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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얼굴들, 숨 막히는 가부장제의 공기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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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배우에게 어느 소녀의 동영상이 전달됐다.

배우가 되고 싶은데 가족들이 심하게 반대를 해서 자살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충격적인 영상을 받아본 배우는 친한 감독과 함께 그 영상 속 소녀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오랜 시간을 달리고 달려 어느 외진 시골에 다다랐다.

구불 구발한 산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위태로웠고

그 끝에 다다른 마을은 가난하게 살아가는 조그만 오지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영상 속 소녀를 조심스럽게 찾아 나섰다.

 

순박한 마을사람들은 외지인을 따뜻하게 환대했고

여성이 유명 배우임을 알아본 마을 아이들은 그의 주위를 감싸며 사인을 해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그의 방문 목적이 한 소녀를 찾는 것임을 알게 되자

노인들은 마을의 숙원사업인 도로확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돌아서버렸고

아이들은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어른들의 성화에 밀려 집으로 향해야 했다.

 

이래저래 수소문 끝에 동영상 속 소녀의 집을 찾게 됐는데

소녀의 남동생은 “왜 그 애를 찾느냐!”면서 매우 거칠게 대들었고

소녀의 어머니는 손님을 정성스럽게 맞으면서 “배우가 되겠다는 그 애 때문에 마을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 마을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는 여자가 tv에 얼굴을 드러내어 웃고 춤추고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행동이었고 그런 딸은 둔 집은 무시당하는 것이었다.

그 소녀가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아 걱정이었지만 그 사실 조차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봐서 쉬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감해진 배우와 감독은 조심스럽게 소녀의 행방을 알아본다.

그 소녀의 친구도 만나보고 동영상이 촬영된 장소에도 가보고 하다가

결국 친구 집에 숨어있던 그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가 자신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쇼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배우는 배신감에 불같이 화를 냈고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위기감에 소녀는 울면서 “제발 제 얘기 한 번만 들어봐 주세요”라고 통사정을 했다.

자신의 중요한 촬영일정까지 미루며 달려왔던 배우는 너무 화가 나서 매몰차게 등을 돌려버렸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 감독도 아무 말 없이 차를 돌려 그 마을을 빠져 나오려는데

마을 입구 도로에 조그만 사고가 생겨서 빠져나가기 어렵게 됐다.

 

둘은 어쩔 수 없이 그 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된다.

순박한 마을사람들은 예의 바르게 손님을 대하는데

다정한 얘기 속에서도 가볍게 툭툭 던지는 한마디가 예민한 부위를 건드렸다.

‘옛날에 유명했던 배우가 있었는데 한 번 실수하고 나니까 말년에 비참하게 살더라’는 식의 말을 유명 배우와 감독에게 스스럼없이 하는데

그 태도에는 상대를 의도적으로 도발하려는 계산보다는

오랜 인생을 살아오며 쌓인 내공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몸에 밴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유명 배우와 감독 앞에서

겸손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살며시 기대를 품어보지만 자기 가족과 마을에 이익이 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는 그 태도 속에

마을을 유지하는 힘이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 속에 얘기가 좀 더 이어지면서 은밀한 속살들도 살짝 드러났다.

어느 노인이 살며시 찾아와 자기 아들의 할례를 하고 얻은 피부조각을 내밀며 남성다움의 상징처럼 보였던 유명 배우에게 전달해줄 것은 간곡히 부탁했다. 그래야 자기 아들의 그 배우의 기를 받아서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마을 사람 중에 tv에 나와서 춤을 췄던 사람이 있는데 그 이후 마을에서 왕따를 당했다는 얘기도 듣게 됐고

비좁은 마을도로가 확장되기만을 무작정 기다리는 어른들의 모습에 짜증이 난 소녀가 집적 곡괭이를 들고 나와 마을도로를 넓히겠다고 하자 ‘여자가 할 일이 아니다’며 나무랐다는 얘기도 듣게 됐다.

오래된 삶의 내공을 통해 마을을 유지하는 힘 속에는 그런 완강한 자부장적 보수성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 소녀가 왜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써가면서까지 그 마을을 벋어나고 싶어 하는지 이해를 하다 보니 어느덧 그 마을의 무거운 공기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처럼 이란의 시골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는 방식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와 판박이였다.

하지만 그의 후배세대답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보다는 조금 더 직설적이고 조금 더 전투적이었다.

그 가부장적인 보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인물이나 사건들을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벤 자연스러운 삶이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극중에서 배우가 마을 노인과 대화하며 “테헤란에는 차도 많고 공기도 탁한데 여기는 공기가 맑아서 좋네요”라고 했는데 영화가 끝날 때면 그 마을의 숨 막히는 공기 때문에 빨리 빠져나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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