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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7/21
    그저께 밤 혹은 어제 새벽에 있었던 일
    빼미
  2. 2005/12/13
    눈오는 날의 도원결의
    빼미
  3. 2005/12/03
    눈오는 밤(1)
    빼미
  4. 2005/04/07
    그대, 노을지는 한강을 본 적이 있는가(3)
    빼미
  5. 2005/03/08
    어머니의 틀니(1)
    빼미
  6. 2005/03/07
    돌이켜보면(3)
    빼미
  7. 2005/03/03
    청계천의 꿈
    빼미
  8. 2005/03/03
    어떤 만남
    빼미
  9. 2005/03/01
    짧은 여행의 기록(4)
    빼미
  10. 2005/03/01
    빼미의 금연일기 160일차 (부제 : 푸하하하~~~)(4)
    빼미

그저께 밤 혹은 어제 새벽에 있었던 일

어제 고등학교 때 알고 지내던 선배를 만났다.

오랜만에 마음 굳게 먹고 선배가 일하는 라이브 카페에 찾아갔던 것이다...

 

선배 일 끝나기를 기다리다보니 시간이 거진 자정이 다 되어 버렸다.

그 늦은 시간에 여의도 한강둔치에 가서 여름치고는 제법 쌀쌀한 강 바람을 맞으며 (만나면 으례 그랬듯이) 잊혀져 가는 과거 운동권의 조직계보를 다시 한번 훑고, 친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조금 떠올려 안부를 묻고, 또 동향(?)을 파악하고, 최근들어 가장 힘들었던 일들을 하나둘씩 떠올려 보기도 하고...

주변에서 폭주족들이 시끄럽게 나돌아 다니지만 않았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았을텐데... 뭐 그래도 분위기가 썩 나쁘진 않았지. (그래도 여자선배랑 같이 있자니 좀 불안하기는 했다)

 

새벽 2시쯤 한강을 빠져나와 보라매 공원 어귀에 있는 국수 집에서 우동을 먹고(선배가 맛있다고 해서 갔는데... 정말 우동 맛이 끝내준다...) 편이점 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또 얘기를 조금 더 나누고... 그런데 이상한 건 술은 한 방울도 먹지 않았는데 자꾸만 취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는 것이다...(졸려서 그랬나?)

'삭막한 대도시 삶에 이런 낭만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조금 하기도 하고...

 

선배가 고맙게도 집 앞까지 차를 태워줘서 미안한 마음에 놀이터에서 얘기나 잠깐 하자고 했던 것이... 동이 틀때까지 얘기를 했지 뭐야~ 내일 살 걱정은 없는 사람들처럼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끝없이 수다를 떨었던 것이다... 뭐 수다라기 보다는 이런 편안한 대화가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에 집에 가기 싫었던 것이 더 정확할테지만...



"그댄 왠지 달라요"

 

이날 선배가 불러준 노래다. 시원한 새벽 공기를 타고 가느다란 멜로디들이 하늘 위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 캬~

놀라운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15년 전, 그러니까 선배도 나도 고등학생이었을 때도 선배가 모 놀이터에서 이 노래를 불러줬었다는 것이다. 난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었는데(사실 이날 나왔던 고등학교 시절 얘기의 태반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랬었단다.

 

"누나 뭔 생각으로 나한테 이런 노래 불러줬어요"하고 물어봤는데, 선배는 그냥 씩 웃고 만다. 효창운동장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걸으며 얘기를 나누고 원효로 근처에 있는 어느 놀이터에 앉아 오늘 처럼 결코 해답이 필요없는 대화를 하고, 또 노래를 부르고... 그런 일도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이런 얘기를 듣다보니 갑자기 과거로 통하는 시간의 문이 활짝 열리는 듯, 옛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울의대 언덕을 수없이 넘으며 나누었던 지겨운 학교생활과 가슴 아픈 연애담, 시덥지 않은 농담들과 사람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리바이벌 되던 귀신얘기들... 고등학생으로는 좀 버거웠던 정치얘기와 불안한 미래의 삶까지... 

아~ 또 그런 일도 있었다. 토요일이었나~ 정기회합을 마친 늦은 밤에 절친했던 친구들과 성대 금잔디에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부딪히며(그렇다... 난 그 당시 비행청소년이었다...)  밤이 세도록 불렀던 민가 메들리와 어설픈 논쟁들...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세상과 타협하지 말자고 했던 풋내나는 약속들...

죽을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저 몇몇 인상들만 남아 있을 뿐, 태반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최근 심사가 좀 뒤틀리면서 어리석은 생각을 간혹 하곤 했었다. '그때(고등학교때) 선배 누구누구를 만나지 않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그때 무슨무슨 단체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대학에 들어와서 무슨무슨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떤 운동을 결의하지 않았다면... 아~ 나의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그녀, 오~ 그녀를 붙잡을 용기가 조금만 더 있었다면...' 나의 인생이 정말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과거는 어둡게만 다가왔고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웠으며, 심지어 혹시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닌가하는 터무니없는 패배의식에 젖기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선배에게 이런저런 과거사를 들으며 떠오른 생각은, '와~ 나 정말 멋지고 재미있는 삶을 살아 왔구나~'였다.(기억력이 나쁜게 이런때 도움이 되긴한다. 무슨 얘기를 들어도 항상 새롭게 다가온다니깐^^) 물론 그때가 꼭 행복했었던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나의 과거는 그다지 어둡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또한 결코 잘못된 삶의 길을 걸어 온 것도 아니라는 거...(되려 고등학생때는 지금보다 몇배는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았었다... 겁이 없었으니깐)  선배의 말을 들으며 그걸 조금 깨닫게 되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내일을 살아갈 용기가 조금씩 생겨 났던 것이다... 그게 바로 어제 새벽에 있었던 일이다.

 

새벽동이 터오는 길다란 거리 사이로 선배의 차가 사라져 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렀게 보고 있자니 선배의 차가 멀어지는 만큼 왠지 방금전까지 활짝 열려있던 과거로 통하는 시간의 문이 서서히 닫히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가기 위해 뒤돌아 섰을 때는 완전히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듯 다시 가슴이 싸늘해지고... 나도 모르게 "그댄 왠지 달라요"를 흥얼거리며(가사를 잘 몰라 정말 흥얼거리기만 했다) 발걸음을 터벅터벅 집으로... 집으로... 향해야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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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날의 도원결의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한

20대 초반의 어느날

그저 운동을 해야한다는 당위가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현실 문제를

터무니없이 생략해 버리곤 했던 시절(적어도 나에게는)

 

우리는(? 공포의 외인구단^^ 혹은 7인의 사무라이 이었다고나 할까?)

때늦은 생일축하를 하기 위해

중국집 구석방에 모여 들었다.



우리 형편에는 좀 (많이) 과분했던

탕수육이 등장했고 짜장면이 있었고 짜장면의 오랜 친구 짬뽕도... 당연히 함께했다.

여기에 "빼갈"이 자리를 빛냈으니

그야말로 짱개 풀옵션이 완성된 셈....

 

그렇게 우리는...

청춘의 한복판에서

오랜만에 정말 넉넉한 기분으로 겨울 날의 하루를 떠나 보내고 있었다. .

흥청망청은 아니었고 ...

그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 

 

술자리가 무루 익어 갈 때쯤

 

한 동지가 이런 제안을 했다.

"한날 한시에 죽지는 못해도

죽는 날까지 단 한명의 이탈(당연히 운동이다)도 없이 끝까지 함께하자...."고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용은 대충이랬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한마디로 운동판 도원결의였던 셈...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 없고 지켜질 가능성이 희박할 뿐만 아니라,

성격상 대단히 패밀리적이었던 (그래서 간혹 우리는 우리와 조폭의 조직을 곧잘 비교하곤 했다) ...

또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무지하게 부담이 되었을 그런 제안을 

단 1분도 안돼서 흔쾌히 결의했던 것 같다. (하긴 뭐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단 일주일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이니까)

 

그리고 마침 담배연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

창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 때 눈 참 많이 왔는데...

마치 우리의 결의를 축복이라도 해주듯이...

아마도 그날의 일이 지금까지 기억나는 것에는

함박눈이 한몫 하는 것 같다. 잊혀지지 않고 참 오래도 기억이 난다.

 

그때 운동하고 처음으로

이 사람들과 제대로 한번 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뭐가 뭔지 알거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도 가물가물 했지만

왠지 가슴이 벅차올랐고 뭐든 해내고야 말겠다는 (좀 뜸금없는) 자신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물론 그런 자신감은 단 한달? 아니  일주일도 가지 못했지만...

(어쩌면 중국집을 나와서 눈싸움을 하는 사이에 다 잊어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젊었다...

젊다기 보다는 많이 어렸고, 어려서 뭣도 몰랐고, 뭣도 몰라서 무지하게 용감(?)했던 시절

 

그게 계절적으로 딱 요맘때였다... (음... 그 양반 생일이 언제였더라...)

 

그 모든 시절들이 꿈처럼 다가온다...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그 환한 웃음들이... 금방이라도 터져올 것 같은 기분...

 

물론 원조 도원결의가 지켜지지 못했듯이...

 

아류 도원결의도 지켜지지 못했다. 그런 결의를 지켜내기에는 우리가 너무 약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 가혹했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떠나갈 때... 힘들었다고 해야할까... 망연자실했다고 해야할까... 사람들을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고... 또 왠지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그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현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도 확 그만둘까..." 솔직하게 그런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결의가 높았다기 보다는 우유부단했고... 또 이제까지 투자해 온 미천이 아깝기도 했고... 얼렁뚱땅... 좌충우돌... 그렇게 운동의 생명줄을 쥐고 갔다...(그런데 어느날 자세히 보니 그 생명줄이 인계철선으로 둔갑해 있두만...) 

 

그래서...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저의가 뭐냐고...?

그냥 생각이 났다. 정말로...

날씨는 춥고 일은 하기 싫고... 집에도 가기 싫고...(또 아르바이트는 끊겨져 돈은 떨어져가고...이게 현재로써는 가장 가혹함) 이 우울하기만 한 현실 앞에서

부질없는 걸 알면서도...

그저 (운동적으로) 망인이 된 자들을 다시 호출하여 그날의 중국집에 불러모아 박장대소 치며 빼갈을 돌리고 싶은 심정일 뿐...

 

따라서 기분이 우울해졌고.... 따라서 집에 가기 전에 맥주나 하나 사가야지...

결론도출이 너무 의도적인가? ^^

 

그렇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빈자리들을 기억해낸 날이다.

뭘 처먹고들 사는지 잘 모르지만 잘 먹고 잘 사죠들... 이렇게 허공에다 대고 소리 한번 지르고 싶은 밤이다... (맥주 마시면서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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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밤

이렇게 눈이 내리면...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은...

 

이제 만날 사람 따위는 없지만...

 

그렇게 믿어버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이고 싶어진다...

 

 

첫눈이 오는 날...

 

꼭 한강에서 만나자던 약속...

 

그 유치하기만 했던 약속을...

 

정말 한번은 지키고 싶었는데...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또...

 

앞으로도 결코 지킬 수 없겠지...

 

 

다시 잘 생각해보니...

 

눈이 오면 바다에 가기로 했던 약속도 기억난다...

 

눈 덮인 해변에 누워...

 

눈발 날리는 바다를 보고 싶다는...

 

지금 생각하면...

 

(했다면) 오래 기억에 남았을 만한...(추워서...)

 

약속들...

 

 

이제 홀로 남아 아무도 나와 그런 약속을 해 오지 않았을 때...

 

예전에 했던 그 약속들이...

 

내가 어리석어...

 

한번도 지킬 수 없었던 그 약속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뒤로 가는 눈발과 함께 잠시만이라도...

 

아주 잠깐만이라도...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어리석었던 시절...

 

그 애틋했던 마음들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함박눈이 내리는 날...

 

나를 이끄는 건...

 

어리석었던 옛 생각과...

 

부질없는 미련 뿐이더라...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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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노을지는 한강을 본 적이 있는가

난 있다. 가끔...

 

한강의 남쪽에 살던 나는

한강의 북쪽에 위치한 학교를 가기 위해

거의 매일 제1 한강교를 건너가야 했다.

 




 

서울 살아서 좋다는 생각 해본적 몇번 없지만

그 한복판에 한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넉넉하게 한다.

 

하교길에

나를 태운 버스가 이미 붉게 달아오른 제1한강교를 지나갈때

저 멀리 63빌딩의 창들이 그날의 마지막 발광을 시작하고

출렁이는 한강은 시뻘걷게 젖어드는 햇살들을 가득 머금은 채

유유히 흘러갈 뿐이다.

그 사이로 mbc 저녁 뉴스에서 자주 본듯한...

 노을 사이을 가로지르는 지하철의 풍경...

캬~~~~

 

왜 사는지 잘 몰라도...

이 순간만큼은

잘 풀리지 않던 사랑도... 힘겹게만 느껴지는 투쟁도

잠시 접고...

저 노을들과 함께

세상 깊은 곳으로 젖어들고 싶어졌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과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터무니없이 교차하던 20대의 어느날...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 모든 것을 꼭 함께 하겠노라고

한강의 노을에 얼킨 나의 청춘과 그 모든 기억과 감성들을 꼭 들여주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는데...

 

막상

좋아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을 만나도

노을지는 한강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기억들이 너무나 아득해서

내 숨이 그만 꼴깍 넘어갈 지경이다...

 

허허허....

 

그래서 노을지는 한강의 기억은

언제까지나 나만의 것이 될 듯 싶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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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틀니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조그마한 컵안에 담긴 어머니의 틀니를 보았다.

 

왠지 틀니를 하시고 나서

괜시리 더 늙으신 것 같기도 하고

요즘들어 씹는게 시원찮으니 살 맛이 안난다는 말을 부쩍 많이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 한 구석이 따끔거렸던 기억이 났다.

 

행여...

20대의 절반 이상을 운동한답시고 

객지를 떠돌았고

집으로 돌아와 뒤늦게 군대를 다녀와서도

예전의 행각에 견주어도 손색을 없을 정도로

속만 썩히는 아들 때문은 아닌지...

 

틀니에 담겨 있을 지난날 어머니의 서운함과 아쉬움을

아마도 지금의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 외면해 왔었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으니...

기껏해야 이해하는 척일 뿐이겠지...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신다...

예전처럼 다그치지도 화를 내시지도 않고 꾸짖지도 않으신다.

그저 안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다... "결혼은 해야 하지 않겠니..."

 

내가 누구에게 상처주기를 사명으로 안고 태어난 사람도 아닌데...

나도 참 비틀어질대로 비틀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내 본의는 아니었다고...

(그렇게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부응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도

가슴 한구석이 자꾸만 싸늘해진다...

 

다만 고개를 숙이고

남 부끄럽지 않게 떳떳하게 살아가겠다는 말만

입안을 맴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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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20대 중반을 거치면서 나를 지배했던 것은

아마도 깊은 열등의식과 패배주의였던 것 같다.

 

뭘 해도 어색했고

어떻게 해도 욕을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깨질거라는 걸 알았다면

좀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속이 좁았고 또 부서질 용기도 없었던 거다.

 

누군가에게 평가받는다는 거...

그것도 좋은 평가가 아닐때...

거기에 실랄함까지 더해졌을 떄...(그리고 왠지 나의 진정성을 사람들이 오해한다고 느꼈을때 이때 부터 사람은 바보가 되기 시작하지)

 

그런 기분을 잘 알고 있다.

한 없이 땅 속으로 꺼져버리는 기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은 기분

주위가 돛대기 시장 같이 왁자지껄한데도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

 

그런 실랄한 비판들이 쏟아졌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더라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은 그저 말일 뿐이지

보기좋게  패배하는 것은 멋있게 승리하는 것보다 몇갑절 힘들더라...

 

오늘 몇몇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오래전  

몸도 마음도 덥수룩했던 시절의 내 모습

 

진정으로 책임지는 것이 뭔지 모르고

변화란 뼈를 깍는 고통과 함께 온다는 걸 입으로만 알았던

철부지 시절....

 

뭔가 책임져야 할 때(이 나이가 드니 뭐든지 책임감이더라)

그 처음과 끝을 잘 볼 수 있다면

실수해도 진 것이 아니고

쓰러져도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것

뭐 그런 유치한 생각이 드네... 허허허

 

이제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뭐~~~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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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꿈

 

청계천의 꿈

 

그건 말야

청계천이 꾸는 꿈이 아닐지도 몰라


내가 아는 청계천의 꿈이라기엔

그건 너무 끔찍하지 않겠어


30여년전 어느 독재자에 의해

청년들의 삶이 파헤쳐진 것처럼


오늘은

낡은 기억이 파헤쳐지고

노점상의 희미한 희망

밑바닥의 삶이 뿌리째 뽑히는


그 꿈은

도대체 누구의 꿈인지 몰라

우리의 기억조차 철거하는 그 꿈은


청계천의 꿈이 아닐지도 몰라

이 세상 누가 꾸는 꿈인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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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만남

1/ 정말 오랜만에 -- 10년이면 "정말"이라는 말이 들어갈만하지 --  고등학교 때 선배를 만났다.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할 얘기가 많을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저 잊혀진 흔적이나 줏어 먹어볼까... 쉽고 안일한 생각으로...

 

2/ 더이상 운동은 하지 않지만 정치적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는 형는 여전히 운동의 변두리를 기웃거리는 나를 위해 때늦은 해체주의와 디지털 혁명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잠깐씩 장단을 맞추어 줄 뿐... 그랬는데...

 

3/ 그런데 느닷없이 튀어나온 "장기전" 얘기는 나의 눈을 번쩍 뜨게 했다. 장기전이라는 말에 심오한 무언가를 얻어가려는 사람처럼... 나는 나대로 깊은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4/ 장기전이라 함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소소한 전투들이 전체적인 전선 속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함을 의미할 것이다. 한두판으로 끝나는 전투라면 거기에 온 힘을 쏟아붇고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투자하면 될텐데... 지금은 하나의 전투에 아무리 힘을 쏟아붇어도 작은 변화조차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장기전이다. 장기전 속에서 전선은 길고 넓으며 또 다양하다. 무엇이 본질적인 전선인지 불명확하고 개별적인 전투는 많은 경우 역량의 소진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그래서 장기전이다.

 

5/ 대중없는 운동이라는 게 의미가 있을까? 대중이 의미없다고 하는데 아무리 의미가 있다고 우겨도, 나만은 옳다고 외친대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중이 운동을 버린 것인가, 아니면 운동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것일까? 나는 언제나 독야청청한데 타락한 민중이 떠난 것인가? 민중을 읽지 못한 고지식한 내가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 선배왈 "민중은 항상 그자리에 있어... 어디로 도망가지 않았다구... 정치가들만이 어느날 우르르 몰려왔다가 철새처럼 떠나갔을 뿐"이라고...

 

6/ 대중이 등을 돌린 것을 단순히 방식의 문제로만 돌릴 수 있나? 근본적인 반성 없이?... 사상의 밑바닥을 다시 갈아엎는 본질적인 대공사를 전제하지 않고서... 사고방식과 사상의 기저를 다시 고찰해야 한다는 말... 이제까지 추구해온 것이 진리였다고... 누가 그런 걸 확신할 수 있나... 대중을 사로잡는 사상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그 또한 현실로부터 나오는 것 아닌가? 공자왈 맹자왈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없다는 것... 현실적인 것만을 추구하면 그건 분명히 점진주의와 개량주의로 빠지겠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사상은 공허한 공자왈 맹자왈 유아적 이상주의 아닌가...

 

7/ 대중 항상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활동가라면... 학자가 아닌 활동가라면 그는 언제나 대중 속에 있어야 할 것이다. 대중 속에서 같이 호흡하고 그들보다 단 반템포 먼저 움직이며 같이 가는 거라고... 적어도 5년전이었으면 난 그걸 NL식의 대중 추수주의로, 대기주의, 준비론자로 비판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원래부터 대중운동의 방식이며 우리 운동에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대중 속에서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아가지 않는 한, 우리 운동의 영역내로 대중을 끌어당기는 짧지 않은 시간의 투자가 없는 한... 당분간 계급운동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 그래서 나이 없은 내가 대중추수주의자가 된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운동 현실이 그것을 요구하는 것인지...

 

8/ 처음 사적 유물론을 접하며... 인간의 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였다는 말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는 선배... -- 사실은 나도 그랬다 -- 어떻게 인간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것이 어찌 인류 역사의 원동력이 될 수 있겠냐고... 정말 어렵게 사적 유물론을 받아 들이기 시작했을 때 생각이 변화하기 시작하고 고통스럽게 사람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변하는 거... 그게 쉬운 일인가... 뼈를 깍는 고통을 동반하지 않고서.. 지난 삶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을 동반하지 않은 변화는 다 거짓말이다. 정치적으로 백날 바꾼다고 해도 다음날 비리 저지르는 정치인이랑 다를 것이 없는 비겁한 삶이다.

 

9/ 그것이 운동의 요구라면 또는 혁명의 요구라면 개인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혁명가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인권과 요구와 다양성이 아니라 전체 운동에 자신을 종속시키고 운동의 변화에 자신의 변화를 맞추는 삶... 그런 삶이 말처럼 쉽나? 또 뼈를 깍아야 하는 것이다. 관상용 나무의 허리를 비틀듯이... 그것이 내 삶을 비틀어 놓더라도 내가 바꿔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안 바뀌고 대중을 핑게대고 개인주의와 다양성 들이대는 순간... 운동은 진정성을 잃은 한낱 얘들 장난처럼 변질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말야 나는 뼈를 깍는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이런 거 생각하면 갑자기 사람 비참해진다니까~~~

 

10/ 프로가 되자? 오늘 선배랑은 대략 이런 얘기를 나눴다. 10년만에 만나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여전히 어떻게 살 것인가가 고민이 된다. 하고 싶은 걸 하며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서 살면 좋겠지만 그게 언제적 레파토린가?  현실적인 고민이 치밀고 올라올 때마다... 너무 자주 이런 거 생각하다보니 세상이 어둡고 어지러워지네... 에이 참~~~ 빠뜨릴 뻔 했는데 팀웍도 중요하다... 사상이 같다고 운동 잘한다는 보장있나... 마음이 맞아야 한다... 팀웍도 스타일에만 한정하지 않는 장기적인 훈련 과정이다. 그렇게 이해해 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해서... 끌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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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의 기록

내가 원해서 간 여행은 아니었다.

피부병을 호소하는 누이의 애처러움...

보다는 엄니의 무시무시한 갈굼에 짓눌려...

투덜투덜 집을 나섯다.

 

목적지는?

 

"온양온천" v(^^)v

 

대문을 나서서부터 온천탕 문을 열어졌힐 때까지

딱 2시간 20분 걸렸으니...

뭐 그게 "동네 목욕탕 간 거지 여행간거냐"고

쏘아 붙여도 할말은 없다.

어쨌든 전철타고 기차타고 버스까지 타고... 탈 건 다 탄셈...

 

 



무엇보다 이번 여행의 뽀인뜨는 기차여행에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타보는 기차다...

거기다 오늘 날씨가 좀 좋았나...

 

밥 먹은지 30분도 안돼서 군것질이라고 면박을 주는

누나를 무시하고

계란과 사이다를 샀다. -- 이게 빠지면 기차여행이 안되지...

달리는 기차 안에서의 계란 한 입에 사이다 한 모금이면 만사형통이라는

옛 선현(?선배?)의 말씀이 되살아 오는 순간이었다.

 

뭐라 할까 이번 여행은 여행 자체보다

자꾸만 잊혀져 가는 것을 복원시켜주는 느낌이 들었다.

동네 목욕탕 만한 온천에 가서 때만 벗기고 온게 아니라는 말이다.

 

온양은 작고 아담한 역 만큼이나 아기자기한 구석이 있었다.

휴일이라 북적거리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단아한 느낌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온양은 나에게는 낯설지도 않고 또 느낌이 나쁘지 않다.

사진이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잘 찍지 못하니 그것도 있으나 마나

 

굳이 온천탕 얘기는 하지 않겠다.

누나에게는 미안하지만 -- 왜냐하면 오늘 경비의 90%를 댔으므로--

솔직히 기존 목욕탕 물에 유황냄새" 빼고는 당채 뭐가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게르마늄 체험실에, 원적외선 마사지, 쑥탕, 약탕을 비롯해 갖가지 사우나실을 겸비한

동네 찜질방이 더 낫겠두만... 한마디로

별로 였다는 말이다.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피곤하다는 누나를 꼬득여

맥주를 한잔 했다.

처음에는  새마을호의 꽃(?)인 카페식 라운지에서 대범하게 한잔 쏘는 것이 어떻겠냐고

강력하게 권유해 보기도 했지만 ...

뭐 객실에서 나누는 캔맥주와 커피나도 나쁘지는 않았지...

 

남아서 잘 살지도 못할거면서...

떠날 수없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인양

맨날 엉거주춤 서 있었다.

 

떠나고 싶을 때 과감히 떠나고

더 크게 되서 돌아오면 될 것을 ...

사는게 이렇게 소심하고 우중충했던 거다....

 

그것을 놓치면 세상만사가 끝장날 것처럼

죽어라 한 가지만 붙들고 살아온 것이다. 그게 썩은 가진지 생 가진지도 잘 모르면서...

 

하여 이런 아둔함과 근시한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다음 여행은

 

수안보 온천이나 다녀올까 생각중이다.ㅋㅋㅋ

왜 자꾸 온천이냐고 -- 별로 좋지 않아도 목욕이라도 하면 손해는 안될것 같다는 얄팍한 속셈~^____^ 끌끌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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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미의 금연일기 160일차 (부제 : 푸하하하~~~)

그렇다. 담배 끊은지 160일 됐다.

금연일기는 5일간 쓰고 포기했지만 담배는 오래 끊고 있는 셈이다.

"끊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난 아직도 내가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고 믿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금연은 진행형이다.(이런 어처구니 없는 꼬랑지 땜에 언제가 피를 볼지 몰라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그렇게 쉽게 믿어 버리기에는 너무 오랜시간 담배를 피워왔기 때문일터...

여전히 담배피는 모습에서

뭔가 애틋한 향수같은 것을 찾아내고자 한다든가...

아주 가끔 금연한 사실이 아깝게 느껴질 때도

 

처음에는 담배의 폐해같은 걸 써볼까  생각했는데...

그게 나에게는 심리적 위안이 될지는 몰라도

타인에게는 금욕주의자의 자기 과시처럼 보일까봐 그만두기로 했다...

 

진심으로 담배가 싫어졌다고 느낄 때...

미련없이...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새인생을 시작할 수 있기를...

이 세상의 모든 흡연자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것만은 확실한데

담배 끊으면 ...

 

정말 새 인생이 시작된다... 진짜루 v(^______________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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