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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백 | 집행위원
제2강
§ 11. 정치에서 카이사르주의(caesarismo)란 서로 대립을 이루는 두 세력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제압하기 어려운 때에 제3의 세력이 나타나 두 세력을 제압하는 현상이다. 그람시는 이를 “세력 간 갈등이 계속 이어지면 결국 서로 파괴함으로써 [두 갈등이] 종식될 수밖에 없게끔 균형이 취해진 상황”1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카이사르주의는 “어떠한 경우에서나 똑같은 역사적 뜻을 가지지 않는다.”2 즉, 카이사르주의에도 “진보적인 형태와 반동적인 형태가 있을 수 있으며, 각 형태의 정확한 뜻은 궁극적으로는 어떤 주먹구구식의 사회학적 법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를 통해서만 확인될 수 있다.”2
진보적인 세력이 승리하는 데서 카이사르주의가 일정한 역할을 하고 심지어 그 상황이 “어떠한 타협과 제약으로써 한계가 주어진 것”2에 근거할지라도 이는 “진보적이다.”2 반대로 이러한 현상이 우익 세력의 승리를 보조한다면 이는 반동적이다. 그람시는 진보적 카이사르주의의 사례로서 카이사르와 나폴레옹 1세를 들고 있으며, 그 반대는 나폴레옹 3세와 비스마르크의 예를 든다. 물론 “거대한 노동조합과 정당·정치적 제휴가 존재하는 현대세계에서는 카이사르주의적 현상이 나폴레옹 3세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6 현대세계에서는 노동조합을 포함한 시민사회 각기의 정치적 조직은 여러 형태의 압박과 매수에 의해 조종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현대세계에서 카이사르주의는 과거에서 나타났던 바 있는, 대대적인 군사적 행위를 동반하는 (전제적으로) 지도적 지위의 인물이 존재하지 않아도 발현될 수 있다. 그는 영국 노동당의 램지 맥도널드(Ramsay MacDonald)를 그 역사적 실례로 든다.
그람시는 이로부터 우리가 흔히 시민사회에서 진보적인 세력이 강세를 누리면 국가 제도의 영역에서 그에 완전히 대응되는 ‘진보적인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반대로 반동적인 세력이 그렇다면 역시 국가 제도의 영역에서 ‘반동적인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는 도식이 현실과 괴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시민사회에서 진보적인 흐름의 강화가 진보적 성격을 띠는 카이사르주의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는 이에 대해 다시 다음과 같이 주의 사항을 달고 있다: “카이사르주의─그것이 진보적이든 반동적이든 또는 중간적이고 삽화적이든─에서 모든 새로운 역사적 현상이 오로지 ‘기본적’ 세력들만의 균형으로 인해 생긴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방법적 오류(사회학적 기계론의 한 측면)일 것이다. 기본적 계급들로 이루어지는 중요한 집단들(여러 종류의 사회경제적·기술-경제적)과 그 집단들의 패권적인 영향에 지도받거나 종속된 보조적인 세력들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도 고려해야 한다.”7
카이사르주의의 진보적 형태는 한 사회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활용 잠재력이 풍부한 세력이 정치 일선에 진입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반동적이지 않으며, 그렇다고 그것이 혁명적인 당파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성격을 띠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반동적이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진보적 세력에게 이점을 줄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형태의 카이사르주의는 이 잠재적인 세력을 “국민적 생활과 사회적 활동 속으로 끌어들인다는”8 점에서 진보적 세력에게 확장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진보적 형태의 카이사르주의는 김대중 정권의 창출과 일정 정도로 대응될 수 있는데, 이 사태는 (비록 그 당시 노동계급이 추구하던 최상의 형태에 한참은 뒤떨어져 있더라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추진하였으며, 이러한 추진의 결과로써 정착한 공식적인 요소들에 의해 소외되었던, 그래서 잠재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정치 세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김대중 정권은 단지 90년대의 일시적인 운동의 국면 속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1960년대부터 이어진, 그리고 1980년 이후에 가일층의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 시민사회 및 이 영역 내에서 노동계급과 소부르주아, 기타 계급·계층, 심지어 자본가계급 일부까지 가담하였던 정치적 연속의 결과였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이러한 (여전히 부르주아적이며, 상당히 기회주의적이지만) 중대한 개혁의 시발점이 국면적 운동에 크게 빚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일하게, 김대중 정권이 카이사르주의의 한 사례라고 하였을 때, 이 정권의 반민중적이고 반노동적인 성격 역시 80년에서 90년대를 거쳐 형성된 시민사회의 패권적 변동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처럼 카이사르주의는 한 집단에서 단지 단 하나의 정치적 흐름으로도 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본적인 세력 간의 긴장 속에서 여전히 제3의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성격은 상당히 복잡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오로지 단일한 반동 제 세력의 일회적이며 Deus ex machina적인 암수(暗數)의 결과로 파악하여 그것을 반동 세력의 ‘확고한 승리’라고 쉽게 단정하거나, 또는 그러한 ‘이해’에 기초하여 전술을 구축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실제로 암수가 실재한다 하더라도 이 암수는 강제된 암수일 뿐이고 무엇보다 이 현상의 본질적 연관은 아니며, 따라서 일체 반동 세력에게 있어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승리로 점철된 역사도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 12. 노동계급의 주체적 역량이 크게 성장하지 않은 조건에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정치적 급성화의 경향을 막아낼 정책적 수단이 무수한데, 여기서 급성화는 혁명적인 경향을 물론, 다수 군중에게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파시스트적 망동까지 포괄한다. 물론 부르주아 국가는 끊임없이 후자를 ‘사회적 상식’의 허용선에 진입시키려 시도한다. 이때 노동계급은 부득이하게 자그마한 문제까지 국가적 규모의 문제로 ‘비대화’할 수 있는 전국적인 세력으로서의 진보적 카이사르주의 세력과 얽힐 수밖에 없으며, 또 얽혀야만 한다. 운동에서 경제주의적 열망은 군중이 가지는 갖가지 이해를 〈국민적 생활(vita nazionale)〉이라는 전체에 포섭하는 것과 정확히 적대적이다. 〈국민적 생활〉이란 사회혁명의 진로를 개척해 나가는 도정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보편적 메커니즘을 매개 나라가 가지는 일국적(一國的) 측면의 제 요인을 뜻한다. “일국적”이란 한 나라에서 모순이 작동하는 특수한 조건을 염두에 둔 것이다. 예컨대, 한국에서 자본주의 지양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최소 강령과 최대 강령의 통일 속에서 구현될 수 있다. 이는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은 오로지 한국 경제의 특수성─경제의 신식민주의적 예속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만 달성할 수 있다. 즉 어느 나라 혁명에서나 보편적 연관으로 작용하는 것은 항상 특수한 조건을 자기의 부정으로 둔 속에서만 참되게 보편적이다. 그런데, 그람시의 정치사상에서 〈국민적 생활〉이 이러한 객관적으로 대상화된 사물 및 경제적·사회문화적 관계 규정의 측면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동시에 한 나라에서 단순 상이성 일반, 즉 흔한 표현으로는 ‘개별자’로 산재해 있는 사회모순을 전민적(全民的)·전국적(全國的) 문제의 단계로 파악해 내고 이를 선전하는 것이다. 이때 〈국민적 생활〉은 주체적 역량의 한 발전 단계를 뜻한다. 그람시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출발점은 ‘일국적’인 것이며 시작해야 할 곳은 바로 이 출발점이다. … 국제적 계급(프롤레타리아)이 지도하고 발전시켜야 할 일국의 국민적 세력들의 결합을 국제적 전망과 방향(곧 코민테른의 그것)에 따라 정확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9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 내부 논쟁에서 트로츠키가 국제주의를 추상적인 것으로 호도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하면서, 그의 오류를 스탈린의 정견과 적절히 대립시켰다.2 그람시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의 성장이 전략·전술적 측면에서 몇 가지 정치-군사적 영역을 제외한다면, 기본적으로 〈국민적 생활〉─일국적 고려 속에서 가능했음을 역설하였다. 그는 “그들은 패권 개념으로써 성격상 국민적인 과업들을 통합”11하였으며, “반면에 다른 조류들은 그러한 개념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거나 단지 겉으로만 짚고 넘어갔음”2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적 생활〉은 각 나라의 특수성마다 그 전선이 함의하는 내용 규정이 판이한데, 일반적으로 그것은 아직은 ‘사회주의적’인 것과 무관해 보이는 외양을 띠고, 이 외양은 주로 가지각색의 민주주의적 요구 및 개혁 필요성의 주문이라는 최소 강령적 요구에 한정되어 있다. 이는 명백히 사회주의적이라 할 수 없지만 오히려 ‘사회주의적 의제’보다 더 강한 결집 계기를 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는 전국적 수준에서 군중을 정치 무대로 인입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람시의 정견대로 레닌은 이미 1916년에 ‘원칙주의적’ 경제주의자들이 빠지는 주관주의적 함정을 경계할 것을 요구하며 이 “민주주의적 열망”에 대해 적은 바 있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는 오직 경제적 혁명에 의해서만 타도될 수 있지,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일지라도 민주주의적 개조로는 타도될 수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훈련되지 않은 프롤레타리아는 경제적 혁명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13 … 민주주의 문제의 마르크스주의적 해결은, 부르주아의 타도를 준비하고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 부르주아에 대항하는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모든 민주주의적 제도와 열망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주의자 등에서 그것은─‘금융자본 시대에’ 민족자결을 옹호하는 것이 키예프스키에게는 부르주아적 견해에 그릇되게 양보를 하는 것으로 보이듯이─종종 ‘부르주아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주장에 그릇되게 양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르크스주의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의, 부르주아에 의해 만들어져 왜곡되고 있는 민주주의적 제도의 이용을 거부함으로써 ‘기회주의와 싸운다’는 것은 기회주의에 완전히 항복하는 것이라고!14”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국제주의적 지위 역시 그 프롤레타리아 계급 그 자신이 〈국민화(nazionalizzazione)〉를 이루었을 때 굳건해질 수 있다. 즉, “단지 편협하게 국민적일 뿐─지식인들─이거나 아니면 국민적인 수준에조차 이르지 못하고 단지 지방주의적·자치주의적일 뿐─농민들─인 사회계층을 지도하는 한에서만 국제적이다.”15 여기서 그람시가 사회를 구성하는 제 계급만이 아니라 계층의 문제까지 다루고자 하는지에 관해서는 그의 견해에서 불분명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요컨대 그가 언급하며 들었던 예인 지식인은 마르크스주의 학설에서 계급으로 분류되지 않으며, 그가 종종 사용하였던 〈하층 사회집단〉이라는 개념에는 계급적이고 계층적인 요인에 대한 고려가 뒤섞여 있다. 그러나 명확한 내용을 가지고 제출되는 한 나라에 산재한 사회모순들이 적지 않게 국가의 중대한 문제와 연관되어 다루기 어려운 형태로 제기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여태 다룬 〈국민적 생활〉에서 이어지고 있는 그람시의 사유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비교적 명확해진다. 그는 1926년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영국에는 군주제가 실재함에도 공화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공화당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발전하는 것은 군주제의 실재에 있지 않으며 그것은, 자신의, 계급적 또는 집단적 이해를 방어하기에 공화주의 지형이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는 계급과 상당한 사회집단이 실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 우리는 바로 그 순간[자본주의가 국민적 생활에 작용을 가하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때]에 프롤레타리아가 정치적, 이념적으로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여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문제들을 자연스레 타 민족문제와 조율하여 계급 및 각이한 사회집단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고 믿는다.”16 이는 우리가 한 나라에서 광범한 정치적 요인들─앞서 언급한 그대로, 계급적 요인만이 아니라 계층적이고 문화-집단적인 요인, 그리고 이 요인을 반영하는 어떠한 활동 경향들─, 그와 대응되는 수다한 운동을 〈국민적 생활〉로서의 운동으로 조직한다는 것을 조금더 면밀히 다룰 필요가 있음을 지시한다. 한 나라에서 지방주의적 협소함은 소부르주아적 열망에서 출현하며, 이 측면에서 그것은 계급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은 여전히 즉자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노동‘계급’ 및 전적으로 분해된 상태에 놓여 있는 개개 노동자 사이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각자의 집단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사회적 내용에 따라 그 양태가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소해야 할 지방주의적 편협성, 즉 다른 말로 파편화된 문제들─이를 일국적 문제로 상승·전화시켜 전민적으로 납득가게끔 하는 과업은 (좌경적으로 발현되는) 경제주의와의 투쟁이기도 한 것이며, 또한 각각의 문제를 그 자체, 죽어있는 사물로 여기는, 운동에서 일종의 다원주의와 개체주의와의 투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투쟁은 오로지 투쟁의 대상이 지닌 편협성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사회적 총체성의 분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문제, 다시 말해 그들이 처음으로 천착한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국민화〉에 이르게 할 때라야 실재적인 것으로 될 것이다. 예컨대 한국에서 생태 운동은 생태 문제를 다룸에서 적지 않게, 그리고 암묵적으로 그것이 전통적으로 생태 영역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취급받는 영역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음을 전제한 채 사안을 건드리려 한다. 이는 주어진 특수한 형태의 사회모순에서 ‘생태 자체’를 선별하고 그것에 천착하려는 양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가장 순수하게 생태 영역이라 간주되는 문제들도 그것이 지니는 본질적 관계에 들어서면 그것이 한 나라에서 단일성을 띠는 형태로서의 도시의 제반 경제적 활동·식량·재정·주거, 심지어 군사적 외교 문제와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13. 〈국민화〉는 〈정치적 직관(intuizione politica)〉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정치적 직관〉이란 “겉으로 보기에 공통점이 없는 사실들을 연관 짓고 특정 목표에 부합하는 적절한 수단을 발견하는─따라서 문제가 되는 이해관계가 무엇인가를 밝히고 사람들의 정열을 분기시켜 그들을 특정한 행동으로 나아가게끔 지도하는17─것에서 신속함을”18 뜻한다. 그람시는 〈정치적 직관〉을 발휘하는 인격이나 정치적 조직체를 〈지도자(capo)〉라고 한다.19 앞서 그람시가 〈정치정당〉의 필연적 구성 요인을 염두에 두었을 때 〈지도자〉의 역량은 빈번히 〈정치정당〉의 역량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때 “공통점이 없는 사실들을 연관 짓고 특정 목표에 부합하는 적절한 수단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나열되어 서로 상이성 일반으로만 규정되어 있는 영역을 견강부회로써 엮는 것과 전혀 다르다. 이는 우리가 이 과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한 나라에서 “혁명적이지 않은”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 한편으로 이는 과업을 마치기 위한 도정에서 인식의 발전 과정이 어떤 법칙성을 띠고 재생되는가를 파악해야 할 일종의 지적인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람시의 정치사상을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역사적 현실과 논리의 관계, 그리고 이 관계가 만들어 내고 또 상대적으로 이 관계를 정립하는 인식의 문제를 철저히 규명하는 작업과 연결되어 있다.
§ 14. 〈정치정당〉이 최소 강령적 수준─부분적으로는 최대 강령적 요구와 맞닿은, 또는 특수한 시기에서는 이를 전적으로 포괄하는─에서 〈국민화〉를 달성하기 위한 전술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적은 항상 정부의 ‘개입주의’를 비난하며 ‘자유 수호’에 여념이 없는 반동적 부르주아 세력이다. 그러나 이들의 비난에도 〈정치정당〉은 항상 ‘좌익 개입주의’를 최대 강령과 연결해야 하며, 이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폐절을 맞이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경향을 창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정치정당〉이 달성해야 하는 낮은 단계의 과업은 일부 부르주아 이론가들에 의해 주창되는 “윤리적 국가(stato etico)”20라는 가상을 입고 있는 〈윤리적 국가〉의 진정한 실현을 목적성으로 지닌다. 또다른 측면에서, 견해의 형태로서 이러한 목적은 〈정치정당〉이 산재한 과제를 부분적이고 협소한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적 생활〉의 단일한 현상형태로서의 이데올로기, 즉 〈국가〉의 형태로 제출할 때 주요하게 나타나는 양상이며, 또 그래야 하는 양상이다. 그는 “현실에서 피지배자 내부의 분열에 공식을 고하려는 경향을 가진, 그리고 기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단일한 사회적 유기체를 창출하는 〈윤리적 국가〉”21를 이룰 수 있는 세력은 오로지 “국가의 종식과 자기 자신 계급의 종식을 달성하여야 할 목표로 산정하고 있는 사회집단일 뿐”22이라고 한다. 계급 일반의 종식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사회집단은 역사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유일하다.23
그는 “윤리적 국가”란 현상적으로 당대의 파시스트 이데올로그를 포괄하는, ‘개입주의적 국가’를 옹호하는 일련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파악할 것을 거부하였다. 단, 확실히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부르주아 이론가들이 “윤리적 국가”의 틀에서 벗어난 “국가”로 간주하는 것들 역시 어떠한 형태의 “윤리적 국가”임을 인정한다. 예컨대 본질적으로 “모든 국가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의 하나가 거대한 인구 대중을 특정의 문화적·도덕적 수준(또는 형태), 다시 말하여 생산력의 발전을 위한 요구, 따라서 지배계급의 이익에 부응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는 데에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윤리적 국가”24이다. 이는 “현실에서 다른 무수한, 소위 사적인 선도(先導)와 활동들”22과 함께 “지배계급들의 정치적·문화적 패권의 장치를 형성하는 것”22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헤겔과 같은 사상가들이 제출하였던 “윤리적 국가”의 역사적·개념적 맥락과 다르다. 실상 헤겔의 그것은 “부르주아의 뻗어 나가는 발전이 무한정해 보일 때, 그리하여 부르주아의 윤리성과 보편성이 주장될 수 있으며, 온 인류가 부르주아가 될 것이라고 주장된 때에나” 정치적으로 유효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윤리적 국가”이다.
그람시가 〈국가〉를 중심으로 운동의 판도가 재배치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데에는 부르주아 혁명이 전의 혁명과 비교되었을 때 지니는 특수성에 있다. 부르주아 혁명에서 부르주아 계급은 “끊임없이 운동하는 유기체, 전체 사회를 흡수한 능력이 있는 유기체, 전체 사회를 자기 자신의 문화적·경제적 수준으로 동화시킬 수 있는 유기체로서 자기 자신을 제시했다.”27 이는 자본주의라는 경제 혁명이 흩어져 있는 생산적 요소─소농 생산 체계, 도시 수공업 생산 기반들─를 기계제 대공업 생산 체계로 흡입, 그것을 고도로 집중화한 사회적 생산의 요소로 재편한 것과 정확히 대응한다. “그리하여 일체 국가 기능이 변화하였는데, 국가는 이제 ‘교육자’로 되었다.”2 그러므로 과거에, 주되게 분해된, 그리고 지방주의적 형태로 제기되었던 소박한 정치 문제는 (그것이 일부의 분야에서 종종 화젯거리로 되더라도) 〈연속성〉의 측면에서 그 중요성을 완전히 잃었다. 우리는 지배적으로 단순한 형태의 정치 문제도 〈국가〉 문제와 직결되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
1870년대를 기점으로 부르주아 계급은 ‘포화’하여 그들이 만들어 놓은 생산 체계와 함께 팽창하는 게 아니라 생산관계가 생산력에 반기를 들어 생산의 사회화를 억압하는 것만큼 그들 자신이 ‘분해’되는 상황에 있다. 이 계급은 “새로운 요소들을 동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일부를 상실”2하는데, 반대로 만약 이 새로운 요소들을 포함한 “사회 전체를 동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급이 있다면, 그 계급은 국가와 법에 대한 이러한 개념을 완성할 것”2이다. “근대적 의미의 혁명적 국제주의적 개념31은 명백한 국가 개념과 계급 개념과 상호 연관되는 것이며 또한 국가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경우는 계급에 대한 이해도 거의 있을 수 없다.”32 그리고 “국가에 대한 이해는 국가를 방어하는 데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공격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데에서도 있을 수 있다.”2
§ 15. 〈정치정당〉이 행사하는 힘은 어떻게 시민사회를 매개로 하여 〈정치정당〉이 대표하는 계급이 (최대 강령상) 장악해야 할 대상으로서, 그리고 넘어서야 할 대상으로서 국가의 구체적 성격을 (최소 강령적 수준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가? 〈정치정당〉은 “‘사실상의 권력’을 지녔고 패권적 기능을 행사하며 ‘시민사회’ 속의 이해 간의 갈등을 균형 짓는 역할도 수행”34한다. 부르주아 국가는 패권 행사의 결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동일한 자본주의 체제에 속하는 나라마다, 그 국가의 운용 방식에 차이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차이를 각각 자본주의 경제 구조의 특수성에서 자동적으로 도출해 낸다는 것은 막연한데, 왜냐하면 이는 그것의 국가의 구체적 특성을 결정짓는 최종 심급이 자본주의적 토대에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최종 심급으로서 사회경제적 토대가 국가 운용의 형태로 외화하는 경로에서 필연적인 방식으로 매개된 제 규정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1920-30년대에 그람시가 작성한, 방대한 규모의 문건 중 대부분에서 〈패권〉은 항상 중심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에 존재하는 각 계급에 일정량 주어지는 정치적 및 문화적 힘인 〈패권〉은 수많은 수단으로써 증감할 수 있는데, 그람시는 특히 〈국민화〉의 도정에서 〈지도자〉의 역량과 선전의 중요성, 종속적 집단과 굳건한 실천적-이론적 결합을 그 주요 수단으로 보았다.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자가 이 요소들을 통해 군중 각각의 이해를 〈국민적 생활〉에 얼마나 통일시킬 수 있는지이다. 예컨대 그가 1926년 9월에서 11월을 거쳐 작성한 「남부 문제의 몇 가지 측면」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진영 내에서, 토리노 공산주의자들은 부인할 수 없는 ‘점수’를 획득”35했는데, 이는 “남부 문제를 노동계급 전위의 관심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이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국민적 정책의 핵심 문제의 하나로 제시”2함으로써 달성되었다. 이로써 “토리노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패권’의 문제를, 말하자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사회적 기반과 노동자 국가의 문제를 구체적인 용어로 제기했다.”2 이어서 그는 “프롤레타리아가, 지배하는 계급, 지배적인 계급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인구 다수를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국가에 대항하여 동원할 수 있는 계급연합의 체계를 창출하는 데 성공해야만”38 함을 역설한다. “노동인구”란 노동 군중, 즉 광범한 소부르주아를 포괄하며, 그는 당대의 특수한 상황에서 이를 농민으로 들고 있다. 이는 각 나라가 처한 특수성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설정될 수 있는데, 만약 전국적인 수준의 경제적 예속이 다수의 노동 군중의 이해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다면 계급연합의 범위는 농민을 뛰어넘을 것이다. 이처럼 그람시는 자기의 정치사상을 구사하는 데서 압도적인 내용의 핵심을 일국 혁명에서 맞닥뜨린 수많은 모순을 〈국민적 생활〉에 유기적으로 결합해 나가는 것에 두었다.
추가적으로, 여기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사회적 기반”을 언급한 부분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같은 해 10월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명의로 전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편지를 보냈다. 여기에는 그가 당시 전연방 공산당 내부의 파벌 투쟁에서 ‘연합반대파’를 비판하면서, 당내 기어든 “조합주의적 정신”이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게 막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편지에서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사회적 기반으로서 〈패권〉이 중요성을 논하였다. 이처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사회적 기반”은 착취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도정에서 연속성을 가지며, 그 기반은 오히려 착취 사회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 기반은 단지 정치적일 뿐만이 아니라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성격도 지녔다.
정당 행동의 결과로써 발전하는 이러한 〈패권〉은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생생한 역관계를 띤 채,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 가장 초보적인 정치적 행동을 개시한 분자에게도 영향을 준다. 이제 이 〈패권〉의 운동이 쌓아 놓는 기반이 어떠한 정치-군사적 전술 형태를 가져야만 하는지 파악되어야만 할 것이다.
2025년 1월 13일
-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 2006,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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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책, 284.
- 같은 책.
- V. I. Lenin,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양효식 역, 파주: 아고라, 2018, 134.
- 위의 책, 136.
-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 2006, 284.
- “We and the Republican Concentration”, Selections From Political Writing 1919-26, 1978, 423-4.
- 〈지도자〉에 대한 다른 단편에서 그람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대다수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에서, 광대한 영토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농민 계급의 요구와 열망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투쟁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그것은 여전히 매일과 같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당에서] 매일 이해하고, 예측하며, 어떠한 조치를 실행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Leader””, Ibid., 210.)
-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 2006, 298.
- “정치에서 ‘지도자’는 개인일 수도 있지만 여럿의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크고 작은 정치체일 수도 있다.” (같은 책.)
- 번역서에 달린 59번 주석은 그람시가 “윤리적 국가”를 서술함에서 크로체와 무솔리니의 국가 이론을 염두에 두었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 구상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헤겔의 다양한 시기에 작성된 자연법에 관한 저술 및 『법철학 강요』에 이르기까지, 부르주아 국가론 정립자들이 전통적인 ‘자유방임주의’─소부르주아 사회주의자인 라살레가 부르주아의 “윤리적 국가”를 사회주의와 절충하기 위해 ‘야경국가(nachtwächterstaat)’라고 칭한─에 대항하여 자주 애용하였으므로 그람시가 두 사상가의 개념에만 천착하여 “윤리적 국가”를 제시했을 리는 없다. 이어지는 서술에서 “윤리적 국가”에 대한 헤겔의 견해─즉, “인륜국가(sittlichen Staat)”─가 다루어지는 부분은 이러한 추측에 근거를 더한다. 국가론적 측면에서 그 개념적 내용은 부르주아 사상가마다 일정한 차이를 지니고 있지만, 그람시에게서 이러한 일정한 차이에 집중하는 것은 이 “윤리적 국가”에 관한 견해들이 가지는 보편적 연관을 파악하는 데서 보조적인 역할만을 놓는다. 한편, 파시스트 국가론으로서 “윤리적 국가”는 역사적으로는 신헤겔주의자인 조반니 젠틸레(Giovanni Gentile)의 법철학과 관련이 깊다.
- A. F. Gramsci, Prison Notebooks, Vol. 3, ed. J. A. Buttingieg, NYC: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5, §179.; 위의 책, 306. 이 부분은 이탈리아어 원문에서 여덟 번째 단편에 포함된 §179.과 대조했을 때 오역인 것으로 추정되며, 영문 번역본을 참고하여 다시 번역하였다.
- Loc. cit.; 같은 책.
- 부르주아가 진정한 “윤리적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계급이 될 수 없음은 제국주의 시대에서 그들이 생산력을 관리하는 데 필연적으로 무능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 시기에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적 개입은 어떠한 진정한 “윤리적 국가”의 성격도 가질 수 없다. 그것은 행정부의 위기─부르주아 정부에 대한 군중의 신뢰 하락,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의 전반적 미비, 간단한 갈등에 대한 조정조차 성공시키기 어려운 요건 등 여러 가지를 포괄하는─를 동반하면서 계급 적대를 해소해 나가는 게 아니라 여러 개별적인 방식으로 증대시킨다. 그람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생산력을 관리한다는 과제가 자본주의 지도자들의 통제와 어긋나게 될수록 부르주아 계급의 희망은 더욱더 순수 신앙의 영역, 모호함과 초자연성의 영역으로 이끌린다. … 이것은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이 직면한 [부르주아 계급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이것이 전체 중서부 유럽을 슬그머니 기어 지나가며 전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행정부와 권위에 대한 위기의 존재 이유다.” (A. F. Gramsci, 「왜 부르주아들은 더이상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가?」, 『옥중수고 이전』, R. Bellamy 편, 서울: 갈무리, 2001, 262.)
- Prison Notebooks, Vol. 3, 1975, §179.;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 2006, 298.
- Loc. cit.; 같은 책.
- Loc. cit.; 같은 책.
- 위의 책, 308.
- 같은 책.
- 같은 책.
- 같은 책.
- 그람시가 지금 언급하고 있는 〈국민적 생활〉을 전제조건으로 지니는 이 “근대적 의미에서 혁명적 국제주의”는 이탈리아에서 중세기적 세계시민주의의 형태로 민중 사이에서 존속하는 ‘국제주의’─이탈리아의 몇 가지 문화적 전통을 강하게 고수하는 방식으로써 재생산되는 ‘문화적 국수주의’의 한 형태─와 대립을 이룬다. 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는다: “다음으로 검토할 요소는 이탈리아 민중의 이른바 ‘국제주의’인데, … 이 국제주의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현상과 결부된, 일종의 모호한 ‘세계시민주의’이다. 그 현상이란 가톨릭적인 중세의 세계시민주의와 보편주의로서 이탈리아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탈리아 자신의 ‘정치적·국민적인 역사’가 없는 상태에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이것은 근대적 뜻의 국민 또는 국가 의식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위의 책, 325.)
- 위의 책, 326.
- 같은 책.
- 위의 책, 299.
- 「남부 문제의 몇 가지 측면」, 『옥중수고 이전』, 2001, 357.
- 같은 책.
- 같은 책.
- 위의 책, 3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