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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변증법적 논리학과 형식논리학에서 추상과 구체의 개념


1장. 구체적인 것에 대한 변증법적 개념과 형이상학적 개념



α. 변증법적 논리학과 형식논리학에서 추상과 구체의 개념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이라는 용어는 일상적 언어에서 그리고 전문 서적에서 다소 모호하게 쓰인다. 따라서 사람들은 ‘구체적 사실’과 ‘구체적 음악’, ‘추상적 사고’와 ‘추상적 회화’, ‘구체적 진리’와 ‘추상적 노동’에 대해 듣는다. 이러한 용법은, 각각의 경우에 이 단어들 의미의 미묘한 차이의 존재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처럼 보이며, 그 용법의 완전한 통일을 요구하는 것은 말도 안 되게 지나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단순히 단어나 용어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 용어들과 역사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과학적 범주들의 내용을 다룬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논리학의 범주들로서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에 대한 규정은, 그것들이 과학적 사고의 기본적인 원리들을 규명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이 과학[논리학]의 틀 내에서 안정적이어야 하고 모호하지 않아야 한다. 변증법적 논리학은 이 용어들을 통해 그것의 수많은 근본적 원리를 표현한다(‘추상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는 항상 구체적이다’, ‘추상에서 구체로의 상승’ 테제, 등등). 그러므로 추상과 구체의 범주는 변증법적 논리학에서 매우 명확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것은 실재에 대한 사고의 관계, 사고에 있어서 실재의 이론적 재생산의 방식 등, 변증법적 유물론의 진리 개념과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단어들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들과 연관된 변증법의 범주들을 다루고자 할 때, 그것들의 정의에서의 (부정확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어떤 분방자재(奔放自在), 명확성의 결여 혹은 불안정성도 필연적으로 사물의 본질에 관한 왜곡된 개념을 이끌어 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수세기를 거쳐 많은 저작 속에서 그것들에 관습적으로 연관되어 온 함축적 의미로부터, 관습의 영향 혹은 변증법적 논리학의 명제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자주 방해한 단순한 오류에 의한 영향으로부터 추상과 구체의 범주들을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다.

 

*   *   *

 

그 일반적인 형태에서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의 관계 문제는, 그 문제가 순전히 철학적, 인식론적 문제이며, 그것[형식논리학]의 기능에서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형식논리학에서 제기되거나 해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개념들의 분류에 관한 문제인 한, 즉 개념들을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으로 구분하는 문제인 한에서 형식논리학은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범주들에 대한 매우 명확한 해석을 불가피하게 취하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구분의 원칙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분석적으로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 대해, 형식논리학에 관한 책의 대부분 저자는, 비록 약간의 유보나 수정은 할지라도, 특정한 전통을 확실히 만장일치로 지지한다. 이 전통적인 관점에 따르면, 개념들(혹은 관념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써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구체적 개념은 실제로 현존하는 명확한 대상 혹은 대상들의 종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추상적 개념은 대상들 자체로부터 정신적으로 추상된 대상의 성질을 반영하는 것이다.”1

 

“구체적 개념은 사물들, 대상들 및 현상들의 그룹들, 종류들과 관계되거나, 혹은 각각의 사물들, 대상들 또는 현상들과 관계되는 어떤 것이다. … 추상적 개념은 대상이나 현상의 성질이 성질이 사고의 독립적 대상으로 받아들여질 때에 대한 개념이다.”2

 

“구체적 개념은 그 대상들이 실제로 물질적 세계에서 사물들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 추상적 개념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어 파악된 어떤 대상의 성질을 반영하는 것이다.”3

정의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된 예시들은 대부분 동일한 유형이다. 구체적 개념들은 ‘책’, ‘강아지’, ‘나무’, ‘비행기’, ‘상품’과 같은 개념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흔히 일컬어지고. 반면에 추상적 개념은 ‘하얀색’, ‘용기’, ‘미덕’, ‘속도’, ‘가치’ 등으로 설명된다.

 

이 예시들을 통해 판단해 볼 때, 그 구분은 사실상 잘 알려져 있는 G. I. 첼파노프(Chelpanov)의 논리학 교과서와 동일하다. 첼파노프 정의에 대한 활용들은, 그가 철학적으로 전형적인 주관적 관념론자였기 때문에, 대부분 그 구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철학적–인식론적 토대와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 추상과 구체로의 개념들의 구분에 대한 그의 견해가 있다:

“추상적 용어들은 사물의 질들 혹은 속성들, 상태들, 혹은 운동들을 지시할 때 쓰이는 용어들이다. 그것들은 사물과는 별개로 그 자체로서 고려되는 질들을 의미한다. … 구체적 개념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명확한 존재를 갖는 것으로 간주하는 한에서, 사물들, 대상들, 개인들, 사실들, 사건들, 의식의 상태들의 개념들이다. … ”4

‘용어(term)’와 ‘개념(concept)’의 구별은 첼파노프에게는 아무래도 무관한 문제이다. ‘의식의 상태들’은 그의 입장에서 사실들, 사물들, 그리고 사건들과 같은 범주 속에 있다. ‘명확한 존재를 갖는 것’은 그에게 ‘개인의 직접적인 의식 속에서’, 즉 그의 관찰, 개념, 혹은 최소한 상상 속에서 ‘명확한 존재를 갖는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첼파노프는 구체적인 것을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단일한 사물, 혹은 이미지로서 인식(상상)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간주하고, 그는 추상을 그렇게 상상될 수 없고, 오직 그렇게 생각될 수만 있는 어떤 것으로만 간주한다.

 

어떤 것을 생생하게 인식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 혹은 무능력이 사실상 추상과 구체의 구분에 대한 첼파노프의 기준이다. 이 구분은, 철학적 관점에서 아무리 충격적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명백하다.

 

일부 저자들이 관련된 예시들의 실제적인 유형을 바꾸지 않고 분류에 대한 이 철학적-인식론적 해석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 분류는 비판에 직면했음이 증명되었다.

 

만약 누군가가 구체적인 개념들 가운데에 물질적 세계의 대상들에 속하는 것만을 포함한다면, 강아지가 가치와 함께 구체적인 것에 속하게 될 것임에 반해, 켄타우로스[반인반수의 괴물]나 아테나 팔라스는 기개나 미덕과 함께 추상적 개념들로 간주될 것임이 확실하다.

 

그러한 분류법은 논리적 분석에 무슨 쓸모가 있을까? 전통적인 분류법은 완전히 이질적인 요소를 그 속에 도입하는 이러한 종류의 수정으로써 파괴되거나 혼란스러워졌다. 반면, 그 어떤 새로운 엄격한 분류법도 얻어지지 않았다.

 

첼파노프가 제시한 것에 구분의 새로운 원칙 혹은 기초로 대항하려는 몇몇의 저자들의 시도들 또한 적절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예컨대, 콘다코프는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으로의 개념 구분이 “개념들 내용상의 차이”5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구체적 개념들은 사물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과, 추상적 개념들은, 이러한 사물들의 속성들과 관계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콘다코프에 따르면, 이 구분이 완전해지려면 속성들도 관계들도 구체적 개념들로 인식될 수 없다. 어떻게 사물들의 속성들과 관계들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 어떠한 사물과 종류를 인식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한 것으로 남는다. 사실, 어떤 사물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것의 속성들과 관계들의 온전한 총체에 대한 개념을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 사물에 대한 그 어떤 생각도 필시 그 사물 몇몇 속성에 대한 생각이라는 것이 밝혀질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떠한 사물에 관한 생각에서 그 사물 속성들에 대한 모든 생각을 제거한다면, 그곳에는 이름 외의 그 어떤 생각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내용에 따른 개념들의 구분은 실제로는 이것을 뜻한다: 구체적 개념은 내용 없는 개념인 반면, 추상적 개념은 매우 빈약하지만, 몇몇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구분은 완성될 수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부정확해질 것이다.

 

아스무스가 제시한 구분의 원칙인 “그 개념들이 가진 대상들의 실제적 존재”6는 마찬가지로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이 공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구체적 개념들의 대상들이 존재하는 반면, 추상적 개념들의 대상들은 비존재하는가? 하지만 추상적 개념들의 범주[즉 추상적인 것]는 미덕뿐만 아니라 가치, 무게, 속도, 즉 그 존재가 비행기나 집과 같은 것들만큼이나 실재하는 대상들도 수용한다. 만약 누군가가 집, 나무, 비행기 등과 같은 다른 개별적인 것 외에 연장(延長), 가치, 혹은 속도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말한다면, 그는 명백하게 개별적인 것들은 또한 연장, 무게 및 물질적 세계의 다른 속성들 바깥에 존재하며 오직 머릿속에서만, 오직 주관적 추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여기에도 거기에도 없다. 그래서 더욱더 그것은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으로의 개념 구분의 기준으로 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개별적인 사물들이 그 사물들 존재의 보편적 법칙 및 형태보다 더 실재적이라는 잘못된 인상만을 창조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몇몇 저자들이 도입한 첼파노프식 구분에 대한 수정안들이 지극히 부절적하고 형식적이며, 또한 논리학 서적들 각각의 저자가, 자신들을 전통적인 분류법을 어떠한 개선도 없이 단지 그것을 혼동시킨 개별적 교정에 한정시킴으로써, 이 구분에 대해 대단히 중요한 유물론적 분석을 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추상과 구체의 개념들에 약간의 명확성을 더하기 위해 그 개념들의 역사로의 작은 여행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번역: 노준엽 | 집행위원

 

2025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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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 I. Kondakov, Logika (Logic), Moscow, 1954, 300.텍스트로 돌아가기
  2. M. S. Strogovich, Logika (Logic), Moscow, 1949, 87.텍스트로 돌아가기
  3. V. F. Asmus, Logika (Logic), Moscow, 1947, 36.텍스트로 돌아가기
  4. G. I. Chelpanov, Uchebnik Logiki (Textbook on Logic), Moscow, 1946, 10-1.텍스트로 돌아가기
  5. N. I. Kondakov, Op. cit., 300-1.을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
  6. V. F. Asmus, Op. cit., 36.을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