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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els’s Emergentist Dialectics”, Monthly Review, 72 (6), 2020: 18-27.
K. Kangal | 난징대학 철학과 교수
현대 자연과학자와 철학자, 마르크스주의자와 비마르크스주의자 모두 다양한 이유와 상황에 따라 변증법적 유물론·과학적 사회주의의 공동 창시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대한 존경심을 표해왔다.
197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은 “자연사(自然史)가 유물론의 필수적인 영역이라는 생각은 [카를] 마르크스, 더 자세히는 엥겔스에 의해 주창되었다”고 썼다. 자연과학의 현대적 발전은 변증법적 유물론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철학적 문제를 제기해 왔다. 엥겔스가 1870년대와 80년대에 『자연변증법』을 작성하고 있었을 때, “기계론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자연의 역사적 발전이라는 이념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자연과학이 부상하는 가시적인 경향이 있었다.” 엥겔스는 당시 자연과학에 이미 암시되어 있던 것을 명시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자연과학은 “과정의 세계와 궤도의 세계(the world of processes and the world of trajectories)가 어떻게 서로 연결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몰두하고 있다. 엥겔스가 진행하였던 연구는 완성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가 남긴 것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철학적 이해를 풍부하게 하고 우리 시대의 자연과학에 대한 우리의 방향을 개선하는 데 계속 도움을 주고 있다.1
생물학자 J. B. S. 홀데인(Haldane)은 1939년 『자연변증법』 첫 번째 영문판 서문에서 엥겔스가 자연철학과 자연과학에 기여한 바는 그의 『반뒤링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고 썼다. 그러나 보다 확장된 『자연변증법』은 비교적 최근인 1920년대에 발견돼 출판되었다. “엥겔스의 사유 방식이 우리에게 더 친숙한 것이었다면, 지난 30년 동안 일어난 물리학에 관한 우리 생각의 변화는 더욱 순조롭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다윈주의에 대한 그의 발언이 일반적으로 알려졌더라면, 나는 어느 정도 혼란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2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엥겔스의 1876년 『자연변증법』에 실린 소론 「유인원의 인간화에서 노동의 역할」에 관해 논평하면서, 엥겔스가 노동의 역할을 핵심으로 하는 인간 진화 이론에 대한 “훌륭한 폭로”를 우리에게 제공했다고 썼다. 굴드는 특히 인간의 “손은 노동의 기관일 뿐만이 아니라 노동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엥겔스의 견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 … 엥겔스는, 인간이 물질적 환경을 지배하는 법을 배우면서 원시 사냥에 농업, 방적, 자기 제작, 항해, 예술 및 과학, 법률 및 정치와 같은 다른 기술을 습득하였다고 주장한다.”3 또한 다른 곳에서 굴드는, 모든 인간 진화는 유전자-문화 공진화(gene-culture coevolution)와 함께 서고 무너진다고 주장했으며, “유전자-문화 공진화에 대한 19세기 최고의 사례는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876년에 쓴 놀라운 소론에서 제시된 바 있다”4고 하였다.
그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진화생물학자인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는 자신의 생물학에 대한 철학적 개념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와 놀랍게도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의 단편 『변증법적 유물론의 뿌리(Roots of Dialectical Materialism)』는 키릴 M. 자바드스키(Kirill M. Zavadsky)를 비롯한 다양한 과학자들과 대담하기 위해 소련으로 간 미국의 생물학 역사가 마크 아담스(Mark Adams)의 짤막한 일화로부터 시작된다. 대담 중 자바드스키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당신은 에른스트 마이어에 대해 아십니까?”/애덤스: “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자바드스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인가요?”/애덤스: “제가 아는 한 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닙니다.”/자바드스키: “그의 저술은 순수한 변증법적 유물론을 보여주고 있기에 매우 흥미롭습니다.” 마이어는 처음에는 자바드스키의 논평에 의아해하였지만, 후일 그는 실제로 과정성(過程性), 보편적 상호 연관, 자연의 무진성(無盡性)과 같은 변증법적 유물론적인 원리의 지지자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원리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아마도 대부분이 자연사와 변증법적 유물론의 독립적인 성격에 의해 도달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 변증법적 유물론은 엥겔스와 마르크스에게 자연에 대한 일반 철학이었다. 그것은 주로 물리주의와 데카르트주의의 소거를 통해 달성되었다. … 궁극적으로 모든 과학의 동등한 당위(equal justice)로서 포괄적인 자연철학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생물학 등 다양한 ‘단위적인’ 과학(‘provincial’ sciences)의 특성과 원리를 개발하는 것이 요구된다.”5
“당시 과학자들의 정적인 개념은 과학이 곧 다루어야 할 수많은 모순덩어리에 대해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으며, 그들은 자연이 명백히 조화될 수 없는 적대와 차이로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더 높은 조직 수준에서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양질 전화, 대립물의 통일, 부정의 부정과 관련하여 잘 알려진 법칙은 모두 과학적 사고에서 일반화되었다.”6
아르헨티나의 과학철학자 마리오 붕게(Mario Bunge)는 엥겔스의 변증법과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적대로 잘 알려져 있다.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붕게는 자기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소련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보니파티 M. 케드로프(Bonifaty M. Kedrov)와의 만남에서 변증법의 오래된 문제가 소환되었다. “응용 수학자 미르체아 말리타(Mircea Malitza)는 … 자신 아파트에서의 모임에 우리를 타르스키(Tarski), 케드로프 및 다른 사람들과 함께 초대하였다. 케드로프에게 마르크스주의와 나의 입장 간 불일치 중 하나는 내가 변증법을 거부함에 있다고 하였을 때,” 케드로프는 아이러니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붕게 동지.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변증법을 여섯 번만 언급합니다.”7 그러나 일부 측면에서 붕게는 다음과 같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인정하였다: “고요함은 투쟁과 균형을 숨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 변증법 우리에게 고요함을 불신하라고 가르쳤다. 왜냐하면 고요함은 불안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분쟁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가르쳐 주었다. 일부 분쟁은 새롭고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8 “변증법의 그럴듯한 핵심은 첫째, 모든 것이 어떤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가설과, 둘째로, 모든 과정의 특정 지점에서 새로운 특성이 나타난다는 가설로 구성된다.”9 그는 또한 다른 곳에서, 자신의 체계가 아님에도 G. W. F. 헤겔의 방법을 변증법적 유물론에 통합하려는 엥겔스의 주장을 높이 평가했다.10
독학적인 박식가인 엥겔스가 어떤 식으로든 다음 세대의 철학자와 자연과학자들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사용한 연구 자료가 대체로 불완전하고 연대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동반한다. 1920년대 초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은, 출판을 위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정리하던 중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이 출판될 가치가 있는지 고민해야 했다. 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이에 관해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그 원고가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가치가 없지만, 확실히 엥겔스의 지적 전기에 관한 흥미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말했다.11 또다른 예를 들자면,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과 리처드 레빈스(Richard Levins)의 『변증법적 생물학자』는 다음과 같은 헌사를 담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틀린 것으로 되어있었지만, 계산된 지점에서는 옳았던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12 마지막으로 분석철학자 힐러리 퍼트남(Hilary Putnam)도 비슷하게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나는 엥겔스가 당대의 가장 과학적으로 반식한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많은 부분을 잘못 알고 있었지만, 엄청난 일반 과학 지식을 갖고 있었고, 과학철학에 관한 저서인 『반뒤링론』을 썼다. … 이 책은 무엇보다도 과학철학에 관한 여러 면에서 합리적인 문헌이다.”13
엥겔스가 자신의 작업 중 더한 노력이 필요한 부분의 미래 결과를 숱하게 예측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에 대해 그는 『반뒤링론』의 두 번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설명에는 매우 서투른 점이 많으며, 오늘날에는 조금더 명료하고 확정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 역시 허다하다. … 이론 자연과학의 발전이 나의 이 노력을 대부분 혹은 완전히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대량으로 축적되어 가는 순전히 경험적인 발견들을 체계화하여야 할 단순할 필요 때문에만도 이론 자연과학에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혁명은 제아무리 완강한 경험론자라 하여도 자연 과정의 변증법적 성격을 점점 더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14
현재의 관점에서 이 지적 거인의 엄청난 성취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주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철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엥겔스의 작업에서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은 무엇인가?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학자들은 엥겔스 변증법에 창발주의적 성격이 두드러져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예를 들어, 폴란드의 역사가 즈비그니에프 A. 조르단(Zbigniew A. Jordan)은 “창발주의적 진화의 중심 개념은 『반뒤링론』과 『자연변증법』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엥겔스의 창발주의적 변증법에 따르면, “물질적 현실은 다층 구조를 지니며; 이러한 각 수준은 일련의 독특한 속성과 환원할 수 없는 법칙을 특징으로 하고; 각 수준은 하위 수준에서 작동하는 것과 관련하여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법칙에 따라 시간적으로 이전 수준에서 나타난다.” 창발이라는 개념은 공존하고 상호 의존하는 물리 체계 사이의 상호 연관에 관한 과학인 변증법에 대한 엥겔스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운동이 물질의 존재 방식이라는 엥겔스의 유명한 말은, 물질이 자연의 새로움과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다. “물질은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고, 점점 더 높은 형태의 조직을 생산할 수 있다는 원칙은 엥겔스가 처음 공식화한 이래로 변증법적 유물론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 되었다.”15 스코틀랜드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하이먼 레비(Hyman Levy)가 적절하게 공식화한 것처럼, 진화에 관한 변증법적 개념은 “살아 있는 동식물의 복잡한 형태가 거의 셀 수 없이 많은 시대를 거쳐 점점 더 기본적인 형태로 연결되는 단순한 형태에서 출현”16했음을 암시한다.
붕게조차도 “변증법적 유물론은 질적 새로움이나 창발을 강조하는 장점이 있다”라는 믿음, 또는 마이어가 “조직 수준의 계층 구조, 각 조직에서 서로 다른 변증법적 과정이 작용할 수 있는 계층 구조”17라고 불렀던 믿음을 공유한다. 테드 벤튼(Ted Benton)이 관찰한 바와 같이, 다양한 수준의 운동 복잡성이 물질 조직 수준의 계층 구조를 구성하기 때문에, 자연은 계층적으로 정렬되어 있고 내부적으로 차별화된 통일체로 간주되어야 한다. 특정한 과학 간 융합의 전제조건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러한 통일성이다. 자연에 관한 통일된 지식은 개별 과학의 차별화되고 불균등한 역사적 발전이 상호 연결된 것으로서의 통일성을 전제로 한다. “각 과학이 다루는 자연 영역은 운동이 지니는 복잡성의 차별화된 수준뿐만이 아니라 우주의 역사적 진화의 뚜렷한 단계를 나타낸다.”18
다르게 말하면, 우리의 과학적 틀에 대한 비판적 정정이 요구되는 이유는 자연의 역사성과 특정 과학의 지속적인 진보에 있다. 활용 중인 개념 장치를 엄격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이론 내부의 요구가 항상 존재한다. 이는 또한 새로이 출현·발견된 새로운 것들이, 우리의 현재 사고체계에 지속적으로 통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엥겔스의 변증법에서 진화하는 상호 연관과 새롭게 등장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이 주된 관심사로 돼 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엥겔스는, 변증법을 자연의 보편적인 상호 연관에 관한 체계적인 탐구로서 정의하고 있다: “변증법은 오늘날 자연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유 형태인데, 왜냐하면 그것만이 자연에서 진행되는 발전 과정, 전체적인 관계, 한 연구영역으로부터 타 영역으로의 이행에 관한 유래와 설명 방법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19
변증법 이론은 물질의 다양한 조직 수준에서 발생하는 특성과 법칙을 파악하는 데서 그 고유한 개념 구조, 과학적 언어 및 조사 방법을 활용하며 범주적으로 개방적인 형태를 취한다.
엥겔스는 다양한 과학 분야를 구별하고 분류하기 위해 몇 가지 기준을 논의하는 구절에서 각 과학이 해당 영역에 있어 고유한 특수 형태의 운동을 담당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분석의 주제는 “단일 형태의 운동, 또는 함께 속해 있으면서 서로 전달되는 일련의 운동 형태”20일 수 있다. 요점은 그러한 분류가, 분석 대상의 운동 형태가 지니는 객관적인 배열과 고유한 발달 순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련의 자연 사태를 논리적-존재론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체계적인 형태를 갖추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만약 내가 물리학을 분자들의 역학, 화학을 원자들의 물리학, 이어서 생물학을 단백질들의 화학이라 부른다면, 나는 그것에 의해 이러한 과학들 각각의 다른 것으로의 이행, 따라서 연관, 연속의 구별, 불연속적 분리 모두를 표현하고자 한다.”21
유기계가 무기계에서 성장할 때 특정 형태의 운동과 고유한 특수 법칙이 발전한다. 역사적으로 유기계의 발전 이전에 존재했던 것, 즉 무기물은 더 발전한 것 내부에 “지양된” 형태로서 살아 숨 쉬고 있다.22 그러나 유기계는 무기계와 분명히 다르다. 그 체계는 무기계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수많은 창발적 특성을 띤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기계의 행동 패턴이 역사적으로 획득된 정보를 포함하는 유전 프로그램에 통제된다는 것에 있다.23
이러한 맥락에서 엥겔스는, 화학과 생물학이 같이 서로 다른 영역의 상호 연관과 상호 침투를 개진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자기생산(autopoiesis)이라고 불리는, 자기 조직화 체계의 [자기] 발생적 특징이라는 창발적 특성을 끌어내는 놀라운 예를 제공하고 있다:
“유기계에서 모든 화학적 연구는 종국에는 보통 화학적 과정들의 결과이면서도 스스로 작용하는, 영구적인 화학적 과정으로써 모든 다른 것으로부터 구별되는 물체—단백질—로 되돌아 가게 된다. 만약 화학이 특성이든 아니면 특성의 결여든 그것이 그 기원에서 명백하게 가지는 종의 본성을 갖고서 이러한 단백질, 이른바 원형질 … 그 자체 내에 모든 다른 형태의 단백질을 잠재적으로 함유하는 그러한 것을 조합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때 변증법적 이행은 실제로 증명되며, 따라서 완전히 증명된다. ”24
창발주의 변증법은 “조직 수준의 지속적인 상승”과 자연의 체계적 메커니즘의 복잡성에 대한 관점을 옹호한다. 각각의 모든 수준의 계승은, 이전 복잡성 수준에 비해 필연적으로 고유한 창발적 특성을 개화할 수 있게 하는 물질적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잠재적으로, 서로 다른 수준은 각각의 구성 요소를 통해 서로 구별될 수 있다.25 그럼에도 부분의 상호 관계와 내부 조직을 고려하면 그것은 적절하게 구분될 수 있다. 쿼크는 결합을 통해 양성자와 중성자와 같은 강입자를 형성하고, 다시 원자를 형성하며, 원자는 분자를 구성하고, 이는 세포 구성 요소의 콜로이드 입자를 구성한다. 콜로이드 응집체는 조직과 살아있는 세포를 생성하고, 세포는 기관과 기관계를 형성하는 등 원자와 원자가 결합하여 세포를 구성하는 원리와 같은 원리를 만들어 낸다.
“마찰은 열·빛·전기를 산출하며, 충돌은 비록 전기를 산출하지는 못할지라도 열과 빛을 산출─이것이 물체 간 운동의 분자 운동으로의 전화이다. 우리는 분자 운동, 물리학의 영역에 들어가며 더욱 깊이 연구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분자 운동이 그 연구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전기는 화학반응으로 변화하고, 그것으로부터 발생한다. 열과 빛도 이와 같다. 분자 운동은 원자들의 운동, 즉 화학으로 전화하게 된다. 화학적 과정들의 연구는 탐구 영역으로서의 유기계, 말하자면 다른 조건들 아래에서지만, 그것의 설명을 위해서 화학이면 족한, 무기계에서와 동일한 법칙에 따라, 화학적 과정들이 발생하는 세계와 마주한다.”26
더 높은 수준의 복잡성은 더 낮은 수준의 구성 요소를 포함한다. 그러나 출현에서 핵심적인 것은 단순히 어떠한 구성 요소가 어떤 수준에 포함되어 있는지가 아니라, 특정 복잡성 수준에서 해당 부분이 어떻게 서로 상호 연관되어 있는지이다. 결과적으로, 복잡성의 다양한 상호작용 수준을 평가할 때, 변증법적 창발주의자는 물질의 차별화된 조직 수준에서 전체의 부분을 병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한다.27
“[그] 유기체는 틀림없이 그 자체 내에서 역학, 물리학과 화학을 그 삼위일체가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로 결합시키는 더 높은 통일체이다. 유기체에 있어서 역학 운동은 순수한 근육 운동과 마찬가지로, 영양 섭취, 호흡 작용, 분비 작용 등의 형태로,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변화에 직접 영향을 받는다. … 화학으로부터 생물로의 이행이 이루어진 후, 첫째로 생물이 생성되어 계속 존재하게 된 조건, 즉 우선 지질학, 기상학 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 생물 그 자체의 다양한 형태들은 실로 이것 없이 이해할 수 없다.”28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이 그 속성을 보유함에서 상호작용과 상호 침투로써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그것들이 통합적인 지위를 획득─해당 문제 전체에 고유한 특정 조직 방식을 가져온다는 점에서─했음을 뜻한다.29 여기서 주의해야 할 사실은, 부분들이 자신이 속한 전체를 형성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상호작용 자체가 서로 연관되고 상호 침투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전체라고 불리는 결과를 낳는다.30
창발주의의 철학적 경쟁자, 즉 더 높은 수준의 복잡성의 메커니즘이 더 낮은 수준의 역학에 의해 직접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환원주의는 전체가 그 전체에 포함된 구성 요소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반면, 창발주의는 전체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에 저항한다. 전체는 부분의 총합 이상이다.
르원틴과 레빈스는 환원과 환원주의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주의 깊게 지적한다. 하위 수준의 구성과 구조가 “상위 수준에 작용하는 힘의 징후(symptom of the forces acting at higher levels)”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하위 수준의 상황이 상위 수준 상호작용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환원은 더 높은 수준의 힘의 징후를 구별하기 위해 낮은 수준에서의 분석을 고려하는 것인 반면, 환원주의는 낮은 수준의 힘이 더 높은 수준에서 나타나는 현상의 실제 원인이라고 간주한다.”31 다시 말해, 낮은 수준의 구성은 물질의 높은 수준 조직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형태를 공동으로 결정할 수 있으므로, 더 높은 수준의 현상을 형성하는 공동 인자(因子)는 낮은 수준의 전 단계(low-level predecessors)로 거슬러 올라 추적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떻게 되었든, 낮은 수준의 현상과 높은 수준의 현상은 결코 직접적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들은 헤겔 체계에서 일컬어지는 “결절점들(nodal points)”에 의해 매개된다.
특정한 시점에서 엥겔스는 더 높고 더 복잡한 운동 형태를 부차적인 형태의 그것과 대조한다. 그는 당대 일부 과학자의, “모든 것을 기계적인 운동으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열풍”을 동반한 흐름에 지나친 비중을 두는 것을 보았다. 운동을 이와 같이 다루는 것은 “다른 형태를 갖춘 운동의 구체적인 성격을 말살시킨다.” 이와 관련하여, 기계적 운동에 관한 공공연한 초점은 “더 높은 형태의 운동”이 “실제 기계적(외적 또는 분자적) 운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과 “더 높은 형태의 운동이 동시에 다른 형태도 산출한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자연에서의 그 다양성과 운동 종류 및 상호 연결에 대한 무지로 이어진다. 그러나 “온도의 변화와 전기적 변화 없이는 화학적 작용이 불가능하며, 기계적, 분자적, 화학적, 열적, 전기적 등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유기체의 생명은 있을 수 없다.” 두 가지 서로 상호 침투함으로써 한 가지 형태의 운동이 다른 형태 내에서 나타난다. 특수한 물질적 운동 영역의 조직이 이루어지는 중심을 향한 시점(the angle of the organizing center)에서 주요 형태와 부차적인 형태를 구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차적인 형태들의 존재는 각 경우에 주요한 형태의 본질을 고갈시키지 않는다. 언젠가 우리는 확실히 사유를 실험적으로 두뇌의 분자적 및 화학적 운동들로 “환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유의 본질을 고갈시킬 것인가?”32
이러한 노선은 엥겔스가 하위 수준의 요소를 새로이 출현한 상위 수준 물질 조직의 역사적 구성 요소로 여겼음을 분명히 한다. 엥겔스는 현재의 운동 형태가 과거의 발전 궤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점(환원)에서 동의했지만, 더 높은 수준의 창발적 특성이 그것에서 출현하는 더 낮은 수준의 특성들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음(환원주의)은 부정하였다.
처음에 엥겔스가 대안적인 설명을 제시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이 19세기 말의 철학과 이론 자연과학의 환원주의 경향이었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도 중요하다. 1870년대 초, 엥겔스는 루트비히 뷔히너(Ludwig Büchner)의 물리적 물질과 힘(physical matter and force)에 관한 이원론적 존재론, 그리고 카를 포크트(Carl Vogt)와 야코프 몰레쇼트(Jacob Moleschott)의 사례와 같이 인간 사고를 뇌 구성 물질이나 인 지방으로 조잡하게 환원하는, 현대 환원주의적 유물론의 견해에 대한 간결한 반박을 작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엥겔스의 초기 공격 계획은 후일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주의 및 반동적 자유주의 문헌 모두에서 빠르게 정치화되면서 다소 체계적인 작업(『자연변증법』)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1871년 파리 코뮌, 그 다음에는 1873년 경제 위기, 그리고 마침내 1877년 독일 사회민주당의 의회 진입 성공에 자극받아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 오스카 슈미트(Oscar Schmidt),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과 같은 반동적인 생물학자들은 다윈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 수용을 약화하려고 하였다. 가장 강력하게, 헤켈은 동물계의 규칙이 인류에게 완전히 적용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회진화론 사상을 그대로 온존코자 노력했다.
앞서 언급된 인물 모두 『자연변증법』의 “공격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엥겔스는 환원주의 논쟁에 합류한 다른 논쟁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할 준비를 하였다. 이와 관련한 큰 문제 중 하나는 루돌프 피르호와 헤켈이 전혀 방어할 수 없었던 헤겔 철학과 유물론적 세계관을 공개적으로 공격한 신칸트주의 생물학자 마티아스 슐라이덴(Matthias Schleiden)과 같은 인물들이 옹호한 뚜렷한 실증주의 경향이었다. 진행 중인 논쟁에 수반된 또다른 중요한 문제는 주로 신칸트주의 식물학자인 카를 네겔리(Carl Nägeli)가 주로 주장한 이그노라비무스(Ignorabimus)33라는 표어와 관련이 있다. 네겔리는 칸트의 물자체 개념에 의존하면서, 자연법칙의 무한성과 보편성은 여전히 신비의 영역에 남아 있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 마음은 오직 자연의 유한한 영역에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우 유명한 이 명제는 변증법적 자연철학에 대한 실증주의적 적대감의 증대, 그리고 특정 과학들이 점점 파편화되어 가는 속에서의 신칸트주의 경향을 표현한 것이었다. 세포와 진화에 관한 생물학적 이론 외에 에너지의 열역학적 법칙도 엥겔스의 의제에 포함되었다. 1880년대 초의 『자연변증법』 원고 단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엥겔스는 1883년 마르크스가 사망할 때까지 주로 물리학의 근래 혁신에 관심을 돌리고 그것에 몰두하였다. 마르크스의 경제학 초고를 발견한 그는 자연과학 탐구를 다시 한번 중단하고, 대신 마르크스 저서의 출판 준비에 전념해야 했다.
엥겔스가 우리에게 전적으로 완성된 형태의 자연철학을 남기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필연적으로 개방적이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연구 계획의 일반적인 개요는 남겼다. 실제로 그는 불완전성과 개방성이 자신 계획의 특징임을 분명히 밝혔다. 엥겔스의 미완성 작업이 지닌 장점 중 가장 큰 하나는 헤겔이 남긴 유산에 대한 변증법적-유물론적 상속이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 아직 공식화하지 않은 문제, 아직 탐험하지 않은 지형을 탐색하는 데서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성공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내가 아는 한, 변증법적 유물론은 과학철학의 출현과 환원주의에 관한 가장 최근 논의에서 부분적으로만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34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완전한 논의를 전개할 수는 없지만, 대신 내 직관을 뒷받침하는 한두 가지 생각을 언급하고자 한다.
헤겔이 남긴 지적 유산이 지닌 몇 가지 귀중한 측면을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통합함으로써 엥겔스는 변증법적-유물론적 창발의 존재론을 확립하는 길을 열었다. 그는 우리가 속한 현실을 구성하는 단일한 유한 개체가 집단적 의존과 상호작용 없이는 진정한 존재로 될 수 없음을 견지하였다. 변형적인 진화(transformative evolution)의 결과는 유한한 부분이 결합되어 무한히 자체 발전하는 전체의 형성이다. 그러한 유한한 부분은 그것을 함께 엮는 내적 관계를 공동 결정하고 공동 창조하는 한에서 전체의 구성 요소로 간주된다. 따라서 현실의 근본 구조에 대한 엄격한 변증법적 탐구는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 있는 범주적 틀에 대한 자기-비판적 인식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새로움의 출현과 그것이 현재의 사고체계에 주관적으로 통합되는 것은 주변부적인 것이 아니라 중심적인 관심사이다.35 『자연변증법』의 “1878년 계획”에서 엥겔스는 이 견해를 네 번째 변증법적 법칙, 즉 “나선형 발전 형태”로 매우 명시적으로 정식화했다.36
이 법칙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생각은 하나가 다른 것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의 구조적 형태에 관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련의 개체가 다른 일련의 사물을 도출시킬 때, 이전 수준에는 그 개체가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이전 것의 후발 표현이다.
헤겔의 『논리학』의 「본질론」에서 한 부분인,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반성 운동”은 창발의 변증법적 논리에 관한 추가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장에는 헤겔이 “정립적 반성”, ”외적 반성” 그리고 “규정적 반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강조하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동일한 삼중 구조는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타자에 대한 반성”의 양립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한다. 헤겔은 여기서 순수-논리적 탐구를 추구하고 다소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의 지침은 엥겔스의 창발주의적 변증법을 더욱 정교화하기 위한 비옥한 기반을 보증한다: 하나가 다른 것을 도출시킬 때(타자에 대한 반성), 그것은 그것으로부터 나온 것(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의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한 가지(정립적 반성)가 다른 것(외적 반성)을 변화시킴으로써 스스로 변화(규정적 반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자는 그 자신 활동의 부산물이 된다. 나는 자기-준거(self-reference) 또는 자기 조직화의 이러한 측면이 엥겔스의 창발주의 변증법의 핵심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창발적 구조와 자기생산 체계가 이를 증명한다.<끝>
번역: 한동백 | 집행위원
2024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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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주〕 인간 인식의 한계를 주장한 라틴어 표어 “Ignoramus et ignorabimus(우리는 모르며, 모를 것이다)”를 뒷부분 “모르다”의 일인칭 복수미래형인 “ignorabimus”만 적시하여 축약한 표현이다. 19세기 전반에 이 표어는 주로 실증주의적·불가지론적 경향의 자연과학자들에 의해 거론되었다.
- 창발-변증법 연관에 대한 통찰력 있는 접근 방식을 보려면 Poe Yu-ze Wan, “Dialectics, Complexity, and the Systemic Approach: Toward a Critical Reconciliation”, Philosophy of the Social Sciences, 43 (4), 2012: 411–52.을 참고하라.
- K. Kangal, Friedrich Engels and the Dialectics of Nature, Cham: Palgrave Macmillan, 2020, 157–65.
- Dialectics of Nature,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