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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과 주체-객체 관계


“Ecology and the Subject-Object Relationship”, ​Soviet Studies in Philosophy, 23 (3). 1974: 152-5.


I. B. Novik | 구 소련 생태학자

 

철학은 생물권에 대한 학제 간 연구에서 통합적 역할을 하며,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가 특정 형태로 상호 교류할 수 있도록 하고, 인구 문제나 자연환경의 화학적 과정 분석 등에서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공통 언어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므로 나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생물권 최적화의 예비 단계에서 철학적 원탁토론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생물권을 연구할 필요성은 그 시대의 지적 풍토의 일부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생물권의 제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는 [적합한 내용의] 과학을 생각할 수 없다. 이로써 우리는, 현대인의 기술력으로써 자연을 비교적 쉽게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의 발전을 발견할 수 있다. [기술력을 활용하는 사람]은 산을 깎고, 사막을 없애고, 강을 뒤로 돌릴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오늘날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자연 변형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가 핵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나라의 발전에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던 소비에트 연방 최고회의 제4차 대회의 문건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 생산의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일로 된다. 이 대회는 소련 공산당 제24차 대회의 결의를 직접 이행하였다. 이 대회는 우리가 [현재의] 자연환경 상태에 만족하지 않으며, 인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자본주의에 비해 기본적인 이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온전히 구현하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이 문제에 관한 당과 정부의 이와 같은 진지한 접근 방식은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다.

 

이 문제가 그 자체로 유행이 되었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그러한 연유로 때때로 이 문제는 저널리즘적 공식화에 빠지며 종종 지나치게 단순화된다. 구체적으로, 이런 종류의 쉽고 단순화된 접근 방식은 다양한 생물권 과정을 모형화하기 위한 양적 방법을 제안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류가 기술혁명과 폐쇄된 생산 과정(closed production processes)으로의 전환의 문턱에 서 있으므로, 우리는 그러한 방법에 대한 철학적 비난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이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생산의 혁명이며 매우 근본적인 것이다.

 

우리는 과학이 생태 문제에 대해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인간사회에서 발생한 새로운 사태가 어느 정도 예상치 못한 것으로서 판명되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직시해야 한다. 세기 동안 과학은 환경을 정복하고, 포획하고, 복종시키는 공격적인 수단을 개발하였다. 오늘날 그러한 공격적인 접근 방식은 인간에게 역효과를 내고 있다. 이 부정적인 효과를 보상할 새로운 과학적 방법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열역학 제2법칙을 떠올려 보자. 나는 다음과 같은 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모든 자가 조절 시스템은 환경을 무질서하게 만든다는 사실로써 존재한다. 이 환경이 무질서해야만 시스템의 조직 수준이 증가할 수 있다. 에너지는 시스템의 조직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에너지 생산량의 증가가 제한 없이 진행되면 지구는 과열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환경에서의 화학적 오염 외에도 물리적 과정에 의한 오염을 포함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다. 우리는 심지어 물리적 매개변수의 일부를 왜곡시킨다.

 

그 누구도 도시에서 매우 독특한 음향권(phonosphere)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만약 인간이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 살았다면 귀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명의 중력적 조건을 위배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다음과 같이 묻고자 한다: 우리가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마천루를 지을 때, 그것은 또한 그것 질량의 제곱에 비례하는 중력적 영향력을 우리에게 행사하는 질량이기도 한다. 따라서 이것에도 새로운 생태적 요인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과학적 예측은 그 잠재력에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술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전기 자동차는 배기가스를 전혀 생성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수백만 대의 자동차와 수백만 대의 전기 자동차를 이 측면에서 비교한다면, 전자기장은 인체 건강에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오늘날과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의 한 예이다.

 

과학적 예측은 보다 완전한 정보에 기반해야 한다. 우리는 예측을 사회과학 및 시장 수요 계산과 연관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미래학도 자연과학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예컨대 모든 초기 데이터를 조합해야만 우리가 지구를 고속도로로 덮은 때에 있을 머나먼 결과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고속도로는 필요하지만, 그것들이 자연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인류가 역사상 한 번 이상 직면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오늘날 최적의 예측이 그 반대로 바뀔 수 있으며, 그렇게 되었을 때 생물권의 돌이킬 수 없는 파괴 과정을 풀어놓을 위험이 있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다. 과거에는 우리가 환경을 훼손하고 있지만 과학이 그 피해를 개선할 것이라고 여김이 설득력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접근이 불가능해졌다.

 

이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마지막 요점에 도달했다. 현대 기술의 주요 난점은 노동 분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노동 분업을 활용하여 동물보다 우위에 섰고, 노동 분업은 먼 옛날부터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분업은 다시 의도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공중 보건 전문가와 독립적으로 일하는 화학 엔지니어가 염료를 만들고, 공중 보건 전문가는 그것이 생물권에 해롭다는 이유로 화학 엔지니어를 책망한다.

 

생태 문제의 세계적 본질과 관련하여 여기서 숱하게 언급된 과학의 복잡성, 조정 및 종합 문제는 단순히 새로운 기관, 예컨대 세계 생태학 또는 세계 공중 보건 연구소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것 같다. 그러한 연구소는 아마도 과학의 구획화를 줄이기는커녕 증가시키고 현존하는 수백의 학문 분야에 20개 정도의 학문을 추가할 것이다.

 

나는 우리에게 다른 측정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초기 근본 학문 분야에서 얻은 일반적인 결론과 이러한 일반화를 새로운 지식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반화는 물리학에서 시작될 수 있다. 물리학은 자연을 지배하는 데서 엄청난 경험을 가진 과학이다. 물리학은 그 자체로,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발전하고 변화하면서 생명의 영역, 생물권의 영역을 포괄할 수 있다.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시대에 우리는 인간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실체와 관련된 미분화된 과학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자연에 대한 지식의 새로운 종합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번역: 한동백 | 집행위원

 

2024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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