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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현대차 성희롱 피해자, 산재인정 후 복직논의...현대차, 국내외적 압박“힘없는 여성노동자의 승리 보여줄 것”

현대차 성희롱 피해자, 산재인정 후 복직논의

현대차, 국내외적 압박...“힘없는 여성노동자의 승리 보여줄 것”

윤지연 기자 2011.12.09 14:49

 

‘현대자동차’라는 재벌기업을 상대로 한 사내하청 여성노동자의 싸움이 승리할 수 있을까.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박 모 씨가, 현대자동차와의 싸움에서 작은 승리들을 모아나가고 있다. 지난 11월 25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라는 판결을 이끌어내면서, 회사는 복직논의를 위한 교섭 테이블을 제안하고 나섰다. 박 씨의 피해 사례가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1인 시위 등의 움직임도 진행되고 있다.

 

성희롱과 해고, 사측으로부터의 폭력을 견디며, 1인 시위와 길거리 농성 등을 진행해 온지 1년 반 만의 성과다.

 


산업재해 판결 후, 사측 교섭 제안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인정 후, 현대자동차그룹의 물류담당 회사인 ‘글로비스’는 피해자 박 씨에게 교섭을 제안했다. 그동안 원청을 비롯한 하청에서도 단 한차례의 교섭 제안이 없었던 만큼, 복직을 위한 작은 돌파구가 생긴 셈이었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와 글로비스, 하청업체인 형진기업은 지난 7일, 교섭을 열고 박 씨의 복직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노조 측에서는 △해고자 복직을 비롯한 원상회복 △가해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을 요구안으로 제시한 상태다.

 

일단 교섭은 시작했지만, 노사가 타결을 이뤄낼 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 피해자를 비롯한 금속노조가 원청인 현대자동차의 책임을 물으며 싸워왔지만, 정작 현대자동차는 교섭에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권수정 피해자 대리인은 “지금까지 이 문제를 외면해 왔던 사측이 먼저 교섭을 요구해 온 것은 중요한 성과지만, 정작 교섭에 나와야 할 원청인 현대자동차는 아직도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농성을 지속해 오면서 피해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심화 돼 교섭에 응하기는 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피해자와 노조 측에서는 7일 이후 일주일 동안 세 번의 교섭을 진행한 후, 타결이 되지 않을 시 교섭을 결렬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권 대리인은 “현대자동차가 참석하지 않는 교섭에 응한 것은 피해자 측이 한 발 양보한 것”이라며 “만약 3개의 요구안 중 하나라도 관철되지 않으면 우리는 교섭을 더 이어나갈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후 교섭은 12일 열릴 예정이다.

 

이번 교섭이 성사된 것은 무엇보다 박 씨의 사건으로 현대차가 국내외적으로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현대자동차는 이번 사건은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자신들과는 상관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면서도 지난 국정감사 기간 동안, 현대자동차는 직접 박 씨의 사생활이 담긴 유인물을 국회의원실에 배포하며, 무죄를 주장하고 나서 2차 가해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은 11월 1일, 가해자가 ‘남여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벌금형을 결정했다. 11월 25일에는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는 피해자가 제기한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라는 판결을 내렸다.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사건 소식이 국외로 알려지면서, 국제연대 행동도 조직되고 있다.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지난 11월 30일, 미국 전역과 푸에르토리코의 75개 현대차 영업소 앞에서 ‘피해자 복직,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전 세계 동시다발 1인 시위를 전개했다.

 


밥 킹 전미자동차노조 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몇 달 전 현대차 협력업체에서 성희롱 사건을 알린 직원이 부당 해고를 당했는데, 원청업체로서 현대차가 책임자 처벌과 피해 직원 복직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성의 재생산권을 위한 국제네트워크(WGNRR)와 국제금속노련(IMF)역시 피해자를 응원하고 나섰다. 미국에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권수정 대리인은 “현대자동차가 국내외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글로비스를 압박해 교섭을 진행하게 한 것”이라며 “교섭에서도 글로비스는 미국에서의 1인 시위를 하지 말아달라고 계속 요구했다”고 전했다.

 

200일의 농성, ‘작은 꽃, 아픔으로 피다’

 

오는 17일이면, 피해자의 여성가족부 앞 노숙 농성은 200일 째를 맞는다. 아산공장 앞 농성과 1인 시위를 거쳐, 서초경찰서 앞 농성, 여성가족부 앞 농성까지, 지난 1년 반 동안 그녀는 대부분을 길거리에서 보냈다. 그만큼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고통을 앓고 있다.

 

피해자는 “육체적으로도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만 정신적인 고통이 가장 크다”며 “현대자동차가 문건을 돌리며 2차 가해를 했고, 여성가족부 장관 역시 면담에서 2차 가해를 가해 생각만 해도 화병이 난다”고 토로했다.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18일, 피해자와의 면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측으로부터 2차 가해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권수정 대리인은 “장관이 면담 자리에서 피해자에게 ‘민사재판을 하고 있고, 만약 승소한다 해도 복직을 못할 것 같으니,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승소 뒤 피해보상을 받으라’며 2차 가해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해자 측은 지난 29일, 또 다시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여성가족부를 찾았지만 공권력에 의해 끌려 나오기도 했다.

 

이렇듯 사측을 비롯한 정부조차 박 씨의 사건을 외면하고 있는 사이, 이들을 지지하는 움직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박 씨의 사건을 엮은 ‘작을 꽃, 아픔으로 피다’라는 책은 이미 1000권이 넘게 판매됐다. 모두 집회 현장이나, 농성 현장에 찾아와 책을 구매했다. 박 씨는 “지지해주고 연대해주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우리는 지금 뭘 해도 대박”이라며 “만약 원직복직과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시 현대차는 우리의 더 큰 대박을 기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불가능할 듯한 싸움이었지만 어느덧 하나 둘씩 승리를 만들어가고, 사람들 역시 이 사건에 많은 연대와 관심을 가지면서 박 씨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 물론 복직 후에도 2차 가해자 문제 등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지만,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앞으로도 싸움을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박 씨는 “성희롱 사건을 알렸다는 이유로 해고한 것은 부당한 해고인 만큼, 하루 빨리 복직이 돼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며 “특히 현대자동차에 힘없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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