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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6
    영화로 본 오늘날의 중국의 초상
    은하철도
  2. 2008/09/26
    쁘띠의 영원한 안식처 내쇼날리즘과 올림픽
    은하철도

영화로 본 오늘날의 중국의 초상

영화로 본 오늘날의 중국의 초상

은하철도

 

올해 8월은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힘들고 짜증이 났다. 장마철과 더불어 시작된 ‘촛불’의 주춤거림에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된 정권의 촛불 탄압,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의 시작과 더불어 불붙은 올림픽 광풍은 마치 14억 중국에서는 올림픽이외에는 다른 사건들이 일어 나지 않는듯 그리고 매일매일의 올림픽 출전 선수가 획득하는 메달의 갯수와 색깔만이 남한에서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존재 이유인 듯 했다. 천억의 돈을 들여 연출했다는 장이모우(張藝謀)감독의 개막식은 엄청난 물량공세와 거대한 스케일에 따른 화려함으로 압도하였고 이 압도와 경탄의 이면에 중국의 전세계를 향한 중화주의의 선전포고를 보여 주었다.

2008년 현재 중국은 북경 올림픽 주경기장의 화려함이 보여주듯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힘찬 기세가 누그러들지 않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과연 대다수 인민들의 삶은, 북경을 포함한 중국 대륙의 모습 역시 그러할까?

이러한 소박한 의문과 질문에서 중국영화 몇 편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광활한 대륙의 황토고원

중국 민족은 흔히 黃帝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붉은색만큼이나 누런색을 좋아한다. 수 천년 중국의 봉건 전제 군주를 칭하는 天子를 대표한 색도 황색이다. 장이모우 감독이 우리에게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된 작품은 80년대 후반에 개봉된 붉은색이 스크린을 압도한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였다. 중국의 산동성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일본제국주의 침략기의 한 가족사를 소재로 웅혼하면서도 호쾌한 작품으로 감독과 더불어 주인공이었던 공리를 일약 세계적 스타로 알려지게 한 영화이다. 아울러 ‘중국 고량주에는 오줌이 들어간다’라는 잘못된 우스개소리도 회자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는 북경 주변의 끝없이 펼쳐진 황토고원에 위치한 낙후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현대극인 ‘책상서랍속의 동화’이다. 수입 개봉되었을 때 붙여진 제목이고 원제목은 一個都不能少(Not one less) 번역하면 ‘하나도 모자라면 안된다’이다.

한 산골마을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멀리 고향에 급히 다녀올 일이 있어 임시교사를 들이게 된다. 한 달간 임시로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면서 받게 되는 돈은 50위안. 옆마을의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여학생이 지원하고 30여명의 크고 작은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다. 선생님이 고향으로 출발하려고 하자 이 어린 임시교사는 한달 간의 임금을 요구한다. 그러자 선생님은 돌아오면 주겠다고 약속하고 추가로 학생이 학교를 떠나지 않아 더 이상 학생이 줄지 않게 된다면 추가로 돈을 더 주기로 약속을 한다. 자기 친구의 언니인 몇 살 많지 않은 임시교사에게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임시교사를 깜보고, 임시교사 역시 돈을 바라고 하는 일이라서 건성건성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한 달리기 잘하는 학생이 도시의 체육학교로 스카웃되어 나가고 또 학교의 말썽꾸러기 한 남학생이 병든 어머니와의 생활에 지쳐 돈을 벌기위해 가출하면서 임시교사인 주인공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가출한 학생을 다시 데리고 돌아오기 위해 마을의 벽돌공장에서 막무가내로 학생들과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벌어보지만 마을에서 도시로 가는 버스비에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먼지 나는 길을 걸어서 도시에 도착하고 학생을 찾지만 행방이 묘연하다. 얼마 남지 않은 돈을 모두 털어 먹과 붓 그리고 종이를 사서 구인광고를 일일이 손으로 써보지만 자신의 생활에 바쁜 사람들이 과연 얼굴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없는 구인 광고에 관심이나 가져줄까? 최후의 수단으로 방송국 광고를 하기로 하고 방송국에 가서 관리자와 어렵게 연결이 되어 방송을 타게 된다. 한편 가출한 학생은 도시의 혹독함에 하루하루 구걸과 노숙으로 연명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이 자신을 찾는 방송을 보게 되고 결국 선생님과 학생은 눈물의 재회를 한다. 방송덕분에 전국 각지에서 답지한 성금과 학용품을 가득 싣고 마을로 학생과 선생님은 금의환향한다.

간단하게 줄거리만 살펴보면 그리고 출연한 배우 전원이 직업적인 배우가 아니라 마을 주민이고 학생들인 점을 생각하고 본다면 ‘책상서랍 속의 동화’라는 개봉시의 제목만큼이나 감동을 주는 잔잔한 영화이다. 다 허물어져가는 학교 교사(校舍)며 남루한 옷의 천진난만한 학생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는 황토고원 등등 콘크리트와 아스탈트로 뒤덮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목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이다. 그러나 이면의 이들의 삶을 살펴 본다면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가 포기한 공교육정책으로 마을의 주민들에 운영되는 낙후한 학교 교육, 우리내처럼 대도시를 중심으로 입시중심의 기숙형 학교와 외국어 학교들이 세워지면서 교육에 있어서의 공공성은 오늘날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고 교육의 국가의 책무성은 빛바랜 오래된 카렌다처럼 되어 버렸다. 육체노동자의 형편없는 저임금과 농촌의 상대적 빈곤의 댓가로 상해, 북경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루가 다르게 고층빌딩과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으며 사회보장제도의 축소로 인한 사회안전망의 부족으로 발생하고 있는 빈곤층의 확대와 공동체의 실질적 붕괴와 가치관의 파괴가 우회적으로 - 임시교사로 한 달간 받는 돈이 50위안(한화로는 약 7천원)이고 2000년 당시 청소년의 하루 날품팔이 임금은 1위안을 약간 상회하였다 - 그려지고 있다.

 

청소년의 삶이자 소망인 자전거

2001년 제작된 북경의 오늘의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북경자전거’라는 영화를 소개한다. 원제목은 ‘17세의 자전거(十七歲的 單車)’ 로 자전거 한 대를 소재로 두 명의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이다. 시골에서 돈을 벌기위해 상경한 주인공은 어렵게 자전거를 이용하는 택배회사에 취직을 하고 월급에서 자전거 값을 까는 것으로 하고 하루하루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회사에서 지급한 유니폼에 신형 자전거를 타고 중국의 심장 북경 시내를 힘든줄 모르고 누비면서 자전거가 온전하게 자신의 것이 될 그 날을 고대하면서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자전거 값을 다 물게 되는 그날 도난을 맞는다. 한편 명문 상업계 고등학교에서 우등생으로 있는 다른 한 주인공은 북경 뒷골목의 가난한 집에서 살면서 자전거 갖기를 소망한다. 가정 형편상 아버지는 자전거 구입 약속을 번번이 지키지 않고 급기야 새엄마와 같이 집에 온 의붓 여동생의 학비부담으로 자전거의 꿈이 사라지자 몰래 집의 돈을 훔쳐서 장물 자전거를 구입한다. 자전거의 소유권을 둘러싼 다툼으로 두 주인공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고 자전거가 두 주인공 사이에서 왔다갔다 반복하다 결국 하루씩 번갈아 타는 것으로 합의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화해도 마지막에 가서 두 주인공은 자전거로 인해 다른 청소년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같은 17세의 두 소년에게 있어서 자전거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하루하루 일을 해서 생활을 이어 나가야 하는 노동하는 청소년에게 있어서 자전거는 삶이요 목숨이라고 한다면 집에서 살면서 학교에 다는 학생 청소년에게 있어서는 등하교 때 여자친구와 같이 하기 위한 탈 것이고 친구들과 자전거 묘기를 하기 위한 매개물이다.

개혁 개방 이후 20여년 만에 세계의 공장으로의 지위를 차지한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올림픽을 기회로 삼으려는 듯 과거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현재를 저당 잡혀 미래로 매진하고 있다. 수 백년 베이징 시민의 삶이 어린 뒷골목이 하루아침에 재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파괴되고 또 거기에 살던 수많은 서민들은 보금자리를 잃고 외곽으로 외곽으로 떠밀리고 있다. 수출산업 중심의 공업화 정책으로 농촌 경제는 붕괴를 하고 있으며 수 많은 중국의 농민들이 일자리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가까이 살펴보면 7,80년대 우리의 모습이고 멀리 보면 인클로져 운동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도시에서 노동력을 팔 수 밖에 없게 되는 영국의 농민들의 모습들이다. 이른바 자본의 ‘시초축적’이 중국 전역에서 무자비하게 대규모로 진행이 되고 있다.

현실같은 영화, 영화 같은 현실

무심히 지나가는 자동차와 자전거의 물결 속에서 주인공 소년은 체인이 빠지고 바퀴축이 휘어진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무심한 인파들 속을 걸어가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북경자전거’는 끝난다. 하루하루 삶에 지쳐서 주변을 살펴볼 여유마저 잃어버린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크게 과장하지 않고 커다란 서사(敍事)가 없어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어도 ‘영화’가 되는 것이 오늘날 중국의 영화의 저력인 듯 하다.

반면에 우리네의 영화는 어떠한가? 괴기, 공포 요소를 첨가하거나, 황당무개한 액션, 아니면 성과 폭력으로 의례히 포장해야만 영화가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현실이 너무 영화나 소설 같아 차마 영화의 영역이 쪼그라든것은 아닌가? 최근 사채와 관련된 연예인의 자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자살한 대학생, 그리고 사교육비와 관련한 고등학생의 부모 자해와 자살 등의 얘기를 들을 때 마다 현실이 영화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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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의 영원한 안식처 내쇼날리즘과 올림픽

쁘띠의 영원한 안식처 내쇼날리즘과 올림픽

 

들어가면서

벌써 몇 년전 일이다. 임지현 교수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이다라는 책이 출간되어 화제를 몰고 왔었다. “5000천년 단일민족, 순수혈통...”의 대한민국에서 이 책의 출판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으며 민족주의 진영으로부터 따가운 질시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시간 오후 8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화려한 불꽃 놀이로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1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개막식에는 수 만의 인원이 동원되어 중국이라는 국가의 탄생과 현재까지의 모습을 ‘장려’하게 표현하였다. 화려함과 웅장함과 더불어 더운 한여름임에도 돋아나는 한기는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올림픽 성화 봉송이 서울을 지나갈 때 우리는 두 번 놀랐다. 우선 엄청나게 많은 중국 학생들이 남한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그리고 두 번째 2002년 붉은악마를 벤치마킹했는지 빨간 옷과 붉은 오성홍기의 물결들.... 실은 붉은색은 중국을 상징하는 색이 아닌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2002년 서울은 시청과 광화문을 중심으로 붉은 물결이 넘실거렸다. 티셔츠에서 두건, 심지어 얼굴에도 붉은 칠을 한 붉은악마들에 의해 남한은 점령되었다. 때마침 축구팀의 선전도 있어서 예선전으로 끝나지 않고 길게 붉은 물결이 짧은 여름의 서울을 메웠다.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붉은악마에게 국가대표팀이 경기 선전에 대한 요구 조건은 ‘군면제’였다. 붉은악마들은 대한민국을 생각하면서 응원을 했지만 정작 선수들은 군대 면제를 통한 해외 리그의 진출이 목적이었다. 기막힌 동상이몽(同床異夢)!

6년후 2008년 봄 서울시내에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도착했다. 전국각지에서 공부하고 있던 중국의 유학생들과 이주 노동자들이 중국의 국기인 붉은 오성홍기를 들고 서울 시내로 쏟아져 나왔다. 19세기 중반이후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고통 받고 신음 했던 중국인민들의 올림픽 개최에 대한 희망과 기쁨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의 표현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남의 잔치에 재를 뿌리고자 하는 심산을 노골화 하였다. 원래 남의 민족주의와는 양립하지 못하는 것이 민족주의의 생리인가 보다.

 

 

올림픽의, 올림픽에 의한, 올림픽을 위한

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면서부터 베이징은 대대적인 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명나라, 청나라를 거치면서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문화와 멋을 가지고 있었던 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한 수많은 후통(胡同)에 대한 ‘근대화’라는 이름의 철거가 시작되었다. 실은 후통은 사합원이라고 해서 전통적인 ㅁ 자 모양의 집들이 모여 있는 거리이자 동네이다. 20세기 격랑을 지내오면서 베이징의 거대해지고 인구가 밀집하면서 이 사합원이 단독주택에서 공동주택으로 변신을 하게 된다. 한 집에 많게는 10세대 이상 사는 공동주택이 되면서 쇠락을 하게 되었다. 좁고 냄새나는 거리, 칸막이도 없는 공중변소, 연탄을 이용한 난방문화 등등이 현대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었나 보다.

철거된 이 자리에는 수 십 층에 이르는 초현대식 빌딩과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고 베이징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있다. 그 많던 후통에 살던 베이징의 민중들은 어디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잡고 정착할 것인가?

베이징의 대기는 악명높다. 이른 봄에 시작된 황사와 한여름의 스모그 그리고 겨울의 화석연료의 연소로 인한 대기오염으로 1년 내내 가을철 며칠을 빼고는 파란 하늘을 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에 중국정부는 특단의 조처를 내렸다. 베이징을 포함한 인근 주변의 모든 공장의 가동을 중지시킨 것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중화학 공장은 물론이고 관계없는 중소규모의 경공업 공장에도 적용이 되어 많은 원성을 샀다. 공장주야 세금을 감면해주고 나름대로의 해택을 통해 살아가기에 별 문제는 없지만 이 공장들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정부의 조처는 가뜩이나 힘든 생활에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올림픽이 있기에 참아야 한다.

중국인들은 8자를 좋아한다. 8의 발음이 재물을 불러온다는 의미의 發財(파차이)의 파와 같다고 해서 8자가 많이 들어있는 핸드폰 번호는 엄청난 프리미엄을 붙여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인지 2008년 8월 8일 8시에 개막식을 하였다. 날씨가 좋은 10월 달도 아니고 한참 무더운 한여름에 올림픽! 그래서 특단의 조처를 정부는 취했다. 수 조원을 쏟아 부어 베이징 주변의 구름을 향해 요오드 성분의 인공 강우 약품을 박격포와 항공기를 이용하여 뿌렸다고 한다. 덕분에 베이징 시민들은 올림픽이 열리기 전 한 여름에 매일 저녁 규칙적으로 내리는 비 덕분에 여름인데도 덥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베이징 주변의 농민은 비가 오지 않아 거북이 등짝마냥 갈라진 농토를 보면서 한해 여름 농사를 포기해야 했지만....

올림픽의 정치화 그리고 신화화

올림픽을 국가주의, 민족주의와 본격적으로 접목한 국가는 히틀러의 독일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1차 대전의 패전국의 이미지를 벗고 세계만방에 독일민족의 우수성을 선전하였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새롭게 건설된 백색의 스타디움에서 나찌식 경례를 하면서 입장하는 선수들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푸는 지도자의 모습! 그리고 강인한 체력과 균형 있는 몸매를 보여주면서 전세계에 독일 민족의 우생학적 우월성을 과시하였다. 이 모든 사실을 우리는 레니 리펜슈탈이라고 하는 희대의 다큐멘타리 영화 감독의 ‘올림피아’라는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다.

출전한 선수들에 대한 영광이 원조 올림픽의 전통이라면 이에서 벗어나 출전선수의 출신국이 도드라지게 되는 올림픽의 시작이 베를린 올림픽이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사건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후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올림픽은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대결장을 넘어서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의 이념의 대결장이 되었다. 덕분에 남한의 사람들에게 적국이었던 소연방에서 열렸던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이름만으로 존재한다.

유난히 스포츠를 좋아한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처음 추진한 일이 올림픽 유치였다. 08년 베이징올림픽과 관련한 중국에서 일어난 일들이 20년 전 이미 서울에서 일어났었다. 서울 시내의 보신탕집이 철퇴를 맞고 서울시 외곽으로 쫓겨났다. 당시 대규모 빈곤층이 밀집되어 살고 있었던 상계동 지역이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주민의 눈물겨운 투쟁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으로 철거되면서 88년 서울 올림픽은 잠실과 더불어 ‘상계동올림픽’으로 기억된다.

고대로의 회기와 과거에 대한 노스탈지아

히틀러의 제3제국이 붕괴될 때 수상이었던 괴벨스가 선전상으로 나찌즘을 선동하였다고 한다면 제3제국의 이상을 건축물로 구현하려 했던 히틀러에게는 제3제국 붕괴당시 군수상이었던 건축가 슈페어(A. Speer)가 있었다. 유명한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의 무대 세트를 기획했고 베를린 히틀러 총통부를 건축했던 히틀러가 아꼈던 건축가이다. 석재로 조성한 베를린의 웅장한 총통부는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시작된 베를린 재건축의 시작이었다. 마지막 전승기념탑과 거대한 돔의 건설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도면과 모형으로 우리는 그 거대한 규모와 웅장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건축되었더라면 엄청난 폐건축물로 환경을 엄청 파괴했겠지만 다행이 건축되지 않아 다행이다. 아리안 족의 우수성을 철의 법칙으로 믿었던 히틀러와 나찌들도 고대 그리이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과 , 고대 로마의 판테온의 주랑, 그리고 가까이 중세 시대 피렌체와 로마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리 성당과 산 파올로 성당의 거대한 돔 양식의 짬뽕을 그들의 정신을 구현하려 했던 건축물의 원형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중국 고대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수천년 전의 전제 왕정시대의 일들을 소재로 한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 연출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비루하고 고통스런 모습에 대한 거울 이미지로 잊혀진 그리고 허구의 검증 불가능의 고대를 삼는 것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공통의 고향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미국식 기업경영, 미국식 은행 운영, 어메리칸 스타일의 의식주 문화가 판을 치고 영어 몰입교육까지 시도되고 있지만 민족주의 진영의 영원한 고향은 고조선 단군이요, 고구려 주몽이다. 저 인도 아대륙 북쪽 히말라야 골짜기의 석가모니도 고대 한민족의 일족인 고리족의 왕자라는 말에는 ‘논어를 쓴 공자도 동이족 이다’는 깜찍한 애교로 보인다.

중립적인 거대한 자아로서의 민족과 국가

 

19세기 민족주의 발흥의 원인과 유래를 개인적 심리적 측면에서 찾아보면 니체의 경구가 떠오른다.

 

“ ‘원한의 인간’은 숨는 것, 비밀통로들 그리고 뒷방을 좋아한다. 그는 어떻게 침묵하는지를 ,어떻게 잊지 않는지를, 어떻게 기다리며 그리고 어떻게 임시변통적 자기 비난과 자기 비하를 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모든 가려진 것들에 의해 그는 그만의 ‘세계’, ‘안정’, ‘상쾌함’이 전부인양 주술에 걸린다. ” (니체 ‘도덕의 계보’에서 )

 

라고 하면서 19세기에 도래한 시민사회와 시민사회의 ‘시민들’을 폄하하면서 아울러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런 인간은 ‘삶을 긍정하는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본능적인 자기 확신과 자기 보존에 의해 추동된 자기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주체’- 자아-의 믿음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니체 ‘도덕의 계보’에서 )

 

니체의 나찌즘과의 연관성은 지난한 논쟁거리이다. 니체를 옹호하는 쪽은 뇌혈관 문제로 쓰러져 식물인간으로 병석에 누워 있을때 그의 누이에 의해 국가주의로 왜곡되었다고도 하니까 논쟁은 접어두어야만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문제 이전에 자본주의적 사회 경제적 구조를 도외시 한 부분도 접어두자. 단지 우리는 여기서 나찌즘에 이용되기 전 젊은 철학자 니체가 본 이른바 시민사회에서의 일반적인 시민들의 의식 경향과 멘탈리티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관적인 판단을 엿볼 수 있다.

‘원한의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삶의 긍정과 주체성은 거세되고 본능적인 자기 확신과 보존의 원칙만 강조된 상태에서 자신만의 ‘세계’, ‘안정’ 그리고 ‘상쾌함’의 주술 속에서 안주하지만 자신의 짐승적인 비루함에 갈증을 느끼고 결국 자기중립적이고 자기독립적인 주체나 자아를 필요로 하는데 바로 이 주체나 자아가 민족 내지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즉, 시민사회에서 민족이나 국가는 도덕과 가치관의 까다로운 기준과 잣대에서 벗어나서 오직 경제적 동물로만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서 부족한 그 무엇(인간다움?)의 대체물로서 만들어지고 이것을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자아와 동일시한다고 볼 수 있다.

매일같이 반복적인 삶 속에서 주체성과 삶의 긍정은 어느덧 사라지고 매일매일의 노동과 의식주 해결이라는 동물적인 욕구만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거대하고 웅장한 커나란 또다른 나의 모습을 국가와 민족에서 찾고 여기에 속절없이 희망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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