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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날의 도원결의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한

20대 초반의 어느날

그저 운동을 해야한다는 당위가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현실 문제를

터무니없이 생략해 버리곤 했던 시절(적어도 나에게는)

 

우리는(? 공포의 외인구단^^ 혹은 7인의 사무라이 이었다고나 할까?)

때늦은 생일축하를 하기 위해

중국집 구석방에 모여 들었다.



우리 형편에는 좀 (많이) 과분했던

탕수육이 등장했고 짜장면이 있었고 짜장면의 오랜 친구 짬뽕도... 당연히 함께했다.

여기에 "빼갈"이 자리를 빛냈으니

그야말로 짱개 풀옵션이 완성된 셈....

 

그렇게 우리는...

청춘의 한복판에서

오랜만에 정말 넉넉한 기분으로 겨울 날의 하루를 떠나 보내고 있었다. .

흥청망청은 아니었고 ...

그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 

 

술자리가 무루 익어 갈 때쯤

 

한 동지가 이런 제안을 했다.

"한날 한시에 죽지는 못해도

죽는 날까지 단 한명의 이탈(당연히 운동이다)도 없이 끝까지 함께하자...."고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용은 대충이랬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한마디로 운동판 도원결의였던 셈...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 없고 지켜질 가능성이 희박할 뿐만 아니라,

성격상 대단히 패밀리적이었던 (그래서 간혹 우리는 우리와 조폭의 조직을 곧잘 비교하곤 했다) ...

또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무지하게 부담이 되었을 그런 제안을 

단 1분도 안돼서 흔쾌히 결의했던 것 같다. (하긴 뭐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단 일주일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이니까)

 

그리고 마침 담배연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

창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 때 눈 참 많이 왔는데...

마치 우리의 결의를 축복이라도 해주듯이...

아마도 그날의 일이 지금까지 기억나는 것에는

함박눈이 한몫 하는 것 같다. 잊혀지지 않고 참 오래도 기억이 난다.

 

그때 운동하고 처음으로

이 사람들과 제대로 한번 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뭐가 뭔지 알거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도 가물가물 했지만

왠지 가슴이 벅차올랐고 뭐든 해내고야 말겠다는 (좀 뜸금없는) 자신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물론 그런 자신감은 단 한달? 아니  일주일도 가지 못했지만...

(어쩌면 중국집을 나와서 눈싸움을 하는 사이에 다 잊어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젊었다...

젊다기 보다는 많이 어렸고, 어려서 뭣도 몰랐고, 뭣도 몰라서 무지하게 용감(?)했던 시절

 

그게 계절적으로 딱 요맘때였다... (음... 그 양반 생일이 언제였더라...)

 

그 모든 시절들이 꿈처럼 다가온다...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그 환한 웃음들이... 금방이라도 터져올 것 같은 기분...

 

물론 원조 도원결의가 지켜지지 못했듯이...

 

아류 도원결의도 지켜지지 못했다. 그런 결의를 지켜내기에는 우리가 너무 약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 가혹했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떠나갈 때... 힘들었다고 해야할까... 망연자실했다고 해야할까... 사람들을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고... 또 왠지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그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현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도 확 그만둘까..." 솔직하게 그런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결의가 높았다기 보다는 우유부단했고... 또 이제까지 투자해 온 미천이 아깝기도 했고... 얼렁뚱땅... 좌충우돌... 그렇게 운동의 생명줄을 쥐고 갔다...(그런데 어느날 자세히 보니 그 생명줄이 인계철선으로 둔갑해 있두만...) 

 

그래서...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저의가 뭐냐고...?

그냥 생각이 났다. 정말로...

날씨는 춥고 일은 하기 싫고... 집에도 가기 싫고...(또 아르바이트는 끊겨져 돈은 떨어져가고...이게 현재로써는 가장 가혹함) 이 우울하기만 한 현실 앞에서

부질없는 걸 알면서도...

그저 (운동적으로) 망인이 된 자들을 다시 호출하여 그날의 중국집에 불러모아 박장대소 치며 빼갈을 돌리고 싶은 심정일 뿐...

 

따라서 기분이 우울해졌고.... 따라서 집에 가기 전에 맥주나 하나 사가야지...

결론도출이 너무 의도적인가? ^^

 

그렇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빈자리들을 기억해낸 날이다.

뭘 처먹고들 사는지 잘 모르지만 잘 먹고 잘 사죠들... 이렇게 허공에다 대고 소리 한번 지르고 싶은 밤이다... (맥주 마시면서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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