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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되었다.

박래군 아저씨, 래군 형, 래군 선배, 박래군 선생님......암튼 형이 석방되었다. 그제 밤에는 형이 석방되고 나서 새벽녘까지 뒷풀이를 하느라 집에 못가는 꿈을 꿨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석방소식을 전해주는 역할을 했었는데 오늘은 정작 다른 친구에게 석방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러고 보면 형은 참 어리석은 사람이다. 대체 정형화된 자기 방식이나 고정된 생각이라고는 없는 사람인 것 처럼 보인다. 아니, 물론 원칙은 있다. 모든 인권활동가가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원칙. "약자의 눈으로"라는 원칙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원칙이 쉽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도 철저한 약자가 되기는 어렵다. 어느 순간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가 타인보다 한 가지쯤은 더 권력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는 상황이 발상하게 된다. 형이 그렇다. 형은 남성이고, 경험이 많고, 나이도 많다. 그리고 기혼자이고, 소위 정상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기도 하고, 채식도 하지 않고, 그리고 또.....뭔가 있겠지. 그런데 항상 가늘고 길게 살 수 있는 상황들을 늘 포기하며 간다. 지문날인 안하겠다며 수감기간동안 영치금도 못받았다 하고, 불러주는 곳 많고 편한 일도 있을텐데 이동중인 차안에서 쪽 잠을 자면서도 늘 거리로 뛰어나가 있거나 포크레인 위로 올라서있다. 나는 지문을 찍으라시면 찍어줄거고, 거리로 나가라 하면 다른 일 핑계를 댈 것이고, 포크레인 위에 올라가라면 다가올 폭력의 두려움 때문에 그 자리를 피할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하잘것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나에 대한 자신감 없음이 아니라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다른 활동가들을 모욕하게 될 것이므로.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 일을 핑계로 "약자의 눈으로"본다는 원칙을 방기하고 있다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형은 내가 자꾸 잘못 살고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다. 특히 나는 아직 부당한 것에 맞서기에는 안정욕구가 너무 강하다. 그런데 형은 그게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자꾸 이야기한다. 달변이 아닌데도 그 말에 넘어가는 내가 바보인건지, 아니면 정말 형 말이 맞는건지 알 수 없다가도, 나중에는 형 말이 정말 맞다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참 사람 힘들게 만든다. 래군형이 나왔다. 수염도 못 깎은 까칠한 얼굴 때문에 맘이 아프다. 아마도 얼굴을 보면 '지저분해 보인다'면서 깔깔대고 웃어 넘기겠지만, 혼자서 사진을 보고 있을 때 만큼은 살짝 눈물을 보여도 되겠지. 형이 내 얼굴을 보면서 '나 봤으니 감격했지? 울어!'라고 하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혼자서 몰래 울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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