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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기] 백일 문화제, 그리고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구제 하나 못하는 여성가족부의 "여성폭력 없는 세상" 행사

농성장 일기

 

*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중인 피해 노동자 분이 직접 작성하신 글입니다.

 

요번주는 상경한 뒤로 처음 본교회로 예배를 드리로 못갔다. 연속 3일을 나름 힘들게 살았더니 몸이 힘이 하나도 없다. 가까운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니 시골에 계신 하나님 서울에도 계신것을, 나름 괜찮았다.

 

추석을 앞두고 백일 문화제를 연다. 아~~ 벌써 백일, 세월 참 빠르구나. 노숙농성 백일이란 것에 묘한 감정이 든다. 많은 생각들이 몰려든다. 정말 많이 와 주셨다. 울산에서 강성신 동지가 나무로 솟대 선물도 만들어 오셨다. 깜짝 선물이었다. 사진찍힐 때 잘 찍히라고 제일 앞에 놓았다. ^^ 수정 씨가 노래한 다음에 내가 민들레처럼을 부르기로 했었는데 목이 안 좋아서 노래를 안했더니 끝난 다음 다들 한마디씩 한다. (죄송) 이날 광야에서가 참으로 은혜스러웠다. 하얀 머리가 잘 어울리는 강성신 동지께 감사한다. 솟대를 본 백야 동지가 바로 찍어서 트위터에 올렸다.

 

다음날 농성장 텐트 안에서 한잠을 자고 펜을 들었다. 서글픈 마음을 도와주느라고 구슬프게 비까지 내린다. 농성하며 겪는 일들을 몇 자 적는다.

 

명동 마리에 상주하고 있는 도이들이 참 기특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모든 것을 하는 동지들이다. 지원이 필요하다고 연락하면 순식간에 떼로 몰려와서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하고 돌아간다. 백야는 이름처럼 청명하게 예쁜 동지다. 백일 문화제때 구자혁 동지와 여러 동지들이 노래했는데 무려 다섯 곡이나 불러서 같은 진보신당 사회자에게 구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재미났다.

 

몸이 찌뿌등하여서 사우나를 찾아 나섰다. 서울역 쪽까지 나가야 겨우 한곳이 있어서 오랜만에 몸을 푹 담그고 지친 몸을 쉬었다. 옆으로 보니 쑥탕이 있었다. 가서 쑥탕에 몸을 넣고 정면을 보니 눈에 들어오는 글이 있었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영광도 크다’였다. 잠시나마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 이 사우나는 기독교 장로님이 운영하는 실로암 사우나였다. 다들 한번씩 가보세요. ^^

 

명절을 같이 보내겠다고 온 지엠대우 동지들과 저녁에 잠을 자겠다고 온 차승리 동지와 학생들, 임용현 사노위 서울대표와 진보신당 퀵서비스 김현동지들이 명절 보내기 전에 농성장 침낭을 죄다 빨아주고 갔다. 고마워요.

 

이름도 참 특이한 차승리 학생 은 농성장에서 철농을 하면서 “언니, 저는 왜 언니 일기에 안 올라와요”하면서 수줍게 웃던 그렇지만 당찬 아가씨다. 이름처럼 매사 하는 일들이 승리만이 있기를 바란다. 나에게 언니라고 부르면서 농성장에오는 승리가 하루는 “우리가 언니 일기와 수정언니 일기를 모아서 작은 소책자를 만들려고 해요.”한다. 참 기특하다. 어쩜 이리 예쁜 생각을 했을까. 내가 참 호강을 한다. 노래에 시에, 티셔츠도 만들고 인제는 책까지 만들어준다니, 문득 행복한 아줌마라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

 

 

아침부터 청계광장에서 하얀 천막이 설치되느라고 분주하다. 대부분 밤에 천막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는데 이번 행사는 오래 할 행사는 아닌 것인지. 아침에 일어나보니 농성장이 춥기도 하고, 텐트 안에는 어제 하루종일 민사대응 하느라고 지친 우리 수정 씨가 아직도 곤히 잠들어 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탐엔탐스 24시간 운영하는 카페의 저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도 모르고 일어나지를 못할까.

 

자판기 커피 한잔을 뽑아들고 청계광장 맞은편 동아일보 쪽의 햇빛이 따스하게 비치는 곳으로 산책하러 걸어갔다. 가면서 천막 설치하는 아저씨에게 오늘 무슨 행사해요, 하고 물었더니 “성폭력 없는 나라를 만들자는 머 그런 거를 한다네요.” 하신다. 나는 그 순간 에, 그려요. 하고는 걷기운동을 하면서 천막들이 지어져 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지나니 하나둘 천막의 모습이 드러나고 그 위에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에는 ‘성매매 근절’이라는 글귀와 함께 각자의 천막에는 ‘여성과 세상을 살리는 살람’ 또는 ‘여성폭력 없는 행복한 세상’ 이라는 주제로 글이 씌여져 있었다. 그런데 주최가 여성가족부이고 주관이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라고 씌여져 있다. 그걸 보고 문득 서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성희롱 문제로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한지 백일이 넘었다. 그런 농성장 앞에서 그것도 여성가족부 주최로 이런 행사를 하는 이유가 납득이 되질 않는다. 사람 약 올리나. 백일이 넘어가도 직장 내 성희롱 문제 하나를 해결해주지 못하면서 무슨 성폭력 근절 행사란 말인가. 물론 신임 여가부 장관이 출근한 후 처음 하는 행사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장관 한사람의 문제가 아닌 여성가족부라는 전체의 기관문제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수정 씨가 일어났다. 나도 늘 피곤해 있지만 수정 씨는 과도한 업무와 장기간 농성으로 얼굴이 항상 피곤함이 쌓여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맘이 아프다. 저 여인 때문이라도 빨리 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텐데, 잘못한 것도 하나 없이 그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 속에 약한 자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에 대한 고생길에 점점 지쳐가는 수정 씨를 위해서라도 어서 속히 내 문제가 해결되어야 나도 맘이 편할 것이기에, 아침에 찬바람에 노조로 일하러 가야하는 수정이를 따뜻한 국물에 밥을 먹여 보내고 싶은 맘에 밥을 먹자고 하고 북어국 사와서 둘이서 소박한 아침을 같이 먹었다. 그리고 천막에 들어가 한숨 자고나니 1시가 넘어가고 밖에는 행사 때문에 분주해지는 가운데 우리도 사람들도 많이 오고가고 하니 일인시위를 하기로 했다.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님도 온다는 말이 있고, 기자님들도 많이 오고해서 수정이는 피켓을 들고 있고 나는 유인물을 돌렸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더니 조금 후에 피해자분을 장관님이 만나보겠다 하십니다, 하곤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장관님을 뵙는구나. 맘이 설레어진다. 이제는 내 문제가 정말 해결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후에 카메라들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장관님이 오시더니 환하게 웃으시며 “고생이 많죠.” 하시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신다. 수정이와 함께 카페로 들어가서 장관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장관님과의 대화 속에서 형진기업 사장한테도 전화를 했다고 하고, 장관님과의 만남 속에 느낌은 내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 담겨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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