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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일기] 비록 지금 길바닥에 앉아 있지만 자본가들은 이러한 행복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농성장 일기

  *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중인 피해 노동자 분이 직접 작성하신 글입니다.

 

오늘은 개천절이다. 여성가족부 건물 공사를 한다면서 용역깡패와 중구청을 비롯해서 경찰까지 동원해 철거를 했던 우리 농성장 앞에 펜스를 걷어내고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다. 월요일이지만 휴일이라서 그런가 별다른 일 없이 공사하는 소음 소리 외엔 들리는 소리 없이 오전이 지나갔다.

점심 때가 훌쩍 넘어선 시간 옆 공사장을 잠깐 동안 지켜보고 있는데 왠 난데없이 아가씨 한 명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소리를 지른다. 여기 관계자가 누구냐고 공사장 일하는 분에게 아저씨가 여기 관계자예요, 하며 여자가 물어보니 공사 하시는 분이 벙벙해가지고 저는 아니예요 한다. 그러자 또 텐트앞으로 와서 난리를 친다. 도대체 왜 여기와서 시위를 하는거냐, 정말 짜증나게 왜 길을 막고 여기서 이런 것들을 늘어놓고 지랄들이야 하며 소리를 지른다. 보다 못해서 왜 그러냐고 한마디 했더니 아줌마가 여기 관계자냐고 묻는다. “여기서 이런다고 해결된 것이 있어! 왜 여기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그래! 해결되지도 않을 것을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성희롱 당하지. 내가 밤에 와서 저것들 다 짤라버릴거야! 알았어?! 내가 반드시 싹 다 철거하고 말겠어!” 혼자서 펄쩍펄쩍 뛰며 결의를 다지더니 편의점을 들어가더니 아저씨한테 또 막 머라한다. 아저씨는 가게 앞에 저런게 있는데 왜 가만있냐는 식이다. 그러더니 또 나와서 피켓을 발로차고 손으로 치고 하며 난동을 부리더니 “그래서,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누가 해결해 준대요”한다. “난 힘이 없어서 길바닥에서 이러고 있어. 그러니 아가씨가 해결해봐.” 했다. 조금 있자니 탐앤탐스를 보면서 함께 온사람을 부른다. 그래도 같이 만나는 오빠는 정신이 멀쩡한것 같다. 너 왜그러니 하며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리고는 가버린다. 참 개천철날 정신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아침 일찍부터 정유림 여성부장이 복숭아 두 개를 봉지에 넣어 들고 왔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복숭아다. 서울에서 투쟁 안했으면 많이 먹을수 있는데, 유림이가 가져온 복숭아가 무지 달다. 명동해방 청년들하고 몇 조각씩 나눠 먹었다. 유림이 한테 잠시 농성장을 지키고 있으라 하고는 가까이에 있는 교보문고까지 운동삼아 갔다오니, 수정이가 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수정이가 농성장에 있어야 활기차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오늘은 내가 백일이 넘도록 청계천 농성장을 살면서 본 것중 가장 큰 거대한 방송시설을 보았다.

 

동아일보 주최로 희망나눔 걷기 행사를 한단다. 동아일보 옆에서 여자 둘이 길바닥 텐트 생활을 백일이 넘게 했는데도 기사한번 내주지 않는 동아일보에서 무슨 희망을 나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희망, 성희롱 당했다고 말했더니 해고시키는 대한민국에 그 어디에 희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동지 두분이 어제밤에 철농하러 와주어서 텐트에서 같이 잤다. 두 동지들이 참 활발해서 좋았다. 어제밤에는 농성장 철거 후 처음으로 여성가족부 앞에서 집회를 했다. 동아일보 주최 행사 때문에 많이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철농당번들이 아침에 다들 가고 좀 쉬어볼까 하고 텐트에 누우니 조금 후에 시끌시끌하다. 내다보니 여성가족부 건물 관리인들이 우리가 하는 촛불문화제를 방해하기 위해서 공사를 마친 자리에다가 화분들을 진열하고 있다. 참 할짓도 어지간이 없다 생각하고는 누워 자버렸다.

 

오늘은 금요일 하루종일 우울해서 텐트 안에서 안 나오고 잠만 잤다. 저녁 때가 되어 사노위 현경동지에게 전화가 왔다. 여성인권영화제에 영화를 보는 날이라서 같이 가자고, 피켓을 새로 만드느라 조금 늦을것 같다고, 걷는 길인지 숨을 몰아쉬며 말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가고싶은 맘이 별로 없었는데 그 목소리를 듣고 주섬주섬 일어났다. 내맘이 짠해진것이다. 날은 추워지고 하는데 빨리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귀챦기도하고 짜증도 나면서 뒤섞인 내맘을 다잡고 밖으로 나왔다.

 

현경씨 얼굴을 보니 투정이 절로 나온다. 걸어가면서도 계속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걸 다 들어주면서 “엉, 그랬구나, 알았어 언니. 나랑 오늘 맛있는거 같이먹자. 영화도 보고.” 가다가 머플러도 하나 사준다. 맛으로 유명한 설렁탕도 먹었다. 영화는 볼만했다. 온갖 투정을 다 부리며 왔는데 그걸 다 받아준 현경씨, 고마워요. 목도리도 감사해요. 오는길에 내가 군밤을 사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서로 군밤을 먹여주며 현경씨랑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돌아오는길에 집시치마도 한 벌 샀다. 맘에 든다. 영화중에 껌딱지가 있었는데, 참말이지 나에게는 껌딱지들이 3개나 됨을 공감했다.

 

5차 희망버스 가는 날이다. 수정씨는 갔고 나는 다른 일 때문에 못갔다. 저녁 때 농성장으로 사회당 서울시당 동지들이 엄청 많이 왔다. 낮부터 현경동지가 와서 같이 놀다가 갔는데, 사회당 서울시당 동지들이 낮부터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 인원들이 완전 문화제를 할때처럼 많이 와서 철농 난장을 했다. 스캇이 사람 끌어모으는 능력이 있는것 같다. 이날이 사회당 서울시당 위원장님의 생일이란다. 한동지가 집에서 만든 맥주를 가지고 와서 나누어 먹었다. 독특한 향이 나는데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밤을 새워 축제를 여는 기분이 들었다. 잘 논다. 젊음이 좋긴좋다.

 

아침에 민주노총 노우정 부위원장님이 농성장에 오셨다. 근처에 기자회견이 있어서 참가했다가 끝나고 들르셨단다. 텐트 속에서 누워있는 나를 보더니 안으로 쑥 들어오신다. 요새는 쌀쌀한 날씨라서 밖에 보다는 안이 더 좋다. 들어오시더니 깔끔하다고 하신다. 농성장 밖에 주변도 정리가 잘 되어 있다고 하면서 웃으신다. 심심하던 차에 같이 많은 얘기를 했다. 내 얘길 들어주면서 속에 담고 있으면 병 된다고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얘기라도 하는 것이 건강에는 더 좋다면서 위로를 해주고 자주 들른다고 하면서 가셨다. 성품이 조용하고 가냘프다.

 

수요일, 박승희 여성위원장님이 점심을 해오시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은 또 한팀이 더 오신단다. 붉은 목소리 동지들이다. 정말 푸짐했다.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붉은 목소리 분들은 주먹밥으로 전부다 통일을 했다. 꾹꾹 뭉처 주물주물 만들어온 밥들을 보면서 이 여성들이야 말로 세상에 두려울것이 없는 당당한 여성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날 점심 메뉴에 박승희 여성위원장님의 부침이 인기였다. 붉은목소리의 매실장아찌의 맛도 끝내주었다.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찐밤과 배한조각씩 먹으면서 예쁜 별명도 지어주었다. 내가 붉은 목소리 한동지에게 캔디라고 별명을 지어주었다. 이라이자도 있고. ^^

 

우리 수정이가 정말 잘 먹는다. 이 날만을 기다렸다가 먹는 것처럼 잘 먹으면 내 맘도 흐뭇하다. 오랜만에 소풍나온 기분이다. 붉은목소리 여성분들은 앞으로는 요일을 정해서 도시락연대를 한다고 한다. 점심 먹은 후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바느질을 했다. 나는 안했다. 예쁜 천으로 손수 생리대를 만들었다. 내것도 캔디동지가 하나 만들어 주었다. 예뻣다. 행복했다. 동지들도 행복해 보였다. 비록 지금 길바닥에 앉아 있지만 이런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자본가들은 이러한 행복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붉은 목소리 동지들 중에 갈대와 같은 여성동지가 수정이와 나에게 책을 한권씩 선물해 주었다. 책속에는 예쁜 엽서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읽고나서 감동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아름다운 지지의 글까지 선물하는건지 눈물이 난다. 캔디동지는 투쟁 씨디를 구워다 주기도 했다. 지난주에는 민주노총 송은정 동지가 신혼여행 다녀오며 핸드폰줄을 선물해주었는데, 서울에서 내가 동지들에게 사랑을 한몸에 받고있는 기분이다. 이런 연대의 힘으로 내가 쓰러지지 않고 또다시 전진할수 있는것이라 믿는다.

 

오늘은 혁명기도원 동지들의 기도회날이다. 그런데 오늘은 학생행진 동지들의 촛불문화제도있을 예정이라서 합동으로 같이 하기로 했다. 참으로 멋진 동지들이다. 학생들이지만 용기와 의자가 남다르다. 병원에 다녀와서 눈을 좀 붙이고 나와 참석했다. 어른들 못지않은 당찬 행사를 거뜬히 치른다. 문화제 마치고 여성가족부앞 원래있던 자리로 이사를 했다.

 

추운겨울이 오기전에 나도 하루빨리 원래 내가 있던 회사에 가정에 내 자리로 돌아가길 바란다. 촛불문화제와 이사함께해주신 모든이에게 감사해요.

 

요즘은 시민분들께서 먹을것을 자주 사주고 가신다. 아이스크림에 방에 뜨거운 커피에 쥬스를 비롯해서 정말 많은 분들이 주고가신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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