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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0
    그림자
    말걸기
  2. 2009/02/06
    홍아 사진(4)
    말걸기
  3. 2009/02/03
    너희들 뭐 먹냐?(7)
    말걸기
  4. 2009/01/21
    폭력의 순환(3)
    말걸기
  5. 200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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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걸기
  6. 2009/01/12
    결투 ②(6)
    말걸기
  7. 2009/01/11
    결투 ①(3)
    말걸기
  8. 2008/12/20
    홍아를 만나기 전에(14)
    말걸기
  9. 2008/12/11
    미완의 포트폴리오(2)
    말걸기
  10. 2008/12/10
    수료전(6)
    말걸기

그림자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사진기 목에 걸고 들락거리는 북촌엘 다녀왔다. 불과 한두 시간 동안에도 일본관광객 여러 무리를 마주칠 정도로 관광 명소인 한옥촌이라지만 닫힌 문과 높은 담벼락 덕에 한옥 구경은 못하고 기와 밖에 볼 게 없는 동네이다. 그런데도 사진 좀 찍는다 싶으면 한 번은 가야 하는 코스인 게 좀 이상하다.

 

어쨌든 이 동네 한옥의 매력은 별로이니 삼청동에서 시작해서 재동까지 내려오는 사이에 그림자를 찍었다. 겨울이라 해가 높지 않고 구름까지 살짝만 껴 주시니 사진 찍기 딱이다. 이런 소재도 한참 전에나 유행했을 법하지만 생각해 보니 찍어본 적이 없었다. 나름 부담 없는 소재였는데, 사진 찍을 때마다 불편하게 구는 남의 것 몰래 훔치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다.

 

 

 

 

 

 

 

 

 

홍아 사진

 

홍아 사진은 홍아를 찍은 사진일 터인데 언제부터 찍어야 하나 고민을 좀 해 봤다. 오래전부터 파란꼬리 뱃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걸 보니 진작에 찍기 시작했어야 했나 보다. 파란꼬리가 당장에라도 배 사진을 찍어서 홍아 앨범을 만들어 주자고 한다.

 

파란꼬리의 큰 배를 여러 컷 찍었는데 그것들 중에 하나 골라봤다.

 

 

둘이 보면 재밌는 사진 많지만 파란꼬리 이미지 구길까봐 여기서 끝. 대신 홍아 사진 찍기 전에 식당에서 폼 좀 잡은 파란꼬리 표정을 올린다.

 

 

 

 

너희들 뭐 먹냐?

 

지난 일요일에 파란꼬리와 함께 슈아네를 방문했다. 미루가 입고 쓰던 옷과 물건을 슈아가 준다고 해서 냉큼 챙기러 갔던 것이다.

 

미루가 딸기를 무척 좋아한다고 해서 딸기와 함께 찹쌀떡도 한 팩 사가지고 갔다. 미루는 딸기를 빠르게 먹어치웠다. 미루와 함께 작은 밥상에 둘러 앉아 있던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눈치껏 딸기를 먹어야 했다.

 

미루는 딸기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장남감이 있는 데로 갔다. 눈이 내린 곳(하얀 이불이 덮힌 거실)에서 놀다가, 찹쌀떡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는 우리들 곁으로 다가와서는 슬쩍 한 마디 던지고 저리로 가버렸다.

 

"너희들 뭐 먹냐?"

 

이 한 마디가 얼마나 재미 있던지 슈아와 파란꼬리, 말걸기는 한참이나 웃었다.

 

 

두 가지가 궁금해졌는데 하나는 미루가 어떻게 저런 표현을 알게 되었을까였고, 또 하나는 저토록 '버르장머리 없는 말'에 하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가 있는지였다.

 

첫번째는 슈아가 설명해 주었는데 놀이방에 가서 저런 얘기를 들었을 거란다.

 

두번째에 대해서 우리가 나눈 얘기는 이랬다. 아마 미루보다 몇 살 많은 다른 아이에게 저렇게 얘기했다가는 그 아이에게 혼났을 거라고. 확실히 미루가 사는 세계와 어른이 사는 세계가 다르니 매번 서열을 따지지는 않게 된다고.

 

 

오후에 두 시간 정도 슈아네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슈아는 시종일관 미루의 요구를 아주 친절하게 들어주었다. 말걸기 같으면 귀찮아서라도 못하겠는 그 '시시콜콜한' 요구를 따뜻하게 받아주다니 놀라웠다. 슈아는 "후과에 비하면 이게 낫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슈아는 미루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미루의 말과 행동을 듣고 보면서 미루가 마음 상하지 않게 잘 보살피고 있었다. "너희들 뭐 먹냐?" 따위의 말은 손님 입장에서는 재미 있는 표현이었지만, 만약 홍아가 미루만큼 컸을 때 놀어온 슈아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말걸기는 슈아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길 것 같다(사실은 홍아에게 예절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건 말걸기 탓이라 여겨 부끄러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 때문에 홍아에게 "어른에게는 그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슈아에게 배운 건 자신의 감정이나 걱정을 아이에게 떠넘기지는 말아야한다는 것이었다.

 

 

약 한 달 후면 태어날 홍아를 위해서 어찌어찌 해야겠다는 생각은 많지만 직접 홍아를 대할 때는 어찌할 지 궁금하다.

 

 

폭력의 순환

 

1.

 

맞아본 사람들이 남을 때리기 쉽다. 그래서 신체를 구속당하고 삶이 피폐해지면 폭력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치 못한 생활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벌이를 위협당하는 상황'이라면 폭력을 휘두르는 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2.

 

국가가 사람들을 갈구면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돌변한다. 센 놈이 약한 놈 팰 때 패는 목적을 달성하기 쉬으므로 국가에게서 맞는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더 약한 사람을 찾아 패기 마련이다. 국가 폭력에 의한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존나 재섭는 새끼들이 엄청 양산된다. 그래서 사회가 뒤숭숭하고 혼탁해진다.

 

 

3.

 

자꾸 맞다 보면 때린 놈한테 '욱' 할 때가 있다. 국가에 대한 간헐적인 절규, 화염병과 쇠파이프는 그렇게 출현한다.

 

 

4.

 

국가는 자기에게 '욱'하는 '짜식들'을 가만히 둘 리 없다. 노련한 국가는 적절하게 괴롭히지만 서툰 국가는 그냥 마구 팬다. 죽이기도 한다.

 

 

5.

 

멍청한 국가는 자신에 대한 폭력을 조직한다. 소요 내지는 혁명을 부른다. 멍청한 국가가 멍석을 깔아준 폭력 혁명은 성공해도 문제다. 왜냐하면 그것도 폭력은 폭력이기 때문이다. 폭력으로 세운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6.

 

국가는 언제나 폭력적이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 폭력을 기초로 존재한다. 국가가 언제까지 존속할 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태어나는 세대의 평생 동안에도 국가는 멀쩡할 듯하다.

 

 

7.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폭력적인 국가가 덜 폭력적이도록 하는 조치를 강구할 것이냐, 아니면 폭력적인 국가를 조낸 조질 것이냐. 어느 경우에도 폭력은 순환한다.

 

 

파란꼬리

 

지난 일요일에 '찰칵찰칵' 출사가 있었다.

이번 출사는 스튜디오였는데 이왕 방문한 김에 파란꼬리 사진 몇 장 찍었다.

홍아가 요즘 잘 큰다. 자고 일어나면 파라꼬리 배가 더 커진다.

 

 

 

 

 

 

 

 

결투 ②

 

말걸기님의 [결투 ①] 에 이어서.

 

 

 

등을 맞대고 섰다. 그의 등이 따뜻한 것은 내 등이 식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순간에는 냉정해야 하는 법이니까 좋은 징조임에 틀림없었다. 저쪽에 듬성한 나뭇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었다. 돈을 받지도 않았는데 배심원을 노릇을 하고 있었다. 구경거리를 준 내가 그들에게 돈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영감은 약속한 시간이 다 왔음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포기할 기회를 준다고 했다. 나는 결코 그럴 수 없음을 통보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보석 세공업자는 시작을 알렸다.

“하나!”

나는 오른발을 옮겼다. 다섯에 오른발이 걸리도록.

지난 금요일이었던가. 아내는 오른쪽 발가락 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창가에 몸을 기댄 채 희미한 미소를 띠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내 앞에서는 오래 전에 사라진 표정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의도했던 건 결코 아니었는데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아내의 그 표정은 흔적도 없어졌다. 나는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즘 와서 쓸데없는 외출이 잦아졌다느니 내 앞에서는 통 웃지도 않고 특히 내 눈을 피하고 있다느니 등등. 아내도 지지 않았다. 부엌에 빵이 떨어지지 않은 날이 있느냐고 했다.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했고 아내가 그를 만나러 외출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그 그림이며 방금 전 그 미소며 전부 그가 준 걸 안다고 했다. 아내는 딸의 새 구두를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알고 있느냐고 했다. 언성이 높아졌다. 둘 다 흥분했고 결국 그녀는 있었던 일들을 잔인하리만큼 당당하게 모두 털어놓았다. 그녀의 상세한 묘사는 나의 상상력 이상이었다. 그와 관계를 맺는 모습은 어처구니없게도 그녀가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모양, 머리에 기계를 씌운 모양을 떠올릴 뿐이었다.

“그는 내 몸에 손 한 번 대지 않는다구요!”

어이가 없었지만 사실인 것 같았다. 지난주에 르몽드지에 실렸던 기사가 생각났다. 해외 토픽 기사였다. 동쪽 나라에 어떤 화쟁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림을 팔지 못해 가난했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돈을 벌었다. 그의 아내는 대낮에도 남자들을 데리고 왔다. 그 화쟁이는 옆방에서 아내와 낯선 남자를 엿보기도 했다. 아내가 남자를 데리고 오기 전에 돈을 쥐어 주며 그를 내보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 화쟁이는 종일 술을 마시며 둘도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둘”

나는 사뿐히 왼발을 앞으로 디뎠다. 오른손은 총을 가볍게 쥐고 어깨 높이까지 올렸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아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보이려 했다. 많은 관중을 상상했다. 모두가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손에 쥔 총에 눈을 고정시켰다. 한쪽 편에서 움직이는 건 경대 위의 표적에 불과했다.

나는 검은 턱시도와 중절모 차림이었다. 구두도 광을 내어 신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어울리는 망토도 잊지 않았다. 누구의 최후든 그 앞에서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표정도 근엄하게 지었다. 나의 옷차림은 중후하면서도 깔끔했다. 최후를 위한 싸움이 쓰레기를 치우는 일과 같을 수는 없었다.

나의 아내를 설득하는 게 식은 죽 먹기와 같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일요일 아내는 외출을 했다. 그를 만날 거면서 아이는 왜 데리고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맨정신으로 아내와 딸을 기다릴 수 없어 술을 마셨다. 잠이 들었었는데 아내와 딸이 들어오는 소리에 깼다. 딸은 피곤해 보였지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를 보자 웃으면서 달려와 가슴에 안고 있는 인형을 보였다. 내가 선물했던 장난감들과는 달랐다. 과장된 눈과 다리를 가진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고양이 다와야 하는데 사실 그 인형은 고양이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그 모양이 너무 우스꽝스러웠지만 딸에게는 티를 내지 않았다. 딸은 자랑하면서 그 인형의 이름이 ‘가필드’라고 했다. 나는 그 이름이 낯설었다. 딸에게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느냐고 물었다. 딸은 그 인형 이름이 원래 ‘가필드’라고 했다. 이름을 짓는데 원래부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인형의 이름은 주인이 지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딸은 얼굴이 조금 일그러지면서 또 다시 그 인형의 이름은 ‘가필드’라고 했다. 나는 야단치듯 인형의 이름을 다시 지어 주라고 했다. 남이 지어 준 이름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빤 아무것도 몰라! 얘는 ‘가필드’예요, ‘가필드’!”

딸은 엄마가 그랬듯이 소리를 질렀고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다. 언젠가 딸에게 읽어 주었던 동양의 옛날이야기가 생각났다. 한 홀아비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돈 때문에 딸을 바다 밑 괴물에게 팔았다. 그런데 그 딸은 원망하기는커녕 키워 준 은혜를 잊지 않았다. 바닷속을 빠져나와 돈 많은 남편을 얻었고 아버지를 찾아가 평생 모시며 셋이서 풍요롭게 살았다.

“셋”

그의 차림은 상스럽기 짝이 없었다. 푸른색 바지에 엷은 미색 셔츠, 그 위에 긴 코트를 걸쳐 입고 있었다. 코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얇은 그 겉옷은 반질거리면서 붉은 빛을 냈다. 바람이 스쳤을 때 안감에 붙은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버버리’라고 씌어져 있었다. 그 사람 이름은 ‘버버리’가 아니었다. 빌려 입고 온 게 분명했다. 내가 상대를 잘못 짚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제 나의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가 자주 들른다는 클럽에 갔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 앉혀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학의 교수도 아닌 게 강의하는 투로 말을 했다. 그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는데 지구의 생명은 지구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화성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먼 옛날 화성에서는 생명체들이 번성했었는데 화성에 혜성이 떨어졌다. 그 때 화성의 땅덩이 일부가 운석이 되어 지구에 튀었다. 혜성이 떨어진 화성은 그 충격으로 기상 변동이 심해 남아 있던 모든 생명체가 멸종했다. 화성에서 운석을 타고 생명체가 지구로 옮겨왔을 때 지구가 이제 막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물과 산소로 덮인 건 다행이었다. 그는 그의 주장의 근거를 복잡한 운동법칙과 열역학, 화학식과 DNA 구조식, 그리고 최근 우주선에서 보낸 화성에 대한 자료에서 찾았다. 알아듣기 힘든 설명이었고 그는 그걸 노리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가 대단한 발견을 한 양 존경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중 하나가 대학 강단에 서야 할 사람은 그라고 칭송했다.

“내가 대학에서 공부했더라면 이런 이론은 세울 수 없었을 겁니다.”

나는 대학 문턱에는 가보지도 못한 놈이 건방진 소리나 한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중얼거렸지만 모두가 들은 모양이었다. 그에게 고정되었던 시선들이 내게 쏠렸다. 그는 앉아 있는 내 앞까지 다가와 섰다. 모두들 나와 그 사이에 벌어질 일들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도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와 그는 생명체 따위 얘기는 할 것도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당신에게 경고를 하러 왔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라 했다. 한참이나 서로 떠들었지만 결론은 없었다. 나는 장갑을 오른손에 쥐었다. 어제 같은 빙판길을 걸을 때는 장갑을 끼는 게 좋았다. 클럽에서 집까지 길은 대부분 응달이었기 때문에 꽁꽁 얼어붙은 빙판 뿐이었다.

“요즘 자네집은 추워서 잠자리도 설칠 판이라며?”

그에게 한 마디 하려고 일어서며 홱 돌아설 때 장갑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의 어깨를 넘어 날아갔다. 지켜보던 모두가 그에게 장갑을 던졌다고 받아들였다. 이왕 던질 거라면 더 멋지게 그의 뺨을 명중할 수 있었는데 안타까왔다. 그 때 옆에서 눈치 보던 보석상 주인이 나섰다. 곧바로 모든 게 결정되었다. 네 시였다.

“넷”

주위가 침묵했다. 내 발자국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장도 멎어 있는 듯했다.

아내의 심장은 격하게 뛰고 있었다. 아내는 말리지 않았다. 아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래저래 설명할 필요도 못 느꼈다. 엄마의 어두운 표정 때문인지 딸은 겁을 먹고 있었다.

나는 얼마 안되는 전 재산을 털어 결투 비용으로 보석상 영감에게 주었고 벽에 걸려 있던 총을 꺼내 손질을 했다. 총들은 오랜 잠을 잤으면서도 따뜻했고 화약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의 심장을 뚫었었고, 또 하나는 허공을 가르기 위해 총알을 뱉었었다. 하지만 난 어느 게 어느 건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오늘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야만인이나 사냥하는 그의 총 때문에 틀려 버렸다.

“다섯”

나는 날렵하게 몸을 틀어서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났다.

2.

- 그는 내 몸에 손 한 번……

- 이건 포토예요……

- 아빤 아무것도 몰라……

- 어이 짤순이, 자네에게도……

- 요즘 자네집은……

총성은 가시고 나는 하늘을 보고 있다. 아까와는 다르게 파란 하늘이다. 배심원들이 저 멀리 날아가고 있다. 여기서는 더 이상 볼거리가 없어서인가 보다. 베고 누운 것은 차갑고 단단하다. 귀 옆은 따뜻하고 질퍽하다. 손가락은 아직도 방아쇠를 힘껏 당기고 있다. 기억이 떠오른다. 방아쇠를 당겼을 때, 내 손에 있던 총은 진동하지 않았다. 그는 예상보다 가까이 있었는데 양손에 총을 들고 있었다. 총성도 한 번이 아니었다. 저편엔 내팽겨진 크고 무거운 총들이 보인다. 이젠 가져갈 아이도 없는 총들.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날 우리 아버지 얼굴에 닮아 있을까?


 

─── 끝 ───

 


 

결투 ①

 

1.

 

내가 그에게 장갑을 던진 건 어제 오후였다.

 

 

여긴 어릴 적 기억밖엔 없는 언덕인데도 와 본지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회색 하늘과 함께 으스스한 나무들은 소년 시절 경험한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한 쌍의 총을 가지고 왔다. 한 손으로 쏠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벼운 것들이었다. 열 발자국 내에서는 뭐든 맞힐 수 있는 총이었다.

 

그는 그의 사촌이 발명한 총을 가지고 왔다. 그의 사촌은 바다 건너 대륙에서 야만인을 사냥하기 위해 많은 총을 만들었다. 그의 사촌은 총으로 야만인을 사냥할 뿐 아니라 칼로 야만인의 머리 가죽도 벗겨 수집했다. 머리 벗기는 기술은 머리 가죽을 수없이 제공한 야만인들도 배워서 이제는 자기네들 기술인양 수선을 떠는 것에 그의 사촌은 분개하고 있었다. 언젠가 TV 화면에서 본 칼을 든 살인 청부업자의 표정을 떠올랐다.

 

결투를 진행할 사람은 아내의 집에서 몇 블록 건너 있는 보석상 주인이었다. 그는 길드에 속한 보석 세공 장인이기도 했고 한때는 도제도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거느리고 있었던 알부자였다. 그 때는 왕궁 사람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의 가게는 명성이 아직 다 가시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융성을 잊지 못한 귀족들만 찾아오는 곳이었다.

 

아내의 목걸이를 그 보석상에게 판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영감은 돈이 궁한 사람의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것을 알았다. 결투를 진행할 시간만큼 장사를 못한다기에 돈을 줘야만 했다. 첫눈으로 상대편 호주머니의 돈을 볼 수 있는 그 늙은이는 그가 부탁을 했을 때야 기꺼이 수락했다. 다른 증인도 없이 이 영감만 데리고 온 것이 왠지 석연치 않았지만 이런 일로 돈이 더 드는 것도 싫었다.

 

보석쟁이는 공평함을 위해서는 나와 그가 똑같은 총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가 가져온 총이 현대 과학의 혜택을 입은 첨단 기술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명중률이 내 것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콜트 45구경 권총은 다루기 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보석상의 주장은 결국 결투는 한 번에 결판이 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가져온 총은 아버지의 것보다 훨씬 더 작고 가벼웠다. 나는 ‘총알’과 ‘화약’이 한데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 봤다. 그는 ‘총알’과 ‘화약’이란 말에 코웃음을 쳤다.

 

“‘탄두’와 ‘장약’이 분리되지 않았다고 해야지.”

 

보석상 주인은 내가 가져온 총은 제쳐 두고서 그가 가져온 총을 들고 나에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괜한 짓을 한다는 표정으로 설명을 들었다. 그 시간만큼의 돈은 아까왔다. 그 늙은이의 구차한 설명은 마치 화가의 명성 때문에 제값보다 돈을 더 얹어 지불하는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어느 날 외출했던 아내는 그림 한 점을 품고 들어 왔다. 아내는 언제나 볼 수 있게 경대 위에 올려놓았다. 작은 액자에 넣어진 그림이었는데 파리의 풍경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그림은 여태껏 보던 그림과는 좀 다른 데가 있었다. 선이 보이지 않았다. 천연색으로 그려진 그 그림에는 붓 자국도 연필 자국도 없었다. 색깔도 실제와 똑같았다. 파리에 가본 적은 물론 없었지만 그곳은 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친구한테서 선물을 받았다고 했지만 아내의 친구들이나 친구의 남편들 중에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는 없었다. 내가 그 그림을 여기 저기 뜯어보며 신기한 그림이라고 했을 때 아내는 내 손에서 그림을 빼앗아 들고는 소리를 질렀다.

 

“이건 포토예요, 포토!”

 

아내는 나한테 이런 건 쳐다 볼 자격조차 없다고 했다. 나보고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이 뭐냐고도 했다. 그녀의 과장되고 신경질적인 반응은 너무 엉뚱했다.

 

오래 전 그녀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처음 본 순간 나와의 결혼을 결심했었다. 내가 캔버스에 붓질을 할 때면 아내는 자기의 몸이 물든다고 했다. 그녀의 그런 반응은 언제나 나와 아내의 사이를 즐겁게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나의 붓질에 관심이 없었고 얼마 후에 그 그림을 가져왔다. 그 그림은 사격 연습하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

 

 

보석상 영감은 이번은 사격 연습이 아니니까 각자 총을 직접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는 영감을 의심하는 것은 품위를 떨어뜨리는 짓이라며 손에 쥐면서도 총에는 눈길도 한 번 돌리지 않았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보석상으로부터 총을 건네받을 때에도 그의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에게서 자신감 이상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게 뭔지 확실치는 않았다. 영감은 나와 그의 몸을 여기저기 살핀 다음 결투 방식을 설명했다. 등을 맞대고 서서 영감의 구령에 따라 다섯을 셀 동안 한 걸음씩 나아가다 다섯을 세는 순간 돌아서서 상대편을 쏘는 방식이었다. 너무나 흔한 방법이었고 경험은 없었지만 이런 장면을 천 번도 더 상상해 왔던 나로서는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아내의 인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건 아내가 그를 만나고 다닌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들었을 때였다. 아내가 하루가 멀다 쫓아다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그는 시 외곽에 별채가 여럿 있는 큰 저택에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곳에는 그런 중세의 성 같은 집들이 꽤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도시인 이곳에 회사를 차려 놓고 보통 사람은 셀 수도 없는 많은 돈을 벌었다. 그곳까지는 지하철도 노선 버스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사실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이 두려울 만큼 부끄럽게 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곳에서 살 리가 없었다. 어쨌든 사람들을 피하는 그들의 수치스런 생활을 전혀 수치스러울 게 없는 내가 구경할 이유는 없었다.

 

 

지난 주 동네 술집에 갔을 때, 세탁소 친구가 그가 하는 일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돈 세탁업자라 했다. 돈을 빨아 준다니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동전이야 문질러서 광을 내주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만 지폐는 물만 묻혀도 냄새가 고약해지는데 그걸 빨아서 어쩌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동전이든 지폐든 깨끗하게 닦았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대가를 얼마나 지불할 지도 의문스러웠다. 그런 일로는 그는 부자일 수 없었다. 그는 실제로 백만장자가 아닐지도 몰랐다.

 

“어이 짤순이, 자네에게도 세탁하라고 돈을 맡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세탁소 친구는 화를 냈고 그날 심하게 다투었다. 어리석은 농담이었다.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돈을 세탁할 세탁소 주인은 없었다. 다음에 갔을 때 그는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등을 돌린 채 다른 사람들과 즐거운 척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었다.

 

 

─── 계속 ───

 

 

홍아를 만나기 전에

 

'홍아'가 누구냐면 '홍시아가'이다. 파란꼬리의 엄니께서 어느날 탐스럽게 열린 홍시를 따다가 파란꼬리에게 주셨단다. 물론 꿈 이야기이다. 파란꼬리나 말걸기나 아가가 생길 때 꿈을 꾸지 않았다. 그래서 파란꼬리 엄니께서 태몽을 꾸신 걸로  여기기로 하였다. 결국 파란꼬리 뱃속에서 잘 자라고 있는 아가는 홍시 꿈과 깊은 인연이 있으니, 태명이 '홍시아가'를 줄여 '홍아'가 되었다.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홍아를 만나기 전 무거운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 스트레스의 원인 중 하나는 주위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은 무식한 데다가 그 무식을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밟아버리는 데에 가차없이 이용했다. 무식의 신발을 신고 몰상식한 발차기를 날리는 인간들은 사실, 말걸기 주변의 '멀쩡한 인간들'이었다. 진보적이거나, 자유로운 이념을 지녔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들 말이다.

 

이들의 무식과 깊은 관련이 있는 통계가 하나 있다. 대한민국 불임부부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가임 연령 부부의 일곱 쌍 중 한 쌍, 그러니까 14%가 불임부부이다. 주변의 노령 부부를 제외하고, 알고 지내는 7쌍의 부부 중 하나는 불임이다. 엄청난 수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잠시 시간을 내어 세어 보길 희망한다.

 

1년 간 남녀가 피임 없이 성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되지 않으면 불임을 의심해야 한다. 1년 내에 자연임신이 될 확율은 85%인데, 아이를 갖겠다고 계획한 후 1년이 지나도록 임신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불임부부일 확률이 아주 높다.

 

불임의 원인은 제각각이고 그 원인에 따라서 임신을 시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약물투여, 호르몬 주사, 각종 수술, 인공수정, 시험관 아기 등 별게 다 있다. 운이 좋다면 호르몬 몇 방으로 임신에 성공할 수 있다. 운이 좀 있는 편이라도 수술까지는 받아야 할 것이다. 만약 아주 약간의 운만 있다면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해야 할 것이고 돈도 '억' 깨져야 할 것이다. 운이 없다면 아기는 포기해야 한다. 이게 불임부부의 운명이다.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시간과 돈을 들인 것 치고는 운이 좀 있는 편에 속하지만 지금의 담당 산부인과 의사는 '홍아'를 두고 '기적'이라 한다.

 

 

결혼했다고 해서 아기를 꼭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 반면에 아기를 꼭 갖고 싶어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든 부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몰상식한 무식이들은 지난 수 년 간 말걸기에게 "아기는?"을 외쳐댔다.

 

불임부부이건 아니건 간에 남의 가족사에 간섭하는 꼬라지 자체가 짜증나는 일이었다. 아기가 이미 있어서 안부를 묻는 것도 아니고, 아기를 가질 거냐 안 가질 거냐를 따져 묻는 게 '인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었다. 그게 왜 인사가 될 수 있을까? 그저 인사로 그치면 그나마 화는 덜 치민다. "아기는?" 다음에는 "애는 있어야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나아." 따위는 뭐냐. 그딴 질문 좀 하지 말라고 하니 이런 대답도 돌아온다. "아기 낳을라고 결혼한 거 아냐? 아기 생각 없으면 결혼은 왜 해?"

 

더우기, 주변의 일곱 쌍 중 하나가 불임부부인데 눈치도 없이 "아기는?"을 나불대는 인간들 꼬라지 하고는. 무식해서 무례하다 해야 하나. 14%면 대충 퉁쳐서 장애인 비율이고 동성애자 비율이다. 진보 따위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외치는 인간들이 아무데서나 주변사람을 대할 때 당연히 비장애인이거나 헤테로일 것이라 여긴다면 혼날 텐데 왜 부부라면 임신은 죄다 정상적으로 할 것이라 여기냔 말이다.

 

아기를 낳아 기르고 싶은데 아기가 생기지 않으니 1년은 조마조마했고 그 후 1년은 피가 말랐다. 지난 해부터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병원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황사기의 파트너였던 미즈메디까지 가야 하나 고민도 했었다. 노력과 비용의 마지노선이 거의 정해졌고 그 마지노선에 미치면 입양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인데 "아기는?"! 아가리를 찢어버리고 싶지 않을까?

 

그이들 중에 가족계획 자체가 궁금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불임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대답하기 힘든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짜증만 나지 않을 뿐.

 

 

사람들은 참 생각이 없다. 말걸기는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장애인이 겪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실은 이해할 생각 없다. 또한 성소수자들의 감성도 관심 없다. 다만, 비장애인이나 헤테로가 '정상' 또는 '기준', '보편'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혹은 여기지 않으려는 태도를 지향한다. 마찬가지로 불임이 아닌 사람들에게 불임부부의 피마름을 이해하라고 할 생각은 당시에도 없었고 여전히 없다. 하지만 임신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는 태도에 마구 욕을 퍼붓고 싶었다. 썅! 무식하고 무례한 것들이 지랄하넷!

 

이런 빡 도는 상황에서 스트레스에 취약한 말걸기가 성기능을 제대로 작동시켰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미완의 포트폴리오

 

말걸기[수료전] 에 관련된 글.

 

 

한국 최고의 비평가로 인정받는 최모 선생께서 말걸기더러 게으르다고 하였다. 맞다. 포트폴리오라고 맞추어 놓은 게 고작 6컷이니 말 다했다. 어쨌든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다. 그러니 10컷 20컷 만들어 낸 사람들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포트폴리오는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가진 텍스트와 마찬가지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구상하고 대상을 캐스팅한 후 촬영을 해야 하는데, 대상을 캐스팅하는 것 자체가 노가다다. 게다가 실제로 어떻게 찍히는 지 예측하기 어려워서 일단 찍어보아야 애초에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적절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러니까 찍어야 제대로 된 구상인지 알고, 구상이 제대로 되어야 찍는 돌고도는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이 과정을 줄이는 자가 바로 노련한 작가일 것이다.

 

말걸기의 게으름은 캐스팅에 있다 할 수 있다. 더 많은 나무들을 담았어야 한다. 몇 시간 돌아다니면 몇 그루의 나무를 캐스팅할 수 있다. 어떤 경우는 하나도 캐스팅하지 못한다. 100 컷을 만들어 냈다면 그 중 20 컷을 대략 포트폴리오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100 그루의 나무를 캐스팅하려면 몇 개월을 밤마다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말걸기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이 모양이다.

 

 

나무를 찍게 된 이유는 이렇다. 예전에 [나무들①]에서 밝혔다시피 일산의 나무들을 보고선 타협을 잘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산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길거리의 나무들을 바라보니 참으로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인간들이 심어놓은 자리에 스스로 생식도 못하는 저 나무들이 안타까왔다. 그러다가 자꾸 바라보니까 잘도 자라고 있는 것이었다. 오 놀라운 타협의 능력이여!

 

시각적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위해서 밤을 택했다. 낮은 아무래도 밋밋한 나무들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비주얼한 사진을 낳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유혹이기도 했다. 시각적 유혹만으로는 타협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아래의 사진들을 보고서 누가 타협을 연상하겠는가.

 

 

아래 사진 중 앞의 셋은 이미 공개한 사진이다. 봄에 찍은 사진들이다. 아래의 셋은 늦 가을에 찍은 사진들이다. 이 중 맨 마지막 둘이 전시된다. 이 포트폴리오는 전시장에 마련된, 하루 사이에 입구에서 안으로 자리를 옮겨버린 열람대에서 볼 수 있다. 작은 카드형으로 제작했다. 전시하고 있는 두 사진은 '디아섹'이라고 불리는 사이텍으로 제작되었다. 아크릴 압축으로 이미지 보존성을 높이고 강렬한 채도를 보인다. 겁나 비싼 거다. ㅠㅠ.

 

 

 


 


 


 


 

 

 

 

 

다섯째 사진은 파란꼬리가 '계시 받는 나무'라고 했다. 그래 보인다. 역시 타협과는 멀다...

 

 

수료전

 

중앙대학교 사진아카데미 창작사진 2년 과정을 1년 반만에 마친다. 이 과정은 전시를 함으로써 수료한다. 미완의 포트폴리오로 마감하지만 '반듯해 보이는' 두 장의 사진을 전시한다.

 

■ 2008년 사진아카데미 창작사진과정 전시회

 

○ 일시 : 2008년 12월 10일(수)~16일(화) 11:00~20:00

○ 장소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별관(광화문 갤러리/지하철 광화문역 1,8번 출구 아래)

 

※ 마지막 날 16일(화)은 작품철거가 있으므로 사실 상 오전에 잠깐으로 끝남.

말걸기 당번 날은 15일(월). 밥먹는다거나 돌아댕기느라 미리 연락하지 않으면 안내받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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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반 동안의 사진아카데미 과정은 대체로 밀도가 높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대한 태도나 지식, 습관이 많이 바뀌었다. 어제 이번 전시 디스플레이를 하고 와서는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 깨달음은 앞으로 도달해야 할 경지였다.

 

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 사진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이번 전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관람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말걸기의 작품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아마추어 사진가가 사회교육기관에서 사진 교육을 받고서 어떻게 사진을 찍게 되는지 직접 눈으로 보라는 뜻이다.

 

물론 사진아카데미에는 '마술'이 없기 때문에 수강생들의 사진이 이 과정 때문에 확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라는 틀 때문에 표현의 형식과 내용은 확실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표현의 완성도를 어떻게 높이는지 눈여겨 본다면 프로작가들의 전시와는 다른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2년 과정을 수료하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현재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도 전시하고 있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광화문 갤러리(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별관)는 1관과 2관이 마주보고 있다. 1관에서는 창작사진Ⅰ(1학기)과 창작사진Ⅱ(2학기) 과정 수강생들이 전시를 한다. 2관에서는 창작사진Ⅱ과정을 지난 학기에 수료한 이들과 작품연구반(2년) 과정을 수료하는 이들이 전시를 한다.

 

관람 순서는 당연히 1관을 관람한 후에 2관을 관람하는 게 좋을 듯하다. 전시된 작품만을 보면 작품연구반 사진이 더 뛰어날 게 없어 보인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연구반 전시장 입구에 포트폴리오를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포트폴리오를 열람하길 바란다. 포트폴리오 제작 과정에 착오가 있어서 프린트 질이 좋지 못한 포트폴리오가 섞여 있는 건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포트폴리오 작업은 보통의 아마추어 작가들은 관심도 없고 하지도 않는 작업이다. 대체로 '한방 사진'에 몰두한다. 이는 한국 사진 문화의 특성인데 산업적으로는 카메라 산업이 부흥하는 만큼 사진 산업은 몰락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결국 사진미학적, 예술적 인프라는 비리비리하다는 얘기. 당연히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예술적 수준 향상이나 다양한 사진 활동의 기회는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인용하는 텍스트 중에는 속담처럼 한 문장으로 온전히 뜻을 전달하는 글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긴 경전 중에 한 글귀가 집약적으로 경전의 뜻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에게 자주 다가오는 텍스트는 한 문장에 불과하지만 이 둘은 그 배후가 다르다. 짧고 단순한 텍스트도 그 기능이 있지만 길고 장황한 텍스트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것이든 형식과 내용에서 완결성이 높지 않으면 재미없고 별 가치 없는 텍스트가 될 것이다.

 

포트폴리오 작업은 그 사진의 갯수만큼의 길이에 맞게 완결성을 높이는 과정이다. 한 장의 사진으로도 속담처럼 완성된 가치를 얻을 수 있지만 대부분 아마추어 작가들이 공개하는 한 장의 사진은, 그 자체로는 놀라운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 감성은 완성되어 있지 않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진이 한 장으로 그친다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서 열람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들 중에 훌륭한 게 있기는 하지만 그거야 말걸기 생각이고, 직접 와서 찬찬히 포트폴리오도 열람하길 바란다. 사진을 찍는 목적이야 제각각이고 그걸로 만족한다면야 아무 상관없지만 카메라 들고 어딘가로 가서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면 포트폴리오는 새로운 길이 될 것이다. 남들도 하는데 못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