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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야기]"사는 게 왜 이리 힘듭니까"

 
[농민이야기]"사는 게 왜 이리 힘듭니까"

뼈빠지게 일해 번돈 딴 사람이 다 가져가

"옛날 보리밥 먹던 시절 생각하며 버티고 있어. 작년에 번 돈이 얼마인 줄 알아. 9백만 원이야. 9백만 원, 아 한 달이 아니라 일년에 말이야."

44년째 땅만 보고 살아왔던 서정우(62·경북 경산)씨가 말하는 농촌의 현실은 거칠다.

논농사 1천 평, 과일농사 5백 평, 서할아버지는 이 땅을 일구며 두 딸을 출가시키고 작은 돈이지만 저축도 했었던 적이 있었다. 90년 초반 아주 잠시.

올해도 서씨는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농사를 짓는다. 요즘처럼 '가격폭락'이란 말이 자주 들리는 때가 없다. 농민들에게 '폭락'이란 말은 단순히 가격폭락이 아닌 '인생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이 폭락되지 않기 위해 농민들은 "올해는 어느 작물을 심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서씨가 이번에 '승부'를 건 작물은 토마토. 나무를 한번 심으면 좋으나 싫으나 1년은 정성을 들여야 한다. 벼를 추수하기 전, 토마토가 열리기 전까지는 파나 상추 등을 팔아 한 달을 버틴다. 그러니 한 달 수입이라고 해봐야 많아야 20여만 원.

"그래도 아엠에프 전에는 한 달에 백 만원은 벌었지, 그런데 요즘은 구제역이다, 광우병이다 해서 사람들이 고기를 먹지 않으니 야채도 덩달아 안 팔려."

대학에 다니는 아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1년에 1천만 원이라고 하니 서씨가 빚으로 살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봄에 농자금을 대출받아서 가을에 갚아. 작년에 1천2백만 원 빚을 냈어, 올해는 벌써 8백만원 융자를 받았고. 아, 융자를 받지 않고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 퇴비 값, 비닐 값, 씨앗 값, 뭐 한두 푼 들어가는 것이 아니야. 사는 게 한심하지."

경기도에서 낙농업을 하는 최 철(35·연천군 연천읍)씨는 몸값이 2억 원이 넘는 '귀하신 몸'이다. 물론 최씨의 몸값은 빚을 의미한다. 최씨는 젊은 나이에 대출을 많이도 받았다.

"대출을 받아서 축사를 개축하지 않으면 경쟁이 되질 않아요. 그리고 농촌에 사람이 없어 일꾼이 부족합니다. 저도 혼자서 일하고 있어요. 기계를 도입하지 않고서는 농장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시설비가 따르게 되는 거죠. 전 농협하고 정부에서 모두 2억 원을 대출 받았습니다."

최씨의 농장은 1천6백 평 규모, 여기에 70여 마리의 젖소가 있다. 이중에서 30여 마리의 젖소만 현재 젖을 짤 수 있다. 우유를 팔에 하루에 들어오는 돈이 50십여만 원, 한 달이면 1천5백만 원이라는 큰돈이지만 정작 사료 값 9백만 원, 전기료 60여만 원, 이자 및 원금상환 매달 평균 4백여만 원을 제하고 나면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고작 1백5십백만 원 정도. 뼈가 부숴져라 일해도 돈 가져가는 '인간'들이 따로 있다.

"일 년에 이자만 해도 1천2백만 원을 갚아야 합니다. 원금도 조금씩 갚아야 하니까 실제로 제가 버는 돈은 일 년에 1천만 원이 조금 넘죠. 월급쟁이로 보면 한 달에 1백만 원 버는 셈이죠."

농촌에서 가장 형편이 좋다는 낙농업이 이 정도다.

최씨는 쉬는 날이 없다. 몸뚱이가 재산인 농부가 앓아 누울 수는 없다.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것이 너무 고돼서 여기 낙농업을 하는 사람들 30명이 각자 7만원씩 돈을 모아서 헬퍼(농사 도우미)를 고용했다. 이 헬퍼가 돈을 지급한 30개 농장을 하루에 한번씩 돌며 일을 해준다. 헬퍼가 오는 날이 최씨가 쉴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가족들하고 여름 휴가 때 여행을 갈려면 헬퍼를 이틀간 고용해야 합니다. 이러면 두 달간 제가 쉬는 차례에 쉬지 않고 일해요. 그리고 한꺼번에 이틀 휴가를 내죠. 사람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최씨는 40대 초반이 되서야 이자와 원금을 갚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면 또 축사를 개축하느라 대출을 받아야 한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고 최씨의 '몸값' 또한 빚으로 인해 연일 '상종가'를 기록할 것이다.

(정경섭jks@kdlp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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