠스 형제의 암살과 마리우스와 술라의 대결은 모두 사회 경제체제의 모순으로 인한 내란 내지는 혁명과 반혁명의 상태였다. 웅장하고 화려한 로마의 유적을 보면서 하얀 대리석의 로마 석상들을 보면서 생각하는 로마의 모습은 투쟁과 갈등과 피의 연속의 로마역사와는 너무도 다르다.

  첨예한 계급 갈등 속에서 카이사르는 해결책을 제국주의에서 찾는다. 세습귀족 계급의 기득권을 보장하면서 신흥 기사 계급 등을 위한 토지와 자원을 이탈리아 반도 밖에서 찾는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화’라고 말하는 정복과 약탈을 통한 경제체제의 수립을 꾀한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시작된 원로원과 폼페이우스를 중심으로 하는 세습귀족세력과의 내전이 마무리 되었음에도 숙청을 하지 않은 것은 카이사르의 ‘클리멘티아(관용)'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100여년 간의 내전 속에 세습귀족 자체가 수적으로 적어져서 세력이 거의 미미해 졌으며 숙청을 통한 계속되는 무리한 계급 투쟁과 내전의 불필요성을 없애기 위해서다. 이런 측면에서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투스의 투쟁에서 아우구스투스의 승리는 예견 가능하다. 세습귀족의 계급과 연계를 가지고 있는 세습귀족 출신의 안토니우스와 비록 카이사르와는 외가쪽에 연결되어 있지만 할아버지의 이력조차 알려지지 않은 옥타비아누스(후에 아우구스투스)는 신흥기사계급의 세력에 기반을 하고 있어 악티움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와의 연합군을 무찌르고 당당히 제정을 열게 된다.

  

전성기의 영국의 식민지 지역

양들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

  영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좁은 섬나라에서 수 많은 영지로 나뉘어서 농업을 기반으로 하던 봉건제 사회에서 봉건 귀족의 입장에서는 왕이란 결국 자신의 계급의 일부이며 강력한 왕권의 존재는 불필요하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시작되면서 자급자족적 농업 경제체제의 한계를 신흥 계급(부르주아지)는 생득적으로 느끼게 된다. 봉건귀족 세력과의 한판 싸움이 시작된다. 마치 로마 오현제 중에 하나인 철인황제(哲人皇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공익을 우선’으로 하는 스토아 철학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제국을 이끌었듯이 부르주아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유재산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했다. 양들이 농민을 몰아낸 것이 아니고 사유재산이라는 ‘복음’을 통해 봉건귀족의 몰아낸다.

이윤축적에 신들린 듯한 생산력의 폭발은 새로운 시장과 원료 공급처를 필요로 한다. 흡혈귀가 하루하루 연명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피가 필요하듯이 신대륙(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에 대한 정복과 착취의 시작이다. 19세기 영국은 잘 알 듯이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서 전세계의 공장역할을 하면서 최전성을 구가한다.

로마의 황제와 제국주의가 천재적인 카이사르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영국의 제국주의 역시 엘리자베스 I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의 종언?, 자본주의의 우월성?

  1989년 헤겔의 역사 철학을 속류화한 일군의 학자들이 ‘역사의 종언’을 합창한다. 때마침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연쇄 붕괴와 뒤이어 소련의 해체가 뒤를 이었다. 그들의 합창은 천상의 목소리 인양 간주되었다. 역사의 종언이라는 것은 종말이나 멸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직 ‘민주주의 대의체제’의 승리 솔직하게 얘기하면 ‘자본주의’의 우월성과 진리성을 의미한다. 대결에서 한쪽의 몰락은 다른 쪽의 승리를 의미하지만  결코 이긴 쪽의 우월성과 진리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한쪽의 승리가 영원이 지속되지도 않는다. 91년 걸프전의 발발로 상대방 없이 시작되었던  미국의 일방독주 시대(팍스 아메리카 라고 하겠다)는 삐걱거렸으며 자본의 세계화로 재편하던 지구화 시대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다양한 계층과 계급의 봉기와 거부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ATTAC과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에서 벌어지는 사파티스타 운동 그리고 미국의 앞 마당인 중남미의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실험들......

  독일에서 ‘반세계화 운동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엘마 알트파터는 이런 자본주의 체제 외부의 충격과 아울러 차분하게 자본주의 체제 내적 모순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의 사회경제체제의 혁명적 변혁은 외부의 충격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내부의 첨예한 모순의 폭발을 기폭제로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과연 현재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과연 최상의 경제 체제인지 그리고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 화석자원의 희소성과 그에 따른 자본주의의 계속적 성장에 근본적인 회의를 하면서 구체적 예를 들고 있다. 






알렉상드르 카바넬이 그린 클레오파트라

반세계화 시위에 참여한 이탈리아 노조원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변명

  지중해 건너 아프리카의 풍요로운 신들의 땅. 이집트의 아름다운 여왕인 클레오파트라는 이미 즉위 이전부터 로마의 사실상의 속국의 형태에 들어갔었다. 죽은 부왕 프톨레마이오스는 유언의 집행자로 국가 ‘로마’를 지정했으니 동아시아적 형태로는 중화와 주변국가의 ‘조공’ 형태보다도 더 기속력이 강한 지배권을 인정하고 있었다. 뛰어난 능력과 임기응변으로 카이사르 생존시에 이미 어느정도의 자치를 이루었으며 기원전 31년 9월 그리이스 서부에 위치한 악티움 해전으로 로마 제국과 정면 승부를 겨룬다. 한 사람의 왕이 자신의 주권과 영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고 볼 수 있지만 강력한 제국이 되어 가고 있는 로마에 저항하고 싸움을 건 그녀의 행위를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저항이라고 한다면 너무나 큰 의미 부여일까?

  클레오파트라의 원수는  그녀 사후  수 백년이 지나 이슬람세력의  확대와 게르만 제 종족의 이동으로 이루어졌다. 지중해권 중심의 경제체제가 이슬람세력에 의해 곳곳에서 막히게 되면서 교역에 이상이 생기는 등 동맥경화 증상이 나타나면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곧 체제의 붕괴에 이르게 된다.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발효하는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여러 계급이 계층이 또는 ‘다중’의 활발한 활동과 투쟁을 하는 자본과 미국 중심의 전지구적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여러 ‘클레오파트라’들이 나날이 늘어가기를....



[로마혁명사 1, 2] 로널드 사임  한길사

[로마인 이야기 1-15]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자본주의의 종말] 엘마 알트파터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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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요일과 희망 찾기

 

제 8요일과 희망 찾기


  프랑스의 유명 배우를 뽑으라면?  아!!! 너무 많다.

장 가뱅, 이브 몽땅, 장 뽈 벨몽도, 시몬느 시뇨레(이브몽땅의 부인), 브리짓 바르도(개고기 먹다 걸리면 이 여자한테 죽음), 알랭 들롱,제라르 드 파르듀, 이사벨 아자니( 이 여자는 나이도 안 먹는 것 같다.), 소피 마르소(초딩시절 나의 로망스!!!!), 벵상 페레. 그리고 뭐 평범하게 생겨서 인지 잘 모르는 그러나 프랑스 80년대 이후 계속적인 프랑스의 ‘안성기’ 같은 ‘다니엘 오테유’가 있다.

  이 배우가 파스칼 뒤켄느 라는 다운증후군 환자와 더불어 96년에 출연한 ‘제 8요일’이라는 영화가 있다. 하루 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일중독’에 걸려 직장내에서의 출세와 물질만을 추구하면서 결국 아내와 자식에게 버림받는 현대인의 자화상인 주인공이 우연히 수용시설에서 외출하여 가족을 찾아가는 다운증후군 환자 ‘조르쥬’를 만나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이다.

  몇 년 만에 집에 찾아갔지만 이미 조르쥬의 사랑하는 엄마는 돌아가시고 하나 남은 그의 누나와 그 가족은 조르쥬를 반기지 않는다. 조르쥬와의 의도하지 않은 ‘동행’,‘동거’를 통해 주인공은 가족과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결국 자신이 조르쥬에 의해 ‘구원’받게 된다. 그러나 구원자 조르쥬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고........

  

  가족중심의 부르주아 가치관의 포장과 확대 재생산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영화이다하지만 목적 없이 또는 허상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자신을 파괴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직장내에서의 성공과 더 좋은 자동차, 비즈니스 석으로의 해외 여행, 주말의 골프 투어를 인생에서의 성공으로 그리고 목적으로 삼고 자신을 하루 하루 옥죄고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현대인의 삶!

  비정규직 노동자나 비취업자의 경우는 이런 그들의 목적자체가 이미 그림의 떡이라는 희망을 넘어 절망의 상징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현실!

또 다른 사회에서의 또 다른 삶의 방식은 분명 자본주의 물질 세태를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조르쥬의 자살을 통한 주인공의 ‘구원’이 시사하는 바는 이런 일들의 어려움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단, 수 많은 조르쥬의 행동은 이런 비극을 피하게 할 수도 있다라는 희망을 가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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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인 스포팅과 다람쥐 쳇바퀴

 

트레인 스포팅과 다람쥐 쳇바퀴


  이완 멕그리거를 일약 세계적 스타로 등극시킨 영국 영화는 빠른 영어(이것도 잉글랜드 영어가 아닌 스코틀랜드 영어로 거의 뭔 말인지.....)와 70년대 브리티쉬 록음악이 결합되어 90년대 불황기의 신자유주의 절정의 대처와 그녀을 뒤이은 보수당 정권하에서의 영국의 젊은이들의 출구없는 쳇바퀴를 보여주고 있다.

  버릇없는 그리고 도저히 감화할 수 없는 청소년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의 자기 파괴적 행동을 통해서 약물 중독과 비행의 일상화를 보고 만다면 작가와 감독의 이야기하는 바의 절반만 이해하는 것은 아닐는지....

주인공과 그 친구들은 약물중독에 빠져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마약 투여가 아니면 음주에 그리고 또 돈이 떨어지면 범죄를 저지르고 급기야 환각 상태에서 한 여자친구의 아이를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해까지 저지른다

마지막 주인공과 친구들은 공모하여 스코틀랜드에서 런던으로 진출하여 한 탕 크게 저지르고 환호를 지르고 그러나 주인공의 배반으로 그들의 범죄 행각은 막을 내린다. 마약 밀매를 통해서 엄청난 돈을 가지자 주인공이 돈을 독식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엔딩 타이틀이 나오기 전에   Underworld의 Born Slippy (NUXX)가 흘러나오면서 주인공은 힘차게 이른 아침의 런던을 걷는다. 그리고 나오는 독백!

“초대형 텔레비전, 치아를 포함한 개인 사보험, 골프 클럽, 해외로의 바캉스, 넓은 집 등등”

  자본주의의 경쟁과 배제의 사회에서 음지로 전락한 주인공이 결국 추구하는 것은 철저한 자본주의 체제로의 편입이 아닌 다른 것이 아니었다. 주인공의 앞길이 밝아 보이지만은 안은 것은 이것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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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능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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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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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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