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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에 안 보이는 어떤 왕이 굵은 베옷을 입은 한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나의 말이 담긴 이 영화를 보고 가서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하여라.” 왕이 보여준 영화의 내용은 이러했으니 산 밑에 젊은 여자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마을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음란했다. 그러므로 그 젊은 여자들도 자기의 남자가 있었으나 그 마을을 돌아다니며 돈 많은 남자와 6일 동안 음란을 행했다. 그러다 7일째가 되자 오늘은 나를 사랑해준 나의 왕에게 가 사랑을 노래하겠다며 그 마을의 북쪽 산중턱에 있는 높고 큰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젊은 여자를 가르치는 늙은 여자들이 있었으나 그 여자들도 자기남자를 버리고 높은 의자에 앉은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므로 늙은 여자들도 그 건물 안에서 6일 동안 다른 남자와 음란을 행하다 그 젊은 여자들을 맞이했다. 그리하여 7일째는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가 다 함께 하나되어 자기의 왕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되 그곳까지 다른 남자를 끌어들여 음란을 행하면서 즐거워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 왕이 이미 산 위에서 그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있었다. 한편 그 건물 뒤에는 펄펄 끓는 불가마가 그 건물을 향해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었으며 어떤 남자가 그것을 보고는 그 안에 거하던 모든 여자들에게 경고의 말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기울어진 가마에서 유황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나 건물의 여자들은 그 남자의 말이 듣기 싫었기에 그를 미워하며 핍박하다 잡아 죽였다. 하지만 그가 죽자마자 드디어 가마에서 유황불이 쏟아져 내리며 마을을 태웠고 땅이 갈라지며 모든 여자들이 다 땅속으로 내려갔다. 그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베옷을 입은 남자는 여자들을 찾아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다른 남자를 향한 마음을 돌이키고 여러분을 죽기까지 사랑해준 왕을 기억하며 그 남자만 섬기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라도 끓는 가마와 땅의 갈라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 산에는 음란이 없고 오히려 반석이 있으니 누구든지 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그 위로 올라가십시오.” 그러자 젊은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 그의 말을 듣고 믿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으며 늙은 여자들 중 한 명은 그 남자를 따라다니며 함께 심판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다른 여자들은 왕의 사랑보다는 돈과 자신이 높아지는 게 좋았으니 심판을 전하는 남자와 돌이킨 여자를 잡아서 이곳 저곳을 때리고 그 마을의 권세자들에게 넘겨주었다. 이에 마을에서 가장 높은 자와 법을 가진 자는 서로 상의해서 재판한 후에 그들을 고문하고 죽였다. 그리하여 결국 건물에서 음란을 행하던 여자들이 입을 벌린 땅속으로 먼저 내려가고 마을사람들도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가며 그 남자의 선포가 사실임을 깨달았으나 돌이키기에 너무 늦었으니 애곡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며 오직 진리만을 전하는 자들의 그 말은 영생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전에도 또한 당시에도 성전에 거하는 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늘 거치는 돌이 되었다. 그러므로 백성들 중에 자기의 생각을 따르는 불의하고 죄악된 자들은 그 거리끼는 여호와의 선지자들과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늘 회초리로 때렸다. 그리고 성전을 지키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성전으로 끌고 들어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때리고 나와서는 설교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며 자신의 의와 선을 드러내고자 결국에는 다른 사람을 죽이게 되어있으니 종교지도자들은 진리를 전하는 자들을 늘 없애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위가 없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왕이 있을 때에는 왕에게 허락을 받고 왕이 없을 때에는 대제사장에게 허락을 받아 성전 안에서 그들을 고문하고 살을 찢어 피를 흘렸으되 2천년 전에는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오로지 로마에게 넘겨 재판을 받게 한 후 고문하고 죽였다. 또한 이런 일들은 십자가후의 교회시대에도 동일했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도 동일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그들이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기 원하니 오직 진리만을 전하는 자들을 세상권세자들에게 넘긴다. 그러므로 임금과 총독이 그들을 넘겨받으리니 임금이라는 것은 그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요 총독이라는 것은 그 나라를 법적으로 감독하며 질서를 잡는 자이다.
한편 아버지께서 아들의 십자가로 택하신 교회는 전통과 종교에 거하는 자들에게만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요 세상의 권세를 잡은 자들에게도 미움을 받는다. 그것은 자기의 욕심과 영광만을 구하는 그들의 말과 행위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선포하는 그 심판의 말로 인하여 양심의 찔림을 받을지라도 사람들의 영혼을 이끄는 종교지도자들처럼 그 더러움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을 원치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행정적인 권세로 눈엣가시와 같은 144000을 잡아 감옥에 넣는다. 그리고 법원에서 법적인 권세를 가진 자들은 원수가 마지막 때를 위해 미리 만들어둔 그 법으로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리하여 그들을 때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로 때리고 때로는 굶기는 고통을 준 후에 거룩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목을 베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환난에서 그들의 피 흘림이 마쳐질 때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에 대하여 마지막 심판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사랑한다며 세상과 간음하던 자들 중에 환난복음을 듣고도 끝까지 광야로 나오지 않은 자들은 환난의 칼에 엎드러진다. 그리고 나서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이 음란한 세상에 거하는 모든 이방인들이 하늘에서 내리는 유황 비를 맞으며 갈라진 땅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을 위하여 목숨을 잃은 자들에게는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허락하시니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 내려와 왕과 제사장으로서 다스린다.
한편 오직 평화의 복음만을 증거하며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라간 자들의 그 죽음을 통해 세상의 권세자들과 이방인들에게 아버지께서 증거하시기 원하시는 것은 이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던 자들의 죽음은 선악의 죄로 인함이 아니요 또한 세상의 법을 어김으로 당하는 죽음도 아니니 오로지 그 나라의 왕과 법관들이 그들을 미워하여 죽였으되 그 미움은 곧 자신의 더러운 것이 밝히 드러날까 두려움으로 인하여 죽였음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는 자들이 죽음을 당하기 전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당당히 외치던 그 증거가 옳음이었음을 마지막에 자신이 영원한 사망으로 내려가며 알게 된다.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아비의 씨가 어미의 밭으로 들어가 자란 후 세상에 나와 집에만 있을 때는 세상과 세상의 학문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가기 전 가장 먼저 자기의 어미와 아비에게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니 사람들은 자기가 전혀 알지 못하던 것들을 아주 조금 알게 된다. 하지만 처음에 집에서 부모에게 조금 배운 바로 그것이 세상에서 오래 많이 배운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러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부모에게 조금 배운 그 초등학문 위에다 이제는 하나씩 하나씩 이것저것을 배우며 더 많이 쌓아간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자녀들에게 열심히 공부해 1등하고 돈 많이 벌고 높은 자가 되라고 가르치듯 거듭난 부모들과 또한 불신자라도 양심을 따르는 영혼들은 자기아이를 처음에 세상기초를 배우는 곳에 보내며 품는 마음이 있으니 다른 아이들을 배려하고 착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오직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또한 돈과 지식보다 생명이 중요하니 오고 가는 길에서 악한 자들을 만나 해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늘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차조심 해라.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마라.’는 말들을 해준다.
그러므로 자기자식을 처음 학교에 보내면서 당부하는 부모의 이런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를 깨닫고 있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실 때 그리스도의 그 마음과 같았다. 즉 12제자들과 70인의 제자들은 유대종교에서 사람의 유전과 교훈을 배우며 자라온 자들이니 진리를 말하면서도 진리가 무엇인지 몰랐으되 사람들의 그런 전통에서 나와 인자를 따르며 비로소 아버지의 그 뜻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니 그들은 평화의 복음을 조금만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목자 없는 양처럼 갈 길을 몰라 방황하며 죄로 인하여 애통하되 거룩케 할 진리가 없는 백성들을 보시고 그들을 보내시려 할 때 그들을 방해하며 핍박하기 위하여 이미 손을 펴고 있는 그 원수를 보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영적인 악의 세계에 대한 근심으로써 그들이 어떠한 일을 당할까 안심을 못하는 마음으로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결국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여호와의 백성들 가운데 살고자하는 자들에게 비취지 못하도록 어둠의 세력들이 한 영혼 한 영혼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진리를 전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말씀의 기초를 통해 아버지의 뜻과 복음의 비밀의 한 부분을 알게 된 자들도 이 말씀을 깨달으면 아버지의 때가 되었을 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다.
우선 뱀에게는 여러 가지 성품이 있으니 첫째 짐승들 중에 가장 지혜롭다. 하지만 그것은 원수의 지혜가 그들 가운데 있기에 지혜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모든 짐승들에게 알맞은 지혜와 능력을 공평하게 주셨으나 뱀은 자기의 욕심과 교만을 위해 원수의 말을 듣고 따랐기에 자신이 원래 아버지께로 받았던 그 선한 지혜에서 더 악하게 지혜로워졌으며 또한 모든 짐승들 가운데 가장 지혜롭게 변했다. 그리하여 다른 짐승들은 이미 사망이 자기 위에 앉아있을 때에는 머리를 내리고 가만히 사망을 기다리되 뱀은 그 가운데서도 사망에서 벗어나고자 상대방의 이곳 저곳을 날카롭고 빠르게 찌르고 나온 후 계속적으로 자기의 욕심과 교만을 이루어간다.
두 번째 뱀의 지혜는 이것이니 그는 자신을 해치는 적으로부터 피할 길을 항상 마련해 준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뱀은 때로는 흙 아래로 다니고 때로는 나무위로 다니기에 다른 짐승들에게 해를 잘 받지 아니한다. 또한 누가 자신을 해치려 해도 이미 마련해놓은 그 길로 빠져 나오게 된다.
셋째 뱀의 그 입은 참으로 작아도 턱을 빼고 입을 벌려서 큰 소도 산채로 삼키니 그 누구에게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빼앗기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오직 자기의 욕심을 위해 입을 벌리는 모습은 오직 원수에게로 온 지혜임을 알 수 있으니 육이 굶어 죽어가는 자들을 보면서도 자신이 쓰지도 못할 만큼의 물질을 붙들고 있는 자들과 또한 영혼들을 희생시키며 자기의 육적인 욕심과 사람의 헛된 영광을 취하는 그 거짓목자들을 보면 그들이 누구에게로 지혜를 얻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뱀은 누군가를 해칠 때에 오로지 상대의 약하고 아픈 부분을 이용하여 그곳으로부터 집어삼킨다. 그러므로 뱀은 다른 짐승들이 서로를 치고 박고 싸우며 피 흘리는 것을 가만히 보고 그들과 달리 먼저 상대의 아픈 곳과 약한 곳을 관찰한다. 그런 후 그곳을 공격해서 그곳으로부터 삼키기 시작하니 누가 뱀을 당하리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거룩과 복음의 한 부분을 알게 된 그 제자들을 어부로 보내시며 뱀같이 지혜롭게 행하라고 하신 것은 뱀의 이 마지막 성품을 배우라는 뜻이었다. 즉 자신이 물어서 그 생명으로 이끌 영혼을 잘 관찰한 후 그에게 접근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독사새끼들은 양들을 통하여 늘 자기의 육을 부요케 하며 세상에서 자신의 명예를 높이지만 진리는 주지 못하니 그 불쌍한 영혼들은 한걸음씩 사망으로 다가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에 거하는 모든 영혼들이 자기의 속안에서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음란과 혈기와 거짓과 미움과 비판과 교만과 위선을 애통하거나 그 죄에서 해방되기 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죄를 이기지 못하는 자신의 약함을 모든 자들이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그 갈급함을 견디지 못해 모든 영혼들이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들 중에 오직 연약한 자와 마음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자를 찾아내어 그들에게 신령하고 영광스런 그 부활의 생명의 말씀을 베풀어주는 것이 지혜로운 자이다. 그러나 만일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는 자들에게 전하면 아무런 열매도 없고 오히려 화만 부르게 된다.
한편 비둘기는 늘 자신의 위치를 알기에 항상 질서 있게 행함을 취한다. 또한 늘 자신이 거하는 처소가 있기에 하루의 일을 돌본 후에는 자기의 처소로 곧바로 돌아오니 이런 짐승은 순결하다. 마찬가지로 이런 사람도 순결하니 심성이 악한 자 외에는 누가 이런 사람을 보고 뭐라 말하리요?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비둘기와 같이 순결하라고 하신 것은 진리를 가진 영혼이 먼저 말씀에 순종하므로 자기의 행실과 말을 깨끗이 하여 다른 누가 뭐라 말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요 또한 저 사람은 참 의로운 자라고 보며 말할 수 있도록 옳은 행실을 취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순결치 않은 자가 복음을 전하면 ‘당신이나 잘하시오. 믿은 후에 나도 당신처럼 될까 두렵소.’라는 말을 듣게 되리니 교회의 안과 밖에 있는 이방인들을 더 망친다. 그리하여 망치며 망침을 당하는 자들이 많음은 전하는 자도 받는 자도 이미 원수가 펴고 있는 그 손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성이라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하되 당시 유대의 영적인 목자들이 백성들을 데리고 제사를 드리며 말씀을 전했던 것은 거룩을 위해서가 아니요 오직 자신에게 썩어질 육이 채워지며 자신이 사람들에게 얻는 헛된 영광을 기뻐하며 그 일을 행했으니 이 마지막 때에 타락한 목자들도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시면 엎드려 경배함이 아니요 육과 세상의 영광을 빼앗기지 않고자 반드시 찢어서 죽이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들 가운데 오직 가난한 백성들만 그 타락한 성전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의 피로 세우신 거룩한 초대교회로 불러내셨으니 그리스도를 따르며 죽기까지 순종하여 거룩에 이른 제자들은 모두다 그리스도와 같은 그 몸의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그들이 제자들에게는 돌아오려니와 제자들은 그들에게 돌아갈 수 없었으니 회개의 복음을 듣고도 성전에서 나오지 않은 영혼들은 목자든 양이든 이방인처럼 육과 세상이 그들의 우상이요 그들은 썩어질 헛된 것들을 취하며 불의와 죄를 쌓았기에 결국에는 모두다 사망으로 내려갔다.
한편 소돔과 고모라 땅이라는 것은 첫사랑을 빼앗긴 자들에 대한 심판이 아니요 불신자들을 위한 곳이니 이 세상에 거하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이루어지는 마지막 심판을 뜻한다. 그러므로 노아의 당시에 이 땅에 거하며 음란과 불의와 죄악을 행하던 모든 자들에게는 노아가 전한 그대로 물의 심판이 임했으나 아버지께서는 말씀에 순종해 세상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그 심판 전에 구원하셨다. 또한 아브라함이 음란과 불의와 죄가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에 불의 심판을 전했으나 말씀을 듣고도 거기서 나오지 않은 모든 자들에게는 아브라함이 전한 대로 하늘에서 소나기같이 내리는 불로 다 타서 멸망을 받았으되 심판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롯과 두 딸은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에 임한 불의 심판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에 아버지께서 온 땅에 내리시는 마지막 심판의 예표였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유황불의 비가 온 땅에 임하리니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 마음을 둔 자들은 자신의 소유를 가지고 갈라진 땅속으로 내려갈 것이요 그 심판에서 피할 자가 없음을 그들에게 알려주신 것이지만 거듭난 영혼들 가운데 의롭다 함과 거룩하다 칭함을 받은 성도들은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낙원을 이끌고 둘째하늘과 함께 다시 오실 그때에 아버지께서 택하신 일곱 교회를 통해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광야로 나오라는 말씀이 온 땅의 모든 자들에게 충분히 선포된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오직 환난복음을 믿고 마음을 돌이켜 세상에서 나오는 영혼들을 그 마지막 심판 전에 구원하심은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를 의롭게 보시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마지막 때에는 이러하니 자신의 속에 거하는 죄를 애통하는 영혼과 깨어있는 영혼은 그 심판의 말씀을 들었을 때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돌이킨다. 이때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들을 독수리의 날개로 업어 멸망 당할 이 세상에서 십자가아래로 이끄시니 그들은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거룩만을 이루어간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영과 혼과 육을 정결하게 유지한 지체들이 자신의 신랑을 공중에서 맞이하므로 그 신령한 생명에 이르고 거룩한 자들이 대환난의 침상으로 들어가 환난복음을 다 전한 후에 목베임으로 산 제사를 드리고 그 영광스런 생명에 이른다. 한편 환난복음을 듣고 세상에서는 나왔으나 두려움으로 영적예배를 드리지 못한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늘 자신을 낮추며 666을 받지 않은 영혼들과 하나되어 함께 도망을 다니다 살아서 천년왕국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의를 진리로 섬기는 교만한 자들과 음란과 불의와 죄가 넘치는 소돔과 고모라를 미워하지 못하는 자들은 진리를 보고도 듣고도 세상의 어둠으로 인해 깨닫거나 믿지 못하게 되어있으니 순종치 못한 그들은 결국 마지막 심판 전에 모두다 사망으로 들어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해 회개하고 영이 중생한 자가 만일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에 인자를 의지하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만을 따라가야 한다. 그리하여 거룩에 이른 자는 그 십자가 길의 끝에서 아들과 같은 그 거룩한 몸을 입고 부활하여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서 열국을 다스릴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라 그 거룩한 곳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을 보아도 고통 받거나 소멸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쁨과 자유를 누린다. 또한 천년왕국의 끝에 그리스도를 따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영원한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에도 시온산의 새예루살렘 성전에서 한 새사람으로 모여 아버지를 자유롭게 섬길 때마다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해지며 또한 그 영광스런 빛을 비추며 만국백성들을 다스리고 다닌다.
그런데 택함의 은혜를 받아 영광의 복음을 받고 따르게 된 자가 어찌 자신만 복음의 빛을 가지고 누리리요? 그러므로 유황불 못의 영원한 진노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영혼이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피를 믿고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명의 말을 눈물로 기도하며 전해주듯이 중생한 영혼들 가운데 아직까지 복음의 광채를 보지 못한 영혼들에게 십자가의 빛을 나눠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는 자를 일곱 영을 통해 추수하여 세상에서 건져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자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말씀에서 평안이라는 것은 복음의 비밀을 받은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시는 거룩하신 영을 뜻하는 것이며 평안을 빈다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명에 순종하는 종들의 인도를 받아 어린 양께 가도록 빛을 비추어준다는 의미다.
이처럼 복음의 광채를 가진 자가 아버지의 때에 그리스도께로 보내심을 받아 누군가에게 평안을 빌었을 때 즉 거룩하신 영께 이끌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빛을 합당하게 받는 영혼에 대해서는 거룩하신 영께서 자신의 빛들을 통해 그를 그리스도께 인도하신다. 그러면 그는 날마다 죽는 고난가운데서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말씀을 따르며 순종하므로 아버지의 임재와 평화와 사랑을 얻어 자신의 안에 있는 죄를 이긴다. 또한 사망이 쏘는 죄를 이긴 그가 마지막에 멸망 받을 이 세상도 십자가로 이기니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아버지의 뜻에 이른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 그리하여 오직 평안의 복음에 순종한 자에게 그 복음의 약속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동일한 복음의 빛을 전해도 그것을 받지 않는 자의 경우에는 그 평안이 그것을 전한 자에게 돌아오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먼저 거듭난 어떤 영혼에게 그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얻게 되는 아버지의 임재와 평화와 사랑과 거룩과 십자가의 죽음과 거룩한 육체의 영광을 전한다. 이때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자신이 전통에서 들어온 것을 붙들고 그 영광의 복음을 합당치 않게 여기게 되니 빛을 받거나 믿지 않는다. 그러면 그 빛은 그에게서 없어지며 거룩하신 영께서도 빛을 통해 그를 어린 양께로 인도하지 아니하신다. 그리하여 전하는 자의 그 빛과 인도하려는 빛도 거부한 그에게 전하여지지 않고 다시금 거두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되면 빛을 가진 거룩한 자들과 거룩하지 않은 자들은 서로가 더 이상의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한다. 그 이유는 전자는 말씀을 바꾸거나 복음을 전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알기에 사람들이 빛을 따르며 아버지의 영광에 이르도록 오로지 복음의 비밀만을 전하되 후자는 자신이 전통에서 들어온 말을 따르며 계속 자기의 생각과 지식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자와 거룩하지 않은 자가 어찌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요? 오히려 그들의 관계가 끊어지니 빛을 가진 자가 더 이상 발걸음을 그곳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옮길지라도 그는 일단 아버지의 때가 되었을 때에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순종해 빛을 전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발 아래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는 말씀의 의미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을 때 배우려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의 생각대로 풀어서 오직 사람의 유전과 교훈에 따라 이렇게 가르친다. “전도자는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평안을 빌어야 합니다. 만약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면 그에게 임할 것이고 합당치 않으면 자신이 도로 얻습니다. 또한 복음전하는 사람을 영접하지 않거나 핍박하는 자에게는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려야 합니다.” 이때 어리석은 자들은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하다 받지 않으면 교만한 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이 말씀을 인용하며 돌아선다. 심지어 거부와 핍박을 당한 후에 안 믿으면 지옥의 땔감이 된다는 저주를 내뱉는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신이 말한 그 복음의 뜻도 모르고 또한 평안을 누가 언제 누구에게 전하는 지도 모른다는 것을 증거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자신도 현재 자신의 발을 털었던 그들과 같은 늪에 거하고 있으니 거듭나고도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환난이 시작되면 세상보다 더 먼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자신을 따르며 진리를 배우던 열두 제자와 또한 자신을 따르는 다른 영혼들 중에 칠십 인을 택하여 진리를 깨닫고자 방황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보내셨다. 그러므로 12은 전하기 어려운 예루살렘성전을 향해 70은 성전 이외의 유대마을들로 진리를 전하러 갔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떠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과 또한 진리를 전하는 곳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 다음과 같이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우선 지팡이에 대하여는 원수가 서기관들을 통해 마태와 누가의 복음은 바꾸었으나 마가의 것은 그대로 두었다. 그러므로 지팡이는 가지는 것이 옳은 것이요 당시 유대인들은 지팡이를 오직 세 곳에 사용했다. 첫째 앞이 보이지 않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니 앞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으로 확인했고 둘째 사막에 나가는 자들이 취하는 것이니 사막에서 쓰러지지 않고 또한 악한 짐승을 그것으로 막았고 셋째 선생으로 불리는 자들이 들고 다녔으니 그들의 학벌이 그곳에 적혀있기에 예를 들어 바울은 가말리엘이라는 이름이 적힌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그리하여 그들이 가르치는 자들임을 알아보고 갈급한 영혼이 다가와 머리를 숙일 때 그들이 앉아서 한 가지 두 가지를 가르치고 떠났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12과 70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적힌 지팡이를 취했으니 이 마지막 때에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오로지 진리와 거룩을 말하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만을 전하되 아닌 자들은 자기의 학벌을 보이며 말씀을 이용해 자기의 생각과 뜻을 전하고 있다.
둘째 금과 은은 가져가지 말고 두 벌의 옷과 한 켤레의 신을 취하라고 말씀하셨으나 마태 마가 누가 세 곳이 다 변경되어 있다. 금과 은은 물질을 의미하는 것이니 아버지의 일을 하는 자들이 배고프거나 어디에 누울까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께서 내려주시는 것을 아버지의 마음에 합당한 자를 통해 필요한 만큼 필요한 때에 얻되 아닌 자들은 떠나기 전에 가장 먼저 자신을 후원해줄 자들과 돈을 챙긴다. 한편 두 벌의 옷과 한 켤레의 신은 그들이 갈아입거나 신을 것이 아니요 가르치는 자들의 모습을 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유대교의 전통에서 가르치는 자들은 옷과 신발도 백성들과는 다른 것을 취했으니 그것을 보고 저 자는 가르치는 자라는 것을 알고 다가와 ‘내게 가르쳐주소서.’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교사의 모습을 취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거룩하신 아버지의 종으로부터는 반드시 거룩한 진리를 얻되 아닌 자들은 양쪽 팔에 세 줄이 붙어있는 옷을 즐겨 입고 염소들은 그것을 신뢰한다.
한편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전할지에 대한 말씀으로써 첫째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거저 받은 것은 아버지께로 이끄는 말씀과 선물 두 가지였으니 그들은 가장 먼저 거룩을 전했으며 그 말씀을 듣고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 흑암을 쫓아내며 병든 자를 치유하므로 많은 기적들도 베풀었다. 또한 거룩에 애썼으되 완전한 거룩에 이르지 못한 자들의 영혼을 위해 아버지께서 그 육신의 기간을 더 늘려주셨으니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능력을 12에게는 일곱 번을 70에게는 오로지 세 번을 허용하셨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독사새끼들은 은사와 말씀을 통해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과 함께 하얀 봉투를 기쁘게 받고 사람들의 칭찬과 자신의 높아짐을 즐긴다. 게다가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회개와 십자가의 죽음과 영광의 복음도 아니요 오직 육과 세상의 복음이니 그들의 그런 열매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님을 밝히 증거한다.
둘째 성이나 촌에 들어가 합당한 영혼을 찾으라고 하셨으니 성과 촌을 알려면 먼저 회당에 대해 알아야 한다. 유대인에게는 두 종류의 회당이 있었으니 우선 회당장이 백성들을 모은 후 시간을 정하면 바리새인들이 나와 말씀을 가르치는 곳은 성전회당이요 장로들과 바리새인들이 각 마을로 나가 그 마을사람들을 모아 말씀을 가르치는 곳은 각 마을의 회당이니 이곳은 백부장과 천부장이 그 마을의 백성들에게 공적인 말을 전할 때도 이용했다. 고로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신 곳이 각 마을의 회당이요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회당이 바로 성전회당이다. 그런데 성이나 촌이라는 것은 성전의 안팎을 뜻하니 성은 성전 안에 거하는 자들 즉 종교지도자들을 뜻하는 것이요 촌은 성전 밖에 거하는 자들 즉 성전시장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일반시장에는 물건도 팔고 음식도 팔되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이 문안 받기 좋아하던 그 성전시장은 오직 짐승과 성전제사를 위한 물건들만 파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깨달아야 할 것은 이것이니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진리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전통에 거하는 목자들과 양들에게도 공평하게 전해진다.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 서원을 잊지 않은 신실한 자들과 첫사랑을 품고 깨어있는 영혼들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사망으로 이끄는 그 위치에서 내려와 진리를 따르며 생명을 얻되 바울처럼 주님을 따르고자 육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버리는 자들은 소수다. 또한 12은 성이나 촌에서는 오히려 핍박을 받았으니 그들은 오직 가는 길과 성전의 변방과 돌아오는 길에서 능력과 병 고치는 선물을 행했다.
한편 합당한 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이렇게 찾는다. 종교와 전통에 갇힌 자들에게 오직 ‘구세주’라는 말만을 크게 외치면 많은 무리가 공평하게 그 동일한 말을 듣지만 그들 가운데 영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영혼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눈빛을 보인다. 그리하여 바로 그 영혼에게 그 생명을 전하는 것이니 사람은 오직 전할 뿐이요 영혼의 추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은혜가운데 거하는 종들이 그 일을 행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는 한 영혼을 불쌍히 여겨 아버지께로 부르짖고 기다리면 종들이 그 길을 다 예비하니 때가 되면 나가 오직 십자가와 부활만을 전하고 추수는 종들에게 맡긴다. 그러나 진리를 배우지 않고도 전하는 자는 교만한 자이니 전하는 것만이 아니요 그 길을 내는 것도 또한 구하는 것도 자신이 다 하려고 애쓰며 이곳 저곳에서 아무에게나 전하다 결국 첫사랑을 잃고 마음 없는 행위에 빠져 자신을 드러낸다.
셋째 기름을 발라 고치라는 것은 기름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그 네 가지 강물들 가운데 하나인 생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회개하는 자들에게 생수에 대하여 알렸으며 종들도 그곳에 깨끗한 생수를 발라 그 더러움을 씻어내니 불치병자들이 온전케 되었다. 이때 제자들은 아버지께서 주신 그 네 가지 물의 은혜에 대해 알려주기를 원했으나 병든 자들은 병이 나았으니 더 이상 알고 싶은 마음이 없어 묻지를 않고 오히려 많은 자들이 그 자리를 속히 떠났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진리를 모르는 자가 무슨 말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면 그의 말을 듣고 따라서 행하는 자들도 자기 입으로 말하고도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자기가 지금 왜 그 행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이 중생한 자는 진리를 순종함으로 혼과 마음의 거룩을 얻게 되니 어찌 진리를 모르는 자의 행위와 말이 거룩해지리요? 오히려 그들은 예수이름을 이용해 세상으로 들어가 세상 것들을 취하며 자기의 생각을 진리로 따르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므로 둘 다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으니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먼저 나가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전하라고 하시거나 또는 그 어떤 말과 행위를 원치 않으시고 오직 진리만을 가르쳐주셨다.
그러다 진리를 배우던 제자들이 진리의 한 부분을 깨달았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방황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를 깨달은 그 제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셨다. 하지만 그들을 보내시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처럼 질서가운데 계시니 82명 가운데 70을 먼저 전하기 쉬운 이스라엘의 모든 마을로 보내셨으며 12은 독사새끼들이 차지하고 있던 성전 쪽으로 보내셨다. 그러므로 전자는 갈릴리를 비롯해 사마리아와 유대의 각 마을에서 하루 이틀을 머물며 진리를 가르쳤으되 예루살렘으로 갔던 12은 오직 해가 올라와서 갔으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옴은 성전의 주변에 거하던 어느 누구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거부당할 것을 모르고 그 헛된 일을 시키신 것인가? 그렇지 아니하니 당연히 모든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12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심히 패역한 자들에게 보내신 이유는 그들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즉 12은 나중에 자신이 없을 때에 그 영혼들이 거부한 것을 기억하며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손에 있으니 사람의 손에는 없음을 깨닫고 율법이 아닌 의문에 붙들린 그 영혼들이 오직 불쌍하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전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계획대로 나중에 맛디아와 11는 자신이 거절 받았던 그 날을 기억하며 죽는 그 순간까지 오직 진리만을 담대하게 전하되 자신을 죽이는 자들도 불쌍히 여겼다.
당시 예루살렘으로 보냄을 받은 베드로는 우선 성전 앞에서 장사하는 한 영혼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전에는 율법과 계명이 진리인줄 알고 따랐소. 그러나 율법도 계명도 그것을 만드신 이가 진리요. 그러니 그것은 오로지 진리의 한 부분밖에 되지 않소이다.” 이에 성전에서 매매하던 자는 ‘그것을 만든 이가 누구요?’라고 물었고 베드로는 ‘그가 바로 그리스도라 하는 사람이요.’라고 대답하자 성전을 통해 육의 이익을 얻고 있던 그는 베드로의 양쪽 뺨을 때리면서 말하길 ‘우리가 율법과 계명을 수없이 지켜왔으며 모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가 그것을 지키므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도다.’라고 소리쳤다. 그의 말을 듣자 베드로는 그 영혼에게 다시 ‘그렇소이다. 그러나 계명과 율법이 먼저요 율법과 계명을 준 자가 먼저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육신의 배를 채우고자 성전에서 일하던 자는 대뜸 준 사람은 모세라고 답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모세가 아니요 모세는 받은 자이니 준 자는 여호와이시며 여호와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소이다.’라고 말하니 성전에서 사고파는 행위는 내가 아니요 제사를 위한 것이라는 의로움을 품고 있던 그는 베드로의 말을 듣자 또다시 양쪽 뺨을 때리며 ‘네가 그리스도냐?’라 하되 성격이 불 같은 베드로는 쌍욕을 하며 가판대를 둘러엎지 않고 ‘내가 아니요 나는 그를 따르는 제자요’라고 했다. 이에 그는 땅에서 돌 하나를 집어서 던지며 ‘너나 율법과 계명을 지키라. 그리고 그 자가 진리를 가르치는지 어찌 알 수 있겠느뇨? 그런데 넌 랍비에게 가르침은 받았느뇨? 네가 어디서 말씀을 배웠느뇨?’라고 소리를 지르며 베드로를 향해 계속 돌을 집어 던졌으니 그는 다수의 힘으로 때렸고 베드로는 맞았다.
이와 같이 사람은 진리를 위해 자신이 죽으면서까지 다른 자들을 불쌍히 여기므로 자신이 진리를 따르고 있음을 증명하되 유전과 교훈을 듣고 지키는 자들은 자기와 생각이 맞지 않는 영혼들을 자기의 생각으로 비판하고 미워하고 저주하다 결국 피 흘려서 죽이므로 자신이 진리를 대적하는 자임을 그 미움과 살인이 증거한다. 그런데 당시 12이 핍박이 가장 심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다른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전했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12제자들과 70인의 전도대를 진리를 위해 보내실 때 그들에게 명하신 바로 이 말씀 때문이었으니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말씀에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뜻이 담겨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70인과 달리 12에게는 이방인과 사마리아를 거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 쉬운 곳에 가서 전하지 말고 오직 앞날에 가장 큰 핍박이 있을 그 성전의 앞에 가서 전하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이 그 시기부터 이미 마지막 날의 준비를 하여 자신이 둘째하늘의 낙원으로 승천한 후 닥칠 그 핍박의 날에도 오직 진리만을 붙들고 담대히 나갈 수 있게 하려 하심이었다.
둘째 차라리 그리스도에게 가라고 하면 말이 어색해지니 사람들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유대인들로 본다. 그러나 양이 누구인가를 깨달으면 그들이 가서 오직 진리만 전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유대인들에게 어린 양은 속죄제사의 제물로 쓰이는 짐승이니 구약예언에 따라 이스라엘의 어린 양은 오직 인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짐승의 피가 아니요 깨끗한 피로 구속 받을 수 있기에 제자들이 그 거룩한 피를 전했던 것이요 또한 그 어린 양에게로 나올 수 있는 그 길을 예비하려는 것이었다. 즉 살고자하는 갈급한 마음이 있으나 어린 양을 잃어버린 불쌍한 백성들로 하여금 온전한 거룩과 부활을 위해 이스라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로 가게 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할례 받은 유대인이나 거듭난 이방인이나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는 고난은 원치 않고 그저 부스러기만 드린다. 즉 자기의 생각을 따르고 세상의 풍속을 좆고 자기의 의와 선을 구하면서 돈과 행위를 드리는 것이 더 쉽고 또한 자기의 육신에도 유익이 되니 십자가로 나가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인자의 그 거룩한 피를 통해서가 아니요 오히려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 함을 인정받기 원함이되 사람은 누구나 마음 안에 죄가 있으니 스스로는 의롭거나 거룩하게 되지 못한다.
또한 자기의 생각을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할례가 있든 없든 중생이 있든 없든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 교회를 다니는 불신자들은 이 말씀을 보고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도 사람들의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은 이미 교만이 하늘에 닿았으니 자기 입으로 이방인보다는 차라리 유대인에게 전하라는 이 말씀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한 뒤 아직은 때가 아니니 먼저 유대인에게 전하라는 뜻이요 또는 이방과 가까운 주변지역부터 전하라는 뜻이라며 억지로 풀어서 가르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공생애기간에 이미 이스라엘과 그 부근의 이방지역들을 다니셨으니 사람이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함은 오직 자신의 속에 거하는 그 완악한 죄로 인함이다. 그리하여 자기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키는 영혼만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니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대로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는 자에게만 진리의 깨달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반면 누군가 진리를 알고 싶어 이런 말들을 낸 사람을 지혜롭게 여기며 ‘생명과 연합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되 사실 나도 잘 모른다고 대답하면 그는 진리를 모르는 영혼들 가운데 솔직한 자다. 하지만 깨닫지 못하는 영혼들 중에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라고 대답하는 자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도 무슨 뜻인지를 당연히 모른다. 그러므로 생명과 연합이 무엇이냐고 질문한 자가 이제는 그리스도와 연합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면 연합의 뜻과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 받는 것’이라며 또다시 깨닫지 못하고 있는 말을 한다. 그래서 질문한 자가 계속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 받는 것은 또 무슨 뜻이고 어떻게 받느냐고 물어보면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기 때문에 죄가 더 이상 주관할 수 없다.’며 자신이 말하고도 설명하지 못하는 유전과 교훈에 속한 말을 반복한다.
이처럼 사람은 배우는 곳에 들어가거나 성경을 가르친다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배우되 가르치는 자가 만일 진리의 깨달음이 없으면 배운 자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자가 정작 그리스도를 따르며 진리를 배우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가르치기를 좋아하며 또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유전과 교훈을 따르는 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안에 자신이 높아지고 싶은 그 마음이 이미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와 이 마지막 때에 소경들이 소경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자리잡으려고 들어온 그 원수의 교만을 처음에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따르며 진리의 한 부분을 깨달은 70인 전도대와 12제자들을 백성들에게 보내시기 전에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허락하셨다. 당시 성전의 목자들은 탐욕이 심한 개들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탈취한 것들을 집에 쌓아두었으나 가난한 자들이 찾아와 배고프니 빵을 좀 달라하면 줄 것이 없다면서 그냥 먹던 것을 먹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계속적으로 제사를 인도하며 백성들을 모아 말씀을 전하며 살진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털을 입되 양 무리는 먹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두루 다니시며 그 백성들을 보시니 성전에 말씀을 읽는 자들과 가르치는 자들이 나와 있었지만 그 백성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에 거하면서도 짖지 못하는 개들을 꾸짖으시되 특히 자기집에 쌓을 수 있는 말씀을 전하는 바리새인들과 제사를 인도하는 제사장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꾸짖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목자 없는 양같이 배고프고 목이 말라 고생하며 유리하는 그 백성들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다. 하지만 자신을 따르던 영혼들에게는 진리의 한 부분을 가르쳐주셨으니 그들은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12제자들과 또한 자신을 따르던 영혼들 가운데 70인을 택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을 아버지처럼 온전케 되기 원하는 백성들과 가난한 영혼들을 위해 보내시며 주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니 그 비유의 뜻은 이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기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키고 자신을 따라오는 영혼에게 진리를 주시며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런 정직한 영혼의 마음 눈을 열어주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든지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덩이 안에 거하는 자들은 이 비유를 이용해 더 많은 자들이 선교사로 나가 복음을 전하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헌금하자고 가르치되 그들의 마음은 오직 육과 세상에 있으며 또한 자기의 생각과 의를 내려놓지 않았으며 또한 진리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세상보다 믿는 자들을 먼저 심판하시기 전에 그들 가운데 돌이키는 자들에게는 광야에서 살지고 좋은 꼴을 먹이시되 욕심과 교만을 위해 끝까지 짖지 못하는 개들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이 세상과 함께 멸하신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p cxspfirst"="" style="margin: 0px; padding: 0px; line-height: 1.6; color: rgb(0, 0, 0); font-family: "Malgun Gothic"; font-size: 12pt; word-break: keep-all;">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 말씀은 2천년 전에 역사상 실제로 있었던 일이요 앞으로 마지막 때에 동일하게 있을 그 일에 대한 비밀이 담겨있다. 그런데 그 일은 아버지의 아들로서 이 땅에 인자로 오셨던 나사렛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른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되 그렇지 못했던 성전의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동일한 일이 은혜시대가 끝나고 환난 때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도 그대로 이루어지리니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잘 깨달으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생명에 거할 수 있다.
구약의 예언대로 이 땅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는 아버지를 믿는 유대인들 가운데 가난한 백성들에게 사랑을 받으셨으나 성전을 지키고 있던 자들에게는 전혀 환영 받지 못하셨다. 하지만 메시아를 사랑한 소수의 백성이든 사랑하지 않은 다수의 백성이든 그리스도를 따른 제자들이든 성전에서 제사를 인도하며 설교하던 목자들이든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로 의롭고 거룩한 자에게는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주고 불의하고 죄악된 자에게는 악한 자의 부활을 주기 위해 메시아가 심판 주로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모세를 통해 받은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함께 선지자를 통해 받은 예언도 있었으나 이미 광야생활을 할 때부터 장로들과 레위자손의 말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메시아에 대한 유전과 전통의 가르침도 있었다. 하지만 성전의 목자들은 모세오경을 주로 가르치며 예언도 전했으나 자신의 혀가 만들어내는 유전과 교훈을 더욱더 강조해서 가르쳤다. 이처럼 목자들은 모세율법과 예언보다 자기들의 유전과 가르침을 더 전했으며 그로 인해 백성들은 그것을 더 많이 들어오고 있었으되 참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은 목자들이 전하는 설교가 옳은지 그른지 구약을 펴 비교하지 않고 ‘목자들의 말이니 당연히 맞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성전목자들이 가르치는 유전과 전통의 권위는 당연히 기록된 토라와 예언보다 더 위에 있었고 백성들은 날 때부터 토라를 미간과 손목에 매고 늘 외우면서도 스스로 세뇌를 당했던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이전부터 들어오던 메시아에 대한 유전과 전통의 가르침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는 이것이었다. “거짓메시아가 오면 그는 백성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로도다. 그러므로 그가 오면 이 성전을 무너뜨리므로 너희들이 여호와로부터 흩어질 것이로되 너희들은 그 자를 오히려 기뻐하겠노라. 그러나 반대로 성전을 지키는 자들은 오히려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겠도다. 그것은 성전을 지키는 자들이 그 성전으로 인하여 백성들을 오직 여호와께로 묶으려 함이로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예루살렘성전을 무너뜨리신 후에 그들을 자기에게로 오게 하여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임을 가르치시므로 백성들도 오직 인자를 통하여 아버지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리셨다. 또한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므로 거룩한 것이 아니요 날마다 그 거룩의 길을 걸어야 함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목자들은 크고 화려한 그 성전의 자리에 앉아 자신이 얻는 썩어질 육의 부요와 영광에 마음이 있었으니 성전의 가르침은 ‘육 일 동안은 세상에 나가 열심히 살되 거룩한 날은 오직 거룩하게 지켜야 함이로도다.’라며 오히려 백성들을 세상으로 흩어지게 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입을 벌린 독사처럼 자기의 유익을 위해 백성들의 영혼을 육과 세상으로 이끌되 말씀을 이용하는 그들을 독사새끼들로 보셨고 성전목자들은 메시아를 매우 미워했다.
또한 당시 성전목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수의 영혼들을 이끌고 있는 목자들처럼 지 애비와 애미 때부터 육의 풍성함과 세상의 명예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들이 만일 성전에서 나와 메시아를 믿고 따르려면 자기의 손에 있던 부와 명예를 다 내려놓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으니 자신에게 육의 풍성함과 영광을 가져다 주고 있는 그 예루살렘성전을 무너뜨리고 있는 메시아를 환영할 수 없었다. 또한 거룩의 일을 하는 그들이 정작 거룩에 마음이 없었으니 마지막에 십자가를 통해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분명히 보고도 지금까지 참된 메시아를 거부하며 신명기18장의 유전을 들먹이며 예수를 죽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되 666을 넣어줄 가짜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환난 때에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마음을 둔 목자들도 마지막 때가 되면 택함 받은 일곱교회를 미워하며 이단으로 정죄하되 전통을 이용한다.
유대인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르치며 들어오던 두 번째 유전과 전통은 이것이었다. “처음에 오는 자는 거짓된 자요 나중에 오는 자가 진짜이니 처음에 오는 자는 백성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요 성전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로되 둘째로 오는 진짜 메시아는 너희들과 함께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의 그 민족을 되찾아 해방과 평화를 주겠노라.”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은 유대를 침략한 로마와 싸워 해방을 얻는 것이 아니요 자신의 마음 안에 거하는 선악과 싸워 죄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니 오히려 그들에게 이웃민족을 불쌍히 여기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천년왕국의 안식은 은혜시대와 환난시대가 끝나고 인자의 재림 후에 이루어지고 영원한 안식은 그 천국의 끝에 영원한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 시작된다. 그러므로 가난한 백성들은 그 가르침이 아버지의 사랑과 공의임을 깨닫고 거룩한 성전의 복음을 이루고자 메시아를 사랑하며 따라다녔다. 그러나 성전목자들과 다수의 백성들은 자기의 원함을 이루어주지 않는 그리스도를 두 번째 유전과 전통에 따라 가짜로 여겨 십자가에 못박고 지금까지도 자신의 거룩에 애쓰지 않고 이웃에 거하는 나라들과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무엇을 위해 그 오랜 싸움을 하고 있으며 또한 언제까지 그렇게 칼과 총을 들고 전쟁을 연습할지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적그리스도와 함께 3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의 완전한 해방을 얻고 전쟁의 끝에 평화를 맺을지라도 나중에 가짜메시아에게 버림받는다. 하지만 그 버림받음을 통해 가난한 백성들은 오히려 깨달음을 얻어 2천년 전에 오신 나사렛예수를 메시아로 믿게 된다. 또한 그들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시 토라와 예언을 보니 그때서야 비로소 그들의 마음에서 거룩의 믿음이 회복되어 그리스도의 재림을 약속한 신약도 믿는다. 그러므로 가짜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하나로 묶고 666을 들고나왔을 때 그들이 이방민족의 일곱 교회와 하나가 되어 함께 싸우되 목 베임으로써 그 원수와 세상에게 넉넉히 승리한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독사새끼들 가운데 바울처럼 뒤늦게 성전에서 돌이킨 소수가 다시금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며 또한 열방의 전통에 거하는 영혼들 가운데서도 오직 소수가 돌이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던 군중들과 병든 자들과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과 가룟유다는 모두다 유대인들이기에 죄에서 자유케 하는 권위나 죽은 자를 살리거나 병 고치는 능력이 오직 여호와께 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나사렛예수라는 그 인자가 아브라함이 받은 그 복음과 부활의 언약에 이르게 하는 바로 그 메시아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즉 교회시대로 말하면 이방인의 믿는 자들은 이미 보고 들어서 진리와 생명은 그리스도임을 믿고 있지만 문제는 자신의 목자들에게 듣고 있는 그 말씀들이 2천년 전에 십자가를 지신 바로 그 그리스도께로 나온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냐 아니면 사람의 유전과 전통의 가르침에 속한 비 진리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가난한 백성들은 유전과 전통의 가르침에 의해 거짓메시아인 인자를 어떻게 구별했으며 그리하여 사망으로 이끄는 성전에서 돌이켜 나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었는가?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에는 어떻게 유전과 전통의 수많은 비 진리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참된 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때나 교회시대나 마지막 때나 참으로 쉽고 간단하고 정확하고 이성적이고 인격적이니 자신의 속마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때 또한 그리스도의 평화의 복음을 들을 때 과연 무엇을 믿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볼 때에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았기에 육적이고 세상적인 복과 형통처럼 보이는 말씀들이 있다. 또한 말씀을 전할 때 자기의 생각을 넣어 사람들을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에게로 이끄는 목자들도 있고 거룩에 마음 없는 율법의 행위로 인도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전통은 사람의 유전과 교훈을 전하며 들어왔으나 성경에는 고난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따르며 죄와 세상을 이기고 영광스런 부활에 이르는 십자가복음도 밝히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에 다수가 전자의 말을 달콤하게 여기며 따르고 있으니 후자보다는 전자의 말에 더 권위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공적인 복음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원수가 주는 그 육과 세상의 시험에서 승리하시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사람들에게 썩어질 육을 채우시거나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의 높은 곳에 앉히시거나 사람의 생각과 의와 선으로 이끌게 하시거나 거룩에 마음이 없는 행위와 열심으로 이끄시기 위함이 아니요 오직 십자가의 물과 피를 통해 그들의 몸이 성전이 되게 하시어 아버지와 하나되므로 평화를 이루게 하심이었다.
하지만 믿는 자들 가운데 다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십자가를 볼 때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와 또한 이 세상을 이긴 후 거룩한 몸을 입고 부활에 이르는 믿음보다는 자신이 전통에서 들어온 것들을 믿음으로 바라보니 멸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서 돌이키지 못한다. 또한 자기생각과 지식으로 푸는 말씀을 끝까지 진리로 붙들리니 마지막 때에도 전자는 후자를 미워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끝까지 자기의 생각과 세상을 따르는 목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영혼들은 세상에게 버림을 받고도 끝까지 바빌론에 남는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펴 비교한 후 거기서 나온 영혼들은 광야에서 거룩의 믿음을 회복하리니 어떤 이는 휴거로 어떤 이는 목베임으로 어떤 이는 666을 받지 않고 다른 지체들과 함께 도망을 다니다 살아서 천국에 들어가 생명을 얻는다.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눈이 감기면 음란한 것들을 못 보지만 거룩하신 말씀도 못 본다. 입이 닫히면 거짓말과 욕과 비판을 못하지만 복음도 못 전한다. 귀가 막히면 세상의 헛된 말들을 못 듣지만 말씀도 못 듣는다. 다리와 팔과 몸이 구부러지면 세상에 들어가 썩을 것을 거두지 못하지만 감사의 찬양과 시를 부를 때 성소를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똑바로 서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는 모태에서 나와 1년 안에 혹은 태어나면서 불치병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엔 온전하다 나중에 성장하며 얻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다음과 같이 각기 다른 원인이 있다.
우선 태어날 때 혹은 태어나 1년 안에 얻은 연약함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아버지의 그 영광을 위함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몸의 한 부분이 상하게 되는 것을 허락하신다. 그 이유는 첫째 아버지께서 그것을 허용하시므로 그들이 그 몸을 가지고 죄를 범하지 아니하게 하심이요 둘째 그들에게 자신의 연약한 몸이 낫고자 하는 소원과 더불어 그 썩어질 육신을 벗은 후에 얻게 될 그 거룩한 육체의 소망을 품게 하심이다.
그런데 이렇게 택함 받은 자들 중에 아버지의 그 마음과 선하신 뜻을 이해하며 감사하는 영혼이 있으니 그는 아버지의 그 영광만을 소망하기에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온전하지 못한 몸을 가지고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세상으로 들어가거나 자기의 욕심을 위해 그 몸을 죄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려서부터 오직 아버지와 아들을 믿고 의지하며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그 때를 기다리며 견뎌내니 함께하는 그의 가족들도 고난이 아니요 오히려 소망 중에 기뻐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때가 되었을 때 그가 온전한 몸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그의 연약한 몸을 치료해주신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가족이 그 거룩하고 신령한 공동체 안에서 영과 혼과 육의 거룩을 이룬 후 그 거룩한 육체를 얻어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똑같이 택하심의 은혜를 받았어도 아버지께서 베푸신 은혜를 거부하고 감사치 않는 자가 있으니 그 영혼은 우선 영원한 셋째하늘에 계신 영혼의 아버지를 원망하고 또한 자신을 그렇게 낳았다며 육신의 부모도 원망하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특별한 은혜를 받지 못한 일반의 사람들을 시기하며 질투한다. 그러나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을지라도 원수와 같은 마음을 품는 영혼들은 아버지의 그 선하신 뜻과 반대로 나가게 되어있으니 그들은 헛된 영광을 얻고자 오히려 온전치 못한 그 육신을 이끌고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불평과 원망과 시기질투로 자신을 감싼 후 아버지의 은혜를 내팽개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과 바꾼 자들의 가정은 당연히 지옥으로 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그 영광에도 이르지 못한다.
반면 하나님의 그 영광과 상관없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그렇게 된 경우는 그의 죄로 인한 것이니 예를 들어 한 영혼이 앞을 못 본다. 그것은 그가 눈으로 범죄를 하였기에 아버지께서 허용하신 것이되 거기에도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있다. 즉 전에는 온전했으나 자신이 범한 죄로 인해 상한 자기 몸의 한 부분을 보면서 이제는 그가 그 죄에서 돌이키길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죄를 돌이키므로 회복된 자도 택함 받은 자들과 함께 거룩을 이루어가되 자기의 몸이 상한 것을 날마다 보면서도 돌이키지 못하는 자는 오히려 그 죄를 붙들고 멸망 받을 이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당시 입이 닫힌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앞으로 이끌려 나온 그 영혼은 두 번째의 경우였다. 그러므로 그 영혼은 성인이 되었을 때부터 계속해 그 입술에서 범죄한 것이 세 가지였으니 첫째 그는 바리새인들에게 설교를 들으면서 오히려 말씀을 늘 비판했고 둘째 자기가 원치 않는 말씀과 찔리는 말씀을 변경하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도록 늘 방해했고 셋째 아버지와 아들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의 그 입술에서 신령한 말들이 나온 것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범죄한 영혼에게도 선하신 뜻을 베푸신다 하셨으니 그가 입으로 범죄하였기에 결국 아버지께서 그것을 허용하셨다. 그러므로 흑암의 세력은 그의 죄를 통해 그의 입을 합법적으로 붙들었으니 그는 48세가 되기까지 오랜 세월을 더러운 입을 열지 못하고 살다 그리스도를 붙들기 위하여 꼬투리를 모으고 있던 그 바리새인들에게 이용을 당하게 된다. 즉 바리새인들은 입이 닫힌 그 영혼을 그리스도께 데려가므로 그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는지 또한 무슨 말을 하는지를 관찰하며 기록하고자 했으니 그를 찾아가 거짓말로 꼬였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꼬임에 빠진 그 영혼을 그리스도께 데려와 그리스도의 앞에 세웠고 서기관들은 그리스도의 입과 행동을 지켜보며 기록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 사람들의 앞에 서서 입을 열어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지 그들의 속마음을 잘 알고 계셨다. 또한 범죄하여 몸의 한 부분이 상한 그 영혼을 찾아가 거룩을 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악한 뜻을 이루고자 거짓말로 회유한 사실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큰 건물 안에서 영광을 취하며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고 있는 목자들도 생명의 기회를 얻도록 즉 돌이키도록 그곳에 모여있는 독사새끼들에게 이러한 경고를 하셨다.
“한 백성이 범죄하였기에 그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돌이킬 기회를 허용하시어 그의 육을 다물게 하셨도다. 하지만 너희들은 그것을 보면서도 지금은 원수에게 붙들려 그 입을 열고 닫고 하는 도다. 그러나 그 육이 사망한 후에는 아버지께서 너희 영혼이 그 입을 영원토록 닫게 하시겠노라.” 그러나 성전의 목자들은 자기의 뜻과 계획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생각했으니 썩어질 육의 욕심과 영광스런 그 자리에서 돌이키기는커녕 오히려 입을 열어 그리스도를 가짜라고 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입이 닫혀있던 그 영혼에게는 그가 범한 죄들을 돌이키므로 온전한 몸으로 회복되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죄를 아느뇨? 네가 만일 깨끗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너의 죄를 씻으라. 그리하면 너의 입도 회복이 되겠노라.” 이 말씀을 듣자 그 영혼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졌으니 죄로 상한 자신의 몸의 한 부분을 보며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선하신 뜻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그 세 가지 죄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다 회개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회개가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한 것임을 보시고 그의 입을 붙들고 있던 그 어둠의 세력을 불러내셨으니 그의 입은 원래대로 다시 열렸다.
이와 같이 사람은 죄악으로 인하여 어둠의 세력들이 그 영혼에게 들어가 누구에게는 입을 누구는 눈을 누구는 귀를 누구는 몸의 한 부분을 붙들어 그를 참으로 비천하게 만들되 그리스도께서 그 치유의 기적들을 보여주신 것은 그들이 온전케 되어 사는 모습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요 그들의 안에 거하며 영원한 사망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그 더러운 것을 깨우친 후 회개를 통해 영혼의 깨끗함을 입고 또한 영혼의 깨끗함을 인하여 몸도 온전케 된다는 것을 가르치려 하심이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동일하니 어디가 아프거나 붙들리거나 불치병에 걸리면 자신을 돌이키지는 않고 오직 병원과 은사자들을 찾아 다니며 그저 질병만 낫기 원한다.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당시 감람산 맞은편 언덕에 긴 타원모양의 거대한 성벽 안쪽이 예루살렘성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통곡의 벽안에 세워진 직사각형모양의 높은 성전 안에 돈 바꾸는 자들과 제사짐승을 사고파는 넓은 공간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독사새끼들이 문안 받기 좋아하는 시장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다시 사람 키보다 조금 더 높은 담을 쳤으니 그 안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고 그 좌우로 두 개의 긴 공간이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 뜰이 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성소까지 대제사장은 지성소까지 들어가되 백성들은 뜰과 좌우의 공간 즉 회당까지 들어와 거할 수 있다. 그런데 성전목자들 가운데 한 명이 성소에서 나와 말씀을 봉독하고 그 뜻을 말해주는 시간을 정하며 또한 사람들을 회당의 한 장소에 모아 바리새인의 설교를 듣도록 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또한 회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므로 모든 것이 오로지 같음이 없고 분쟁이 없도록 했으니 그가 바로 회당장이다.
그리스도의 당시에 회당장은 모두 세 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영혼의 이름은 야이로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성인의 나이인 12살에 이른 사랑하는 외동딸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딸이 이제는 육신의 시간이 다 되었기에 그가 자신의 뜻대로 자기의 육체를 이용하지 못하고 그저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야이로의 딸은 죄가 쌓여 얻게 되는 그 어떤 질병으로 인함이 아니요 혹은 자신의 육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해서 얻는 질병으로 인함도 아니요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태어나며 얻은 질병으로 인함도 아닌 오직 그의 육의 수명이 다하여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자신에게 다가온 그 죽음의 문턱에서 그리스도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에 그 여자의 영혼은 아직은 죽음이라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그리스도께 방문을 요청하고 싶었다. 유대인으로서 만물의 창조자이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았으며 그리하여 자신이 거룩을 이룰 수 있도록 육신의 시간을 허락해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그리스도께 구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아비를 통해서 부탁했다. 그것은 유대인여자인 자신이 부끄러울까 했기 때문이요 또한 스스로 깨닫기에는 이미 자신의 때가 거의 다 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자기의 아비에게 요청을 했으나 결국 그의 영혼이 12년 동안 거했던 그 육을 떠났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자기 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자기의 목숨까지 바쳐 자식을 구하려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으니 회당장의 자리는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앉아있던 자리보다 딸을 더 소중하게 여겼으니 그 여자의 영혼이 육에서 나온 후 인간의 시간으로 약 15분 후에 집을 나와 발걸음을 재촉해 그리스도를 찾아가게 된다.
야이로는 그리스도를 만나자 유대인으로서 가장 정중하고 간절한 부탁의 표현을 했다. 그러므로 그는 먼저 그리스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머리를 그리스도의 발 위에 얹었다. 하지만 그가 날마다 간구한 것은 영의 생명이 아닌 썩어질 육의 생명이었으니 그리스도께 자기 딸의 육의 생명을 구했다. 그러므로 독사새끼들에게는 항상 엄중하셨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알릴 바를 알리시고자 ‘육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되 네 영혼이 어디로 갈까를 생각하고 구하여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야이로는 썩어질 육에서 영원한 영으로 헛되고 헛된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로 자신의 마음을 돌이켰다. 그리고 그 증거로써 자신과 딸의 썩어질 육의 생명이 아닌 영원한 영혼의 생명을 간구했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회개한 마음이 진실함을 들여다보시고 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따라 즉 그 여자의 육체가 거룩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을 한 번 더 허락하시고자 야이로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이미 피리를 부는 자들이 와있었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풍습을 보고 따라서 피리를 부는 것은 그 육체에서 떠난 그의 영혼이 그와 가까웠던 영혼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그 영혼과 또한 그 함께 하였던 자들에게 그 악한 영들을 계속 붙들게 하려 함이었다. 그러나 어리석게 믿는 자들과 이방인들은 영적인 세계의 깨달음이 없으니 썩은 몸을 장사하러 가거나 굴에 넣을 때 피리소리를 내는 것은 죽은 자와 함께했던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세상의 문화를 따르는 어리석은 유대인들과 또한 슬픈 소식을 듣고 모인 야이로의 몇몇 친척들과 또한 자신을 따르는 군중들과 제자들에게 이 여자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신 후 제자 셋과 부모만 데리고 그 여자의 몸이 놓여있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전에 야곱이 그 광야에서 방황할 때에 돌을 베고 잔 것을 기억하므로 영혼이 떠난 몸이 쉰다는 의미로써 만든 풍습이 있었으니 죽은 자가 어린 생명이면 그의 부모가 단단한 돌을 들고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누운 자가 성인이라면 그의 가장 가까운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이 그 길쭉한 돌을 들고 들어가되 그 돌을 들어줄 자가 없으면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영혼이 떠난 그 여자의 몸도 유대인의 그 관습에 따라 편편한 돌 위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과 때가 있으며 또한 그에 따라 그 여자의 영혼은 육신의 죽음을 원치 않았고 또한 그의 부모도 마음을 돌이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돌 위에 누워있는 그 몸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그 육에게 명하신 것이 아니요 그 육을 움직일 수 있는 그 여자의 영혼에게 말씀하신 것이니 하나님의 일곱 영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해 다시금 그 여자의 영혼을 이끌어 그의 몸으로 인도했다. 그러므로 그 여자의 영혼은 자기의 육체에서 나간 후 사람의 시간으로 90분 후에 다시 돌아왔다.
이제 그 여자의 영혼은 자기의 육체로 돌아온 후 아버지의 뜻에 이르기 위하여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온 힘과 온 마음을 다했다. 자신에게 육의 생명을 한 번 더 허락하신 아버지의 그 뜻과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요 그에게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시고 아버지께서 그것을 깨우쳐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마지막에 결국 영과 혼과 육의 거룩함을 이룬 후 다시 육을 떠났을 때 유대인으로서 그토록 원하던 거룩하고 영원한 육체의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었다. 한편 그 여자의 아비는 당연히 독사의 자식들에게 성전의 좋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으니 야이로는 스스로 그 배설물을 버리므로 자신의 첫 마음을 지켰다.
한편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첫사랑을 붙들고 깨어있는 영혼들은 달리다굼이란 말을 통해 기억할 것이 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의 능력이 교회시대와 또한 마지막 환난 때에도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거룩하고 신령한 교회에 임하실 것이요 아버지께서는 그 이방영혼의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그 약속에 따라 자신의 뜻과 때에 맞추시어 이 땅에서 썩어질 그의 몸을 일으키신다. 그리하여 죽었다가 살아난 그 이방인도 달리다굼이라는 말을 들었던 그 여자의 영혼처럼 자신의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거룩을 이루어가리니 아버지께서는 광야로 나온 모든 믿는 자들이 그 능력을 보고 다 함께 일어나 오직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가기를 간절히 소원하신다.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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