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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26회)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26회)

 

 

 

1

 

충남 홍성에 있는 대안학교인 풀무학교의 3학년 학생들이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아홉 살이 해야 하는 가장 현실적인 고민이지만 가장 어려운 고민이지요.

그래서 “너는 앞으로 뭐 할 거야?”라는 말이 서로에게는 최악의 질문이자 금기어와 같다고 합니다.

하긴 열아홉 살에게만 피해야하는 질문을 아닙니다.

40대 중반인 저도 이 고민은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고민입니다.

서로가 피하는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학생들이 마을 주변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고3학생들이 다가와서 뜬금없이 던지는 난감한 질문에 당황도 했으련만 서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지역의 조그만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 한 언니는 “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오랜 시간 풀어 왔던 꿈은 아니에요. 우연히 마주친 일들,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즐기면서 열심히 하다 보니 우연찮게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라고 더 답이 안 나오는 대답을 했습니다.

 

청년협업농장에서 일하시는 어떤 분은 “지금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냐고 물었죠? 하고 싶다, 하기 싫다의 기준이 뭔가요? 그게 애매하거든요. 백날 가만히 있는다고 하고 싶은 일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흔히 자기 적성에 맞으면 하기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기 싫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 중요한 건 지역이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변을 잘 알아야 해요. 그래야 필요한 일을 찾을 수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은 자기 주변을 보지 않기 때문에 개인에게 필요한 일을 해요. 돈이 필요하니 돈을 버는 일을 하는 거죠. 그렇다고 주변에서 필요로 하는 일들만 하느냐, 그것은 아니고요. 주변을 좀 둘러본다면 지역이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일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접점을 찾을 수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을 조율하면서 하는 거죠”라고 나름대로 소신을 해기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된 한 학생이 나름대로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발표했습니다.

 

“홍동의 주민 분들은 열아홉 살 때 생각하고 계획한 진로와, 또 대학에서 전공한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처음에 자신이 가졌던 진로와 지금 다르게 살고 있다고 좌절하거나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지요. 저도 그럴 겁니다. 내가 가진 계획은 정말 계획일 뿐인 거죠.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실컷 흔들리다가 우연히 멈춰 선 그 길로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이 제가 가져야 할 태도겠죠.”

 

너무 압축해서 얘기하다보니 그 학생들의 풍부한 얘기들과 깊이 있는 고민들을 제대로 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여운은 느껴지시지 않습니까?

한 학생이 얘기했던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실컷 흔들리다가 우연히 멈춰 선 그 길로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제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하나 듣겠습니다.

‘항상 엔진을 켜둘게’

 

 

휴일을 앞둔 밤에

아무도 없는 새벽

도로를 질주해서

바닷가에

 

아직은 어두운 하늘

천평궁은 빛났고

차안으로 스며드는

찬 공기들

 

기다릴게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게

 

너와 만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 바닷가에 다시 또

찾아와

 

만약 그때가 온다면

항상 듣던 스미스를

들으며 저 멀리로

떠나자

 

기다릴게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게

 

기다릴게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난 여기에 서 있겠지

아마 엔진을 켜둔 채

 

기다릴게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난 여기에 서 있겠지

아마 엔진을 켜둔 채

 

 

2

 

오래간만에 만화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앙꼬라는 작가가 쓴 ‘나쁜 친구’라는 만화였습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장편 만화였는데, 정성스럽게 다듬은 흑백판화 같은 느낌의 깔끔한 그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고 시절 소위 놀던 언니들의 얘기를 하고 있는데 참 생생하더군요.

너무 생생해서 작가 본인의 경험이 들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학창시절 불량했던 친구들의 얘기들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단골로 다뤄지는 주제이기는 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소설로는 아중 인상적이었고, 영화로는 작년에 봤던 ‘파수꾼’과 얼마 전에 추석 특선영화로 봤던 ‘써니’가 기억이 납니다.

모두 놀던 친구들이 주인공으로 나와서 학창시절을 돌아보는 얘기인데, 그 소설이나 영화를 바로 지금의 현실로 가져다 놓으면 많이 찝찝해집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파수꾼’은 요즘 말로 하면 일진의 짱이 만들어지고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그를 동정하게 만들고, ‘써니’는 일진들이 설치던 시절은 순수하고 애정이 넘치던 낭만적 모습으로 그리고 있거든요.

학교폭력을 경험해봤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거나 미화할 문제는 아닌데 말입니다.

 

‘나쁜 친구’도 역시 이전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여줬던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는 얘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여성 작가답게 놀던 친구들의 마음속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학교폭력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도 아니고, 학교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눈을 넓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놀던 친구들의 문제를 합리화하거나 미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폭력적인 가정과 학교에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벗어나려다가 더 폭력적인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생생하고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집과 학교의 폭력을 피해 가출을 한 두 친구는 여관방에 누워서 “너는 나중에 커서 뭐하고 싶어?”라는 식의 대화를 나눕니다. 서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업소에 일을 다니던 친구가 “난 너무 세상을 일찍 알았어...”라면서 쓸쓸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식상할 정도로 통속적인 장면이었는데, 그 씁쓸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나쁜 친구’는 정성스럽게 다듬은 그림만큼 내용도 참 정성스러움이 느껴집니다.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그들을 합리화하려고 하지도 않고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면서 동정을 구하려고 하지도 않고

폭력적인 가정과 학교와 세상의 문제를 무리하게 보여주려고 하지도 않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무리하게 담아내려고 폼을 잡지 않으면서도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짧은 시간 책장을 넘기다 마지막 장을 다 보고나면 가슴 속에 뭔가 살며시 남겨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참, 오래간만에 읽어본 좋은 책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올 한 해 동안 학교폭력문제로 유난히도 떠들어댔는데

요란스럽던 경찰들은 중삐리 고삐리들과의 전쟁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고

교육 관료들은 학교폭력문제에 대해서 입을 다물기 시작했고

학교 선생들은 뒤로 구린 것을 가리면서 표정관리를 하고 있고

언론들만 대책 없는 요란을 떨고 있습니다.

재수 없게 걸려서 학교에서 쫓겨난 일진들은 이 폭력적인 세상에서 더 폭력적인 세력으로 커져가기만 할텐데...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잠시 생각해봅니다.

허니 패밀리가 부른 ‘엉터리 학생’ 듣겠습니다.

 

 

너 어디 가니? 너 학교 가니? 뭐 빠진 거는 없니? 딴 데로 세는 건 아니니?

너 어디 가니? 너 학교 가니? 뭐 빠진 거는 없니? 딴 데로 세는 건 아니니?

학교로 가. 선생님이 기다리셔. 집으로 가. 부모님이 기다리셔.

학교로 가. 선생님이 기다리셔. 집으로 가. 부모님이 가다리셔.

 

이런 제기랄, 오늘도 변함없이 망가졌지. 물론 내겐 오늘내일 일은 아니지만

이거 참 참 참 해도 해도 정말 내게 너무 하는 거 아냐 하고 이를 갈고 있었지

그래도 내게 명색이 선생님과 부모님인데

내 장래를 위해서 그러느니 생각하면 그건 잠시 나만의 생각일 뿐

빌어먹을 신경이 또 지독히 날카로워질 때면은

바지통이 어쩌느니 머리색이 어쩌느니 내가 입은 옷이라면 쌀 한가마니 돈이라니 하며

무서운 몽둥이는 나를 향해 날라 오고

성공. 지위. 명예. 권력 그 모든 것을 얻으려면 공부는 필수. 노력은 의무. 대학은 선택이라나

말이 끝나자마자 난 또 한 번 죽고

그래서 홧김에 몇 명 찍어놓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두들겨 패면 그놈들은 며칠 동안 결석하질 않나

그러다 그 얼간이가 듣는 날엔 난 아마 제삿날이겠다 싶어 보여 놈들 집을 찾아가 협박을 했지

그러니까 그놈들은 가출하드만 (어디가?)

 

너 어디 가니? 너 학교 가니? 뭐 빠진 거는 없니? 딴 데로 세는 건 아니니?

너 어디 가니? 너 학교 가니? 뭐 빠진 거는 없니? 딴 데로 세는 건 아니니?

학교로 가. 선생님이 기다리셔. 집으로 가. 부모님이 기다리셔.

학교로 가. 선생님이 기다리셔. 집으로 가. 부모님이 가다리셔.

 

쨍하고 해 뜨자마자 학교에 갈까 말까 많이 생각했었지

분명 가봤자 그놈한테 돈 뺏기고 또 맞을 거 뻔한 일인데

이대로 갈까 말까 한참을 난 생각하던 끝에 천만 다행히 나 아게는 결론이 서드만

나 역시 화려한 변신이 필요하다고 말이지.

하하 변신!

날이 가면 갈수록 내 모습은 화려해지고

반짝거리는 화려한 내 모습 앞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내 앞을 가로막는 이는 그 누구도 없고

서로가 내 눈치를 보며 너나 할 것 없이 벌벌 기는 이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강해야만 한다 맞지 않으려면 너 역시 때려야만 한다

그렇게 설명을 해줬지

그건 왜냐? 옛날 옛적에 최영이란 분이 계셨었지. 그분 성격이 항상 그랬듯이

너 소냐 나 최영이야 그리고는 소뿔을 확 부러뜨려 버려. 무대뽀 정신이 필요하다

 

너 어디 가니? 너 학교 가니? 뭐 빠진 거는 없니? 딴 데로 세는 건 아니니?

너 어디 가니? 너 학교 가니? 뭐 빠진 거는 없니? 딴 데로 세는 건 아니니?

학교로 가. 선생님이 기다리셔. 집으로 가. 부모님이 기다리셔.

학교로 가. 선생님이 기다리셔. 집으로 가. 부모님이 가다리셔.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들었던 말, 공부해 공부해 뭐하니

항상 내게 말해 부모님 선생님 모두 모두가 다 똑같애

내겐 없어 아무것도 없어 1등밖에 난 없어

단지 학교 학원 그리고 독서실 왔다갔다 기계처럼 난 똑같이 살아만 가지

난 하지만 이런 게 내가 원했던 게 아닌데 왜들 다들 날 그렇게들 몰고만 있어

내가 배운 세상과 내가 본 세상이 같지가 않아 어떤 게 맞는지 몰라

난 널 봐 너처럼 되고 싶어 니 말이 전부 모두 다 맞는 것 같아

이제 난 여자친구 사귀어 돈도 뺏어 약한 애 때려

막 갈래 내가 하고 싶은 데로 갈래

'사'자만이 판치는 세상 됐어

내 꿈은 따로 있어

다 '사'자 하면 나머진 누가해? 말도 안 돼

이제 날 내가 하고 싶은대로 냅도 제발

 

 

3

 

짧은 광고 두 개 전하겠습니다.

 

지난 방송에서 영화 ‘또 하나의 가족’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11월 17일 현재 모금액이 6천만 원을 넘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의 제작에 관계된 사람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과 설레는 마음이 동시에 들어서 매일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모금 상황을 지켜보게 됐습니다.

이 달 말까지 1억 원을 목표로 한다고 했는데, 가능하겠죠?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21살의 나이로 생을 마친 황유미씨와 그 가족들의 얘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혹시 이 소식을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 해서 다시 한 번 홈페이지를 알려드립니다.

굿펀딩 홈페이지(www.goodfunding.net)에 가셔서 자세한 내용도 보시고 응원도 부탁드립니다.

 

또 하나의 광고는 이 방송에 대한 것입니다.

혼자서 아무 얘기나 주절거리며 진행한 방송이 벌써 11개월째입니다.

12월 16일이 되면 1주년이 되는 날이라서 나름대로 생일잔치를 해보려고 합니다.

뭐, 1주년 기념방송 같은 것이 되겠지요.

거의 참여하는 사람들이 없는 방송이라서 어떻게 할지 좀 난감하기는 하지만...

지금부터 한 달 동안 이런 저런 고민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이 방송을 보시는 분이 계시다면 12월 16일 생일잔치를 축하해주시지 않으시렵니까?

 

 

4

 

고층건물 스카이라운지나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면 세상살이가 우습게 생각됩니다.

저 좁은 땅덩이 속에서 살아가려고 아등바등 거리는 우리의 모습이 한심해지기도 합니다.

장난감 같은 자동차 한 대를 마련하기 위해 여기 저기 돈을 끌어 모아야 하고,

성냥갑 같은 조그만 집 한 채를 얻기 위해 몇 십 년을 허리띠 졸라매야 하는 삶이 허무하기도 합니다.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우습고 허무하게 느껴질지라도 다시 땅으로 내려오면 무서운 현실이 됩니다.

 

대범한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 보면서 삶의 설계를 할지도 모릅니다.

올망졸망 이어진 건물들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고층건물들입니다.

복잡해 보이는 세상도 고층건물들과 그를 연결하는 도로들이 큰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것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아직도 드넓은 평야와 야산과 강과 바다로 더 뻗어나갈 수 있는 길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진취의식을 고취하기도 합니다.

삶을 설계하고 세상을 설계하는 사람은 그렇게 항상 높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

 

이 땅 위에서 함께 살아가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이렇게 다릅니다.

유전적으로 소극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구분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유전이 아니더라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다수와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소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람들이 복잡한 세상을 이끌어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부자가 부자를 만들고 가난이 가난을 만드는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이 되어서 부자가 되든가

아니면 내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그런 세상입니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으면 참 편안합니다.

손과 발을 가볍게 움직이면서 물결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으면 요람 속의 흔들림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애써 방향을 잡을 필요도 없이 바다가 흐르는 데로 몸을 맡겨놓기만 하면 바다는 나를 물결 따라 흐르게 합니다.

발에 힘을 주어 쓰러지지 않으려 노력할 필요도 없고, 손에 힘을 주어 더 놓은 곳으로 올라가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가볍게 바다에 몸을 맡긴 채 물결과 호흡을 같이하기만 하면 됩니다.

바다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만 없다면 바다는 포근함과 편안함을 전해줍니다.

 

바다에 누워서 세상을 올려다보면 모든 것이 보입니다.

땅도, 집도, 산도, 하늘도 모두 한 눈에 올려다 보입니다.

땅위에 집이 있고, 산이 그 주위를 아우르고 있고, 하늘이 그 위를 덮고 있습니다.

나를 품고 있는 바다가 땅과 산과 하늘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올려다본 세상은 그렇게 풍부함을 전해줍니다.

 

 

5

 

생태운동에 있어서 고전과 같은 ‘오래된 미래’를 보면 라다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참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예순 살의 한 노인이 어느 도시에 잠시 들른 적이 있는데,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그를 보고 사람들이 “저 바보 같은 모자 좀 봐!” “저 우스운 장화 좀 봐!” “저런 촌사람들은 생전 안 씻는데!”라면서 놀려대는데도 그는 미소를 짓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서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어느 울퉁불퉁한 시골길에서 트럭을 타고 오는 와중에 중년의 라다크 사람은 불편해하는 두 명의 학생을 위해서 좋은 자리를 양보하고, 학생들이 물이 필요하다고 하면 물을 가져다주고, 차를 마시고 싶다고 하면 차를 끓여줬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그를 하인 취급했는데, 그는 학생들을 친구로 대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온 글쓴이는 라다크 사람들의 이런 낙천적이고 평온한 태도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몇 년을 라다크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서 그는 삶의 불안감과 공포 속에서 자기보호막을 쳐놓고 그 뒤로 물러나 있는 자신들과 달리 공동체와 자연 속에서 뿌리 깊에 내려있는 라다크 사람들의 자존심을 느꼈습니다.

사랑과 우정의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도시인들보다 덜 의존적이었고, 스스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행동하고, 자연의 리듬을 느끼면서 무리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세상의 흐름의 일부라고 느끼면서 그 흐름과 함께 움직여나가려고 하는 라다크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만족감과 자존감은 무의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부 멕시코의 산속에서 살아가는 인디언들은 “고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고통을 피하고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서구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고통은 피할 수 없고 결코 완전하게 추방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원을 확보하려는 탐욕스러운 이들로 인해 투옥되기도 했고, 사람들이 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슬픔과 고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하나로 받아들이면서 더 강해지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고통이 의사에게 병을 치료하는 지식을 주었듯이 그들도 고통 속에서 서로를 치료하는 힘을 만들었던 것이지요.

 

세상에서 밀려나 제주도 촌구석에 박혀 있는 제가 이곳에서 라다크와 같은 공동체를 꿈꾸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제가 대단한 철학자가 돼서 고통의 미학과 힘을 깨달은 것도 더더욱 아니고요.

삶의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올라오다 미끄러지고 다시 올라오다 미Rm러지기를 반복하고 있는지 벌써 7년째입니다.

삶의 고통의 뭔지는 충분히 느끼고 있지만 그 끝은 아직도 보이지 않습니다.

고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더라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과 우정의 공동체 속에서 만족감과 자존감을 찾아갈 날이 쉽게 오지는 않겠지만, 지금 나와 같이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면 내가 그 고통 속의 공동체에 속하게 됩니다.

 

얘기가 많이 거창해졌군요.

이쯤에서 오늘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영애의 ‘누구 없소’ 듣겠습니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어둠은 늘 그렇게 벌써 깔려있어

창문을 두드리는 달빛에 대답하듯

검어진 골목길에 그냥 한번 불러봤소

 

날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모두

오늘밤도 편안이들 주무시고 계시는지

밤이 너무 긴 것 같은 생각에

아침을 보려, 아침을 보려하네

나와 같이 누구 아침을 볼 사람 거기 없소?

누군가 깨었다면 내게 대답해~주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새벽은 또 이렇게 나를 깨우치려

유혹의 저녁 빛에 물든 내 모습 지워주니

그것에 감사하듯 그냥 한번 불러봤소

 

오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벌써 하루를 시작하여 바삐들 움직이고

아침이 정말 올까하는 생각에

이제는 자려, 이제는 자려하네

잠을 자는 나를 깨워줄 이 거기 누구 없소?

누군가 아침 되면 나 좀 일으켜~주

누군가 아침 되면 나 좀 일으켜~주

누군가 아침 되면 나 좀 일으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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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성민이 mk102938@hanmail.net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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