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변증법적 논리학과 자연과학」 『총명한 유물론』 제2집 가을호
„Die dialektische Logik und die Naturwissenschaft“,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8 (5), 1960: 299-309.
B. M. Kedrov | 구 소련 유물론 철학자·논리학자
L✬ R
논리학은 진리로 이어지는 사유의 법칙에 관한 과학이다. 하지만 진리 자체는 다르게 이해된다: 형식 논리는 그것을 완성된, 고립된 지식으로 간주한다. 그것의 주된 초점은 지식의 구조를 명료화하는 것, 즉 ‘해부학적 분해(anatomisdie Zergliederung)’에 있다.
그에 반해 유물 변증법의 구성 요소인 변증법적 논리는 진리를 역사적으로 발생·발전하는 지식의 과정으로 간주하며, 이 지식은 일관되게 발전의 특정 단계를 거친다.
과정으로 이해된 진리는 다음을 전제한다: 첫째, 연구 대상 자체의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 그것은 그 변화성으로 인해 불변의 범주들 속에 반영될 수 없다; 둘째, 이 대상에 대한 우리 지식의 끊임없이 변화─심화·확장하는─한다; 이는 과학이 운용하는 모든 개념의 변화성─“유전(Fließen)”─속에서 그 표현을 발견한다.
이에 따라, 형식 논리학은 고정된 지식의 논리학으로 정의될 수 있는 데 반해, 변증법적 논리학은 전진하는 지식(entwikkelnden Wissens)의 논리학으로 정의될 수 있는데, 이 지식의 발전은 외부 세계─자연과 사회─의 발전을 반영한다.
형식 논리학은 그 특성에 따라 사유의 다양한 형태와 방법을 조율 원칙(Prinzip der Koordinierung)에 따라 병치하지만; 이를 전진하는 지식의 논리적 발전 단계로 취급하지 않는다. 변증법적 논리학은 엥겔스에 의해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그는 과학적 인식이 자연법칙의 발견으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행로를 보여주었다. 이 행로는 개별 요소의 확인으로부터, 그것들의 특수한 본성에 따른 분류화(Gruppierung)를 거쳐, 이를 뒷받침하는 일반 법칙을 규명하는 것으로 전진한다.
따라서 개별(E), 특수(B), 보편(A) 판단은 과학적 사유의 발전 과정을 논리적으로 일반화한 표현, 즉 개별로부터 특수를 거쳐 보편으로 ‘상승’하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E-B-A─동시에 과학적 발견과 과학기술 발명의 논리가 이 운동 속에서 드러내는데, 이는 우리가 순전히 형식 논리학의 절차법에만 천착한 때에 우리의 주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 이는 오직 과학적 창조의 논리학과 방법론을 표현하는 변증법의 도움이 있어야만 논리적으로 탐구될 수 있다.
논리적 연쇄 E-B-A는 인식 과정이 사유의 우연적 편차(zufälligen Abweichungen), 불가피한 나선 운동(unvermeidlichen Zick-Zadi-Bewegungen), 그리고 사유의 앞지름(Vorauseilen des Denkens)에서 벗어나, 그것이 추상적이고 ‘순수한’ 형태로 표상될 때 그것의 내적 필연성을 표현한다.
물론 실제 과학적 사유의 발전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하게 일어난다; 이는 살아있는 인간 사고의 실제 운동의 모든 미묘함과 뉘앙스를 반영하지 못하는 E-B-A 도식의 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발전의 개별적인 역사적 단계에서는 하나의 범주에서 그와는 다른 범주로 또는 하나의 판단 형태에서 그와는 다른 판단 형태로의 운동에서 다른 순서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반이론이나 지침이 되는 이념의 형태로서 보편(A)은 구체적인 조사를 새로운 개별 현상(E)과 그 특수한 속성(B)들의 발견으로 이끌 수 있고, 그에 따라 보편은 개별 및 특수에의 조사에 앞설 수 있다. 이때, 법칙의 발견을 향한 사유의 운동을 동반하는 귀납적 이행은 그것과는 반대되는 연역적 이행과 결합할 수 있다. 후자는 임박했거나 이미 발견된 법칙에 따라 성립된다.
예를 들어, 멘델레예프는 주기율표(A)에 기초하여, 이미 알려진 족(B)에 새로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들(E)이 존재한다고 예측했다; 더 나아가, 그는 어떤 특수한 방법들(분광법)의 도움으로 그가 예측한 원소의 일부(예: 에카-알루미늄, 후에 갈륨으로 불림)가 발견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모든 경우는 A-B-E 도식으로 정리된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비활성 기체들─헬륨과 아르곤, 즉 (E)─이 발견된 후, 램지는 주기율표(A)에 근거하여 이러한 기체들의 전체 족(B)의 존재를 예측했다, 이는 공식 E-A-B로 표현될 수 있다.
사고의 이러한 발전 또한 가능하다─보편 관념(A)의 발생 이후에 처음에는 단지 이 관념을 확증하는 개별 현상(E)들만이 발견되고,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 현상은 그것의 특수한 특징들에 기초하여 하나의 특수한 종류(B)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원소 변환의 관념은 처음에는 특정한 원소(라듐)의 붕괴를 예로 들어 확증되었고, 그다음에 주기율표의 끝에 위치하고 소위 ‘자연’ 방사능을 가지는 가장 무거운 원소들의 전체 계열을 통해 확증되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사고의 발전은 공식 A-E-B로 표현될 수 있다.
이것이 공허한 도식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논리적 반영이자 일반화라는 점은 돌턴의 연구를 예로 들어 해명될 수 있다. 화학사에서 돌턴이 화학적 원자 이론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창안했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 그는 먼저 두 가지 원소가 서로 다른 비율로 결합된 개별 물질(E)의 화학적 조성을 탐구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그러한 물질의 재료를 이용하여 원소들이 정수로 나누어 떨어지는 비율로 결합한다는 특수한 규칙(B)을 경험적으로 발견했다; 그는 보편적인 원자 이론적 개념(A)들의 도움으로 이 규칙에 이론적 설명을 부여했다. 따라서 화학적 원자 이론의 창안사는 공식 E-B-A로 표현된다.
하지만 현실은 실제로 완전히 달랐다: 돌턴은 먼저(1803) 보편적인 원자 이론적 관념(A)으로부터 특수한 결론(B), 즉 원소들이 정수로 나누어지는 비율들로 반드시 결합해야 함을 도출했고, 그다음(1804) 이 가설을 개별 물질(E)─메탄·에틸렌에서 실험적으로 검증했다.
돌턴보다 훨씬 앞선 시기, 로모노소프(1741)는 동일한 인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대에는 아직 발전된 정량적 분석 기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이론적 연구를 화학량론적 규칙들(stöchiometrischer Regeln)의 실험적 발견으로까지 이끌 수 없었다. 따라서 돌턴과 로모노소프의 과학적 사고의 구체적 발전 과정은 공식 A-B-E로 표현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그 최종 형태, 그 추상적, 논리적으로 ‘정제된’ 형태에 있어서는 공식 E-B-A로 표현되는 논리적 사유 발전에 일치하더라도 말이다. 이 두 번째 공식은 화학자들의 의식 속에서 원자 가설의 확증 공식이며, 이는 (첫 번째 공식에 대응하는) 그것의 정립·공식화의 역순으로 진행된다.
이와 같이 변증법적 논리학은 이론과 실천 사이, 그리고 과학적 사고의 다양한 형태들과 단계들 사이에서의 그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형성되는 복잡한 상호 연관을 규명하고 추적한다. 이론은 단순히 실천의 결과에 따른 일반화·요약·설명으로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실험 연구를 위한 방향을 지시하는 나침반이기도 하며, 이 경우 실천에 앞선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사유의 다른 절차와 범주들, 특히 분석적 및 종합적 연구 방법들의 관계, 그리고 그것과 관련한 본질과 현상 범주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 * *
현상과 본질은 형식적으로는 현실에서 서로 외적으로 대립하는, 그리고 반대되는 측면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변증법적 논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는 과학적 인식의 다양한 단계이며, 탐구 대상으로 사물 및 자연 과정의 심층에 대한 인간 사유의 운동이다. 현실은 우리 앞에 거의 무한한 일련의 실체성(Wesenheiten)들의 형태로 펼쳐지는데, 이는 물질의 심연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같으며, 덜 깊은 존재로부터 점점 더 깊은 존재로의 연속적인 이행들을 표현한다. 각 단계는 이때 특수한 현상들의 형태로서 그 고유한 표현들을 지닌다.
이에 따라, 일반적 인식 과정을 그 역사적 전망 속에서 상대적으로 완성되고 상호 이행하는 일련의 원들 또는 순환들의 논리적 계열의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현상들로부터 그 본질의 규명(말하자면 1차적인)으로, 그다음 더 복잡한 현상들로,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로부터 더 나아가 그 본질의 규명(2차적인)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는 결코 끝이 없다. 물질과 그 불연속적이고 원자적인 구조에 관한 연구의 역사가 그 예로 될 수 있다. 19세기 동안 자연과학은 물리 현상(주로 분자적 현상)에 대한 지식을 물질의 1차 본질, 즉 분자 운동에 대한 이론적 개념을 사용하여 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방향으로 심화시켰다. 동시에 이 화학적 현상들의 연구로부터 2차 본질로, 즉 원자들의 상호작용에 관한 개념들의 도움을 통해 이 현상들[물리 현상]을 해명하는 것으로 심화되었다. 분자가 원자로부터 형성되었으므로, 두 질서의 본질에 관한 이해가 동시에 상승하였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원자 이론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물질의 복잡한 불연속성, 즉 무기적 자연의 다양한 현상들의 단계적 본질에 상응하는 그 불연속적 구조의 단계적 구성을 인식했다.
더 높은 기초 위에서 그 다음 물질의 내부─화학 원소들 자체의 본질, 즉 3차 본질로의 추가적 침투가 주기율(1869)의 발견과 더 나아가 엑스선·방사능·전자(1895-7) 등의 발견을 통해 시작되었다.
원자 껍질에서 전자의 운동은 많은 아원자 물리 현상들 및 주기율 자체의 본질임이 입증(3차 본질로서)되었으며, 그 특수한 운동 법칙들은 양자역학의 창안 이후에 비로소 발견되었다(1924-8).
동시에 인류는 더욱 깊은 본질, 즉 핵 운동과 원자 내 전환 속에서 나타나는 핵물리 현상들의 본질로의 침투를 시작했다. 오늘날, ‘기본’ 입자 내부로 침투하는 최초의 연구들과 관련하여, 그 내부 구조의 해명, 즉 물리 현상들의 점점 더 깊은 본질의 규명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변증법적 논리 자체의 본질은 바로 해당 범주를 인식의 단계들로 취급하고 과학적 인식의 발전 과정에서 그것들 출현의 보편적 법칙성을 밝혀내는 데 있다. 현상으로부터 본질을 향한 인식의 일반적 경과는 과학 탐구의 다양한 절차들, 특히 분석·종합의 교대(Ablösung)와 상호작용이 결부되어 있다.
분석과 종합은 형식적으로는 서로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고 외적으로 상호 대립하는 두 가지 연구 절차로 이야기될 수 있다; 전체를 부분으로 분해하는 것(분석)과 부분을 통해 전체를 재구축하는 것(종합)─이는 ‘구조적(strukturellen)’ 관점에서 두 절차의 특성을 놓는다. 하지만 역사적- 또는 변증법적 관점에서 볼 때, 두 절차는 논리적으로 상호 교대하는 자연 인식의 특정 단계들의 반영으로서 고려된다. 그 일반적 단계는 아래와 같다:
1. 인식의 대상을 차이화되지 않은 전체로─그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관조─보는 본래의 혼란스러운 표상;
2. 분석;
3. 종합, 이는 탐구 대상 본래의 전체성을 정신적으로 복원함을 의미한다. 이 계기, 이 주어진 인식의 순환은 상대적으로(!) 완결된 것이며 이로부터 다음 순환이 시작되는데, 이 순환은 동일한 기본 단계(직접적 관조·분석·종합) 등을 거친다.
이 고찰 방식은 전 자연과학사 및 이와 관련된 유물론 철학의 시대 구분만이 아니라, 개별 과학·개별 학설·이론들과 개념들의 역사(예를 들어, 에너지에 관한 학설, 물질에 관한 학설 등)에 관한 이해를 위한 방법론적 기초를 제공한다. 물질에의 전체적인 화학·물리 연구는 세 가지 범주의 틀에서 진행돼 왔다: 성질(Eigenschaft)·조성(Zusammensetzung)·구조(Struktur). 이것들은 현상 탐구와 그 본질로의 침투에서 점차적으로 더 깊은 질서가 드러나는 각 단계 물질 인식의 순서를 표현한다. 성질은 내재적 전체성과 구조적 부분(strukturellen Teile)의 상호 연관(그것의 정신적 ‘재복원’) 속에서의 물질에 관한 이론적 표상에서 그 조성─물질 분석의 결과, 그 구조─인데, 이는 주로 주어진 물질에의 직접적 알아차림(Umittelbaren Bekanntschaft)의 첫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그 귀결로, 물질의 성질들을 관찰하는 것(실험실 밖에서든, 실험실에서든)으로부터 그 조성의 발견을 거쳐 그 구조를 규명하는 것으로의 이행은 직접적 관조로부터 분석을 거쳐 선행 분석에 기초하는, 종합으로의 인식의 일반적 운동에 해당한다.
인식의 발전 과정에서, 선행 단계가 경험적 연구 및 관찰의 형태로 통과되었다면, 그 결과를 그 주제[물질 인식]에 관한 다음의 보다 높은 단계와 연결시킴으로써 그것의 이론적 해석을 얻게 되는, 특별한 종류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가능하다(그리고 실제로도 관찰된다).
화학 물질에 관한 전 학설은 고대로부터 19세기 마지막 3분기의 시작까지 앞서 언급된 틀 안에서 움직였다: 처음에는 물질 연구가 단지 그 성질들(E)에 국한되었는데, 이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네 가지 원소 및 그 후 연금술사들의 세 가지 원소에 관한 학설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미 연금술사들조차 물질의 성질들을 그들이 가정한 조성과 연결시키고자 노력했는데, 그들은 이 속성들에 실체적인 특성을 부여하였다. 이를 통해 ‘성질-조성’이라는 문제(물질의 조성으로부터 출발한 속성들의 설명)가 생겨났다. 이는 화학 발전의 그 분석적 단계에 도달했을 때에만 해결될 수 있었고, 실제로 해결되었다: 산화 이론은 경험적 발견(1774)에 기반하여 출현하였는데, 이 이론은 산성의 성질과 산화된 물질의 조성에 산소의 존재를 연계하였다.
물질의 화학적 조성의 경험적 규칙들이 발견되자, 이에 관한 이론적 해명은 화학적 원자 이론(1803)으로써 달성되었다.
이로써 ‘조성-구조’(물질의 구조에 근거한 조성과 그 규칙에 대한 설명)라는 문제가 출현하였다. 화학이 (이론적 및 실험적) 종합 단계로 이행한 것은 바로 이 순간에서 비롯되었다. 곧이어 이성질(異性質) 현상(동일한 경험적 조성에서 성질들의 차이)이 발견되는데, 그 원인은 물질 분자들의 화학적 구조의 차이에 기초한다. 이로부터 ‘구조-성질’ 문제(물질의 상이한 구조를 통한 상이한 성질들의 설명)가 출현한다; 어떠한 의미에서, 이 문제를 통해 과학의 발전 순환이 완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물질의 화학적 구조 이론(1861)에서 그 해결점을 찾는다.
우리는 개별 물질의 성질 속에서 무엇보다도 개별적 계기(E)가 표현된다는 것을 주목하는데, 왜냐하면 바로 성질들 속에서 각각의 물질의 개별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직 성질들의 비교만이 그들 사이의 유사점들과 차이들, 즉 특수성(B)의 규명으로 더 나아가는데, 그것의 도움을 통해 상응하는 성질들을 지닌 물질들이 특수한 부류들로 묶어질 수 있다. 성질들의 더 나아간 비교 연구는 일반적인 본질적 성질들(A)의 규명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주어진 발전 순환 내의 물질 인식의 관찰된 단계에서, 원자들로 형성된 분자들의 조성과 구조가 규명되었다. 따라서 여기에 분자-원자 관계가 놓여있다.
인식은 더 깊은 진리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도 그 보편적 추이에서 비슷한 경로를 따랐는데, 그것은 인식이 화학 원소들(원자)의 내부로 침투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때까지는 원자량·원자가·동형성·원자 크기 등 그것들의 개별적 성질들이 연구되어 왔다. 원소의 본질로의 침투는 모든 원소의 성질을 하나의 단위로 집약한 주기율(1869)의 발견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원자의 조성은 당대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 사이, 이러한 물리화학적 성질들은 예를 들어 이온의 전하수 같은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후에 그것은 원자의 특수한 구성 요소인 전자를 기반으로 해명되었다.
‘조성-구조’ 문제는 이 경우 원자핵의 발견(1911)과 관련하여 출현하였고, 전자들과 핵─원자의 조성─이 태양계의 행성들과 중심부 원자핵에 유사하게 분포한다는 원자의 행성 구조(Planetenstruktur des Atoms)라는 관념 속에서 그 표현을 찾았다. 최초의 행성 원자 모델은 보어(1913)에 의해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원자 모형의 더 나아간 정교화는 그것의 광학적 성질과 원소 성질의 핵전하에 대한 주기성(periodischen Abhängigkeit)과의 연계(1921)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여기에서도 과학 발전은 궁극적으로 그 근간 추이들에 있어 동일한 순환을 통과했다.
이러한 인식 단계에서 원자핵과 전자 껍질로 이루어진 원자의 조성과 구조가 밝혀졌다.
과학의 이러한 순환적 경로는 나중의 원자핵의 탐구에서도 일반적 추이로서 이루어졌다:
처음에 그 성질들이 규명되었다─전하(원자 번호), 질량(질량수), 방사능의 관계(안정성 또는 붕괴 경향 및 그 정도)가 그것이다. 이 성질은 원자핵의 조성, 그들 안에 특정량의 핵자들, 즉 양성자와 중성자의 존재를 기초로 하여 해명되었다(1932). 예를 들어, 핵전하는 핵의 조성에 특정량의 양성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로 설명되지만, 질량수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총량으로 설명된다.
원자핵의 조성에 알파 입자의 존재와 알파 붕괴 시 그것이 방출되는 양, 원소의 질량수와 원자 번호에서 드러났던 경험적 규칙들과 법칙성들은 원자핵이 주로 알파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관념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핵 이성질체의 발견(1935)은 핵 내부 구조, 즉 핵 내부 핵자들 사이 연관의 특수한 분포라는 관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이 현상을 해명하는 과제를 제기했다. 더욱더 날카롭게 이 문제는 핵반응 일반에 관한 연구, 그리고 특히 인공 방사능(1934) 및 핵분열(1939) 연구를 통해 제기되었다.
‘마법의’ 숫자를 원자핵의 성질들로 식별되면서, 원자핵의 층상 배열 관념이 탄생하였다. 이 분야의 발전 순환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는데, 핵자로부터 원자핵의 구축이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본’ 입자들의 문제는 더욱더 미해결 상태에 있다. 입자들의 성질들(전하·질량·스핀 등)과 입자들의 상호 변환 가능성은 이미 연구되어 왔다. 하지만 입자의 조성은 알려져 있지 않다. 어쩌면 일반적인 의미의 ‘조성’조차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거하였을 때] 입자들은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 채로도 서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이는 ‘조성’이라는 개념의 적용에 한정성이 있음을 표현하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성’을 특수한 영역의 존재로서 상상할 수 있는데, 그 각 영역에서는 오직 다른 입자의 특정 종류의 생성 또는 그것들로의 변환만이 일어난다. 이 경우, ‘조성’은 주어진 ‘기본’ 입자, 예컨대 핵자 또는 전자 내에서 그러한 영역의 상호 배열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전자의 무진성(無盡性)과 그 내부 물질의 무한성에 대한 레닌의 명제를 확증한다.
‘기본’ 입자 내부로의 인식 운동(Die Bewegung der Erkenntnis ins Innere)은 그것의 이전 원자들 내부로의 운동과 유사한 것으로 상상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화학 원소 내부로의 운동과 유사한데, 즉 이 운동을 통해 먼저 성질들 자체 사이의 합법칙적 연관이 규명된다는 것이다(멘델레예프에 의해 주기율을 발견되었던 방식에 유사하게). 더욱더 복잡하고 발전된 형태의 물질의 조성·구조에 상응하는 이러한 입장들의 제 측면이 뒤따라 밝혀진다. 이 선상에 하이젠베르크는 모든 ‘기본’ 입자들을 연결하는 ‘물질의 기본방정식(Grundgleichung der Materie)’을 찾으려는 시도들(1957)1이 놓인다. 물질과 그 물리적 본질로 침투하는 이 단계에서, 인류는 아직 이 입자들과 그것들 제 결합의 성질에 관한 연구를 넘어 넘어서지 않았다.
양적 측면에서, 물질에 관해 더 깊이 파고드는 그 과정은, 우리가 주어진 물질 형태의 연구에서 얻는 점점 더 작은 공간적 외연(外延)에 도달하는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분자·원자는 약 10-8cm 또는 그 이상의 크기일 것이다; 원자핵과 ‘기본’ 입자는 약 10-13cm, 즉 약 10만 분의 1이나 더 작다. 근래 물리학자들은 이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약 10-14cm의 크기에 도달하였다. 현재 약 10-15, 10-16cm, 심지어 10-17cm 크기의 ‘기본’ 입자 내부에 특정한 물리적 관계가 존재할 가능성에 관한 가설들이 제출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현재로서는 매우 대담한 주장이다.
위 내용의 귀결은 아래와 같다:
1. 주어진 단계의 표현으로서 물질로의 침투가 더 깊을수록, 그것은 더 늦게 도달되며, 상응하는 인식의 순환의 상대적 완결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이는 인식의 새로운 발전 순환이 선행 순환이 완결되기 전에 시작된다는 사실을 통해 해명된다. 조성과 특히 구조의 발견은 보다 복잡한 대상에 있어 그 구성 요소와 구조적 요소, 즉 그 안에 포함된 더 단순한 대상의 성질들에 관한 연구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전제한다.
2. 물질 연구의 모든 단계는 하나의 동일한 보편적 경향을 보여준다─성질로부터 조성을 거쳐 구조로, 그리고 구조로부터 다시 성질로, 하지만 이제는 직접적으로 지각 가능하지 않은 성질들로 나아가는 것이다.
3. 우리는 관찰된 지침과 관계의 도움을 통해 이미 통과한 과학적 인식의 길을 요약하고 일반화할 뿐만 아니라, 주어진 연구 분야에서 과학적 사고 발전의 보편적 특성과 방향을 예견할 수 있다: 비록 최근까지(그리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기본’ 입자에 있어 그 내부 구조의 존재 가능성이 의심받았고, 입자들 자체가 물질적 점(materielle Punkte)으로 제시되었다지만 물질 연구의 개별 단계 과정이 보편적이고 결과적으로 합법칙적 성격을 지녔다면, 이로부터 구조 문제가 원자핵에 관한 이해의 상승(die Atomkerne herangereift ist)을 넘어, 곧 ‘기본’ 입자들에 관한 의제에도 오를 것이다.
4. 하나의 단계로부터 다른 단계로의 인식의 운동은 말하자면, 모든 선행 단계가 이후의 모든 지식, 즉 모든 현대과학의 기초가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비유를 사용하자면: 과학적 인식의 발전은 집이 건축되는 방식(한 층씩)과 동일하게 이루어지지만, 기차가 달리는 방식(한 역이 다른 역을 따라가 선행 역을 완전히 대체하는)과 같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5. 위에 설명된 유물론적 변증 논리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이 강조했듯이 헤겔의 그것과는 직접적으로 반대된다: 헤겔에게서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절대 이념의 논리학이 이야기되는데, 그것은 모든 현실의 데미우르고스(창조자)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인식 발전의 논리는 단지 물질적 세계─자연과 사회의 발전 논리의 반영일 뿐이다.
* * *
이 다소 순진한 물음을 제기해 보자: 인간 지성은 물질의 핵심(Innere der Materie)으로의 길에서 또 어떠한 길을 통과해야 하는가?─그렇다면 우리는 레닌의 말을 빌려 무한성이라 답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인식이 현상으로부터 본질로 그리고 본질로부터 더 깊은 본질로, 나아가 점점 더 깊은 본질로의 운동 주기가 다섯 혹은 열이 아니라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로써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의 무한한 길 위에서 인류가 도달할 공간적 외연은 무한히 작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선행 발전 순환이 항상 반복될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엥겔스가 즐겨 말했듯, ‘악(惡)’무한일 것이다. 아니, 각각의 전진은 질적으로 다를 것이며, 이는 어떠한 새로운, 지금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물질의 종류 및 그 운동 형태와 연계될 것이고, 그때 이 개념들, 예를 들어 물질의 ‘조성’ 또는 ‘구조’ 개념은 질적으로, 그리고 원리적으로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현상으로부터 본질로, 더 나아가 점점 더 깊은 본질로의 운동 과정은 무한하며 앞으로도 무한할 것이다. 바로 이 과정이 레닌의 지침들 속에서 특징지어지는데, 즉 전자는 원자와 마찬가지로 무한하며, 물질은 그 깊이가 무한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종종 양자역학이 인과성 원리를 제한하며, 양자역학적 현상들이 부분적으로만 결정되어 있다는 것 또는 심지어 완전히 비인과적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거시 물체의 고전 물리학 영역을 뛰어넘어, 양자역학이 연구하는 미시 과정들의 질적으로 새로운 영역으로 침투하면서 비로소 첫걸음을 내디딘 바로 그 시점에 일어나고 있다.2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질적으로 다르며 더 복잡한─그리고 만약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더 심층적인 물질 형태로의 이행과 함께 불가피하게 그에 상응하는 더 복잡한, 질적으로 상이한 인과관계 형태, 달리 말하면─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결정론에 반드시 부딪힐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염두에 두어, 변화하는 결정론의 유형에 관해 합리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 알려졌던 결정론의 유형이 한정적이며 보편적이지 않은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해서 패닉에 빠질 필요가 없다. 이것이 앞으로도 무한히 이루어질 것임을 고려함으로써 인류는 구체적인 인과성·법칙성·결정론 유형들에 대한 개념들의 이러한 교체에 불가피하게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자연과학자들이 지금부터 이러한 전망을 갖춘다면 훨씬 더 현명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질로의 첫걸음에 내디딘 후, 이 첫걸음을 거쳐 결정론의 원리가 파괴되었음을, 즉 우리가 비결정적(indeterminierten) 또는 반결정적(halbdeterminierten) 현상 영역에 들어섰음을 선언하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이미 오늘 결정론을 파괴하고 모든 미시 세계적 현상들을 비결정론으로 뒤바꾼다면, 어떻게 하여 내일이나 모레에 한 결정론이 그와 다른 유형의 결정론으로 대체될 수 있겠는가? 이미 한 번 비슷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다: 수세기에 거쳐 학자들은 물질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자가 물질의 최종적인 입자임을, 그리고 그 때문에 그것의 경계 너머에서 발견될 수 있는 모든 것은 비물질적으로 출현해야 할 것이라고 믿어왔다. 원자가 분할 가능하며, 그것(그 껍질)이 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원자가 결코 최종적인 입자가 아님이 증명되었을 때, 전자들은 처음에 비물질적인 것으로서 선언되었다. 그리하여 이는 당시에는 이리 얘기되었다: “물질은 소멸하였다”, “물질은 전기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물질은 당연히 물질로 남아있다; 인류는 단지 그것의 불연속적 입자(원자)의 한 유형에 관한 인식으로부터 또다른,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유형(전자)의 발견에 도달했을 뿐이다.
바로 여기에도 동일한 관계가 성립한다: 이는, 결정론은 여전히 결정론이며 문제는 순전히 인류가 그것의 한 유형(거시 과정들의 기계적 결정론)의 인식으로부터 새로운, 과거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유형(미시 과정들의 양자역학적 결정론)의 발견에 도달했음일 따름이다.
변증법적 논리는 바로 이 물음에 해답을 주는데, 왜냐하면 그것은─그리고 나는 이를 다시 한번 반복한다─인식 발전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논리는 운동적으로 무한한 진보에 관한 인식의 일반 법칙들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상응하는 논리적 장치도 정교하게 다듬는다.
변증법적 논리와 관련된 아직까지의 수다한 물음은 현대 자연과학과 그 역사에 대해 매우 원칙적인 의의─인식론적 및 방법론적─를 지닌다. 나는 그중 단지 일부만 열거하고자 한다:
1. 자연과학적 제 개념의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특징의 발견을 통한 그 내용을 규명하는 문제(형식적 정의와 대비되어 과학적 정의라고 부르는 것); 특별한 유형의 정의들: 상관관계를 통한, 대립을 통한, 법칙을 통한 정의 등이 여기서 큰 의의를 지닌다;
2. 자연과학적 제 개념의 범위 규명, 그리고 이 논리적 작업[변증 논리]을 바탕으로 그를 분류하는 것과 이에 더해 오늘날 자연과학의 분류도 그에 포함하는 문제; 한 분할항(Einteilungsglied)으로부터 다른 분할항으로의 이행 영역(die Gebiete des Übergangs), 더 나아가 그것들의 상호 침투 영역을 고려하고 논구하는 것을 금지하는 형식적 분류화(formalen Klassifizierungen)와 대조적으로, 변증법적 논리는 바로 이 지식 영역에 초점을 둔다.
3. 발전하는 지식의 외연과 내용 사이 관계의 문제; 이 관계 연관(Verhältnisbeziehung)은 인식의 역사가 보여주듯 직접적인 것으로 증명된다. 이는 과학적 인식이 폭(즉 그것의 외연에 따라)과 깊이(즉 그것의 내용에 따라)로 동시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그렇다;
4. 과학적 인식의 실제 역사의 논리적으로 표준화하고 그 단계 중 일부를 반영한 것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제 범주의 문제(예를 들어, 질·양·척도 및 다른 범주의 연쇄); 이 관련 속에서 개별 자연과학과 전체로서의 자연과학의 범주 체계에 관한 물음이 출현한다;
5.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것으로의, 그리고 특히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의 인식 운동(‘상승’의 방법) 및 이와 관련하여 모든 과학의 발생학적·구조적 이해에서 그 출발점이 무엇인지에 관한 물음;
6. 특히 중요한 것은 모든 절충주의·모든 대립의 화해[와 그에 관한 학설]을 압도하는(überwindet) 변증법적 모순의 논리로서의 마르크스주의 변증 논리학에 관한 물음.
변증법적 논리는 예를 들어 과정의 대칭성 문제(Problem der Symmetrie der Prozesse)와 같은, 새롭고 예외적이며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문제와 물음의 논리적 분석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패리티 [비보존의] 원리(Paritätsprinzip)를 직접적으로 다룬 중국계 학자 양(Jang)3과 리(Li)4의 연구; 시간적 대칭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 일부 소련 과학자의 연구; 그리고 클라우지우스 시대 이후 해결되지 않았던 엔트로피 증가라는 오래된 문제는 모두 세계 과정의 대칭성(der Symmetrie der Weltprozesse)이라는 보편 문제를 제기하며, 논리적·개념적 측면에서의 분석을 요한다. 이 문제가 변증법 이론 자체와 관련이 있음을 논해야 한다. 우리의 철학자들은 지금까지의 발전 이론과 이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법칙의 학설을 정교하게 다듬으면서, 주로 그리고 때로는 심지어 배타적으로 오직 발전의 상승(aufsteigenden) 가지에만 주의를 기울였고 다른, 어느 정도까지는 대칭적이지만 그와는 [표면상] 조응하지 않는 하강(absteigenden) 가지에 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유물 변증법의 구성 요소로서 변증법적 논리를 정교화함으로써 우리는 현대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철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 사이의 창조적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끝>
번역: 한동백 | 집행위원
2025년 11월 13일
- 여기서는 ‘기본’ 입자에 관한 일종의 주기적 시스템를 정교하게 다듬고자 하는, 이 글 저자의 시도(1946) 또한 여기서 지적되어야만 한다.

- 〔역자 주〕 오늘날 우리는 거시세계에 관한 양자 스퀴징을 여러 실험적 검증을 통해 밝혀내고 있듯, 불확정성 원리는 단지 미시세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물론 이는 결정론을 반박하지 않는다. 미시세계 인과율과 거시세계 인과율의 동일성에 관해서는 R. A. Aronov, “Toward a Logic of the Microworld”, Soviet Studies in Philosophy, 9 (3), 1970: 212-7.을 참조하라.

- 〔역자 주〕 중국계 미국인 물리학자 양전닝(楊振寧, 1922-2025). 패리티 변환이 약한 상호작용에서는 위배됨을 입증하였는데, 이 연구는 리정다오와 함께 수행되었다. 이 공로로 그는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 〔역자 주〕 중국계 미국인 물리학자 리정다오(李政道, 1926-2024). 양전닝의 동료로, 그와 함께 패리티 변환이 약한 상호작용에서는 위배됨을 입증한 공로로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