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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만’ 금연 하시죠?

** 월간 [사람] 5호 '이것도 인권이에요'글. ** 사실 [사람]잡지에서 이 꼭지가 제일 허접한데..이래서 잡지 광고가 될까? -_-;; ------------------------------------------------------------------------------


이 꼭지에 ‘길거리에서의 흡연권’을 쓴다니 열광적인 반응이 되돌아왔다. 물론 여성들에게서. 대체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길에서 흡연할 때 얼마나 두려움과 모멸감에 시달렸으면 그런 반응이 되돌아올까..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물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지만. “아빠의 금연, 가족의 행복” 예전에는 아주 많이 붙어있었지만 지금은 별로 안 보이는 저 구호가 요즘은 가끔 고맙게도 느껴진다. 아빠‘만’ 금연하면 된다는 얘기 아닌가! ^^이제 담배피우는 사람이 ‘아빠’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 구호는 정말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을 뿐,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것. 재작년쯤인가. 어떤 건물 앞에서 남자선배들과 같이 계단에 앉아서 수다를 떨다가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때는 사실 주변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왜? 남자 선배들과 있으니까! 누군가가 시비를 걸어도 막아줄 방패들이 있으니 안심도 되고. (사실 ‘계집애가~’운운하는 소리 듣고 싸우면서까지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게 얼마나 짜증스럽나) 그런데 길 가던 아저씨가 대뜸 내게 다가와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입에 담배를 물고 있으니 굳이 말로 대답할 필요도 없었고, 그냥 아무 대꾸도 않고 담배에 불을 붙여드렸다. 뒤에 앉아있던 남자 선배 중 한 명 왈‘ 와~ 세상 정말 살만해졌다. 여자한테도 담뱃불 빌리는 아저씨가 다 있네..’ 영문을 아는 다른 선배들은 모두 자지러졌다. 왜? 그 아저씨는 내가 여자인줄 몰랐던게다. 웃자고 한 소리지만 아직도 단신으로 가끔 실리는 기사들 중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소재거리가 바로 이 ‘여성 흡연’문제다. 길거리에서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웠다고 얻어맞고, 심지어는 학교 캠퍼스 안에서도 학교에 놀러온 동네 주민들에게 뺨 맞기 일쑤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성들이 ‘길거리 흡연권도 인권이에요’라고 얘기한다는 내 말에 얼마나 열광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오죽하면 ‘여성이 지붕이 없는 곳에서 흡연을 하면 경범죄다’라는 유언비어까지 퍼졌었을까. (실제로 90년대 말 이런 소문이 있었다.) 지금은 ‘건강을 해치는 담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로 바뀌었지만, 예전 경고 문구는 좀 더 노골적으로 여성의 흡연권을 무시했었다.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마치 임신과 출산이 모두 여성이 책임인양 떠넘기고자 하는 수작에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건강을 위해’따위의 말로 운운하며 여성의 흡연을 제지하려는 것은 사실 논리적 근거가 되지 못한다. 겨우 오십보 백보 차이인 것을. 어떻든 간에 현재 스코아, 여성에게 길거리에서의 흡연은 정말 심호흡 단단히 하고 저질러야 하는 사고이다. 그런데 이 길거리 흡연, 사실 정말 권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담배를 둘러싼 권리가 ‘맘 놓고 흡연할 수 있는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담배연기가 끔찍하게 싫은 혐연자들에게도 권리는 있다. 간접흡연하지 않을 권리. 흡연량으로 따지면 평균 이상은 되는 나 같은 애연가 여성이라면 당연히 길에서도 맘 놓고 흡연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걸어다니며 담배피우는 사람들을 옹호해주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 혐연자/비흡연자들에게는 감사하게도(!) 최근엔 금연석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심지어 아예 금연구역으로 설정한 곳도 많아졌지만(개인적으로 실내에서나 맘 놓고 흡연할 수 있는 여성들에게는 금연구역만 있는 장소가 늘어가는 것은 정말 반인권적인 상활이라고 생각한다.) 길거리에서만큼은 워킹 스모커들을 피해갈 여지가 없다. 대체 걸어다니는 굴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대체 뭐란 말인가? 더구나 하나도 아닌데.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가며 담배피우는 사람들. 걸음이 느리다면 그를 앞질러가기도 어렵다. 게다가 길거리에는 또 왜 그리 침은 뱉어대는지. 담배연기에 질식할 것 같은 상황도 모자라 지뢰(!)를 피하기 위해 조심조심 걸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으면서도 피해자들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 흩날리는 담뱃재가 검은 옷에 붙으면 허연 흔적을 남겨 짜증나고, 튕겨내는 담뱃불에 옷이 탈까 훌쩍 피해야 하며, 담배를 들고 있는 손이 내 옷이나 피부에 스칠까봐 팔짱을 끼고 옷 매무새를 정리해야 하는건 생각보다 무척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다. 뒤따르는 자여, 그대에게 ‘간접흡연하지 않을 권리’란 없다! 그렇게 흡연권이 절대 침해해서는 안되는 절대적 권리라면 왜 여성의 흡연에는 그렇게 관대하지 못한걸까? 최근 일본에서는 걸으면서 흡연하는 것을 금지하는 캠페인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2003년에 일본의 치바현에서 어떤 흡연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며 담배를 피우다가 손에 들고 있던 담뱃불이 뒤따라오던 아이의 눈에 닿아 아이가 실명한 사고가 있었는데 그 후 뉴스나 공익광고등을 시작으로 캠페인이 확산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길거리를 모두 금연공간으로 만들자고 하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다. 다만, 한군데 서서 얌전히 피워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나날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애연가들에게 길거리마저 차단한다는 것도 역시 인권침해다. 다만, 흡연권만이 권리가 아니라는 걸 좀 이해해줬음 한다. 대체 흡연이 뭐 그렇게 자랑할만한 일이더냐. 길거리에 보이는 공공 휴지통에 재떨이가 붙어있는건 장식이 아니다. 재떨이 있는 곳이 곧 흡연 공간이라는 얘기다. 건물에서도 그럴진데, 왜 길거리에서만큼은 사방팔방 흩어지는 재들을 내가 고스란히 참아줘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제대로 피우지도 못하게 만들면서 말이지. ** 일본의 환경 과학자이자 환경, 평화운동가인 토다 키요시의 [환경학과 평화학](김원식 옮김, 녹색평론사, 2003)이라는 책에는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나는 도저히 그 책을 볼 자신이 없다. 부끄럽게도, 아직 스스로의 ‘완전한 시민권 - 동등하게 흡연할 권리’을 누리는 것이 내게 더 선결과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일까. 커피와 마찬가지로 담배 역시 그 재배과정에서 제 3세계 여성과 아동 노동의 착취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고, 담배를 재배하는데 필요한 비료에는 다량의 우라늄이 들어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으면서도 그 내용들을 아직 자세하게 알고 싶지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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