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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폭풍이 지난 뒤에... - 구속당한 후부터 검찰청을 향하여

 구속을 당하면서 전 수원중부서 유치장 3번방(맞나?)에 있었습니다. 그때 맘 같아선 하기가 싫었던 기자회견까지 하며 불구속을 해서 남은 사간을 어떻게든 보내려고 하였는데 이제 갇혀지게 되어서 허탈했지요.

 

 그리면서 제 손에 아무 것도 없이 매일 쉼 없이 형광등이 밝혀진 부채꼴 시설에서 있게 되었지요. 뭐~ 다른 이들에게는 국가권력으로부터 빨리 탈출을 하려고 하겠지만, 저로선 어차피 수감을 각오하는 마음이라서 빠른 시일에 구치소로 넘어가기를 바랬지요. 그럼에도 구속영장이 금요일에 발부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주말을 유치장에서 보내게 되었지요.

 

 



 음... 먼저 유치장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말할께요. 일단 수원중부서가 비교적 최근에 지은 시설이어서 그다지 불쾌한 건 아니지만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였는지 - 특히 화장실! - 꽤째째함이 보였고, 그 당시가 여름 한 철이었음에도 에어컨이 항시 틀어져 있어서 쾌적함이 있었지만 한번 역시나 청소 안한 듯한 필터는... ( 물론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관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자기들 건강까지라도 위해서라면 좀 청소하시죠.)

 

 그리고 역시나 양(?)이나 질에서 불만이 많은 급식과 나이가 적다고 하대하는 경찰관 태도는 문제가 많았지요. 그래도 제가 존대말을 하라고 하여서 뭐라고는 하지 않지만... '편안하게 대하려고 그랬다.'는 어떤 경찰관의 말에서 좀 씁쓸함이 들었어요. 그 후에도 모 교도소로 살면서 느낀 것처럼 말이지요.

 

 앞서 제가 구속전 까지 부모님에게 이러한 짓거리를 할꺼라는 걸 말하지는 않았다고 하였죠. 역시나 어머니에게로 연락이 갔었고 이후에 면회를 하려 왔었습니다.

 

 아~ 아크릴판과 철창살 사이로 어머니를 보니 참 할말이 없더라고요. 시살 농담이 셖어 있는 표현이지만 '난 두 번 쓰러졌으니 한 번 쓰러지게 하면 다신 못 일어난다'고 이따금 말한지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믿지 않는 저으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지요.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20여년간의 저의 삶에서 묵묵히 이끌어오신 분 중에 하나이어서 여려가지로 미안함이 많기에 차마 마주보기가... 그랬어요.

 

 그래도 다행히 어머니는 살아있는 아니 울다 지친 상태에서 저 보려 왔었는데 그 때 저의 해명을 전달되었지만 그 당시 기억이지만 '니 마음대로 하라'라는 식의 답을 듣었지요. 제가 고집이 세기도 하여서 그당시에는 포기를 한 듯 싶었는데 이후에 '그 종교 좀 포기하라'라는 말을 듣었지요.

 

 왜냐하면 어디선가 듣으신 것 같지만 아직까지엔 '병역거부자 = 여호와의 증인' 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사회에 있다보니, 예전에 교회에 광적(?)으로 다니는 걸 보아선지 몰라도 하번엔 이런 말을 하시는 걸 득었지만 그 때에는 제가 기결수이어서 '엎지러진 물' 이라는 것이지요.

 

 그래도 의외로 잘 계시는 걸 보니 다행이었지만, 지금도 이런 저의 흔적 때문에 미안해집니다.

 

 또한 제가 유치장에서 있으면서 한가지 일꺼리를 해치우게 되었어요. 바로 '내가 왜 병역거부를 하는가' 라는 것이었어요.

 

 이 글을 보시면서 혹시 '무슨 소리이냐?' 아니면 '병역거부를 하면 자기의 양심(신념)에 대하여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물어 보시겠지요. 내~ 그러한 물음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말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사실 병역거부를 2년여 준비를 하면서 정작 '왜?'라는 물음에 답할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으로선 형사처벌을 피할 수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고, 이에 각오할 자신은 있었지요.(솔직히 그 때에도 각오의 정도는 좀 작았죠.)

 

 그럼에도 구속 전까지 아무리 고심을 겨처도 '왜?'라는 화두에 답하지 못하였던 내가 딱 유치장에 있다보니 그동안 뒤죽박죽하던 제 머리 속이 정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이냐고요?

 

 일단 일반인에게는 '유치장'이라는 공간이 어수선하고 정리가 안되는 곳이다고 봅니다. 그래서 구속이 될까라는 조바심 때문에 마음이 어수선하지요. 그런데 저 같이 구금을 각오하고 쇠팔찌를 채워 당하니 아~ 제 맘이 싹 정리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더구더나 구속을 하면서 읽을 꺼리나 금품이라도 준비를 해야 했었는데 미처 가져오지 못하다보니, 먹고 자고 잠시 면회하고 TV를 보는 이외에는 생각을 할 시간이 많게 되었고 결국 '왜?'라는 물음에 어느 정도 답을 할 수가 있게 되었어요.

 

 무엇이냐고 하면 졸렬하지만 ' 평화에 대한 실천을 고민하고 국가에 대한 명령에 불복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러한 물음을 하실 것이예요. 당신 평화주의자이냐고... 그러면 전 단언하게 아니다고 말할 것입니다. 솔직히 '평화주의' 라는 철학이 저에게 맞지 않는 것이 있고 아직까지 부담감이 들기도 해요.

 

 그럼에도 전 그 누구나 어떠한 시류에 휩쓸지 않는 자유로운 하나의 개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었고, '병역의 의무'라는 것이 국가가 개인에 대한 강제명령이기에 최소한의 선택권으로서 요구하는 의미에서 결정을 하였다고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행동이 폭력에 저항하는 하나의 평화로운 실천이기에 최소한 - 아니 큰 - 원칙 즉, 어떠한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게 물질적이나 구조적으로 폭력을 가하지는 않겠다는 건 분명히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것 만큼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지요.

 

 또한 잡스럽지만 수면을 취하기 전에 인원점검을 하는데 번호를 잘 못 부른다고 '군대 안갔으니...'등의 어떤 의경의 말이 좀 그랬고, 컴퓨터에 부착한 스피커에서 '비'의 노래가 계속 맴돌게 들려주니 짜증이 난다는 또 다른 분의 말이 기억이 나네요.

 

 여하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남기고 주말을 지나 드디어 8월 2일. 제가 그토록 원하던(?) 입소(?)를 하는 - 구치소로 가는 - 의미으로 포승줄이 둘려지고 수갑은 제 손목에 차여진 채 검찰청으로 가는 차에 몸을 맏기게 되면서 유치장과는 안녕을 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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