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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지 같은...

좋은 날 앞두고 예쁘고 고운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으나

별 수 없이 욕이 절로 나온다.

 

지난 주말에 학교에 다녀왔다.

작년 12월에 본 중3 성취도 평가(일제고사) 주관식 재채점을 하느라...

교감에게 전화를 해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다른 분께 부탁하겠다고 했으나

연구부장은 책임 운운 하면서 기어이 관련된 모든 사람을 불러냈다.

 

연구부장도 위에서 엄청 쪼였겠다. 그 하나만을 탓할 순 없는 문제이나 짜증이 난다.

 

학교에 가니,

다른 학교로 간 사람들(그들 중엔 잠실 등 강남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 학교까지 오는 데 2시간이 걸린다.)도 와서 찌푸린 얼굴로 앉아 있고,

이사를 하다 중간에 온 사람도 있고,

책임 때문에 기간제 교사는 도장을 찍을 수 없다나 어쩌구 하여 마음이 상한 사람들도 있고,

이미 계약 만료가 된 기간제 쌤도 한 반을 채점하느라 나와 있고,

사람들 표정이 말이 아니다.

 

교육적으로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으면 몸은 고되도 즐겁게 일 할 수 있다.

일 하는 거 자체로는 그리 무섭거나 싫지는 않다.

하지만 개그지 같은 일의 뒤를 닦아 주느라

아까운 시간을 쓰고 머리를 쓰고 몸을 쓰는 일은 너무 괴롭다.

 

교과부에서는 이 일을 여기서도 끝내지 않을 심산이다.

개학 후에는 다른 학교로 가서 교차 검토를 하고,

그 다음에 교과부에서 직접 채점을 할 생각이라나 뭐라나.

감사 나갈 거라며 협박을 하고 있다.

 

학기 초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새롭게 만날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지,

일 년 동안 학급 운영을 어떻게 할지,

수업은 어떤 식으로 할지 계획을 하고 마음을 다져야 할 때다.

 

안 그래도 3월이 되면 나는 생리를 안 할 정도로 긴장이 되고 힘이 든다.

3월을 잘 시작해야 1년 농사를 알차게 지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로 진을 빼고 있다.

 

채점 오류가 나면 의기양양해하며

시험과 관련된 본질적인 논의는 모르쇠하고

교사들이 잘못했느니, 희생양을 찾겠지.

그리고 다음엔 더 철저하게 줄을 세우겠다고 눈을 희번득대겠지.

 

누구를 위한 교육이란 말이냐.

 

졸업을 한 아이에게 아침에 문자가 왔다.

오늘 입학식을 한다고. 중학교 입학하던 날이 생각이 난다고.

보고 싶다고...

 

소위 특목고를 가려고 여기저기 원서를 넣다가

결국 안 되어 다른 시로 진학을 하게 된 아이이다.

학교 가는 길도 낯설고, 아침에 학교에 가면 아는 친구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아이도, 부모도 생각한다.

'일반' 고등학교보다는 '특별한' 고등학교를 가는 것이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에 더 유리할 거라고.

경험상, 서열의 앞에 서는 것이 성공한, 혹은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는 않더라.

하지만 성공의 신화는 너무 강력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 줄의 앞에 서기 위해 아둥바둥거린다.

 

꽃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지만, 애벌레들은 서로의 몸을 밟아가며 공허한 탑을 만들고 있고,

모모처럼 환상적인 시간의 꽃을 보고 싶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회색 인간에게 주어버리고 만다.

 

이것이 지금 정부가 '불도저식으로' 추진하는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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