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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인터뷰 “산재라는 판례를 남길 수 있어서 뿌듯하다”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인터뷰 “산재라는 판례를 남길 수 있어서 뿌듯하다”

복직 합의 한 달만에 평가 토론회 열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해 2009년도부터 관리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한 박모(47)씨. 2010년 9월 3일 참다못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다. 하지만 하청업체는 이를 빌미로 박씨를 징계해고 한다. 결국 2011년 5월 31일부터 박씨는 대리인 권수정(41)씨와 함께 상경 농성을 시작한다. 11월 25일에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에 대한 첫 산업재해 판결을, 12월 14일에는 피해자 원직복직과 가해자 해고라는 합의를 얻어낸다. 박씨가 성희롱 부당해고에 맞선 지 1년 4개월만의 일이다.

 

박씨가 원직복직 합의를 얻어낸 지 한 달이 지났다. 1월 13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박씨를 만났다. 이날 박씨의 투쟁에 대한 평가 토론회도 마련되었다. 복직으로 2월부터 일터로 돌아가는 박씨는 차분하고 편안해 보였다. 회의실은 지원대책위의 활동가들과 관심 있는 시민들로 뒷자리까지 가득 찼다. 박씨는 함께 천막 농성을 한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 등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믿는 종교, 같이 해준 대리인, 지원대책위 많은 활동가들이 마음의 지지대였어요”라고 박씨는 입을 열었다. 이번 투쟁의 특징은 수많은 단체들이 함께 했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 참여한 단체만 18개였다. 성희롱 피해자의 공개 투쟁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어떤 희망으로 1년 4개월을 견디었을까. “지금 포기하면 억울하니까 포기할 수 없었어요. 한 순간으로 그간의 노력이 무너지니까요. 그래서 한 발만 더 나가면 되겠지’라고 되뇌었어요. 결국 그런 마음 속 믿음으로 하나, 둘씩 풀려나갔죠. 인권위 결정문이 나오고 산재 판결이 나고...”

 

박씨의 싸움은 힘든 순간도 많았다.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을 하다가 2평 남짓한 텐트가 철거되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어쩌면 사회가 이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성차별적 문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나같이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도 견뎌냈어요. 우리나라에서 1, 2위를 다투는 대기업을 상대로요. 다른 여성들은 나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기운 잃지 말고 이번 투쟁을 바탕으로 승리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또 “적어도 ‘아산 공장 안은 나아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성희롱을 문제제기하고 싸웠기 때문에 남성들이 좀 더 조심할 것이라고 보고요. 나 한 명의 복직으로 끝나지 않고 산재라는 판례를 남길 수 있어서 뿌듯해요”라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도 물었다. “남은 인생 조용히 살 겁니다. 무엇보다 내 의지로 선택한 투쟁이 아니니까요. 가정과 일터로 돌아가서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 거예요. 평탄한 삶을 살고 싶어요”

 

토론회 사회를 맡은 나영 사무국장은 “성폭력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노동계는 성희롱을 여성문제가 아닌 고용환경 구조라는 측면에서도 고민했으면 한다. 또 성희롱은 어느 한 쪽이 조심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권력 관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 13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 평가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많은 지원대책위 활동가들은 성회롱은 위계 관계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신문

 

이날 토론회에는 성희롱은 직장 내 위계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유현경 사노위 여성국장은 “직장 내 성희롱은 생존권을 흔들며 통제하는 ‘노동’의 문제이다. 또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여성노동권사업을 주변화시킨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지나 활동가는 “일터 안·밖에 여성 노동자 커뮤니티가 많이 형성된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직장 내 성폭력을 외부로 들어내지도 지지받지도 여성노동자는 고립감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망이 필요하다. 정부의 성희롱예방 정책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노조와 여성단체에서 이를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피해자 대리인이자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권수정씨는 ‘직장 내 성희롱은 같은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런 직장 내 성희롱은 효과적 생산 통제를 위해 회사의 옹호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성희롱을 경험한 여성노동자는 40%에 이른다고 밝혀졌다. 특히 비정규직일수록 더 많고 높은 강도의 성희롱을 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노총 송은정 여성부장은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된 법제도 개선안을 소개했다. “첫째, 고객 등 제3자도 가해자 범위 안에 포함한다. 둘째, 피해를 진술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피해자를 해고할 경우, 불리한 조치로 간주한다. 셋째, 고용노동부는 성희롱 방지조치를 점검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등 성희롱 방지의무를 구체화한다. 넷째, 성희롱에 대한 인권위 권고 결정 시 관할 노동청은 과태료를 부과처분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설명했다.

 
 

1169호 [사회] (2012-01-15)
이지원 / 여성신문 기자 (gkr2005@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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