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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V. A. Vaziulin의 학설을 중심으로
한동백 | 집행위원
사회과학 연구의 시작 지점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설정되는 대상, 즉 사회적 관계는 항상 특수한 역사적 형태를 띠는 사회적 관계로서 실재한다. 모든 개별적인 사회적 관계는 그것의 본질인, 생산의 역사적인 교류 형태, 즉 역사적 생산관계의 규정을 받으면서, 그 자체 모순에 따라 그것을 더더욱 규정적인 것으로서 확립하여 나간다. 따라서 사회과학 연구에서 실제적인 역사적 발전 과정을 탐구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로 된다. 만약 이러한 과정이 부재한 속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대상으로서 사회적 실재의 구체적인 운동 방식을 규명한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엥겔스는 역사적인 방법과 논리적인 방법의 통일에 관해 다루면서 “순수한 사유에서 출발(ging vom reinen Denken aus)”1하는 헤겔 변증법의 사변적 특성을 비판하는 동시에 헤겔이 “최초로 역사에서 발전을, 내적 연관을 입증”2하고자 하였던 그의 학문적 노력을 조명한다. 이어서 그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나타나는 방법으로 시야를 옮기면서, “마르크스는 헤겔 논리학으로부터 이 영역에서 헤겔이 진정으로 발견한 것들을 포괄하는 핵심을 추출”3하였음을 언급하였다. 추상적인 수준에서의 주관적 변증법과 구체적인 역사적 실재 사이에서 끊임없는 상호 연관, 침투, 진동이 마르크스의 경제학적 저술 전반을 메우고 있다.
역사적인 것은 두 가지 측면의 통일이다: 하나는 어떠한 자연적/사회적 실재 규정이 시작하는 곳 자체에서 그것의 현재적 발전 수준까지의 운동 및 연관이라는 측면이다. 역사적-사회적 실재의 존재 방식이 지니는 이러한 기초 덕분에 특수한 관계 체계에 관한 이론적 분석과 종합은 항상 그 체계가 시작한 곳에서, 즉 그것의 역사가 발생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엥겔스에 따르면 이 형태에 기초한 방법은 “실제 발전이 추적되므로 확실히 더욱 명료하다는 장점은 가지겠지만, 실제로는 기껏해야 더욱이 통속적인 것(populärer)으로 될 것”4이다. 다른 하나는 일정한 발전 단계 내에서 부단히 자기 재생산하는 체계 내 상대적인 〈시작〉과 〈끝〉의 변증법적 순환 과정이라는 측면이다. 이 측면을 연구의 기초로까지 확장한 작업에서는 학문적 실천을 통해 전개되어 나가는 개별적 사회과학의 제 범주가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임을 판별하는 것이 중요해지는데, 왜냐하면 여기서 〈시작〉이란 실제 역사에서 특정한 범주의 발생 자체가 문제로 설정되는, 그러한 단순한 범위를 뛰어넘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러 나라에서의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는 연구의 대상에 해당되는 관계 체계에 불필요한, 동시에 필연적이지 않은 관계가 생성되고 발견될 수도 있다. 실제 역사적 탐구에서 이러한 요소는 충분히 발견되며, 분명 역사적 실재의 한 측면을 이룬다. 이러한 관계항이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해당되는 관계 체계를 논리적으로 재생산할 때 이러한 것은 고려되지 않는다. 역사가는 이러한 관계항의 직접적인 순서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모두 기록하고 그 기록이, 추가되는 역사적 사실과 관련되었을 때의 타당성 여부에 관해 학문적으로 계속 검토해야만 하지만, 그 외 개별적 사회과학자는 그 개별 영역에서 설정된 대상의 재생산 체계에서 합법칙적이며, 필연적인 사실만을 다룬다. 이러한 실재는 발생한 역사적 관계가 충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러서야 형성된다.
사회과학 전반에서 역사적인 것에 관한 이러한 취급은 연구의 대상을 단순 추상하는 것과는 확실히 구분되어야 한다. 역사적-사회적 실재는 그것의 발생과 발전에서 분명 역사적인 것의 첫 번째 측면에 속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이내 그것이 자체적인 필연적 법칙성에 의해 자기 재생산 체계로 전변하면서, 이 실재는 첫 번째 측면에서 역사적인 것이라는 규정이 지녔던 범주 체계와 상이한 범주 체계를 구성해 낸다. 이렇게 확립되어 나가는 두 번째 범주 체계는 분명히 특수한 역사적 형태의 발생 자체를 자기 계기로 갖는 더욱 복잡한 체계이며, 또 그것은 일정 국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역사적-사회적 실재의 이러한 운동 양상은, 우리가 이 실재의 구체성을 획득하고자 할 때면 이제 우리가 그 변화한 범주 체계를 고려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이 과정에서 배제되는 범주는 이제 우연적이고 비본질적인 영역에 속하는 범주로 밀쳐진다. 그렇게 하여 두 번째 측면에서의 역사적인 것은 사회과학의 제 범주의 발생·발전에 있어 결정적이며,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핵심 고리로 되는 것이다.
I
세계에 대한 객관적 변증법의 견지 속에서 모든 실재적인 것은 불가피하게 그 존재 방식에서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과학적 사회주의에서 이러한 관점은 역사적 유물론의 정수─『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실재와 역사적인 것을 그 내용에 있어 사실상 동일선상에 놓고 다루고 있음을 통해 보증된다. 반대로 여러 사회주의 문헌에서 논리적인 것은 빈번히 주관적 총체성을 구성하는 관념적 성격의 범주를 가리킨다.
과학적 사회주의 제 문헌을 통해 우리는 역사적 유물론이, 철학의 근본문제를 규정짓는 것, 즉 물질과 관념 간 대립과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의 관계가 서로 대응을 이루는 것으로서 다루어지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에 관해 바츌린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이라는 문제는 대체로 사고와 그것에 의해 재생산되고 묘사되는 현실 간 관계라는 문제로 제기된다. 즉 여기에서 논리적인 것은 사고로서, 역사적인 것은 사고에 의해 묘사되는 현실로서 이해된다. 이와 같이 접근하면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이라는 문제는 사고와 물질 간 관계에 관한 철학의 근본문제와 구별되지 않는다.”5
바츌린의 언급 그대로, 우리는 특수한 과학적 방법론의 기반으로서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의 관계를 실제적 토대 속에서 살펴보았을 때 그것이 실제 역사의 객관적 범주─경제학적으로는 생산과 소비, 교환, 분배 등의 객관적 토대로서 개별 실재들─와 그것의 반영인 주관 논리적 범주 간 관계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과학 분야에서 연구 대상으로 되는 실재는 부단히 변화·발전하면서 자기와 자기의 계기를 내재적으로 통일해 나가며, 이를 통해 자기의 관계와 연결된 계기로써 자기의 구체성을 확장하고 드러낸다. 실재와 역사성은 이 도정에서 동일화된다. 그 다음 우리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전유하여 이론을 정립해 나간다.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저마다의 주관적 총체성이 필연적으로 물질적 매개를 이룬 채, 즉 매개된 것으로서만 존재한다면, 개별적인 주관적 총체성 역시 구체적으로 실재이다. 이러한 이해 속에서 논리적인 것은, 역사적인 것의 범위 내에 속하는 것으로서만 존재한다. 사유가 역사성을 띤다는 관점은 이미 엥겔스가 1893년 7월 14일, 메링에게 보낸 서한에서 분명히 드러낸 바 있다.6 이러한 구도 속에서 두 규정 간 관계는, 철학의 근본문제에서 물질과 관념 중 어떠한 것이 선차적인가 하는 것과 구분되지 않는다.
II
그러나 우리가 이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의 관계를 과학적 방법을 구체화한다는 측면에서 다룬다면,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이 철학의 근본문제에서 물질과 관념 간 관계와 대응된다는 말은 불충분한 것이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1850년대 말 자신의 경제학 연구에서, 그 연구 방법과 연관하여,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이 지니는 확장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사유가 구체적 실재를 어떻게 정신적인 것으로서 점취할 수 있는가를 자신 연구 방법 기반의 핵심적인 것으로 설정하였다. 예컨대 우리가 논리적인 방식으로써 실재와 동일성을 이루는 정신적인 것─그 자체로 논리적으로 범주화된 것─을 얻게 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하여 우리가 실재의 구체성을 얻어 현실의 운동 법칙을 통해 과학적 예측의 힘을 지니게 된다면, 실재적인 것은 분명히 논리적인 것을 자기 실존의 계기로 지녀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사유 노력은 본래의 구체적-실재적인 것에 쓸데없는 표상을 더하여 그것의 운동 법칙에 관해 완전히 오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 할 것이다.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을 존재와 사유의 일치, 그리고 과학적 방법의 연계 문제와 관련시킬 때 우리는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이 실제로 그것의 철학의 근본문제에의 대응 수준보다 더욱 구체적인 영역을 점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바츌린은 이제 더욱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각각의 더욱 구체적인 내용에 접근해 나간다:
“사고의 일정한 발전 과정을 묘사하는 것, 나아가 그 단계들, 특히 이 과정의 발전된 성숙한 단계(ferner um seine Stadien, vor allem solcher großer Stadien, wie des entwickelten)와 그 미발전된 미숙한 단계 그리고 생성 단계 등과 같은 커다란 단계들이 중요한 경우에 그것은 특수한 문제로 나타난다.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이라는 문제는 일반적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일정한 발전 과정의 그 논리적 표현 형태에 대한 관계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철학의 근본문제와는 다른 것인데, 왜냐하면 모든 운동이 발전은 아니기 때문이다. 발전이란 일반적으로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 낮은 것으로부터 높은 것으로의 상승단계와 복잡한 것으로부터 단순한 것, 높은 것으로부터 낮은 것으로의 하강단계에서 생겨나는 특수한 운동형태이다. 더구나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이라는 특수한 문제는 항상 일정한 발전 과정과 관련되는 것이다. 『자본론』에서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과 그것의 사고에서의 반영에 관한 문제이다.”7
사고의 발전 과정을 탐구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상대적인 시작 지점, 즉 생성 단계가 있으며, 또 그것이 자체 추동력에 의해 발전을 거듭하면서 미숙한 단계를 거쳐 성숙한 단계에 이르게 됨을 알 수 있다. 사고의 이러한 발전 과정은 우리의 사고의 외부에 실존하는 사태로서 운동하는 객관적 양상의 반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에 관해 다룬다면 이미 그것은 철학의 근본문제를 뛰어넘는 영역에 속하게 될 것이다.
III
바츌린은 경제학에 관한 마르크스의 방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문헌에 접근한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 대한 논평」에서 엥겔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에 관한 한에서─부르주아 정치경제학 비판의 두 가지 방법(논리적 방법과 역사적 방법) 중에서 마르크스에게는 논리적 방법이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것이었음을 보이는 데 있었다. 엥겔스가 언급하였던 것처럼, 정치경제학의 역사는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 없이는 기술될 수 없는 것이지만, “모든 준비 작업에 결여되어 있었기에 작업은 무한정한 것이 될 것이다.”8 그러므로 역사적 방법을 통해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을 강력하고 자세하게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는데, 왜냐하면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에 관한 적절한 연구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엥겔스가 논리적인 취급방식이 “실제로는 역사적인 취급방식에 다름아닌 것”이라는 점의 증명을 강조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즉 그는 논리적 방법과 역사적 방법의 통일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역사가 시작되는 곳에서 그와 더불어 사고 과정도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의 진전은 추상적이며 이론적으로 연속된 형태로써 역사적 진행을 반영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것은 수정된 반영, 그러나 현실의 역사적 진행 그 자체를 이끌어가는 법칙에 따라 수정된 반영이며, 따라서 발전점의 각 계기가 그 충분히 성숙된 전형으로서 고찰될 수 있는 것이다.”9 엥겔스는 역사적인 연구 및 서술 방식과 논리적인 연구 및 서술 방식 간 차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역사적인 것은 역사적 형태와 교란적인 사건, 역사의 비약과 지그재그 운동을 고려하는 것에 의해 논리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된다. 이와 반대로 논리적인 것은 역사적 과정을 수정된 형태로 반영하며(이 경우 수정은 이러한 과정의 법칙에 상응한다), 과정의 각 계기가 충분히 성숙된 것으로 파악됨으로써 역사적인 것과 구별된다.”10
바츌린에 따르면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 관한 엥겔스의 논평은 그가 당시에 형성되어 있었던 마르크스의 경제학 체계 수준에서 논리적인 방법이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것”임을 보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 지점에서 바츌린의 설명은 역사적인 것의 두 측면 중 하나, 즉 연구 대상으로 되는 역사적 실재─아직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의 실제 역사─를 반영하는 사유 규정은 논리적인 방법을 구성하지 못하며, 반대로 그다음의 측면, 즉 발전을 이루어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자기 재생산하는 체계를 반영하는 사유 규정이 논리적인 방법을 구성하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기반한다.
그런데 가장 초보적인 과학적 실천과 경험에서도 우리는 역사적인 것의 두 형태에 관한 각각의 반영 형식을 다시 (방법으로서 고찰되는 것으로서의)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으로 나누는 바츌린의 견해가 무색하게, 논리적인 체계를 구성할 정도의 엄밀성이 있는 논리적인 것이 아닌, 즉 아직은 명료하게 분화되지 않은 논리적 사유 일반로서의 논리적인 것이 실재함을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역사적인 것의 두 형태와 관련시킬 때 우리는, 논리적인 것은 단순히 두 번째 측면에서 역사적인 것에서만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 한 단계에서의 그것, 즉 자기 재생산 체계를 이루기 전의 단계로서 역사적인 것을 반영함으로써도 성립할 수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실제로 자연사(自然史)나 사회역사 해설과 관련하여 가장 통속적인 수준의 문헌마저 최소한의 논리적 틀 속에서 그것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로서 논리적인 것은 오히려 역사적 대상이 객관적으로 확립해 나가는 발전 단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구간─체계 확립이라 할 수 있는 성숙한 단계, 다시 말해, 자체 모순을 통해 부단히 자기규정의 제 조건과 이를 통한 제 결과를 재생산해 내는 체계─에 관한 사실까지 반영한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특수한 학문적 대상을 연구하기 위한 논리적인 방법의 토대로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방법으로는 그 어떠한 서로 학문적 경계를 이루는 개별 연구도 시작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는 빈번하게 비약적이고, 지그재그로 진행되며, 그렇기에 그것의 전부가 추적되어야만 하고”11, 그럼으로써 탐구자는 “중요하지 않은 많은 자료”4를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뿐만이 아니라 “사유 과정에 빈번한 혼란이 올 것”4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추상적이며 이론적으로 연속된 형태로써 역사적 진행을 반영”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학문적 토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특정한 발전 단계를 충분히 포괄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단순 순서를 따르는 방법─아직 논리적인 체계와 충분한 통일을 이루지 못한 역사적인 방법─은 (비록 그것이 그 추적에서 우연히 나타나는 모든 것을 고려해 넣지 않더라도) 분명히 논리적인 방법을 통한 역사적 대상 탐구를 구체화하기 위한 자양분이 된다. 프란추조바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사회발전의 보편적 법칙을 정식화하고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기능하고 상호작용하는가를 분석하는 것은 물론 일차적으로 사회학의 임무이다. 하지만, 역사가들 역시 그러한 연구에 기여할 수는 있다. 계급과 계급투쟁이 존재했다는 것이 기조(Guizot)와 미네(Mignet)와 같은 왕정복고 시기의 프랑스 역사가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것이 한 예이다.”14
그러므로 주의해야 할 것은, 논리적인 방법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논리적인 것은 단순히 그것의 성립 계기마저 사변적인 것에만 속하는 류의 ‘실제’만이 아니라 “현실의 역사적 진행 그 자체를 이끌어가는 법칙에 따라 수정된 반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반영 형식과 체계는 오로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 구체적으로 그러한 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필연적 계기로 지님으로써 설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제 역사 상에서 전개된 가치형태는 우연적 가치형태에 앞서 발생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론』에서 서술된 가치형태의 논리적 발전은 각 가치형태의 발생의 실제 순서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가치형태의 논리적 발전 순서는 분명히 경제적 관계의 발전 영역에서 그것 간 지배적이고 일반적인 실제 순서를 반영한 것으로 된다.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만 논리적인 것은 “실제로는 역사적 취급 방식에 다름아닌 것”이 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객관적인) 역사적 실재라는 토대가 상실된 속에서, 현실을 사변적으로 ‘개조’된 범주와 동일시하는 것뿐인데, 이는 경제 연구에서 관념론으로의 전락을 의미한다.
IV
역사적인 방법과 논리적인 방법은 서로 통일을 이룸으로써 더욱 구체적인 것으로 발전해 나간다:
“두 가지 방법은 사고 형태 속에서 고정된 발전 과정을 표현한다. 두 가지 방법은 서로 통일되어 적용될 때만 발전 과정을 충분히 묘사할 수 있다. 실제로 사고의 논리적 발전은 현실 대상과의 계속적 접촉을 요구한다─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스콜라적인 논리학으로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역사적 방법이 논리적 방법으로부터 분리된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순수한 우연이나 지그재그 운동 등의 집적이 되어버릴 것이다.”15
만약 역사적인 방법만이 강조된다면 엥겔스가 언급한 그대로 탐구자는 우연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대 부르주아 역사가들이 종종 빠지는 관점─모든 ‘역사적 사실’을 인간이 파악하기란 불가능하고, 따라서 역사 연구로썬 그 어떠한 실질적 지식이 담보될 수 없다는 주장, 또는 그 반대 편향으로, 파편화된 ‘역사적 사실’을 최대한 불려 나가는 것이 가장 실제적인 지식이라는 것─이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의 동일성을 구명하기 위한 모든 과학적 시도 앞에서 무력한 것임이 입증된다.
그러나 또 그 반대의 편향, 즉 논리적인 방법만이 강조된다면 탐구 활동의 일정 단계에 이르러 논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과 유리된 것으로서, 그것은 공허한 사변 형식의 모음집이 되어버릴 것이다.
V
마르크스는 경제적 대상의 구체성을 점취하는 도정에서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의 통일이 필수적임을 해명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통일이 없이는 대상의 구체적 연관 체계를 검증할 수 없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가 과학적 대상의 구체성을 얻기 위해 탐구를 시작하는 순간, 즉 그러한 목적이 우리의 탐구를 일관되게 가르는 핵심적인 것임을 우리가 승인하는 순간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이 결합된 일반적 방법론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실재의 구체적 구조를 파악하는 데서 그 결합이 필연적인 것이라면 이미 학문의 대상이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중 하나에만 속하는 어떠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제 연구 대상은 논리적인 자기 작용으로서의 대상, 그리고 그것에 대립하며 그것과 불가분을 이루고 있는 것─역사적 전제조건으로서의 대상의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이해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하면 각각은 논리적 순서와 역사적 순서라고 불린다. 이에 관해 바츌린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본론』의 다양한 원고가 작성되었던 기간에 마르크스는 이미 그의 대상을 내적 관련 아래에서, 과학적 가설의 수준이 아니라 과학적 이론의 수준으로 총체로서 파악하려 하였다. …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질문과 관련하여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즉 경제적 범주는 어떤 순서로 파악될 수 있으며, 이때 역사는 어떤 순서로 배열되어야 하는가? …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 상승하는 방법을 통해 발전하는 그때그때의 과정에 관한 사고의 순서와 역사적 과정의 순서 사이에는 어떠한 상호관계가 존재하는가? 경제적 범주는 자본주의 이전에 상응하는 경제적 관계가 존재하는 순서대로 고찰되어야 하는가? 혹은 경제적 범주에 상응하는 관계가 자본주의의 생성 시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던 순서대로 고찰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성숙한 자본주의 내에서 경제적 관계가 부여받는 가치의 순서대로 고찰되어야 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은 마르크스가 다음 사항들을 서로 구분하였기에 제기되는 것이다: 첫째, 자기 토대 위에서 발전하는 성숙한 대상; 둘째, 그것의 생성, 즉 이러한 대상(자본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그것과 질적으로 다르며 그에 선행하는 대상, 선행하는 총체(봉건적인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개조 과정; 셋째, (사회의) 발전 과정 내에서의 계제들(경제적 사회구성체들)로서 질적으로 서로 다른 대상들. 마르크스는 이러한 차이가 논리적 고찰 방식의 순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자 하였기에 이와 같은 질문들을 제기하였던 것이다.”16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여러 원고에서 자본주의를 연구함에서 논리적인 것이 고려해야 할 역사적인 것의 순서 형식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경제적 범주는 자본주의 이전에 상응하는 경제적 관계가 존재하는 순서”, 즉 예를 들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그것에 선행하는 봉건적 생산관계 속에서 발전해 가며 이 생산관계를 변혁하는 도정; 두 번째는 “경제적 범주에 상응하는 관계가 자본주의의 생성 시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던 순서”; 마지막으로 “성숙한 자본주의 내에서 경제적 관계가 부여받는 가치의 순서”, 즉 “자기 토대 위에서 발전하는 성숙한 대상”이 그것이다. 서로 상이한 내용을 담은 이와 같은 순서 형식들은 모두 특정한 역사적 실재의 운동이 지니는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러한 세분화는 “논리적 고찰 방식의 순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데서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VI
이어서 바츌린은 두 순서가 지니는 내용적 독자성, 즉 상호 외재적인 성격에 관해 논한다:
”논리적 순서는, 대상의 측면을 고찰할 때 이미 발전된 성숙한 대상에서 이러한 측면들의 위치와 의미에 의해 규정되는 순서이다. 여기서 발전된 성숙한 대상은 사고 내에서의 묘사, 즉 논리적인 것에 비례하는 역사적인 것이다. 이렇게 논리적인 것은 그렇게 규정된 역사적인 것과 일치하며 그에 따른다. 역사적 순서는, 대상의 측면들을 고찰할 때 개별 측면들이 주된 역할을 수행하는 순서와 그것들이 대상의 생성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규정되는 순서이다. 그런데 대상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대상의 논리적인 묘사와는 대립되는 역사적인 것으로서 나타난다. 그렇지만 생성 과정 내에서 대상의 측면들이 묘사되는 순서에 비례하는 이러한 묘사도, 동시에 그것이 묘사하고 있는 역사적인 것에 대해서는 논리적인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순서를 제1종의 역사적 순서(historische Abfolge erster Art)라고 부르기로 하자. 대상의 측면들을 고찰할 때 이러한 측면이 주된 역할을 수행하는 순서와 그것이 발전 과정(여기서는 사회의 발전)의 상호 교대되는 계제들(여기서는 경제적 사회구성체들)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규정되는 순서도, 마찬가지로 최초로 고찰된 순서에 비례하는 역사적 순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질적으로 다양한 계제를 갖는 측면들의 순서를 묘사하는 것이며, 이러한 묘사는 현실적인 역사적 과정을 고찰하는 세 번째 순서에 대해서는 논리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현실적인 역사적 과정의 세 번째 순서를 제2종의 역사적 순서(historische Abfolge zweiter Art)라고 부르기로 하자.”17
논리적 순서는 체계가 그 발생 기점에서 발전을 거듭하여 자체 운동을 통해 스스로 재생산하는 체계로 되어있었을 때의 역사적 항의 순서를 반영한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마르크스가 규정한 순서 형식 중 “자기 토대 위에서 발전하는 성숙한 대상”을 반영하여 형성된 것이다. 반대로 역사적 순서란 그 외의 순서 형식을 의미한다.
역사적 순서에 관한 묘사, 다시 말해 “생성 과정 내에서 대상의 측면들이 묘사되는 순서에 비례하는 이러한 묘사” 역시 논리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특수한 대상의 생성 도정에 속하는 순서 형식 역시 항상 대상의 내적인 필연성과 합법칙성을 자기 내용으로서 지니며, 동시에 이를 따르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본의 발생사와, 봉건적 생산양식 내에서 시민사회의 점차적 확대라는 역사적 실재는 그 나름의 사회적 필연성에 따른 현상이다. 필연성과 법칙성을 띠는 이러한 현상을 정신적으로 점취하여 하나의 지식으로서 정제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이 역사적 현상을 추상적인 수준에서 반영하는 논리적 범주가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통해 획득한 범주들을 성숙한 단계에 이른 자본주의의 내적 구조를 분석·탐구하기 위한 논리적 자료로 활용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그것은 연구 대상이 그 발생적 계기로부터 아직은 미성숙한 형태로서 등장한 것만을 반영한 범주 체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것을 바츌린은 〈제1종의 역사적 순서〉라고 명명한다.
이어서 바츌린은 “상호 교대되는 계제들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규정되는 순서”가 〈제1종의 역사적 순서〉와 비교해서 지니는 특수성─“그것은 동시에 질적으로 다양한 계제를 갖는 측면들의 순서를 묘사하는 것”─을 언급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찬가지로 최초로 고찰된 순서에 비례하는 역사적 순서”에 속하는데, 왜냐하면 그것 자체는 그저 발전 과정에서 상이한 계제들의 순서만을 표시할 뿐, 그 계제들이 서로 불가분의 연관을 맺어 현상의 반복되는 구간으로 전화하는 측면과 그것이 다시 동일한 계제를 재생산하는 것까지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서 형식을 〈제2종의 역사적 순서〉라고 한다. 이 순서는 논리적 순서와 비교했을 때 본질적으로 〈제1종의 역사적 순서〉와 다르지 않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의 고찰 대상은 성숙한 근대 부르주아 사회”18이므로 그것은 두 종의 역사적 순서와 대비된다.
VII
다루어지는 각 범주의 질적 규정이 발생하는 시점을 엄격한 의미에서 시간적 연관에 따라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작업이며, 대상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데서 부차적인 위치만 점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작업은 우연히 발생한 규정의 순서까지 고려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러한 규정들이 우연적인 한, 그것들이 대상의 내재적으로 필연적인 작동 원리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순서로서의 발생적 연관과 논리적 순서로서의 발전-복귀 연관의 구분은 마르크스의 연구 방법론에서 핵심적인 것이었다. 바츌린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마르크스는 1857-58년의 정치경제학 초고에서 “경제적 범주들을 그것이 역사적으로 규정되었던 순서대로 위치짓는 것은 실행할 수도 없고 잘못된 것이다”19라고 논증했다. 실제로 더욱 발전된 관계는 역사적으로 한층 단순한 관계가 형성되기 이전에 존재할 수도 있다. 가령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협업과 발전된 분업이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단순한 관계는 과정의 한층 발전된 형태 속에서 그 최고의 발전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화폐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지배 아래에서 비로소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 침투한다. 이전의 모든 사회적 관계 내에서 화폐제도는 “노동 전체”20를 장악하지는 못하였다. 앞에서 들었던 예들에서 제2종의 역사적 순서가 나타난다. 이 경우에는 간단한 조건을 그보다 복잡한 조건에 앞서 연구하여야 한다는 논리적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다.”21
우리가 화폐에 관해 연구하고자 한다면, 화폐제도가 “노동 전체”, 즉 사회적 노동의 전개 과정을 촉발하는 지배적인 요인이 되었을 때를 기준으로 하여 그것의 운동 방식과 여기서 나타나는 특수한 시간적 연관을 연구해야 한다. 같은 이유에서, 사회적 노동시간이 가치를 규정한다는 사실 역시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이 발달하기 전에, 생산물의 가격을 결정하는 여러 우연적 요소 속에서 그것과 나란히 존재하는 또다른 우연적인 것으로서 이미 실존하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의 구체성을 획득하는 작업은 충분히 팽창한 규모의 산 노동에 대한 자본의 흡인이 이루어지는 고도화된 역사적-사회적 국면을 때놓고 전개될 수 없다. 상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바츌린이 지적한 대로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제1장에서, 단순한 상품으로서 실존하는 상품이 전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이라는 의미에서 자본주의적으로 수정된 상품을 다루고 있다.”9 그렇게 하여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단순상품을 확정”하였다. 물론 이러한 연구는, 그것의 역사적인 발생적 계기를 일정한 수준에서 드러내는 작업과 병행되어야 더욱 구체적인 것─학적 인식이 역사적 실재에 더 근접한 것─으로 될 것이다. 즉, 마르크스는 “최초에 상품자본이 아니라 상품을 고찰했다는 의미에서, 자본주의적으로 수정된 상품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9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분석은 이미 대상의 성숙한 발전 형태라는 맥락 속에서 고려된 역사적 순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려되지 않은 역사적 순서는, 여러 규정된 인간적 관계(또한 동시에 물화되어 있는)의 재생을 통해 자기 보존력을 갖추는 자본주의적 관계 내에서의 상품을 연구하는 데서 지엽적인 의미만을 차지한다. “마르크스는 스스로 자신이 『자본론』에서 “부르주아적 생활의 … 소매업”, 즉 부르주아 세계의 표면에서 수행되는 운동 내에서 유통하는 상품으로부터 시작하였음을 언급하였다.”9
이와 같은 예에서 주어지는 시간적 연관─성숙한 대상에게서 부단히 자기 복귀와 재생산을 이루는 체계 내 범주의 시간적 연관─은 보편적으로 논리적인 방법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논리적인 순서를 구성한다. 한편,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그것의 역사적 순서를 이루는 조건, 즉 복잡한 조건을 탐구하는 데서 그보다 간단한 조건은 연구될 필요가 없다. 이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이라는 논리적 발전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바츌린은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마르크스는 제1종 역사적 순서와 논리적 순서 사이의 불일치에 관해서도 예를 들고 있다. 자본주의에 관한 협의(狹義)의 역사적 연구(혹은 바꾸어 말하면, 자본의 발생에 관한 연구)의 테두리 내에서는 먼저 농노의 도시로의 도망과 같은 역사적 선행조건이나 전제조건이 특징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운동을 통하여 자기의 존재 조건을 정립하는 이미 현존하는 자본 속에서는, 그 생성을 위한 역사적 전제조건이 사라진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자본의 발생 조건과 그 존재를 위한 조건 사이의 동일시 속에서, 자본주의를 영원한 초역사적 생산 형태로서 고찰하는 방법론적 뿌리를 보았다.”25
〈제1종의 역사적 순서〉에 관한 가장 기반이 되는 예는 자본의 발생에 관한 마르크스의 연구와 연결된다. 자본의 발생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것의 (엄연히 역사적 순서가 실제 규정되어 있는) 발생적 계기는 분명히 자본의 운동 방식을 만들어 낸 조건임은 틀림없으나, 그것은 자본이 성숙한 이래에서는 고려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국면에서 자본은 자기의 존재 조건을 스스로 정립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본의 관계에 포섭된 프롤레타리아는 일반적으로 그 자신이 처한 조건에 의해서, 자기의 생산수단을 마련할 수 없으며, 그 반대로 그것을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하 경쟁 법칙에 따라 장단기적으로 파산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작동 방식의 근저에는 자본주의적 관계에 관한 연구에서 다루어지는 수많은 경제적 범주를 뒷받침하는 물질적 힘─불변자본 가치와 가변자본 가치와 이윤율의 관계, 착취율, 부문 내 자본의 이동 및 은행자본의 성장으로 인한 부문 간 자본의 이동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회적 조건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재생산하는 것이다. 충분히 성숙한 자본의 자기 증식에서는, 자본의 발생사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그러한 역사적 조건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실재의 내용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더욱 구체적인 사실을 구성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일반적 법칙을 논리적으로 점취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구체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자본의 발생을 이루는 제 계기와 그것의 존재 조건 전체가 서로 동일하다는 견해를 제출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초역사적인 생산 형태로서, 그것을 영구적인 것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VIII
그렇다면 기존 역사적 순서의 제 요소는 실재의 논리적 순서가 완비되었을 때 어떠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마르크스는 과학적 대상의 구조에 관한 연구에서 역사적 순서가 부차적인 지위만을 가진다는 것을 논증할 때 그것이 그 최초의 형태에 있어 우연적이라는 것 이상의 내용─즉, 역사적 전제조건이 논리적인 순서의 발전에 의해, 이 논리적 순서의 부속물로서 재구조화되는 측면─까지 발견하였다. 바츌린은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논리적 고찰의 순서가 계기들 및 성숙한 대상이나 과정의 지위와 역할에 의해서만 규정되며, 이러한 계기들이 자기의 토대 위에서 발전하고 있는 대상이나 과정의 형성 이전에 차지하였던 위치 및 수행하였던 역할에 의해서는 결코 규정되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사정은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왜냐하면 대상이 발전하여 그 발전의 모든 계제에서 다면적인 계기들의 특수한 내적 통일이 형성되면, 이 계기들 각각은 다양한 단계에서 서로 다르고, 각 단계에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며, 대상의 상이한 발전 단계에서나 다른 대상에서의 역할, 혹은 일정한 질적 계제로부터 다른 질적 계제로의 이행 과정 내에서의 역할이나 지위에 대해, 하나의 특수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26
역사적 대상의 발생적 계기는, 그 대상이 발전을 이루었을 경우 기존의 지위에서 특수한 지위로 재배열되고, 이로써 각각의 계기는 “대상의 상이한 발전 단계에서나 다른 대상에서의 역할, 혹은 일정한 질적 계제로부터 다른 질적 계제로의 이행 과정 내에서의 역할이나 지위에 대해, 하나의 특수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에 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원래 자본이 생성되는 조건들로서 나타났던─따라서 아직 자본으로서 작용하는 활동에서 유래하는 것일 수는 없는─이 전제들이 이제는 자본 자신이 현실화된 결과, 자본 자신에 의해 정립된 결과로서─자본이 형성되는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자본의 존재에서 나온 결과로서─나타난다.”27
역사적으로, 상업자본은 산업자본보다 훨씬 앞서 등장하였으며, 심지어 그것은 산업자본의 발생적 계기 중 하나─소위, 시초 축적에서 가장 능동적인 요소로서─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발전을 통해 그것은 산업자본의 보조물로, 즉 산업을 통해 산출된 잉여가치를 분배하는 자본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와 동일하게, “농노들의 도시로의 도주가 도시 체제의 역사적 조건과 전제 중의 하나라고 할 때”4, 그것은 “완성된 도시 체제의 실재 조건이나 계기가 아니라, 그것의 현존 속에 지양되어 있는 지나간 전제들, 즉 그것들의 형성의 전제들에 속한다.”4 이 “형성의 전제들”은 단지 완성된 도시 체제의 논리적 발전에 지양되어 있는, 규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일련의 발생적 계기, 다시 말해 역사적 순서를 구성할 뿐이다. 이렇게 성숙된 단계에 이르러서 역사적인 전제조건은, 이 단계의 자체 재생산의 한 구성물로 편입되면서, 이 단계에 의해 정립되는 특수한 국면으로서의 규정으로 재편된다. 이는 훨씬 더 전체적인 범주인 소유, 분업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마르크스는 프루동의 학설의 비과학성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소유는 프루동 씨의 체계에서 마지막 범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반대로 분업 및 프루동 씨이ㅡ 여타의 모든 범주는 총체적으로 오늘날 소유라고 하는 것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입니다. 이 관계들 밖에서 부르주아적 소유란 형이상학적 혹은 법률적 환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른 시대의 소유, 봉건적 소유는 전혀 다른 일련의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발전합니다.”30
역사적 대상을 형성시킨 계기인 역사적 전제조건에 관한 사유 자체는, 발전을 이룬 대상의 구체성을 획득하는 이론적 노력에서 핵심적인 것과 동일시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것은, 우리가 성숙한 대상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각 객관적 구성물─서로 필연적으로 불가분한 연관 체계를 이루고 있는─의 역사적 계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IX
대상의 역사적 전제조건만으로는 대상의 논리적인 재생산 구조, 자기 완결적인 운동 방식을 획득할 수 없음은 곧 역사적 양상으로 표현되어 있는 대상 속에서 그것의 재생산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얻지 못 한 경우 대상의 구체성을 취할 수 없음을 뜻한다. 어떠한 대상이 재생산 구조를 이루고 있음은 곧 그 대상이 일정한 성숙 단계에 이르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숙한 단계를 (저차적인 것에 대비해) 고차적인 것이라고 할 때 우리가 마르크스의 방법론에서 취할 수 있는 이해는 저차적인 것의 구체성은 오로지 고차적인 것을 통해서만 확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츌린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발전 과정에 관한 가장 심오한 연구는, 이러한 과정 외 성숙하고 발전된 단계가 주어질 때 이루어진다. 성숙한 단계의 내적 구조를 연구하는 것으로의 이행이, 성숙한 단계를 일반적으로 특징짓는 것으로서 역사적인 것에 관한 분화된 고찰을 요구한다면, 역사적 방법의 특수성 및 구조는 성숙한 단계에 관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 과거에 대한 인식이 발전되는 경우에 더욱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된다. 성숙 단계에 도달해 있는 과정의 연구는 성숙 단계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인간의 해부는 원숭이의 해부를 위한 열쇠이다. 이에 반해 한층 저급한 종류의 동물의 고차적인 것에 관한 암시는 고차적인 것 자체가 이미 알려져 있을 때만 이해될 수 있다.”31 그러므로 한층 고차적인 것에 관한 암시는 덜 발전된 단계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암시 그 자체는 발전의 필연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32
역사적 순서는 성숙한 단계를 대상으로 하여 논리적인 범주를 끄집어내는 속에서 고찰될 때 더욱 구체적인 것으로 전화한다. 이는 우리가 대상을 연구할 때 그것의 발전 양태에 따른 단계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올바른 연구로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탐구 활동에서 전제되는 이 사실은 저차적인 것에서 나타나는 고차적인 것으로의 암시를 취급할 때도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저차적인 것을 통해 무언가 고차적인 것을 암시한다는 것은 곧 그 비교 대상으로서 고차적인 것이 먼저 존재해야 함을 전제하는 것이다. 고차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 속에서 그것의 암시란 그저 우연적이며 비본질적인 것이다.
X
그러나 만약 우리가 고차적인 체계를 선차적으로 연구하고 저차적인 체계를 들여다 봄에 있어, 이 저차적인 체계가 갖는 계기 중 오로지 고차적인 체계를 유도해 내는 것에만 시야를 돌린다면, 그것은 결과에 자의적으로 추려진 ‘원인’을 욱여넣는 꼴이 될 것이며, 이는 결국에는 연구의 객관성을 세우는 데서 지대한 악영향을 줄 것이다. 그래서 바츌린은 또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한층 높은 계제의 관점에서 한층 낮은 계제를 연구하는 것은, 선행하는 발전 계제를 단지 한층 높은 계제를 위한 준비 단계로서만 다룰 위험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선행하는 계제가 한층 고차적인 계제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며, 이 계제의 계기들이 한층 고차적인 계제에서도 변화된 형태로 지양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망각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논리적인 편협함이 “모든 역사적인 차이를 은폐하며 모든 사회형태 속에서 부르주아적인 것을 발견하는”33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자들의 특징이다.”34
실재에 내함해 있는 보편-특수-개별의 변증법적 관계는 저차적인 실재 역시 그것을 고차적인 실재로서 정립하는 계기에 묶여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모든 역사적 전제조건 낱낱은 각자의 재생산 구조를 이루고 있는 고차적인 것으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것은 각각 저마다의 자기 완결적인 구조를 갖춘 질이며, 그렇기에 그것은 그보다 고차적인 질과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질이다. 저차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고차적인 것과 대립함으로써만 그 저차적인 성격이 규정적인 것으로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질적인 것은 또한 벌써 그보다 고차적인 질의 자기 재생산 구조에 포섭되어 있는 것이므로, 그것은 그 고차적인 재생산 구조의 힘에 의해 재구조화된, 즉 엄연히 고차적인 질의 자기 복귀 운동의 한 부분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 * *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간 변증법적 상관성에 관한 바츌린의 견해는 역사적 순서에 기반하는 역사적 방법과 그와는 대조적인 논리적 방법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가 논리적인 순서라고 언급한 것 역시 실제로는 구체적인 역사적 순서의 특성을 띠고 있으며, 역사적인 순서 역시 실제로는 그 자체 법칙성에 따라 (추상적인 수준에서) 논리적인 순서를 이루고 있음을 충분히 강조하지는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인식되는 자본의 순환 과정은 단순히 논리적 구조물인 것만이 아니라, 시간적 연관 상에서 분명히 역사적인 순서를 이루는 사회적 실재로 되어있다. 마르크스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자본 자체가 형성되자마자 자본은 자기 자신의 생산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의 전제들, 즉 교환 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현실적 조건들을 소유하는 것을 만들어 나간다.”27 이러한 과정은 자본주의 사회의 내재적 모순을 심화하는 계기로 된다. 자본주의 하 축적 도정에서 필연적인 계기로서 등장하는 공황과 회복기는, 자본주의가 일정한 성숙에 이른 한 거듭되는 과정이며, 한편으로 이러한 과정의 반복은 평균 이윤율은 꾸준한 감소와 노동자의 절대적·상대적 빈곤화를 초래하는 제 요인과 불가분의 연관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요인을 발판으로 삼는 자본의 자기 운동은 분명히 현실적인 것의 위에 선 것, 즉 바츌린이 역사적 순서라고 명명하였던 것이 지시하는 바로 그 좁은 영역을 뛰어넘는 또다른 역사적인 순서를 구성한다. 이러한 과정으로서 역사적인 것은 실제 10월 사회주의 혁명으로 러시아 전역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전반적 위기의 단계에 이르렀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위기 심화 역시 엄연히 역사적 순서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반대의 방향에서 바츌린은, 〈제1종의 역사적 순서〉 및 〈제2종의 역사적 순서〉를 반영한 논리적인 것이 그가 논리적인 순서라고 한 것, 즉 논리적인 방법을 구성하는 경제적 범주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지를 다루지 않았다. 자본주의적 관계를 연구한 마르크스의 여러 문건에 기술된 자본의 발생사, 그리고 여러 경제적 범주의 역사적 전제조건에 관한 것이, 마르크스가 체계화한 자본의 논리적인 순서를 구체화하는 데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를 정리하지 않은 채 역사적인 순서와 논리적인 순서의 차이만을 강조한다면, 마르크스가 논리적인 순서를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두 영역에 관해 논한 것을 변증법적으로 연계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속에서 우리는 기껏해야 마르크스가 탐구한 자본의 역사적인 순서를 마르크스의 논리적인 방법에서 우연히 곁들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보편적 과학성을 세우기 위한 방법론적 체계를 형성해 나간다는 관점을 견지하면서, 역사적 전제조건이라는 규정로서 역사적 순서의 반영을 통해 확립된 논리적인 것이 과학적 대상의 연구에서 어떠한 기능을 할 수 있는지를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진드리히 젤레니(Jindřich Zelený)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배열[논리적인 것; 인용자]은 (ⅰ) 정태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움직임 속에’ 존재한다. … (ⅱ) 발전된 형태 속의 이러한 구조적 과정은 탐구되고 있는 형태가 ‘발전된 형태’가 되는 국면에서 역사와 연결된다. 이것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대응 현상으로 표현될 수 없다. 이것은, 역사적 기원을 고려하지 않고는, 그리고 그 발전된 형태 속의 구조적 연관을 해석할 수 있게 하며 동시에 고려되고 있는 형태가 발전된 형태가 되기 전에 가졌던 역사적-구조적 요소들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이론적 절차가 없이는, 그 발전된 형태 속의 구조적 과정을 과학적으로 제시할 수 없음을 뜻한다.”36
논리적-사변적인 과정과 역사적 실재의 자체 운동은 서로 구별되지만, 구체성을 점취한 것으로서의 논리적인 것이 올바르게 파악된 역사적인 것과 동일성을 이룬다는 테제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 핵심으로 된다. 바꿔서 말한다면, 개념적 인식을 통해 파악된 논리적인 것은, 역사적 구체성을 인간의 사유 속에서 올바르게 재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논리적인 방법을 이루는 논리적인 것의 총체는 분명히 실재적인 영역에서 작동하는 역사적 순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즉, 성숙한 단계에 이르러 그 자신의 총체성을 보존하고, 그 조건을 재생산하며, 자기의 발생적 계기를 자기를 재생산하는 계기로 특수화하는 역사적 대상의 운동 방식은 그것 자체로 이미 역사적 순서를 구성한다. 이것이 바츌린이 언급하였던 바와 같은 역사적 방법을 구성하는 역사적인 것, 다시 말해 역사적 전제조건과 다르다는 근거는, 그것이 연구 대상을 파악함에 있어 훨씬 더 구체화된 실재라는 데 있다. 진정으로 논리적인 것은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해 나가면서 형성되는 일련의 연쇄 작용을 통해 이 대상의 구체적이고도 역사적인 총체성이 작용하는 현실에서 구현된 객관적 질서를 개념적 형식 속에서 반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심리학자 비고츠키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논리적 순서]은 역사적 과정의 조정된 반영일 뿐이지만 다만 그것은 현재의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법칙에 따라 조정된다.”37 따라서 논리적 순서 또는 방법은 역사적인 사실에 관한 관념의 자의적인 조작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객관적 총체성으로서는 실재의 법칙적·내적 연관이 지시하는 역사적-필연적 작용의 산물이며, 주관적 총체성으로서는 역사의 필연성을 인식한 사유 주체의 구체적 상이다.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은 상호 간 변증법적인 순환 관계 속에 있다.
이때문에 논리적인 방법은 본질적으로 역사적인 방법과 동일성을 지니고 있다. 바츌린이 인용하였던 엥겔스의 언급 그대로 “경제학의 역사는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 없이는 기술될 수 없고, 따라서 모든 예비 작업이 누락되어있기 때문에 그 작업은 끝이 없을 것”11이고, 그렇기에 “논리적인 처리방식(logische Behandlungsweise)만이 적합”4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사실상 역사적 형태와 혼란을 야기하는 우연성(der störenden Zufälligkeiten)이 제거된 역사적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4<끝>
2024년 11월 30일
- MEW, Bd. 13, Berlin: Dietz-Verlag, 1961, 473.
- Ibid., 474.
- Ibid., 475.
- Loc. cit.
- W. A. Wasjulin, “Das Historische und das Logische in der Methodologie von Karl Marx”, Marxistische Studien, Jahrbuch des IMSF 12, 1987, 238.; 「맑스의 방법론에서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정치경제학 교과서 I-1』, 윤소영 역, 서울: 중원문화, 2010, 445.
- MEW, Bd. 39, Berlin: Dietz-Verlag, 1968, 97-8.
- “Das Historische und das Logische in der Methodologie von Karl Marx”, Marxistische Studien, 238.; 「맑스의 방법론에서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정치경제학 교과서 I-1』, 2010, 445.
- MEGA, II/Bd. 2, 253.; MEW, Bd. 13, 275; 위의 책, 446.
- Loc. cit.; 같은 책.
- “Das Historische und das Logische in der Methodologie von Karl Marx”, Marxistische Studien, 239.; 위의 책, 445-7.
- MEW, Bd. 13, Berlin: Dietz-Verlag, 1961, 475.
- Loc. cit.
- Loc. cit.
- N. Frantsuzova, 「역사적 실재에 대한 방법론적 분석」, 『마르크스주의 인간론』, 이종철 역, 서울: 이성과 현실, 1991, 256.
- W. A. Wasjulin, “Das Historische und das Logische in der Methodologie von Karl Marx”, Marxistische Studien, Jahrbuch des IMSF 12, 1987, 239-40.; 「맑스의 방법론에서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정치경제학 교과서 I-1』, 2010, 447.
- Ibid., 240; 위의 책, 447-8.
- Ibid., 241; 위의 책, 448-9.
- Loc. cit; 위의 책, 449.
- MEGA, II/Bd. 1, 1; 42.; Grundrisse, 28.; 위의 책, 449.
- MEGA, II/Bd. 1, 1; 38.; Grundrisse, 24.; 위의 책, 450.
- W. A. Wasjulin, “Das Historische und das Logische in der Methodologie von Karl Marx”, Marxistische Studien, Jahrbuch des IMSF 12, 1987, 242.; 위의 책, 451.
- Loc. cit.; 같은 책.
- Loc. cit.; 같은 책.
- Loc. cit.; 같은 책.
- Loc. cit.; 위의 책, 450.
- Ibid., 242-3.; 같은 책.
- MEW, Bd. 42, Berlin: Dietz-Verlag, 1983, 372.
- Loc. cit.
- Loc. cit.
- K. Marx, 「맑스가 빠리의 파벨 바실리예비치 안넨코프에게. 1846년 12월 28일」,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1권, 최병연 역, 서울: 박종철출판사, 1991, 591.
- MEGA, II/Bd. 1, 1; 40.; Grundrisse, 26.; 「맑스의 방법론에서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정치경제학 교과서 I-1』, 2010, 451.
- W. A. Wasjulin, “Das Historische und das Logische in der Methodologie von Karl Marx”, Marxistische Studien, Jahrbuch des IMSF 12, 1987, 243-4.; 위의 책, 451-2.
- MEGA, II/Bd. 1, 1; 40.; Grundrisse, 26.; 위의 책, 452.
- “Das Historische und das Logische in der Methodologie von Karl Marx”, Marxistische Studien, 244.; 위의 책, 452.
- MEW, Bd. 42, Berlin: Dietz-Verlag, 1983, 372.
- J. Zelený, 『맑스의 방법론』, 이기홍 역, 서울: 까치, 1989, 57-8.
- L. S. Vygotsky, 『생각과 말』, 배희철, 김용호 역, 서울: 살림터, 2011, 311.
- MEW, Bd. 13, Berlin: Dietz-Verlag, 1961, 475.
- Loc. cit.
- Loc.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