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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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 중요한 것과 그것을 얻는 길
- 살고자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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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안에 어떤 지역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어떤 지역에는 사람들의 수가 적다. 예를 들어 변두리나 시골지역에는 5만 명이 넘고 경기도에는 100만 명이 넘는 시도 있으나 둘 다 동일하게 시라고 칭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당시에도 어떤 지역에는 많이 어떤 지역은 적게 살았으니 예루살렘은 지금으로 말하면 사람의 수가 가장 많은 특별시와 같았고 나사렛은 작은 시와 같았다. 그런데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구하며 늘 원수의 말을 듣고 말하며 행하는 악한 자들이 있으니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백부장이라는 위치는 사람의 수가 100명인 마을을 대표하며 책임지는 자이되 그 마을에 꼭 100명만 거하는 것이 아니요 마음의 명부에 기록된 인구수와 일치하지 않았으며 또한 어떤 백부장에게는 50명을 어떤 백부장에게는 30명을 더해주기도 하였기에 당시 백부장이 다스리는 마을의 사람 수는 대체로 100명보다 훨씬 더 많았다.
또한 그리스도 당시에는 지금의 군대조직과 달랐으니 만일 악한 이방인들이 쳐들어오면 성인의 나이인 12세 이상의 남자는 누구나 나가서 함께 싸웠으나 여자는 항상 집안에 거하며 집안일을 도왔다. 그러므로 백부장과 천부장은 행정적인 책임과 더불어 군사적인 권세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자들에게 위협과 죽임을 당할 수도 있으니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기의 주변에 늘 칼을 든 종들을 두고 다녔으며 밤에는 칼을 든 그 군사들이 밤새워 그들을 지켰다. 구체적으로 백부장과 천부장은 늘 여섯 부류의 종들을 데리고 있었으니 우선 칼을 잘 이용하는 종들과 집안의 일을 하는 종들과 집밖의 일을 하는 종들과 가정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종들과 자녀들을 가르치고 보호하는 종들과 다른 모든 종들을 관찰하는 종들을 데리고 있었다.
결국 백부장과 천부장은 그 힘으로 어떠한 두려움과 타협 없이 의롭고 공평하게 마을을 다스리며 또한 모든 백성을 아끼며 정직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야곱으로부터 12지파를 이룬 후 이집트에 있을 때에도 또한 광야에 있을 때에도 백부장과 천부장이 자기의 목숨을 바쳐 백성들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처럼 그 자리에 앉아 백성들을 위해 선하게 다스리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욕심과 자리만을 구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런 자들은 백성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고 섬기고자 함이 아니요 오로지 자신에게 있는 부유한 것을 다른 자들에게 보여주며 또한 자신이 앉은 그 자리가 합당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종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리하여 그런 마음을 품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자는 앞에서는 입술로 백성들을 위한다고 말하며 돌아다니되 뒤에서는 늘 백성들을 속이며 그 자리를 통해 자기의 유익을 얻고자 자기의 자리를 굳게 지켰으니 지금의 높은 자들과 똑같았다. 또한 사람들은 지금은 종이 없도다 라고 하며 너와 나가 동등하다라고 말하되 세상을 가만히 보아라! 아직도 그 물질이 있는 자들은 물질이 없는 자들을 늘 물질로 사서 종을 만들어 온갖 더럽고 위험한 일을 시키며 모든 물질을 쌓아놓되 자기가 부리는 자와 그 가족을 책임지기는커녕 종의 가치가 없어지면 잘라버린다.
당시 가버나움은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을 때 나온 백부장은 가버나움의 두 백부장들 가운데 한 영혼이었다. 그 영혼은 성품이 선하였으며 또한 다른 영혼들을 늘 불쌍히 여기는 자였다. 그러므로 자기의 종이라 하여도 자기의 종같이 여기지 아니하고 늘 한 가족으로 여겼으니 낮은 종들에게도 늘 공평하게 나눌 것을 나누어주었다. 또한 항상 자신만을 위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온 가족들과 또한 온 종들을 위하여 애쓰는 자였다.
하지만 그 선한 백부장의 종들 가운데 한 종이 그 병에 걸려 그 몸을 온전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병은 자신의 마음을 이미 원수에게로 빼앗겼기에 원수는 그의 두 번째 단계인 육체의 기능을 자신이 잡아 사망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번 육체에 어떠한 충격이 올 때에 흑암의 세력이 그 한 부분과 또한 다른 한 군데를 동시에 잡기에 그 병에 걸린 자들은 그 잡힌 한 부분을 이용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원수는 자기가 원할 때마다 그 부분을 이용하여 그가 끝까지 아버지께로 나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부인하게 하므로 영원한 사망으로 이끌고자 함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아들의 그 피를 의지하여 아버지께로 나와 자신의 죄와 범한 허물들을 회개하면 아버지께서는 그의 육체 안에 군데군데에 죽은 피가 머물러 다른 피를 그 육체로 퍼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그 썩은 피들을 종을 통해 거두어주신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죄들을 회개하고 돌이킨 자는 그 피가 이제는 원래처럼 온 몸을 돌게 되니 그 병에서 온전케 된다.
그런데 자식들이 만일 악한 부모를 따르며 보고 자라면 자식들도 부모처럼 악해져 서로간에 결국 원수로 변하듯 악한 지도자의 밑에는 반드시 악한 종들이 밑으로 들어가 서로 헐뜯고 끌어내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는 반대이니 그 선한 백부장의 종들 가운데서 한 영혼이 예수그리스도의 소식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 종은 그 병에 걸려 자기의 옆에 누워있는 종이 그 병에서 일어나길 원했기에 자기의 주인에게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주인은 늘 선한 마음이 있기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유대인으로써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의 앞에 나아와 속죄의 권위가 있는 그리스도의 앞에 그의 마음을 다 내어 놓았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백부장의 선한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으니 그의 마음중심을 보시고 그에게 거룩이 담긴 복된 말씀을 허락하시므로 그가 생명을 얻었으며 또한 그의 종도 육만이 아니라 영의 구원도 얻었다. 즉 병으로 인해 누워있던 종도 자기의 주인에게 거룩을 전해 들었을 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를 믿고 자신의 허물들을 돌이켰기에 영이 거듭나는 그 은혜와 육의 깨끗함도 얻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 백부장을 향하여 말씀하신 이만한 믿음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으니 첫째로는 그 영혼이 자기의 핏줄도 아닌 낮은 종을 살리고자 하는 그 선한 마음을 뜻하는 것이요 둘째로는 그가 이 세상의 다른 그 누구에게로 찾아가지 아니하고 가장 먼저 창조자에게 나와 자신과 또한 자신의 종의 영혼을 맡긴 것에 대한 마음과 믿음을 뜻하는 것이니 당신의 마음 안에는 과연 그만한 믿음이 있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 땅에는 아버지와 아들께서 거룩하신 영을 통해 세우신 은사 자들도 있으나 원수가 세운 자들이 더욱더 많이 거하고 있으니 영적인 원인을 치료받지 못하고도 오직 육신만 병상에서 일어나는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회개와 돌이킴 없이 일으킨 그 신유의 은사가 누구에게로 온 것인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리하여 불의와 죄악을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숨겨두고도 원수에 의해 그저 육신만 일어난 자들은 반드시 자기의 뜻을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하며 행하며 자신의 의로움과 높아짐을 이루어가게 되어있다. 하지만 많은 자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질병에서 일어난 모습만을 바라보고 또한 그 후에 그가 거룩과 상관없이 이루어가는 큰 일들을 보며 그가 일어난 것과 이룬 일을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하신 영의 역사로 인정하면서 따라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진흙이 떨어져나가는 병을 얻은 자가 찾아왔을 때 다른 병든 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에게도 동일하게 돌이킴을 명하셨다. 이에 그는 자신의 모든 죄들을 마음을 다해 회개하고 완전히 돌이켰기에 그 영혼을 사망으로 이끌어가던 그 죄를 용서하시어 영의 생명을 허락하셨으며 또한 그가 거룩에 애쓸 수 있도록 그의 육신도 깨끗하게 하시므로 육의 수명을 연장해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들을 찾아가 그의 치유된 몸을 보이고 아버지와 원수가 되도록 이끄는 의문의 율법과 계명이 아닌 사람을 신령하게 하는 모세의 율법과 계명에 따라 예물을 드리라고 그에게 이르셨으니 그 이유는 첫째 질병에서 해방된 그가 신령한 계명에 순종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요 둘째 성전에 거하는 제사장들에게 증거할 것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신령한 율법과 의문에 속한 율법의 차이는 이것이니 전자는 그리스도께서 모세에게 호렙산과 지성소에서 일일이 내려주신 것이요 후자는 그것을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바꾼 것이다. 깨닫기 쉬운 비유로써 어떤 왕이 두 종에게 석판을 주고 그것을 손에 들고 읽으며 그대로 행하라고 명했다. 하지만 한 종은 그것이 너무 무거워 일부를 깨서 버려버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종이에 써서 석판에 붙였으되 다른 종은 석판을 손에 들고 읽으며 그대로 행했다. 그러므로 전자가 바로 신령한 율법을 무겁게 여겨 자기의 의로 바꾸어 지킨 성전의 목자들이요 후자는 그리스도께 받은 것을 그대로 지켰던 세례요한까지의 선지자들이었으니 전자가 말씀을 힘겹게 느낀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썩어질 육의 욕심과 자신의 영광에 빼앗겼기 때문이되 후자는 여호와께 두었기에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율법에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체로 폐하신 것이 바로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되 다 이루신 것이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할 신령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다.
그리스도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제물가운데 진흙이 떨어져나가는 병에서 깨끗함을 얻은 영혼을 위해 가장 중요한 예물 두 가지는 첫째로는 양을 드리되 가장 젊고 아무런 흠이 없어야 하며 더불어 그 순한 짐승에게 아버지의 영광이 있는 양만을 드려야 하되 형편이 나은 자는 다른 한 짐승을 더 잡아 피를 흘릴 수도 있었다. 둘째로는 비둘기이되 날아다녔던 산비둘기가 아니요 어느 한 장소에서 따로 키웠던 집비둘기여야 된다.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과 같이 육신을 취하시지 아니하시는 아버지께서 짐승의 살이나 피를 좋아하시거나 기뻐하시기 때문이 아니시니 오직 죄에서 자유를 얻은 그 영혼이 그 제사제물을 통해 그 피의 의미를 마음 깊이 깨닫고 있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께서는 그가 비록 자신대신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흘리되 오로지 그 의미를 마지막 제사의 그 순간까지 자신의 마음속에 늘 기억하고 있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당시 성전에 거하던 자들에게 증거하기 원하셨던 것은 바로 아버지의 아들이셨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를 진흙으로 가리는 범죄에 빠진 영혼에게 진흙이 떨어져 나가는 병을 허락하시거나 또는 회개하고 돌이킨 영혼의 육신을 낫게 하시는 분은 오직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밖에 없음을 제사장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전에 거하며 오직 거룩한 모습의 본을 보이므로 자신과 백성들의 몸이 하나님을 위한 성전이 되게 하는 그 거룩한 일을 하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정결케 된 그 영혼으로 하여금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증거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형편에 따라 수양과 집비둘기와 또한 소까지 가지고 성전의 제사장들을 찾아가 자신의 몸을 보인 후 제사장들을 통해 아버지께로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때에 일곱 명의 제사장들 가운데 한 제사장이 그 영혼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를 알아본 제사장이 자기의 입을 열어 이리저리 돌리지 못함은 이 땅에 하나님께서 내려와 계심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두려웠기 때문이되 그는 돌이키기 보다는 오히려 슬쩍 뒤로 가서 숨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 병에서 나음을 얻은 영혼을 통해 당시 백성들을 거룩으로 인도하던 성전목자들에게 자신을 증거하라고 하시므로 제사장들이 그 영혼을 위한 속건제를 드리며 이 땅에 아버지께서 내려오셨음을 깨닫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들도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하심이요 또한 백성들에게 그것을 선포케 하므로 모든 백성들도 생명의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와 함께 거할 수 있는 그 날을 사모하게 함이셨다. 그러나 입으로는 이 땅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린다 말하되 그들의 마음은 오직 자기의 육과 높아짐에 있었다. 게다가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믿고 인정하려면 그 누구보다 먼저 영혼의 목자인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거룩은 이루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의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것이라며 이루어갔고 그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얻는 물질과 영광이 좋았으니 그것을 끝까지 돌이키지 못했기에 어리석게도 죄와 두려움을 그대로 가지고 뒤로 들어가 숨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거하는 이방인목자들과 양들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에 동일한 일을 겪을 것이니 자신이 받은 그 십자가의 첫사랑을 잊고 썩어질 육과 헛된 영광에 마음을 빼앗긴 목자들과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키지 못하여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 목자들은 늘 하나님아버지 예수님 주여 주여라고 부르고 심지어 재림과 휴거와 마라나타와 대환난을 설교하며 양들을 위로하되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그 욕심과 교만과 의를 돌이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돌이키지 못하기에 의를 따르지 못하여 거룩을 이루지 못하는 목자들과 또한 성경을 펴서 자신이 들은 설교를 말씀에 맞추어보지 않고 따르는 어리석은 양들은 대환난전에 그들의 육이 사망의 은혜를 얻는다. 하지만 세상에 환난이 임할 때 그들이 찾고 부르짖어도 아버지께서 응답하시지 아니하심은 아버지께서 약속을 어기심이 아니시요 오직 그들 스스로 육과 세상에 두고 있는 그 음란한 마음을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기에 환난 중에 큰 도움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거듭난 자들 가운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와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는 자와 말씀 앞에 자신의 의를 내려놓는 겸손한 자와 연약한 자와 첫사랑을 붙들고 거룩의 약속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세상에 환난이 임할 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얼굴을 숨기시지 아니하시고 오른손과 왼손으로 구원하시어 피난처로 이끌어 들이시니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킨 자들은 십자가아래에서 오직 거룩만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영과 혼과 육의 정결함에 이른 영혼들이 대환난전에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 신령한 몸을 입고 혼인잔치에 참여하며 대환난에서 몸의 산 제사로 영광을 돌려드린 영혼들이 거룩한 몸을 입고 144000에 참예하게 되는 것이니 거룩을 이룬 자녀들은 왕과 제사장으로써 이 땅에 내려와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린 후 그 천국의 끝에 셋째하늘로 올라가 영원토록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늘 영광 중에 거하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자는 돈을 벌기가 어떤 자는 높은 자리에 앉기가 자식 키우기가 자기이름을 내기가 금메달 따기가 공부가 어렵다 말하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니 유황불 못이나 슬피 우는 곳으로 들어가는 자에게는 자신이 범한 허물들을 십자가 피를 의지해 회개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고 영이 거듭난 자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울며 씨를 뿌린 후에는 기쁨으로 거두며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게 되고 가장 어려운 일에는 가장 큰 위로와 상급이 주어지리니 의롭고 거룩하게 변화되고자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혼이 거듭나기까지 가장 큰 고난을 받겠으나 하나님께로 난 자는 이 땅에서 범죄치 않는 기쁨을 누릴 것이요 자신의 마음에 천국이 임함은 아버지께서 그의 거룩한 몸을 성전 삼으시기 때문이요 성결의 영으로는 육신의 장막에서 나와 그리스도께 심판을 받고 아들들의 영광에 참여하며 이 땅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했을 때 또한 천국의 끝에 영원한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제사장으로써 새 예루살렘성전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얼굴을 뵙고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왕으로써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의 약속을 영원히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로 언약을 받은 12제자와 70인과 군중에게 현세와 내세에서 아버지의 크신 위로와 상급을 베푸시고자 산상수훈을 통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 협착한 길을 걸으라고 알리셨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실 때 무리가 좇았으니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곳을 좇아 다니며 더 가르치실까 하여 그들이 더 배우기 원함이었다. 그리하여 산에서 다 내려오셨을 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고자 하는 한 영혼을 만나셨으니 그는 나이가 서른 일곱일 때 그 병을 받았으며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는 마흔 셋이었으니 육 년을 그 육의 고통가운데 있었다.
그 병은 육을 썩혀 삼키는 병이니 그것은 육을 거룩에 쓰지 아니하고 오직 세상의 쾌락을 즐기며 그 육을 잘 보존하지 아니하였기에 그 육을 통해 그 병이 나오는 것이니 지금도 같은 이유로 그 병이 돋아난다. 구체적으로 그 영혼은 서른 일곱까지 세 가지의 죄를 즐기고 있었으니 첫째로는 그가 세 가족을 이루었으되 율법과 계명대로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여자를 취하는 것을 즐기므로 세 가족을 이루었다. 둘째로 사람들을 속이되 자신의 양심이 찔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살길을 찾으려 늘 거짓말을 하며 속여서 오직 자신의 욕심과 유익만 남겼다. 셋째로는 그가 오지 아니하여야 할 곳에 들어갔으나 그곳은 아버지와 아들의 상징이었던 성소였으니 그가 성소까지 들어왔으되 그 죄악을 그대로 품고 거룩한 곳으로 들어왔다. 세 번째 죄는 이것이니 이방인들의 말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표현이 있듯 그는 스스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속였으니 자기의 제사짐승을 제사장들이 속일까 걱정되어 끝까지 좇아갔으되 그가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더러운 상태로 들어갔으니 아버지께서는 결국 그 영혼을 내 팽개치셨던 것이다.
또한 아버지께로 그 병을 얻는 자는 깨끗한 십자가의 피를 진흙으로 가리는 죄를 범하는 자이니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경우로써 오늘 죄를 짓고 내일 용서를 구하며 또 그 죄 가운데 있으며 이렇게 말하는 자들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도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죄를 나에게 두셨기에 내가 범죄하는 것이요 아버지께서도 사람의 연약함을 인정하시니 이 죄는 더 이상 죄가 아니니라.” 이렇게 자신의 죄를 아버지께로 돌리되 그 죄를 오히려 의로운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과 또한 다른 영혼에게도 그 일을 행하게 하는 것이 바로 피를 가리는 죄이니 그 영혼은 서른 일곱까지 음란과 거짓말과 더러움을 품은 채로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결과로써 그 병은 살과 뼈를 썩혀서 어둠이 그를 삼키는 병이요 아버지의 가장 큰 형벌로써 받는 병이니 그것을 받은 자는 마음을 돌이키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그 영혼에게 그 병을 허락하신 것은 그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며 또한 자신의 더러운 죄들이 자신의 육체에서 한 부분 한 부분씩 떨어져나가게 하는 것을 보게 하시므로 은혜를 주시고자 함이셨다.
그 영혼이 죄에서 깨끗함을 얻은 과정은 이러했으니 그가 그리스도의 앞에 나왔을 때에 영혼은 당연히 육의 나음보다 영혼의 생명을 원하였으되 그의 생각은 죄를 돌이키지 않은 상태로 오직 자신의 몸을 온전케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를 먼저 자리에 앉히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행한 일들을 아느뇨? 안다면 그것을 돌이키어라. 그리하여 너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마음을 살피신 후에 치료를 하시겠노라.” 그러자 그는 첫째와 둘째는 돌이켰으되 마지막 것을 돌이키지 않았다. 이에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세 번째 것을 지적하시며 그의 마음에 양심을 다시 살려주셨으니 그제서야 그의 눈에서 눈물이 나고 사람들이 옆에 있든 말든 그의 입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용서를 구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그의 모습을 보시고 그를 불쌍히 여기셨으니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셨고 또한 육신도 한 순간에 깨끗하게 하셨던 것이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긴 주인이 원한다 하시니 일곱 영은 말씀에 순종해 그리스도의 피를 그 영혼에게 전하였으며 또한 이 셋째별을 둘러싼 깨끗한 물을 가지고 와서 씻어낸 것뿐이었다.
한편 은혜시대에는 이미 십자가의 피가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믿는 자를 깨끗하게 하시되 반드시 죄들의 회개가 필요하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모든 죄들을 다 자백하여야 아버지께서 그의 마음을 보시고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육신과 영혼에 자신의 깨끗한 물과 거룩한 피를 허락하신다. 이처럼 교회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내어주셨으니 죄들을 회개하고 주님께 마음을 돌이킨 자들은 깨끗한 물로 자신의 몸을 씻고 또한 깨끗한 생수를 마시고 또한 포도주로 그의 몸을 씻으며 또한 포도주를 마시면 나음을 얻으리니 치유의 자세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가 완전히 회개하고 돌이킨 후에 밤낮으로 포도주와 물로 그 육과 속을 치료하면 사람의 시간으로 5개월 6개월 7개월에 그의 몸이 이전과 같이 회복된다. 사람들의 언어로 이해하도록 그 질병의 시작과 끝을 말하면 우선 사람의 영혼이 죄로 감싸이므로 몸 안의 피 가운데 하얀 피가 생성되지 아니하니 모든 몸의 기능들이 정지되며 모든 세포들이 정지되니 그 육의 사망에 이른 것이 바로 그 병이다. 또한 심장은 빨간 피를 계속 뿜어주되 죽은 피가 그곳에 함께 있으니 모든 뼈마디와 또한 물주머니와 또한 뼈와 살에 붙어있는 큰 물주머니와 사람의 눈에 보이는 살결이 다 죽은 피로 사망에 이른 후에 그 죽은 것들이 조금씩 그 몸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가되 온 몸에 숨겨져 있는 육의 혼에 이미 사망이 이르렀기에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원을 의지하며 병원으로 달려가는 자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으니 하얀 피가 나오지 아니하는 것은 그의 육은 목숨이 붙어있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이미 죽음에 있음을 깨달아야 함이요 그리하여 먼저 그 영혼을 살려야 그에게 하얀 피로써 그의 육체도 다시 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자를 거부하고 인간의 기술을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과 또한 하얀 피가 나오지 않는 원인을 모르니 어리석게도 하얀 피가 없는 상태에서 그 죽은 세포들을 그대로 두고 다른 세포들을 만들려 하되 그들이 살린 자도 있고 살리지 못한 자도 있으나 살린 자는 죽음의 피가 그의 몸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 하얀 피도 나오지 아니하므로 그가 이제 살았다 하되 오직 시간만 조금 더 연장한 것뿐이니 그 자도 결국 곧 일년 이년 안에 사망으로 들어간다.
한편 교회시대에는 병을 고치는 은사 자들 가운데 원수가 세운 자들이 많되 아버지께서 세우신 자들도 있으니 선물의 도움을 받아 생수와 포도주를 통해 치유함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이 골방에서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 물과 피를 통해 깨끗함을 얻을 수도 있고 진리를 전하는 영혼을 통해서도 생수와 포도주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아버지께서 그의 마음을 보시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면 2천년 전과 동일한 역사가 그대로 나타나리니 일곱 영이 곧바로 순종하므로 그러한 과정과 시간을 거치지 않고 십자가의 물과 피로 즉시 깨끗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당시 그 영혼의 삶과 죄에 대해 또한 치료의 과정과 그 후의 정결한 삶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셨으니 교회시대에 자신의 거룩한 한 몸에 거할 정결한 지체들에게 주시고자 함이셨다. 하지만 유대인가운데 이 병을 가지고 있던 119명은 그 병을 치유 받은 그 영혼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다른 자들은 자신의 죄악을 자백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죄악을 품고 깨끗한 십자가의 피를 계속 진흙으로 가렸으니 자신의 죄를 알아도 돌이키지 못한 자들은 영혼과 육체의 깨끗함을 얻지 못했으되 이것은 교회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자신의 속에 선악이 거하고 있음을 깨닫는 자는 사망권세를 가진 그 죄를 돌이키되 깨달아도 돌이키지 못하는 자들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이방인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어 온전케 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깨우쳐 주시니 그들이 마음과 생각을 깨끗케 하였을 때에 백성으로 받아주신다. 그리하여 오늘날 육신이 혹은 영적으로 그 병에 걸린 자들에게 그 죄와 치유과정을 자세히 알려주심은 그들이 마지막 기회를 붙들고 돌이키길 원하심이요 지금은 한민족의 환난과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 임박한 마지막 때이니 돌이키는 자는 한 몸의 정결한 지체가 되므로 신랑을 맞이하는 은혜가 주어지되 독사의 새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만이 아니요 다른 영혼들도 돌이키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의 복음을 방해하고자 진리를 전하는 자들을 따라다니며 꼬투리를 잡다 결국 피를 흘리게 되어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왕이 포도주의 맛을 본 백성들에게 이런 글을 보여주었다. “아버지의 뜻은 제사도 아니요 전도도 아니요 선교도 아니요 봉사도 아니요 헌금도 아니요 할례 받은 자와 영이 거듭난 자가 이제는 생각과 마음도 거룩해지므로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완성하는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자의 가족과 그의 주변에 거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은혜와 진리의 빛을 비추어주시겠노라.” 그러나 사람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글이기에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에 왕은 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어떤 믿는 영혼이 자기와 생각과 인격이 다른 한 형제를 시기하고 미워하다 자기의 의로 비판한 후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으니 점점 더 강퍅해지다 나중에는 선악의 죄를 따라 저주의 말까지 내뱉었다. 그러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앞에 나가 형제를 저주한 그 입을 크게 벌려 아름답게 찬송을 부르며 기도했다. 그리고 예배가 마친 후에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그 혀로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심지어 사람들의 앞에 서서 아버지는 예배를 기뻐 받으시니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예배는 타협해서는 안되고 다른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 전도와 선교와 봉사와 헌금을 열심히 하자고 입을 열어서 가르쳤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그 더러운 자의 어떠한 말도 어떠한 행위도 받으시지 않으셨다.” 이야기를 들은 후 백성들 가운데 12명은 왕이 보여준 그 글의 뜻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때까지 자신이 말하며 행하던 모든 것을 다 멈추고 왕을 따르며 오직 거룩만을 이루어갔다. 그러나 다른 백성들은 자기의 의와 육의 욕심과 헛된 영광에 빼앗긴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으니 검은 것은 글이요 하얀 것은 종이였고 왕의 글과 말은 그들의 마음에서 끝까지 거부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버지의 뜻이라며 죽을 때까지 그것을 말하고 행했다.
이처럼 성전에 거하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짐승의 피가 죄를 속한다는 것 외에 성막에 대한 그 무엇도 깨닫지 못했으니 자신이 살아있는 짐승의 심장에서 나온 피를 받아 손에 들고 있으나 왜 들고 있는지 성소에 들어갔을 때 오른쪽의 떡과 포도주를 왼쪽의 일곱 금 촛대를 보았으나 그것들이 왜 그곳에 있는지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 앞에서 향기를 맡으면서도 왜 분향단이 그곳에 있는지 지성소로 들어갔을 때 법궤 안에 왜 그것들이 들어있는지 법궤 위에 피를 뿌렸으나 왜 뿌리는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로 때가 되면 그저 속죄제사를 위해 피만 뿌렸으니 죽은 짐승만 불쌍했다. 이렇게 거룩을 깨닫지 못한 채로 가르치며 행하는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들은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율법과 계명을 펴서 백성들에게 이르되 ‘무엇 무엇은 하지 말고 무엇 무엇은 하라.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 이것이 의로운 것이니 아버지께 합당한 의를 행하는 것이 옳도다.’라고 하며 오직 예로부터 내려오는 도덕적인 것만 가르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백성들을 거룩으로 이끌어야 했던 유대종교의 지도자들과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던 백성들은 자신이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결코 죽지 못했기에 그 율법과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은 자기들이 원하던 것을 이루기 위해 모세 이후로 자기의 생각과 의를 따라 신령한 율법 안에 더 많은 것을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키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세에게 내려주신 아버지의 신령한 율법과 계명이 아니요 오직 인간의 의로 가득한 계명의 율법과 유전이었으니 아버지와 원수 되게 하는 그것은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백성들이 거룩에 마음 없는 행위를 하며 자신이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고 있다는 뿌듯함에 빠져들었고 지키면 지킬수록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의 욕심과 영광이 이루어졌다.
결국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는 자가 이렇게 거룩을 모르거나 원치 아니하므로 자신이 먼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 언약을 가진 백성들에게 그가 과연 무엇을 전하게 되리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신 그 둘째사람의 후손들을 과연 어디로 이끌리요? 그러므로 당시 성전의 목자들은 백성들이 거룩을 이루어가도록 이끌지는 아니하고 오직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복을 얻는다 저렇게 하면 얻지 못한다고 가르치며 영을 가지고 육의 이익을 끼치므로 옆구리와 어깨로 병든 백성들을 밀고 뿔로 받아 세상으로 흩어지게 했으니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그 가르침에 따라 아버지께 나갈 때마다 늘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애통하는 영혼들을 이렇게 세상으로 내모는 것은 이 마지막 때의 이방인목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는 자들이 오직 육의 필요와 욕심과 또한 자신을 높이는데 마음을 빼앗겼으니 정작 거룩과 영원한 셋째하늘에는 마음과 믿음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어찌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성전지도자들과 동일한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 진리의 깨달음을 주시리요?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고 가르치는 자들은 십자가로 거듭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게 될 수 있는 자들이 그들의 안에 있는 죄와 싸워 이기므로 거룩에 이르러 결국 몸의 구속을 얻도록 이끌지 아니하고 단지 이렇게 하면 축복을 받고 저렇게 하면 받지 못한다고 하면서 자신과 다른 영혼들을 썩어질 것과 헛된 곳으로 이끌고 있다. 그리하여 전통과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방인들도 늘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아버지께로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의문에 속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고 거룩하게 될 수 있는 육체가 없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언약을 받은 자들이 아버지와 화평을 이루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하시고자 그들이 죄와 세상과 싸우며 거룩을 이루어가도록 오직 진리만을 전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성전의 그 가르침과는 전혀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진리의 말씀을 들었을 때 놀랐다는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가르침이었기 때문이요 또한 그들이 이전에는 그 누구에게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리를 들었을 때 모든 자들이 그 말씀을 듣고 놀라며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들과 육과 세상의 유혹가운데서도 십자가의 첫사랑을 지키고 있는 자들만이 그 안에 숨겨진 참된 진리를 늘 깨닫는다. 그러므로 당시에 놀랐던 것은 종교권력을 가지고 있던 목자들이 그랬다는 것이 아니요 군중들의 반응도 아니요 오직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헛된 세상에서 나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따르던 11제자들과 70제자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가르치심 안에 담긴 그 참된 진리를 보고 깨달았으매 놀랍다고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살고자하는 영혼들과 첫사랑을 붙들고 있는 영혼들 외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에게 생명을 주는 진리를 들어도 그곳을 떠나가되 독사의 새끼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은 오히려 진리를 전하는 자들에게 달려들어 상하다 마지막에는 잡아서 피를 흘리게 되어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므로 생명을 얻는다. 예를 들어 그가 아무리 크고 부끄러운 죄가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사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이 범한 모든 불의와 죄들을 회개하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하면 그는 말씀의 약속대로 영의 거듭남을 얻어 백성의 생명을 얻는다. 또한 영의 생명을 얻은 자가 이제는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의를 따르면 그는 말씀의 약속대로 자신의 속에 거하는 그 죄를 이기고 혼의 거듭남을 얻게 되니 영혼의 구원에 이른 그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아들과 같은 그 거룩한 몸의 구속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아니요 오직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생명을 얻는다. 그러므로 누군가 만일 그리스도의 피에 속죄의 능력이 있음을 믿었으나 정작 자신의 죄들을 회개치 않는 자들은 피의 구속을 얻지 못했으니 불순종한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도 유황불 못이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통해 피의 구속을 얻은 자들이 이제는 몸의 구속에도 이르기를 원하시되 생명은 오직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얻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영혼들이 이 땅에서 육신의 기회가 있을 동안 말씀에 순종해 혼의 거룩을 이루기 원하는 마음으로 심판대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또한 자신의 심판대에서 각 영혼들이 심판 받는 그 날 후에 온전케 되는 과정가운데서 그들이 어떠한 일들을 겪는지도 알려주신다. 즉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의 심판을 보이시므로 그들이 순종을 택하여 그 생명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순종하므로 심판대에서 비와 창수와 바람과 같은 심판의 말씀을 들었을 때 요동치 않고 그 거룩한 몸의 생명을 얻어 영광의 자유에 이르고 누가 불순종하므로 그 동일한 심판의 말씀을 듣고 요동하며 무너지는가? 또한 순종과 불순종은 과연 무엇에 달려있는가? 한가지 비유를 통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여자가 자기를 죽기까지 사랑한 남자와 혼인할 때 자기의 남자만을 순종하며 따르겠노라 인생을 사는 동안 정절을 지키겠노라 굳게 서약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에게 일용할 양식을 챙겨주며 변함없이 사랑했고 여자는 신혼기간에 자신의 서약을 잘 지켰다. 남자에 대한 사랑의 힘이 있기에 자기의 생각과 의를 내려놓고 그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하지만 1년쯤 지나자 남자에게 받은 첫사랑을 잊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남자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때로는 남자를 따르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주고 결국 몸도 주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기 보다는 자기의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죽기까지 사랑했으니 제가 당신의 말을 듣지 않고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아도 절 이해하고 받아주세요. 세상사는 게 바빠 마음에 틈이 생겨 처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지만 이 세상에 무엇을 나에게 다 준대도 당신만은 못해요. 당신은 사랑이 풍성하니 제가 이래도 사랑해주세요. 여보! 사랑해요. 전 당신을 사랑해요. 진심이에요.” 게다가 여자는 자신과 간음한 남자에게 받은 돈을 남편에게 갖다 주었다. 이에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며 나의 말과 뜻에 순종치 않는다면 사랑한다는 그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또한 당신의 마음과 몸이 다른 남자와 함께하며 얻은 돈을 나에게 사랑한다며 가져올 때 내가 그것을 받는 것이 가하오? 그러므로 당신이 나와 혼인할 때 약속한 것을 지켜야 나도 당신을 더 사랑하며 또한 당신과 더욱더 한 몸을 이룰 것이오” 남자는 이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말하고 기다려주었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다른 남자에게서 끝까지 돌이키지 못했으니 자신이 받은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인격체인 그 남자는 인격체인 그 여자를 때리거나 강제로 이끌지 않고 손을 놓아 고이 보내주었다.
이와 같이 거듭난 후에 죽음보다 강한 그 첫사랑을 잃은 영혼은 자신의 마음을 썩어질 육과 자신을 높이려는 헛된 영광에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고 자기의 의를 내려놓지 못한 자들은 오히려 자기의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것으로 바꾸어 이루어가게 되어있다. 심지어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알기에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그 길에서 반드시 ‘주여 주여’를 부르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해요’라고 눈물의 고백도 한다. 그리하여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치 못하고 있는 자들에게 어찌 사랑 위에 더 큰 사랑이 은혜 위에 더 큰 은혜가 구원 위에 더 큰 구원이 임하리요?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의를 이루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는 자는 결단코 자신의 안에 있는 죄와 싸워 이기지 못하여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거룩하시니 조그만 흠도 받지 못하시며 또한 영원한 본향인 셋째하늘에는 오직 순종하는 거룩한 자들만이 거하니 아버지와 아들께서 어찌 의롭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영혼을 받으시리요? 하지만 많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죄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있는 십자가의 피를 가지고도 혼의 거룩을 이루지 못한 상태로 즉 혈기와 교만과 미움과 판단과 정죄와 음란이 가득한 자신이 그 의롭고 거룩한 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즉 영만 거듭난 자가 육에서 나와 심판대에 서는 날 그리스도께서는 요동하며 무너진 그를 유황불 못으로 보내지 않으신다. 그것은 그의 안에 아직까지 십자가의 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피를 가지고도 혼의 거룩을 이루지 못한 그를 심판하시어 온전케 되는 과정으로 보내신다. 그리하여 그가 그곳에서 자신의 모든 생각과 의와 혈기를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면 아버지께서 그를 의로운 백성으로써 받아주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모든 자들이 그 과정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거듭남의 은혜를 받은 자들 가운데 그의 심령이 반드시 그리스도의 피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거듭남의 은혜를 거부한 이방인들과 은혜를 받고 타락한 영혼들과 욕심과 교만으로 범죄한 후 나는 믿는 자이니 결코 정죄함이 없다며 회개치 않은 자들은 그의 심령에 피가 없으니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대로 땅속에 있는 그 무저갱의 형벌로 들어간다.
또한 그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 모든 자들이 그곳에서 거룩을 이루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주장하며 그곳에서도 끝까지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는 호리라도 갚지 못했으니 결단코 그곳에서 나오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곳에서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또한 주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행했는데 내가 왜 여기에 있나?’라고 생각하며 불평불만 하게 되니 결국 그 어두운 곳에서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영혼들은 그 무너짐이 심하다.
하지만 거듭남도 없이 종교생활을 하는 자들은 이 어두운 곳을 깨닫지 못하니 누구든지 다 과정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또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으니 돈을 내면 자신의 가족이 그곳으로 간다고 믿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죄의 용서를 받고 은혜로 얻는 영의 거듭남은 그가 오직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만 얻는 것이니 죽어서 혹은 어떤 중간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죽어서도 구원의 기회가 있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의 마음은 죄를 사랑하여 놓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요 오늘은 세상을 즐기다 내일 죽어서는 좋은 곳에 가겠다는 심보다. 그러므로 이렇게 안일한 자들이 이 세상에 거하는 동안 어떻게 피로 거룩을 이룰 수 있으리요?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십자가를 통해 모든 사람의 앞에 생명과 사망을 공평하게 두신 후 각 사람에게 오직 한번의 죽음을 정하시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어떤 영혼에게는 거룩한 육체의 부활을 어떤 영혼에게는 무너짐을 어떤 영혼에게는 심한 무너짐을 어떤 영혼에게는 형벌의 사망을 내리신다. 하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차별하심이 아니시요 오직 사랑과 은혜를 대하는 각 사람의 마음과 더불어 생명의 말씀에 대한 각 인격체의 순종과 불순종으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의 첫사랑을 잊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할 때 자신과 가족과 공동체의 지체들의 영혼에 유익이 있다. 게다가 이 세상에서의 삶은 잠깐이지만 한번의 심판이 영원히 간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인자한 왕이 자기의 백성들을 위해 공평하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 게다가 보잘것없는 백성들을 크게 여겨서 한 명 한 명에게 마음을 두고 큰 상급을 준비했다. 하지만 왕은 아무에게나 상급을 주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말을 듣고 따르며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한 자에게 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니 이런 복된 백성이 되도록 너희의 뒷마당에는 한 그루의 극상품 포도나무가 심겨져 있노라. 그런데 그 나무는 5년 동안 마음을 다해 가꾸면 깨끗한 포도를 맺을 것이되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가꾸면 사람이 먹지 못할 신 포도를 내겠노라. 그러므로 5년 후에 깨끗한 열매를 맺은 자는 나에게 무슨 심판의 말을 들어도 요동치 아니함은 그의 마음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요 신 포도를 맺은 자는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으니 내게 무슨 심판의 말을 들어도 요동할 것이니라.” 왕의 말을 듣자 첫째 사람은 자신이 왕에게 받은 은혜가 큰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마음을 왕에게서 한 순간도 떼지 않았기에 깨끗한 포도가 맺힐 것을 믿고 오로지 왕의 뜻만을 이루어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5년이라는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고 그의 나무에서는 깨끗한 포도가 맺혔고 그의 옆에 있는 나무들도 좋은 열매를 맺었다. 반면 둘째 사람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일년 만에 잊었으니 그의 마음은 세상으로 빠졌다. 또한 우리 왕은 무엇이든 크고 많은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자기의 뒷마당을 점점 크게 넓히면서 그곳에 수많은 포도나무를 심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하는 이 모든 일들을 나의 왕이 다 인정해주실 것이라는 마음을 품었으나 많은 일들을 행하느라 정작 자기의 뒷마당에 있는 자기의 포도나무를 깨끗하게 가꾸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의 나무는 5년 후에 신 포도를 맺었으며 또한 그가 가꾼 다른 포도나무들도 전부다 신 포도를 냈다. 이제 5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공히 심판을 받으러 왕의 앞으로 나갔다. 이에 왕이 첫째 사람에게 심판의 말을 할 때 그는 비록 떨렸으나 왕이 무슨 말을 해도 그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고 기뻐했으니 자신의 마음이 오직 왕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왕의 말대로 순종하며 일한 만큼 받은 자신이 상급에 대해 감사하며 왕의 모든 결정을 인정했다. 반면 둘째 사람은 심판의 말을 들을 때 자신이 이룬 일이 많았기에 기대가 컸으나 왕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이리저리 요동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불순종하며 열심히 일한만큼 받은 그 심판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한 번의 죽음과 한 번의 심판을 정하셨으니 모든 사람의 영혼은 자기가 거하던 그 육신의 장막에서 벗어난 후 자기가 행한 대로 생명의 상급이나 사망의 상급을 받기 위해 둘째하늘의 낙원에 계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때 자신의 심판대 앞으로 나오는 모든 영혼들에게 비와 창수와 바람과 같은 심판의 말씀을 의롭고 정직하게 전하신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를 얻은 후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았던 생명의 말씀과 거룩한 진리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룬 영혼들은 그 심판대에서 그리스도께로 어떠한 심판의 말씀을 받더라도 요동치 않고 굳게 선다. 그것은 그들이 크고 많은 일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요 자신이 받은 그 십자가의 크신 은혜를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빼앗기지 아니하고 늘 그 첫사랑을 마음에 간직하고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의 거룩에 애썼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의 뜻에 이른 영혼은 그리스도 앞에 설 때에 자신의 믿음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알기에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말씀을 하실지라도 그의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는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의 그 말씀에 그가 자신을 비추어 그 심판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대에서 요동치 않는 영혼에게는 거룩한 육체의 상급이 주어지니 그는 다시는 무너지지 않는 그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 영광의 자유를 누리며 그리스도를 따라 성소로 들어가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을 뵈오며 영원토록 아버지를 섬기게 된다.
반대로 십자가를 통한 거룩을 믿노라 하면서도 육과 세상을 따르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일을 이루지 못하고 심판대에 서는 영혼은 그리스도께로 그 어떠한 말을 들어도 그의 마음이 요동친다. 또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는 그리스도의 심판도 받아들이지 못함은 그 심판의 말씀에 자기자신을 비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마음이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뜻에 없었음을 돌아보지는 못하고 심판대에서 오직 자기가 마음 없이 행한 것에 대해 상급을 달라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어두운 곳에 들어 간 후 나는 예수이름으로 모든 것을 행했는데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하며 불평불만 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도 말씀으로 육신의 혼의 생명을 끊지 못하고 온전케 되는 의인의 과정에서도 자기의 생각과 의를 돌이키지 못하는 그 어리석고 교만한 자들이 그 어두운 곳에서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육에 있을 때 이미 불의와 죄를 돌이키라는 거룩하신 영의 책망도 받았던 자들이요 이미 말씀도 알고 있는 자들이니 이 어두운 곳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서 돌이켜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을 이루어가기보다는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며 자신이 높아짐을 놓지 못했다. 또한 불법을 행하며 비록 내가 육과 세상을 놓지 못할지라도 내 안에 죄가 거할지라도 내가 행하는 일들을 아버지께서 다 인정해주시리라 하며 오히려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면서 나갔던 어리석은 자들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심판에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또한 자신의 행위를 비추어보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과 함께 그 과정으로 들어가지만 서서히 자신의 어리석음에서 돌이킨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 말씀에 순종하므로 마음의 깨끗함과 거룩을 이루고 그곳에서 나온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대로 온전케 된 그 영혼들이 셋째하늘에서 아버지의 의로운 백성들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영혼들이 여기에 속하는 것이 아니요 단 한 말씀에라도 순종했던 자여야 하니 오직 그의 심령이 아직까지 그리스도의 피를 붙들고 있어야 하며 그가 이 첫째하늘에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을 다해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에 애쓰되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때에 거룩하지 못한 자가 이에 속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아무리 크고 많은 일을 행했을지라도 죄인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는 그 십자가의 능력과 공로를 믿고 의지하지 못하는 자들은 모든 행위들이 다 헛된 것이니 그가 어리석은 자들과 함께 그 과정 속으로 들어가되 순종으로 혼이 온전케 되어 아버지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러한 심판의 말씀을 받을 때 요동치 아니하려면 그리고 그때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도 사람과 육과 세상에 떠밀려 요동치 아니하고 오로지 진리로 거룩을 이루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하리요? 사람은 무엇을 듣고 행하기까지는 오직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말씀을 들었을 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바로 순종으로 옮기는 자에게 거룩의 복이 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거룩을 이미 그의 마음에서 놓았거나 아니면 게을러서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니 그러한 자들은 그대로 무너지는 심판이 이른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아버지께서는 그 기쁘신 뜻과 그 착한 일을 이미 태초에 계획하셨고 아들께서는 거룩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고 거룩하신 영께서는 거듭난 자들 가운데 첫사랑을 품고 십자가로 모이는 영혼들이 거룩에 이르도록 종들을 통해 도우신다. 그러므로 한 몸의 목자도 거룩한 종들의 섬김을 받으며 자신과 지체들의 거룩만을 이루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며 행하되 거룩에 마음이 없는 목자는 자기의 뜻과 계획을 주님의 뜻과 사역이라며 열심히 이루어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불법을 행한 목자는 받지 않으시니 그가 육에서 나와 심판대에서 섰을 때 자신에게서 떠나가라고 명하신다. 그리하여 그 목자들은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되 그 한 번의 심판이 영원히 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알리신 그 어두운 곳이 어디에 있는지 또한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되 영혼의 갈급함과 거룩에 마음 없는 자들은 알려고도 아니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다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옆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안 믿는 자들은 다 영원한 유황불 못에 간다고만 깨닫고 있다. 게다가 나는 그리스도의 피가 있다며 더러운 말과 행위들을 지속하는 자들도 있으니 자신이 육을 벗은 후 들어가게 될 그 어두운 곳을 그들이 어떻게 알며 깨달으리요?
아버지께서는 그 어두운 곳을 오직 영을 이용해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며 자신을 높인 자들을 위해 준비해두셨으니 그리스도께서는 목자들이 불법에 빠지지 않도록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세히 알려주셨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깊은 것도 통달하시는 거룩하신 영께서는 불법이 성한 이 마지막 때에 불법에 빠져있는 교만한 목자들이 돌이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곳에 대해 알리신다. 그러므로 그 어두운 곳은 아버지와 아들께서 다스리시되 빛으로 다스리시지 아니하심은 그곳은 자신에 대한 원망과 주인에 대한 불만불평으로 가득 찬 곳이기에 그곳에 있는 영혼들이 스스로 말씀을 원치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곳은 완전한 어두움으로 감싸져 있으며 아버지의 나라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으나 양들을 육과 세상으로 이끈 거짓목자들이 뜨거운 형벌의 고통을 받는 유황불 못과는 다른 곳이다. 그곳이 어떤 목자를 위한 곳인지 주인과 종의 비유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어떤 두 종이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주인에게 저의 목숨을 바쳐서 오직 주인님의 일만하겠노라고 결단했다. 이에 주인은 3일만에 좋은 상급을 보여준 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일은 땅을 파고 돌을 꺼낸 후 그곳에 나무를 심고 정성스럽게 가꾸어 가지에 깨끗한 열매들을 맺는 것이니라. 그런데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 일하는 동안에는 힘들지만 마음은 늘 기쁨과 감사가 있을 것이요 반드시 일을 다 마친 후에야 땀 흘린 만큼 상급을 줄 것이니라. 반대로 너희가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반드시 일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을 것이되 마음에서 나오는 불평과 불만이 입술에서 끝까지 떠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런데 첫째 종은 일하는 동안 당장 얻는 영광이 좋아 보였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고 깨끗한 열매와 상관없는 일에 열심을 내며 다른 곳에 가지도 않고 늘 한 곳에서 그 일을 했으니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일을 이루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이룬 일의 시작과 과정과 결과를 보며 그를 높여주었고 그 종은 많은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으며 흐뭇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자기 뜻대로 안되거나 어렵고 힘들 때마다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았다. 또한 사람들의 앞에서도 불평불만하며 자신이 주님의 일을 하고 있으니 동참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이내 기뻐졌다. 반면 둘째 종도 주인이 상급을 준다는 것은 믿었으나 상급은 모르고 오직 마음을 다하여 자기의 주인만을 섬기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종도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다른 곳에 가지도 않고 늘 한 곳에서 깨끗한 열매를 위해 일했으니 점점 주인의 일이 이루어져갔다. 그리고 그는 주인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기뻐하되 열매들이 깨끗해질수록 겸손해졌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속에 거하는 기쁨과 겸손은 그가 마음을 다하여 오직 주인만 섬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충성스런 그 종을 높여주거나 돕기는커녕 오히려 미워하며 핍박했다. 하지만 그의 입술에서는 그 어떤 불평과 불만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미움과 핍박을 받을수록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다 결국 주인이 원하던 일이 다 이루어졌을 때 주인은 그에게 3일만에 더 큰 일과 다른 종들도 맡기고 자신의 가까이에 두었다. 마찬가지로 첫째 종에게도 그가 행한 일에 대한 상급을 주었으니 그 종은 자신이 일하면서 입술로 불평과 불만을 낸 만큼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은 만큼 주인으로부터 멀리 갔다. 하지만 거기서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끝까지 불평과 불만을 내뱉었다.
이처럼 종으로서 만약 주인이신 아버지와 아들의 상급만을 바라보고 일하는 목자는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다해 열심히 일하되 거룩을 모르기에 자기의 뜻과 목회철학과 선교비전이 아버지의 뜻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이라는 생각을 붙든다. 이때 원수는 자신처럼 교만한 목자에게 자기의 종들을 붙여주고 자신이 처음부터 살인할 때 품었던 불평과 불만으로 그의 마음을 이끄니 그는 거룩과 상관없는 많은 일들을 이루어가지만 그의 입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나오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입이 내는 불평과 불만을 자신의 귀로 들을 때에는 자신이 불법을 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불평불만가운데서 평생 자기의 일을 행하고 받는 상급이 바로 그 어두운 곳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인격체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한 그 마음이 끝까지 간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긴다며 아버지의 뜻에 마음이 없는 목자는 이 세상에서 불평불만을 내다 마지막 날 그의 영혼이 육을 벗어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도 내뱉는다. 그러나 재판장께서는 그들의 불평불만을 들으실 때에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은 이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마음 없이 일하는 것은 그가 일하지 못한 자보다 더 낮게 보시는 도다. 또한 마음이 없는 것은 거룩하지 못하니 내가 어찌 받을 수 있겠느뇨?” 그리고 나서 아버지의 뜻에 마음이 없이 일한 만큼 자신이 높아지는 것을 기뻐한 만큼 심판하시어 어두운 곳으로 쫓아내신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도 돌이키지 아니하고 나는 세상에서 열심히 주님의 일을 했는데 왜 내가 여기에 있느냐며 불평불만하되 그것이 영원히 간다.
반면 상급을 모르고 마음을 다하여 주인을 섬기는 종은 자기 주인의 마음과 뜻을 알기에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푸른 초장에 모인 지체들에게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어간다. 이에 아버지와 아들께서도 그 종의 마음을 아시니 그가 행한 일의 두 배 세 배 네 배 다섯 배의 상급을 그가 육신을 벗었을 때 허락하신다. 또한 그에게 더 큰 일과 많은 백성들을 맡기시며 마지막에는 다른 종들까지 다스리게 하신다. 하지만 높아지는 종은 높아질수록 겸손하니 그것은 그가 주인의 영광을 빼앗지 아니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해 오직 자기의 주인만을 섬기기 때문이다.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양은 어리석고 단순하여 자기를 이끌며 풀을 먹여주는 자만 따라다니는 습성이 있는데 그런 양들을 이끌고 다니는 자를 목동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목동이 치고 있는 양들은 자기의 것이 아니니 자기의 큰형이 맡겨준 양들이고 큰형의 양들은 자기아비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양으로 볼 때 사람의 영혼을 인도하는 일을 하는 자가 바로 목자이니 영혼의 목자는 양들을 자신의 생각이나 의로 인도하거나 혹은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도록 이용하거나 혹은 썩어질 육과 헛된 영광을 취하도록 세상으로 내몰지 아니하고 오직 그들의 목자인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그 영혼들을 십자가아래에서 생명의 말씀과 거룩한 진리로 먹여 그들이 거룩에 이르도록 이끄는 자이다.
하지만 어리석고 단순한 자들은 누가 목자인지를 모르니 자기가 이전부터 보고 겪어온 것과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이런 사람이 목자요 이런 사람은 목자가 아니라고 정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머리에 손이 얹어진 목사만 목자로 보고 어떤 사람은 초대교회를 보며 선교사와 장로와 감독과 집사도 목자로 여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보시는 목자의 기준은 그가 안수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아니요 그가 오직 아버지와 아들께 자신의 생명을 다 바쳐 사명을 다하겠노라고 마음에 결단한 자들로부터 양들의 가장 앞서서 나가며 가르치고 이끄는 모든 자들은 아버지께서 그들을 다 목자로 인정해주신다.
아버지께서는 이 땅에 잠시 거하는 동안 영혼들을 인도하며 목자의 일을 감당한 자에게는 영원한 셋째하늘에다 그리스도안에서 얻게 될 영광을 약속해주셨다. 하지만 모든 목자들이 다 그 영광을 얻는 것이 아니니 자신이 목사요 선교사요 장로요 감독이요 집사라고 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요 목자의 일을 하는 자가 자신의 목자를 보고 따르며 오직 그 목자가 말하고 행한 대로 맡은 영혼들을 이끌었을 때 허락하신다. 그러나 만일 자신을 목자라 하되 자신의 목자가 했던 대로 양들을 이끌지 아니하는 자는 오히려 양들보다 더욱더 엄한 기준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목자를 따르지 않은 목자들은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거나 혹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에 처하거나 혹은 원수와 함께 유황불 못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목자들의 목자장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아버지께서 주신 영혼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양들이 오직 거룩에 이르도록 선지자의 직분과 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셨다. 즉 자신을 따르는 영혼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말과 뜻과 계획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선포하셨으며 자신의 의와 혈기가 아니요 오직 생명의 말씀과 거룩한 진리로 다스리셨으며 공생애 끝에 늑대가 왔을 때 도망치지 아니하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아버지께로 드리므로 자신에게 주신 영혼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다 아버지의 것이 되게 하셨다.
결국 목자장께서 보이신 그 목양의 본으로 인해 제자들도 그 어떤 다른 말이나 다른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신의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선지자의 직분과 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만을 감당할 수 있었다. 일곱교회시대의 일곱교회의 목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참된 목자는 늘 거룩에 애쓰며 자신을 따르는 영혼들도 오직 거룩으로 이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룬 목자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인자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 천년왕국에서 선지자처럼 백성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왕처럼 만국을 다스리며 대제사장을 따라 성소로 들어가 제사장으로서 아버지를 섬기므로 그 영광의 약속을 이룬다. 또한 천국의 끝에 셋째하늘로 올라가서도 영광을 받은 자가 영원토록 아버지와 아들의 가까이에 거하며 영광의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육과 세상의 씨를 받은 목자들은 썩어질 육의 욕심에 더하여 거룩이 아닌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이 그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위해 앞에 서서 자신의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뜻이라며 자신이 원하는 말을 선포하고 자신을 따르는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의가 아닌 자신의 의와 생각으로 다스린다. 그러다 마지막에 아버지께로 산 제사를 드릴 때가 되면 늑대가 준비한 그 단두대를 보고 두려워 오히려 그 자리를 피해서 도망간다.
하지만 이런 목자가 심판의 날에 어찌 아버지께로 선지자의 직분과 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했다는 인정을 받으리요? 어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왕과 제사장으로 다스리는 그 영광스런 상급과 영원한 부끄러움에 처하는 것과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과 영원한 고통이 있는 유황불 못의 형벌로 들어가는 심판을 오직 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고 정직하게 내리신다. 그리하여 그 날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마지막 날에 그의 영혼이 그의 육체에서 나왔을 때를 뜻하니 그 날이 바로 그 영혼이 그리스도께로 상급의 심판이나 사망의 심판을 받는 날이요 선지자의 역할을 한 자들은 오직 목자의 일을 한 모든 자들을 뜻하니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이러히 행한다.
목자의 일을 한 영혼들이 그의 육을 벗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 그 심판대에서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많은 영혼들을 모아 말씀으로 양육을 했고 또한 그들이 나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도 다른 영혼들을 불러 들였도다.’라고 자랑하는 자가 있다. 한편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영들을 쫓아내므로 악한 것에 묶인 자가 놓임을 받았으니 나의 상급을 달라고 요청하는 자도 있다. 또한 어떤 영혼은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리스도만을 외쳐 그 지역과 그 나라와 그 백성들을 구하였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로지 그들에게 묻는 말씀이 있으시니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너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느뇨?” 이때 그들은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행한 것에 대한 상급만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도 아들도 거룩에 마음 없는 행위와 열심은 얼굴을 가리우시고 기억하시지도 아니하시니 마음 없는 일들은 다 헛된 것이요 상급도 헛되니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상급을 주시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이 심히 분하여 그 자리에서 분쟁하되 재판장은 다투거나 들레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결국 자신이 스스로 마음 없이 행한 모든 일들에 대하여 자신을 원망하며 후회한다.
이처럼 목자의 일을 한 자들은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권능도 행하고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는 능력을 베풀었으되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의 잘잘못이나 그것이 원수에게 온 영과 거짓 은사였음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그가 마음을 다하여 그 일들을 열심히 행하였으되 그 일들을 행하는 그의 마음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아시고 보시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목회한 그들이 그 심판대에서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끝까지 말하지 아니함은 썩어질 육의 필요와 욕심과 또한 세상의 헛된 영광과 또한 자신이 높아지는 기쁨으로 그 일을 행했음을 이미 그리스도께서 아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년왕국에 다 들어가는 게 아니라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말씀하셨고 바울형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전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말씀을 빼거나 더하거나 바꾸는 자에게 임하는 심판을 아는 자이니 자신의 뜻과 계획이 아닌 오직 거룩하신 영을 통해 받은 그리스도의 계시만을 전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뜻과 말을 행하거나 전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뜻과 말씀만을 행하시고 전하셨듯이 거룩하신 영께서도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과 하신 말씀만을 증거하시니 오직 아버지의 그 기쁘신 뜻과 선하신 계획만이 이루어져간다. 그러므로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하나의 영을 서로 다르게 증거하실 수 없으시다.
이로 보건대 그리스도의 말씀도 맞고 거룩하신 영의 증거도 맞으려면 천년왕국과 구원을 같은 것으로 볼 경우 주여 주여 하는 것과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부르는 것이어야 하고 만일 동일한 부름을 뜻한다면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과 구원 얻는 것이 다른 것이어야만 한다. 즉 이 말씀들의 의미를 깨달으려면 주여 주여 라고 부르는 자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각각 누구이며 또한 어떤 상황에서 부르게 되는지 알아야 한다. 더불어 누가 천년왕국에 참여하고 누가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얻게 되며 그 구원이 어떤 구원인지도 알아야 한다.
우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와 아들을 이미 알고 있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말씀이다. 예를 들어 난지 팔일 만에 육의 할례를 받은 유대인과 십자가 이후에 영이 거듭난 이방인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할례의 양피와 십자가의 피로 주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영혼들 가운데 거룩을 좇지도 않고 행치도 않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주님을 안다며 거룩을 원하지 않는 그런 유대인과 이방인은 받으시지 못하신다. 저를 아노라 하고 신령한 율법과 새 계명을 지키지 않는 그 불순종하는 자들을 주님께서 어떻게 받으시리요?
반면 거룩하신 영께서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신 구원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영의 구원이니 누구든지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고 살다 속죄의 능력이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자신의 허물들을 다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면 그의 영이 거듭남의 은혜를 얻는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를 통해 주님과 관계가 있는 그는 이제 비로소 아버지와 아들을 알게 된 자이다. 둘째 믿음의 결국인 영혼의 구원이니 누구든지 주님을 아는 자들 가운데 오직 그리스도만이 의로우심을 믿고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을 행하겠노라 결단하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영께서는 이렇게 육의 할례와 영의 거듭남 후에 회심한 자를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여 혼이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은혜에 이르게 하시고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 거룩한 영혼에게 부활의 영광을 베푸신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을 알아도 순종치 않는 인격체는 주님께서 그 영혼을 받으시지 아니하신다.
이처럼 바울이 말한 거듭난 자와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는 둘 다 주님을 알고 있으니 공히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러나 거듭난 자가 만일 자신의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고 썩어질 육을 위해 계속 이 세상을 따르느라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면 그는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거룩을 이룰 수 있는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는다고 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처음에 세상에 있다 거듭날 때 주의 이름을 믿고 불렀으며 또한 비록 자신의 생각과 세상을 따르고는 있지만 늘 주여 주여 하면서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그의 부름은 거룩에 이르고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그 부름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주여 주여 하는 자는 바울이 전한바 십자가의 길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아니요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면서 그 이름을 부르는 자이니 주님을 안다며 거룩을 행치 않는 자가 바로 주여 주여 하는 자이다. 이런 영혼이 과연 아버지와 아들께로 나오신 거룩하신 영께 어떠한 말씀의 판단을 받겠는가? 그가 만일 첫사랑을 버리고 끝까지 자신의 생각과 헛된 세상을 따라 이방인처럼 살면 그의 안에 있는 선악의 죄가 점점 더 심해지리니 그는 결국 유황불 못이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에 처하므로 아버지의 백성에도 이르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만일 오늘 그 영혼이 그의 육을 벗어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섰을 때 아직 그의 심령 안에 그리스도의 피 하나만이라도 간직하고 있으면 그는 온전케 되는 과정을 겪은 후 오직 의인의 영으로서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백성으로서 아버지의 나라에 거한다 할지라도 원통한 것은 육에 있을 때 거룩을 행하지 않았기에 그의 영혼과 마음은 이 땅에서도 불행하고 또한 영원한 셋째하늘에서도 자녀 됨의 참된 복과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그 복은 얻지 못한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는 육의 할례를 받은 유대인과 영이 거듭난 이방인 가운데 누가 거룩을 행하므로 마음의 할례와 혼의 거듭남에 이르는 큰 구원을 베푸시는가?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지으시고 그 양심 안에 영혼을 불어넣어주셨으니 누구든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알고 따르는 마음만 있으면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인격체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따르고 순종하며 그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다. 아무리 힘든 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의 피를 통해 공평한 사랑을 받은 자들 가운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을 행하기 원하는 자는 불의한 자신이나 죄악된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십자가로 영생의 은혜를 베푸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는 생명의 말씀과 거룩한 진리에 순종한다. 그리하여 말씀의 순종으로 거룩을 이룬 그가 그 거룩한 육체를 얻어 아들과 아버지께 가까이 나가 그리스도께로는 형제요 또한 그의 신령한 몸이요 아버지께로는 거룩한 자녀들이 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영혼은 이 땅에서도 너와 네 집이 질서 안에서 웃음과 기쁨과 사랑과 평화와 행복이 떠날 날이 없다.
게다가 아버지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없는 영원무궁한 셋째하늘로 자녀들과 백성들을 부르시기 전에 이 땅에 이루시는 그 천년왕국을 십자가 이전의 남은 자들과 이후의 이기는 자들이 이 땅에서 죽임을 당하며 흘렸던 그 피를 신원하시고자 계획해두셨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에 들어가 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될 왕과 제사장으로서 땅과 백성을 얻어 다스리는 것은 주여 주여 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위해 이 땅에서 원수에게 조롱당하며 핍박을 받다 마지막에 거룩을 위해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은 자들에게 갚아주시는 아버지의 영광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 끝없이 열매를 맺는 두 그루의 사과나무가 서있었다. 그런데 한 나무는 뿌리가 좋으니 나무도 좋고 가지에 달린 열매들도 깨끗했으나 가지가 하늘로 높이 솟아있기에 높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만 열매를 딸 수 있었다. 반면 옆에 있는 나무는 뿌리가 나쁘니 나무도 나쁘고 열매도 더럽고 벌레가 우글거렸으나 가지가 땅으로 처져있어 아주 쉽게 딸 수 있었다. 어느 날 말을 참 재미있게 잘하는 한 여자가 길을 걷다 곧장 썩은 사과를 땄고 곧이곧대로 말하는 한 남자는 사과재배법이란 책을 펴서 비교한 후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힘들게 열매를 땄다. 잠시 후 여자는 이것은 맛있는 사과라며 길을 걷던 일곱 사람에게 건넸다. 그러자 일곱 명은 사과재배법 책을 펴서 맞추어본 후 그 사과가 썩은 것임을 알고 안 먹겠다며 거절하고는 대신 남자를 찾아가 그의 사과와 책을 비교한 후 얻어먹었다. 이에 여자는 자신의 사과를 누구에게 줄까 고민하다 세 사람이 눈을 감고 땅에 가만히 드러누워 입만 벌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가서 이 사과는 맛있다면서 그들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사과가 참 맛있고 고기 맛도 난다며 기쁘게 받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명 가운데 첫째 사람이 눈을 뜨고 책을 펴서 비교해보니 자신이 먹던 사과의 반은 썩고 반은 벌레가 꾸물거리는 것을 깨닫고 남자에게 가 그의 사과를 책과 비교한 후 얻어먹었다. 반면 둘째 사람도 눈을 떴을 때 나쁜 사과임을 알았으나 나의 입에다 사과를 넣어주는 저 사람은 참되니 썩은 사과도 나에게는 상관없다며 책과 비교하지 않고 눈감고 계속 받아먹었다. 한편 셋째 사람도 눈을 뜨고 나쁜 사과임을 확인한 후 더 이상 받아먹지는 않았으나 남자에게도 가지 않고 사다리를 오르는 것도 원치 않았으니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여자의 소문이 방방곡곡에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앞에 모여들어 눈을 감고 땅에 가만히 드러누워 입을 벌렸다. 그러므로 여자는 큰 돈과 명예를 얻었으며 또한 말을 재미있게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나쁜 사과를 먹인 여자와 그것을 받아먹은 자들은 결국 전부다 병에 걸려 죽었다.
백의민족에 감나무 밑에 누워 홍시가 입 안에 떨어지길 바란다는 말이 있으니 그것은 게으른 자들을 향한 말이다. 하지만 죄는 육신에 한 순간 기쁨을 준다. 그러므로 사람이 한두 번 범죄했을 때 돌이키지 아니하면 세 번째부터는 무감각해지고 오히려 담대해진다. 사람의 욕심이 끝없고 불평불만이 한없고 자신을 계속적으로 높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들은 다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원수의 성품들이니 원수는 자신의 인격을 던져보고 실행하는 자들을 자신에게로 이끈다.
예를 들어 원수와 마음을 합한 자들은 게으름으로 인해 육의 풍성함과 세상의 영광은 얻지만 잠시 후에는 그 게으름이 그들을 사망으로 데려간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으러 나오는 자들 가운데 게으른 자들은 거짓목자가 그들에게 이것이 진리라고 하며 전해주면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생명의 말씀인지 아니면 육과 세상에 속한 말인지를 구별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말씀을 펴서 들여다보며 거룩하신 영께로 도움을 구하지 아니한다. 그저 눈을 감고 입을 벌리고 땅에 드러누워 홍시가 떨어지길 기다리듯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이 은혜롭다며 날름날름 받아먹고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난독증이라는 병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요 게을러서 생기는 병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육과 세상으로 이끄는 설교를 받아먹는 동안 그것이 썩은 것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눈과 귀를 열고 그 썩은 것들을 분명히 보고 듣는다. 또한 영을 전하는 자들이 뒤로는 돈과 땅을 끝없이 챙기며 자신을 계속해서 높이고 늘 음행을 탐하는 모습을 보며 교회가 이래서야 되느냐고 말하되 심지어 이방인을 통해서도 듣는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목자는 참되니 썩은 것도 나에게는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오직 그 거짓된 자들을 하나님의 참된 종으로 믿고 더욱더 따른다. 자신의 마음이 이미 영과 셋째하늘을 버리고 육과 세상을 구하고 있으니 어찌 거짓된 자들과 그들이 전하는 말을 의심하리요?
결국 거듭남도 없이 처음부터 이세벨의 말을 듣고 따른 양들은 오로지 육의 것과 세상의 것만을 취하니 그들에겐 썩어질 헛된 열매들이 있다. 반면 의와 거룩의 열매는 맺지 못함은 그녀의 말은 사람을 씻어서 의롭고 거룩하게 하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를 따라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로 불의와 선악의 열매를 맺고 있는 그들을 어찌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수 있으리요? 그리하여 거짓선지자만 원수를 따라 유황불 못의 가운데로 들어가지 않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목자들과 양들도 그리스도의 양들이 아니기에 그 불에 함께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목자는 자신의 혼도 결국 거룩하게 된다는 믿음이 있으니 구약시대에도 교회시대에도 이 마지막 때에도 자신의 생각과 이 세상에서 돌이켜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른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적은 무리에게 자신이 아버지께로 받은 거룩한 진리를 허락하신다. 이때 참된 목자는 자신이 먼저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진리에 순종하여 의와 거룩에 이르고 또한 주님께서 맡겨주신 그리스도의 양들에게도 오직 거룩한 진리만을 먹인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던 목자들이 대환난에서 목숨을 버린 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되며 영과 혼과 육으로 정결한 열매를 맺던 양들이 환난 전에 들림을 받아 그리스도의 신령한 신부가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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