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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리스도의 앞에 나온 그 여자의 성품은 조용했으며 앞에 있기보다는 뒤에서 숨어있기를 더 좋아하였으되 내색은 많은 처녀였다. 또한 거룩을 이루는데 자신의 육신을 걸림돌로 여기며 오직 자신의 집안에 거하면서 늘 자신의 깨끗함을 소원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과 믿음이 거룩을 원하였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버지의 뜻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집안에만 거하며 거룩에 이르고자 애쓰되 오히려 그 육신에서 나오는 날을 날마다 소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아버지의 뜻에 이르고자 홀로 거룩에 애썼지만 홀로 애쓴 그것이 오히려 그를 죄악에 거하게 했으니 즉 그는 늘 사람들을 만나기 원치 아니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그와 함께 할 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자신을 그 상황에서 구원해 줄 남자가 없음을 깨닫고 죄의 짐을 지고 또한 육의 질병을 가지고 사망을 바라보며 하루하루의 삶을 견디고 있었으니 혈루증은 사람의 피가 생성하지 아니하며 또한 그것으로 인하여 하얀 피가 썩어져 가므로 육신이 날마다 힘을 잃어가면서 사망으로 들어가는 병이었다.
이방인들은 가족들 가운데 한 명이 큰 병에 걸리면 그를 살리기 위해 병원과 의사를 찾아 다니며 자신의 모든 물질을 다 쓴다. 하지만 그것을 아깝게 여기지 아니함은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이 그것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질병이 죄에서 시작되며 또한 그것을 성전에 거하는 목자들이 말씀으로 고칠 수 있음을 잘 알았기에 그 여자의 가족과 친지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어 자신들의 가지고 있는 소유들도 아낌없이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에게 넘긴 후에 그 여자의 깨끗함을 원했다. 그러나 독사자식들이 말씀과 제사로 깨끗함을 베풀지 못함은 그들도 그 죄악과 함께 거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 자신도 또한 그 여자와 그의 가족들도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날 그 여자는 드디어 여호와의 생명을 주는 그 남자의 소식을 들었으니 그때 그의 나이가 27살이었다. 그러므로 스스로는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과 또한 종교지도자들을 통해서는 육신의 깨끗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던 그 여자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음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안에 거하던 죄는 네가 만일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며 생각과 몸을 붙들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자신을 붙드는 그 생각과 오래된 그 질긴 성품을 이기고 오히려 그 죄의 짐과 악한 질병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자신이 염려한대로 그곳에는 이미 온 마을사람들이 나와서 그리스도의 주위를 둘러싸고 따라가고 있었으니 그 수효는 472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수많은 사람들을 보지 아니하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따라가며 조금씩 조금씩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또한 그의 마음은 인자의 옷자락만이라도 잡으면 자신이 그 육신의 질병에서 깨끗함을 얻을 것이요 영혼에 거듭남의 은혜를 얻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바로 뒤에 다다랐을 때 그 거룩의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하얀 옷자락을 붙잡았던 것이다.
그 여인이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잡았을 때 일어났던 역사는 이러했다. 우선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혼이 처음부터 영과 육의 나음을 얻기 원했던 마음을 읽으셨으며 또한 그가 메시아의 믿음을 가지고 옷자락을 붙들었다는 것도 아셨다. 그러므로 자신을 섬기던 종들에게 육신의 치유와 영의 거듭남을 명하셨으니 하나님의 일곱 영이 그 여인과 함께하는 종들에게 시켜 그의 육신도 나음을 얻고 또한 그의 안에 거룩하신 영께서 임하시어 영도 인치실 수 있도록 종들이 그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여인의 속과 겉을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하여 마가는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났던 그 모든 일들을 깨닫고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셨다는 그 기록을 남겼던 것이다.
결국 그 여인의 거룩에 대한 마음과 믿음의 소원대로 이루어졌으니 그의 영도 또한 그의 육체도 깨끗하게 씻김을 얻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유대인들이 그토록 소원하던 그 중생의 씻음도 임했다. 또한 그 영의 해방으로 인해 한 순간에 그의 육안에 하얀 피가 필요한 만큼 생겨났으니 힘을 잃었던 육신에도 곧 힘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여인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과 또한 육신의 질병에서 구원받았음을 깨닫고 감격하며 감사했다.
그런데 다른 병자들과 그 여인은 차이점이 있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질병을 가진 자들이 나왔을 때 그들을 고쳐주시기 전에 항상 모든 죄를 아버지께 회개해야 함을 깨우쳐주셨다. 모든 질병은 욕심과 교만과 선악의 죄로부터 시작이 되기 때문이요 먼저 죄가 용서받아야 육신도 온전케 되기 때문이다. 한편 불치병을 가지고 태어난 자와 태어난 지 1년 안에 병을 얻은 자들이 나왔을 때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아버지의 뜻에 대하여 가르쳐주신 후에 치유를 허락하셨다. 하지만 그 여인의 경우는 회개를 하지 않아도 영혼과 육체에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 이유는 그 여인은 다른 영혼들과 달리 이미 자신의 죄를 늘 자백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가 이제는 거룩의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자신에게 나왔다는 것을 이미 그리스도께서 아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 여인은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얻은 후 늘 기도로써 자신의 혼의 거듭남을 이루어나갔다. 또한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통해 자신이 들은 말씀들에 늘 순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신랑에게 받은 그 첫사랑의 은혜를 자신의 의와 썩어질 육의 욕심과 헛된 세상에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한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므로 자신의 안에서 나오는 그 육신의 생각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영혼이 자신의 썩어질 육신을 떠났을 때에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정결한 신부의 몸을 입고 부활하여 유대인들 가운데 아버지의 딸이 되었으니 마태는 그것을 깨닫고 여자여 안심하라는 말씀대신 딸아 안심하라고 기록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상징하셨으며 그 상징은 생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유대인은 그 약속된 생명을 얻으려면 여호와의 법도와 계명과 율법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야 하기에 포도주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이루어주시는 여호와를 믿고 자신의 마음을 드린 영혼들은 아담 이후로 노아시대든 율법시대든 그 상징의 의미를 알고 순한 짐승의 살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거룩에 애썼다. 물론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 빼앗긴 자들도 성전에 들어와 동일한 것을 먹고 마시며 동일한 행위를 보였지만 자신이 하는 행위가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성전에 모일 때 늘 포도주가 필요하니 대대로 다음과 같이 포도주를 빚었다.
그들은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 우선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는다. 또한 포도원을 해치는 짐승이나 열매를 가져가는 자들을 막고자 망대를 세운다. 동시에 포도주를 담는 그릇을 만들되 새거나 다른 것이 들어가지 않도록 나무로 빈틈없이 만든다. 그러므로 포도주를 담는 그릇을 만드는 일은 포도나무를 가꾸는 일만큼 힘든 일이다. 이제 때가 되면 포도를 따서 틀에 넣고 짠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놓았던 그 나무통에 담고 뚜껑을 닫아 햇빛이 들어가지 않는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한번 포도주를 담았던 그릇에는 또다시 포도주를 담지 아니한다. 그 이유는 그 통이 이제는 더 이상 포도주를 붙들 수 없기에 이곳 저곳에서 포도주가 흘러나와 다 버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포도주를 한번 포도주를 담았던 그릇에 보관하면 썩은 향기가 나니 그런 포도주를 누가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그릇을 만드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새 포도주는 새 그릇에 담아서 숙성을 시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유대인들이 포도주를 담그는 과정을 통해 요한의 제자들도 또한 자신의 제자들도 또한 교회시대에 아버지께서 택하신 7교회들도 깨닫기 원하셨던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로 신랑인 자신과 거룩하고 신령한 신부의 관계이되 포도주의 비유에서는 특히 교회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떠한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선 새로운 포도주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새롭게 거듭난 생명의 영혼들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영혼이 거듭남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주신 그 영원한 생명의 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포도주를 담는 새로운 그릇이라는 것은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받은 자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통해 혼의 거룩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과 마음을 지키고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처음에 받은 그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아니하는 자들은 자기의 마음과 믿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아니한다. 오히려 자신이 처음에 품었던 그 믿음과 마음을 오직 거룩에 두고 자신의 신랑만을 따르고 있으니 그들이 바로 새 그릇이다.
반면 낡은 그릇이라는 것은 피가 있는 영혼들 중에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에 이른다는 그 믿음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거룩에 마음과 믿음이 없기에 이 세상과 사람으로 인해 시험에 든 영혼들과 또한 거룩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포함된다. 하지만 그들도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둔 자들과 동일한 행위를 보인다. 그러나 거룩의 모양은 동일해도 그들의 믿음은 썩어질 육과 헛된 이 세상에 대한 것이니 그들의 마음은 다른 남편에게 빠져있다.
또한 사람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새로운 나무 그릇을 만들어 그 안에 새 포도주를 넣어 보관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를 얻은 한 영혼이 아들을 통해 얻은 그 생명의 약속을 이루기 원한다면 그는 새로운 그릇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자신의 마음이 낡은 그릇 안에 있다면 마음을 돌이켜 새로운 그릇으로 옮기는 것이 옳다. 그래야 자신도 믿음과 마음을 거룩에 두고 애쓰는 자들과 함께하며 그리스도의 안에서 거룩하고 신령하게 숙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은 그릇에 새로운 포도주를 담는 자는 우선 그 포도주에서 썩은 향을 낸다. 그러다 결국 그 썩은 틈으로 흘러나가 땅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거듭난 영혼이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자들과 함께하면 자신도 그들처럼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거룩함과 신령함을 이루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환난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자들이 이 길이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라며 또한 그들에게 생명을 준다며 많은 일들을 하되 그들은 그 죄로 인하여 오히려 불의하고 죄악된 향기를 안과 밖으로 내뿜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다 하며 죄와 함께하는 영혼은 받지 못하심을 마음이 없는 행위에 빠져 거룩의 모양만을 보이는 자들과 은혜의 방종에 빠진 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거룩을 원치 않는 자들은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하다가도 마지막 때에는 오히려 세상으로 도망치게 되어있다.
이처럼 피를 얻은 한 영혼이 이 땅에서 십자가를 통한 거룩의 능력을 믿는 공동체나 혹은 그렇지 못한 공동체와 함께하되 그 결과는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느냐 혹은 이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가느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러한 새 그릇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나 걱정하지 않아도 됨은 그 생명과 사망의 기준이 자신의 마음과 믿음이 어디에 있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을 포기한 자는 낡은 그릇 안에서 율법의 영에 인도를 받을 것이요 자기의 생각을 따르는 자는 단단한 그릇에 남아 자기의 의를 세우는 목자를 따라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것이요 육과 세상의 복을 원하는 거짓된 자는 거짓선지자가 유황불 못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거룩을 원하는 자는 어두운 세상에 거할지라도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거룩하신 영께서 새 그릇 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니 독수리날개에 업혀 광야로 나온 자들은 십자가아래에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다 들림을 받고 대환난에서 산 제사를 드리고 그 기쁘신 뜻에 이르게 된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들은 컴퓨터를 사용하다 고장 나서 고칠 수 없게 되면 새로운 것을 산다. 이때 어떤 사람은 못쓰게 된 컴퓨터를 미련 없이 통째로 버리지만 어떤 사람은 쓸만한 부품들을 떼어내서 보관하고 어떤 사람은 전체를 당분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혹시 고쳐질까 또한 나중에 필요할 때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회복되지 못하거나 쓸모 없는 것들은 미련 없이 내다버린다. 또한 새 컴퓨터에서 부품을 뜯어내어 헌 컴퓨터에 붙여 사용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마찬가지로 새 옷의 한 부분이 필요할 때 헌 옷에서 좋은 부분을 뜯어서 붙이지만 헌 옷을 위해 새 옷에서 필요한 만큼을 뜯어서 붙이는 사람도 없다.
이 비유에서 새 옷이라는 것은 한 영혼이 거룩에 이르렀기에 새 옷을 입을 것을 예표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고 신령한 공동체에 거하는 영혼들은 나중에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혹은 통해 거룩하고 신령한 육체를 입는다. 반면 헌 옷이라는 것은 그가 거룩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세상에서 죄가 가득 찬 그 옷을 입고 있음을 예표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자신의 안에 거하는 선악을 따라 말하며 행하고도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거룩에 애쓰지 않은 영혼은 한 몸에 거할 수 있는 옷을 입지 못하니 그것은 그가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의 법적인 심판대에서 유황불 못이나 어두운 곳이나 온전케 되는 곳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헌 것에 대한 미련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비록 헌 것이요 고장이 났어도 혹시나 고쳐질까 기대하면서 쓸만한 것들은 끝까지 이용해보려고 하되 도저히 쓰지 못하게 될 것들은 결국 버린다. 하물며 아버지께서는 영이 가난한 자와 자신의 안에 거하는 그 죄를 애통하는 자에게는 진리를 베푸시어 거룩으로 이끄시되 꺼져가는 등불도 끄시지 아니하신다. 또한 자신의 살과 피를 아끼지 않은 아들께서도 한 영혼을 한 순간에 끊어내지 않으시고 한 번 두 번 세 번의 기회를 주신다. 그러므로 한 몸에 있어야 할 자가 있고 있어야 되지 않을 자가 있으니 그 기준은 이것이다.
어떤 나라에 목욕탕이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목욕탕의 주인은 마음이 선하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공짜로 목욕탕을 이용하라고 허락했다. 이 소식을 듣고도 어떤 자는 목욕탕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으니 온 몸이 근질거려도 깨끗이 씻기보다는 오직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등과 몸의 이곳 저곳을 긁고 있던 사람들 중에 오직 깨끗하게 씻기를 원하는 사람들만 목욕탕으로 향했다. 이에 목욕탕 주인은 세상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여러분이 깨끗하게 목욕을 마치도록 깨끗한 물을 충분히 준비해두었으며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속옷과 정장을 선물로 주겠습니다. 그러나 목욕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이 목욕탕에서 스스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주인의 말이 끝나자 어떤 사람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 몸을 불린 후에 마음을 다해 땀 흘리며 때를 밀었다. 그러므로 주인은 그가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옷을 벗기는 했지만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오히려 삼삼오오 둘러앉아 술 담배를 하며 진실한 목욕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주인은 목욕탕을 더럽히는 그들에게 나가라고 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래도 그들이 목욕하러 들어가지 않자 주인은 이곳은 재미있게 노는 곳이 아니라 목욕하는 곳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만 있다 하겠다고 말한 후 이것은 목욕비라며 주인에게 돈을 내고 등과 몸을 긁어댔다. 그러나 주인은 더러운 돈을 받지 않고 다시 한참을 기다렸으나 그들은 계속 놀기만 했다. 이에 주인은 이번에도 나가라고 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동일한 말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등과 몸을 긁으며 사람들을 목욕탕에 많이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이에 주인은 또다시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들은 이제 목욕탕밖에 나가서 놀다 묻힌 더러움까지 목욕탕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하지만 주인은 그래도 나가라고 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이제는 마지막으로 동일한 말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목욕은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목욕비도 많이 내고 사람들도 많이 데려왔으니 우리에게도 저 선물을 달라며 등과 몸을 긁어댔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주인이 그들에게 나가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왜 우리를 내쫓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선악으로 인하여 다 죄인이기에 거룩에 애쓰는 자다. 그리스도의 피로 영이 거듭난 후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에 거하는 자들은 더욱더 그러하니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요 거듭난 영혼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야 할 온전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영혼이 아무리 불의한 죄인이라 하여도 그가 거룩에 이르고자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온 힘을 다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새 옷을 그에게 배불리 먹여주신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거룩하신 신랑이 한밤중에 돌아왔을 때 신령하고 신실한 영혼들을 맞이하시는 것이니 십자가를 의지해 거룩에 이른 그들이 그 신령하고 거룩한 옷을 입고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죄가 자신의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오늘이요 내일은 내일이라 하면서 거룩에 힘을 쓰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깨끗한 영혼이 더러운 자와 함께 할 수 없으며 의로운 영혼이 불의한 자를 따를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깨끗한 자도 함께 더러워지고 의로운 자도 함께 불의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또한 거룩한 공동체에 한 영혼이라도 더러운 영혼이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께서도 기쁨에서 슬픔으로 변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거룩에 애쓰지 않는 자들은 그 공동체에서 내쫓는 것이 옳으니 그런 자가 바로 옛 옷을 입은 자들이다.
결국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가 목자든 양이든 속에 죄가 있음에도 자기의 생각을 따르는 교만한 자와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자와 세상에 빼앗긴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자와 자기 스스로 거룩을 이루려고 하는 자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거룩하고 신령한 공동체로 이끌지 않으신다. 아버지께서는 오히려 종들에게 가리도록 명하시니 강한 자들은 그것이 이 세상에 있음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반대로 그가 아무리 연약한 자라도 신실한 영혼과 깨어있는 영혼은 그가 어디에 거할지라도 찾아내시어 거룩하신 영을 통해 광야로 불러내시고 장막에 들어가게 하신다. 하지만 그가 누구라도 그 안에서 다시금 강해질 때에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도록 놓아주신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남자가 악한 병에 걸려서 고통가운데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참으로 불쌍한 마음을 가졌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목숨까지 바쳐 병든 사람들을 섬기겠노라 하늘과 또한 자신과 약속한 후 병 고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큰 병원에 들어가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부르더니 자신도 했다며 손을 들고 다섯 가지를 약속하라고 시켰다. 첫째 저는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모든 환자의 요구에 응하여 공평하게 치료할 것입니다. 둘째 저는 환자를 대할 때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거나 환자의 소유를 탐내지 않겠습니다. 셋째 저는 술 마시거나 놀기 위해 진료실을 비우지 않겠습니다. 넷째 저는 여성환자를 방문할 경우 다른 사람과 함께 방문하고 은밀한 곳을 진료할 때는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그것을 대하듯 하겠습니다. 다섯째 저는 가난한 사람에게도 최선의 치료를 베풀겠습니다. 그는 약속을 마치자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마음은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다. 그 다섯 가지의 약속들이 자신의 첫 마음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보다 먼저 공부를 마치고 그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자기윗사람이 천하고 낮은 사람에겐 무관심하고 귀하고 높은 사람에겐 좋은 자리를 내주는 것을 보자 순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지나쳤다. 다음날 다른 윗사람이 어떤 환자에게 돈이 들어있는 하얀 봉투를 받고 뒤돌아서며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고 순간 내가 잘못 보았겠지 하면서 지나쳤다. 다음날 어떤 윗사람이 술 마시며 노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것을 보고 순간 이것은 아닌데 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또 다른 윗사람이 여성환자를 찾아가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추행하며 성을 맺는 것을 보고 순간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다음날 돈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병원입구에서부터 환자를 내보내는 윗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행하는 것은 그 다섯 명만이 아니요 자기의 바로 윗사람으로부터 시작해 그 병원에서 가장 높은 자까지 다 그랬으니 그는 내가 이 병원을 바꾸기는커녕 나도 저들과 같이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므로 그는 병만 낫기 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 큰 병원을 미련 없이 나와 작은 시골로 가 거기서 첫 마음을 지키는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하늘과 자신과 맺은 그 첫 마음을 지켰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큰 병원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잡혀 돌파리 의사라며 그 나라의 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리스도의 당시에 요단강 주변의 광야에 거하며 거룩에 애쓰던 요한과 성전에 거하며 제사를 인도하며 율법을 가르치던 종교지도자들의 관계가 이러했으니 요한도 처음에는 자기의 아비를 따라 성전전통을 보면서 자라났다. 그러므로 요한은 유대인이기에 7세까지 어미에게 말씀을 듣고 12세까지 아비에게 말씀을 배운 후 4년 동안 랍비들에게 모세의 신령한 율법이 아니요 사람의 유전과 교훈으로 바꾼 의문의 율법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하여 죄와 세상에 빠져 죽어가는 영혼들을 건져내 여호와께 인도하지는 않고 오히려 그들이 나왔던 세상으로 몰아내므로 자신의 썩어질 육의 욕심을 채우며 헛된 명예를 높이는 그 성전의 더러운 전통과 행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가 엘리사벳의 태에 있을 때 그리스도를 위해 택하셨으니 성인이 되고 4년 후인 16세에 자기가 자라온 성전을 떠나 광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거룩하신 영께 계시를 받으며 홀로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할 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일곱이 찾아와 가르침을 받으며 그 광야의 일에 동참했다. 그러므로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에 사람들은 그의 제자들에게도 세례를 받았으며 또한 메시아가 온다는 그 소식을 그들의 입술을 통해서도 들었다.
결국 광야에서 거룩에 애쓰며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던 요한의 제자들과 성전에서 불의와 죄를 품고 목회하던 바리새인들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우선 자신들이 거룩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식을 하며 또한 말씀을 읽고 또한 말씀을 전하며 다녔으되 요한의 제자들도 그것을 똑같이 행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마음은 사람들을 많이 모아 자신의 육의 부요와 영광을 높이기 위함이되 요한의 제자들은 그들을 거룩으로 이끌기 위해서였다. 또한 누구는 그 거룩한 일을 하므로 거룩해진다고 했으되 누구는 거룩한 자가 그 거룩한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일한 행위를 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늘 꾸짖는 관계였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당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으며 또한 금식해야 할 조건이 없었기에 금식을 명하지 않으셨다. 한편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예비한 인자가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거룩하신 메시아임을 요한을 통해 배웠다. 그러므로 거룩에 이르고자 늘 금식하던 요한의 제자들의 눈으로는 거룩을 위해 금식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상하게 보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왜 금식을 하지 않느냐는 그 질문을 했던 것이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제자들과 요한의 제자들과 또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를 애통하며 요한과 함께 광야에 거하는 공동체에게 오직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세 가지의 비유를 통해 알려주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 비유들을 통해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교회를 위하여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떠한 모습으로 있는지 또한 있어야 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 비유의 그 의미는 우리민족의 문화와 정서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한 부부가 함께 한 자리에서 기쁘고 즐겁게 음식을 먹고 마신다. 그러다 남자가 자신과 또한 아내가 먹을 것을 위해 먼 곳으로 떠났다. 그러면 그 아내는 집에서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또한 그 육의 먹을 것도 자기 혼자 배불리 먹지 아니하고 오직 살 수 있을 정도로만 먹으면서 기다린다. 그러나 남편이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음식을 놓는 그 상이 넘치도록 차려 베푼다. 그리하여 먼 길에서 돌아온 남편도 또한 그의 아내도 기쁘고 즐겁게 배가 부르도록 함께 먹는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처음에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생명을 얻고자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이 자기의 신랑과 함께 배불리 먹었다. 그러나 교회시대와 또한 마지막 때인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둘째하늘과 셋째하늘에 두루 다니시되 오직 교회를 아직까지 이 첫째하늘에 두셨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거룩하고 신령한 자들과 함께하는 자들은 신랑이 다시 오시는 그날을 소망하며 세상에서는 오직 필요한 만큼만을 취하니 더 이상은 취하지 아니한다. 육과 세상을 취하느라 거룩에 애쓰지 못하기 때문이요 욕심으로 더럽혀지면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랑이 다시 오셨을 때에는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피를 통해 받은 그 거룩함과 신령함을 이루며 또한 유지한 영혼들이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어 신랑과 함께 모든 영광을 취하니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천년왕국에서는 왕과 제사장으로써 신랑과 함께 빛으로 다스린다. 또한 늘 성소에 모여 아버지께로 영광을 올려드리며 신랑과 함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다 천국의 끝에는 불의하고 악한 모든 것이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되 그들은 아들을 따라 아버지께서 계신 거룩한 셋째하늘로 올라간다. 그리하여 신랑과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리며 다스리되 시온산의 성소에 한 몸으로 모일 때마다 기쁨과 즐거움이 늘 충만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잘못된 길을 걸으며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어린 자식이 결국 아비에게 살이 찢어지는 매를 맞을 때 철없는 자식은 아비의 마음을 모르니 때릴 때 고개를 숙이는 아비를 보고는 ‘왜 내가 맞는데 아빠가 울어요.’라고 울면서 말한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식을 낳으면 자식을 때리는 부모의 마음은 매를 맞을 때의 아픔보다 2배 5배 10배 더 아프기에 부모 눈에서 눈물이 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마찬가지로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사망으로 이끄는 죄와 멸망의 세상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영혼의 육체에 사랑의 매를 때리시고 당신은 사람의 몸이 느끼는 그 아픔과 해산할 때의 고통보다 1000배의 아픔과 고통을 겪으시면서 기다리신다. 그러나 자식을 길러본 사람은 육신의 부모자식간에 그런 애틋한 마음을 아버지께서 주셨음을 알아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함은 둘째사람을 향한 아버지의 뜻이 거룩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되 태초에 아버지의 품에 함께 계셨던 독생자께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아시기에 이 말씀을 통해 거듭난 영혼들 가운데 한 영혼이라도 더 자신의 속에 죄가 거하고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생각과 의와 이 헛된 세상으로부터 십자가아래로 나아와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의 당시 로마의 편에 섰던 세리는 자기민족 사람들의 집이나 그들의 사업에 가서 세금을 걷되 힘이 있으니 세금을 떼어갈 때마다 자신을 위해 항상 귀한 것 한 가지씩을 가져갔다. 한편 세금을 내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자기의 밑에 있는 사람들을 시켜서 그들이 하는 일을 고난에 빠뜨려 핍박했다. 그들은 이렇게 법이 정한 만큼만을 받지 않고 더 많이 받아서 챙겼으며 또한 세금거두는 그 일을 한 대가를 로마로부터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매국노나 죄인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나라를 구하고자 올바른 결정을 했으며 의로운 일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태는 그의 애비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었기에 어렸을 때부터 세상의 모든 것들을 원하는 대로 취했으며 애비의 힘으로 학벌도 있었기에 두루 다니며 세금을 얻어 자기의 육적인 욕심을 채우면서 죄와 세상에 빠져 살다 한 소문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죄를 사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돈 벌레에다 윗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던 마태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리스도께로 오직 죄의 용서함을 구하고자 자신의 거하는 처소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갔다. 뿐만 아니라 자기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또한 자신과 가까이 지내던 다른 높은 세리들도 불렀으니 그들도 자신처럼 스스로를 죄인으로 깨닫고 있을 것임을 예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뒤를 밟으며 말과 행위를 기록하던 14명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그 자리에 함께 했으니 그들은 자기들이 그곳에 온 목적을 이루고자 어떠한 말을 던져서 그리스도를 곤란에 빠뜨릴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은 우선 자신들이 죄인이나 세리와는 상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또한 자신들은 백성들의 영혼을 인도하며 육의 욕심과 영광을 취하고 있었으나 오히려 자신을 거룩한 주의 종으로 여겼으니 지금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있는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율법을 어긴 죄인들이었다. 즉 그리스도를 더러운 자라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또한 그 기록도 남기기 위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뿐만 아니라 마태의 초청을 받아 그 자리에 온 자들과 또한 자신을 해하려고 그곳에 함께하고 있는 그 큰 건물의 목자들도 공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말씀을 전하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의사는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필요하되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모든 병자들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병에 걸려있음을 모르는 사람과 알면서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며 끝까지 부인하는 사람과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과 의사도 자신의 중한 병은 고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내 병은 내가 안다며 스스로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포기하는 사람과 세상일로 바쁘다는 어리석은 사람은 의사가 불필요하다. 그러므로 그 수많은 병든 사람들 가운데서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더러운 죽음의 병에서 낫기를 원하는 사람만 찾아가 고개를 숙인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의원인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썩어질 육의 욕심과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으로 인하여 죄들을 범했으며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짓고 있으며 또한 내일도 동일하게 짓다 결국 그 죄에 묶여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들 가운데 자신을 의롭고 깨끗하게 여기는 자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셨다. 행여 그리스도께서 그런 자들은 부르신다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과 인격이 스스로 영적인 의원을 거부하며 오히려 자신의 안에 거하는 그 선악을 더 깊이 숨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발을 대고 걸어 다니는 모든 영적인 병자들 중에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죄 사함 받기 원하는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려고 오신 것이되 원수는 악한 서기관들을 통해 마태복음에서는 회개시킨다는 말씀을 뺐으니 누가의 기록이 맞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므로 마태의 초대를 받은 자들과 또한 인자를 따라다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이제는 그들이 돌이키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전자의 영혼들은 돌이킬 것들을 족히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앉은 그 자리와 가진 그 소유권들이 더욱 좋았으니 돌이켜 그리스도를 좇는 자가 없었고 후자의 영혼들은 그들의 교만한 목회자라는 자리가 그들을 돌이키지 못하게 했다. 그리하여 살고자하는 마음을 품고 있던 마태만 그 말씀에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내려놓고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좇았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다른 세리들과 성전의 목자들도 부르셨으나 그들은 육의 욕심과 교만에서 나오는 그 죄와 불로 멸망을 당하는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자신의 영생보다 더욱더 사랑하므로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기에 영적인 의원을 거부하되 입술로는 여호와를 믿는다며 제사를 드렸으니 그들은 불순종으로 사막에서 엎드러진 그 다수의 후손이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둘째사람을 공평하게 택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목자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어 한 가지 빛을 더 알리셨다. 그러므로 그 말씀의 뜻은 이것이다.
“너희는 그 성전의 회당에 와서 양을 잡고 소를 잡고 비둘기를 잡고 온갖 짐승들을 잡아 피를 흘리는 도다. 하지만 예배를 드린 후에 그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자기의 그 죄악된 삶을 사는 도다. 그러나 이렇게 거룩의 모양을 보이는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너의 마음에 있는 그 죄악 한 가지를 이기고 거룩하게 되는 그런 자를 아버지께서는 더 원하시는 도다.”
그러나 누가 이렇게 건강하고 깨끗한 삶을 살 수 있으리요?그러므로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이 세상에서 나와 영적인 의원을 따르는 자만이 인자께 거룩의 능력을 얻어 자신의 안에 거하는 그 죄와 이 세상을 이기며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며 영적인 병에서 고침 받은 자가 이 땅에 있을 동안에 의와 거룩의 열매를 아버지께 보여드림이요 영광의 복음의 비밀을 위해 입을 벌리며 거룩의 사명을 자신과 이웃에게 다했기에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 병은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생겨나는 병이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자신의 마음에 음란을 품고 또한 욕심을 품는다. 또한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에 완고함을 가득히 채운다. 하지만 사람이 이성 있는 인격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악한 원수에게로 마음을 빼앗긴 결과는 자기의 육체에 나타나니 죽은 피가 나가지 못하고 그의 육체 안에 군데군데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되어 육에 한 번 충격이 올 때에 어떤 자는 몸의 한 부분을 붙들리고 어떤 자는 여러 부분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으로 나타난 그것이 곧 소수에게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로 이끄시고자 베푸시는 사랑의 기회이되 다수에게는 곧 맞이할 사망의 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죄는 원수와 마음을 합한 자의 안으로 들어가 이제는 그의 마음에서 밖에 있는 육신으로 나오는 것이니 사람이 그 병에서 깨끗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과연 무엇을 행하여야 하리요? 그가 나음을 원할 때에는 단지 그 마음을 돌이키고 그가 아버지께로 붙들리면 그 병에서 쉽게 해방이 된다. 그러나 마음이 완악하며 죄를 사랑하는 자들은 끝까지 돌이키지 못하리니 아들의 은혜를 거부한 자들은 그 육의 질병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밖에서 들어온 그 죄를 안고 그대로 사망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렇게 욕심과 음란이 가득한 마음에서 나온 병을 가지고 사망으로 내려가던 한 완고한 영혼이 그리스도께로 나왔으니 그 뒤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전하시는 회개와 천국의 복음은 썩어질 육의 욕심과 이 세상의 헛된 영광에 빼앗긴 그 목자들의 마음을 깊이 찔러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욕심과 자기의 높아짐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깊었으니 찔림을 받고도 돌이키지 못했다. 그러므로 당시의 성전목자들은 육과 세상에서 자기의 마음을 돌이키고 자기가 앉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 그리스도를 따르기 보다는 오히려 인자를 잡아죽이길 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꼬투리를 잡아 합당한 증거를 모으고자 늘 뒤에서 인자의 말과 행위를 하나하나 듣고 보며 꼼꼼히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가시떨기의 밭을 가진 목자들을 따르며 그들의 말을 듣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과 그 종교지도자들의 관계는 이와 같았다.
사람은 처음에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께로 선하게 창조되었으니 불의하고 죄악을 행치 않고 오히려 의롭고 거룩한 말과 행위를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일이 만일 자기에게 유익을 주면 불의하고 더러운 일과 말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서든 위에 있는 자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옳지 않은 일을 시키면 밑에 있는 자는 그것이 잘못임을 알아도 행하니 그것은 자기에게도 유익을 주기 때문이요 그래야 현재의 자리를 지키며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윗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말하며 행하는 자들도 있으니 그들의 마음은 더욱더 악하다.
당시 전통의 목자들을 따르는 백성들 가운데 이러한 자들이 넷이 있었으니 그들은 오로지 인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시험하기 원했다. 즉 저 자가 만일 이 병든 자를 고치면 저 자는 진짜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요 오로지 신이라고 여길까 시험코자 했다. 고로 그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죄에 붙들려 침상에 누워 곧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가서 이런 말로 권했다. “네가 만일 그에게 가서 잘못되어도 지금보다 더 악화될 수는 없노라. 또한 우리도 그를 믿고 싶으니 네가 온전하게 되면 우리도 그를 믿겠노라. 그러니 이대로 가만히 누워있기보다는 한번 가보자.” 이에 병든 자도 자신이 더 악해질 수 없음을 알기에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자는 사망에 이른 자인데 네가 살릴 수 있으면 한 번 살려보라.’는 뜻으로 지붕을 뜯고 달아 내렸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를 심히 질투하고 시기하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꼬투리를 잡아 증거를 모으고자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곳마다 항상 14명의 서기관을 보내어 인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를 그대로 기록하여 자기들에게 알리도록 명했다. 나중에 그리스도를 잡았을 때 그것을 보고 그것들 가운데 몇 개를 뽑아 신령한 율법이 아닌 의문의 율법으로 인자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그날 그곳에는 늘 인자만을 맡아 뒤에서 좇아 다니며 듣고 기록하는 서기관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물론 바리새인들도 함께 있었으나 백성들의 앞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 자신들을 백성들이 보고 깨달을까 두려워 서기관들의 사이사이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가림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유익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뒤에 숨어 사람들을 조종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니 먼저 병든 자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마음에 더러움이 이제는 더 이상 마음에 거하지 아니하고 네 육으로 나왔으니 네가 이 병을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였도다. 그러므로 그 더러운 마음을 너의 마음에서 끄집어내어 네 마음도 또한 네 육도 깨끗함을 얻으라.”
한편 그를 데리고 온 네 사람이 인자에 대한 믿음이 없음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인자를 시험코자 하느뇨? 아버지께서도 너희들을 시험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참으시고 기다리시며 돌이키길 원하시는 도다. 하물며 사람이 아버지를 시험치 말라 율법에도 나와있은즉 그러나 너희의 마음에 의심이 가득 차 인자를 시험코자 하느뇨? 너희들도 이와 같이 함께 누워 있겠느뇨? 너의 의심을 버리고 아버지를 믿으면 인자를 믿으라. 인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왔으며 아버지의 일을 이 땅에서 행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이 영혼이 이제는 자신의 마음에 그 죄악을 내려놓았으니 인자가 이 자를 용서하였으며 이제는 일어나 나아가거라 하였노라.”
그런데 그때까지 큰 건물의 안에서 가르치는 목자들은 사람이 걷고 보고 듣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기적은 보았으되 죄 사함을 얻었다 함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들은 또한 늘 성전의 제사를 인도하되 서원한 자가 드리는 참된 제사의 의미를 모르니 오직 짐승의 피를 뿌리는 성전제사로만 죄의 사함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참으로 분명한 꼬투리를 잡았다고 확신하며 인자의 참람됨을 기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주의 종이요 여호와를 아노라 믿노라 하되 오히려 메시아를 잡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 그들도 불쌍히 여기시어 사람이 어느 곳에 서있을지라도 그가 마음을 돌이킬 때에는 용서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들보다 말씀에 더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신이 걷던 그 굽은 길에서 돌이켜 왕의 대로로 행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안에 있는 죄가 육의 욕심과 헛된 영광을 놓지 못하는 그들의 생각과 의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이사야에게 계시를 주시며 성전목자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실 때 그들을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개들이라고 알려주셨으며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내려오셨을 때에는 성전의 목자들이 개들의 후손임을 아셨기에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칭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시험하며 꼬투리를 잡으려는 그들의 마음을 읽으시고 너의 병에서 나았다고 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너의 죄가 용서함을 얻었다고 하셨다. 즉 죄 사함은 아버지의 권위요 그 권위가 인자에게 있음을 나타내므로 병든 자도 믿고 돌이키며 또한 그를 데리고 함께 온 자들과 또한 목자들도 믿고 돌이키기를 구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리석어 지금까지도 병든 자를 데리고 온 자들이 믿음이 있었도다 라고 말하고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말씀의 깨달음을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죄와 세상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혼들에게만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이제 그 병든 자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인자가 죄를 사하심을 믿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죄악을 다 내려놓았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죄에서 용서받았음을 믿거든 일어나 걸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입을 벌리고 싶어도 감히 벌리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자신이 마음의 중심으로 한 것을 그리스도께서 보고 읽으심이요 또한 죄인을 심판하여 유황불 못에 넣으시는 그 두려우신 하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자신의 앞에 서계심을 자기의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일 이후로 그는 늘 바리새인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그 유대인들과 함께 살지 못하였으니 광야에 나가 그도 그곳에서 애통하며 남은 인생을 보내는 그 복을 얻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의 당시에는 유대민족도 또한 이방민족들도 동일하게 흑암에 붙들린 자들은 모두 산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 머물게 하므로 다른 자들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그들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부딪히므로 서로가 서로를 사망으로 인도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쇠사슬로 묶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무덤에 거하다 그날 그리스도를 만났던 그 영혼은 오직 한 명이었으니 마태도 처음엔 한 명으로 기록했으나 원수는 사람들이 말씀을 보고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나님보다 윗사람을 두려워하는 서기관들을 통해 늘 이곳 저곳을 고치고 빼고 더한다. 그러므로 마가와 누가의 글은 그대로 놔두고 마태의 기록에서만 두 명으로 바꾸었으되 거룩하신 영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들과 갈급한 영혼들에게는 올바른 깨달음을 허락하신다.
말씀에 불순종이 쌓이니 먼저 영이 흑암에 감싸이고 또한 돌이키지 아니하니 혼도 붙들리고 계속 불순종하니 결국 자기의 몸까지 내어주고 무덤에 거하던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말에 순종치 아니하였으며 세상의 높은 곳에 올라가 자신이 모든 영광을 언젠가는 취하겠노라 늘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자였다. 또한 날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어떠한 거짓말도 다하였으며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는 늘 빼앗았다. 그러므로 사망이 임한 그 영혼을 보며 기억해야 할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어린 생명일 때 자기부모의 말에 불순종하는 자녀들은 늘 나쁜 것들이 그의 안으로 들어갈 것이요 둘째 자신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것들을 빼앗는 자들은 악한 것들이 열 배로 들어갈 것이요 셋째 세상의 영광을 취하겠노라 다짐하는 자들에게는 그것들이 백배로 들어가리니 그것은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그의 마음과 혼과 몸이 놀이터요 안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그에게는 군대가 들어있었는데 흑암의 군대조직은 적으면 200에서 300이요 많으면 수천도 넘는다. 하지만 숫자만 많다고 군대가 아니요 그 조직의 수가 12이 넘어야 군대라 칭하는 것이니 예를 들어 어떤 소대장이 자기 밑에 30의 부하를 데리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조직이다. 이때 그 소대장의 위치에 있는 흑암을 강한 자로 칭하는데 바로 그런 강한 자들이 12을 넘어야 흑암의 군대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 강한 자들 가운데 가장 더럽고 악한 자가 그 흑암의 군대에서 가장 높은 자이되 흑암의 세력은 오직 자기의 위에 있는 강한 자의 말만을 듣기에 강한 자라도 다른 강한 자의 밑에 있는 죽은 영혼들에게는 명을 내릴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군대의 조직은 원수와 그와 함께 타락한 사자들도 마찬가지니 원수는 오직 자기의 밑에 있는 종에게는 명할 수 있으나 그 종의 밑에 있는 다른 종들에게는 오직 자기의 밑에 있는 그 종을 통해서만 명령을 내린다.
한편 흑암의 세력들이 사람에게서 발할 수 있는 육체의 힘에도 기준이 있으니 한 성인의 어둠의 세력이 들어갔다면 그 흑암의 영적인 힘과 그 살아있는 사람의 육신의 힘이 합해지니 두 성인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어둠의 세력 다섯이 한 성인에게 들어가면 계산상으로 그는 나무를 땅에서 뽑을 수 있을 것이요 100이 들어가면 강한 철판을 뚫을 수 있고 500이 들어가면 집 한 채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육체를 이룬 뼈와 살의 한계가 있으며 또한 영적인 어둠의 세력도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에 가장 큰 힘을 내도 오직 쇠사슬을 끊을 수 있을 정도다. 또한 흑암들은 갑자기 많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차츰차츰 사람을 정복하니 구체적으로 그 당시 무덤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그 영혼은 2321의 흑암들을 품고 있었으되 그는 어릴 때부터 조금씩 그의 육신에 악한 것들이 들어갔으며 어느 순간에 그의 육신의 모든 감각을 그들이 붙든 후 큰 무리가 그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또한 어둠의 세력들 1000을 기준으로 삼아 그 이상이 되면 반드시 행위로 나타날 것이요 이하로도 그 악한 것들이 행위로 나타낼 수도 있으나 1000을 넘을 때까지 강한 자들이 잠잠하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늘 이루는 그 일을 위함이되 때로는 한 흑암도 더럽고 악한 행동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그를 사망으로 이끌기 위한 일들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며 즐기는 것이 어둠의 세력의 특성이다.
흑암의 세력은 육을 입고 숨쉬며 사는 동안 십자가의 피를 통한 자신의 죄들의 용서와 거듭남을 거부했으니 사망으로 들어간 자들 가운데 그 마음이 가장 악한 자들이다. 즉 자신이 그리스도께 받은 그 사망의 심판을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원수를 통해 생명으로 바꾸고자 세상과 사람들을 음란과 불의와 죄악으로 이끌어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의 욕심과 영광과 의를 위해 불의와 죄악을 행하는 것은 원수의 그 마음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유익을 위해 원수의 뜻대로 사람과 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는 그들을 가리켜 원수의 자식이라고도 부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에 거하는 목자들이 자신의 육의 욕심과 높아짐과 의를 기뻐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이용해 백성들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에 바울처럼 돌이키는 자가 있기를 원하시며 그들을 보고 너희 거짓의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한다고 경고하셨던 것이다.
흑암의 세력가운데 강한 자는 오직 원수의 밑에 밑에 밑에 있는 나부랭이 종의 명대로 움직이는 자들이니 자신만을 위한 욕심과 영광과 의로 가득한 자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그들의 일이다. 또한 그런 마음을 품고 외모가 좋아진 자들을 통해 세상을 불의하고 불공평하고 악하게 이끌되 불신자들보다는 살고자하는 자들과 첫사랑을 굳게 붙들고 있는 자들과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늘 가시로 더욱더 내리누른다. 그들은 또한 많은 자들의 영혼을 한꺼번에 추수하여 사망으로 데려가기를 원하므로 시대마다 전쟁을 준비한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도 이 세상의 적그리스도들과 잘생긴 자들을 통해 한민족의 환난과 그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한 개인에 대하여는 불의와 선악으로 묶어 사망으로 데려가는 일을 행하고자 그들은 자신이 붙들고 있는 사람이 육의 욕심과 기쁨을 즐기며 세상을 따르게 한다. 그러나 육은 썩어질 것이요 이 세상은 결국 영원한 형벌로 들어감을 깨닫고 오로지 아버지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은 자신의 안에 있는 헛된 우상들을 제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주신 아버지와 아들께로 마음을 돌이킬 수 있다. 또한 음란과 미움과 질투와 혈기와 비판과 거짓과 질병도 당연히 흑암의 세력이 전해주는 것들이요 사람의 혼을 붙든 경우 그 결과로써 나타나는 증상들을 보고는 사람들은 빙의 다중인격 정신분열 공황장애 간질 환청 우울증 대인기피증 강박증 악몽 성도착증 공포증 불면증 치매 동성애라는 말들을 붙인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 가운데 자기의 정신이 때로는 있는 것과 하나도 없는 것이 있으니 전자는 육체의 질병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자기의 죄들을 회개하고 돌이키므로 자유함을 얻을 수 있고 후자는 아버지께서 그 영혼의 살고자하는 마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먼저 온전케 해주신 후에 그가 이제는 온전한 마음과 인격으로 자기의 죄들을 회개하게 된다.
그런데 무덤에 거하던 자는 후자의 경우였으니 그리스도께서는 군대에게 붙들린 그 영혼을 먼저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그의 안에 있던 흑암의 세력들도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이 붙들고 있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려는 것을 느꼈다. 그러므로 가장 강한 자가 나와 그의 입을 붙들고 당신과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으니 그것은 우선 대화를 통해 자기의 시간을 늘리고자 함이었다. 둘째 의미는 어둠의 세력들도 그리스도는 거룩한 자들을 찾으시는 것을 아니 당시에 죄로 인해 이미 죽은 이 자는 거룩한 자가 아니요 죄를 선택한 더러운 자라는 법적인 고발이며 그리하여 이 자와 당신과 상관이 없으니 이 자도 또한 자신들도 그냥 내버려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악한 자의 참소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심은 오직 그 영혼의 살고자하는 마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기에 군대를 내어쫓으려 하셨다. 이때 악한 자들은 자신이 이제는 그의 육체에서 나가야 함을 깨닫고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구했으니 그것은 자신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때가 찰 때까지 이 땅 위에 그대로 거하도록 그 땅 아래로 보내지 말아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런데 사망의 심판을 받은 그들이 무저갱으로 내려가는 것은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그 원수와의 관계이며 천년왕국의 끝에는 둘째 사망의 심판이 있으니 즉 계속 악을 행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니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허용하신 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그때 강한 자는 옆에 있는 짐승들에게 들어가겠노라 허락을 요청하되 자기생각으로 그리스도께서 어디로든 들어가지 못하게 하실까 두려웠다. 그러므로 믿지 못하는 그들은 그 두려움과 의심으로 인하여 그 요청을 한 후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재빨리 14마리의 돼지들에게 들어가버렸다.
그러나 원수는 서기관들을 통해 거의 2천 마리의 돼지 떼로 바꾸어 기록했으니 그 이유는 자신이 행한 불법은 숨기고 그리스도를 더욱더 험한 사람으로 기록하여 알리기 위함이다. 즉 그리스도는 오직 사람만을 생각하니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창조하신 짐승과 또한 식물과 또한 다른 모든 자연들은 원치 아니하신다는 거짓말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방민족들에게 복음이 다 전해진 후 그리스도께서 둘째하늘과 그 안의 낙원을 이끌고 이 첫째하늘로 들어오셨을 때 원수와 사람들이 더럽힌 자연과 그 마지막 전쟁으로 황폐케 된 이 땅을 오히려 태초에 자신이 선하게 창조하셨던 에덴동산과 그 안의 만물처럼 깨끗하게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그 영혼은 아버지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 자유를 얻었으나 흑암으로 인하여 혼적인 능력이 전혀 없는 자들은 아버지께서 그들의 살고자하는 마음을 보시고 은혜를 먼저 베푸시고 나중에 온전한 마음과 인격을 찾은 후 자신이 범했던 죄들을 회개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깨끗함을 얻은 후 그리스도께로 자기의 모든 죄들을 다 내어놓고 아버지께로 회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을사람들은 자기의 이웃이 온전케 된 것을 보고 함께 기뻐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께로 떠나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유는 첫째 그 마을에서 또 다른 어떤 이에게 그러한 형벌이 내릴까 두려웠으니 그들은 자신의 죄들을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아 영생 얻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그 강한 자를 다시 불러 다른 어떤 이에게 들어감을 명할까 두려웠으니 그들은 그리스도를 생명이 아닌 형벌을 주는 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셋째 자유함을 얻은 그 이웃이 자기들을 향하여 무엇인가를 말할까 두려웠으니 그것은 그 동안 고통가운데 있던 자기이웃에게 행했던 그들의 죄악들에 대하여 이제는 그가 온전케 되었으니 누구누구가 나에게 이러이러했다고 말하며 나와 같은 처지에 거하게 하므로 나도 그에게 똑같이 대하겠노라는 말을 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승이 아니고서야 은혜를 입은 자가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말과 행위를 하리요? 물론 요즘엔 짐승보다 못한 악한 자들도 종종 있으니 자신이 십자가의 피로 형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그 첫사랑의 은혜를 잊고 늘 자판을 두드리며 자신의 입을 열어 믿는 지체들에게 더러운 말들과 가시들을 쏟아내므로 죽은 자가 자신을 장사시키고자 보내는 그 죽은 자들을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받은 은혜가 큰 것임을 깨닫고 감사하며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길 원했으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그가 살던 곳에 두셨으니 그 이유는 자신이 전하지 못한 선한 말씀을 그 영혼을 통해 전하게 하심이었다. 또한 그가 그리스도께 받은 그 은혜를 자신의 식구와 친척과 친구에게 알리어 그들도 함께 그 은혜를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우선 잠잠히 자신의 입을 다물고 자신의 옛 생활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소식을 듣고 기회가 될 때에는 늘 그곳에 찾아가 그리스도께로 말씀을 듣고 또한 다른 이적들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유대전통으로 인하여 인자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약했으되 자신이 얻은 그 은혜만큼은 잊지 않았다. 또한 불행하게도 진리를 찾으려 애쓰지 아니했기에 진리의 깨달음은 없었으나 오로지 예수라는 이름으로 사람이 온전케 되는 것만을 전하며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을 따라다니는 제자들 중에 11명은 자신이 직접 부르셨으나 애비의 힘으로 물질과 권세를 가지고 있던 그 마지막 제자는 자신이 부르신 제자가 아니요 그가 오직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따라다닌 자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제자들은 12명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외에도 자신을 진실하게 따르는 영혼들은 그들의 마음과 결단이 약해도 모두다 자신의 제자로 보셨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마가는 새로운 것을 꺼리며 늘 불안한 마음가운데 있었으니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항상 뒤로 도망가 숨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요한과 베드로처럼 가장 앞에 서서 적극적으로 따르지 못했으며 그로 인하여 12제자에는 속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아무리 연약하고 자신감 없이 항상 저만치에서 거리를 두고 자신을 따라다녔어도 그의 능력을 보심이 아니요 오직 그의 살고자하는 마음과 순종의 마음을 보시고 그를 자신의 제자로 인정하셨다.
또한 유대인들은 육신의 병을 고치는 일을 이방인들처럼 의사가 하는 것이 아니요 치료와 마무리 제사까지 오직 성전에 거하는 목자들이 행한다. 그러므로 누가는 자기 애비의 권세로 성전목자들 가운데 서기관의 위치를 얻어 윗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꼼꼼하게 글을 남기는 일을 행하고 있었으나 중간에 이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결단과 함께 의사의 일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랐으니 그리스도께서는 누가도 자신의 제자로 인정하셨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마가와 누가도 말씀의 목격자가 되어 보고들은 대로 기록할 수 있게 하셨고 거룩하신 영께서도 계시를 주셨기에 그들이 붓을 들어 그 복음서들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다른 서기관들과 70인과 120인 중에도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던 자들이 있었다. 또한 성전의 독사새끼들 중에 가장 악랄한 자로써 의문의 율법에 갇혀 신령한 율법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말씀을 아는체하며 그저 세상의 명예욕으로 가득 차 대제사장만을 바라보고 온 힘을 다하던 자도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돌이켰기에 그리스도께서 그 영혼을 자신의 제자로 받아주셨으며 거룩하신 영을 통해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기에 복음의 비밀을 기록해 이방인의 신령한 교회에 여러 서신서들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가는 그리스도의 복음서를 기록할 때 12제자들 외에는 그리스도를 따라다녀도 제자라고 표현하지 않았으나 마태는 꼭 12제자가 아니더라도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면 다 제자라고 기록했다. 그러므로 마태는 그리스도께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이 말씀의 비밀을 들었던 그 영혼을 제자 중에 또 하나라고 기록하는 것이요 누가는 그냥 다른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따라다니기는 했으나 12제자에 속하지 못한 한 제자가 자신의 애비를 잃었다. 그러므로 그는 부친을 장사하러 떠나기 전에 다녀오겠노라고 주님께 인사하러 나왔으되 어리석은 자들은 이 말씀을 보며 나는 제자이니 가족을 장사하지 않고 주님 위해 가족도 버리겠다 말한다. 한편 교만한 자들은 그럴듯한 말로 사람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가르친다. “영이 산 자는 영이 죽은 자를 장사하면 안 된다.” “율법을 장사하라는 의미다.” “영혼을 살리는 일이 중요하니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복음전하는 것이 육의 부모를 모시는 것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만일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다면 그의 육의 애비를 누가 장사하리요? 셋째하늘의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그의 육의 가족들을 누가 돌보리요?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육의 애비의 장사를 다녀오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영적인 의미를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기억하길 원하셨다.
첫째 사람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자신에게 없는 것은 주고 싶어도 못 주고 오로지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남과 나눌 수 있음이니 생명이 없는 자가 생명이 없는 다른 자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람에게 생명을 못 주되 오직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아버지의 영생을 전해줄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오직 아들의 십자가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정하셨으니 누구든지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그 십자가의 길에서 새 생명을 이룰 수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그 평화의 복음을 다른 자들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생명이 없으면 생명을 전할 수 없으니 생명 있는 자만이 생명 없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에게 생명을 전해줄 수 있다. 그러므로 말씀의 씨로 영이 거듭난 자는 회개와 영의 거듭남의 생명을 전할 수 있고 거듭난 후 그리스도를 따르며 새 생명을 얻은 자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얻는 영광의 복음도 나누어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복음이 있다 하여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생명 얻을 기회를 얻어야 하며 또한 간절히 생명을 원해야 한다. 즉 생명 없는 자는 육의 기회가 있을 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져야 생명 얻은 자를 통해 그것을 전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중생이 없는 영혼의 영원한 죽음을 모르니 숨이 붙어있는 자신이 살아있는 줄 알고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어리석은 말을 하되 거듭난 자들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느라 의를 따르지 않는 교만한 자들은 자신이 복음을 들었고 새 생명 가운데 있노라 말하되 복음의 비밀과 새 생명이 무엇인지 모른다.
둘째 생명 없는 자가 생명 없는 자에게 생명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죽은 자가 죽을 자를 장사하지 못하며 또한 한다 하여도 죽은 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요 오로지 이미 그를 선악의 죄와 세상으로 삼킨 자가 하는 것이다. 고로 이것은 사람의 육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세계이니 사람의 영혼이 육에서 나오면 그가 쌓은 죄와 거룩에 따라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상급이나 혹은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사망으로 들어간 그의 육이 작은 알갱이(쿼크/렙톤)의 창조재료인 티끌로 돌아갈 때 원수가 세포들을 가져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용한다. 그 이유는 마지막 때에 이 세상으로 올라올 자신을 예비하기 위함이니 자신이 육을 입고 나오기 전에 144000의 목을 베는 짐승들을 만들고자 하되 스스로 지혜롭다는 그가 티끌로 알갱이를 빚어 세포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적인 세계에서는 죽은 자들조차 죽을 자를 장사하지 못하고 오직 거짓말의 아비가 그를 장사하고 있으니 사람이 어찌 죽은 사람을 장사할 수 있으리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에게 천륜과 인륜을 다하도록 공평하신 뜻을 주셨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므로 슬픔을 당한 자가 떠난 자의 마음을 깨닫고 행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는 각 사람의 영혼이 그리스도께 아뢰는 공통된 소원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땅에 남은 가족들은 죽은 자를 장사하고 있지만 한 사람의 육이 땅으로 돌아가며 그 영혼이 심판대에 섰을 때 그가 받을 생명과 사망의 상급과 또한 그가 어디로 갈지를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법적인 심판대에서 정하신다. 그런데 그때 심판대에서 모든 영혼들이 한 가지를 늘 그리스도께 요청하니 그것은 그가 다시 이 첫째하늘로 내려와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가기를 원함이다.
그 영혼들이 가족들에게 가기 원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이니 사람들의 표현으로 하면 다음과 같은 영적인 유언을 전하기 위해서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이여 내가 인생을 살아보니 또한 죽어서 심판대에 서보니 돈을 따라가거나 이 세상의 영광을 구하거나 주님을 믿는다며 마음 없는 행위를 열심히 드리는 것이 사람의 목적이 아니요 마지막에는 죄와 거룩에 대한 심판과 상급이 있으니 부활을 소망하며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거룩에 애쓰며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을 거룩하게 지어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니라.” 즉 그들의 공통된 마음은 무저갱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그 부자와 같으니 부모로써 자기의 자녀들이 나중에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도록 어릴 때 늘 공부하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은 인격체이니 공부도 자기가 좋아야 하고 목적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영혼들에게는 12제자들만이 아니요 연약한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대해 늘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12제자가 아닌 그 제자는 이미 그전에 들은 바가 있었기에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으며 또한 자신이 들은 대로 순종하고자 했다. 즉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은 복음을 깨닫고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 새 생명을 얻은 후에 또한 자신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의 영혼들도 불쌍히 여겨 생명을 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의심 가운데 순종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마음도 불쌍히 여기셨으니 그것은 그가 비록 의심가운데 있으나 순종하려는 그 겸손한 마음을 보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보고 그리스도는 이 땅에 계실 때 거처가 없었으며 가난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생각으로 가르치는 자들은 나는 집도 없고 가난하며 아무것도 없으니 네가 만일 이 길을 가려면 너도 무소유가 될 것이니 그럴 각오가 되어있느냐는 뜻이라고 전하며 자신을 제자로 여기니 뿌듯하다. 그래서 그가 말한 대로 사는 자인가 하여 들여다보면 이방인들과 똑같다. 한편 어떤 자는 지금은 마지막 때라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되 결혼해서 아기들을 줄줄이 낳고는 앞에 서서 설교하길 홍수가 나서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그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갔다며 울분을 토한다. 최고봉은 이것이니 혼자 있을 때 늘 음행을 즐기는 자가 돌이키지는 않고 지금은 환난과 재림이 임박한 마지막 때이니 우리 함께 깨어서 신부단장하자며 사람들을 모아놓고 입을 돌리길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며 자위한다.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동일한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어도 이 땅에 육신을 입고 계셨으니 어찌 음식을 취하지 않고 대변을 보지 않으셨겠는가? 거처가 없어 날마다 산에서 주무셨겠는가? 또한 자신을 세상과 사람들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께만 맡기셨으니 주식과 땅과 보험은 취하지 않으셨어도 공적인 복음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원수의 시험을 이기기 위한 그 40일 외에는 오로지 일용할 만큼의 영과 육의 양식을 늘 취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앞날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니 곧 인자에 대한 예언이다.
아버지께서 정하신 창조원리에 따라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도 짐승도 동일하게 그들의 육신이 죽을 때가 되면 자기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를 찾도록 창조하셨으니 그들은 자기가 자라 나온 곳으로 돌아가 그곳에다 자신의 육신을 묻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앞으로 자신이 죽음을 당할 때 사람들과 또한 짐승들도 하는 그 일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로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가증스러운 자들은 그가 가난했으며 또한 거할 처소도 없었다고 가르치며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알리되 머리 둘 곳만이 아니요 다른 모든 것들도 철저하게 준비하다 결국 머리 둘 곳 없는 그 마지막 죽음은 피한다. 그리하여 그런 육신적인 준비들과 양들을 위한 죽음의 거부는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요 바리새인이었음을 스스로 증거한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예언이요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니 그리스도께서 그 죽음을 맞이하실 때 그를 따르던 제자들 즉 친구들은 모두다 도망갔다. 또한 그의 육의 어미도 자기의 생각을 따르며 육과 세상으로 분주하여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다가 오로지 주님이 돌아가실 때에 십자가로 나아왔다. 게다가 그의 육을 담는 그곳도 자신이 마련한 것이 아니었으니 오직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자신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사단의 자식이란 소리를 들으며 극한 고통가운데서도 십자가의 죽음만을 끝까지 이루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 참된 생명을 이루고자 죽음을 당하실 때에 사람들과 짐승들이 하듯 그 모든 것을 다 하지 아니하시므로 인자의 그 예언을 그대로 이루셨다.
한편 이 예언의 말씀이 나온 상황과 대상이 있었으니 우선 그리스도를 좇아 다니던 한 서기관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는 참으로 마음이 악했으니 자신이 영의 생명을 얻고자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라다닌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보니 그가 왕이 될 때에 자신도 그 왕의 자리에 함께 가길 원하여 따라다녔다. 즉 그는 율법공부를 다 마친 후에 자신이 서기관자리에서 바리새인이나 혹은 장로로 올라가지 못할 것을 이미 예측하고 그리스도를 좇아 다녔다. 그러나 인자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쪽으로 형편이 기울어지자 얼마 못 있다 그리스도를 버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좇지 못한 그 서기관은 생명도 얻지 못하고 또한 세상의 명예도 얻지 못했다.
그런데 그 악한 서기관이 바로 그때 자신의 그 마음을 숨기고 그리스도께서 어디를 가든 자신은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왕이 될 때 자신도 그 자리에 함께 앉을 때까지 따르겠다는 것이지 자신도 머리 둘 곳 없는 그 죽음까지 따라가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겠다는 마음이 아니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악한 마음을 아시니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리요? 너의 마음을 돌이키라는 말을 인격체에게 계속해 반복하시리요? 아님 다 큰 성인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시리요?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악한 서기관에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아니하셨으니 그것은 그가 자기의 사람이 아닌 것을 이미 아셨기 때문이다.
한편 서기관의 고백 바로 전에 열두 제자 중 한 명이 그들이 이제는 육의 안식도 취하기 원하여 쉴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제자의 마음은 정말 육신의 안식을 위해 쉴만한 곳을 찾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와 제자들에게 계속적으로 사람들이 붙으니 그의 육적인 욕심과 영적인 교만으로 자기의 사람들을 고르고자 함이었다. 즉 그 제자는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그리스도의 말이 아닌 자신의 육적인 말을 들을까 하여 자기를 따를 자들을 고르기 위한 생각을 가지고 쉴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제자는 믿는 자들 중에서 지금으로 말하면 저 불쌍한 사람들의 육을 돕자고 말하는 자들의 조상이니 동성애는 죄요 내 안의 음란은 성령이 주는 것이고 바벨론의 공산주의는 마귀정권이요 바벨론의 자본주의는 하나님이 세웠으니 묶였던 자가 자유케 되는 그 영광의 날은 내 안의 죄를 이기는 날이 아니요 북한정권이 무너지는 날로 여기며 노래 부른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서기관에게는 무슨 말씀을 하지 아니하셨으나 그 전에 그 제자가 사람들을 자기에게 이끌어 자기의 말을 듣게 하므로 자기가 높아지고자 쉬는 곳을 찾는 그 잘못된 마음을 아시고 그 대답으로써 그 제자에게 주셨던 말씀이 곧 이 인자의 예언이었다.
이처럼 가룟유다는 늘 다른 자들보다 자기가 더 육적인 이익을 얻고자 했으며 또한 그 육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가 아닌 오히려 육을 많이 가진 자신을 따르도록 이끌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또 한번의 기회를 주어 그가 잘못된 마음을 돌이키길 원하셨기에 그에게 머리를 둘 곳이 없는 인자의 그 죽음에 대해 알리셨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 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오직 육의 욕심과 세상에 있었으며 또한 살고자하는 마음도 없었으니 그는 자신에게 생명의 기회를 주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돌이키지도 못했다.
그런데 2천년 전의 이런 상황은 이 마지막 때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니 어떤 제자는 물질의 어려움과 사람의 수가 적은 것을 보며 십자가라 생각하여 적음으로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이 그의 안에 있고 풍부한 물질과 많은 수를 이룬 제자는 큰 것으로 높인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일 그 마음을 돌이켜 처음에 약속한대로 죽기까지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한다면 그들은 육의 사망으로 들어간다. 반면 어떤 제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목적으로 삼은 그것을 복음을 이용해 다 이루었으니 내려오지 못할 만큼 높아졌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거짓을 돌이키지 못하면 영혼의 사망으로 들어감은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른 그 제자의 마지막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들은 흔히 이방인이라고 하면 유대인의 12지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로써 이스라엘의 밖에 거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이방인들 가운데는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당시까지 유대인들과 함께 거하던 이방인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그들을 함께 따라 나왔던 이집트인들이 있었으며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로 다닐 때에 포로가 되거나 자진하여 그들과 함께 광야 길을 걸었던 주변의 이방인들도 있었다. 또한 라합과 그의 가족들도 처음에는 이방인이었으나 그 일 후에 유대인들과 함께 거했다. 또한 예루살렘성전이 세워진 후에 여호와의 구원의 이름을 듣고 여러 지방과 민족에서 포로들이 돌아올 때 함께 온 자들도 있었다.
이처럼 할례를 받은 후에 이스라엘과 함께 살게 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맺은 관계는 요즘에도 색깔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거할 때 벌어지는 일을 보면 이해하기 쉬우니 그들이 어렸을 때는 함께 어울리며 친밀한 관계를 맺지만 성인이 되고 성숙해지면 서로가 다른 것을 깨달았기에 그 친밀한 관계가 변하여 오히려 더 원수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므로 악한 유대인들은 자기의 조상 때부터 자기들과 함께 살던 그 이방인들의 후손들을 형제자매로 받기보다는 늘 낮게 여기며 종처럼 대우하므로 아버지께서 주신 그 계명들에 순종하지 못했으며 유대인들과 함께 거하던 이방인들 중에 악한 자들도 유대인들을 미워하며 싸웠으니 그들도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당시에 이렇게 유대인이 아닌 유대인으로써 유대 땅에 거하는 자들의 수효는 남자가 1872명이요 여자가 2134명이 있었으며 성인의 나이인 12세가 되지 않은 어린 남자는 881명이요 어린 여자의 수는 822명이었으니 그들이 바로 유대인의 하속이라고 불리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태어난 자기의 민족을 떠나서 다른 민족들이 거하는 땅에 살겠다는 것은 사람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하속의 조상들은 자기가 속한 그 뿌리를 떠났으니 그것은 그들이 유대인들에게서 육적인 것을 더 얻거나 혹은 이 세상의 나라에 속한 타락한 육적인 이스라엘에 그 어떠한 소망이나 영광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은 썩어질 육과 이 세상의 헛된 소망을 버리고 오직 율법과 계명과 법도에 순종하여 거룩에 이르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그 부활의 생명에 이르고자 자기가 태어난 민족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하속들과 그들의 조상들 가운데 자기의 민족을 떠나올 때 가졌던 그 첫 마음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택함의 은혜를 얻고도 거룩을 저버린 유대인들처럼 그 거룩한 뜰로 들어가 그들의 손을 펴되 오로지 썩어질 것들과 헛된 것들만을 구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그 거룩한 곳으로 들어와 거룩한 행위의 모양을 보이되 영원한 생명을 주는 자신을 이방인들의 신처럼 섬기던 그들에게는 눈을 돌리시고 귀를 막으셨으니 그들도 육적인 유대인처럼 그저 아버지의 마당만 밟을 뿐이었다.
반면 그들 가운데 자신이 여호와를 만날 때의 첫 마음을 끝까지 지키므로 자기의 마음에 우상을 허락하지 않은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전에도 또한 그리스도의 당시에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을 위한 뜰에 들어갔을 때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룩에 이르고자 애썼다. 즉 그들이 자기민족의 풍습을 버리고 유대인의 약속과 또한 그 거룩한 행위의 능력을 따른 것은 그들이 오직 아버지의 뜻에 이르고자 함이었으니 아버지께서는 이방민족에서 유대로 들어와 거룩에 애쓴 그 하속들에게 은혜를 내리시어 그들을 의롭고 거룩케 하셨다. 또한 그들이 썩어질 육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약속을 그들에게도 지키셨으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후 그 영혼들도 거룩한 몸을 입고 그 거룩한 성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도 또한 아들께서도 그들을 보실 때에 이제는 더 이상 이방인이나 유대인의 하속들로 보시지 아니하시고 오로지 유대인의 자녀들 가운데 딸로 여기신다.
그러나 이렇게 동서로부터 많은 유대인 아닌 유대인들이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그 약속을 이루는 동안 오히려 바깥의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가는 유대인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유대인들을 향한 말씀처럼 보이되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유대인만이 아니요 자신의 십자가 이후에 있을 그 일곱 교회시대에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모든 영혼들에게 선포하신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경고의 말씀을 깨닫고 돌이키는 이방인에게는 영생의 유익이 있다.
그러므로 각 교회시대마다 또한 어린양의 다시 오심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에도 나는 그리스도를 안다 믿는다 따른다 말하되 거룩에 마음이 없는 이방인들이 있으니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육과 또한 자신이 나왔던 이 세상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십자가의 첫사랑을 회복하고자 자신의 심령을 찢기보다는 그저 때가 되면 아버지의 앞에 나와 마음 없이 행위만을 보인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마음 없는 더러운 곳에는 임하시지 못하시니 그들이 비록 거룩한 곳에 나와 늘 예배를 드리며 여러 가지 행위들을 열심히 드린다 할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받으시거나 그들의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지 아니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음을 보시는 그리스도의 심판에 따라 그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은 나는 세상에 있을 때 오직 예수이름으로 모든 것을 했는데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라는 불평과 불만이다.
이와 같이 유대의 주변에서 온 이방인들은 그가 어느 시대에 거하든 나는 예수를 믿는다 따른다 또한 예수님을 좋아한다 라는 말을 하되 그들의 마음은 오로지 그 육을 어떻게 채울까에 가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바로 그런 육적인 이방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엄중하신 심판의 선포였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이 말씀을 듣고 보았을 때 생명과 소망이 없는 이 헛된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이미 약속된 그 푯대의 생명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당시만이 아니요 교회시대와 이 마지막 때에도 늘 입으로만 믿는다 따른다 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귀로 또한 눈으로 이 어두운 곳에 대한 말씀을 분명히 듣고 똑똑히 보게 하시는 것이다.
반면 십자가의 피로 영이 거듭난 후 이 땅에서는 비록 주변에 거하되 그들이 이 세상을 등지고 광야와 섬들에 거하는 이유는 자기의 생각이나 의나 사람의 가르침이나 이 세상의 풍조에서 돌이켰기 때문이요 십자가아래에 모이는 그날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바벨론의 주변에 거하며 마음과 믿음을 오로지 거룩에 두고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거룩에 애쓴 그들도 부활시켜 어린양의 신령한 신부나 이방인가운데 거룩한 아들과 딸로 삼으신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은 그들이 영적유대인과 함께 천년왕국과 또한 그 끝에 맏아들을 따라 올라갈 영원한 셋째하늘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가까이에 거하므로 기쁨과 영광이 충만해지며 아버지의 모든 것을 누리며 그 의롭고 거룩한 나라를 영원토록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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