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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1/03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2. 2009/12/29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3. 2009/12/21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살고자하는 마음
  4. 2009/12/13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5. 2009/12/10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살고자하는 마음
  6. 2009/12/07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살고자하는 마음
  7. 2009/11/23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살고자하는 마음
  8. 2009/07/28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살고자하는 마음
  9. 2009/07/12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살고자하는 마음
  10. 2009/07/01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살고자하는 마음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어떤 악한 왕이 둥근 나라를 다스리며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취했고 백성들은 그 불의한 왕이 하는 말을 따라 행했다. 예를 들어 법관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권위와 처지를 저울 위에 올려놓았으니 힘있는 자와 자신이 아는 자 앞에서는 저울이 기울어지되 힘없는 백성들 앞에서는 조금도 기울어지지 않았다. 법을 만드는 자들은 자기에게 유익을 가져오는 법은 재빨리 처리했으나 백성들을 위한 것은 느리게 만들며 자기의 영광을 구했다. 법대로 행하는 자들은 백성을 위한 봉사가 아니요 매달 백성에게 받는 돈에만 마음이 있었다. 백성들은 이곳 저곳을 걸어 다니며 오직 육을 즐길 수 있는 돈과 음행 두 가지만 생각했다. 그러므로 둥근 나라의 곳곳에 불의와 죄악이 넘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깨닫고 있었지만 대중은 불의와 죄악에 순응하며 돈과 음행을 따라다녔고 어떤 자들은 세상 어디에도 거룩한 곳이 없다며 의심했다. 그러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다른 나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도 소수지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먼 나라의 왕자가 정의와 사랑과 공평과 평안을 가지고 찾아왔으니 그의 나라에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없었으며 불의와 죄와 헤어짐과 죽음과 슬픔과 아픔도 없었다. 그 왕자는 둥근 나라의 백성들에게 말하길 누구든지 자신의 나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은 다 데려가겠다고 했다. 이에 사람들은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냐고 묻자 왕자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는 거할 곳이 많이 있으니 그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필요하되 그곳은 불의와 죄가 전혀 없는 나라이므로 나의 아버지처럼 거룩하게 되기를 구하여라. 그러면 나는 그의 발에 종이와 나무로 빛을 비추어주겠으니 나를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그 길에서 거룩에 이를 것이요 나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백성이 아닌 나와 같은 왕자와 공주로서 다스리겠고 이 불의하고 죄악된 나라는 마지막에 멸망의 심판을 받겠노라.” 왕자의 말을 듣자 그 나라에서 개를 키우는 12명과 돼지를 치던 7명이 왕자를 따르기 위해 둥근 나라에서 나왔고 왕자는 약속대로 나무와 종이로 그 난민들의 발에 빛을 비추어주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 그 길에서 거룩하게 되어 왕들로서 자기의 영광을 가지고 아들의 나라로 들어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둥근 나라에 불의와 죄가 있음을 알아도 그냥 그렇게 사는 게 좋았으니 그것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그곳에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셋째하늘에서 자기의 욕심과 영광을 위해 선악을 창조하고도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기에 아버지께로 쫓김을 당한 원수는 이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고 돈과 외모로 사람들과 이 세상을 불의하고 악하게 이끌어간다. 그러나 거듭난 후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의 나라와 거룩을 구하는 자들은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이 땅을 에덴동산과 같이 회복한 후 천 년 동안 왕으로서 다스리실 때 그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그 광활한 땅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린다. 또한 천국의 끝에 하늘에서 내리는 유황불로 땅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며 세상이 멸망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라 셋째하늘로 올라가 아들과 함께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그 영광을 허락 받는다.

 

그러나 그전에는 그가 거룩한 자녀 됨의 약속을 믿고 그 영광의 자유를 소망하며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에 있는 것들과 또한 아버지의 거룩하심만을 사모하는 자여야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이 진실하다면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자신을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가꾸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도 아들을 통해 주신 그 모든 약속들을 천년왕국과 또한 셋째하늘에서도 영원토록 지키신다.

 

그러나 원수가 넣어주는 생각을 따라 세상을 이끌어 가는 자들과 중생이 없는 이방인들과 거듭남이 있어도 이방인들처럼 썩어질 육의 욕심과 헛된 세상의 영광을 구하며 사는 자들은 말씀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깨닫지 못하니 이 모든 것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모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며 행하고 있다. 만일 하늘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서 돌이키지 않는 자들은 육을 입었을 때는 이 세상을 즐기고 육을 벗었을 때는 아버지의 나라를 즐기자는 마음을 품은 자들이니 아버지께서는 그 거짓된 자들이 육을 벗었을 때 그들이 원하던 대로 영원한 형벌이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으로 보내주신다.

 

이처럼 원수는 이 세상에서 당장 얻을 수 있는 돈과 명예가 바로 장차 얻게 될 그 모든 것이라는 믿음을 넣어준다. 이때 첫사랑을 잊고 아버지께서 아들의 십자가를 통해 주신 그 은혜의 약속과 소망을 버리므로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뜻 그 거룩한 육체를 포기한 영혼들은 거짓선지자들의 설교가 거짓임을 알면서도 속아준다. 그리하여 이 마지막 때에 어리석은 자들과 거짓된 자들은 무엇이든지 이 땅에서 받고자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오히려 이 말씀을 이용해 끝까지 자기의 손을 원수를 향하여 펴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한 가족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은 후 빨간 자동차를 타고 사막을 지나다가 기름이 다 떨어졌다. 그런데 가족들이 다 내려서 미는데 한 살도 안 된 아기가 운전대를 붙들고 있었으니 아기는 앞이 보이지 않아 차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게다가 뒤에서 미는 가족들도 역시 앞을 보지 않고 오로지 땅과 사막만을 바라보니 차가 앞으로 곧장 가고 있는 줄 알고 계속 열심히 밀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힘들게 차를 밀고 가다 높은 언덕길에 올라가서 밑을 바라보니 사막이 펼쳐져 있는데 오른쪽에는 차를 움직이게 하는 석유가 흐르는 강이 보였고 길의 양쪽으로 푸른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으나 입구가 안 보였다. 게다가 사람들도 그 길로 가기를 꺼렸으니 하얀 자동차 일곱 대만 그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반대로 왼쪽에는 눈과 몸을 즐겁게 해주는 유흥가가 있었고 길이 넓었으며 3개의 주유소가 있었지만 나무는 다 시들어 있었다. 하지만 검은 자동차들뿐만 아니라 빨간 자동차를 탄 다른 가족들도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운전대를 잡은 아기가 말하길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지 반드시 왼쪽 길로 가야 한다고 했고 다른 가족들도 그 길을 선택했다. 결국 그 가족도 검은 자동차를 탄 가족들처럼 그 길로 들어가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그러나 그것이 물이라 겨우 6미터를 달리다 서버렸고 그들은 또다시 내려서 오직 땅과 사막만 보면서 다음 주유소까지 힘들게 6킬로를 밀었다. 그러나 다음 주유소에서 넣은 것도 물이니 그들은 다른 가족들처럼 개고생을 하면서 계속 밀고 갔다. 그런데 그 길은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사람이 깨닫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왼쪽으로 벗어난 길임을 알 수 있었지만 멍하게 있으면 그것이 안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길의 끝에 사망이란 푯말이 붙어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그곳으로 떨어지면 영원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오른쪽 길은 그 석유의 강이 어느 지점에서부터는 바닥까지 훤하게 보이는 맑은 생수의 강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길의 마지막에는 영생이란 푯말이 있었고 그곳을 지나 올라가면 참으로 맑은 호수에서 기쁘고 즐겁게 안식하며 즐기는 낙원이 있었다. 그러므로 빨간 자동차를 밀면서 왼쪽 길을 힘들게 걷는 가족들 가운데 천에 하나 정도는 아주 드물게 두려움을 이기고 오른쪽 길로 돌이키는 가족도 있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소원하니 누구나 다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거하기를 원하되 낙원으로 가는 그 길에는 육과 혼의 고난이 있다. 하지만 육적으로는 비록 고생스런 그 십자가의 길이 복된 이유는 늘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가운데서 너와 네 집이 그 생명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수가 힘의 논리로 이끌어가는 이 어두운 세상에다 내놓은 길은 오직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을 즐기는 길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영원한 사망으로 부활하는 길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공평하게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선택해 걸을 수 있도록 거듭남으로 그 길을 갈라놓으시되 그 후로는 생명의 길로 온 영혼들이 그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떤 가족이든지 중생한 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 걸을 수 있으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진리로 거룩해져 몸과 마음에 아버지께서 거하시므로 천국이 임하는 그 거룩한 부활의 생명을 원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록 의식주에 대한 걱정과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키는 두려움이 있지만 아버지께서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시며 친히 거룩하게 하신다는 믿음으로 그것들을 이기고 그 생명의 길을 걷되 그 길에서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과 영혼의 안식을 얻고 또한 그 영광의 자유를 소망한다.

 

반면 원수는 사람들에게 참된 것을 주지 못하니 항상 거짓된 것을 보여주며 들려주며 사람들이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의 길을 끝까지 걷도록 돕는다. 그러므로 그 사망의 길을 걷는 자들은 이방인이든 거듭난 자든 육의 기쁨은 순간순간 얻을 수 있어도 진리가 없으니 마음은 공허하고 심판이 다가오니 영혼은 두렵다. 게다가 원수는 썩어질 육과 세상의 영광을 주었다 뺏었다 하니 사망의 길을 걷는 자들은 염려와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 마지막에는 낙원이 아닌 사망으로 들어가 영원한 고통에 처하되 영원한 부끄러움이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으로 들어가는 자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난 자들 중 적지 않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며 생명의 길을 걷기보다는 세상을 따라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은 참으로 그 가족들 가운데서 가장 어리석고 육적인 자가 다른 모든 가족들의 방향을 잡고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가족은 십자가의 피를 얻고도 거룩을 거부하고 이방인들처럼 육과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으니 이 세상에서의 꿈과 목표와 희망을 정해 그 사망의 길을 개고생하면서 지금까지 달려왔고 오늘도 달리고 있고 내일도 달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먹고 살아야지’라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되 이방인은 정작 사람은 먹고 마시며 죽음으로 점점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과 사람이 왜 사는지도 당연히 모르고 있으니 이방인들이 어리석은 것이요 아님 약속을 얻고도 이방인처럼 사는 자들이 어리석은 것이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아버지께서는 생명이 있는 흙과 물로 동물의 육과 육신의 혼을 창조하시고 오직 한 번의 삶을 주셨으나 거룩한 영은 주시지 아니하셨다. 그러므로 동물도 생각을 하며 먹고 마시고 배설하면서 한 평생 육신적인 활동을 하다 아버지께서 정하신 수명을 다하면 육과 혼이 다시금 자신이 왔던 흙과 물로 돌아가니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욕심과 교만을 품고 선악을 창조한 후 끝까지 돌이키지 못하여 셋째하늘에서 쫓겨난 원수의 말과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우주가 우주를 낳았으며 자연이 곧 하나님이요 산의 정상은 하나라도 거룩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라고 주장하며 모든 생명은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런 무질서하고 불완전하고 우연한 창조계획을 세우시지 아니하셨으니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육의 죽음을 오직 한 번으로 정하셨다.

 

한편 아버지께서는 아담도 깨끗한 육과 혼으로 지으셨으나 짐승과는 달리 그의 코를 통해 생기를 불어넣어주셨다. 즉 죄가 없이 선하게 지음을 받은 둘째사람은 혼과 더불어 거룩한 영이 있기에 인격체요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영혼은 아버지께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육체를 가진 인격체와 형체를 가진 인격체(천사)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바로 자신의 영원한 생명이다. 그리하여 중생 후 이것을 깨달은 영혼들이 자신의 썩어질 몸을 이용해 마음과 영혼의 거룩을 이루고자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진리에 순종함은 한 번 정해진 그 육의 죽음 후에 아버지께로 얻게 될 그 거룩한 몸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중에 자기의 영혼이 입고 영원히 살게 될 그 새 옷을 위해 자기의 안에 있는 영혼을 염려하며 거룩을 이루어가기보다 오히려 오늘의 의복을 염려하며 그 헌 옷을 아름답게 치장하는데 자기의 온 맘과 정성을 다한다. 또한 진주는 값없는 돌로 여겨서 버려버리고 대신 헌 옷을 가꿀 수 있는 돌을 취해 깊은 곳에다 숨겨놓는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자들은 소중한 영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짐승과 같이 여겨 한 평생 육만 돌보다 목숨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거룩을 이루시고자 사람과 같은 연약한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또한 십자가에서 그 옷을 찢어 거룩을 완성하셨으니 거듭난 자들이 약속으로 받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이제는 순례자의 그 길을 걸어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거하는 자들이 자신은 지금 나그네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 세상에 순례자로서 잠시 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는 말씀을 베푸신 후 이제는 인격체들이 이성을 가지고 더 깊이 생각하고 깨달은 후 돌에 간 마음을 돌이키도록 이런 뜻의 말씀을 허락하셨다.

 

사람들은 집안에 있다 외출할 때에 자기가 만나게 될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앞모습은 상당히 신경을 쓰며 그가 이리저리 거울을 보면서 꾸미지만 뒷모습은 예민하게 여기지 아니하며 별로 잘 꾸미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저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간단히 털거나 쓰다듬고 마친다. 하지만 사람은 앞모습만을 보고는 판단할 수 없으니 그의 뒷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썩어가는 몸만 신경 쓰고 영혼의 생명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자들은 아버지께서 그 들판에 베풀어두신 지혜로 아름답게 자라나는 백합화를 보고도 그 영광을 깨닫지 못하니 일만 악의 뿌리에서 나오는 그 썩어질 열매를 더 많이 맺고 싶어하되 두 장의 팬티를 껴입는 자와 하루에 네 끼를 먹는 자와 이 집에서 자다 일어나 새벽에 깨어 저 집으로 옮겨가 잠자는 자는 이 세상에 한 명도 없다. 또한 이 세상의 영광을 얻었다 곧 잃어버리는 자들을 보며 세상의 영광이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아도 잠시 후 잃을 것을 끝까지 좇아가다 귀한 생을 마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입히시니 거듭나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이 될 그 약속을 받은 영혼들을 더더욱 입히시지 아니하시겠는가? 그러나 들에 핀 백합화를 아무리 보아도 보지 못하고 아무리 들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은 거룩에 애쓸 수 있는 그 소중한 병기를 이용해 오히려 육과 세상을 좇아가니 인침을 받았어도 자신을 들풀처럼 여기는 자들은 거룩에 이르도록 주신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을 허비해버린다. 그리하여 오직 자기의 의복만을 염려하며 가꾸는 동안 자기의 뒷모습은 전혀 꾸미지 않는 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뒷모습만이 아니요 그가 꾸몄던 앞모습까지도 서서히 더럽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할례 받은 유대인과 거듭난 이방인에게는 공히 생명나무의 열매를 언약으로 주셨으니 선한 양심을 끝까지 간직한 영혼들은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소중한 육체를 눈에 안 보이는 자기의 뒷모습을 꾸미는 병기로 이용한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뒷모습도 점점 더 거룩해지며 인자의 재림 전까지 그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으로 완성된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하며 진리에 순종해 거룩을 이룬 자가 잠시 입고 있던 그 헌 옷을 벗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에 그 영광스런 하얀 새 옷으로 갈아 입혀주시는 것이니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가장 먼저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모든 영혼들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공평하게 꾸미시어 이 세상에 보내셨으되 그가 그 깨끗한 모습으로 나갔다가 비록 원수의 죄 세상으로 인하여 잠시 더럽혀졌다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아버지의 뜻에 두고 거룩에 애를 써 다시금 깨끗하게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고 가며 거룩함과 정결함에 애쓰는 자들은 은혜를 받은 영혼들이요 교만한 자들은 행여 육과 세상을 바라지 않을지라도 아들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며 인간의 노력과 수행으로 거룩을 이루고자 하니 은혜를 받은 자 외에는 많은 자들이 돌아갈 때는 앞모습과 뒷모습이 함께 더러워진 상태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한 아비가 일주일 동안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게 된 자식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여행가서 낯선 사람이 주는 음료수를 마시거나 쓸데없는 곳에 들르거나 물건들 잔뜩 사오지 말고 할 일을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오너라.” 그 아비는 이렇게 말하고는 여행에 꼭 필요한 만큼의 돈과 단 한 벌의 옷을 입혀서 돕는 종들을 함께 딸려 보냈다. 세 자녀들은 드디어 여행지에 도착해 이것저것을 구경하다 첫째는 아비의 말을 기억하고 아비가 챙겨준 일용할 양식을 먹고 마시며 함께 간 종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열심을 냈다. 그러므로 첫째는 자기가 이루어야 할 일을 다 마친 후에 아비를 위한 작은 선물 하나를 준비해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둘째는 그 낯선 여행지를 보더니 이곳은 너무 좋다면서 여행지에서 살고 싶어했다. 또한 어떤 남자가 준 음료수를 받아 마신 후 자기의 소중한 몸을 그에게 맡기고 신기하다며 음란한 곳을 돌아다녔다. 또한 아비가 준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여행지에서 돈 벌고 집 사고 새로운 물건들을 하나씩 둘씩 모으며 더 큰 것으로 바꾸는 기쁨을 누렸으나 점점 더 허무함에 빠져들었다. 둘째는 그렇게 자기의 옷을 위해 마음과 몸을 다했으니 나중에는 그 여행지에 쓸모 없는 것들을 잔뜩 쌓아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리석고 헛된 욕심을 이루느라 정신이 팔려서 정작 자기가 여행지에서 이루어야 할 일은 시작도 못했고 마음은 허무로 가득 찼다. 게다가 자신이 돌아갈 고향과 자기의 아비까지 마음에서 잊어버렸으니 둘째를 돕기 위해 함께 갔던 종은 아비의 뜻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둘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사랑하는 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반면 셋째는 그 낯선 곳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시작은 했으나 둘째처럼 자기의 옷에 모든 정성을 다 쏟았으니 시작한 일을 마치지 못했다.

 

이와 같이 낯선 곳에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다 곡식을 쌓아두는 사람은 없다. 만일 낯선 사람이 건네준 음료수를 마시고 그것에 취하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악한 자들에게 다 빼앗긴다. 음란한 세상을 보고 처음에는 놀랍고 신기하지만 그 음료수의 힘을 얻어 점점 더 음란을 담대하게 즐기게 된다. 또한 낯선 여행지에 잠시 일을 보러 갔다 이삿짐과 같은 많은 짐들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몇이나 있으리요? 그러므로 여행을 떠난 사람은 낯선 곳에 가서 오로지 자신이 해야 할 일만 마치고 돌이켜 고향으로 속히 돌아오는 것이 지혜요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낯선 곳을 자기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며 곡식을 쌓아두거나 많은 짐들을 구하고자 애쓴다면 그는 헛된 것에 소중한 시간을 빼앗겼으니 자기가 여행을 떠난 목적을 이루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며 그리하여 자기부모와 형제자매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혼을 주시고 한 번은 죽어야 할 육을 입히시어 이 세상에 보내셨으니 사람들이 공평하게 받은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동안 사람과 같은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며 깨닫기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니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 땅은 오로지 나그네길이요 사람은 순례자임을 기억하길 바라신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참으로 그 영혼들을 나그네로서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 아버지께서 하늘에 쌓아놓으신 그 거룩한 육체를 믿고 영광의 자유를 소망하며 그 낯선 곳에서 오직 거룩을 이루고 돌아오길 원하신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면 그가 육의 생명이 있는 동안에 육신의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있어야 하니 먹을 것과 마실 것과 누울 곳과 더불어 목숨이 붙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며 원수의 말을 듣고 원수를 따라 어두운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오직 필요한 만큼만을 육과 영에 일용할 양식으로 늘 제공하신다.

 

그러나 거듭난 자라도 이것을 믿지 못하는 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방인처럼 세상에 들어가 헌 옷만을 위해 살다 돌아가고 심지어 믿는 자라도 원수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고 원수의 말을 듣는 자들은 먹을 것을 걱정하며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요 가족의 목숨도 자신이 끊기도 한다. 그리하여 말씀은 원수를 짐승이라 칭하는 것이니 사람이 양심과 이성이 있을지라도 원수의 말을 들으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순례자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갈 이 헛된 세상으로 들어가 썩어질 것을 모으는데 마음과 몸을 다할 수밖에 없으니 그는 인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십자가의 첫사랑을 잃고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에게 어찌 아버지께서 사람이 사는 이유를 알려주시리요? 알려주셔도 오히려 스스로 거부한다.

 

한편 양심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창조자와 영원한 생명을 구하지 않는 자들이 있으니 그것은 선한 양심이 아니다. 이런 자들은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으니 예를 들어 시장에 가 이거 얼마냐고 묻지만 자신에게 안 맞으면 쉽게 뒤돌아 설 정도로 아버지께서 주시는 영생을 가볍게 여긴다. 그러므로 아무리 과학을 파도 철학을 파도 종교를 파도 사람이 사는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 게다가 양심을 말하며 오히려 독주를 마시는 자들은 교만이 하늘을 찌르니 인자의 살과 피를 거부하고 인간의 가르침과 수행으로 거룩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주가 우주를 낳았으며 자연이 하나님이라 주장하되 그들이 부르며 섬기는 아버지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가 아니요 셋째하늘에서 독주를 빚고 쫓겨난 원수요 그들이 믿는 아들은 원수와 함께 타락하고 쫓겨난 종들이요 그들이 말하는 성령은 그리스도께 받은 심판에 불만을 품고 무저갱에서 올라와 사람들에게 생각을 주며 비 진리와 세상으로 이끄는 흑암의 세력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무리 아버지 예수님 성령님을 말하며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된 존재라는 것을 알아도 거룩을 이루지 못하되 오히려 자신의 마음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따르며 원수와 함께 영원한 형벌의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거듭난 후 선한 양심을 품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아버지께서 입혀주시는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새 옷을 믿고 소망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은 잠시 걷는 나그네길이요 자신이 순례자로서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와 먹고 마시며 숨쉬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도록 썩어질 육체에 있어야 할 것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오직 필요한 만큼만 늘 제공해주시는 것도 믿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며 의를 따르는 자는 한 평생 헌 옷만을 위해 살다 떠나는 동물 같은 삶을 살지 아니하니 오히려 일만 악의 뿌리와 그 뿌리에서 맺은 썩어질 열매들을 버려 두고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거룩하고 정결한 지체들과 한 몸을 이루어 오늘도 모퉁이 돌 위에서 순례자의 그 목적을 함께 이루어가고 있다.

 

*순례자: 이 세상이라는 낯선 여행지에 육신을 입고 온 영혼이 하늘의 아버지께서 주신 인생의 목적인 거룩을 이룬 후 다시금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없는 그 거룩하고 영원한 셋째하늘로 돌아갈 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이용해 많은 자들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므로 왼쪽에다 넓은 도로를 내고 크고 작은 금과 의자를 이곳 저곳에 무질서하게 뿌려놓았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자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생명을 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오른쪽에다 나무로 좁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하얀 종이 다섯 장을 순서대로 펼쳐놓았다. 그런 후 두 갈래의 갈림길입구에 이렇게 써놓았다. “금과 의자는 육에 기쁨을 주겠으나 허무함을 이기지 못하며 저 넓은 길의 끝에서는 썩어져 없어질 것이되 하얀 종이들은 마음에 늘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주며 영원히 썩지 않겠노라. 또한 저 넓은 길의 끝에는 사망이 있으나 이 좁은 길의 끝에는 편히 쉴 수 있는 낙원이 있도다. 그러므로 자기가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왼쪽에 있으면 반드시 왼쪽 길을 오른쪽에 있으면 반드시 오른쪽 길을 걷겠노라.” 이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두 갈래의 길로 모여들었으니 첫째 사람은 그곳에 오자마자 코앞에 있는 금과 의자들 가운데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들고 그 푯말을 힐끗 보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생명보다는 생명 없는 것들이 커지는 것에 있으니 왼쪽 길을 열심히 걷되 더 큰 금과 더 높은 의자를 얻으려는 간절함과 또한 그것을 얻을 때마다 느끼는 기쁨으로 인해 첫 번째 하얀 종이를 펴보고도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종이를 구겨버렸다. 또한 그는 자신이 걷고 있는 그 넓은 길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무시했고 자신이 왜 사는지도 몰랐다. 계속해 둘째 사람도 그곳에 와서 금과 의자부터 집어 들었으나 종이를 펴보고는 잠시 기뻤다. 하지만 그는 교만한 자이니 푯말을 대충 읽고 오히려 푯말을 이용해 다른 자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되 그의 원함은 첫째 사람과 동일했다. 그러므로 그는 금과 의자를 붙들고 그 위에 종이를 얹은 후 왼쪽 길을 열심히 걸으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거짓말했다. “나는 믿는 자이니 내 몸과 혀로 범죄해도 결코 정죄함이 없고 나는 이미 마지막 종이를 받았으며 육의 기쁨이 마음의 기쁨이요 사망이 낙원이니라.” 한편 셋째 사람도 그곳에 와서 곧바로 금과 의자를 취했으나 하얀 종이를 얻은 후 기뻐했다. 또한 그 푯말을 읽은 후 금과 의자를 내려놓고 좁은 길을 만든 사람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하지만 잠시 후 마음이 변했으니 오른발은 오른쪽 길에 왼발은 왼쪽 길에 두었다. 그러므로 발걸음을 뗄 때마다 두발이 점점 벌려지더니 가랑이가 찢어지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한 손으로 종이를 잡고 두 손으로 금과 의자를 들고 위태롭게 왼쪽 길을 걸으며 언젠가 비가 내려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므로 잠시 얻었던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곧 빼앗겼으며 자신이 왜 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손에 있는 그 종이 한 장을 보고 자신은 지금 오른쪽 길을 걷고 있으며 또한 마지막 종이도 얻었다고 착각했다. 네 번째 사람도 그곳에 오자마자 당연히 눈앞에 보이는 금과 의자를 먼저 취했으나 하얀 종이를 얻은 후 나무로 길을 낸 사람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또한 그 푯말을 보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천천히 살펴보며 낙원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안 보이니 믿지 못했다. 하지만 좁은 길을 낸 주인이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보고 믿음을 선물해주니 그는 자신이 취했던 금과 의자를 배설물처럼 버리고 첫 번째 종이를 붙들고 주인이 원하는 길을 걸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길에서 나머지 종이 네 장도 순서대로 다 얻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이 원하던 것을 얻은 그는 사람이 왜 사는지를 깨달았으며 또한 힘들어도 기쁘고 즐겁게 그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길은 찾는 이가 적되 왼쪽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육체를 지으실 때 두 손을 공평하게 주시므로 누구든지 그 두 손으로 자기의 마음이 가있는 그 무거운 것을 오직 하나만 들 수 있도록 해두셨다.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두 발을 주시어 그 길이 넓든 어둡든 편하든 좁든 누구든지 자기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그 한 길만을 걸을 수 있게 하셨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자신이 원하던 영원한 사망을 거두든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든 육신은 멸하고 영혼만 구원을 얻든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육체를 얻든 한 마음과 한 인격을 가진 한 영혼이 오직 한 가지만 영원히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에게 생명을 주는 진리를 붙들든 아니면 마지막에 썩어질 물질과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붙들든 둘 중에 오직 하나만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길 수 있다. 또한 누구든지 거듭남부터 영원한 셋째하늘의 새예루살렘성전까지 나있는 그 십자가의 길을 그 길의 주인과 함께 걷든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의 길들을 공중권세를 잡은 자와 함께 걷든 역시 자신이 원하는 오직 한 길만을 택해 걸을 수 있다. 사람은 마음도 하나요 몸도 하나요 인격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영이 거듭난 후에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오직 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진리를 하나씩 깨우쳐주시며 또한 천년왕국과 그 천국의 끝에 올라갈 영원한 본향의 비밀도 알려주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왜 숨을 쉬며 사는지 또한 자신은 어제 왜 거기 있었고 오늘은 왜 여기 있으며 내일은 왜 거기에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인간의 역사에서 수많은 자들이 알고자 했어도 결코 얻지 못하되 오직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만이 진리로 그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하여 생명의 말씀을 믿고 하늘의 푯대를 소망하는 자들이 사망의 땅과 흑암에 앉아있던 곳에서 일어나 이미 세상에서 나온 자들과 함께 거룩하고 신령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거룩에 애쓰며 영광의 자유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허무함을 기쁨과 만족과 평화로 바꾸어주는 진리는 오직 본향에 계신 아버지께서 내려주시며 절망과 욕심과 두려움은 땅속에 있는 원수가 올려준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리를 붙들고 자기의 주인과 함께 그 좁은 길을 걷는 자는 마음에서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빼앗는 물질과 자신의 생명을 빼앗는 이 세상을 미워할 것이요 반대로 거듭난 자라도 그것이 없는 자는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의 믿음과 소망이 없기에 다시금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으로 들어가 오직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을 취하며 선악을 쌓게 되니 그들의 영혼은 절망과 욕심과 두려움에 감싸이고 마음은 허무하다. 그러므로 며칠 동안 여행을 떠난 자가 볼일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돌아옴이 마땅하되 악한 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여행지에서 돈을 벌며 살림을 늘이는 자들은 어리석은 영혼들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어떤 세 여자가 믿음이 부족하니 눈으로 읽은 말씀을 믿지 못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생명의 열매를 맺기에 썩지 아니하는 씨이며 마음 안에 있는 그 강한 죄를 몰아내기에 거룩한 능력이며 이 어두운 세상에서 밝고 빛난 셋째하늘의 예루살렘성전까지 인도하는 그 십자가 길을 가는 자의 발 앞에 등인 그 빛 된 말씀을 보고도 순종치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다른 자들도 자기들처럼 믿음 없이 말하며 행하는 것을 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순종치 못하는 자신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말씀을 펴서 보니 여자는 거룩한 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입을 열지 말고 집에 가서 남자에게 종용이 배우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한 몸에 있을 때 이런 저런 말을 했고 마음으로는 다른 자를 비판했고 심지어 앞에서 남자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기까지 했다. 그러니 집에 있을 때는 입을 닫고 남자에게 말씀을 배우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자기가 머리가 되어 남자를 이끌므로 빛을 따르지 않았다. 영이 거듭난 후 아버지와 아들께로 소망을 두는 거룩한 여자는 오직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거룩하게 단장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믿음 없는 그 영혼들에게 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베푸셨다. 즉 거룩한 자들이 모였을 때 입을 벌리지 않고 집에서 종용이 남편에게 배우는 한 여자를 보이셨으니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살아있는 믿음을 직접 확인했다. 이때 첫째 여자는 남편에게 순종하여 자기를 거룩하게 단장하는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을 이전엔 믿지 못했으나 이제는 믿어졌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믿음이 없었음을 깨닫고 돌이켜 말씀에 순종한 그 여자도 결국 큰 구원을 이루었다. 즉 믿음 있는 자가 비추는 빛을 보고 그 빛으로 나아가 자신도 믿음을 얻어 그 빛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여자의 눈이 성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둘째 여자는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그 거룩한 여자를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보고도 말씀을 믿지 못했다. 그러므로 말씀이 찔러주고 거룩하신 영께서 책망하셔도 남편에게 불순종하는 자신을 돌이키지 못했으니 아버지께로 믿음도 또한 빛도 얻지 못하여 결국 큰 은혜도 얻지 못했다. 즉 눈으로 보고도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 것은 그 여자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반면 셋째 여자는 자신의 입과 몸으로 늘 범죄하되 회개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은 믿는 자이니 믿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당당히 말했다. 또한 거듭남이 무엇인지 어떻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지 몰랐으나 자신은 믿는 자이니 거듭났으며 빛에 거한다고 생각했다. 즉 그 여자에겐 거룩한 믿음을 보기 원하는 눈이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믿고는 싶어도 믿음이 부족한 영혼에게는 아들의 거룩한 육체에 있는 창자국을 실제로 보여주신다. 또한 부활을 믿고 말씀과 그리스도의 계명에 순종하고 있는 자들의 그 거룩한 빛도 보여주신다. 이때 사람의 육체가운데는 귀가 들을 수 있듯 오직 눈이 볼 수 있으니 눈이 성한 자는 자신의 두 개나 되는 눈을 통해 빛에 거하는 영혼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고자 그 빛으로 향하여 한걸음씩 나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눈을 통해 온몸이 빛에 거하므로 영이 거듭난 그가 이제는 혼도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있는 눈이 어두운 자는 빛을 보지 못하며 빛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곳으로 갈 수도 없다. 하지만 거룩하신 영께서 빛을 보이시지 아니하며 빛이 있는 곳을 알려주시지 아니하며 그의 발걸음을 그곳으로 인도하시지 아니함은 보혜사로서 돕는 일을 게을리하심이 아니요 그 사람의 마음이 원치 아니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마음속에 그 죄를 붙들고 있으며 그의 마음은 이 어두운 세상에 있으니 행여 그 빛을 본다 하여도 자기 스스로 그 빛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눈이 어두운 자는 영이 거듭난 후에 자신이 거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에 혼의 거룩에 이르지 못하여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 영광의 자유에도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몸에 있는 그 눈이 성하냐 어두우냐에 따라 한 영혼의 생명이 좌우되는 것은 십자가 후로 교회시대마다 또한 마지막 때의 큰 환난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큰 환난이 다가오는 이 마지막 때의 모든 영혼들에게도 아버지께서 택하신 일곱 교회들이 비추는 그 빛을 공평하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신다. 아버지의 뜻에 마음 없는 행위와 의문의 율법에 열심인 자들의 거룩한 모양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계명을 가지고 세상 끝날까지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자들의 그 거룩한 능력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보고도 믿지 못하니 온몸이 빛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냥 빛을 비추지 못하는 자들과 함께 거하며 육의 사망이나 슬피 울며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또한 오히려 거짓된 자들과 끝까지 함께 거하며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 들어가는 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자가 빛으로 나오지 못함은 눈이 없어서가 아니요 오직 그들의 눈이 어둡기 때문이되 첫사랑을 잃고 영혼의 눈이 어두워진 것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후자가 영혼의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도 눈이 없어서가 아니요 자칭 믿는 자들과 함께 모여서 말하며 행하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으니 아예 처음부터 거듭남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자든 후자든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무슨 핑계가 있으리요?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돈을 넣으면 때로는 돈이 더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돈만 먹고 돈이 하나도 나오지 않기도 하는 기계들이 있었다. 그리고 입이 매우 큰 사람이 그 기계들이 있는 건물의 제일 앞에 서서 돈을 넣으면 돈이 나오고 문제도 해결된다고 외쳐댔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돈을 넣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자가 돈에 마음이 있으니 그 사람들의 사이에 앉아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돈을 넣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정말 돈이 많이 나올 때도 있었고 돈만 먹고 돈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나도 돈이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고 거의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가 의심을 품자 사람들 앞에 서서 돈을 넣으라고 외치던 자가 와서 그에게 와 이런 말을 해주었다. “돈이 더 많이 나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돈을 넣어야 합니다. 또한 돈을 더 많이 넣으면 돈이 더 많이 나오고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입 큰 자의 말을 듣자 그는 큰맘을 먹고 믿음을 가지고 자기에게 있는 돈을 아낌없이 많이 넣었다. 그랬더니 정말로 돈이 많이 나왔고 문제도 해결됐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도박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되 자신은 믿음이 좋다고 생각했다. 반면 은혜를 받은 자들이 은혜를 내려준 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모이는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자기의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찬양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경건의 능력이 있는 그곳에는 오직 두세 사람이 모여있었고 그곳에도 속이 깊은 통이 있었다. 그런데 은혜를 내려준 자가 어떤 가난한 두 사람에게 그 집에 있는 자들의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그들도 그곳을 찾아가 한 명은 그 깊은 통에 십 원을 넣고 다른 한 명은 하나도 넣지 못함은 그들에겐 오직 일용할 양식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은혜를 내린 자는 그들이 마음을 드리러 나온 것을 알았기에 그들이 바친 것을 참으로 귀하게 받으며 그들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것이라고 인정해주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로 헌금을 하든 말을 하든 행위를 하든 그 무엇을 하든 우선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의 마음이 썩어질 육의 욕심과 헛된 세상의 영광에 있는지 아니면 아버지께서 베푸신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있는지를 보신다. 그리하여 그가 어떠한 재물과 말과 행위를 드릴지라도 마음이 없는 것들은 다 헛된 것이요 마음이 아버지의 뜻에 있는 자의 재물은 아무리 조그만 것일지라도 그것이 아버지의 눈에는 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자들이 영이 거듭나고도 원수에게 첫사랑을 도적질 당하였으니 혼의 거룩에 이르려는 마음이 없으며 영원한 셋째하늘에 대한 소망도 다 빼앗겼다. 오히려 마음에 그 죄의 뿌리를 그대로 두고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에서 돈을 더 벌며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원하며 그저 자신과 자손의 육신이 건강하기 바라며 자신과 자식들이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서 잘되기를 바라며 의문의 율법을 열심히 행하며 거르지 않고 돈 통에 돈을 넣고 있다. 그리고는 아버지께로 마음 없는 그 희생의 똥을 향기롭게 받으시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재물을 드릴 때마다 아버지를 속이려 하되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창조하셨으니 외모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오직 사람의 마음이 깨끗한지 더러운지를 늘 살펴보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니 거룩과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에 마음이 없는 자들과 속이는 자들의 그것들은 오로지 형식일 뿐이요 아버지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가인의 제사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들의 욕심과 계획을 이루는 불법적인 것에 사용되는 것이다.

 

반면 살고자하는 마음 갈급한 마음을 가진 자는 그들의 마음이 오직 보화에 있다. 하지만 보화는 사람의 노력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로지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리 보화를 찾아도 못 찾고 찾았어도 안 보이고 안 들리되 거룩하신 영께서 아버지의 뜻과 때에 따라 그를 숨겨진 보화로 이끄시고 또한 그의 마음에 있는 눈과 귀를 열어주시어 찾은 보화를 보고 듣게 하신다. 그리하여 그가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마음을 다해 진리를 따라가 결국에는 그 십자가 길의 끝에서 자신이 받은 은혜를 산 제사로 올려드리므로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살고자하는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오직 은혜만을 붙들고 있는 자들은 그들의 마음에서 이미 육과 세상을 버렸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구약의 십일조를 온전히 이루신 것을 믿고 자신도 이미 모든 것을 드린 후 일용할 것을 받아 사용하고 있으니 재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신의 마음을 드리며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고자 애쓰고 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가진 깨끗한 한 영혼이 또 다른 깨끗한 한 영혼과 연합하여 함께 하니 그들은 비록 적은 무리일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들에게 보화를 주시며 그 십자가 길의 고난을 지나 영광까지 인도해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신이 아버지께로 받은 천년왕국과 본향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그들과 나누심은 그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따르며 자신의 한 몸 안에서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마음과 몸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마음과 몸의 가치는 가히 이르지 못하여 아버지의 눈에는 그 생명이 보석같이 귀하고 귀하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자기를 내려놓고 보물지도를 올려보며 길을 걷고 있었으니 배고프면 밥을 먹되 밥이 없어 배고파도 별다른 걱정 없이 그 길을 계속 걸었다. 그러다 두 갈래의 길이 나왔고 지도에는 오른쪽 길로 가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오른쪽 길을 따라 걸으며 마음이 기쁘고 편안했다. 곧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그 보물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요 옳은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러다 또다시 두 갈래의 길이 나와서 보물지도를 보니 어느 쪽으로 가라는 표시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지도만 들여다보며 어떤 길이 맞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밥을 먹을 때쯤 되니 독수리 한 마리가 입에다 하얀 종이를 물고 날아와 그에게 떨어뜨려주었다. 그는 무엇인가 하여 그 종이를 펴보니 거기에 오른쪽 길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오른쪽으로 가며 마음이 참으로 기쁘고 편안했다. 그런데 잠시 후 또다시 두 갈래 길이 나왔으나 이번에는 오른쪽 길로 가도 보물을 얻을 수 있고 왼쪽 길로 가도 얻을 수 있으나 둘 중에 더 좋은 길이 있다고 되어있었다. 그러나 어떤 길이 더 좋은 길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이에 그는 자신의 욕심이 아니요 오직 보물지도의 주인을 위하여 더 좋은 길을 걷고 싶었으나 지도에 나와있지 않았으니 길을 택하지 못하고 멈추어 서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지도만 들여다보며 어떤 길이 더 나은 길인지 고민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독수리가 입에다 하얀 종이를 물고 날아와 그에게 떨어뜨려주었고 그 안에는 오른쪽이 더 나은 길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더 나은 길을 가며 마음이 더 기쁘고 더 편안했다.

 

이처럼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마음으로 믿고 의를 따르는 자는 육의 필요와 욕심을 내려놓았기에 육적인 판단이 필요치 않음은 썩어질 육은 일용할 것으로 족하다고 이미 영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영적인 상황은 보이지 아니하기에 옳은 판단과 또한 더 좋은 판단이 필요하되 그 거룩의 길에서 자신이 어떤 영으로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할지 또한 어느 길로 가야 자신의 혼과 몸이 더 거룩한 성전이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거룩에 이르고자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는 그 길에서 자신의 육적인 판단이 아닌 오직 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바로 이러한 경우에 즉 영적인 상황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 금식을 할 수 있도록 해두셨다. 그리고 말씀을 의지해 아버지의 뜻에 맞는 목적으로 금식을 하는 자에게 응답을 주시니 그는 자기 영혼의 거룩한 유익을 위해 올바른 판단과 또한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것이요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순종코자 그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거룩의 믿음과 거룩한 육체의 소망에 더불어 평안함도 그 마음속에 주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 길을 가는 한 영혼이 깨끗함을 얻기 원할 때도 금식을 할 수 있도록 해두셨다. 그러므로 영의 거듭남을 얻은 자가 이제는 혼의 거듭남에 이르기 위해 그 길을 걸을 때 자신이 말씀에 따라 애써도 육의 연약함과 죄로 인하여 순종치 못하는 것이 반드시 있으니 바로 그때도 금식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금식이라는 것은 오직 거듭난 사람의 영만이 아니요 혼과 몸도 성전을 삼고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행하는 것이다.

 

이때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께서는 그 영혼이 자기자신이 원하는 뜻과 계획을 이루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거룩을 이루고자 금식하며 구하는 마음을 아시며 보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는 이기지 못하는 죄로 인하여 애통하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가 거룩에 이르도록 친히 도와주시니 결국 흉악한 죄로 묶였던 그의 결박이 풀려지므로 그의 영혼이 맑아지는 유쾌한 날이 곧 다가온다.

 

하지만 사람은 연약한 육으로 인하여 하루에 세끼를 먹어야 하니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금식의 이 두 가지 경우 외에는 금식을 안 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오직 자신과 다른 영혼의 유익과 거룩을 위하여 금식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께로부터 마음의 평안함과 영혼의 깨끗함이 이 땅에서도 주어진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셋째하늘의 본향에서는 마음의 깨끗함과 평안함이 그 거룩한 육체 안에서 기쁨과 함께 충만해져 영원토록 비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과 함께 모이되 거듭남이 없는 자들과 거듭나고도 살고자하는 마음을 버린 자들은 어리석어 오늘도 자기의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것으로 바꾼 후 자기의 마음에서 우러난 그것을 이루어간다. 그러다 그것이 잘 안되거나 막히면 금식을 한다. 심지어 육의 필요와 욕심이나 이 세상의 좋은 것을 얻기 원할 때도 한다. 그리하여 원수는 그가 밥까지 굶어가며 간절히 원하는 그것을 채워주니 그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며 육과 세상을 얻되 육은 결국 썩어질 것이요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은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간다.

 

또한 원수가 땅속의 무저갱에서 올려주는 상급은 오직 욕심으로 인한 것이니 그것은 얻을수록 사람의 마음에서 기쁨과 평안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첫사랑을 잃고 의문의 율법과 행위에 빠진 자는 열심히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도 그리하여 육과 세상의 상을 이미 얻어도 마음에는 평화를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은 기쁘다. 그리하여 거룩을 포기하고 육을 좇는 어리석은 자들이 그 썩어질 기쁨을 원할 때마다 밥을 굶게 되는 것이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어떤 의로운 왕이 자기의 백성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를 베푼 후 의롭고 정직하게 재판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비록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있어도 그 자비로운 재판관으로 인해 죽음을 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형을 면제받은 세 명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할 일이 생겼다. 즉 다른 사람들이 사형을 면제받은 그 세 명에게 죄를 범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자비를 받고 죽음을 면했음에도 그 세 명의 마음은 각기 달랐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늘 용서하다 마지막에는 자신을 죽이는 자도 용서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를 늘 용서해주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은 상대방의 죄를 용서치 않고 오히려 자기의 욕심과 교만과 옳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해쳤다. 또한 자기의 죄와 실수는 숨기되 상대방의 죄와 실수는 늘 더 크게 드러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도 그를 늘 용서해주지 않고 똑같이 했다. 반면 세 번째 사람은 아예 그 재판관의 자비를 처음부터 원치 않고 늘 두 번째 사람처럼 행했다. 또한 자기를 위해 늘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보냈으니 다른 사람들도 기회가 되면 늘 그를 죽이고자 했다. 그러다 결국 그 세 사람은 똑같이 그 재판관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공평하게 자비를 베풀었던 재판관은 첫 번째 사람의 모든 허물과 마음의 죄까지 다 용서해주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의 허물과 죄는 용서해주지 않고 빛이 전혀 없는 어두운 감옥에 보내주었다. 반면 처음부터 자비를 원치 않은 세 번째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 죄의 뿌리를 통해 생각과 몸과 혀로 허물을 맺은 만큼 영원한 형벌의 사망으로 들어가라고 심판했다.

 

이와 같이 거듭난 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에 애쓰는 영혼들은 좁고 협착한 그 생명의 길을 걸으며 모든 자들을 용서하다 마지막에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자신을 놀리고 때리는 자들도 용서한다. 또한 그 길에서 마지막 죽음의 전에 자신을 찔러 피 흘려 죽이는 자들까지 다 용서한다. 그러므로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또한 자기의 생각과 의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해 혼의 거룩을 이루고자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은 그 길에서 용서치 못할 자가 없다.

 

아버지께서는 육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선 영혼들 가운데 이런 영혼에게는 완전한 용서를 베풀어주신다. 그러므로 허물만이 아니요 마음속 죄의 사함까지 받은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와 창조자의 형제자매가 되거나 혹은 그리스도의 정결한 지체가 된다. 그리하여 영광의 자유에 이른 그가 온전케 된 의로운 셋째하늘의 백성들을 영원토록 다스리는 왕과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영이 거듭남을 얻은 후 썩어질 육의 욕심과 세상의 헛된 영광에 마음을 빼앗기므로 십자가를 통해 받은 첫사랑을 잃은 자들과 나는 거듭난 자이니 나의 마음과 생각에 죄가 있어도 죄가 없다고 거짓말하며 자신을 속인 자들과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 십자가의 거룩한 피에서 의문의 율법과 사람의 규례로 돌아선 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의와 세상을 따르느라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십자가의 자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자들의 조그만 잘못과 죄를 용서치 못하고 오히려 즉시즉시 마음과 생각으로 혹은 행위와 말로 그대로 갚아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용서할 자가 없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비를 얻고도 자비를 베풀지 않은 자들은 온전케 되는 과정으로 들어가 거룩을 이루면 셋째하늘의 의로운 백성이 되는 은혜가 있으나 한 말씀에라도 순종치 않은 자는 아버지께서도 그리스도께서도 심판대에서 그를 용서치 않으신다. 또한 자신이 먼저 용서치 않은 자들은 자신이 범한 잘못과 죄에 대해 자신도 다른 자들에게 용서를 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람에게도 아버지께도 용서받지 못한 자들이 빛이 없는 그 어두운 곳에 갇히게 되는 것은 그들은 육에 있을 때 말씀의 빛과 의롭고 거룩한 셋째하늘의 빛을 스스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말씀에 끝까지 불순종하며 어두운 세상을 따랐기에 어두운 곳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거기서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이유는 이 땅에서 주여 주여 기도하며 평생 주님을 섬긴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불평과 원망의 마음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영원히 깨닫지도 인정치도 못함은 육에 있을 때 말씀을 휴지처럼 버린 그들에게는 아버지께서 더 이상 진주를 주시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반면 살고자하는 마음을 휴지처럼 버리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거부한 자는 오늘도 자기를 위하여 자기가 앉은 자리와 가진 힘을 이용해 다른 자들을 고통과 사망으로 보내기에 빠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위해 자기와 다른 자들의 피를 흘린 그에게 사망의 심판을 그대로 내리신다. 그런데 이런 자들은 자신의 마음과 인격을 선악의 죄를 창조한 원수에게 넘겼으니 그 유황불 못에서조차 돌이키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의 죄를 다른 자들에게 떠넘기며 해치고자 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들에게 너와 다른 자들에게 범죄치 말라고 더 이상은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이제는 그들의 몸을 묶어두시니 그들은 뜨거운 고통뿐만 아니라 몸과 혀도 영원히 움직이지 못한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므로 자신의 뜻에 이른 거룩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주시어 거룩한 자녀로 삼으신다는 약속을 거듭난 모든 영혼들에게 공평하게 말씀으로 주셨으니 그것을 언약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를 약속 받은 것이니 약속을 지키는 자는 영광에 이르되 지키지 못하는 자는 권세를 잃는다. 그러나 사람은 육신의 연약함과 사단의 깊은 것으로 인하여 인간의 생각과 노력과 행위로는 거룩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거듭난 후 그리스도의 의를 마음으로 믿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며 순종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친히 이루어주시니 거룩의 약속을 지킨 그에게 아버지께서도 그 영광스런 소망의 약속을 지키신다.

 

이와 같이 모든 언약은 늘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되 약속이라는 것은 약속을 맺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자신도 지키고 상대방도 지켜야만 이루어진다. 즉 말씀의 씨를 통해 거듭난 자는 영원한 유황불 못의 형벌에서 아버지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확신으로 인해 기쁨과 감격과 눈물과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평안을 얻은 후 다른 자들에게도 십자가를 통한 거듭남을 전하되 그보다 먼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아니 목숨까지 바쳐 아버지와 아들을 섬기겠노라 서원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아버지께로 그 약속을 받아야 함이요 두 번째로 그 약속을 소망으로 바라보며 말씀에 믿음을 가지고 죽기까지 순종하면 아버지께서도 자신의 입술로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혹은 더 풍성하게 이루어주시니 약속된 권세는 오로지 말씀에 순종하는 언약의 자녀들이 얻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아버지께로 그 약속을 얻기 위해 오히려 자신이 먼저 아버지와 약속을 맺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때도 역시 자신이 아버지와 맺은 약속을 지키면 아버지께서도 그의 약속을 이루어주신다. 하지만 엄마가 이미 시간에 맞추어 밥을 차리고 있는데 뒤에서 아이가 ‘엄마 밥 차려 주세요. 엄마가 밥 차려 줄 것을 믿어요.’라는 요구에 의해 엄마가 밥을 차려주는 것이 아니요 때가 되었음을 알기에 아이의 요구와 상관없이 상을 차려주는 것이되 어리석은 자는 끝까지 자기의 요구와 믿음으로 응답을 받았다며 자신이 이방인임을 간증하고 돌아다닌다. 그러므로 거듭난 후 의를 따르고 있는 자가 아버지께로 맺는 약속은 썩어질 육의 욕심과 필요를 채우거나 헛된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요 오직 애타하며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맺는 가족과 친척과 친지와 친구들에 대한 구원의 약속을 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아버지와 그 약속을 맺는다. 그리고 자신이 약속 맺은 대로 순종할 때 원수도 자신에게 손을 벌리고 머리를 숙이는 자에게 썩어질 육의 욕심과 세상의 헛된 영광을 이루어주듯 아버지께서도 은혜를 받은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시니 약속을 지킨 그에게 그 구원의 약속을 허락하신다.

 

어떤 믿는 여자의 남편에게 거듭남이 없다. 이때 그 여자에게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먼저 자기남자의 말에 자신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 순종해야 한다. 그 후에야 그 여자는 다른 말씀에도 순종하며 아버지를 섬기되 이제는 아버지께로 이렇게 약속을 한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구원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한 줄 아옵나이다. 그러므로 저도 또한 저의 남자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그때에도 제가 감사하겠고 또한 제가 감사하겠사오니 아버지께서 저의 남자에게 그 구원의 약속을 이루어주시옵소서”

 

그런데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구원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이런 기도를 할 때 육과 세상의 권세를 잡고 있는 원수도 즉시 일하기 시작한다. 즉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기 원하는 원수는 아버지와 약속을 맺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구원 얻을 자의 모든 것을 다 줄이고 조른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 여자가 자기가 한 약속대로 그런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마음을 다해 그의 입에서 감사의 말이 나올 때에 그의 약속인 남자의 구원도 이루어주신다.

 

그러나 이방인과 거듭난 후 행위로 돌아선 자와 자기의 의를 따르는 자와 세상의 영광에 첫사랑을 빼앗긴 자의 하나님은 더 이상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요 율법과 자신과 돈과 세상이 그들의 신이다. 결국 그들은 사람이 애타하며 간절히 원하는 것은 거듭남과 거룩과 영광의 자유가 아니요 썩어질 육과 자기의 교만을 위한 세상의 헛된 영광임을 아버지께서 알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거짓된 자들은 아버지의 뜻은 내어버리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자 자신의 의와 교만을 드러내고자 사람에게 긍휼을 얻고자 어제도 외식하는 기도를 했고 오늘 새벽에도 했고 다가오는 밤중에도 할 것이다.

 

그들은 또한 자기에게 있는 것에 감사치 아니하고 무엇인가를 두고 맹세하며 이방인처럼 영생과 썩어질 것을 바꾸고 늘 그것을 구한다. 그러므로 원수도 그들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자기가 가진 것으로 자기가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찔림을 받고도 돌이키지 않는 자들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반복적으로 그런 기도를 하며 패망으로 들어간다.  결국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들어오시는 밤중에도 이 세상에 처음 들어오셨을 때처럼 이미 세상에 빠진 유대인들이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던 것처럼 오직 자기의 한 발은 세상에 다른 한 발은 주님께 담그고 있는 이방인들 중에 오직 주님께 돌이키는 자에게 생명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