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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심리-사회적 단위로서 인간: 인지 뇌 연구와 그것이 마르크스주의 인간관에 주는 시사점


Biopsychosoziale Einheit Mensch: Kognitive Hirnforschung und deren Impulse für das marxistische Menschenbild, Marxistische Blätter, 2009.


H. -P. Brenner | 독일 심리학자

     1. 인간의 “본질”에 관한 문제
     2. 인간이란 무엇인가?
    3.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통일
     4. R. S. 루빈슈타인: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의 매개에 대한 고찰
     5. 뇌인지과학과 유물론적 인간관
     불완전한 중간 결론

 

Prof. Dr. 헤르베르트 회르츠(Herbert Hörz)는 독일민주공화국(DDR) 과학 아카데미에서 소위 “생물-심리-사회적 통합체로서의 인간”을 연구하는 대규모 학제 간 연구 프로젝트의 구상 및 조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회르츠의 이해에 따르면, 이 접근법은 인간을 더 잘 연구하고 이해하기 위한 “탐색 및 연구 과제”였다. 그는 인간을 자연적 존재, 이성적 존재, 창조적 존재, 사회적 존재, 도덕적 존재로서의 통합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회르츠는 다음과 같은 정의를 도출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a. 구체적-역사적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이며, b. 자연적 및 사회적, 물질적 및 관념적, 이성적 및 감성적, 무의식적·비의식적·의식적 요인들이 개별적 특성으로 통합된 존재이고, c. 자신의 존재 조건을 점점 더 효과적이고 인간적으로 의식적으로 형성하는 존재이다.”1 마르크스주의적 인격 이론에서 인간에 대한 그간의 지배적이었던 이해는 오랫동안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제6테제에 대한 협소하고 절대화된 해석으로써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본질”은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로 파악되어야 한다.2

 

나는 이 주제를 일련의 논문들을 통해 다룬 적이 있었다.3

 

당시 나는 마르크스주의적 인격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생물학, 생리학, 심리학, 인류학의 새로운 경험적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에서 나타나는 개념적 결핍을 해결할 있는 성격 인간관을 통합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 신경생물학과 신경심리학 분야에서의 역동적인 발전을 목격한 후, 이러한 견해는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음에도 또한 동시에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적 인격 이론은 기존 지식의 ‘통합’과 독자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현대 연구 결과(예: 뇌과학 및 심리·신경생물학 분야)의 검토, 종합 및 일반화를 요구한다.

 

“인식이란 … 단순히 존재하는 것, 실재하는 것에 대한 목록 작성이 아니다. 물론 인식은 체계화된 관찰이기도 하지만, 그것 이상이다. 인식은 객관적-실재적 과정의 본질과 변화의 객관적 가능성의 영역, 그리고 그 변화를 억제하거나 추진하는 조건에 침투하는 것이다.”4

 


1. 인간의 “본질”에 관한 문제


 

인간종과 개별 주체를 구성하는 사물과 과정의 본질에의 침투는 인간이 노출된 사회경제적 및 정치적 과정의 분석을 넘어서는 것이다. 인간을 주로, 심지어 전부를 그가 속한 사회의 일부로서, 즉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이해하려는 수십 년간 거의 근절될 수 없었던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경향은 사실상 마르크스주의적 과학의 자기 이해, 즉 유물론과 충돌한다.

 

인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인간의 자연적, 생물학적, 유전적, 신경적 및 생리학적 존재 조건과 발달 요인에 대한 모든 경시를 끝장내야 한다.

 

회르츠가 이미 1976년에 경고한 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오늘날 인간이 지배하는 자연 과정이 이상 그의 사회적 본질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견해”를 주장하거나 용인할 수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 내의 자연적 요인들”에 관한 것이다. 사회적 행동에서 유전적 요인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그들이 인간의 사회적 본질을 부정하는 것에 반대하려는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분명히 옳다. 그러나 그것이 유전적 요인의 역할을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 기초가 이전에 실현된 것보다 더 광범위한 사회적 행동과 활동의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유전적 요인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인간이 개별적으로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유전 암호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전체 유기체의 발전에 필요한 특수한 능력의 형성을 위한 자연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5

 

현대 인간 존재의 “자연적 기반”의 역할에 대한 이 평가에서, 인간 행동에서 자연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 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와 같은, 더 구체적인 연구 과제를 도출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더욱 면밀하게 조사되어야 한다.6

 

현재 환경과 인간 간 상호작용에 관한 정보와 지식의 양은 전문가조차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해졌다. 특히 지난 10~15년 동안 신경생물학과 신경심리학 분야에서 얻어진 지식은 경이로울 정도로 많고 그 범위를 파악하기조차 어렵다.7

 

철학 및 심리학 역사에서 중심 주제였던, 예를 들어 심신 이원론 문제는 이러한 현대 신경생물학 및 신경심리학 연구 결과로 상당 부분 그 긴박성을 잃었다. 정신과 물질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신학적 영역으로 이어지는 신의 존재에 관한 주제는, 신체, 정신, 사회적 관계 간 상호 상관관계와 상호 침투에 대한 지속적인 지식 축적으로 인해 이전 세대가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답변할 수 있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당대에는 아직 답할 수 없었던,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로서의 인간 본질" 사이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 더 이상 단지 "역사적 유물론"의 일반 원칙에 대한 언급이나 "심리적 유물론"에 대한 요구로만 애매하게 남겨둘 필요가 없다. 변증법의 일반 원칙은 이미 G. W. F. 헤겔이 지난 수십 년간 자연과학 및 신경심리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지식을 예견하듯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적용한 바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이며, 내 주변에는 공기, 물, 동물 그리고 여타의 다른 것들이 있다. 모든 것이 여기서 분리된다. 그러나 철학의 목적은 이러한 무관심을 제거하고 사물의 필연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타자는 자기 자신의 타자에 대해 필연적인 관계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무기질적 자연은 단지 유기적 자연의 타자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의 필연적 타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두 자연은 본질적으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둘 중 하나는 오직 다른 것을 배제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고, 바로 그로 인해 그것과 관계를 형성한다.”8

 


2. 인간이란 무엇인가?


 

학이 탐구하는 모든 문제에서 중심적인 질문인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있어,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는 인격 이론뿐만 아니라 비(非)마르크스주의적 인류학과 심리학 또한 과거와 현재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C. F. 폰 바이츠제커(Weizsäcker)는 그가 1971년에 처음 발표한 저서 『자연의 통일성』에서 현대 인류학, 특히 현대 심리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그는 이 학문 분야들이 “아마도 가장 분열된” 것에 속할 거라 보았다: “이 전쟁터를 향해 여러 길로 군대들이 행군하고 있다. … 여기에서 곳곳에서 천재적인 최초 발견자들에 의해 직관적으로 포착된 실제 경험 영역이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이것이 동시에 이미 그 대가들과 더욱더 많은 추종자가 교조적인 일반화에 빠지도록 유혹하고 있다. … 문제의 핵심은 아마도 우리의 시대가, 중심적인 도덕적 관심이 ‘인간성’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통합적 인류학적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9

 

이러한 진단이 내려진 이후로 “영혼의 학문”인 심리학, 일반 심리학뿐만 아니라 성격 심리학 또는 “차이 심리학”에서도 여러 변화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정말로 더 나아갔는가? 우리는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졌는가?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적 인간관”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3.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통일


 

마르크스주의자들인 우리 스스로가 마르크스주의적 인간관을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로 축소한 것은, “생물-심리-사회적 통합체”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건설적인 개념적 논의 속에서 반드시 극복되어야 했고 실제로 극복되었다. 그러나 이는 일부 경우에 새로운 단순화로 이어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10

 

 

"약간의 생물학, 조금의 심리학, 그리고 충분한 양의 (마르크스주의적) 사회학을 섞으면 칸트가 말한 ‘인간이라는 수수께끼’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결국 막다른 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날 독일 연방공화국에서는 너무 많은 심리학자와 심리치료사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독일 연금보험공단이 재정 지원하는 재활 클리닉에서는 환자들을 ‘생물-심리-사회적’ 기준에 따라 병력을 조사하고 진단한 뒤, 4주에서 6주 정도의 재활 과정을 통해 다시 노동 시장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목표 아래 이러한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서구적” 형태로 나타나는 생물-심리-사회적 통합체로서의 인간 개념은 자칫하면 단순한 "전체론적" 만능 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 과정에서 “생물-심리-사회적 통합체”의 세 가지 층위 간의 심신적, 정서적, 이념적 및 사회적 매개 과정, 다양한 삶의 단계에서의 상이한 중요도, 그리고 이들 간 상호작용과 “개별적 특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점에서 W. 얀첸(Jantzen)이 “생물-심리-사회적 통합체” 개념과 관련하여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소를 단순히 “부가적으로 결합”하는 위험성을 경고한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타당하다.11

 

“생물-심리-사회적” 접근법의 추가 정밀화는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왜냐하면 현대 학문에서 인간과 성격에 대한 논의에 주요 학문 분야의 진지한 학자들뿐만 아니라 때로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지식”으로 인류를 현혹하는 사기꾼들까지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류의 기괴한 산물 중 하나는 “믿음의 유전자”나 “종교의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주장과 이로부터 탄생한 이른바 “신경신학(Neurotheologie)”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새로운 연구 결과는 (비록 의도치 않았으나) 1989년 이전에 존재했던 구 사회주의 국가의 마르크스주의적 심리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내놓았던 많은 가정과 주장을 검증해 준다. 이들의 이론적 유산은 오늘날 새로운 세대에 의해 전문성과 존중 속에서 받아들여져야 하며,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된다.

 


4. R. S. 루빈슈타인12: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의 매개에 대한 고찰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인간관 및 인격 이론 연구에서 소련 심리학의 성과는 여전히 유용한 인식 지침 도구로 남아 있다. 이에 따라 먼저 S. L. 루빈슈타인(Rubinshtein)이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의 흐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13

 

루빈슈타인에 따르면, 사회적 존재 양식의 형성, 즉 인간만의 고유한 존재 양식의 형성은 진화 과정에서 이루어지며, 심리적 발달의 더 깊은 생물학적 법칙들이 작용하는 법칙성을 무효화하지 않는다.

 

인간의 발달 심리학 문제와 관련하여 이는, 출생 순간부터 외적 및 내적 발달 조건이 분리될 수 없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적 발달 전제 조건에는 처음부터 일반적 감수성느끼고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되며, 이때 후천적으로 획득된 무조건 반사적 요소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 고정된 소질도 포함된다.

 

사회적 요소는 단순히 생물학적 요소 위에 덧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요소와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의 유기적 일부이다. 인간의 본성은 생물학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에서 모두 진화의 산물이다. 루빈슈타인은 마르크스주의적 인격 개념에서 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요소 간의 긴장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심리학에서 인격 문제는 그 해결뿐만 아니라 그 문제가 제기되는 방식에서도 본질적으로 출발하는 일반 이론적 입장에 의해 좌우된다. 성격 문제에 대한 이러저러한 해결 방식은 다시 심리학의 일반 이론적 개념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격이란 개념을 심리학에 도입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정신적 현상을 설명할 때 인간의 현실적 존재, 즉 물질적 존재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정신적 현상은 상호관계 속에서 구체적이고 살아있으며, 행동하는 인간에게 속한다. 그것들은 인간의 자연적 존재와 사회적 존재 및 그의 합법칙성에 의존하며, 그로부터 도출된 것이다.14

 

루빈슈타인은 따라서 인격의 두 가지 구성적 차원, 즉 인간의 “자연적 존재”와 “사회적 존재”를 언급하고 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둔 인격 심리학에서의 기계적 결정론에 반대하였다.

 

루빈슈타인은 심리학의 이론적 근본 문제, 특히 인격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심리학에서의 결정론적 원리를 변증법적 유물론적 방식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기본 공식은 간단히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외부 원인은 내부 조건을 통해 작용한다. 이로써 외타적 규정성과 내적 자발적 발달 간의 대립이 극복된다; 그 상호 내적 연관이 현상을 설명하는 기초가 되며, 이는 모든 현상 이론, 즉 심리적 현상 이론의 골격을 이룬다.”15

 

루빈슈타인은 이러한 주장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고전 이론가들의 관점에 입각해 논의하고 있다. 헤겔의 변증법적 전통을 따르면서도,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은 인간 행동에 대한 외적 조건과 내적 성향 간의 도식적 대립을 극복한다. 마르크스는 초기 저작에서부터 인간 발달을 그의 자연적·생물학적 기본 특성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파리 초고』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의 보편성은 온갖 자연을 그의 비유기적 신체로 만드는 보편성 속에서 실천적으로 드러난다. … ”16

 

마르크스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연적 존재이다. 그의 생물학적 구성과 유전적 소질은 인간의 진화, 행동, 그리고 인격 발달의 토대를 이룬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분자 유전적 조절 과정을 통한 생물학적·물리화학적 과정에 지배받는다. 환경 변화, 기후 변화, 돌연변이 유발 변화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계통 발생적 진화 과정에서 인류 기원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자연적 변형에 영향을 받는 이러한 생물학적 기반과 그것이 인간 개체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 발달과 인격 이론에서 바로 인식론적 유물론을 배제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인간의 생물학적 구성은 보다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인격관을 위한 모든 추가적인 논의의 전제 조건이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번째 전제 조건은 당연히 살아 있는 인간 개체들의 존재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사실은 이 개체들의 신체 조직과 그로 인해 자연과 맺는 관계이다. 모든 역사 서술은 이러한 자연적 토대와 그것이 인간의 활동으로써 역사 속에서 변화하는 과정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17

『파리 초고』를 자세히 살펴보면, “젊은 마르크스” 또한 이미 충분히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사고하고 있음을 있다. 따라서 시기의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단지 인간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에 해당한다. “젊은 마르크스” 역시 이미 생물학적인 것와 사회적인 간의 변증법을 이해하고 있었다.

 


5. 뇌인지과학과 유물론적 인간관


 

최근의 신경생리학 및 신경심리학 문헌(예: Birbaumer/Schmidt, 2006, 6판, Cechura, 2008, Damasio, 2007, 7판, Damasio, 2006, 6판, Grawe, 2004, Hüther, 2005, Kandel, 2008, Kasten, 2007, Zimbardo-Gerrig, 1999, 7판)에서는 마르크스, Rubinstein 및 기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이 인식한 정신-신체-사회(Psyche-Soma-Sozietät) 간의 연관성이 신경 수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로써 유물론적 인간관이 원칙적으로 어떻게 구체화를 이루고 동시에 입증되는지를 점점 더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저명한 뇌과학자인 G. 휴터 교수의 언급에서도 이러한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신경 과정, 뇌 조직 변화, 그리고 이를 유발하는 환경 요인 간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뇌가 어떤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지는 필연적으로 뇌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에 달렸다. 그리고 뇌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는 다시 그동안 그것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가에 달렸다. 이는 단지 해당 개체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그들 조상[의 활동]에도 영향을 받는데, 특정 유전소질(genetischer Anlagen) 형태로 해당 구획이 형성되고 그것이 일정 정도 작동하였다면, 이는 후손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전적 설계는 아직 완성된 뇌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으로부터 기능할 수 있는 뇌가 되려면, 부모 세대가 후손에게 이 설계에 필수적인 모든 것을 함께 전달해야 한다.”18

 

비록 일부 뇌과학자가 제출하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되고 매우 모순적인 결론에 대해 좌익적 시각에서 정당하게 비판이 가해질지라도, 오로지 그 경계를 강조하고 자연과학에 대한 인문학의 우위를 내세우는 논증으로는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갈 수 없다. 나는 S. 체쿠라(S. Cechura)가 다른 점에서는 공로가 있는 뇌인지과학에 대한 논의에서, 그로부터 도출된 다양한, 부분적으로 의심스러운 결론들의 대가로 실제 새로운 과학적 지식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그다지 발전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이 연구 분야의 결과에 대한 언급과 그에 부여된 명성은 암묵적으로 정신과학 공동체와 그 다원주의에 대한 비판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뇌과학 연구가 자연과학으로서 특별한 가치를 부여받아야 한다면, 정신과학은 결함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뇌과학이 인간의 행동, 감정, 사고를 설명하겠다고 나설 때, 그것은 기존의 정신과학과 경쟁 관계에 들어선다. 이를 자연과학으로써 수행하겠다는 주장을 내세움으로써 뇌과학은 단순히 기존 학문에 포괄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학보다 더 강한 타당성을 주장한다.”19

체쿠라는 이 비판의 근거로, 미국의 신경생리학자이자 심리학자인 A. 다마지오(A. Damasio)의 국제적 베스트셀러 『데카르트의 오류(Descartes’ Irrtum)』의 한 구절을 들고 있다. 다마지오는 고통과 쾌락이라는 생물학적 감각 기제가 인간의 ‘이성’이 생기기 전 진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을 올바르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단순한 기제가 “다양한 복잡성 수준과 존재 조건에 적용된 결과”로 인간의 권리즉, 인권를 가져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인다.20

 

체쿠라는 이러한 언급을 자신의 비판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하며, 그에 따르면, “인지뇌과학은 더 이상 생물학적 사실과 정치적 결정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21 또 그는 뇌과학이 원칙적으로 “개인과 사회 간의 대립을 마치 자연스러운 것처럼 전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과 문화를 파괴로 몰고 가는 사회적 대립폭력적으로 자행되는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며, 그것은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움직이는 환경의 기반을 형성한다. 이렇게 하여 사회적 대립은 마치 자연적인 것처럼 변환되며 정당화된다.”22

 

체쿠라는 적어도 다마지오가 그러한 방식을 옹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반대로 그는 생물학적 메커니즘과 인간종에게 매우 중요한 사회적 및 문화적 메커니즘의 차이에 대해 분명히 지적한다. 그는 동시에 신경과학이 뇌와 정신 문제에 있어서 결코 “최종적인 해답”을 주장할 수 없으며, 다른 모든 학문이 이 분야에서 실패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현대 신경생물학의 한계”23를 강조하며 말한다:

“뇌와 정신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수수께끼에 대해 단순한 답을 찾을 수는 없으며, 신경계의 다양한 구조적 수준에 있는 무수한 구성 요소에 암호화된 다양한 답변만이 존재할 뿐이다. 모든 인간 유기체는 유사한 존재들로 구성된 집단 안에서 활동한다. 정신과 행동은 그러한 집단에 속하고 특정한 문화적 및 물리적 환경에서 활동하는 개인들에 의해 나타나며, 이는 앞서 언급된 [두뇌] 회로와 그 활동 패턴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더더욱 유전자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뇌가 인간의 정신과 행동을 생성하는 방식은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때에만 만족스럽게 파악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과제가 정말로 거대한 규모를 띠게 만든다.”24

“인문학(자)들”이 단일하고, 공통된 이론적 및 이데올로기적 견해에 따라 이끌리는 하나의 패러다임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신경생물학자와 신경심리학자들 또한 자신들의 이른바 인문학(자)들에 대한 우위에 관하여 의견이 일치하는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25

 

현재 가장 국제적으로 유명한 뇌 연구가이자 2000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인 E. 캔델(E. Kandel)은 유대계 오스트리아인 연구자로, 어린 시절 나치를 피해 가족과 함께 망명 생활을 했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뇌 연구자들의 사고와 연구가 얼마나 학제간적인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뇌 연구자들 사이의 정치적 연구와 과학적 연구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지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음를 알 수 있다.

 

그의 위대한 스승 중 한 명인 H. 그룬트페스트(Grundfest, 1904-83)는 신경세포 내 전기 신호 전달 분야의 개척자였으며, 이 공로로 1944년 생리·의학 부문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는 매카시즘 하에서 공산주의자 색출의 희생자가 되었다. ”매카시 위원회 청문회에서 그룬트페스트는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는 제5차 수정헌법을 근거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동료들의 정치적 신념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기를 거부했다." (Kandel, p. 73 f.)

 

매카시와 같은 반동 세력이 한 신경생리학자를 공산주의적 선동과 ‘공산주의 적대국’ 소련을 위한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비난한 것은, 사고 과정, 지각, 감정과 의식의 발생에 대한 유물론적 설명이 함축하는 일반적인 철학적 및 세계관적 결과에서도 유래한다.

 

이러한 설명이 반드시 유물론적 세계관과 이에 따른 정치적으로 다소 좌경화된 태도로 직결될 필요는 없다는 점은 196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호주 출신 의사이자 신경과학자인 J. C. 에클레스(Eccles)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에클레스는 진화 이론의 예시를 통해 근본적인 새로운 자연과학적 발견이 여러 세대에 걸쳐 전체적인 세계관에 얼마나 엄청난 결과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100년 이상 전에 인간의 발달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사고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은 신이 특별히 창조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곧 명확해졌다. 인간은 점진적인 유전적 변화와 자연 선택이라는 엄격한 과정 간 대화로 생각할 수 있는 과정을 통해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모든 불필요한 발달은 가차 없이 제거되었다. 이 과정을 ‘적자생존’이라고 불렀다. 이 진화 이론이 인류에게 복잡한 결과를 가져온 이래로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사고하는 사람들의 감정적 삶에 미친 영향은 몇십 년에 걸쳐 나타났으며, 이는 행동과 반응의 과정으로 이어졌다.”26

 

Eccles 자신은 신경학 분야에서 탁월한 지식을 갖추었음에도 (혹은 그 때문에?) 신경학적 환원주의에 강하게 반대하고, 인간에 대한 ‘유물론적, 기계론적, 행동주의적 및 사이버네틱스적 개념(들)’으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분리한 사람 중 하나로 되었다.

 

“나는 내 뇌와 관련된 모든 명제를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내 고유의 경험하는 자아가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창조적인 진화 과정은 나에게 나의 존재에 대한 단지 불충분한 설명일 뿐이다. … 나는 지금까지 시도된 인간 본성에 대한 설명에서 커다란 미지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구가 우리를 더 나아가게 할수록, 우리 각자는 상상력, 가치에 대한 감각, 그리고 지식 체계화에 대한 능력을 가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존재로서 우리의 존재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신비를 점점 더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인간과 그 전체 지식의 역사는 기록된 언어라는 암호화된 형태로 저장되고 전달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식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며 현대 인간에게 자연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부여한다. 비록 인간 자신이 동물이며 진화의 최고 산물이지만, 그는 동물을 능가하여 이상, 예술, 가치, 과학, 그리고 무엇보다 자아 인식을 가진 또 다른 종류의 존재로 간주될 수 있다.”27

 


불완전한 중간 결론


 

역사적 유물론적 접근법으로써 “인간 본성“에 관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현대 신경심리학과 뇌과학의 연구 성과는 무엇보다도 유기적 소질과 환경적 영향이 얼마나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입증하는 데 있다. 환경 역학은 행동 방식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E. 칸델(Kandel)과 그의 동료들이 수행한 연구에서 인상적으로 입증된 바와 같이, 신경세포 집합체의 유기적 변화와 성장 과정에도 매우 유연한 재구조화와 적응을 일으킨다.

 

개인의 소질(Anlagen)은 신경 연결이 ‘세포 집합체(cell assemblies)’ 형태로 형성되고, 사회적 요구와 반응에 따라 신경계 내에서 변화와 함께 고정될 때 비로소 발현된다.

 

이러한 변화는 환경적 요구에 대한 유연한 반응이다. 이는 심리적 요소와 유기적 요소가 매우 밀접하게 기능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Kandel과 그의 동료들이 연구한 유기적 신경계의 변화 등을 포함한 단순한 일차적 신경학적 및 생리학적 모델만으로는 인간의 개별적 특성과 총체성에 대한 생물-심리-사회적 본질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필수적이며, 유물론적 세계관과 인간관이 옳다는 명백한 증거로 작용한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한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라는 통일된 개념 안에서 정의되고 발전한다는 것을 점점 더 입증하고 있다.<>

 

번역: 노준엽 | 집행위원

 

2025년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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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örz, H. (1988). Der Mensch als biopsychosoziale Einheit. Wesen, Genese und Determinanten. In E. Geißler & H. Hörz (Hrsg.), Vom Gen zum Verhalten. Der Mensch als biopsychosoziale Einheit, Berlin/DDR, S. 10.텍스트로 돌아가기
  2. K. Marx: Thesen über Feuerbach, MEW Bd. 3, S. 5-7.텍스트로 돌아가기
  3. Brenner, H. P. (2002). Marxistische Persönlichkeitstheorie und die „bio-psychosoziale Einheit Mensch“. Studie zur Entwicklung des Menschenbildes in der DDR, Bonn.텍스트로 돌아가기
  4. H. Hörz: Mensch contra Materie?, Berlin/DDR 1976, S. 103.텍스트로 돌아가기
  5. H. Hörz: a. a. O., S. 120.텍스트로 돌아가기
  6. Derselbe, a. a. O., S. 122.텍스트로 돌아가기
  7. 참고: 과학 잡지 Gehirn & Geist의 2008년 1호. 특히 철학적 및 세계관적 문제에 대한 두 차례의 유익한‘라운드 테이블’ 토론이 수록되어 있음.텍스트로 돌아가기
  8. G. W. F. Hegel: Enzyklopä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 § 119, Zusatz 1. Zit. n. Rolf Löther: Biologie und Weltanschauung, Schwerte/Ruhr, 1972, S. 66.텍스트로 돌아가기
  9. Weizsäcker, C. F. von (1995). Die Einheit der Natur, München, S. 28.텍스트로 돌아가기
  10. 참고: H.-P. Brenner (2002). Marxistische Persönlichkeitstheorie und die „bio-psychosoziale Einheit Mensch“. Studie zur Entwicklung des Menschenbildes in der DDR, Bonn.텍스트로 돌아가기
  11. W. Jantzen: Was ist der Mensch? Konturen einer marxistischen Anthropologie. In Marxistische Blätter 5/05, S. 51­5.텍스트로 돌아가기
  12. 〔역자 주〕 소련 심리학자 Sergei Leonidovich Rubinstein(1889-1960).텍스트로 돌아가기
  13. 다음에 제시할 Rubinstein의 입장에 대한 설명은 2002년 필자의 저서 7.2장에서 다루고 있다. 지면 제한으로 인해 소련 심리학자 Vygotsky, Leontjew, 특히 신경심리학자 Luria의 중요한 역할을 다룰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Luria는 현대 신경심리학과 신경생물학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구자들이 지배하는 현재의 국제적 신경심리학계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14. Rubinstein, R. S. (1983). Sein und Bewusstsein. Die Stellung des Psychischen im allgemeinen Zusammenhang der Erscheinungen in der materiellen Welt, Berlin/DDR, S. 331.텍스트로 돌아가기
  15. Rubinstein, a. a. O., S. 9-12.텍스트로 돌아가기
  16. Marx, K. (1844).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in MEW Erg. Bd. 1. Teil, S. 515.텍스트로 돌아가기
  17. Marx, K. / Engels, F. Die deutsche Ideologie, in MEW Bd. 3, S. 20-1.텍스트로 돌아가기
  18. Hüther, G. (2005). Bedienungsanleitung für ein menschliches Gehirn, Göttingen, S. 23.텍스트로 돌아가기
  19. Cechura, S. (2008). Kognitive Hirnforschung, Hamburg, S. 9.텍스트로 돌아가기
  20. Damasio, A. (2007). Descartes’ Irrtum, Berlin, S. 345.텍스트로 돌아가기
  21. Cechura, a. a. O., S. 40.텍스트로 돌아가기
  22. Derselbe, S. 41.텍스트로 돌아가기
  23. Damasio, a. a. O., S. 340.텍스트로 돌아가기
  24. Derselbe, S. 342­-3.텍스트로 돌아가기
  25. 관련 논쟁은 Gehirn & Geist 2008년 1호에 „Gegenwart und Zukunft der Hirnforschung“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11명의 주요 신경과학자가 발표한 선언문과 그에 대한 반론에서 확인할 수 있다. (Gehirn & Geist, 1/2008, S. 16­-25 참조)텍스트로 돌아가기
  26. Derselbe, a. a. O., S. 3.텍스트로 돌아가기
  27. Derselbe, S. 8 f.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