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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하얀 종이를 보면 하얀색으로 보이지만 만일 빨간색안경을 끼고 보면 빨간색으로 파란색을 끼면 파랗게 보인다. 하지만 그가 빨간색과 파란색이라고 주장해도 그 종이는 변함없이 하얀색이되 부끄러움을 모른다. 또한 색안경을 끼거나 벗는 것과 어떤 색을 택할까 하는 결정은 누가 시켜서 따르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나 인격체는 그 안경을 벗지 않으면 인생을 사는 동안에 잘못된 것을 옳은 것으로 알고 따르게 되고 반대의 경우엔 반대다. 그리하여 자신의 생각을 따르므로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영혼은 인생에서 생명 없는 곳으로 끌려 다니며 생명 없는 일을 하다 마지막에는 사망으로 들어가되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빛을 본 자는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그리스도를 따르며 선한 일을 하다 결국에는 생명의 부활에 이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구원의 시작인 거듭남을 자기가 원하는 색안경을 끼고 보니 교회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목사나 선교사의 일을 한다고 하여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다고 하나님을 만나 회개하거나 자신의 모든 재산을 헌신했다고 병에서 나았다고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고 천국이나 지옥을 보았다고 전엔 무신론자였지만 지금은 창조자를 믿는 다고 귀신의 정체를 안다고 죽음까지 갔다 살았다고 사람이 죽은 후 심판이 있음을 안다고 교회개혁을 외친다고 모태신앙이라고 전도와 봉사를 많이 한다고 주여 주여를 부르며 기도한다고 신랑의 재림과 휴거를 준비한다고 방언과 예언을 한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어리석은 자는 무엇을 왜 믿는지도 모르고 믿음으로 간다고 주장하며 교만한 자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도 모르고 행함도 있어야 함을 주장하고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자는 자신이 범한 허물들을 피를 믿고 회개했으되 늘 자신의 생각을 따르므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십자가의 피를 믿고 그 믿음으로 자신의 죄들을 다 회개하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아들을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이 세 가지를 마음을 다해 다 마쳐야만 비로소 영의 거듭남을 얻고 또한 거룩하신 영의 인도하심에 순종해 그리스도를 따라 거룩의 길을 걸어 혼의 거룩함에 이른 자가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 자녀의 약속을 얻는다.
사람들은 이렇게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색깔의 안경을 골라서 끼고 그 기준으로 본다. 또한 자신과 같은 색을 끼고 있는 사람을 따라간다. 그러나 사람이 중생하지 못하면 거룩의 길을 걸을 수 없고 그리하여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으므로 누구라도 만일 자신이 골라 낀 안경을 벗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죄로 인해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는 것이니 사람을 사망으로 이끄는 것은 곧 죄다. 그러므로 색안경을 통해 거듭남과 중생 후의 온전한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여 각 사람을 사망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요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이되 그 죄가 골라준 안경을 끼는 자는 바로 자신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시인한다는 이 말씀도 사람들이 갖가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말씀들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중생할 때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을 시인하는 것으로 보고 어떤 이는 전도하러 다니는 것을 어떤 이는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을 어떤 이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거나 나타내는 것을 어떤 이는 자기가 하는 일이 잘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것을 시인으로 본다. 그러나 시인은 죽음을 맞이할 때 그리스도께 대한 자신의 충성스런 마음과 확실한 믿음을 보이므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니 그런 것들과는 다른 것이다.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시인하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입이 큰 사람과 눈이 큰 사람이 동일한 성경을 보니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살면 산다고 되어있었다. 또한 육의 영은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세상으로 이끌되 생명의 영은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감동을 준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다 그들은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어려움에 처했으니 생명의 영은 십자가의 피를 믿고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면 생명이 있을 것이라는 감동을 육신의 영은 예수를 믿으면 병도 낫고 부자가 된다는 감동을 주었다. 이에 눈이 큰 자는 후자의 감동을 버리고 전자를 따랐으나 입 큰 자는 반대로 행했다. 잠시 후 그들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목자를 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갔으니 아들의 영은 이 길은 십자가의 길이니 마지막에 네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육의 영은 사람을 많이 모으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감동을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눈 큰 자는 전자의 감동을 입 큰 자는 후자를 따라갔다. 그들이 이제 개척을 시작하자 진리의 영은 사람과 세상에 타협하지 않는 의롭고 거룩한 교회를 세우려면 너의 가정에서부터 땀을 흘리되 일용할 양식은 아버지께서 합당한 자를 통해 주신다는 감동을 육의 영은 먹고 살아야 하니 후원자와 또한 지금 있는 교회에서 널 따르는 사람들을 알아보라는 감동을 주자 그들은 각자가 원하는 감동을 따랐다. 그들은 또한 부흥을 원했으되 거룩하신 영은 사람의 수가 많아도 그 안에 거룩함이 없으면 아버지께서 거하시지 아니하시니 그 무엇보다 먼저 아버지의 뜻에 애쓰라는 감동을 육의 영은 부흥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 설교 전도하고 각종세미나와 집회에 다니라는 생각을 주었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감동을 따라 세월을 아끼다 어느덧 그 마지막 때가 되었으니 정결한 영은 신부로서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피난처에서 더욱더 거룩함에 애쓰라는 감동을 육의 영은 헌금이 줄면 어떻게 교회가 유지되느냐며 교인들이 세상에 들어가 각자 맡은 일을 끝까지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감동을 주었다. 그러다 마지막 전쟁 후에 666이 나오자 주의 영은 그것을 받으면 영원한 사망이니 너는 끝까지 복음을 전한 후 목숨 바칠 준비를 하라는 감동을 육의 영은 그것을 네 몸에 넣지 않고서야 어찌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다 결국 그들은 칼 앞에 섰으니 생명의 영은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라는 감동을 육의 영은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는 감동을 주었다. 이에 눈이 큰 목자는 평소처럼 보혜사의 감동에 따라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죽었으나 입 큰 목자는 아직은 내가 죽을 때가 아니라며 끝까지 사망의 영이 주는 감동을 따라 몇 년을 더 살다 영원히 죽었다.
이처럼 시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허락하신 말씀이니 이 말씀은 양들을 오직 진리로만 이끌다 마지막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바칠 택함 받은 교회의 목자들을 위한 말씀이다. 또한 3차 세계대전 후에 온 세상이 하나가 되었을 때 환난복음을 다 전한 후 이미 정해진 그 세상의 법으로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그 법정에 서서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시인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자는 그리스도께서도 그를 인정하시니 십자가의 길 끝에서 산 제사로 영광을 드린 자는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한다. 그러나 대환난에서는 구원의 기준이 믿음이 아니요 시인이니 누구든지 마지막에 거룩하신 영께서 주시는 그 감동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는 것이므로 성령을 훼방한 자는 육이 잠시 동안은 살겠으나 잠시 후엔 영원한 사망에 거하게 된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에 누가 거룩하신 영의 감동을 따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아버지께 서원을 갚고 그 생명에 이르며 누가 육의 영이 주는 감동을 따라 사망으로 들어가리요?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육과 자기의 뜻에 있느냐 아님 영과 아버지의 뜻에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육의 귀를 가진 자는 이미 환난 전부터 자기의 입을 위하여 늘 원수의 말을 듣고 따르니 마지막 때에도 원수의 그 말을 듣되 아버지의 영께서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라고 외치셔도 그 영혼은 두려움에 오직 그의 육신이 살고자 하여 평소에 듣던 육의 감동에 귀 기울이며 그 말을 따라간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영의 귀를 가지고 있으니 이미 환난 전부터 거룩하신 영의 감동을 듣고 따르다 그 마지막 때에도 역시 생명의 영을 따라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그 생명에 이른다. 그러므로 거듭난 후 이제는 진리를 따라 거룩한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영혼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한 번 순종한 영혼은 끝까지 순종할 것이로되 한 번 불순종한 영혼은 끝까지 불순종하리니 비록 자신의 생각을 돌이킴이 죽음보다 더 두렵고 말씀과 생명의 영의 감동에 처음 순종이 어려울지라도 그 한 번의 처음 돌이킴에 자신의 영원한 생명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앗사리온이라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돈의 단위다. 모든 사람들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일만 악의 뿌리임을 깨닫고 또한 그것이 처음에는 사람들을 묶어주지만 나중에는 그들의 관계를 벌리다 결국 원수처럼 변하게 하는 것임을 경험했으니 자기의 마음에서 그것을 다 내려놓고 오로지 필요한 만큼만을 취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있는 제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사람을 불의와 죄와 비인격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그들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요 거의 모든 사람들도 이미 다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하는 것은 썩어질 욕심 때문이다.
돈은 세상에서 자신이 어느 계층에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고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소수부유층과 제일 밑에서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동일한 1억일지라도 그 가치가 다르게 느껴진다. 또한 아무리 써도 줄지 않고 쓸수록 더 불어나니 돈 쓰는 재미가 없는 사람과 비싼 것들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과 중산층에 속한 사람과 가파른 피라미드를 올라가고자 달리는 사람과 별다른 재산 없이 매달 생계를 꾸려가는 서민과 4인 가족의 법적인 최저생계비를 보며 그럼 우리가족은 뭐냐고 생각하는 사람과 굶어 죽고 싶지 않은 사람과 바벨론에서 나와 광야에 거하며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리를 먹고 사는 사람이 보는 천원의 가치도 다르되 바벨탑을 짓고 있는 자들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간신히 꾸려가고 있든지 누구나 다 돈에 매여있다.
이처럼 돈은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에 그리스도 당시의 한 앗사리온을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의 십 분의 일에 해당한다고 설명해주어도 계층에 따라 버는 돈이 다르니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와 닿지는 아니한다. 그러나 진리는 그가 가난하든 부하든 능력이 있든 없든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지식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전해져야 하는 것이니 앗사리온의 가치가 어느 정도되는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현재 어디서 살고 있든지 어느 계층에 거하고 있든지 누구나 육신을 위해 밥을 먹고 있으니 네 명의 가족이 한끼식사를 하되 반찬은 포함되지 아니하고 오로지 쌀만을 구입하는 금액이 바로 한 앗사리온이다. 그리하여 앗사리온은 교회시대의 끝자락에 있는 서민가족에게는 라면 한 그릇을 사먹을 수 있는 정도의 가치가 있으나 다른 계층에게는 다른 가치로 다가온다.
한편 당시 유대인들이 앗사리온 하나나 둘로 참새를 사는 것은 우리가 전통시장에 가서 고등어를 사는 것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생선을 파는 사람들은 큰 고등어로 작은 고등어를 감싸놓는다. 이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고등어가 두 마리에 얼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은 마리 수의 계산이 아니라 무게의 계산이니 같은 두 마리가 포개져 있어도 작은 것 두 마리 보다 큰 것 두 마리의 가격이 더 비싸다. 마찬가지로 당시에 참새를 파는 사람들은 두 마리를 한 앗사리온에 다섯 마리는 두 앗사리온에 팔았다. 이렇게 그들은 참새를 마리 수가 아니요 무게로 비교해서 팔았으니 원수가 아버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가르치는 교만한 독사의 자식들을 통해 더하거나 빼서 바꾼 곳들과는 달리 마태와 누가가 참새의 마리 수에 대해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 말씀은 두 가지 다 옳은 것이다.
그런데 당시 참새가 땅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으니 참새장사들은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 참새들을 가지고 시장에서 가서 사람들을 모아 그것들을 보여준다. 그러면 사람들은 참새들의 그 재롱을 재미있게 보았으니 참새장사에게 돈을 내거나 또한 자기의 아이들에게 주려고 몇 마리씩 사서 집에 가져가기도 한다. 고로 참새장사들은 참새를 통해 자기의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으되 참새장사가 참새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할 때가 있으니 그것은 주인이 오로지 자신의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에 배고프면 담을 넘는다는데 짐승이랴? 그러므로 새들이 때로는 그 새장의 창이 열렸을 때 주인으로부터 달아나고자 떨치고 나온다. 하지만 주인은 날개 털에다 이미 줄을 묶어놓았으니 새들은 잠시 파닥거리며 날다가 땅으로 다시 내려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오직 늘 자신만을 생각하는 그 참새장사와 같지 아니하시니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고 오직 진리만을 전하며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가는 영혼들의 머리털까지 이미 다 세셨다. 그러므로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나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그 마지막 죽음을 바라보고 나가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육의 먹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한 참새들의 주인은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되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그 유익만이 아니요 모든 영혼들의 그 유익을 위하시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원수가 공중권세를 잡고 이끌어가는 그 불의하고 죄악된 피라미드에서 마음을 돌이키고 나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아버지의 그 뜻에 애쓰는 자들이 마지막 때에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며 선한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은 자신의 배만 채우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니 사막에서 굶어 죽고 싶지 않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에게 오직 진리만을 전한다. 이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아버지의 그 뜻에 대항하고자 자신의 손을 펴서 그들의 모든 것을 다 조여 입에 풀칠도 못하게 한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이르면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들을 통하여 허락하시고 합한 자가 없는 그 대환난가운데서는 그리스도께서 자연을 통해 광야에 거하는 자들을 먹이신다. 그러다 원수가 세상의 권세로 그들을 잡고 법으로 그들의 목을 베어 죽일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입히시어 다시 살리신 후 그들의 몸을 성전 삼으시어 영광스럽게 하시므로 그들과 자신 모두에게 그 선한 유익을 끼치신다. 그리하여 약속의 자녀들은 태초부터 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시고 행하시는 아버지의 말씀과 능력을 믿고 그 악한 자들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만을 전하며 그 생명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거룩한 셋째하늘에서 죄를 창조한 후 끝까지 회개를 거부하며 아버지께로 대항하다 쫓겨난 원수와 또한 그 사망과 함께 타락한 종들과 또한 죄에 대한 사망권세를 실행하는 어둠의 세력들을 뜻한다. 흑암의 세력은 이미 원수의 사자들에게 세뇌를 받아 악을 행하겠다는 결심과 이 땅을 정복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무저갱에서 올라왔으되 ‘너희가 만일 사람들을 죄로 이끌어 사망으로 데려오면 내가 너희를 다시 살린 후 세상에서 좋은 자리를 주겠노라.’는 원수의 말은 거짓이다. 그리하여 자기의 욕심과 이익과 높아짐을 위해 불의한 힘의 논리로 세상을 악하게 끌어가고 있는 그 흑암의 세력들은 이 세상 모든 악한 것들의 뿌리가 되며 바로 그 뿌리를 인해 모든 피조물과 자연이 악한 죄의 영향을 받아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미 2천년 전에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었고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몸과 영혼을 둘 다 무저갱에 멸하시니 육의 사망권세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원수의 그 세뇌는 거짓말이다.
구체적으로 흑암의 세력은 우선 사람을 질병으로 이끌되 그들이 행사하는 질병의 종류와 한계가 있으니 그 기준은 사람이 범한 죄다. 하지만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이키는 자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어떠한 질병도 치유하신다. 그들은 또한 영광의 복음의 빛을 깨닫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의 눈과 귀를 가린다. 하지만 살고자하는 갈급한 마음으로 진리를 깨닫기 원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께서 그의 눈과 귀를 열어주신다. 또한 사람들의 육안에 가시처럼 거하고 있으니 한 사람을 볼 때 그것이 바로 그를 곤고케 하는 죄의 삯이다. 하지만 빛이 임하면 어둠이 사라지듯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서 회심한 후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에 애쓰는 자에게서는 그들이 스스로 떠나니 성도에게는 그 빛으로 인해 다시금 성전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또한 공중권세를 가진 원수의 세뇌를 받아 세상의 모든 지역들을 막고 있으니 인간들이 창조의 기초를 모르는 상태에서 원수의 지혜를 얻어서 만든 하늘과 땅과 바다의 도구에 바람을 일으켜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망으로 이끌어 추수한다. 게다가 그 순간에 그의 육을 붙들고 있는 흑암이 그것을 느끼게 하므로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평소에는 자신이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늘 두렵게 하므로 그들의 말을 듣게 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십자가로 언약을 이루셨으니 회심한 자에게는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주시며 그를 선한 길로 이끄신다. 그들은 또한 사람뿐만 아니라 각종 피조물과 짐승도 어떻게 사망으로 이끌까 늘 계획을 세우며 자기의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 환난 때에 십자가에서 이미 죄를 사한 그리스도를 원수가 이기면 그들이 육을 입고 있을 때 누렸던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얻어서 또다시 누릴 수 있다는 헛된 믿음과 또한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불의와 죄악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흑암의 세력들이 이렇게 수많은 사망의 일을 행하며 그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지라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사람이 질병이나 자연재해나 사고나 사람의 실수로 죽는 것을 보기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악한 자들로 인한 사망은 깨닫지 못한다. 또한 육신의 생각이 아닌 생명의 말씀에 순종코자 하는 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어둠의 세력들은 자기들이 주는 생각대로 말하며 행하는 자들에게 왕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즉 오직 자기의 의와 욕심과 이익과 명예와 게으름을 구하는 그 불의와 이기심을 통해 종처럼 부리며 악한 일을 행하게 하므로 그 사람을 정복해간다.
그렇다면 전지전능하신 아버지께서는 왜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의 악을 허용하시므로 사람에게 육의 죽음을 겪게 하시는가? 또한 왜 동일한 질병과 자연재해와 사고에서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살아남는가? 그것은 생명나무와 선악과의 약속을 이룸이니 각 사람의 죄와 거룩으로 인함이다. 즉 아버지의 그 동일한 창조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사람이 죄나 혹은 거룩의 한계를 다 채웠기 때문에 이 땅에서 죽음을 맛보는 것이요 그 죽음의 후에 아버지께서 거룩에 대해서는 아들을 통해 생명의 부활로 죄에 대해서는 원수를 통해 사망의 부활로 나오게 하시므로 이미 말씀으로 약속하신 그 상급을 영원토록 베푸시기 위하심이다.
예를 들어 원수가 많은 사람들이 탄 비행기를 추락시키고자 계획했으니 흑암의 세력들이 갑작스런 바람을 불려고 한다. 이때 그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죄나 거룩의 그 한계를 다 채웠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시니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후 자신의 심판대에 선 영혼들에게 오직 아버지의 말씀으로 법적인 심판을 내려 생명이나 사망의 상급을 베푸신다. 하지만 만일 그 안에 아직 죄나 거룩을 채우지 않은 자들이 몇 명이 있으면 아버지께서는 못하게 하시되 원수는 아직 한계가 차지 않은 자들까지 죽이고자 불법을 행한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한계를 채운 자들은 심판하시고 아버지께서는 원수에게 불법을 대한 책임을 물으시되 아직 한계가 차지 않은 그 몇 명의 경우에는 종들을 통해 보호하시니 그들이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인생을 살면서 거룩을 원하면 거룩을 죄를 원하면 죄를 이루어가되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 왜 목숨을 건졌는지 깨닫지 못한다. 한편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수의 불법을 막으실 때가 있으시니 그곳에 만일 의인이 한 명이라도 있을 때에는 그 어떤 것들도 못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 의로운 자가 그곳을 떠났을 때는 허락하신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죄에 종 노릇하면서 끝까지 회개치 아니한 영혼들은 육체에서 나온 후 용암이 끓고 있는 땅속의 무저갱으로 보내주시니 그것이 바로 심판의 부활이요 그들은 거기서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다 천년왕국의 끝에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리니 거룩을 거부한 모든 자들에게 임하는 것이 바로 둘째 부활이다. 또한 자신이 받은 법적인 심판을 인정치 않고 사망을 생명으로 바꾸고자 불법을 행한 흑암의 세력에 대해선 그들이 행한 만큼 둘째 부활 때에 형벌을 더하신다. 반면 십자가의 피로 거듭난 후 아버지의 뜻에 애쓰므로 영과 혼과 육의 거룩을 유지한 자들은 원수의 모든 불법에서 지켜주시다 살아있는 채로 둘째하늘의 낙원으로 옮기시니 그들이 바로 구약시대의 에녹처럼 휴거 받는 영혼들이다. 또한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악한 자들이 비록 선을 행하는 자들의 몸에서 피를 흘려서 죽일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 영혼들을 꺼내시어 거룩한 육체를 입혀주시니 그들이 바로 이사야의 예언처럼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므로 이루신 그 약속에 의해 부활한 구약의 선지자들과 교회시대의 그리스도의 친구들과 마지막 때의 144000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결국 빛에 의해 물러가는 어둠을 보며 선은 반드시 악을 이긴다는 믿음을 가지고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그 악한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로지 몸과 영혼을 영원한 생명과 사망으로 심판하시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거룩에 애쓰는 것이 옳다. 또한 사람이 겪는 육의 죽음은 방법과 모양만 다를 뿐 죄나 거룩의 한계가 차면 단지 시간의 문제이니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은 자들은 아버지께서 영원한 셋째하늘에 쌓아두신 소망을 바라보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라가며 남아있는 육체의 기회 동안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애쓰는 것이 옳다. 그리하면 그는 결국 죄의 종 노릇에서 벗어나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날이 오리니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사망을 삼키셨기 때문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선한 왕이 생명의 열매가 달리는 나무를 키우는 비법을 알고 있었지만 백성들은 그 비밀을 아무도 몰랐다. 이에 왕은 그것을 알려주어 백성들도 선한 열매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는 인격적이고 의롭고 공평한 왕이라 아무에게나 억지로 알려주거나 강제로 나무를 가꾸라고 명하지 않고 모든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보여준 후 누구든지 원하면 선택하길 원했으며 또한 정직하게 땀 흘리며 애쓴 만큼 열매를 나눠주고 싶었다. 왕은 이런 계획을 가지고 어떤 시장에서 사과나무를 팔고 있는 장사꾼들 가운데 새벽이슬 같은 한 젊은 청년을 택해서 인적이 없는 광야로 데리고 가 땅을 파서 그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가지를 치고 벌레를 잡는 방법과 또한 가을걷이가 끝난 후 어떤 일이 있을지 그 비밀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눈에 그림을 보여주고 귀에 말로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나서 ‘때가 되었으니 가서 네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저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전해주어라. 그러면 나의 말을 듣는 자들도 있겠으나 시장에서 장사하는 저 자들은 내 말을 싫어하리니 너를 잡아서 시장주인에게 넘겨 피 흘려 죽일 것이니라. 그러나 내가 너에게 생명의 열매를 줄 것이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일렀다. 왕에게 보냄 받은 청년은 드디어 왕의 말들을 가지고 자기가 사과나무를 팔던 그 시장으로 갔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오직 사과만을 좋아했으되 그것은 독 사과였으니 그것을 가꾸며 따먹는 자들은 결국 죽음을 맺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술에 회칠한 어떤 젊은 부녀가 사과나무를 팔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제가 왕의 말씀을 전하겠으니 잘 들으십시오. 우리는 왕께 이미 생명열매를 받았으니 믿으세요. 그리고 왕은 우리가 이제는 사과를 먹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무들을 가꾸며 사과를 먹으면 추수 때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젊은 부녀는 이렇게 자신이 마치 왕을 통해 보고 들은 것처럼 사람들에게 전했으나 왕은 그 여자에게 비밀을 보이거나 알린 적이 없었으며 백성들에게 보낸 적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 부녀가 회칠한 입술을 열어 전하는 모든 말은 그저 자기마음과 생각에서 떠오르는 것이었으니 전부 거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마음은 사과를 좇아 왕을 멀리 떠났으니 오로지 부녀의 달콤한 말을 왕의 말로 믿고 따랐으며 또한 많은 자들이 부녀에게 사과나무를 얻어 가꾸되 생명열매가 달리는 나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왕이 청년에게 전한 모든 말들은 자연스레 비밀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그가 아무리 왕의 뜻을 받들어 왕에게 보고들은 말을 전하며 추수 때 있을 일을 자세히 알려주어도 오직 부녀들의 말을 왕의 말로 확신하는 백성들은 그가 하는 말을 싫어했고 부녀들은 사과나무를 팔아 립스틱을 구입해 입술에 회칠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그 청년을 잡아죽일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청년은 왕이 자기에게 준 비밀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고 끝까지 자신이 보고들은 것만을 전했다. 그러자 백성들 가운데 생명을 원하는 세 사람이 그가 전하는 말에 따라 그 나무를 가꾸었으니 그들은 가을이 되자 왕의 말대로 애쓴 만큼 생명의 열매를 추수했다. 반면 사과나무를 팔던 부녀들은 시장주인에게 그 청년을 넘겨 피를 흘렸고 독 사과만을 좇던 백성들은 모두다 사망을 수확했다. 그러므로 왕은 이것이 왕의 뜻이요 왕의 말씀이라며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이끌어 자신이 영광을 얻고 돈을 모은 그 모든 부녀들을 추수해 어두운 감옥이나 뜨거운 감옥에 가두었으되 그 청년과 세 명에게는 생명열매를 주어서 먹게 했다. 그리하여 추수 후에는 모든 것이 청년의 말대로 되었으나 오히려 모든 것들이 오직 왕의 뜻과 계획대로 다 이루어졌다.
이처럼 아버지의 말씀은 비밀이요 비밀은 먼저 은밀한 곳에서 조용히 보고 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들은 후 아버지의 때가 되었을 때는 온 세상에게 공평하게 전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신 것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 전 즉 아버지의 영원한 셋째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있을 그 천년왕국의 다스림과 십자가 이후에 이방인을 위한 그 비밀시기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주의 날이 도적같이 왔을 때 그리스도께서 둘째하늘의 낙원을 이끌고 이 땅에 내려와 다스리는 기간과 일곱 교회시대의 택하신 교회들에게 그 비밀을 전하신다.
그런데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늘 보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하며 또한 그것을 얻고자 오직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며 행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그 마지막 때에는 생명과 사망의 심판이 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도 교회시대도 환난시대의 두 증인도 주님께로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마지막에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직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그 거룩을 전한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정결한 처녀가 되고자 또한 그 마지막 때에 산 제사를 드리고자 먼저 자신의 거룩에 애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예비한 신령한 영혼들이 밤중에 들림을 받거나 혹은 침상에서 피의 제사로 순종을 통해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서 이 땅에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자신의 마음이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을 원하면 그는 그것을 얻고자 육의 부요와 세상의 영광스런 복음을 말해주는 거짓선지자들을 따라가되 영이 거듭난 이후에 거룩에서 행위로 돌아선 교만한 자들은 다른 복음을 따라간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가 따르는 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며 행한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든 교회시대에든 거짓된 목자들은 자신이 그리스도께로 말씀을 들은 것도 없고 본 것도 없으니 자신의 심령에서 떠오르는 것과 여기저기서 보고들은 것과 귀에 아름답게 들리는 온갖 세상과 사람의 말들을 전한다. 그 말을 통하여 자신과 공동체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함이 아니요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 돈의 복을 받아 헌금하고 세상에서 성공해 영향력을 끼치라는 교묘한 말로 양들을 흩어 세상으로 몰아내고 돌아보지 않은 목자들은 마지막 환난 때가 이르면 666을 받게 하고 삯군들은 자신의 목으로 들어오는 칼을 보고 슬그머니 버리고 도망간다. 목자로써 자신이 원하던 것은 양털이지 아버지와 양을 위한 죽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되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한 그 우매한 선지자와 그들을 따르는 어리석은 자들은 마지막에 그들이 즐겼던 이 바벨론과 함께 사망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육의 생각에서 돌이키는 영혼은 자신의 우매함과 어리석음에서도 돌이키리니 그런 자들은 어디에 있든지 아버지께서 독수리로 건져내시어 아들이 보낸 자들이 거하는 그 광야로 이끄신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영원한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시공간의 밖에서 이 첫째하늘의 모든 것을 보시며 주관하시고 계시는 반면 사람은 썩어질 육의 한계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태초에 정하시고 흐르게 하신 그 시간과 넓은 공간을 마음대로 넘어가지 못한다. 또한 영으로 인하여 짐승과 달리 인격과 살고자하는 마음은 있을지라도 육적인 능력과 감각은 그들보다 더 약하다. 고로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일어났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아버지께로 진리를 깨닫고 싶은 마음을 받았으니 어떤 일이든 있었던 그대로 정확히 사실대로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저녁 9시가 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이 발생한 곳에 가 이미 벌어진 후의 상황을 보여주며 전해주는 그 말을 듣고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그 일을 했는가를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911에 뉴욕의 높은 빌딩 두 개와 또 다른 하나의 빌딩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내려앉도록 해야 하되 자신이 했다는 것을 숨겨야 한다. 그것을 통해 한 두 명이나 몇 천 명이나 몇 만 명이 죽어도 상관없고 오히려 많이 죽어야 자신의 그 뜻이 잘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들 몰래 숨어서 치밀하게 준비해 정해진 날에 그 일을 계획대로 실행한다. 이때 소식을 전하는 자들은 누군가 아랍사람들을 시켜서 느린 여객기로 미국의 치밀한 방공망을 뚫고 테러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계속 내보낸다. 그러면 어떤 이들은 그것을 보고 듣고 대책을 세워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테러를 막자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힘을 가진 자들이 조작해서 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여러 가지 과학적 증거와 정황을 통해 알린다. 그 결과 여기저기서 911에 대한 음모를 보고 들은 사람들은 미국정부가 중동에서 나오는 검은 물을 가지기 위해 혹은 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보기관을 이용해 백성들 가운데 힘없는 사람들을 희생시켰다고 확신한다. 어떤 이들은 유대인들의 그 마지막 때의 계획을 알고 있으니 유대인들이 미국정부와 함께 그런 일들을 통해 이루어가고 있음을 알린다. 물론 마지막 때에 가짜그리스도가 666을 가지고 나오기 위해 자기가 택한 자들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끌어 간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들은 세상의 임금과 총독들이 그런 일들을 이용해 사람들의 자유를 법적으로 제한해가다 3차 대전이 끝나고 여자에게 분노한 용이 나왔을 때 오로지 자유와 평화만을 원하는 사람들의 그 외침을 이용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쉽게 하나로 만들 것이요 또한 그 마지막 왕과 짐승의 수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핍박하며 죽이는 그 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육신의 한계로 인해 실제의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며 나중에 육의 한계를 가진 자들에게 보고 듣고 판단하는 것들은 정확하지 않다. 게다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바뀌거나 숨기거나 더해지는 소식과 정보도 많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그 일을 벌였는지 정확하게 사실대로 알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과거로 돌아가서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는지를 영화처럼 그대로 다시 보여주면 된다. 그러므로 그 영화에는 그 일을 계획한 사람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등장해야 하며 당시의 상황 장소 시간도 동일해야 한다. 또한 모든 것에 동기가 중요하니 그들이 입고 있던 겉옷과 속옷도 비추어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과 행동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떠한 마음과 생각을 품고 그것을 계획하고 행했는지 알려야 한다. 심지어 그들이 눈과 손끝을 한번 깜박이며 움직이는 것도 똑같아야 한다. 즉 누군가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가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속까지 들여다보는 비디오로 촬영해서 보관해놓아야 정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
만일 이렇게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모든 것이 촬영된다면 어떻겠는가? 인생을 살면서 사소한 억울한 일들을 당했어도 올바르게 드러날 것이고 자신이 범하지 않은 죄로 인하여 감옥에 갇히거나 억울하게 사형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혹시 죄 없이 죽었다 할지라도 정확한 재판을 통해 원한과 누명은 벗겨지고 명예가 회복될 것이다. 자신이 말하고 행한 것에 대하여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하거나 숨기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은밀하게 범한 죄나 혹은 아무도 모르게 행한 선행이 드러나지 않아 형벌이나 상급 없이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이렇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정확하게 알기를 원하는 그들의 마음을 아시니 때가 되면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셋째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소 안에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극장에서 보는 것과 같은 큰 화면이 있으되 그것은 오로지 한 면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요 세면을 통해 세 곳에서 보는 것이다. 즉 면이 아닌 공간을 통해 실제의 모습을 정면에서 또한 위에서 또한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으며 화질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선명하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그 상황과 장소에 함께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마음까지도 그대로 보여주며 각 사람의 그 거룩과 죄의 과정을 일일이 다 말해준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의 뜻을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아버지께 내어 놓은 자들이 그 화면에 가장 먼저 나온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 땅에서 주님의 은혜와 인도를 받으며 원수와 어둠의 세력들과 세상에 악인들의 방해와 핍박가운데서도 자신과 다른 영혼들의 거룩에 애쓴 것과 또한 그리스도께로 받은 인자의 거룩한 살과 피를 드리는 그 마지막 장면까지 나온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모든 형제자매들과 백성들과 유황불 못에 있는 죄인들에게까지 그 영혼들이 죄와 세상에 대해 승리한 것을 비추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거듭난 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을 이루기전의 죄와 허물은 비추시지 않으심은 이미 말씀의 약속대로 자신의 기억에서 다 지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또한 모든 형제자매들도 다 기쁨과 은혜를 누리며 그것을 본 후에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는 아버지의 섭리와 아들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다시 한번 소멸하시는 불이신 아버지께로 영광으로 영광의 감사를 올려드린다.
두 번째 화면은 유황불 못에 있는 영혼들을 위한 것이니 자기의 욕심과 높아짐을 위하여 이 땅에서 늘 범죄하고도 피의 은혜를 거부하고 끝까지 회개치 않되 오히려 자신을 의롭게 여긴 자들의 그 악한 모습들과 입에서 나온 말들과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비추어주신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자신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직장과 나라에서 공개적으로나 혹은 은밀하게 범한 불의와 죄악들이 그대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나 반란이나 911같은 것들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그대로 밝혀진다. 더불어 원수와 그의 사자들이 어둠의 세력들을 이용해 이 세상을 불의한 힘의 논리와 음란과 죄악으로 이끈 모든 것들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하여 거듭남 없이 자신을 의롭게 여긴 그 악한 자들의 모습은 더욱더 부끄럽고 책망스럽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셋째 그 화면을 통해 셋째하늘에 거하는 온전케 된 백성들의 모습도 보여주신다. 그런데 그들은 영이 거듭난 후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를 따라 말하고 행했어도 온전케 되는 그 과정에서 호리라도 다 갚고 거룩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약속대로 그들의 불의와 죄악은 비추시지 않으시되 그들이 육을 입고 이 땅에 거하는 동안 아버지의 뜻에 대하여 게을렀던 모습과 그들이 아버지를 섬기되 마음 없이 음란하게 말하며 행했던 태도는 보이신다. 그리하여 그들도 늘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며 항상 선한 마음과 선한 뜻을 끝까지 잊지 않고 그 의로운 길을 영원토록 걷게 하심이다.
이와 같이 셋째하늘에서는 그 화면을 통해 각 사람의 영혼이 죄와 거룩을 이루는 과정을 볼 수 있으나 오로지 죄와 세상에 대해 승리한 거룩한 자녀들만 보는 것이 아니요 의의 백성들과 또한 유황불 못에 거하는 어둠의 세력들과 모든 영적인 존재들도 함께 본다. 그러므로 그날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의 감춰진 모든 것이 정면과 아래서부터 위에까지 밝히 드러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144000의 피 흘림 후 이 땅에 내려오시어 이 땅을 낙원과 같이 회복시킨 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그 시기부터 이미 조금씩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조금씩 드러나며 알려지기 시작하다 영원한 셋째하늘에서는 모든 것들이 밝히 드러난다.
그런데 진리를 따르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녀들은 모든 것들이 이렇게 밝히 드러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나라를 소망한다. 또한 원수가 이 세상의 악인들을 통해 무고하고 무참하게 피 흘려 죽일지라도 아버지께서 거룩한 육체를 입히시어 다시 살리신다는 믿음이 있으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영광의 복음을 위해 이미 주님께로 바쳤으며 또한 육신의 호흡이 남아있는 이 땅의 모든 영혼들을 불쌍히 여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믿는 자들을 죽이고자 이미 법을 세워놓고 핍박하는 이 세상의 권세자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늘 거룩에 애쓰고 있으며 또한 언제 어디서나 끝까지 오직 진리만을 담대히 전하고 있다.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늙은이가 하늘로부터 이런 말씀을 받았다. “홍수를 보내어 내가 창조한 피조물을 이 땅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겠노라.” 이에 그 노인은 이렇게 반문했다. “하늘이시여! 사람들은 당신이 허락하신 부부간의 그 거룩한 성관계를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의 기쁨과 더러운 욕심을 위해 다른 남자와 다른 여자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아비와 딸이 자식이 어미와 음행하고 있으며 오로지 돈과 자신의 높아짐을 위해 거짓말하며 자기의 이익을 취하고 있나이다. 또한 불의하고 불공평한 이 땅에 죄가 가득하되 저 역시 그러하나이다. 게다가 짐승들도 당신이 예비하신 땅의 곡식과 풀과 과일을 거부하고 자기보다 약한 짐승의 피를 흘리며 자기 배를 채우고 있으니 짐승도 그렇게 하심이 마땅하나이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도 세상과 함께 심판하심이 가하시나이까?” 그러자 하늘은 이렇게 말했다. “부모는 잘못을 비는 아이를 때리지 않노라.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비는 자식을 오히려 품에 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도다. 그러므로 너는 방주를 지어라. 또한 짓는 동안 땅의 모든 마을들을 다니며 하늘에서 내리는 물로 심판을 받으리니 살고자하는 자는 세상에서 나와 내가 너를 통해 예비한 방주로 들어가라고 전하여라. 또한 너와 네 집도 공평한 기회를 얻겠노라.” 하늘의 말을 들은 후 그는 자기의 가족과 함께 방주를 짓기 시작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세상의 모든 곳을 다니며 생명과 사망의 심판을 전했다. 그런데 그가 어떤 마을에 들어가 하늘의 심판을 외치는데 몇 명이 나와서 듣기 싫다며 그의 뺨을 때리고 욕을 퍼부었다. 이에 그는 사람들이 원치 아니하니 다른 마을로 가고자 했다. 그러나 하늘이 그에게 말하길 그 마을에 아직 심판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좀더 머물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좀더 욕을 들으며 뺨을 맞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많은 무리가 와서 내가 나의 기쁨을 위해 원하는 것을 행하는데 왜 나의 자유와 인권을 구속하느뇨? 나중에 심판을 받든 안 받든 네가 무슨 상관이뇨? 사람은 죽으면 끝이니 심판은 없다며 그를 몽둥이로 때려 피를 흘렸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그 마을의 모든 자들이 심판의 말을 듣고 난 후였으니 그는 비로소 다른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방주가 완성되었으며 또한 세상의 모든 마을에 복음이 다 전해졌다. 그리고 그 노인과 그의 집은 거룩을 원했으니 그들은 세상에 남지 않고 자신들이 함께 지었던 그 방주로 정결한 짐승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자 하늘의 참고 기다림으로 인해 7일 후에야 물이 내려오기 시작했으나 사람들은 더러움을 기뻐했으니 아무도 타지 않았다. 물 심판을 받은 후 다시금 사람들이 번성해가되 소돔과 고모라의 강포와 패괴는 홍수 때보다 더 중했다. 그러므로 하늘은 어떤 늙은이에게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불의하고 죄악된 자들을 태양의 불로 심판하므로 말세의 사람들이 교훈을 받고 세상에서 돌이켜 생명을 얻도록 하겠노라.” 이에 입자로 지음을 받은 그 노인이 하늘을 향해 감히 이렇게 고했다. “하늘이시여! 자기명예와 욕심을 위해 행악하는 자들을 불로 심판하심은 마땅하나이다. 그러나 당신의 말에 순종해 거기서 나오는 자들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러자 하늘은 티끌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들었을 때 믿고 죄와 세상에서 나오는 자는 생명을 얻겠으나 몸이 나올지라도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자는 그의 마음에 따라 심판 받을 것이니라.” 노인은 하늘의 말을 듣고는 먼저 소돔에 들어가 생명과 사망의 심판을 전하며 회개를 선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몇 명이 나와서 욕하며 그를 때렸다. 이에 그는 사람들이 원치 아니하니 고모라로 가려고 했으나 하늘이 그에게 말하길 그곳에 듣지 못한 자가 있으니 좀더 머물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좀더 뺨을 맞고 욕을 들었다. 그러자 더 많은 무리가 찾아와 홍수 때의 악인들과 똑같은 말을 하며 몽둥이로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때려 피 흘렸다. 그러나 그때는 돌이킬 자는 이미 다 돌이켰으니 그는 비로소 고모라로 발걸음을 돌려 그곳에서도 동일한 복음을 전했다. 그리하여 결국 하늘에서 내리는 유황불에 탈 자는 탔고 소금기둥으로 변할 자는 변했으니 오직 말씀에 순종한 자들만 생명을 얻었다.
이처럼 홍수의 때에도 소돔과 고모라의 때에도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심판의 말씀을 노아와 아브라함을 통해 이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공평하게 전하셨다. 그러므로 노아도 아브라함도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이 다 그 심판의 말을 들을 때까지 또한 돌이킬 자들은 다 돌이킬 때까지 오직 말세의 복음을 전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이 땅의 어느 곳에 거하든지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죄와 세상에서 돌이키기 원하는 자들은 모두다 그 천국복음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구원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처음에 행하셨던 물 심판과 중간에 내리셨던 불 심판은 교회시대가 끝나고 대환난의 끝에 이루실 그 마지막 불 심판의 예표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둘째하늘에 있는 낙원을 이끌고 다시 오시는 이 마지막 때에도 이 세상에는 불의와 죄악이 가득할 것이로되 아버지께서 이방민족들 가운데 택하신 일곱교회와 유대민족 중에 정하신 교회가 자신의 민족에게 대환난의 복음을 전한다. 즉 감람나무에 붙어있는 두 증인은 세상의 전쟁과 환난의 끝에 온 땅이 갈라졌을 때 인간이 세운 모든 것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에 타며 입을 벌린 무저갱으로 내려갈 것이요 첫사랑을 잃고 세상과 음행하던 자들도 이방인과 함께 엎드러질 것이니 세상과 선악에서 돌이키고 나와 광야의 피난처로 들어가 생명을 얻으라는 심판의 말을 전한다. 하지만 한 무리가 핍박을 한다 할 때에는 다른 마을이나 동네로 이사를 하되 오로지 한두 사람이 한다고 하면 조금 더 머무르다 움직이는 것이 옳다. 그리하여 한 영혼 한 영혼이 어디에 거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말씀을 믿고 세상에서 나오는 자가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그 환난복음을 모든 자들이 다 듣게 되며 또한 돌이킬 자들은 다 돌이키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민족의 경우는 이러하리니 아시아가 그 큰 전쟁으로 함께 나아가고자 남과 북은 하나되기 위하여 오히려 서로 싸우되 광야로 나간 영혼들은 세상의 전쟁과 환난가운데서도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얻고 또한 하늘의 소망을 누린다. 그러다 남북이 하나된 후 정해진 시간이 흐르고 3차대전이 일어나지만 그때는 이미 마지막 때다. 그러므로 택하신 일곱교회는 그 큰 전쟁 전에도 또한 후에도 또한 원수가 666을 가지고 나왔을 때에도 온 마을을 다 다니면서 마지막 불 심판을 전하되 회개의 증거로써 불의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돌이켜 반석으로 올라가라고 전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민족도 역시 자신의 민족에게 가서 전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온 마을을 다 다니지 못하셨어도 그리스도의 그 말씀은 이 땅의 온 동네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요 그들 가운데 주님께로 나올 자들은 다 나오게 되는 것이요 그 후에야 비로소 인자께서 이 땅으로 내려와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이라는 것이 바로 이 예언의 뜻이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밑에 있는 깊은 계곡에 모여 재미있게 놀고 있었으나 그곳에는 날카로운 칼이 많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휘두르는 칼에 맞아 상처를 입었고 자신도 자기가 가진 칼로 다른 사람들을 찔러서 상처를 입혔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산을 향해 올라가지 아니했으니 자기가 원하는 것들이 그곳에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산꼭대기까지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다가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속마음은 다른 사람들의 칼에 찔리거나 또한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거기서 나와 저 높은 산으로 올라가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저 산꼭대기에 사람의 육이 아닌 영혼이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요 그것은 영원히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람의 생각은 계곡에 그냥 머무르고 싶어함은 그 칼로 서로를 찌르면서도 자신을 옳게 여기기 때문이요 그 안에는 사람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손과 발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그 계곡이 갈라질 것이니 그곳에 머물러있는 사람은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그리로 내려갈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자 네 명이 계곡에서 올라왔다. 이에 안내자는 그들의 눈에 묻은 더러움을 닦아준 후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포도주와 떡을 주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안내자의 말과 도움을 받으며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계곡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등산을 시작한 네 명 중에 첫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여기에 이렇게 즐거운 것들이 많은데 뭐 하러 힘들게 산을 올라가세요? 조카야! 여기서 서로 칼로 찌르며 상처를 주고 받는 게 옳은데 도대체 어딜 가고 있니? 친구여! 열심히 일해서 계곡에서 성공된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소?” 이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보! 계곡에 있는 것들이 비록 육의 즐거움은 주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욕심을 품고 거짓말하며 다른 사람을 눌러야 하지 않소? 삼촌! 서로 칼로 상처 주는 것은 불의와 죄이니 그 계곡은 곧 지옥과 같습니다. 친구여! 오직 자기의 욕심과 유익만을 생각하는 곳에서의 성공이 무슨 가치가 있겠소? 또한 가정이 깨지는데 인생의 끝에선 다 놓아야 하는데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소?” 그러자 그의 가족 친척 친구들 중에 반이 그에게 등을 돌렸고 그는 다시 계곡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의 따돌림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셋이 안내자를 따라 올라가는데 둘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을 따라 올라가느라 세상에서 보고 싶은 것도 못보고 가고 싶은 곳도 못 가는구나. 돈이 꼭 필요한 만큼만 주어지니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비싼 차와 집도 못 사고 늘 일용할 양식만 얻는구나. 좁은 길을 걸어도 세상의 아무도 널 알아주지 않는구나. 또한 때로는 음란도 즐기고 혈기도 내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하다니! 그리고 네가 만일 이 힘든 길을 계속 가면 나중에 육신이 고통을 당하다 결국 헛되이 죽게 될걸!” 반면 마음에서 이런 감동도 떠올랐다. “대신 안 보이는 것을 보고 안 들리는 것을 듣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나중에는 저 안내자의 인격이 나에게서도 나오겠노라. 또한 저 산꼭대기에 내가 소원하는 반석이 있으니 거기서 의로운 성취감을 얻겠노라. 그러니 사탄아 물러가라.” 그러나 그 생각은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도전했으며 그가 반석을 향해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손과 발을 붙들고 늘어지며 방해했다. 그러므로 둘째 사람도 견디지 못하고 다시금 계곡에 빠졌다. 육적인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계곡에서 가장 높은 자가 셋째 사람에게는 그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며 불이익을 주었고 때로는 그의 옷을 벗겨 부끄럽게 했다. 또한 신분증이 없다며 매매도 일도 못하게 했다. 그러다 결국 저 안내자를 부인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으니 두려움 때문에 계곡을 이기지 못한 그도 다시 계곡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넷째 사람은 첫사랑을 잊지 않았으니 사람들에게 매이지 않고 육의 욕심도 이기고 오직 그 안내자의 말만을 듣고 믿고 따라갔다. 또한 계곡에 사는 불쌍한 자들에게 거기서 나오라고 외치며 자신이 보고들은 것만 전했다. 그러므로 계곡의 왕은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마지막에 그를 잡아서 고문하고 죽였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통해 오히려 계곡을 이기고 반석에 이르렀으니 자신이 소원하던 그 선한 생명을 얻었다. 그러므로 끝까지 모든 것을 다 견딘 그는 높은 산의 반석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며 영원한 기쁨과 영광과 자유를 누렸다.
이처럼 거듭난 영혼들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만을 사랑하는 자는 큰 은혜를 받은 자이니 그는 자신의 뜻이 아닌 오직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아버지께서 주목하시고 감찰하시는 그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는 인간적인 육적인 세상적인 미움을 견디지 못해 배반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의 복이 있으리니 그는 자신의 안에 있는 죄와 불의한 이 세상을 이기고 죽지만 아버지의 영께서는 승리한 그에게 거룩한 육체를 입히시고 다시 살려주신다. 그리하여 자녀 됨의 언약을 이룬 그가 주님의 품에 안겨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영원토록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 세 가지를 다 견디고 이긴 후에 영광스런 구원의 복을 얻으리요?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만이 끝까지 그것을 다 견디고 이기리니 그것은 그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더 주님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기 때문에 불의하고 단단한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진리만을 의지하고 따라갈 수 있으며 순종하며 따르는 그를 아버지께서 빛과 능력으로 끝까지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나중까지 견디는 것을 보면 그는 택함의 은혜를 받았으며 또한 첫사랑을 잊지 아니하고 있으며 또한 믿음의 결국 큰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아버지께서는 처음에 짐승과 사람의 창조를 계획하실 때 어미와 아비는 자기가 낳은 자식을 조건 없이 사랑하며 자식은 자라며 자기를 낳은 뿌리에게 순종하고 나중에 성장해서는 자기를 기르며 육의 힘이 없어진 부모에게 효도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태초에 그리스도께서 안식 후 첫날 낙원 안에 지으셨던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과 육 일 동안에 에덴의 밖에다 창조하셨던 짐승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의 그 선하신 계획을 따를 때에는 자기자식과 부모와 이웃을 위해 자신이 죽는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에 떠오르는 그 원수의 거짓말을 듣고 원수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어준 사람의 본질은 오직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이들을 심지어 자기의 가족도 사망으로 내보내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알든 모르든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광야를 거부하고 원수가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 빠져있으면 때가 차고 환경이 닥쳤을 때 악한 본질로 인하여 결국 자기를 위해 가족 안에서도 한 형제가 다른 형제를 한 자매가 다른 자매를 자식이 자기아비를 아비가 자기자식을 사망에 내어 보내주게 되어있다. 심지어 지금은 자신이 갓 낳은 핏덩이도 버리고 한 가족 안에서도 성을 맺고 짐승과도 하나되고 있으니 악한 자들은 오직 자신의 욕심만을 생각하며 또한 오직 자신이 살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교회시대가 끝나고 마지막 대환난으로 접어들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이 다가왔음을 노아의 때와 같이 혈육이 있는 자들의 이런 강포와 패괴가 증거한다. 그러므로 영생이 약속된 사람들을 악한 본질로 이끌어 영원한 사망으로 데려가고 있는 원수의 그런 말을 어찌 진리라 할 수 있겠는가?
반면 아버지께서는 둘째사람을 지으실 때 자신의 선하신 마음가운데 한 부분을 주시어 사람으로 하여금 선한 생명을 사모하도록 계획하셨으니 그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으로 인하여 사람이 범죄할 때마다 오히려 당신이 대신 마음에 고통을 당하시고 계신다. 또한 사람이 생명을 얻도록 자신의 사랑하시는 죄 없는 독생자를 죽음으로 내어주셨으며 아들께서는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오히려 자신이 고통 받고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므로 아버지를 향한 믿음과 사람을 향한 그 사랑을 확증하셨으니 참된 진리는 바로 십자가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며 그 진리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은 원수가 비록 진리를 전하지 말라고 위협하고 그리스도처럼 고통스럽게 죽이겠다고 협박할지라도 구약의 선지자와 초대교회의 제자와 대환난의 144000처럼 오직 진리만을 전하므로 자기의 가족들과 다른 지체들을 그 생명으로 먼저 보내고 자신은 오히려 그 진리를 따라 거룩한 육체가 약속된 그 대환난의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십자가 길의 끝에 있는 그 죽음과 부활을 어찌 참된 생명과 참된 진리라 하지 아니 않겠는가?
이로 보건대 자신이 살기 위하여 다른 이들을 사망으로 보내는 자들의 안에는 참된 진리를 주신 아버지에 대한 그 믿음이 이미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그 밀알의 진리도 모르는 자들이다. 그리하여 육체의 생명을 드리고자 아니하며 또한 자신의 혼의 생명을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강하게 살리면서도 나는 영의 생명을 얻었다는 안일한 확신을 가지고 온갖 자랑과 교만을 떨고 있는 자들이 어찌하여 참된 진리를 듣고 깨닫고 따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원수에게로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었으니 심판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에도 오로지 자기의 욕심과 명예를 취하며 또한 자신의 선함과 옳음을 드러내고자 늘 원수가 주는 생각에 따라 말과 행위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자기자신이 살기 위하여 자기의 가족과 이웃들을 사망으로 보내는 것은 오직 이 헛된 세상에 거하는 이방인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즉 입술은 주님을 믿는다며 자기의 마음을 썩어질 육의 욕심과 또한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바빌론에 두고 있는 자들도 마지막 때에 그 악한 일을 동일하게 반복한다. 그러므로 가룟유다 같은 악한 자들이 대환난 때에 거룩한 자들을 종교지도자들에게 팔아 넘길 것이요 거짓선지자들은 그들을 세상의 임금들에게 넘기리니 원수가 미리 만들어 놓은 법에 따라 총독들이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아야 할 것이 있으니 그 악한 자들이 사는 것은 오로지 이 땅에서만이 사는 것을 뜻한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의 육신이 사망에 이르며 그의 영혼이 한 평생을 거했던 장막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 아버지께서 한 영혼 한 영혼에게 생명이나 사망이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으로 내어쫓으시는 심판을 허락하시기 위해 세 가지를 보시니 그 중에 하나는 그가 과연 무엇을 하다 육의 죽음에 이른 후에 아들의 그 법적 심판대에 서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선한 길을 걸은 사람이 그 십자가의 길 끝에서 순교할 때 영혼의 상태에 대한 말씀이니 이것은 아버지께로 오직 생명나무의 심판을 받는 영혼을 위한 말씀이다. 또한 마지막 때에 셋째하늘로 올라가시는 거룩하신 영과 대환난 때에 이 땅으로 내려오시는 아버지의 영께서 한 영혼이 자신의 몸을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릴 때 어떻게 역사하시는 지에 관한 말씀이다.
우선 어떠한 사람이든지 그가 육의 사망에 이르기 전에는 그 육의 혼은 없어진다. 생각과 마음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을 더 이상 그의 혼이 마음대로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악한 것이 그의 육신을 붙들든지 아니면 선한 것이 그것을 붙들게 된다. 그리고 누구에게 붙들리느냐에 따라 당연히 차이가 있으니 만일 악한 것이 붙들 때에는 그의 몸을 뒤흔들고 악한 얼굴을 보이므로 사람을 더욱더 악하게 만들어 사망에 이르게 하되 선한 것이 붙들 때는 그가 그 사망을 준비하며 자신이 해야 할 말과 또한 마무리할 일들을 다 정리한 후에 그 사망을 맞이한다.
이러한 이유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그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은 자신이 육의 죽음을 당할 때 무슨 말이나 어떤 행위를 할까 미리 계획하지 아니한다. 그가 행여 계획을 하였다 할지라도 그 육의 혼이 자신의 몸을 주장하지 못하기에 그것은 다 없어진다. 그리하여 오로지 악한 자들은 악한 것들이 그의 육신을 붙들겠고 선한 자는 오로지 선한 것이 붙들며 그의 지체의 병기를 통해 그 거룩이나 혹은 죄악의 뜻을 다 이루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십자가 이후로 영적예배를 드렸던 자들 가운데 스데반이라는 영혼이 있으니 그는 선한 것이 그의 육신을 붙들어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룬 경우였다.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의 은혜를 받아 거룩을 깨닫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그 선한 길을 걸었으니 마지막 그 죽음의 앞에서 말할 것을 자신이 계획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죽음 직전에 설교했던 그 말들은 오직 그의 안에 계신 아버지의 영께서 전하신 것을 그의 영혼이 듣고 그대로 전한 것이다. 또한 그가 돌로 맞아 사망을 맞이하는 시기에는 그의 영혼이 아버지의 영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자신의 육의 눈을 통해서 보고 그것을 다시금 그대로 말하므로 선한 일을 행하며 그 사망에 이르렀다.
그런데 죽음과 부활의 길을 걷는 영혼이 마지막에 죽음을 당할 때 이렇게 선한 영에게 붙들리는 것은 마지막 때의 7년 대환난가운데서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우선 종교지도자들에게 믿는 자들을 넘겨받은 가짜그리스도는 자신이 미리 만들어놓은 그 법으로 그들을 재판하여 사형을 선고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거룩하신 영께서 셋째하늘로 올라가셨으니 오직 아버지의 영이 내려와 계신 때이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영께서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직접 관찰하시며 또한 선한 자에게 그 선하신 뜻들을 밝히시므로 그 거룩한 뜻과 계획을 이루도록 하시기 위함이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144000도 아버지의 영께서 허락하신 말씀을 전하므로 그들이 끝까지 말씀만을 전하며 또한 아버지께서 보이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말하며 그 선한 사망을 맞이한다. 그리하여 그의 속에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영은 모든 영이 아버지께로부터 나왔음을 뜻하며 또한 확증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아버지의 영께서 내려오시어 역사하시는 기간은 라오디게아 교회시대가 끝나고 그 대환난이 시작될 때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마치고 이 땅에 내려와 천년왕국을 다스리기 시작하시는 그 시점까지를 뜻하니 그때부터 천국의 시작까지는 사람의 시간으로 정확하게 일년이 남아있다. 또한 그때는 들림 받을 자들은 이미 들림을 받았고 피 흘릴 자들은 이미 산 제사를 드렸으니 오직 사망으로 들어갈 자들도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그 피 흘림과 이미 정해진 그 사망의 중간에 서있는 자들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그들에게 마지막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 안에 세상의 삶을 위한 666을 받지 않고 세상에서 광야로 나와 서로가 자신을 낮추며 하나되어 도망 다니는 영혼들에게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다스릴 그 왕국을 예비하게 하신다.
아버지께서 그 가운데 서있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마지막 은혜는 이것이니 그들의 안에 거하는 그 선과 악의 나무를 그들에게 깨우쳐주신다. 그러므로 그 시점에는 비록 인치심이 없다 할지라도 짐승의 수를 받지 않고 도망을 다니던 자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깨우침을 가지고 자신을 낮추며 다른 영혼들과 하나되어 그리스도의 나라로 살아서 들어간다. 그리고 은혜로 깨우침을 얻었으니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한 이방인의 신령한 교회에게 말씀의 기초를 배우며 거룩에 애쓴다. 그리하여 천년왕국에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을 물리쳤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 거룩한 몸의 생명을 허용해 자신의 신령한 몸으로 받으시어 그 천국의 끝에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영원한 셋째하늘로 그들도 함께 데리고 올라가시는 것이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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