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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20/05/03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2. 2020/04/12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살고자하는 마음
  3. 2020/03/29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4. 2020/02/09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살고자하는 마음
  5. 2020/02/02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
    살고자하는 마음
  6. 2020/01/26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살고자하는 마음
  7. 2013/11/08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살고자하는 마음
  8. 2013/10/04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살고자하는 마음
  9. 2013/09/27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10. 2013/09/13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살고자하는 마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사람은 자신의 품에서 낳은 자식이라도 자기욕심과 편리와 유익을 위해 버리거나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도 사람은 죽기 전까지는 혈육을 끊지 못하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아가 되었든 버림을 받았든 이유를 모르든 자신을 낳아주신 육신의 어미와 아비를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어 방방곡곡을 두루 찾아 다닌다. 그런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육체를 지으시고 그들이 셋째하늘로 돌아와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영원히 살도록 생기를 주셨으니 그들을 위해 자신의 품에서 낳으신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은혜로 주셨다. 그러므로 둘째사람은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 영혼의 아버지를 찾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라도 자기 스스로가 그 생명의 아버지를 버린 영혼은 더 이상 찾지 아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하신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버린 영혼들조차 한 영혼 한 영혼이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끝까지 구원코자 하신다.

 

생명을 위하여 자신을 찾는 자를 만나주시는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신을 찾지 않는 영혼에게도 은혜를 내리시고자 그가 호흡이 있는 동안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부르신다. 구체적으로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시니 그가 육은 살아있으나 그의 생각이 사망으로 들어간 자라도 큰 질병가운데 있는 자라도 노인이라도 감옥에 묶여 그 육체의 생명이 끝날 날을 기다리는 자라도 끝까지 부르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육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하셨으며 또한 육으로 쉴 수 있는 시간도 정하셨으나 오직 은혜 받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만큼은 정하시지 아니하셨으니 그것은 사람이 일어나있거나 앉아있거나 심지어 드러누워있을 때에도 또한 어디서라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면 오로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께서 그가 원하는 그 생명의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심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 나온 그 손 마른 자는 아버지의 그 자비하심으로 인해 다음과 같이 생명의 은혜를 얻었다. 그는 늘 자신의 입으로 나는 가난하다 먹을 것이 없다 입을 것이 없다며 자신의 거하는 처소 깊은 곳에는 모든 것을 숨기고 있었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그의 마음에 있는 욕심을 보시고 수고한 그의 손을 마르게 하셨으니 그는 더 이상 추수할 곡식을 걷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자들에게 빼앗겼다. 또한 그가 늘 입으로 시인한 것처럼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서서히 빼앗겼다. 그러다 그는 더러운 흑암의 세력들로 인해 그 손에 피가 오랜 세월 들어가지 않아 큰 고통가운데 있었으니 손이 말랐다는 것은 이방인들이 말하는 관절염보다 더 진행된 통풍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나는 죄를 가지고 그냥 빨리 죽겠노라 하지 않고 자신의 그 죄를 알기에 오히려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전에 와서 늘 애통하며 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목자라면 그를 위하여 어떻게 해주는 것이 옳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에는 안식일이라며 그를 위해 제사를 드리지 않았고 다른 날들에는 제사를 지냈어도 그의 마른 손이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그들이 늘 제사를 드렸으되 그가 죄의 사함을 받지 못했던 이유를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악한 자가 깊은 구덩이를 파놓고 자신의 손에 금과 방석을 들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어떤 늙은 여자가 그 악한 자에게 어떻게 하면 당신의 손에 있는 것들을 얻을 수 있냐고 물었다. 이에 악한 자는 이 구덩이로 들어가면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늙은 여자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즉시 안으로 뛰어들었으니 악한 자가 그에게 금과 방석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으니 늙은 여자는 어떻게 해야 더 큰 금과 더 높은 방석을 얻을 수 있냐고 물었다. 이에 악한 자는 네 자식을 구덩이로 끌어들이면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늙은 여자는 자기 딸에게 여기가 참 좋으니 들어오라 했고 딸은 크게 아멘하며 뛰어들어갔다. 이에 악한 자는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던져주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끝까지 붙들고 싶어하니 늙은 여자는 자기가 가진 것들을 빼앗기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이에 악한 자는 네 자식이 거기서 나올 생각을 하지 말고 계속 머물러있게 말을 잘 하라고 시켰다. 그러자 늙은 여자는 자신을 따르는 딸에게 자기가 가진 돈과 명예를 보여주며 너도 기다리면 저 위에서 더 큰 금과 더 높은 방석이 내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딸의 욕심도 이루어져갔다. 하지만 악한 자는 여자들이 원하는 것을 던지며 구덩이에 부드러운 모래도 함께 붓기 시작했으니 딸은 그것을 깨닫자 금과 방석을 버리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웅덩이는 너무 깊어 혼자서는 올라갈 수 없었으니 어미에게 좀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늙은 여자는 도와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되 사실은 자신도 나가는 방법을 몰랐으니 자꾸 요청하면 안에 있어도 밖에 있음을 믿으라고 했다.

 

이처럼 그리스도 당시의 목자들은 성전에서 백성들을 데리고 거룩한 행위를 하기는 했으나 그들 자신부터 욕심을 잉태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거룩을 위하여 죄와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품고 있는 그들이 어찌 다른 죄인들을 아버지의 뜻으로 이끌 수 있으리요? 게다가 그들은 자신과 가족을 위한 썩어질 욕심뿐만 아니라 존경 받는 자리를 사랑했으니 그들은 손 마른 자보다 더 깊은 죄 가운데 있기에 결코 백성들을 거룩으로 이끌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를 애통하며 용서받기 원하여 늘 그 성전에 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성전 안에 위치한 가르치는 회당으로 들어가실 때 손 마른 자가 거기서 늘 애통하며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으니 회당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그 영혼을 치료하시고자 그에게 다가가셨고 손 마른 자는 자신의 원함을 이루어주실 메시아를 만났기에 죄 용서함을 받고자 아버지께로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그의 죄를 사하셨고 더불어 이제는 그의 손에 손을 얹으시니 그의 손에서 피가 묶였던 것이 조금씩 손으로 또한 뼈마디와 뼈들 사이로 들어가므로 그의 손이 곧 회복되어 극심한 고통에서도 나음을 받았다. 그리하여 두루 다니시며 수많은 병자들 가운데서 오직 죄를 고백하는 자에게는 그가 어떤 상황과 시간에 있든 동일한 해방을 안식일에도 허락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착한 일은 이방인의 생각처럼 사람의 육을 고치거나 돈을 주는 것이 아니요 범죄한 자의 영혼을 고쳐 그에게 무엇보다도 영생의 은혜를 허락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겉으로 나타나는 육적인 것을 선한 것이라 생각하니 어리석게 믿는 자들은 지금도 자신의 죄는 회개치 않고 오직 병 고치고 귀신 쫓고 유다처럼 사회사업하는 목자들만 좇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모르는 자가 교회를 거룩과 생명으로 이끌지 못함은 자신부터 죄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돌이킴 없는 그들을 아버지께서 회복하시리요 원수가 일으키리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손 마른 영혼을 아버지의 뜻으로 이끌어 생명의 은혜를 베푸셨던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다. 그러므로 안식논쟁을 벌이며 뒤따라오던 성전의 목자들은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대적하는 그 악한 자들에게는 거룩하고 선한 일을 안식일에 취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한편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백성들에게는 아버지의 그 애틋한 자비의 마음을 알리시고자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으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은혜 받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아니하셨으니 안식일에 어떤 한 백성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애통하며 죄를 고백하고 죄의 사함을 얻기 위하여 있다면 안식일에도 제사를 드리는 것이 더 옳음이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도 또한 어떠한 날에도 또한 어디에서도 함께 계시며 모든 백성들이 그 죄에서 해방되는 것을 원하시고 계심을 깨우치기 원하는 도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어떤 사람이 큰 건물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서 예배를 인도했다. 그러므로 그의 입에는 자비와 용서와 회개와 거룩과 헌신과 겸손과 희생과 화목 같은 말들이 항상 붙어 다녔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예배 후에 사람들과 인사하고자 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자신은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이니 자신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반갑게 웃으며 악수하되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보다 낮다고 여기며 고개를 숙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일 때는 누군가 자기에게 상석에 앉으라고 권하길 기다렸고 자기 밑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하로 알았고 아직 공부하며 그 일을 준비하는 사람은 보조자로 대했고 자기보다 적은 수의 영혼을 이끄는 자를 만났을 때는 나는 설교를 잘하는 능력자이니 부족한 당신은 나의 밑이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거룩한 곳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을 때 그의 마음과 생각이 이러하니 그가 주중에 나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그의 삶이 어떠하겠는가? 이렇게 그는 언제든 어디서든 사람들에게 섬김 받으며 높아지려는 헛된 교만과 또한 자신과 가족의 썩어질 육을 구하는 마음으로 말과 행위를 때로는 조심스럽게 때로는 강하게 하다 다음주가 되니 그런 마음을 회개하거나 돌이키지 않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 똑같이 예배를 인도하고 나와 동일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키가 작고 어깨가 안쪽으로 숙여진 어떤 가냘픈 사람이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그 건물에 들어가 내가 했던 말을 전하고 헌금을 바치고 찬양하고 아버지께로 기도하되 예배를 마친 후에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죄악된 삶을 그대로 살고 있노라.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한 몸을 더럽히는 삶을 가증하게 보시니 너희가 오직 죄악 한 가지라도 이기고 거룩하게 되길 원하시는 도다. 또한 먼저 자비를 받은 자로서 자비를 베풀기 원하시니 너희들이 앉아있는 그 자리는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요 마지막까지 너희의 목숨까지 바쳐 섬기는 자리로 계획하셨노라.” 예배를 인도하는 자들은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을 돌이켜야 함을 깨달았으되 자신이 앉은 곳에서 내려오지 않고는 돌이킬 수 없었으니 회개도 섬김도 원치 않는 자들은 하나로 뭉쳐 이렇게 말했다. “죄는 우리가 이 건물 안에서 드리는 예배로 사함 받는 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끗하되 만일 죄가 있다 해도 아버지는 이미 용서했으니 원수의 자식이 아니고서야 어찌 의롭고 거룩한 우리를 돌이키라 하느뇨? 그리고 너는 무슨 권위로 우리에게 돌이키라 하느뇨? 네게 그런 권세가 있다면 증명해 보여라!” 그들은 이렇게 말을 맞춘 후 그를 잡아 죽이고자 했으나 그곳을 들락날락하던 자들 가운데 어떤 영혼은 목숨까지 바쳐 아버지를 섬기겠노라 약속한 자신의 첫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또한 오직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심판하시는 살아계신 아버지가 두렵고 떨리니 무엇이든 올바르게 행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는 그 사람의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을 돌이키고 자신이 앉은 가장 엄한 바리새인의 자리에서 미련 없이 내려와 자신이 죽이려 했던 그를 따르며 자비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그와 하나되었다. 그러나 다른 자들은 먼저 그 초라한 자를 자신들의 법으로 잡아 죽인 후 자신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그를 따르던 동료도 잡아 넘기되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린 자신을 의롭게 여겼다. 그러나 초라한 이의 죽음은 자신이 섬기는 이를 위해 자기목숨을 버리는 죽음이었으니 큰 사랑을 받은 그도 역시 초라한 그를 친구라며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영원한 사랑과 우정을 늘 함께 나누었으되 가증한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여긴 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하늘의 심판을 받아 그 뜨거운 곳으로 들어갔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에 거하는 죄로 인해 누구나 다 불의하며 범죄한다. 그러나 사람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면 말씀으로 찔림을 받았을 때 불의하고 죄악된 자신을 돌이킬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리스도를 따른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그 십자가의 자비를 통하여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똑같이 돌이켜야 함을 깨달았어도 많은 자들이 제자들과 달리 돌이키지 못했으니 그것은 자기욕심과 영광을 구하는 그 악한 뜻을 자신의 손에서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상을 버리지 못한 성전의 목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죄 없으신 인자를 죽이고 영원한 사망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해 잠시 육의 좋은 것을 취하며 잠시 사람들에게 영광 받다 사망으로 들어가는 어리석은 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으니 회개와 돌이킴을 통해 얻는 그 영광은 썩어질 육과 이 세상의 헛되고 헛된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당시 그곳에 있는 자들 가운데 자신을 따르는 영혼들이 얻을 그 영광스런 생명과 또한 자신을 죽이는 자들이 당할 그 영원한 형벌을 이미 알고 계셨으되 후자도 돌이켜 그 생명에 이르길 원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십자가의 자비로운 희생으로 거룩하게 하여 아버지와 화평하게 하는 그 메시아가 바로 인자라는 확신을 그들의 마음에 다시 한 번 깨우치고자 전하시는 말씀이요 동시에 오직 자기욕심과 명예를 위해 거룩에 마음과 믿음 없이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는 목자들에게는 경고의 말로 쥐어주신 것이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자비를 받은 자가 제사보다는 자신이 받은 그 자비를 다른 자들에게 전해주므로 자신의 그 허물들을 용서받으며 또한 그 자비로써 자신보다 위에 있는 자들과 더불어 화목을 이루며 또한 아래에 있는 자들과도 더불어 화목을 이루며 하나가 되기를 더 원하시는 도다.”

 

그러나 성전에서 제사를 인도하던 독사새끼들은 자신의 악한 마음을 끝까지 돌이키지 못했으니 죄에 눈이 가려 끝까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가까이 온 천국과 회개를 선포하는 인자를 미워하고 시기했으며 네가 무슨 권세로 여호와의 종인 내게 뭐라 하느냐 생각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죄 사함의 권세에 대한 확신을 주시고자 자신이 바로 십자가에서 자비를 이루는 그 창조자임을 비밀적으로 전하기 위하여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조차 깨닫지 못함은 아버지께서는 자비를 저버리고 성전에 들어와 마음에 우상을 구하며 제사 드리는 자들에게는 어떤 깨달음도 주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사람은 정해진 법과 규칙이 있어도 그것을 지키지 않거나 옳지 않게 적용할 때가 있으니 그것은 자신의 욕심과 영광과 의를 위해서다. 그러므로 왕과 판사와 법을 만드는 자만이 아니요 백성에 이르기까지 불의한 자들은 그것들 중에 자기가 원하는 것만 뽑아내거나 알면서도 빼거나 바꾸어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간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일을 하되 아버지와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육의 욕심과 높아짐을 구하던 목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아버지의 신령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를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어서 지키며 자신을 의롭게 여겼고 백성들에게도 그것들을 열심히 지키라고 가르치며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리스도전의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성전으로 들어오는 백성들의 수가 많아질수록 자주 나올수록 자신의 악한 뜻과 계획이 더 빨리 잘 이루어짐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지키고 있던 큰 건물을 참으로 소중히 여기되 그 안에서 열심히 제사 드리며 오직 성전과 짐승제사를 통해 율법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율법과 예언에 따라 모리아산에서 멜기세덱의 의로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여호와께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메시아를 맞이하고자 거룩에 애쓰기보다 오직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품되 그들의 마음은 썩어질 헛된 곳에 있었다. 마치 첫사랑을 잃은 이방인들이 예배장소를 교회라고 칭하며 교회와 목자를 잘 섬기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그러나 구약성전은 큰 건물이 아니요 백성들의 몸이듯 신약교회도 그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요 그들의 몸이니 아버지께서는 이 땅에 다시 보내는 아들을 맞이하고자 썩어질 육의 욕심과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킨 후 그 깨끗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의지해 거룩을 이루고자 애쓴 신령한 신부의 몸 안에 거하시므로 그들을 성전으로 삼으신다. 또한 그 건물에 들어가므로 거룩의 복을 얻는 것이 아니요 사람은 먼저 영이 거듭나야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나 영의 생명을 얻고 그 다음으로 중생한 영혼이 육의 기회가 있을 동안 말씀에 순종하여 혼의 거룩에 이르러야 그 거룩한 몸을 입게 되는 것이니 그 생명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복과 하늘에 쌓아두신 소망이다.

 

하지만 전통의 규례와 유전을 따르며 다른 복음에 묶여있는 자들은 자신의 몸이 성전과 교회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깨달아도 거룩을 모르면 건물이 아닌 몸이 교회라는 말은 하되 정작 자신이 아버지의 백성과 자녀로서 의롭고 거룩하게 되어야 함을 인정치 못한다. 인정해도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서 돌이키지 못하면 거룩에 애쓰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의 끝인 지금은 그것을 알아서 말하는 자는 있어도 거룩을 행하는 자는 적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도 성전을 들락날락하며 드리는 제사와 또한 그 변경된 것을 지키므로 거룩해져 그 생명의 복을 얻는 것이 아니니 오직 여호와와 사람을 죽기까지 사랑하는 그 신령한 율법을 행하며 부족한 것은 순한 피를 의지하므로 거룩하게 된 그들의 안에 아버지께서 거하시니 그들의 몸이 곧 성전이 된다. 그러다 그들이 결국 의로운 피를 드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따라 부활했으니 그들이 바로 구약의 선지자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독사의 새끼들에게는 진리의 깨달음과 비밀을 안 주신다. 혹시 주실지라도 그들의 뜻은 악하기에 찔림을 받아도 거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당시의 목자들도 율법과 여호와와 진리와 거룩과 성전과 제사와 같은 말들을 늘 입에 달고 다녔으나 정작 그 뜻을 모르고 전하며 행하고 있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성전을 소중히 여기며 빠짐없이 제사를 행하고 있는지 그 마음을 아셨기에 칭찬이 아니요 오히려 그들의 악한 마음에서 돌이켜 거룩에 애쓰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성전을 통해 자신이 얻는 욕심과 영광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으니 그들의 눈에는 나사렛에서 난 그 인자가 메시아가 아니요 오히려 부딪히는 돌로 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때쯤에는 이미 고소할만한 것들을 다 준비하고 이제는 인자를 잡고자 안식논쟁을 일으켰던 것이니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악한 자들이 변경한 의문의 율법과 유전으로 자신을 붙들고자 하는 그들에게 먼저 다윗의 이야기와 더불어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허물이 없다는 말씀을 하신 후에 이 말씀을 허락하셨으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우선 율법과 계명의 마지막은 아버지와 아들을 자신의 마음과 목숨까지 바쳐 사랑하며 그와 같이 다른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과 끝에서 그것을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후로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얻고 그 중생한 영혼들 가운데 사람의 힘으로 그것을 이룰 수 없으니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로 나와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하는 자들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다. 한편 그리스도 전의 유대인들은 그것을 지켜야 부활의 생명에 이른다는 것을 이미 어미의 뱃속에서부터 들어서 알고 있으니 어려서부터 그것을 자기의 힘으로 지키고자 애쓴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그것을 다 이루지 못함을 깨닫는 자는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율법을 주신 그리스도께로 나오게 되어 있으니 여호와께서는 생명을 얻고자 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도와주신다. 그리하여 선지자들이 여호와를 따르며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이루고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렀던 것이되 눈으로 열조의 우상들을 사모하는 유대인들은 육의 욕심과 세상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을 버렸으니 그들은 오직 변경된 율법과 유전을 열심히 지키며 성전의 뜰만 밟았다.

 

이처럼 율법은 오직 멜기세덱의 제사를 통해 이루어지되 성전을 사모하는 자들은 성전의 제사로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그곳에 모인 자들에게 오직 인자가 율법을 완성시킬 것임을 알리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인자가 율법을 이루는 자임을 뜻하여 자신이 성전보다 위에 있다는 의미로 이 말씀을 허락하신 것이되 큰 건물에서 욕심과 높아짐을 취하던 목자들은 그것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으며 오히려 인자를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그 성전을 허무는 자로 보고 잡아서 죽이고자 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살고자하는 자에게는 깨달음을 허락하시니 지성소의 법궤 위에 뿌려지는 피와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를 보며 거룩한 육체의 믿음을 얻는다. 그 이유는 법궤의 안에 있는 십계명과 만나와 싹튼 지팡이의 약속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십자가와 성전의 비밀을 깨달은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그 거룩한 육체의 소망을 가지고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한 자기의 길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께서 사람에게 정해주신 그 십자가의 길을 그리스도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초대교회의 몇몇 지체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여섯째 날에 함께 모였으니 가장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돌이킨 후 주님의 만찬을 거룩하게 행했다. 거룩한 것을 먹고 마신 후에 온 힘을 다해 자신과 다른 영혼이 거룩에 이르도록 주의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아버지께로 부르짖어 구했다. 목자들도 양들도 다 함께 무릎 꿇고 아버지의 거룩하신 말씀을 전하며 받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성소를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여호와께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송축했다. 후식을 나누며 주님 나라의 소망을 보고들은 후 거룩하신 영의 탄식에 따라 죽어가는 이웃영혼들의 깨어남과 큰 구원을 위해 부르짖었다. 그리고 만찬을 마친 후 모든 지체가 마음과 영혼에 만족을 얻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 한 지체가 육의 욕심에 이끌려 범죄한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다 문득 아버지께로 부르짖어 회개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그러므로 애통하던 그는 소망을 가지고 자신의 형편에 맞게 먹을 것 한 가지를 준비해 공동체를 찾아가되 먼저 목자가 거하는 사택의 문을 두드렸다. 목자가 나오자 그는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알린 후 제사를 드려달라며 참새를 내밀었다. 그러나 목자는 지금은 예배를 마치고 쉬고 있으니 내일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고개를 떨구며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가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으나 갈 곳이 없으니 이리저리 방황했다. 잠시 후 다른 한 지체가 자신과 가족의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 고민하다 거룩한 공동체에는 아버지께서 가난한 영혼들을 위해 준비하신 영과 육의 양식이 항상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떠올랐다. 그러므로 목자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자신과 가족들의 영혼이 먹을 것을 조금만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목자는 지금은 예배를 마치고 쉬고 있으니 당신도 당신의 집에 가서 편안하게 쉬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배고파 울며 이곳 저곳을 방황했으되 그 목자는 자신의 이름과 선함이 알려지는 곳에는 언제든지 창고의 문을 활짝 열었다. 한편 많은 재물이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만난 어떤 한 지체가 어떻게 해야 일이 잘 될까를 고민하다 목자에게 말씀과 기도를 받으면 복 받는 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므로 그 영혼도 제물을 하나 준비하여 부푼 마음을 가지고 사택을 방문했다. 그러자 목자는 그의 형편과 위치를 알고 있으니 그를 반갑게 맞아들이며 그가 가져온 수소와 송아지들을 창고에 묶어두고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흔들어 넘치도록 구하되 그의 자손들도 바다에서 수영선수가 되도록 간구했다. 이에 그는 만족하며 하얀 봉투를 기쁘게 건넨 후 발걸음도 가볍게 자신이 원하는 곳을 향하여 나아갔다. 그리고 그 목자는 아예 일년에 한두 번을 정하거나 수시로 지체들의 가정을 돌아다니며 말씀과 기도로 양들을 바다로 인도하며 하얀 봉투를 거두었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의 다음 날인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해도 괜찮은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것이니 예를 들어 어느 한 백성이 자신의 범한 죄를 깨달아 율법이 정한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찾아와서 제사를 드리고 싶어한다. 이때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오늘은 안식일이니 내일 오시오.'라고 말할 수 없으니 오직 한 영혼을 위하여서라도 그들이 제사를 드리는 것이 옳다. 그러나 독사자식들은 거룩을 깨닫지 못했기에 누구든 안식일에 제사의 제물을 가지고 오는 자는 안식을 범한 자이니 성전을 찾아온 그 영혼에게는 안식을 범한 죄가 있겠노라며 아무도 받지를 못했다. 그리하여 거룩과 안식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목자들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온 그 백성들을 오히려 죄와 세상가운데 늘 머물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성전에서 제사를 드린다는 목자가 이렇게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지 않는 것은 이방인의 목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거듭난 한 영혼이 자신의 안에 거하는 그 죄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 고통당하며 애통하고 있다. 그러면 그에게 죄에서 승리하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마땅하니 인자의 살과 물과 피로 거룩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세상에서 돌이켜 십자가로 나오도록 인도함이 옳다. 그러나 거룩을 모르는 자는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으니 율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믿는 자는 이미 회개했으니 다시 회개하면 믿음이 없고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비록 죄를 범하는 중에도 자유 하는 것이 큰 믿음이다.’라는 무식한 말을 하며 그가 죄와 어둠에서 돌이킴이 아니요 오히려 죄와 세상에 안일하게 머물러있도록 이끈다. 하지만 이런 목자들은 아버지와 양들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하겠노라 서원한적이 없는 거짓양치기들이니 자신은 주님의 사역에 충성하고 있다고 말하되 사실은 자신의 썩어질 육을 아끼고 있는 자들이다.

 

안식을 범해도 죄 없는 또 다른 경우는 그리스도께서 신령한 율법을 다 이루신 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룩한 공동체에 드리고 필요한 만큼만을 받아서 사용하는 교회시대와는 달리 구약시대의 십일조에 대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곡식과 짐승을 얻을 때마다 즉 십 분의 이를 제사장에게 바쳤다. 그러면 제사장은 거기서 반을 아버지께 감사 드리며 취했고 반은 육의 음식을 못 먹는 자들을 위해 남겨두었다. 그러다 가난한 자가 왔을 때 이것은 아버지께로 온 것이니 아버지께로 감사 드리라는 말과 함께 그것을 전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십자가의 전에는 십일조를 통해 여호와의 종들도 먹을 것이 항상 있으며 또한 게으른 자가 아닌 가난한 영혼들도 먹을 것이 항상 넘치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육신의 굶주림으로 인해 성전에 와 먹을 것을 좀 구할 때에는 그날이 비록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성전창고와 우리와 외양간을 열어 그 쌓아둔 것들을 내어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심령이 가난한 자가 육의 힘을 얻은 후 거룩에 애쓰므로 새 생명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백성들을 위해서가 아니요 자신과 가족의 육과 또한 사람에게 영광을 얻고자 목자의 일을 하던 자는 굶주린 영혼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으니 가난하고 낮은 자들을 내어쫓으며 오히려 자신을 의롭게 보이고자 '오늘은 안식일이니 너도 저기에 가서 안식을 취하라.'고 말하되 자신들은 늘 배가 불어있었다.

 

그런데 구약과 2천년 전의 이러한 상황은 첫 사랑을 잃은 교회시대 이방인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썩어질 것을 여기저기에 전하되 정작 자신의 공동체 안에 있는 가난하고 낮은 자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아니함은 그들은 자신들의 뜻과 계획에 도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썩어질 것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영의 양식이랴?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자신과 자기가족과 부한 자와 높은 자를 위해서는 늘 창고의 문을 열되 가난한 영혼들은 돌보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진리를 주시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오늘날 배가 불어있는 목자는 육은 있어도 주지 않는 것이요 영은 없어서 못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이 진리라며 앞에서 말씀을 전하되 그들이 만일 십자가의 희생으로 전달되는 진리와 산제사로 이루어지는 거룩을 안다면 그렇게 행하고 있겠는가?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

아벨과 가인이 야곱과 에서가 동일한 애비와 애미의 사이에서 나왔을지라도 아버지께서는 아벨과 야곱은 받으시되 가인과 에서는 받으시지 않으셨다. 한편 밭이 다르되 씨는 동일했을지라도 오직 이삭은 받으시고 이스마엘은 안 받으셨다. 구약의 많은 제사장들을 다 버리시고 몇몇 선지자들을 일으키셨다. 또한 2천년 전 큰 건물에서 영광을 받던 많은 목자들과 육이 가난한 자들에게 선한 제자로 인정받던 가룟은 버리시되 11제자와 맛디아와 자신이 영광 받는 자리에서 내려온 바울은 받으셨다. 환난으로 들어가는 이 마지막 때에 자신을 목자라고 칭하는 자들이 수없이 많을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시는 불의하신 분이신가? 결코 그럴 수 없으시니 사람이 인격과 이성을 가지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세 가지의 기준이 있다.

 

사람의 영혼을 이끄는 자의 마음이 육의 욕심과 사람의 영광에 있느냐 아님 영의 욕심과 하늘의 영광에 있느냐가 첫 번째 기준이다. 그러므로 육의 욕심을 품은 자는 진리는 버리고 썩어질 것을 구하며 즐기고 만족하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썩어질 것은 버리고 오로지 진리를 구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영원한 것은 포기하고 사람들에게서 높임 받기를 원하되 하늘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헛된 영광을 내려놓고 오직 아버지의 영원하신 나라를 구하며 아버지께로 의롭다 인정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썩어질 욕심은 사람을 죄로 이끌고 세상의 영광은 불의한 길을 걷는 자에게 주어지되 아버지의 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목숨을 버리는 그 길의 끝에서 인정받고 아버지의 그 영광스런 나라는 오직 거룩한 자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어떤 길을 걷는 영혼을 받으시어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성전으로 이끄시겠는가?

 

둘째 그에게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기준이다. 사람은 마음에서 죄가 나오니 육적인 욕심을 부리거나 불의한 자신을 옳게 여기거나 자신을 높이기 원하면 범죄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어떤 자는 죄를 범한 후 상한 심령을 가지고 통회하며 그 죄가 자신에게서 떠나가기 원하되 어떤 자는 주님이 용서했다며 그것을 은밀히 품고 계속 사랑한다. 그러므로 전자는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으되 후자는 버린 자다. 그런데 거룩을 향해 애통하는 마음을 버렸다는 것은 자신과 다른 자를 계속 더럽히겠다는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어떤 영혼을 자신의 품에 안으시어 위로해주시겠는가?

 

마지막 기준은 주님을 향한 흔들림 없는 마음이다. 누가 거룩한 자인지 깨달을 수 있는 비유로써 어떤 남자가 자신의 마음과 목숨을 바쳐 오직 한 여자를 사랑했으니 그들은 한 몸을 이루었으며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늘 만족을 얻었다. 하지만 어느 날 여자는 종이 옷을 입은 남자에게 다리를 벌린 후 자기남편에게 와 사랑한다 말하자 남자는 그것은 당신과 나와 자식들을 더럽히는 것이니 돌이키라며 용서해주었다. 그러나 여자는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의심이 가득한 마술사에게 벌린 후 남편에게 와 똑같이 말하자 남자는 동일한 말과 함께 또다시 용서했다. 그러나 여자는 그것도 부족했으니 이번에는 하체가 큰 이웃집남자에게 벌린 후 똑같은 말을 하자 남자도 동일한 말과 함께 이것이 마지막이라며 용서해주었다. 그러나 여자는 거리의 모든 남자를 집으로 불러 부부의 침상에서까지 벌렸으니 남자는 결국 돌이키지 않은 여자를 쫓아냈다. 그러므로 자신이 과거에는 비록 창기였을지라도 목숨까지 바쳐 자신을 사랑해준 남자를 만났다면 그 이후로 그것을 멈추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한 영혼이 거듭나기 전에는 그가 비록 자기생각을 따라 세상과 간음하며 살았을지라도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영접한 이후로는 그것을 멈추는 것이 옳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고 평일에는 다른 남자와 한 몸을 이루며 살다 여섯째 날과 주일의 거룩한 만찬을 통해 자신의 남편과 한 몸을 이룬다면 그것은 자신만이 아니요 신랑과 다른 지체들까지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과연 어떤 영혼을 거룩하고 신령하게 받으시리요?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모든 영혼을 공평하게 보시며 대하시니 바로 이 기준들로 가까이 혹은 멀리 두셨다. 그러므로 비록 크게 범죄한 다윗이었으나 그는 육과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잃는다 해도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그 소원으로 인해 아버지의 마음에 합했다. 그러나 다윗처럼 똑같은 죄인이었으나 사울은 썩어질 육의 부요와 헛된 세상의 영광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오히려 거룩을 버리고 여호와를 불렀으니 아버지께서는 그의 거짓된 마음을 아시고 폐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원수는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는 영혼을 핍박하며 죽이기 원하되 그와 가까운 자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를 이용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가인과 에서는 자신이 가진 힘을 가지고 아벨과 야곱을 핍박하며 죽이고자 했고 가룟은 그럴 힘이 있는 성전의 목자들에게 인자를 넘겼다. 마찬가지로 다윗도 역시 같은 이유로 세상권세를 가진 사울에게 핍박 받으며 도망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은 자신을 따르던 자들과 함께 성소에 들어가 거룩한 떡을 취했으나 그날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위해 목자의 일을 하던 구약목자들이 변경한 그 율법과 유전에 따라 다윗은 두 개의 법을 어겼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다윗이 행한 일을 안식일과 성전의 율법을 어긴 것으로 보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다윗이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거룩한 만찬을 나눈 것으로 보셨다. 즉 그가 광야에서 핍박 받으며 쫓겨 다닌 것은 거룩을 위해서였으니 거룩한 떡을 먹은 것은 육신의 욕심을 채우며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함이 아니요 거룩에 힘을 쓰기 위해서였고 왕이 될 자신을 따르며 함께하는 영혼들에게 오직 여호와의 율법과 도를 가르치므로 그들도 거룩에 애쓰도록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성소의 그 거룩한 떡을 오직 먹어야 할 자가 먹었기에 다윗에게는 죄가 없는 것으로 보셨으며 오히려 그의 깨끗한 마음을 아시고 자신의 마음에 합당한 그를 계속하여 자신의 오른손으로 붙드셨던 것이다.

 

한편 당시에 자기자신을 위해 목자의 일을 하던 성전의 인도자들은 늘 인자의 뒤를 따라 다니며 이미 고소할만한 것들을 충분히 모아두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자신들의 율법으로 인자를 붙잡기 위해 기다리던 차에 비로소 제자들이 다윗을 따르던 자들과 같은 모습을 보이자 곧바로 안식일을 범했다며 고소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옳음을 보이려면 그들에게 우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또한 다윗은 거룩을 이루기 위해 다니며 그것을 먹었으니 율법을 범한 것이 아니요 오히려 옳게 행한 것임을 알리셔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것들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단지 다윗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배고플 때 행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고 물으셨으니 그 이유와 목적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였다.

 

첫째 아버지께로 합당하지 않은 마음을 품은 그들은 이미 여호와를 알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는 자들이 아니요 오히려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는 자들을 핍박하며 죽이고자 하는 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의 마음은 육의 욕심과 자기가족의 필요와 자신이 높아지는데 있으니 더러운 떡을 상에 올려 제사 드린 후 그것을 먹고 얻은 힘으로 자기유익을 위해 입과 손과 발을 놀리며 양들을 세상으로 흩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반문하는 자들이다. 고로 그들은 성경의 어느 곳을 펴서 보아도 전해도 들어도 오직 자신의 그 유익만을 깨닫게 되리니 그리스도께서 그 악한 자들에게 말씀을 허락하신들 그들이 어찌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리요? 오히려 화만 부르게 된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될까 두려워 깨닫지 않으려는 자들에게 진리를 전해 화를 부르는 대신 입술로는 이것이 주님의 뜻이요 사역이라며 오히려 진리를 전하는 자들을 잡아 피 흘리므로 아버지와 멀어지되 그런 자신을 끝까지 돌이키지 않으려는 그들의 악한 마음을 찌르기 원하셨다. 그리하여 이전부터 내려오던 율법으로 이제는 인자를 잡으려는 그들에게 그들보다 더 위에 있는 다윗과 구약제사장들이 어떻게 행했는지를 알리셨던 것이다. 즉 너희가 만일 너희가 가진 법으로 나를 잡는다면 동일한 그 법으로 다윗과 제사장에 대하여는 어떻게 심판을 내리겠느냐는 의미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깨끗한 열매를 보화처럼 여기는 왕이 포도원을 계획하자 그 왕의 아들은 자신의 마음이 아비에게 있었으니 아비의 뜻을 이루고자 햇빛이 잘 드는 산중턱에 땅을 파고 돌들을 거둬내고 악한짐승이 들어와 해치지 못하도록 울타리도 두르고 세심하게 살피며 날마다 열심히 일했다. 아들은 이렇게 6일 동안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포도원을 만들고 7일째에는 쉬면서 극상품포도나무 두 그루를 준비해 8일째가 되자 포도원에 심고는 두 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6일 동안 일한 나에게는 2번의 안식이 남아있으니 너희도 포도나무를 정성껏 가꾸면 아버지께서 5년 후에 그가 맺은 열매에 따라 상급을 주시리니 그에게도 나와 함께 모든 것을 즐기며 왕처럼 다스리는 안식이 2번 남아있노라.” 아들의 말을 듣고 난 후에 첫째 종은 그 왕자가 6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7일째는 쉬다 8일째 극상품포도나무를 심었던 그 모습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왕자가 전해준 언약을 믿고 자신이 받은 포도나무에 아침저녁으로 거르지 않고 깨끗한 물을 주고 낮에는 땀 흘리며 벌레를 잡아내고 웃자란 가지들을 잘라내고 저녁때도 포도원에 나가 둘러보며 열심히 가꾸다 7일째는 쉬었으나 자신의 온 마음이 왕의 뜻에 있었으니 쉬다가도 일어나 포도원에 가서 늘 필요한 일들을 찾아서 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땀을 흘렸으니 5년 후에는 결국 깨끗한 열매들을 풍성히 따서 왕께 가져갈 수 있었다. 이에 왕은 그가 바친 열매에 맞는 상급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받은 보화는 나의 아들과 함께 즐기며 다스리는 2번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상급이니라.” 한편 둘째 종도 역시 극상품포도나무를 받았으나 그 일은 당장 유익이 없어 보였고 사람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일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주인의 포도원에다 자기가 원하는 나무를 심고 열심히 가꾸기 시작했으나 사과에 빠진 마음으로 인해 보화를 얻은 자에게 주어진 2번의 안식이 무슨 뜻인지 몰랐으며 아들이 일하다 7일째 쉬던 모습을 보며 6일을 일하고 7일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게다가 7일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는 기준을 자신이 정했다. 그러다 어느 날 7일째에도 깨끗한 일을 하고 있던 첫째 종을 보자 쉬는 기준을 어기는 그에게 이렇게 꾸짖었다. “6일간은 일해도 7일째에는 아무런 일도 해서는 안 되는데 어찌 너는 종으로서 불순종하느뇨?” 이에 첫째 종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께서 7일째 쉬셨던 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 5년 동안 오직 포도원을 열심히 가꾸고 상급을 받은 자는 자신과 함께 모든 것을 즐기며 왕처럼 다스리는 안식에 2번 참여한다는 뜻이오.” 그는 이렇게 알아듣게 설명해준 후 만일 그러한 상급을 원한다면 안식의 약속을 믿고 주인의 명에 애쓰라고 일러주었으나 그는 깨끗한 열매보다는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열매를 원했으니 그가 하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이해되지도 않았다. 또한 보화와 남아있는 2번의 안식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히려 첫째 종을 향하여 당신은 왕의 말에 불순종하는 거짓된 종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왕에게 받았던 극상품포도나무는 제쳐놓고 사과열매를 얻고자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했으니 결국 5년이 지난 후 신 포도와 사과를 많이 따서 왕의 앞에 바쳤다. 이에 왕은 약속대로 그가 맺은 만큼의 상급을 베풀었으니 둘째 종은 왕자와 함께 모든 것을 즐기며 다스리는 상급대신 오히려 자신의 욕심과 명예와 의를 위해 불순종한 만큼 심판 받고 쫓겨났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율법과 계명을 유대인들에게 주실 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에 애쓴 자들은 자신이 맺은 의롭고 거룩한 열매에 합당한 거룩한 몸을 입을 것이요 부활한 자는 천년왕국에서 안식하며 왕과 제사장이 되어 다스리다 천국의 끝에 그리스도를 따라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는 영원한 안식과 권세가 흰옷을 입은 그들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영광과 권세의 약속이 오직 그 안식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며 순종한 자들에게 천년 후에도 영원히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의 언약을 믿는다 하되 마음이 오직 육적인 욕심과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과 자신의 옳음을 나타내는데 있으면 그는 거룩을 모르는 자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모르면 그가 성경의 어느 곳을 펴서 어떤 말씀을 보아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리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율법과 폐하신 율법이 각각 무엇인지 모르되 교만이 넘치는 자는 자신의 생각을 따라 율법으로 구원을 얻니 못 얻니 아는체하며 서로 싸우고 정죄한다. 믿음과 행함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모르는 자들 중에 교만한 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전에도 당시에도 거룩을 모르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성전에서 늘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기는 했으나 그 의미를 모르고 행했으며 또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의 뜻도 깨닫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전통에 거하는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이니 그들도 늘 말씀을 읽고 또한 주일마다 모여 거룩한 행위를 하되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 행위들을 열심히 행하고 있다.



 

 



 

또한 사람은 아버지께서 갈급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주셨으니 무엇을 모르면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있으나 원수에게 그 마음을 빼앗기면 오히려 교만하게 변하니 무슨 말씀이든 자신의 유익과 의에 맞게 풀어서 정의를 내린 후 그 변화된 말씀에 따라 언행하며 자신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전에 교만함이 가득한 목자들은 바로 그 목적을 이루고자 율법과 계명을 해석하고 변경한 후 백성들에게 그것을 지키고 행하게 하며 이것이 곧 아버지의 뜻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의문의 율법과 전통을 따르는 유대인은 지금까지도 안식일에는 가만히 누워있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라 알고 말하고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온전한 율법이 아닌 의문의 율법을 따르는 자들의 기준으로는 즉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들어오고 보아오고 믿어오던 자들의 눈으로는 안식일에 거룩을 이루고자 일정한 거리 이상을 걸어 다니며 만찬을 행하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제자들이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안식일에도 모든 것들을 거룩을 위해 행하도록 가르치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셨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해 목자의 일을 행하던 종교지도자들은 이제는 제자들이 아닌 그들을 이끌고 있는 그리스도를 구약의 목자들이 변경한 율법과 유전으로 고소하여 붙잡고자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오직 한 분 신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의 품에 함께 계셨던 아들이요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요 신령하고 영원한 그 율법을 모세에게 내려주신 분이니 아버지의 뜻을 잘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무엇을 말하든 행하든 취하든 어디를 가든 누구와 함께하든 그의 모든 것들은 오직 거룩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를 애통하는 마음과 진리를 깨닫고 싶은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과 70인과 가난한 백성들에게도 천년왕국의 안식과 셋째하늘의 영원한 안식의 비밀을 가르치셨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깨달은 그의 제자들도 거룩을 이루고자 어떤 날이든 오직 그리스도를 따라다녔던 것이요 또한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육이 필요한 것들을 그 입으로 넣었던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돌밭 길을 흰 시멘트로 포장한 길을 경계로 좌측에는 편리하고 화려한 도시가 있었고 우측으로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농촌이 있었다. 그리고 도시에는 살진 암소와 힘센 소들이 많았으나 농촌에는 오직 한 마리의 수소가 땀 흘리며 밭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양 3마리가 포장된 길에 서서 도시와 시골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몇 가지를 깨달았다. 그러므로 도시에는 검은 십자가를 비롯해 수많은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었고 그곳에 거하는 양들은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했으니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오직 돈과 음란과 명예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얻고자 어떤 양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어떤 양은 몸을 뜯어고치거나 팔았고 어떤 양은 자기자리를 유지하며 높이기 위한 연구만했다. 심지어 검은 십자가 밑에 있는 양들은 자기의 새끼들을 살진 암소에게 부탁했고 암소는 힘센 소에게 팔아 넘겼으되 그런 자신을 의롭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4개의 뿔이 달린 힘센 소가 전쟁을 일으키고는 이것은 모든 양들이 살기 위한 전쟁이라면서 42달 동안 짓밟았고 마지막에 천조국을 다스리던 염소는 다른 도시들이 버섯을 못 쏘게 하늘에서 감시하다 6개의 버섯을 던졌으니 그로 인해 수많은 양들이 죽은 후에야 전쟁이 끝났다. 그러자 2개의 뿔이 달린 새끼 양이 나타나 용처럼 유창한 말로 평화와 안전을 외치며 모든 도시들을 하나로 만들어 왕처럼 다스리되 자신의 악한 마음과 계획은 숨겼다. 그러나 새끼 양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데 한계가 있었으니 잠시 후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는 수양과 암양을 순서대로 잡아 모조리 도살했다. 그러다 결국 하늘의 심판으로 땅이 갈라졌으니 자신만 사랑하던 양들은 살진 암소들과 염소들과 그 새끼 양을 따라 도시와 함께 땅속으로 내려갔다. 반면 농촌에서는 어떤 농부가 이런저런 말을 하며 수소를 인도했으니 수소는 농부의 말에 맞춰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밭을 갈았다. 그러므로 농부와 수소가 함께 땀 흘린 결과로써 곧은 왕의 대로가 나자 농부는 수소에게 가죽옷을 입히고 오른쪽 밭으로 가서 자기의 마음에 합한 수양에게 멍에를 씌웠으나 밭을 갈아본 적이 없었기에 삐뚤게 가기도 하고 갑자기 서거나 뒷걸음도 쳤다. 이에 농부는 밭을 갈아본 수소의 어깨에다 두 마리를 함께 묶는 멍에를 씌운 후 그것을 수양의 어깨에 걸쳐서 둘이 함께 밭을 갈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수양은 농부의 이런저런 말에 맞추어 수소와 함께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차근차근 밭을 갈았다. 또한 12마리의 독수리가 날아다니며 왕의 대로로 인도했으니 수양은 결국 자신의 밭을 갈아 엎었다. 이에 농부는 수양에게도 가죽옷을 입히고 마음껏 먹고 마시며 쉬게 한 후 이번에는 수소를 데리고 왼쪽의 밭으로 가서 합당한 암양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시멘트로 포장된 길에 서있던 어린양 3마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러므로 첫째 암양은 자기의 목숨도 내어줄 수 있는 친구와 그럴만한 가치 있는 일이 농촌에 있음을 깨닫고 자기를 부인하고 싶었다. 이에 7마리의 비둘기가 날아와 그 암양을 왼쪽 밭에서 기다리던 수소에게 이끌자 농부는 자기에게 돌아온 암양의 등에 멍에를 씌웠으니 첫째 암양도 쉽게 밭을 갈아 엎은 후에 가죽옷을 받아 입고 마음껏 먹고 마시며 쉬었다. 그러나 둘째 암양은 단단한 자신의 밭을 가는 것에 전혀 무관심했으니 수소가 짊어진 멍에를 거부하고 자기가 원하는 밭을 골라 열심히 갈았다. 그러므로 둘째 암양은 힘들게 밭을 갈기는 했으나 자기 밭은 씨를 뿌릴 수 없을 정도로 망쳤다. 한편 셋째 암양은 자신만을 사랑하던 양이었으니 좌측으로 들어가 스스로 도시의 부속품처럼 살며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던 것들을 얻었으나 결국에는 편리하고 화려한 그 도시와 함께 땅속으로 내려갔다.

 

이처럼 거룩하신 영께서는 거듭난 영혼을 오직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원하시되 둘째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인격이 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앞으로 이끌림을 얻는 자가 그리스도의 멍에를 얻게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은 거룩이니 그리스도의 멍에라는 것은 오직 거룩의 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 신이신 아버지의 아들이시되 동시에 우리와 같이 연약한 육신을 입고 계셨다. 그러므로 인자는 이 땅에 계실 때 늘 거룩하신 영께로 이끌리셨으며 또한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그 일곱 영들의 섬김과 보호를 받으며 십자가의 길에서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이루셨다. 그런 후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승리하고 결국 그 거룩한 몸을 얻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십자가고난을 통해 거룩에 이른 후 영광스런 부활의 생명에 이르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어두운 세상에 거하며 선악에 따라 말과 행위를 하므로 원수를 아비로 섬긴다. 그러나 중생할 때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하니 그때는 인침 받은 모든 영혼들이 세상이 아닌 오직 주님만을 따르며 섬기겠노라 굳게 약속한다. 하지만 정작 그리스도께서 부르실 때 자신의 첫 마음을 지키는 자도 있고 이 세상이 좋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자도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어떠한 영혼들을 인도하시며 일곱 종들은 어떠한 자들을 섬기고 보호하리요? 그리하여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인자와 함께 멍에를 걸친 자에게는 그 거룩의 길이 참되고 복되며 쉬운 길이 되데 스스로 의로움을 얻으려 하는 자는 마음도 몸도 매우 고난이요 또한 그 길에서 도움을 얻지 못하니 그것이 매우 힘든 길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 짐은 오로지 죄악이니 그리스도의 앞에 나와 그 짐을 내려놓는 자는 그 영혼의 짐을 벗게 되므로 그가 이제는 비로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 지고 가되 그가 스스로 지는 것이 아니요 이미 인자께서 지고 가셨으니 그 십자가는 오히려 그에게 가볍고 또한 영광스러우며 결국 아버지께로 의로움과 거룩함도 얻게 된다.

 

하지만 거듭난 영혼들 가운데 더 좋은 부활과 큰 구원에 이르고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인자를 따르기 원하는 자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은 인격체요 또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 발이 있으니 세상과 일곱교회를 갈라놓은 그 경계를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난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을 가진 자 외에는 그 경계를 넘지 못하며 그 마음이 없으면 넘으려 하지도 아니하고 일곱 영도 돕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입술로는 그 푯대를 소망한다 하되 자신의 마음이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 자들에게는 그 쉬운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어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다 머리에는 40킬로그램의 모래 짐을 이고 등에는 60의 흙 짐을 지고 있었으나 그것들을 벗을 수 없었으며 열거나 찢어서 모래와 흙을 따라낼 수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의 짐도 도와주지 못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늘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다니며 어디서든 무엇이든 짐에 따라 생각과 말과 행위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들을 별로 힘들어하지 않았으니 벗고 싶어하기 보다는 오히려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기쁘고 즐겁고 편했다. 하지만 어떤 두 명은 짐을 지고 다닌 자신의 지난날을 가만히 돌아보고 오늘날의 자신을 바라보니 그것들이 늘 슬픔과 불안과 고통을 안겨주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짐을 벗고 싶었으나 스스로 벗지 못하니 그저 애통하며 주저앉아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들의 왕이 그 마을로 들어와 모든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짐을 벗기 원한다면 그 짐을 진 채로 내게로 오라. 그러면 더 이상 그 짐에 의해서가 아니요 자유롭게 생각과 말과 행위 할 수 있는 방법과 또한 완전히 벗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겠노라.” 하지만 다수가 왕의 말을 믿지 못함은 자기의 짐을 옳게 여겼기 때문이되 늘 애통하던 두 명은 왕의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그대로 가지고 왕에게 달려왔다. 이에 왕은 나무칼로 짐들을 찌르자 그 안에서 검은 연기와 썩은 것이 조금 흘러나왔다. 그러므로 그들은 짐 때문에 겪은 지난날의 후회와 슬픔과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난 후 기뻐하며 왕께 감사 드렸다. 그런데 첫째 사람은 자신의 짐에서 연기와 썩은 것이 다 나오거나 벗겨지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 그 정도에만 만족하며 1년 후에 다시금 마을을 향해 자신의 손을 폈다. 한편 둘째 사람은 그 뚫린 구멍으로 연기와 썩은 게 더 나오도록 자신의 힘을 다해 흔들어보았지만 더 이상은 나오지 않았으니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노력할수록 더 절망하며 낙심했다. 이에 그는 짐을 벗기 원한다면 자신에게 오라고 했던 왕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 고민에 빠졌다. 그때 왕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너희가 그 짐을 벗을 수 있도록 내가 이미 다 이루었으니 누구든지 마을에서 나와 나와 함께 거하며 나의 말을 들으면 생각과 말과 행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겠고 또한 누구든지 나를 따르는 자는 그의 짐에서 연기와 썩은 것들이 서서히 빠져 나오며 짐이 점점 더 가벼워 질것이요 그러다 마지막에는 그 짐이 스스로 벗겨질 것이로되 나와 함께하지 않거나 나의 말을 듣지 않거나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될 것이니라.” 하지만 전자는 조금 나온 연기와 썩은 것에 만족했으니 왕의 말을 듣고도 왕과 함께하거나 왕의 말에 순종하거나 왕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나왔던 마을로 다시 들어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했으니 그 짐에 따라 생각과 말과 행위 한 그는 후회 슬픔 불안 고통 허무가 점점 더해갔다. 반면 후자는 마을에서 나와 왕과 함께 거하며 왕의 말을 들었으니 자유롭게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며 언제나 어디서나 어디까지나 왕만 끝까지 따라갔다. 그러므로 그의 짐에서는 연기와 썩은 것들이 서서히 흘러나와 점점 더 가볍게 되었으니 왕을 따르는 그 길에서 기쁨과 만족과 평안을 얻었다. 그러다 결국 그 짐들이 스스로 벗겨졌을 때는 왕의 왕의 임재로 인하여 마음의 천국과 평화가 이루어졌으니 내가 다 이루었다는 그 약속이 왕을 따른 그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반면 무거운 짐들을 지고 마을을 방황하던 사람은 환난과 곤고를 당하면서도 항상 이렇게 거짓말하며 자위했다. “나는 왕이 다 이루었음을 믿는 자이니 나는 그 짐에서 해방되었노라.”

 

이와 같이 무거운 짐이라는 것은 사람의 안에 있는 그 죄를 뜻하는 것이니 수고하는 자는 원수가 심은 그 선악에 따라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싸우는 자다. 즉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피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서 오직 두렵고 떨림으로 아버지의 뜻에 이르고자 애쓰려 하는 영혼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람은 거룩의 소원이 있을지라도 아무리 애쓸지라도 자신의 속에 거하는 죄로 인하여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거룩을 이룰 수 없다. 오직 온유하고 겸손하신 인자의 살과 물과 피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우선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말씀을 전하는 자신이 먼저 말씀에 순종하며 늘 아버지의 그 때를 기다리셨다.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행위를 하므로 자신의 뜻을 이루거나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 않으셨다. 오직 진리만을 전하므로 아버지의 뜻과 계획만을 이루어가셨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그 길에서 그의 육은 비록 고난에 거했으나 온유하고 겸손하신 성품으로 인해 아버지께로 내려오는 사랑과 은혜를 입었기에 그의 마음에는 늘 기쁨과 만족과 평안을 누리셨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흠 없는 생축제물로서 거룩과 아버지의 의를 다 이루셨던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뜻과 의를 다 이루신 그리스도께서는 선악의 짐을 지고 있는 모든 둘째사람을 불쌍히 여기신다. 하지만 사람은 연약한 육을 입고 있으며 원수는 공중권세를 붙들고 있으니 사막에 그대로 거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거룩을 이루려 하기보다는 이미 그것을 다 이룬 자신에게로 나와 오로지 자신을 의지해 이루어가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모든 사람가운데 오로지 수고하는 영혼들에게만 허락하신 것이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나는 이미 죄에서 해방되었으며 세상을 이기었노라. 또한 거룩을 완성했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에게로 오면 그는 그 죄와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겠노라. 또한 나와 함께하는 자는 거룩에 이를 수 있는 그 오직 한 길을 그가 찾을 수 있겠노라.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영혼은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에서 나와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인자와 함께 거룩을 이루어가도록 누구에게 이 어두운 세상에서 나와 푸른 초장으로 들어가는 그 길을 보이시며 도우시리요? 그러므로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죄를 애통하며 이기고 싶어하는 영혼과 진리에 굶주린 영혼들만이 진리와 함께하며 그 결국과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불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소리높이는 의인과 자신의 죄는 숨기고 형제에게 미련하다면서 지옥불로 들어가는 자와 오직 믿음과 은혜만 외치며 순종치 않는 담대한 자와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상급을 위해 충성하자며 거룩에 마음 없는 율법에 빠져 다른 복음을 따르는 자들은 결단코 진리와 함께하고자 아니하리니 거짓된 자들은 새 한 사람으로서 인자와 영원히 함께하게 될 그 부활의 생명보다는 그 짐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어떤 아비가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화를 자기가 낳은 아들에게 주고 싶었다. 또한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그 아들만을 사랑하며 올바르게 키웠다. 그러므로 아들은 커가면서 자신이 아비에게 받은 은혜와 사랑을 깨달았으니 자신도 역시 다른 어떤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자기아비의 말에 온 마음을 다해 순종하며 아비의 뜻만 이루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비가 아들에게 이러한 말들을 해주었다. “나의 사랑하며 기뻐하는 아들아! 내가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고 싶은 것처럼 네 동생들에게도 똑같은 것을 주는 게 내 소원이니 너는 이 포도 씨를 가져가 땅에 심거라. 그러면 그것을 통해 네 동생들도 가장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겠노라.” 아들은 아비의 말을 듣고 난 후 아비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또한 자기동생들을 위해 씨를 땅에 심으려고 했으나 그 씨는 반드시 자기의 목숨을 잃어야만 심을 수 있는 씨였다. 그러므로 아들은 자기아비가 자신에게 어떠한 마음과 믿음을 품고 있는지 또한 동생들을 향한 그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 헤아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동생들에게 가 자기가 원하는 말과 행위를 하거나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려 하지 않고 오직 자기아비의 말과 뜻만을 전한 후에 쟁기로 땅을 파고 그 씨를 심었다. 이에 둘째 아들과 셋째 딸은 그 쟁기와 죽음을 보며 사람은 자신의 뜻과 계획이 아니요 오로지 큰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아비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과 또한 아비를 어느 정도까지 섬겨야 할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들도 자신의 마음을 다해 아비의 말에 순종하며 오직 아비의 뜻을 이루어가다 마지막에 결국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반면 넷째 딸은 그의 쟁기와 죽음을 보고도 마땅히 깨달아야 할 바를 깨닫지 못했으니 마음과 뜻을 다해 아비의 말에 순종하며 아비의 뜻을 이루어가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뜻과 유익을 위해 자기가 원하는 말과 행위를 하다 결국 독 사과의 씨를 심었다. 이에 아비는 포도 씨를 심고 목숨을 잃은 맏아들과 자녀들에게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보화와 자신의 모든 유산을 나누어주었으되 그들이 영광과 기쁨을 누릴 때 자신도 함께 기뻐함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까지 불법을 행하다 죽은 넷째는 그것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쓴 열매를 맺은 만큼 책망받고 쫓겨났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아버지를 섬겨야 할지 밝히 보이시고자 자신의 십자가로써 그 율법과 법도를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바로 그 인자가 율법과 예언대로 오신 메시아임을 그 십자가를 통해 확증했고 이방인은 그 십자가의 죽음을 보며 바로 그가 속죄와 영생을 주시는 아버지의 아들이심을 믿었다. 그리하여 가까운데 있는 자들도 먼데 있는 자들도 그를 따르는 신실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오직 진리를 따른 자들이 맏아들과 함께 약속의 자녀들이 되어 아버지의 그 영광과 권세에 참여하므로 아버지의 그 소원을 영원토록 이루어 드릴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은 이방인과 달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기 전에도 이미 아버지를 섬기는 법도를 알고 있었다. 또한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으니 자신의 마음과 뜻을 다해 거룩을 이룬 후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여호와를 섬긴 구약의 그 선지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시 그곳에 모여 이 말씀을 듣던 자들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그들에게는 아직도 음침한 마음이 있었다. 즉 그들은 인자에 대한 의심스런 마음을 아직도 품고 있었으며 또한 말씀들을 자신의 유익으로만 삼키고자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그 음침한 마음들을 지적하시고자 그들에게 이 말씀을 전해주신 것이니 그 목적은 두 가지다.

 

우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순종의 관계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하므로 그들의 앞에 서있는 그 인자가 곧 메시아임을 그들에게 확증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인자는 자신이 원하는 말과 행위를 하므로 이 땅에서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려 하지 아니하셨고 오직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오로지 말씀만을 전하셨다. 또한 사람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섬겨야 할지 깨닫도록 인자가 율법과 법도를 이루겠노라 예언하셨고 자신의 십자가로 자신의 말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음침한 그들이 아버지의 뜻과 계획만을 이루어가는 인자를 보고도 어찌 아버지의 아들임을 확증하지 못하리요?

 

둘째 입을 열어 주님을 사랑하노라 주님께 감사하노라 고백하는 자들이 만일 아버지를 진심으로 섬기길 원한다면 자신의 품에서 낳으시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던 그 소중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를 자신은 과연 어떠한 마음으로 섬겨야 할지를 또한 어떠한 영혼이 되어야 하는 가를 깨우쳐주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아버지만을 섬기셨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도 섬기고자 오직 아버지께로 또한 아버지의 소원에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그것들을 아낌없이 희생하므로 그것을 분명히 보이셨다.

 

결국 교회시대에 아들의 십자가를 보고 아버지의 그 뜻을 깨달은 자들도 사람이 어떠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섬기며 또한 어떠한 영혼이 되어 거룩하신 아버지를 섬겨야 할지 알고 있다. 그러므로 택함의 은혜를 받은 이방인의 교회는 이 마지막 때에도 자신의 마음을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의 영광에 빼앗기지 아니하고 오직 생명의 은혜를 주신 아버지와 거룩에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두고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고자 애쓰되 마지막 희생을 바라보며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신의 마음과 목숨을 다 내어주신 아버지와 아들의 그 뜻과 계획을 그들이 알고 있으며 또한 자신을 희생하므로 남을 살리는 그 참된 진리를 믿고 따르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들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와 아버지의 소원을 또한 아버지의 경륜 그 기쁘신 뜻 그 영광의 자유도 모른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어린아이는 진리를 얻고 또한 깨달음도 얻지만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는 진리를 얻지 못하고 또한 아무리 보고 들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그 이유는 전자에겐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주시고 거룩하신 영을 통해 그의 마음의 눈과 귀를 여시어 깨닫게 하시되 후자에겐 세상의 신이 내주는 신비가 그의 마음을 혼미케 할뿐만 아니요 오히려 아버지께서 주시지도 않으시고 또한 깨닫지도 못하도록 가리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눈으로는 아버지를 불의하시고 불공평하신 분으로 볼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되도록 계획하신 아버지의 뜻이 오히려 공의롭다고 말씀하신다. 한 가지 비유를 통하여 어린애와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가 각각 어떤 자들인지 또한 아버지께서 이렇게 계획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의로운지 그 깨달음들을 얻을 수 있다.

 

한 아이가 어떤 꼬마에게 잘못과 실수를 범했다. 그런데 그 꼬마는 단순했다. 그러므로 자신도 그 아이한테 똑같이 대했다. 그러자 어떤 어른이 꼬마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네가 만일 잘못하며 실수할 때 다른 아이들이 너를 불쌍히 여기며 용서해주고 함께하길 원하니 아님 용서하지 않고 너에게 보복하길 원하니? 그래, 맞아! 그러니까 너도 너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돌이키며 다른 친구의 잘못과 실수를 보면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되 네가 온전할 때 비로소 입을 열어 친구들도 올바른 길을 걷도록 말해줘라.” 이에 꼬마는 어른의 선한 말이 이해되었으며 또한 옳게 여겼기에 그대로 묵묵히 순종하기 시작했다. 반면 어떤 지혜로운 아이도 어른에게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으나 잘못하고 실수하는 아이를 때로는 비난하고 멀리하고 나쁘게 대하며 절대 용서를 못했다. 또한 자신의 잘못과 실수는 숨기고 그냥 넘어가되 그런 자신을 의롭게 여겼다. 이번에는 단순한 꼬마와 똑똑한 아이가 동일한 어떤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자 어른은 사람은 자신의 욕심과 유익을 구하면 거짓말하게 되고 거짓말은 결국 큰 화를 불러오니 항상 정직하라고 일렀다. 이에 단순한 꼬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나 항상 솔직했으나 똑똑한 아이는 거짓말이 더 쉬웠다. 이제 어느덧 두 아이가 커서 각각 자기가 원하는 여자와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다. 그런데 단순한 남자는 결혼 후 몇 초가 지나자 자기여자보다 다른 여자들이 더 아름답게 보였고 똑똑한 여자도 다른 남자들에게 마음이 끌렸으니 남자는 마음으로 음행하다 실제로도 다른 여자들과 간음했고 여자도 하체가 큰 이웃 남자와 심히 음란하게 행하므로 어른의 노를 격동시켰다. 그러자 어른은 잠시 동안 그들을 지켜보다 이렇게 가르쳐주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마음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이방인을 바라보게 될 것이요 음행은 두려움과 괴로움을 가져올 것이요 어른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결단코 음란의 기쁨을 멈추지 못하리니 결국에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워질 것이로되 음행에는 큰 심판이 있으니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는 것이 옳도다. 또한 거룩한 부부관계는 자신도 또한 자식들도 아름다운 열매를 함께 얻겠노라.” 그 말을 듣자 단순한 남자는 깨끗함을 원했으며 또한 자기여자와 자녀들로 하여금 그런 열매를 얻게 해주고 싶었으니 자신의 첫 마음과 약속을 지키고자 돌이키고 회개한 후에 순결한 마음과 몸으로 오직 자기여자만을 사랑했다. 그러나 지혜로운 여자는 자기의 육신을 즐겁게 해주는 돈과 명예와 교만을 사랑했으니 점점 더 큰 하체를 가진 남자들과 간음하되 끝까지 육신의 기쁨에서 돌이키지 못했다. 게다가 어른의 말을 매우 듣기 싫어했다. 그러므로 어른은 겸손한 꼬마들과 남자들에게는 계속해 선한 말을 해주었으나 교만한 아이들과 여자들에게는 더 이상 선한 말을 해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마음의 안에 거하는 그 죄로 인하여 누구나 다 불의와 죄악을 범한다. 그러나 동일하게 더러운 그 사람들 중에서 깨끗한 영혼이 있고 깨끗하지 못한 영혼이 있으니 그 차이는 그에게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다. 그러므로 깨끗한 영혼은 자신의 더러움을 알고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여 오로지 진리를 구하되 더러운 영혼은 자신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도 깨끗함을 원치 아니하니 오직 자신의 육과 의를 즐겁게 해주는 것들을 구하며 따라간다.

 

사람의 이러한 마음과 인격으로 인하여 만약에 깨끗한 영혼이 진리를 찾으면 그는 오로지 진리를 따르며 배우고 깨우친 진리에 순종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그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진리로 씻겨져 결국에는 거룩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독사의 자식과 교만한 영혼은 진리를 구하지 않고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주어도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함은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이루는 그 길에서 진리는 부딪히는 돌이요 자기생각이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죄는 더러운 영혼들의 안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이런 마음을 잘 아시기에 그 선악의 죄를 씻어낼 수 있는 거룩한 진리를 더러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오직 깨끗한 영혼에게만 주시되 깨끗하지 못한 영혼에게는 허용치 아니하시겠다는 것이 바로 이 말씀의 의미다.

 

그렇다면 비유에서 단순한 꼬마가 나중에 맺게 될 아름다운 열매는 무엇인가? 그것은 천년왕국과 영원한 셋째하늘에서 맺게 될 열매이니 어린아이들은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처럼 살과 뼈가 있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몸을 입고 부활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천국과 그 끝에 올라가게 될 주님의 셋째하늘에서 제사장과 왕으로서 다스리는 장자의 명분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이유는 그들은 육의 기회가 있을 동안에 오직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원수가 공중권세를 잡고 이끌어가는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는 사람이 단지 외모만 좋으면 그가 깨끗하지 않아도 영광스런 자리에 올라가 권세를 부릴 수 있으나 아버지와 아들의 나라에서는 오로지 어린아이들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어 주님의 가까이에 거하게 하시니 그들이 참으로 그 높은 자리에 앉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되 그것이 천년 후에 영원히 간다. 이러하니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예정된 아버지의 그 기쁘신 뜻이 어찌 의로우시고 공평하시지 아니하리요?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