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그룹미팅

여기 비젠당어 아저씨 그룹은 랩이 실제로 잘 운영되는 곳만 해도 일곱개나 되는 대학연구소 치고는 매우 큰 곳이죠. 그룹 멤버의 숫자는 저도 헤아려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대략 40 명이 넘는듯. 이 큰 그룹이 소그룹별로 모여서 그룹미팅을 가끔씩 합니다. 두달에 한 번 정도. 뭐 아시다시피 그동안 무슨 일 했냐 결과가 어떠냐 이런 얘기들을 주로 합니다. 얼마전에도 그룹미팅이 있어서 우리 UHV AFM group 이 모였죠. 일본 포닥은 최근에 peapod 을 AFM 으로 봐서 뭐 재미난 결과를 얻었다고 하는것 같고 (아마 한 방 터뜨린 모양입니다.) 이번에 졸업하는 학생은 이미 얻은 한 방 데이터를 더 잘 프리젠트 하려고 movie 를 만든 모양입니다. 이거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꾸밀까 뭐 이런거 얘기하더군요. 다들 한방씩 한 친구들... 목소리에 힘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 포닥으로 온건 물론 UHV 에서 magnetic film 성장시키고 그 특성을 AFM 으로 분석하는걸 좀 해보려고 온거죠. 결과 내기 그리 좋은건 분명히 아닙니다. 근데 그런 리스크를 알면서도 온 것은 전에 제가 약 4년전 여기에서 guest student 로 머물때 뽑았던 데이터들중 몇가지가 아직 논문으로 완성되지 않았고 여기서 일하면 좀 더 그 데이터들을 분석하는데 시간을 투여할 수 있을것 같고 그래서 논문을 쉽게 쓸 거 같아서 오게 된거죠. 교수가 절 뽑은 이유도 일정부분은 그런 것이었겠죠. 그래서 논문쓰는 것과 분석은 어찌되어가냐고 묻더군요. 근데 사실 최근에 논문쓰는거 재미도 없고 분석해봐야 재밌는 결과도 없고 해서 걍 박사과정 학생이랑 새로운 실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논문은 들여다 보지도 않았죠. 근데 박사과정 학생이 최근의 실험결과는 이미 다 말해서 제가 그거에 대해 할 말은 없더군요. 걍 "박사과정 학생이랑 실험하느라 바빠서 논문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했더니 실망한 듯한 당어 아저씨... 거기에 덧붙여서 "뭐 분석좀 해보려고 노력해봤는데 결론 내리기도 어려울것 같고 걍 좋은 논문지에 내는건 포기하고 논문 내는거에 목적을 두고 써야겠습니다." 이랬더니 더 실망한 듯한 당어 아저씨. 마치 누구에게 한방을 맞은듯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있더군요. 난 사실대로 이야기 했기에 뭐 별 부담 없었습니다. 근데 이게 좀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는지 우리 그룹의 새끼 보스 알렉스가 뭐 어쩌구 저쩌구 해서 분석이 어렵고 우리가 실험 셋팅을 바꿔서 더 실험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결론을 명확히 내리기 위한 실험도 어려우며 기타등등 기타등등 이유를 붙이며 설명하더군요.  좀 무마된듯한 상황에서 대충 7월말에 있는 스위스 학회 전까지는 논문을 쓰겠습니다 라고 했죠. 그룹미팅이 끝난 후 전 별 생각 없이 랩에 와서 있는데 새끼 보스 알렉스가 오더니 앞으로는 당어아저씨 앞에서 "No progress" 를 말하지 말라고 하네요. 당어 아저씨는 그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사실 제가 no progress 를 말했을때 당어 아저씨의 그 비습맞은 듯한 표정... 알겠다고 했죠.

근데 사실 No progress 를 서슴없이 말했던건 어찌보면 알렉스(새끼 보스)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 게스트 학생으로 있을때 그룹미팅하는데 커피잔들고 약간 늦게 들어와서는 교수가 진행상황 말해보라니까 크리스마스 휴가 끝난지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진행상태를 얘기하냐고 시간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했다며 되려 당어교수 면박을 주던 사람이 바로 알렉스니까요. 전 그때 너무 놀랐죠. 아 독일 교수들은 자기 아래 포닥이 막 이렇게 쏘아붙여도 다 받아주다니 정말 젠틀하구나. 너무 멋있었습니다. 알렉스도 당어 교수도. 계속 되는 그룹미팅에서 당어교수가 학생하나 받으려는데 어떤주제로 받을까를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아주 일반적인 주제로 학생을 받자고 제안하니까 알렉스가 그런식으로 하니까 학생이 한명도 안오는 거라고 쏘아붙이며 구체적인 플랜이 없이는 학생들이 뭘 믿고 연구를 하러 오겠냐고 보다 구체적인 주제를 잡아야 한다고 막 얘기하더군요.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가서는 독일 교수들 정말 젠틀하고 포닥들이 할 말 다 하더라. 이런식으로 얘기하며 다녔죠.

근데 시방 독일에 포닥으로 와보니 알렉스는 자신의 과거를 잊은듯 이상한 반응...

그때의 알렉스와 지금의 저의 차이라면 알렉스는 정규직 포닥 (대학으로부터 돈 받음) 이고 저는 비정규직 포닥 (당어아저씨가 제 밥줄) 이라는 점이죠. 그 차이가 꽤 크네요. 알렉스도 그당시에 정규직된지 얼마안되서 정규직 믿고 세상물정 모르고 당어 아저씨에게 맞짱떴나보네요. 그리고 차차 타협의 중요성을 알아간듯... 이제는 당어아저씨와 꽤 조화로워 보이는군요.

뭐 여하튼 이건 뭐랄까 4년전 알렉스 흉내내다가 저만 피본꼴이죠. 근데 알렉스는 제게 와서 "당어아저씨 앞에서 no progress 를 말하지 말라" 라고 말하네요. 쩝...

이건 마치 김유정 소설 봄봄인지 뭔지 (제목 기억 잘 안남)에서 점순이가 시켜서 장인 팼더니 점순이가 나중에 와서 "아니 이놈이 우리 아부지 때리네"하고 구박하는거랑 똑같은 상황.

아 고달픈 독일 생활~~~ ㅎ ㅎ 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