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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1/23
    게임 중독
    ...-2
  2. 2007/01/23
    휴식
    ...-2
  3. 2007/01/23
    데이터 얻던 그날
    ...-2
  4. 2007/01/23
    당어 아저씨도 드디어 네이쳐 내다.
    ...-2

게임 중독

뭐 중독인건 맞는듯 하다. 일끝나고 한두판. 그리고 금요일은 밤새고 한다. 집에가면 경준이가 자꾸 방해해서 학교에서 밤새고 한다. 그리고 대략 새벽 네다섯시에 집에 간다. 수영이는 화내다 못해 이젠 거의 포기상태다. 말도 안한다.

 

영화 식스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상당기간동안 부인과 말도 안하고 지낸다. 물론 나중에 알게되지만 자신은 유령이었던 것이다.

 

나도 유령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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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지금 쓰는 장비는 Alexander Schwarz 라는 친구가 상당부분 디자인했다. 물론 제작은 Marcus Liebmann 이란 친구가 대부분 했지만...

Alexander 는 이 프로젝트를 맞고 스키타다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몇달 입원했다고 한다. 그동안 진공 설계랑 저온 설계에 관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게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고 얘기하더라. 뭐 당어 아저씨네가 진공이나 저온 설계에 대해서는 노하우가 많아서 그런거 안읽고도 내려온 전통에 맞춰서 설계를 할 수 있지만 어쨌든 그때 책을 읽은게 큰 도움이 됐나보다. 

 

그러니까 적당히 쉬어야 한다는 말이다. 때론 약간 긴 시간동안 말이다.

 

수영이랑 나는 이제 여행에 관심없다. 우리의 여행 목적지는 이제 딱 하나 남았다. 아니 셋 남았다고 해야할지도. 우린 아무곳에도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배낭여행 같이 도시 구경하는 여행하는 사람들 보면 왜 고생하나 싶다.  다 사람사는 동네일뿐이다. 그래서 그냥 쉴 수 있는곳이 좋다. 말디브 같은. 그래서 우리의 여행 목적지 일순위는 언제나 말디브다. 뭐 푸켓이나 이런곳도 괜찮다. 걍 아무것도 안하는 곳 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영이가 눈의 여왕 드라마를 봤으니까 라플란드 정도... 물론 갈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머지 하나는 죽기전에 티벳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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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얻던 그날

중요한 날은 반드시 기록해 둬야지. 그러니까 여기서 데이터 뽑던 날 말이다. 작년 10월정도니까 이미 많이 지났다. 그래도 대충 기억난다. 10월 말이던가 11월 초던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재유럽 한인 과학자들의 컨퍼런스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 재독 과협에 적을 두고 있기때문에 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고 참가비, 숙박비, 비행기비를 대준다길래 얼씨구나 하고 참가 신청을 했다. 경준이 포함해서 가족 모두 가게 되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 파리여행이 아닐까 싶다. 왜냐면 파리는 다시는 가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하튼 데이터는 파리 출발하기 바로 전날 얻었다. 그런데 그 대략 삼일전쯤 내가 비자 연장을 안했다는 사실과 또 여권도 연장해야 다시 독일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함부르크에 영사업무 보는 곳이 없으니까 베를린까지 가야했다. 그래서 파리가기 이틀전에 베를린에 기차타고 갔다. 수영이가 경준이 보기 지겨워하는것 같아서 경준이도 데려갔다. 35세 아빠와 두살 아이의 베를린 여행... 지금 생각해보면 수영이 없이 하는 이런 여행은 경준이와 내 인생을 통틀어 첨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보통은 수영이도 같이 다니니까 말이다. 전에 상훈이가 한번 쭉 훑어준 코스를 다시한번 돌아봤다. 그러니까 베를린의 동독지역 말이다. 그때는 상훈이를 그냥 졸졸 쫓아다녀서 별 감흥도 없고 기억나는것도 없었는데 경준이랑 단 둘이 다니니 감회가 새로왔다. 훔볼트 대학부터 알렉산더 광장까지 쭉 걸었다. 맑스 엥겔스 동상도 보고... 경준이는 트람타는 재미에 꽤 즐거워 했던듯... 그리고 늦게 집에 도착했고 그 다음날 아침은 비자 연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자 연장을 끝내고 학교에 한 11시쯤 가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때 데이터... 그 담날은 새벽비행기 타고 파리로 출발했다. 정말 대략 삼일동안 한 일년어치의 일들을 끼워넣었던 느낌이다.

 

그래서 데이터 안나오는 요즘엔 가끔 이런 착각에 빠진다.

여행 한번 또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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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어 아저씨도 드디어 네이쳐 내다.

내가 진행중인 프로젝트는 사실 대략 10년 또는 그 이상 된거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액티브하게 일하기 시작한것도 대략 1998 년 정도 부터이니까... 결국 진짜 데이터는 작년 4월정도인가에 Uwe 라는 박사과정 학생이 NiO 표면에서 Antiferromagnetic ordering 을 AFM 으로 직접 확인함을 통해서 얻어졌다. 그리고 바로 논문을 써서 네이쳐에 냈는데 지난주 금요일에 억셉트됐다는 연락이 왔다. 오늘은 파티중. 물론 내 이름은 없다. 아쉽게도. 사실 뭐 별로 한 일이 없으니 이름 실어달라고 할 수도 없지... 한국 연구원 같으면 걍 실어줄텐데 여긴 그런 분위기 아니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게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Uwe 를 보면... 난 제작년 8월 (2005.8) 에 여기와서 일을 시작했다. AFM 그룹은 그때까지도 조금씩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긴 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그러니까 1998 년 부터 2006년 4월까지 8년간 아무런 데이터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Uwe 역시 왜 Exchange coupling 이 안보이는가에 대해 대략 설명함을 통해 졸업논문을 마무리 지으려는 생각인듯 싶었다. 그래서 새로 만들어진 프로젝트는 아무도 결과를 얻지 못했던 NiO 시료를 포기하고 이미 당어네서 STM 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Mn/W(110) 라든가 Fe/W(001) 의 금속 시료를 보자는 쪽이었다. 내가 하게된 일도 이것이었다. AFM 으로는 NiO 같은 부도체를 보는것이 더 임팩트가 큰 일임에는 틀림없다. 즉 약간 임팩트가 줄지만 일단 되나 확인해보자는게 주목적이었던 셈이다. Uwe 가 대충 실험을 정리해갈 단계에서 그러나 매우 신기하게도 갑자기 데이터를 얻었다. 그리고 며칠 후 또 더 나은 데이터를 얻어서 그럭저럭 reproducible 하게 얻어짐을 확인했다. 내가 하게된 일은 이제 뭐 큰 의미는 없어졌다. 이미 된다는게 확인됐으니까... 난 기술이나 배워가자는 생각으로 어쨌든 계속 일을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인가에 Fe/W(001) 시료에서의 Antiferromagnetic Ordering 데이터를 얻었다. 그러니까 세계 두번째로 Exchange coupling 을 AFM 으로 측정한것이다. 데이터를 얻을 당시 너무 기뻤다. 근데 지금은 뭐 그냥 덤덤. 지루한 인생이 계속될 뿐이다. 이제는 크게 임팩트 있는 일도 아닌 셈이고...

한번 얻은것이 우연이었는지 그담부터는 잘 안되더라. 뭐 일렉트로닉스 바꾼다느니 장비 수리하느니 등등의 일들때문에 시스템을 다시 안정적으로 돌리지 못한탓도 있고 내가 좀 방황하는 것도 있고...

 

사실 이정도 했으면 한국에 돌아가도 누가 대접좀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싶은데 한국에서는 뭐 냉담한것 같다. 이거야 돈 안되는 거니까 누가 알아주겠는가?  어쨌든 난 박사도 운좋게 땄고 데이터도 운좋게 얻었으니 이만하면 운좋은 인생을 사는것 같아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함부르크의 칙칙한 날씨 탓인가. 난 현실세계가 적응이 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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