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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먼 길.

* 이 글은 marishin님의 [2004-04-28>좌파 남성과 좌파 여성주의자]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좌파 남성들의 여성주의에 대한 평가(혹은 논의)는 내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내용이다.

 

그 내용(물론 내용도 문제일때가 있지만) 보다는 좌파 '남성'들의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김규항님과 델라님의 논쟁이 참세상 칼럼에 떴을때, 한참을 생각해보게 됐다.

 

 



 

누군가 내게 그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쪽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제에 대한 비판은 분리되어야 한다.

 

박근혜는 여성이 아닐 수있다. 박근혜는 분명 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상화 될때, 여성들은 당연히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똑같이 주변화 되었던 경험들을 투영하여 사건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가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기'때문이다.

 

김규항님의 '슬픈 마초'라는 표현은 더 슬프다.

수백년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부차화 되고 사회화 되어온 여성들이 스스로의 능력과 자존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조차 발버둥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몇몇) 남성들은 알고 있지만, '사실'과 '실제'는 다르다. 웹에 글을 올릴때의 가슴 졸임과 두려움이 텍스트 결과물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 처럼.

 

(여기서 부터 거만*오만 모드)

 

좌파 남성들에게 여성주의자가 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여성주의에 대해 입다물고 있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운동들처럼 여성주의가 냉정하게 도마위에 올라 평가 받고 논의 되기에는 아직 여성운동은 해야할 것이 많고 갈길이 멀다. 주변에 있는 괜찮은 남성들과 소모적인 논쟁까지 벌여가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반보수, 반부르주아투쟁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분명 여성주의자들 중에서도 좌파 활동가들이 있다. '여성주의'를 좌파의 우산 아래 끌어들이는 것이 왜 중요한가? 아직도 '좌파'운동은 다른 운동에 비해 전혀 우세이지 않고 지지하는 자도 '한줌'에 지나지 않는데 여성주의는 왜 '좌파'에 동참해야 하는가?

 

여성주의가 '좌파'적 방식으로만 표현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한 출발선이 다른 좌파적 시각과 여성주의적 시각이 같은 수준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여성주의의 주체들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P.S :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다시는 이렇게 말도 안되는 얘기를 쓰고 싶지 않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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